A Monster Calls: Inspired by an Idea from Siobhan Dowd (Paperback) - '몬스터 콜' 원작
Patrick Ness / Candlewick Pr / 2013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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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 신경 안 씀. 근데 비공개할까는 고민중)

기적을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죽여버리고 싶었다.
기적을 말할 때마다 죽여버리고 싶다.
그럼에도 살아간다는 것. 생존한다는 것이 얼마나 … 같은 것인지에 대해서도 아직도 느끼고 있다.
그러다가 마침내 진실을 말하는 책을 발견한 기분이다. 아동문학에서. 저 어두운 그림들 속에서. 내내 울면서 읽었다. 인생이 얼마나 …같은지. 착해서 먼저 데려갔다는 둥, 안 믿어서 벌 받는 거라는 둥, 호상이라는 둥 개소리 나불대는, 마치 욥을 비난했던 …들과 다를 바 없는 …들한테 읽히면 좋겠다.

오랜 투병으로든 갑작스러운 사고로든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건 정말 괴로운 일이다. 그런데 또 한 켠으로는 이 모든 게 끝났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거는 무척 자살을 닮았다. 죽음 자체가 좋아서, 죽음을 찬양하고 예찬해서 죽는 경우는 거의 없다. 지금 이 상황을 견디기엔 내가 너무 괴로우니 벗어나는 방법으로 택하는 것이다. 그건 당사자에게도 그렇고 주변에서 병간호를 해야 하는 사람도 그렇고, 그 자손 아이들도 그렇다. 정말 지친다.
또 언젠가는 사지가 사라지기 전에 마음껏 쓰자는 마음으로 그림과 낙서를 그리기 시작했다. 사실은 나도 포기하고 있었던 건데 사람들은 생존 의지로 보았지. 고통을 평생 겪을 바에야 차라리 죽어버렸으면 좋겠고 다 잘라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생존 의지라는 건 안 아파본 사람들의 개소리라는 걸 깨달았고.
진짜 목숨 끊어지는 건 쉬운 게 아니다. 그 고통을 넘어서는 뭔가가 있어야만 죽겠지? 의지가 있어 살아지는 게 아니고 기적이 있어서 살아남는 게 아니다. 그걸 넘어서는 고통을 감당하고 결국 기꺼이든 어쩔 수 없이든, 죽는 쪽이 존재한다는 걸 생각하면…. 아프다.
환우 몇을 보냈다. 나보다 말도 안 되게 어린 환우도 갔다. 새벽에 갔다고 호상이라는 사람들을 제발 지옥에나 가라고 생각하곤 한다. 고통-공포-고독사일 수도 있는데. 정말 아무도 없는데 ‘죽을 거 같다’는 기분은 정말 극도의 공포와 고통이란 말이야. 고통 속에서 지옥같은 시간을 지나 죽었을 텐데. 내가 잔다고 생각하는 사람 옆에서 살려달라고 하고 싶은데 숨이 멎는 고통에, 몸에 갇혀 버렸을 때도, 무섭단 말이야. 너무나 고독하고 무섭단 말이야. 그게 왜 호상이야. 아니면 그게 왜 벌이야. 너무하잖아. 다 진짜 너무 잔인하잖아. 위로를 하고 조의를 보낼 거면 똑바로 해. 대체 왜 호상이라고 하고 천사를 먼저 데려갔다고 해 그런 정신 놓은 신이 세상에 어딨어 아예 태어나게 하지를 말지. 대체 뭘 믿는 거냐고.
조용히 잠들듯 가셨다며 왜 아름답게 그려? 싫다.

나보다 더 열심인 사람은 죽었는데 나는 살았다? 이게 기적이라고? 아니지. 그런데다 기적이란 이기적인 단어좀 쓰지 말았으면. 늘 생각해. 삼풍 때도 대구 지하철 때도 세월호 때도.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기적이라는 말 쓰면 죽은 사람들은 뭐가 돼? 그럼 그사람들에겐 왜 기적이 없었는데? 기적이라는 것이 주어지는 거라면 받은 사람은 왜 받았고 못 받은 사람들은 왜 못 받았는데? 설마 세상 얼마나 살았다고 어린 애들한테 까지 죄 받았다고 할 거야? 명줄 긴 죄인들은? 천사라 먼저 데려갔다고? 그 천사가 언제 데려가 달랬어? 개소리 작작 좀. 사실은 비열한 거잖아. 아 난 아니라 다행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서 기적이다. 기적은 늘 당신에게만 오는 괴랄맞은 것이니까. 인과를 따진다면, 당신 같은 사람이 기적을 경험하는 건 정말 말도 안되는 일일 수도 있잖아.
이런 류의 책을 읽을 때마다 늘 드는 반감 같은 것이 바로 이런 감정인데 이 책에선 이런 반감이 전혀 들지 않았다. 어떻게든 살아남은 사람들의 죄책감을 악몽과 괴물로 불러내고, 모든 걸 놓고 싶다는 감정을 인정하고 나를 떠나는 이들을 보내기 위해 견딜 수 있도록 해준다.

And he also knew he was going to get through it.
It would be terrible. It would be beyond terrible.
But he‘d survive.
-204쪽.

이 감정이 얼마나 거지같은 감정인지. 그러나 견뎌야 할 의무가 있다는 걸 보여주는 책이 있어서 마음이 매우 슬프고, 덜 괴로웠다.
육하원칙에 따라 꼬치꼬치 끊임없이 병과 사고 원인이나 사인에 대해 들춰내는 집요하면서도, 내가 아니라서 가할 수 있는 폭력적이고 병리적인 시선을 코너에게는 차라리 거두어버리고 안 보이는 사람으로 처리해준 것도 좋았고, 남에게 보이는 사람이 되는 것이 더 괴로울 수 있다는 점도 알려 주어 좋았다. (물론 안 보인 게 아니라 무성한 소문+쉬쉬 일 수도 있지만, 나는 투명인간에서 불투명 인간이 될 때, 이해와 소통의 여지 만큼 소문이나 억측의 여지가 커지는 것 같다.)
사람이 나고 죽는 것은 절대, 다행이나 불행같은 운도, 기적도 아니고 하물며 삶이라는 것 자체가 랜덤한 요소가 있다는 것도 다루는 거 같아서 좋았다. 나고 죽는 건 절대 상벌이 아니다.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괴물이 그걸 말해주어 좋았다. 다소 거칠고 잔인해 보이지만 결국 ‘내가 너무 견디기 힘들다’고 말하게 해 줘서. 너무너무 가슴이 아프지만 그래도 뻥 뚫리는 기분이 들었다.

괴물은 코너에게 네 잘못이 아니라고 했지만, 그래도 나는 죄스러운 마음으로 살 것이다. 이따금 그 때 뒤지지 그랬냐는 자책을 여전히 하겠지만 그래도 멘탈 붙잡고 있을 땐 죄스러운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누군가가 너무나 살고 싶었던 그 순간을 아까워 하는 마음으로, 그게 안되면 반성이라도 하는 마음으로 죽을 때까지 괴롭게 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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