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함락 1945 걸작 논픽션 26
앤터니 비버 지음, 이두영 옮김, 권성욱 감수 / 글항아리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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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통틀어 제2차 세계 대전에 관련된 이야기만큼 우리에게 여러 매체로 다가온 것은 없을 것이다. 문학이나 영화, 히틀러와 홀로코스트에 대한 사진이나 다큐멘터리로 접한 그곳 현장에는 독재자의 광기로 인한 전쟁, 죽음, 살아남은 자의 트라우마가 있었다. 그러나 특정한 주제를 부각시키려고 한 면이 많았기에 참혹함속에서도 피어나는 인간미와 사랑, 심지어 낭만까지도 볼 수 있었다. 전쟁을 겪어보지 못한 나에게 남은 건 어쩌면 실제보다 그런 허상이 대부분일지도 모른다.

 

1944년 독일 베를린의 분위기에서 시작되어 19455월 소련이 베를린에 입성하기까지의 과정을 연대기순으로 서술한 앤터니 비버의 베를린 함락 1945는 전쟁에 대한 나의 허상을 지우고 다시 그 본질을 들여다보게 해주었다. 많은 자료로 세밀하고 다양한 시각으로 묘사된 베를린 함락까지의 과정에서, 전쟁이란 한낱 미친 인간에 불과한 한 개인과 그 추종자에 의해 집단이 조종되고 움직이며 그 결과로 인한 피해마저 고스란히 뒤집어쓰는 것임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책의 내용이 연대기순으로 전개되었지만 군사작전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히틀러와 스탈린에서부터 이름 없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여러 사실들과 생각, 감정까지 교차되며 서술되고 있어 지루하지 않았고 끝까지 책에 집중할 수 있게 해주었다.

 

알려진 대로 독소전쟁은 위대한 게르만 민족이 열등한 슬라브인을 없앤다는 것과, ‘파시스트 짐승(p.33)’인 나치를 응징하고자 하는 히틀러와 스탈린의 이데올로기 전쟁이었다. 두 지도자의 세계관이 들어간 이 전쟁에 관용과 타협의 여지는 없었다. 자신들의 신념이 관철되기까지 오로지 직진만 있었다. 소련의 침공을 누구나 예상했었고, 심지어 베를린 시민들조차 감지하고 있었음에도 벙커안에서의 히틀러만은 인정하지 않았다.

 

[군사적 논리를 무시하는 히틀러가 그들을 절망으로 몰아넣었다. 그제야 독재자의 카리스마가 범죄 에너지로 가득 차 있으며 선과 악에 대한 완전한 무시를 기반으로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히틀러의 심각한 인격 장애는 정신 질환으로 정의되진 않는다 해도 분명 자신을 미치게 만들었다. 그는 자신과 독일 국민을 완전히 동일시해 누구든 자신에게 반대하는 사람은 독일 국민 전체에 반대하는 것이며, 자신이 죽으면 독일 국민은 살아남을 수 없다고 믿었다.

-p.269]

 

히틀러는 정확한 정보를 믿지 않았으며 주변의 참모들은 무능했고 입을 닫고 있었다. 히틀러는 끝까지 소련과의 전쟁을 원했으며, 자신의 군대가 승리할 것이라는 망상에 집착했다. 서부와 동부전선에서의 이중적 적의 공격에 시달리면서도 그는 국민이 마지막까지 전쟁을 수행해 줄 것을 원했다. 젤로 고지의 오데르강에서 가미카제식 공격을 가하는 레오니다스 비행중대(p.387)’가 보여준 행동은 더 이상 독일이 전쟁을 이어갈 여력이 없음을 보여 준다.

 

전혀 이성적이지 않은 스탈린은 오직 베를린 함락에만 집중한다파시스트를 전멸시키겠다는 대의에 숨겨진 스탈린의 속마음은 원자폭탄을 미국보다 먼저 만들겠다는 것과 독일의 공업기술과 공장의 기계을 빼앗고 폴란드에 대한 지배권을 갖고자 하는 야심이 포함되어 있었다. 스탈린의 무조건적 전진명령에 붉은 군대가 지나간 길의 모든 곳에는 그 어떤 인간적인 면도 찾아볼 수 없었다. 붉은 군대에 소속된 군인은 자신의 목숨을 아껴서는 안 되었다. 그들은 NKVD와 스메르시에 의해 항상 감시당하고 있었고 여차하면 처형이나 굴라크로의 유형을 선고받아야 했다.

 

독일과 소련이 두 차례에 걸쳐 엄청난 물량을 쏟아 붓는 전쟁을 치를 수 있었던 것은 그 두 나라의 자력만은 아니었다. 독일은 유대인의 재산을 모두 몰수했고 체코슬로바키아, 프랑스, 폴란드를 점령해 많은 노예 노동자를 데려올 수 있었다. 스탈린은 군비확장을 위해 중앙아시아와 러시아의 위성국가들에 대해 무자비한 수탈을 했다.

 

[그는 독일 공장들이 1946년 봄에는 한 달에 자동권총 10만 정을 생산하는 수준에 이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 사업이 나치 친위대의 강요에 의해 일하는 노예 노동자들에게 주로 의지한다는 사실은 물론 언급되지 않았다. 슈페어는 또한 노예 노동자들이 하루에 수천 명씩 죽어나가면서 숫자가 줄고 있다는 사실도 말하지 않았다. 이런 노동자들을 데려올 수 있는 지역도 점점 줄어들 참이었다.

-p.70~71]

 

소련이 독일로 진격할 때 해방된 강제노역자들에겐 또 다른 고난이 있었다. 그들은 사상에 대한 의심과 검열을 받아야 했고, 심지어 여성 노동자들은 붉은 군대에 의해 강간당한다. 전쟁 중 민간인들 또한 전혀 보호받지 못했다. 군대에 의해 모든 것이 약탈되었고, 피란민을 태운 배조차 소련 잠수함의 공격을 받는다. 1945130, 피란민을 태운 빌헬름 구스틀로프호는 소련 발트 함대 잠수함의 의뢰공격을 받고 침몰한다. 그때 날씨는 영하 18도였고 5300명에서 7400명 사이의 사람들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는다.(p.128). 특히 동부전선의 첫머리에 있는 동프로이센, 슐레지엔, 포메라니아의 민간인들은 더 끔찍한 삶을 겪어야 했다. 민간인에 대한 약탈은 소련군뿐만 아니라 서부전선에 있는 미군들도 당연하게 생각했다.

 

이 책의 머리말에서부터 책의 많은 곳에서 언급된 붉은 군대에 의한 집단 강간은 정말 충격적이다. ‘연령을 불문하고 소녀와 여성들을 집어삼킨(p.96)’ 집단강간에는 그 어떤 도의적 책임이나 인간에 대한 연민도 없었다. 파시즘에 대항하는 중요한 과업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그러한 행위는 당연한 것이고, ‘전쟁에서의 불가피한 결과로 일축(p.100)’시켰다. 전쟁 중에 여성은 승리의 전리품으로 취급되고, 성적(性的) 분출은 그 어떤 방법으로도 허용되었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에서 붉은 군대의 여성 병사조차 남자 군인들의 성적 파트너로 존재했다고 밝혔다. 소련은 아직까지 이 대량강간에 대해 말하기를 회피하고 있다. 무자비한 집단강간으로 시작된 여성을 향한 폭력은 나중에 많은 소련군 장교가 독일 점령군 아내와 정착하기를 원하는 이상한 형태로도 나타난다. 아이러니하게도 위기의 상황에서 인간은 성을 더 다양하게 분출하는지도 모른다. 함락직전 총통의 벙커에서도, 수많은 독일인들이 피해있던 불 꺼진 지하실과 벙커에서도 무분별한 성행위가 많이 목격되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가 무척이나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소련의 포격을 당한 베를린 시민들은 견디기 힘든 시간을 보낸다. 물과 전기가 끊기고, 식량이 부족했다. 폭격에 의해 많은 사람이 죽고 베를린 여성 또한 집단강간의 피해자였다. 그들에게는 굶주림이 공포로 다가왔다. 그러나 히틀러는 어린 아이까지 전쟁에 내보내어 끝까지 베를린을 사수하기 원했다. 히틀러의 참모들은 군인들과 민간인을 버려두고 먼저 도망쳤다. 이 전쟁에 승산이 없다고 인식한 장교들에 의해 병사와 민간인을 탈출시키기 위한 작전도 있었지만 너무 늦게 시작되어 성공하기 힘들었다.

 

이 책에 서술되어 있는 여러 에피소드 중, 프린츠-알브레흐트슈트라세의 게슈타포 본부에 남아 있던 마지막 죄수들에 대한 내용은 개인으로서의 인간의 삶이 얼마나 위태롭고 약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수많은 사람이 죽음을 당한 가운데 운 좋게 살아남을 수 있어도 소련군의 잘못 발사된 총 한 방으로 바로 죽을 수 있는 것이 전쟁 중의 인간의 삶인 것이다.

 

바라던 대로 베를린을 함락시켰지만 스탈린은 거기서 만족하지 않는다. 그의 지시대로 전쟁을 수행한 붉은 군대의 군인들 중 많은 사람들이 전쟁이 끝난 후 반혁명 범죄로 유죄판결을 받는다. 독일에 의해 전쟁 포로가 되었던 군인들도 굴라크나 시베리아의 노동부대들로 보내졌다. 스탈린에 의한 반유대주의 폭행도 자행되었다. 베를린을 함락시킨 주코프 장군은 스탈린의 질투심에 의해 20년 동안 칩거해야만 했다.

 

[스탈린과 원수들은 병사들의 목숨을 신경 쓰지 않았다. -p.656

 

러시아의승리를 훼손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당 노선은 우리에게 역사적 승리를 안겨주신 우리의 위대하고 영명하신 군지도자 스탈린 동지오직 한 사람에게만 경의를 표했다. 스탈린은 뻔뻔하게도 전투가 승리를 눈앞에 두고 있을 때마다 전면에 나섰다. 재난 상황이 닥치면, 특히 자기 탓일 때면 사람들 눈에서 사라졌다. 지휘관들은 항상 스탈린의 현명함과 인도자로서의 손길을 인정해야 했다. 자기 자신에게 공적을 돌리는 것은 극히 위험했다.

-p.658]

 

히틀러와 스탈린의 광기와 허영심은 엄청난 숫자의 사람을 죽이고 불행하게 만들었으며 철저하게 개인을 말살시켰다. 하지만 히틀러를 비롯한 괴벨스, 힘러, 괴링은 그 어떤 재판도 받지 않고, 잘못을 인정하지 않은 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P.598) 스탈린 역시-베리야에 의한 암살설도 있지만-자신의 수명을 다하고 죽었다.

 

 

책을 다 읽고, 이 책의 앞쪽에 실린 지도를 보며 다시 베를린 함락에 대한 복기를 해보았다. 소련군과 히틀러 유겐트, 베를린 시민들, 굶주린 피란민들, 아우슈비츠 생존자들, 교수형에 처해진 독일 병사, 얄타 회담에서 웃고 있는 스탈린과 처칠의 사진을 보면서 독일 국경을 넘은 한 소련 병사의 회상이 생각났다.

 

폴란드와 달리 독일의 대부분의 집이 벽돌과 돌로 지어져 있고 작은 정원은 깔끔하게 손질되어 있는 모습을 보고 클로치코프는 ‘“생각이 없는 민족이 아닌독일인들이 어째서 유복하고 편안한 삶을 판돈으로 걸고 소련을 침략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p.150)’고 생각한다. 잘 살고 있어도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 다른 것을 짓밟을 수 있으며 지도자의 잘못된 판단은 결국 더 큰 폭력을 가져온다. 지도에 그려진 진한 화살표는 이유와 명분이 없는 무조건적 명령수행을 나타내 주는 건지도 모른다.

 

앤터니 비버가 서문에서 서술한 국가사회주의 말로라는 주제가 이토록 흥미진진한 것은 요즘 독일의 십대들이 제3제국의 역사를 들여다보면서 감탄하는 일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중요성은 계속된다(p.54)라는 문장에 들어있는 감탄은 좋은 의미가 아닐 것이다. 역사는 그 본질보다 왜곡된 것으로 이용되기 쉽다. 베를린 함락 1945에서 저자가 여러 방향으로 분산시켜 묘사해준 글은 전쟁을 겪지 않은 우리들에게 그런 실수를 저지르지 말라는 메시지를 준다. 이 책을 읽으며 독일의 소련 침공을 다룬 저자의 다른 책인 피의 기록,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독일군이 러시아에서 한 짓(p.142), ’독일군이 소련에서 저지른 만행(p.206), ‘우리가 점령지에서 했던 짓(p.320)’이 무엇인지 궁금하고 그것을 알아야 베를린 함락에 대해서도 완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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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3-09-26 09: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이젠 역사책도 섭렵하시는 건가요? 2차세계대전 이야기는 언제나 재미있으면서도 안타깝습니다 ㅜㅜ
히틀러와 스탈린 ㅜㅜ 최악의 조합인듯 합니다 ㅋ

페넬로페 2023-09-26 10:24   좋아요 2 | URL
역사에 대한 논픽션을 좋아했어요. 전쟁에 대한 이야기는 무궁무진한 것 같아요.
왜 세계 최악의 인간이 같은 시기에 만나게 되었을까요 ㅠㅠ

거리의화가 2023-09-26 09: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을 읽으면서 독소전쟁의 시작부터 전개 과정을 다시 훓어보았습니다. 저자의 다른 책을 함께 읽는다면 더 도움을 얻을 수 있을 듯 해요. 54페이지 문장은 저도 충격이었어요. 과거의 역사를 영웅적으로만 바라보거나 미화적 시각으로 인식하는 순간 이런 큰 전쟁은 또 다시 발생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쟁에서 특히나 인간의 목숨은 너무나 하찮아지네요.

페넬로페 2023-09-26 10:26   좋아요 2 | URL
거리의화가님은 평소 역사에 대해 조예가 깊고 많은 책을 읽으셨기에 이 책에 대한 배경지식도 많았을 것 같습니다. 54페이지의 내용이 약간 모호해서 제가 해석한 것이 맞나 고민했습니다. 전쟁의 끔찍함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어요.

건수하 2023-09-26 15:41   좋아요 1 | URL
젊은 세대들은 그 때가 독일의 ‘리즈시절‘ 이라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요? 일본에서도 많은 젊은이들이 그런 생각을 한다고 들었던 것 같습니다. 경계해야 할 일입니다... 독일은 국가적으로 반성하고 역사 교육에 있어서도 유의한다고 들었는데 일본에서는..

미미 2023-09-26 10: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p.269 자신과 국민을 동일시한다는 부분이 요즘 우리 나라의 상황과 닮았네요.
말 잘 듣는 무능한 참모들과 어리석은데 고집스러운 우두머리의 조합의 결말은
불을 보듯 뻔하다고 생각합니다.

집단 강간도 그렇고 어떤 집단을 와해 시키기 위해 한 일들을 감안할 때
음흉한 것으로는 스탈린이 더 한 것 같아요.
당시 많은 희생이 있었던 만큼 페넬로페님 말씀처럼 뼈 아픈 교훈으로 남겨야 하는데
일부에게만 그런 듯하여 국제 정세가 걱정스럽습니다.<피의 기록,스탈린 그라드>저도 읽어보고 싶네요.

페넬로페 2023-09-26 11:05   좋아요 1 | URL
저도 이 책 읽으며 지금 우리의 상황과 너무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ㅠㅠ 역사는 이렇게 나쁘게 되풀이 되는가봐요. 국제정서도 그렇고요. 우리나라를 바라보는 제 마음이 위태로워요. 스탈린과 히틀러, 정말 막상막하, 도진개진 입니다.

건수하 2023-09-26 15: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책은 상당히 감성적이어서, 아픔은 와 닿았지만 규모는 와닿지가 않았습니다. 페넬로페님 글을 읽으니 저도 (이 책을 읽지 않았는데도) <피의 기록, 스탈린 그라드>가 궁금해지네요. 페넬로페님 글을 먼저 읽게 되면 궁금증이 사그러들지도 모르지만 말입니다...

리뷰대회 수상을 기원합니다 ^^

페넬로페 2023-09-26 15:57   좋아요 1 | URL
같은 주제라도 저자의 관점에 따라 다르게 서술되는 것 같아요.
이 책에서 붉은 군대의 여군들은 집단 강간에 대해 별로 치를 떨지 않게 나옵니다.
본인들의 대업 수행에 당연한 과정이라 생각하더라고요,

이상하게 리뷰대회 끝나고 후기쓰면 뭔가 뒷북치는 느낌이 있어요 ㅎㅎ
그래서 결과 생각하지 않고 바로 올렸어요^^이제 백래시 마무리해야겠어요~~

잠자냥 2023-09-26 16: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붉은 군대 병사들이 독일인의 생활상을 보고 열등감에서 증오로 돌변하는 지점이 인상 깊기도 하고 끔찍하기도 하더라고요... 전쟁터에서나 현실에서나 열등감과 증오란 참 사람을 야수로 변모하게 하는 것 같아요.

페넬로페 2023-09-26 17:14   좋아요 2 | URL
네, 정말 그런 것 같아요.
전쟁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요.
잠자냥님과 저의 감상 포인트가 비슷한가봐요~~
이 책 읽으면서 남자들은 어떤 느낌일까 궁금하더라고요^^

레삭매냐 2023-09-26 18: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한 때 독일을 영광으로 휩쌓이게
만들었던 문제적 인간의 몰락이
이보다 더 극적일 순 없지 않나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탈린그라드>도 대단한 작품
입니다, 추천해 드리는 바입니다.

페넬로페 2023-09-26 18:10   좋아요 2 | URL
히틀러의 죽음에 관련된 것도 참 맘이 좋지 얺더군요.
그들은 죽음마저 선택할 수 있는 특권이 있더라고요.

네, 꼭 읽어 보겠습니다^^

책읽는나무 2023-09-26 21: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까 자냥 님 리뷰도 읽고 왔는데 페넬로페 님 리뷰도 멋지군요.
책도 궁금해지구요.
좋은 결과 있으시길 보름달 보고 기원하겠습니다.ㅋㅋㅋ

페넬로페 2023-09-26 23:05   좋아요 1 | URL
보름달 기운까지 ㅎㅎ
감사합니다~~
그 기운 책나무님께서도 많이 받으시길요.
즐거운 추석 명절 보내셔요^^

희선 2023-09-28 02: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쟁을 하는 사람은 거기에 빠지고 마는 것인가 싶기도 하네요 그때 일을 자꾸 이야기하는 건 그때와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서겠습니다 전쟁에서 이긴 쪽은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른 나라에 가면 당한대로 하고... 무서운 전쟁입니다

페넬로페 님 명절 잘 쇠시고 연휴 동안 별 일 없이 즐겁게 편안하게 보내세요


희선

페넬로페 2023-09-28 13:24   좋아요 2 | URL
네, 희선님 말씀처럼 전쟁을 하다보면 목적을 잃고 단지 전쟁놀이에만 빠지게 될 것 같아요
도덕도 양심도 없고 사람 목숨도 하찮게 되고요^^

희선님!
즐겁고 건강한 추석 명절 보내시길요^^
 














최근에 정부는 육사에 있는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계획을 발표했다. 다른 말로 그가 공산주의자(공산당 활동)라는 이유로 육사에 있을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이런 이슈가 없었다면 나에게 홍범도는 봉오동 전투와 한 쌍을 이루는, 역사책에서 만난 인물로만 머물러 있었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홍범도가 실제로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졌다. 바뀌는 정부마다 홍범도에 대해 내리는 평가가 다르다는 것은 결국 그가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는 증거일 것이다. 홍범도는 1943년 카자흐스탄에서 사망했고, 2018년 육사 교정에 그의 흉상이 건립되고 명예졸업장이 추서되며 2021년에 그의 유해가 한국으로 송환되었다.

 

소설 나는 홍범도는 홍범도가 27세쯤 김수협을 만나 의병활동을 시작하는 것에서 시작되어 50대 초반 대한독립군 총사령관으로 북로군정서의 김좌진 장군과 연합해 청산리에서 일본군에게 대승을 거두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픽션으로 만났기에 홍범도의 스토리가 어디까지 진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실제 그의 생애는 소설보다 훨씬 더 드라마틱하다.

 

1868년 평양의 가난한 집에서 홍범도는 출생한다. 아이를 낳고 7일 만에 그의 어머니는 죽고 8세에 아버지가 사망한다. 머슴살이로 생계를 유지하다 15세에 자원입대한다. 군대에서 차별에 대한 불복종으로 탈영하고 종이공장에서 일하다 폭력적인 주인을 때려눕히고 도주한다. 금강산 신계사에서 삭발승이 되지만 이웃 절의 비구니와 사랑에 빠져 그녀를 임신시킨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건달패의 습격으로 만삭의 아내와 헤어진다. 상심한 홍범도는 깊은 산골에 들어가 농사를 짓고, 포수가 되어 짐승을 사냥하며 산다. 그 때 명성황후 시해 사건이 일어나고 이에 분노해 김수협과 의기투합해 의병 생활로 들어선다.

 

[맞아요. 내가 잡아볼까 하는 호시기는 조선을 향해 총질 해댄다는 왜국 종자들입니다.”

, 왜요? 그건 나라가 할 일이잖아요?”

나도 그리 생각하는데, 나라가 그걸 못하는 것 같잖아요. 점점 더 못할 성싶고요.”

-‘나는 홍범도‘, p.34~35]

 

기회 있을 때마다 러시아, , 일본에 도움을 청하는 나라는 이미 힘을 잃어 자력으로 나라를 지킬 여력이 없기에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결성된다. 안중근 의사가 포수였듯 홍범도도 뛰어난 사격술을 가진 포수였다. 화승총이나마 한 자루씩 지녀야 그나마 일본군과 싸울 수 있었기 때문에 의병 구성원에 포수 출신이 많다. 홍범도는 일본군과 대개 이기고 때로 진(p.382)’ 높은 승률의 승리로 그들에게서 무기를 전리품으로 가져와 다시 싸웠고, 친일파의 집을 습격해 군자금을 얻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치는 의병에 대해 정작 조선은 그들을 반란군으로 여기고 일본군과 함께 그들을 탄압했다.

 

반일 의병대가 무장봉기하자 일본은 그것을 빌미로 조선에 더 많은 수의 군인을 투입한다. 점점 압박해오는 일본군과 무기와 탄약의 부족, 의병 활동으로 인한 양민들의 고통으로 인해 국내활동이 어려워지자 홍범도는 1910년에 러시아로 망명한다. 연해주에서 활동한 홍범도는 당연히 그곳에서 공산주의와 맞닥뜨려야 했을 것이다. 그는 한인 사회주의자들과 연계했고 1927년에 소련 공산당 당원으로 가입한다. 그러나 그의 정체성은 조선독립군적 성격이 훨씬 더 강했다.

 

[그러나 홍범도의 생애와 항일무장투쟁에 대한 평가가 여러 지역에서 모두 일치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그의 사상과 특정 시기의 행각을 놓고 일부 견해차를 드러내기도 한다. 예를 들면 남한학계에서는 대체로 홍범도를 투철한 민족주의자로 인식하고 있는 실정이다. 반면에 북한과 중국 연변 그리고 구소련(러시아)의 한인학자들은 그를 민족주의자에서 사회주의자로 전향발전한 대표적 사례와 영웅적 인물로 파악하는 경향이 있다. 출신 성분과 성품, 행적을 미루어 추측해볼 때 그가 체계적으로 완비된 사회주의 이론이나 사상에 입각하여 행동하지는 않았다고 해도 그러한 이념에 동조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었으리라고 본다.

-‘봉오동청산리 전투의 영웅 홍범도’, p.12/236]

 

레닌과 스탈린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고 한인들은 소련에서 활동하기 어렵게 되었다. 의병활동이 여의치 않았던 홍범도는 농사를 짓기 시작했으며 19378월 스탈린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당하고, 카자흐스탄의 크즐오르다에서 생을 마감한다.

 

뒤늦게 만나본 홍범도의 삶은 한 사람의 생애가 이렇게 파란만장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런 그가 어떤 사람인지 한마디로 표현한다는 것은 무리다. 그러나 그가 평생에 걸쳐 항일 투쟁을 했다는 것은 확실하고, 우리가 어디에 더 큰 비중을 두어 그를 평가해야 하는지는 이미 정해져 있다.

 

 

딸아이가 혼자 독일의 베를린으로 여행을 갔을 때, ‘학살된 유럽 유대인을 위한 기념물에 간 적이 있다. 그곳에 가서 어떤 느낌을 받았냐고 물었을 때 딸아이는 이런 대답을 했다.

 

...울림이 크지만 서울의 서대문 형무소에 갔던 때만큼은 아닌 것 같아....”

 

지금도 친일파의 후손임을 자랑스럽게 떠벌리고 다니며 그들이 남겨준 돈으로 호의호식하는 사람을 만났다고 지인이 기가 차서 말한 적이 있다.

 

우리에게는 뼛속까지 나라를 잃었던 고통이 남아 있고, 나라를 팔아먹은 자들의 잔재도 여전하다. 홍범도와 친일파가 있었지만 그 뒤엔 항상 양민들이 존재했다. 누가 오든 그들은 거의 모든 것을 잃게 된다. 국가는 이런 사실을 잊지 말고 언제나 사심이 아닌 대의를 위한 선택을 해주기를 기대해 본다.

 

[홍범도는 우리나라가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로 전락하기 직전인 1890년대 말부터 1920년대 초반까지 의병과 독립군 부대를 이끌고 20여 년이 넘는 오랜 기간을 줄기차게 일제와 싸웠던 대표적 무장투쟁가였다. 따져 보면 홍범도처럼 오랜 기간 조국과 민족의 독립과 해방을 위해 국내는 물론 만주와 러시아령 연해주 등지를 주름잡으며 초지일관 항일투쟁을 벌인 인물도 별로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렇게 때문에 그는 다른 인물들과는 달리 남한과 북한, 중국 연변지역 그리고 현재 중앙아시아의 한인들 사이에서 높이 평가되고 지속적으로 추앙을 받고 있는 것이다.

-1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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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man 2023-09-08 22: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한울 출판사에서 <홍범도 장군>이라는 제목의 책이 있어요! 실제 홍범도 일지를 번역하고 연구자가 주해를 달았더라고요! 것도 추천해봅니다!!

페넬로페 2023-09-08 22:28   좋아요 1 | URL
네, 참고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희선 2023-09-09 02: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평생에 걸쳐 항일 투쟁을 한 사람... 이걸 먼저 생각해야 할 텐데, 다른 걸 보고 그렇다고 말하는 것 같기도 하네요 홍범도 장군은 나라를 생각하고 여러 가지 했는데... 지금 다르게 말하기도 하다니... 친일파 정리를 했다면 좋았을 텐데...


희선

페넬로페 2023-09-09 09:48   좋아요 2 | URL
홍범도 장군이 시대를 잘못 타고나서 여러 곳을 전전했고, 그곳에 사는 동안 당연히 그러한 영향을 받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국민을 지켜주지 못했던 나라가 원망스럽기도 하고요.
그럼에도 구국을 위해 싸운 그분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책읽는나무 2023-09-09 11:4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봉오동 전투 영화는 본 적 있어요.
홍범도 장군 역할이 나왔던가? 기억이 가물합니다.
암튼 그건 그거고...목숨을 바쳐 의병활동을 한 장군 흉상을 이전한다는 것은...참 할말이 없네요. 이전하자고 하는 자들을 빨리 끌어내렸음 싶습니다.
홍범도 장군같은 사람들이 없었다면 지금 우린 어떤 삶을 살고 있었을까요?
21세기인 지금....ㅜㅜ

페넬로페 2023-09-09 14:28   좋아요 2 | URL
‘봉오동 전투‘ 영화 초반에 월강추격대가 양민들 학살하는 것 보고 못 보겠어 지금 멈춘 상태예요 ㅠㅠ
영화 끝에 잠깐 등장하는 최민식 배우가 홍범도 장군이라 하더라고요.
홍범도 장군처럼 오랫동안 의병활동한 사람이 드문데 책읽기님 말씀처럼 21세기에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게 전혀 납득이 되지 않아요.

미미 2023-09-09 13: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어보려고 예약한 책을 받아왔는데 반가운 페넬로페님의 글!
대전 현충원 앞 홍범도로도 폐지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대요.
뉴스 보기가 겁이 나는 요즘입니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말라는
안도현 시인의 시가 생각납니다.

페넬로페 2023-09-09 14:31   좋아요 2 | URL
저도 그 소식 들었습니다.
그저 한 곳만 보고 일본에 대해서는 모든 것을 지우는 것이 정말 납득이 되지 않아요.
요즘 뉴스를 저도 거의 안 보고 있어요 ㅠㅠ
안도현 시인의 시, 제발 가슴에 좀 새겼으면 좋겠어요^^
 

하느님도 임금 영웅도 우리를 구제치 못하리.
우리는 다만 우리 손으로 해방을 이루리. 자유를 누리리.
춥고 덥고 배고프고 헐벗고 고될지라도
일제강도 무찌르고 우리나라 되찾으리. 꼭 찾으리.
간절한 의지 불굴의 용기로 싸우리, 빛나리.
끝내 끝끝내 이기리 끝내 끝끝내 이기리 - P5

"세역을 말하는 게 아니네. 예를들어, 심포수가 외손자와 평생만나지 않고 산다고 해도 외손자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지 않은가. 외손자가 호시기 같은 놈한테 붙들려서 목숨이 위태롭게 됐다는 걸
심 포수 어른이 알게 됐다고 치세. 가만있을 수 있겠나? 총도있는데? 그 총 한번 쏴보지 못하고 외손자보다 먼저 죽게 될지라도구하러 나서긴 해야지. 또 내부모형제가 호식이 앞에 놓여 있는 걸내가 알았다고 치세. 내가 가만있을 수 있나? 총도 있는데? 죽든 죽이든 쫓아가야지. 마찬가지로 우리는 조선 백성으로 조선 땅에서조선 짐승들을 잡으며 살지 않는가. 호랑이도 청국 호랑이를 잡는게 아니라 조선 땅에 사는 호랑이를 잡는 것이고. 그러매 왜놈들이쳐들어와서 조선을 향해 총질을 해대면 우리도 왜놈들을 향해서 총구를 겨눠야 하지 않는가? 놈들을 몰아내고 다시는 발을 못 붙이게해야지." - P19

모든 전투는 적의 공격을 능히 막을 수 있는 방어로써 나아가, 적을 이길 수 있는 공격으로써 승리하는 것이다. - P151

반일 의병대가 곳곳에서 무장봉기하자 일본은 청일전쟁에 투입했던 부대들을 조선 땅 처처에 편재했다. 한편으로는 ‘수비대‘니 ‘
헌병대‘니 하는 이름으로 조선 주둔 병력을 늘이느라 혈안이 됐다.
친일 관리들이 일본군이 주둔할 근거들을 만들어냈다. 친일 관리들은 조선군을 동원해 의병대 탄압을 꾀했다. 또 임금은 의병장들 앞으로 총을 내려놓으라는 조칙을 내려보내며 손발을 읽으려 들었다.
짐이 나라를 안정시킬 대책이 있으니 그대들은 난동치 말라느니 의병이 움직이지 않으면 일본도 움직이지 않는다느니, 충군애국을 뼈에 새기며 살아온 유생 출신 의병장들 마음을 임금이 흔들어대고있는 즈음이었다. - P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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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3-09-04 18:5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무장 항일투쟁의 산 증인인 홍범도
총사령관의 이야기가 짠합니다.

페넬로페 2023-09-04 21:40   좋아요 2 | URL
민초들의 삶은 왜 이리 불행한지~~
처음부터 짠합니다.
 
눈부신 안부
백수린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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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단 12년 만에 처음 세상에 내 놓은 백수린 작가의 장편 소설 눈부신 안부는 작가가 이 소설을 얼마나 고심해서 썼는지가 한 눈에 보였다. 여러 에피소드가 교차되는 다양한 이야기가 흥미로웠고, 거기에 관련된 인물 각자의 삶 모두가 의미 있었다.

 

그러나 너무 많은 것을 보여주려고 한 작가의 노력이 한편으로 종합 선물 세트에 들어 있는 과자를 먹는 듯한, 여러 맛의 과자를 먹어 결국 내가 먹은 것이 어떤 맛인가를 한마디로 표현할 수 없을 것 같은 느낌도 들게 했다. 소설가가 한번은 넘어야 할 산이 장편 소설을 쓰는 것이라면 백수린은 잘 통과했다고 봐도 좋지만, 압축적인 뭔가가 없어 아쉬웠다. 아마 작가는 소설의 마지막에 배치한 반전이 결정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지만 나에겐 그 부분이 가장 아쉽고 식상했다. 차라리 그냥 평범했으면 훨씬 좋았을 거라는 생각도 해 본다.

 

살다가 갑자기 눈앞에 없어진 가족이 있다면 남아있는 사람의 삶은 피폐해질 수밖에 없다. 맘대로 웃지도 못하고, 즐거움을 느끼는 것조차 죄가 될 수 있다. 주변 사람들의 수군거림과 그들을 향한 평가도 항상 의식하며 살아야 한다. 해미에게 갑자기 사라진 언니는 해미에게 늘 그늘을 주었고 사랑에 대한 감정도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 해미와 우재의 사랑을 소설을 읽으면서 계속 응원했다.

 

1960년대 대한민국의 실업난과 외화 부족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인력수출의 일환으로(p.44) 독일에 파견된 간호사와 간호조무사에 대한, 그들의 독일에서의 삶도 이 소설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대다수 집안의 가난을 구제하기 위한 희생양으로 독일행을 택한 경우가 많았지만 그곳에서 그들의 젊음과 청춘은 빛났고, 각자의 꿈과 신념을 좇아 사는 모습이 멋졌다. 1973년 국제 석유파동의 여파로 재독 간호사들이 강제송환될 위기에 처했을 때 빨갱이라는 오해를 받아도 앞장서서 서명을 받고 독일과 공개 토론회를 열게 하는 그들의 모습도 너무 좋았다.

 

K.H를 찾기 위해 선자이모의 일기를 읽고 열심히 추리해나가는 해미, 레나, 한수의 우정도 재미있었다. 중간쯤 선자 이모와 K.H의 관계에 대해 예상했지만 근호라는 이름이 나왔을 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며 크게 납득되었다.

 

[“Alles ist noch unentschieden. Man kann werden, was man will]

 

아무것도 아직 결정되지 않았어.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이 될 수 있어.’

선자 이모의 여러 권의 일기장 첫 페이지에 적혀 있는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에서 나오는 이 구절은 선자 이모의 간절함이 얼마나 큰 가를 알 수 있다. 내가 이 소설의 끝이 식상하다고 얘기했지만 이 세상을 살아가는 각자의 삶에 식상함이 있는 것은 아니다. 선자 이모와 K.H의 삶은 존중되어야 하며 그럼에도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견디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그들의 삶은 불행했을 것이다.

 

[“정말 어찌할 바를 모르겠을 정도의 아름다움이지?”.....

내년에도 이렇게 아름다운 걸 볼 수 있을 테니 살아야지 하는 마음이 들 정도로 아름답지?”

-p.74]

 

눈부신 안부를 읽다 이 문장이 너무 좋아 캐나다를 여행 중인, 자신이 매번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지인에게 사진 찍어 보내줬다. 더 행복하고 기쁜 마음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런데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나의 지인이 한 번쯤은 자신보다 더 아래를 바라봐줬으면 하는 바램도 있다. 어렵겠지만 자신에게 탈출해 누군가에게 먼저 안부도 물어줄 수 있는 용기를 내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소설의 시작과 끝은 제주도의 야자수에 대한 이야기다. 본래 제주에는 야자수가 없었는데, 남국의 경관을 연출하기 위해 심어진 야자수(p.307)가 이제 제주의 일부가 되었다. 야자수 스스로도 힘을 내고, 그 야자수를 잘 키우기 위해 누군가도 노력했을 것이다. 어딘가에 필요하고 잘 살 수 있는 것은 본래 최적의 조건을 갖추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 사실을 나의 지인이 알게 되기를.

 

눈부신 안부는 삶의 아득함을 많이 느끼는 길 잃은 사람에게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소설이다. ‘이 책이 누구든 필요한 사람에게 잘 가닿아 눈부신 세상 쪽으로 한 걸음 나아갈 힘을 줄 수 있었으면(p.315)’라는 작가의 말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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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 2023-08-28 12: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마지막의 제주도 야자수 이야기와 페넬로페님의 멘트가 인상적인데요 살아가기 위한 노력이 필요 없는 삶이란 없겠지요 ...... 오늘 월요일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팔월도 거의 다 갔습니다

페넬로페 2023-08-28 12:44   좋아요 2 | URL
서곡님, 감사합니다.
백수린 작가의 소설은 따뜻함이 있어 좋은데 뭐든 그냥 존재하는 것은 없는 것 같아요.
날씨가 갑자기 선선해지니 기분이 좀 이상해요. 가을이 오나봐요.
이번주도 건강하시길 바래요.

미미 2023-08-28 13:2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p.74 인용문을 사진찍어 보내신 페넬로페님의 따뜻한 마음이 그 분께 잘 닿았으면 좋겠어요.
살 맛 나게 해주는 풍경, 글, 음악, 미술같은 것들을 많이 만들어가는 거 삶에서
어떤 영양제보다 중요하다고 느껴요. 저는 몇 년 전에는 홍광호 노래 듣다가 살아 있음에
감사했더랬습니다.(페넬로페님덕분에 요즘 그의 노랠 다시 듣는 중이라 생각남요)ㅎㅎㅎ^^


페넬로페 2023-08-28 13:40   좋아요 2 | URL
책 읽다가 저런 문장 만나면 가슴이 벅차요. 음악, 미술, 풍경 다 정말 그렇죠(공감, 공감)
이 소설도 좋은 문장 많았어요.역시 작가란 대단한 사람이예요!!!

새파랑 2023-08-28 21: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으셨군요~!! 저는 이 책 재미있어서 카페 앉은 자리에서 다 읽었습니다 ㅋ 재미있긴 했는데 결말이 너무 아쉬웠어요. 평범하게 끝내도 됐을거 같은데 ㅡㅡ

그래도 좋았습니다~!!

페넬로페 2023-08-28 22:05   좋아요 1 | URL
네, 잘 읽히고 내용도 좋았어요
결말에 대한 평가가 저와 똑 같으시네요. 저도 평범하게 갔으면 훨씬 더 좋았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책읽는나무 2023-08-28 23: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종합선물세트 상자 안에 담긴 과자를 먹는 것 같단 생각에 저도 공감되는 바 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 관계와 저 관계가 연결되는 것 같아 보이긴한데 어떤 것이 더 부각되어야 하는 건가?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파독 간호사들의 주체적인 행동에 대한 긍정적인 이야기들이 주된 것인 듯한데 읽고 나니 제겐 가족을 잃은 상실감을 극복한 주인공의 심경이 더 크게 다가와 파독 간호사였던 선자 이모의 삶이 일부는 기억이 희미해졌달까요?
선자 이모 이야기가 주된 스토리였을텐데 말이죠.^^;;;
암튼 첫 장편이 그래도 그리 나쁘지 않다. 전 그리 판단하고 두 번째 장편도 기대해봅니다.^^
단편은 참 좋았었는데...예전에 김초엽 작가의 단편을 읽다가 장편을 읽었을 때의 느낌과 좀 비슷했었네요.ㅋㅋㅋ

페넬로페 2023-08-28 23:42   좋아요 1 | URL
책나무님 생각이 저와 똑같아요. 백수린 작가가 좀 욕심을 냈다는 생각이 들만큼 읽고 나서 확실한 느낌이 안 들더라고요.
읽기 좋았고 따뜻했지만 뭔가 아쉬운 점이 많이 남았어요.
이 소설은 한 사람이 주인공은 아닌것 같고 선자이모의 얘기가 영화 윤희에게와 좀 비슷했어요.
우리가 백수린 작가를 좋아하니 두 번째 장편을 기대해 보아요^^

희선 2023-08-29 03: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본래 제주에 야자수 없었군요 그것 때문에 제주도가 다른 나라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던데... 그걸 제주에 심고 그렇게 키운 사람이 있었겠네요 독일에 일하러 간 게 아주 나쁜 것만은 아니었겠지요 그때 이야기 다 아는 건 아니지만... 좋은 건 처음부터 없겠지요 자신이 만들어 가야 할 텐데... 그게 쉽지 않겠습니다


희선

페넬로페 2023-08-29 09:18   좋아요 1 | URL
제주도의 야자수를 무심코 봐 왔는데 이 책을 통해 그런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가난때문에 파독 간호사가 되어 독일에 간 경우도 많겠지만 자신의 꿈을 키우거나 독일에서의 삶을 선택한 사람도 많더라고요.
주위의 환경에 의해 결정되는 인간의 삶이 쉽지 않죠.
사는게 참 그래요.

독서괭 2023-08-31 18: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종합선물세트 ㅎㅎ 단편만 쓰던 작가가 장편을 시도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일 것 같아요. 너무 많은 욕심을 내면 독자가 그걸 느끼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부분이 꽤 있으셨군요^^ 인용문 좋네요. 글을 받으신 분의 마음도 움직였으면...

페넬로페 2023-08-31 19:13   좋아요 1 | URL
장편도 좋았는데 약간의 아쉬움이 있었어요.
단편을 워낙 좋게 읽어 더 그럴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인용문 읽을 때 넘 좋았어요.
그 느낌에 공감했거든요^^
 

그리고 바람이 분다.
사방에서 바람이 분다. 연보랏빛 저녁 바람, 분홍빛 아침 산들바람, 으르렁대는 시커먼 돌풍.
오늘의 책들은 종이로 되어 있다. 어제의 책들은 가죽이었다. 성서는 공기로 이루어진 유일한 책, 잉크와바람의 범람이다. 의미를 종잡을 수 없는 이상한 책이다. - P11

아이는 천사와 함께 떠났고, 개가 그 뒤를 따라갔다.
이 문장은 아시시의 프란체스코에게 딱 들어맞는다. 우린 그에 대해 별로 아는 게 없지만, 그것이 오히려 다행이다. 누군가에 대해 안다고 하는 것이 그 사람을 알 수 없게 만들어 버리니까.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안다고 믿으며 그 사람에 대해 말함으로써 그의 참모습을 놓치기 일쑤니까.  - P12

가난한 사람들의 계층이다. 13세기뿐 아니라 20세기에도 존재하는 그들은 시대를 막론하고 언제나 존재한다. 하느님만큼이나 늙고 말이 없는 계층. 하느님만큼이나 노쇠와 침묵 속에 길을 잃은 자들. 이 계층이 아시시의 프란체스코에게 진정한 얼굴을 부여하게 된다.
교회 목재 조각상들의 얼굴보다 훨씬 아름다우며, 위대한 화가들이 그린 얼굴보다 훨씬 순결한 얼굴이다.
가난한 사람의 단순한 얼굴. 가난한 사람, 바보, 거지의초라한 얼굴. -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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