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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와 프랑스혁명 - 베르사유와 프랑스혁명 ㅣ 츠바이크 선집 (이화북스) 3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육혜원 옮김 / 이화북스 / 2023년 10월
평점 :
오래 전 고등학교 세계사 시간에, 선생님이 들려주신 프랑스 혁명에 관한 얘기들, ‘자유, 평등, 박애’라는 신비한 단어들에 프랑스 사람들이, 혁명이 환상적으로 보였다.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의 형편과는 다른, 인간 중심적이고 자유롭게 살고 있을 것 같은 그곳이 멋지게 느껴졌다. 똑같이 혁명이라는 단어로 시작했지만 사람만 바뀌면서 1인 독재 정치가 계속되고 있는, 여고생의 뺨을 수시로 갈기고 심지어 구둣발로 교실로 들어와 자신에게 항의한 여학생을 무자비하게 폭행하는 선생들이 있는 학교에서, 자유와 평등은 찾아볼 수 없는 세상에서, 난 숨을 참으며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프랑스 혁명은 민중이 아닌 부르주아 계급을 역사의 흐름의 중심에 서게 만든 것이라는 것을 어른이 되고도 한참이 지나 알게 되었다. 혁명은 굉장히 폭력적이었고 그 결과도 내가 상상한 것이 아니었다. 프랑스 혁명뿐만 아니라 ‘혁명’이라는 것은 모두 폭력적인 것이었다. 국민과 민중을 위한다면서 한 쪽이 다른 진영의 자리를 빼앗아 우위를 차지하는 것이 혁명의 다른 이름이었다. 그 누가 되었던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또 다른 적들에게 대항해야하기에 민중은 안중에도 없었다. 민중은 또 어떤가? 당장 눈앞의 빵 한 조각이 급하니 그들은 성급했다. 깊게 생각하지 않고 분위기에 휩쓸린다. 혁명에 늘 이용당해 맨 앞의 총알받이로 나서지만 그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거의 없었다. 그 울분으로 싸구려 선술집은 항상 붐비고 그들의 자식은 다시 민중으로 살아간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프랑스 혁명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이다. 다만 역사가 거의 그 결과로 말해지는 것이라 그녀에 대해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슈테판 츠바이크’는 전기소설의 형태로 프랑스 혁명 속의 마리 앙투아네트를 객관적으로 서술하려고 한다. 그는 ‘그 시대의 모든 신문과 편지, 소송 서류들까지 조사(p.324)’해 사실적인 것들로 마리 앙투아네트를 조명했다. 츠바이크의 말대로 앙투아네트의 인생에 대혁명이라는 역사적 부침이 없었다면 그녀는 왕비의 자리에서 모든 부귀영화를 누리며 행복하게 잘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운명은 인간의 의지와는 다르게 나타나고 그녀는 불행하게 삶을 마쳤다.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가문과 프랑스 부르봉 가문은 두 왕가의 왕자와 공주의 결혼으로 오랜 경쟁 관계를 청산하고자 한다. 사랑스러운 외모를 가졌지만 공부와 생각하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공주는, 아무런 재능이 없고 못 생긴 루이 15세의 손자인 루이 16세와 정략결혼을 위해 어린 나이에 프랑스로 건너온다. 재정 상태가 별로 좋지 않은 두 가문이지만 결혼식에 엄청난 돈을 쏟아 붓는다. 7년 동안 정상적인 부부관계를 맺지 못하고, 황실의 숨 막힌 생활에 우울증이 걸린 앙투아네트는 드레스, 보석, 헤어 장신구에만 관심이 있었다. 트리아농 성을 자신의 도피처로 만들어, 그곳을 자신만의 연극장으로 꾸며 위안 받는다. 파리의 매력에 빠져 매일 밤, 오페라 극장, 가면무도회, 도박장에 드나들며 새벽에 귀가한다. 도박 빚은 늘어나고 향락의 생활은 끝이 없다.
[놀면서 세월을 보낸 그녀는 왕비의 이념에 정신적인 의미를 부여할 줄 모르고 다만 완성된 형태만을 가질 뿐이었다. 그녀의 손안에 들어가면 위대한 임무는 덧없는 놀이로, 높은 지위는 배우의 역할로 축소되어 버렸다.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왕비라는 것은 궁정에서 가장 우아하고 매혹적이며, 제일 귀한 대우를 받는 사람, 무엇보다 가장 행복한 여성으로 추앙받는 것, 즉 자신을 세계의 중심으로 여기는 가장 영향력 있는 여인이 되는 것이었다. 20년 동안 그녀는 베르사유라는 무대 위에서 프리마돈나로서 우아한 로코코 왕비의 역할을 연기했다.
-p.62]
왕비가 백성을 돌보지 않고 시대의 변화에 무심했던 사이, 시민 계급 의식은 깨어나고, 대흉작과 물가 상승으로 서민의 삶은 힘들어졌다. 프랑스 왕국은 부채가 늘어나 재정이 파탄나기 직전이었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목걸이 사건’이라는 희대의 사기극에 휘말리고, 국민들에게 지지를 받고 있던 재무대신 네케르마저 해임하여 국민은 왕실에 등을 돌린다. 뒤늦은 각성에 루이 16세는 삼부회를 소집하지만, 1789년 7월 14일 바스티유가 습격당하고 만다.
주관과 결단력이 없는 루이 16세도 문제가 많았다. 항상 무덤덤한 태도로 일관하며 사냥만을 즐긴 그는 왕관의 무게를 견디지 못할 뿐 아니라 처음부터 왕이 될 자격이 없는 사람이었다. 루이 16세 역시 미래를 내다보는 통찰력이 부족해 시대가 요구하는 것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했다. 강압적이지 않고 양보만 하면 평화를 누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막상 프랑스 혁명이 시작되어도 혁명에 대한 개념이나 왜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한 이유를 알지 못했다.
[리앙쿠르 공작은 파리에서 일어난 사태를 알리려고 베르사유로 달려와 급히 잠든 루이 16세를 깨웠다.
“바스티유가 습격을 받아 지휘관이 피살되었습니다! 시민들은 그의 목을 창에 꽂고 파리 시내를 누비고 있습니다!”
“반란(révolte)이 일어났소?”
놀란 루이 16세는 더듬거리며 물었다.
공작은
“전하, 그렇지 않습니다. 혁명(révolution)입니다.”라고 답했다.
-p.157]
베르사유가 침입당하고 왕과 왕비는 파리의 튈르리 궁으로 옮겨 간다. 바렌으로 도주해 프랑스를 탈출하려는 계획이 실패로 돌아가고 그들은 코뮌에 의해 탕플 탑에 감금된다. 9월 대학살이 일어나고 루이 16세는 처형된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콩시에르주리에 수용되고 반역죄로 1793년 10월 16일 단두대에서 처형된다. 그녀는 죽기 전에 자식을 걱정했고 신에게 용서를 구했지만 끝까지 왕비의 자리에서 무엇을 해야 했는가에 대한 반성은 하지 않는다. 아니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왕권을 신의 선물로 여긴 그녀는 혁명을 통한 국민의 요구를 죽을 때까지 이해하지 못했다.
[밖에는 박피공의 마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사다리가 달린 싸구려 마차였다....
공화국은 기요틴에서조차 평등을 요구했다. 왕비라고 해서 시민보다 더 편하게 죽을 이유가 없었다. 사다리 마차면 충분했다. 사다리 사이에 놓인 널빤지가 의자 역할을 할 뿐 깔개도 없었다. 그러나 마리 앙투아네트를 죽음으로 몰아간 사람들, 마담 로랑, 당통, 로베스피에르, 푸키에, 에베르 또한 이 마차를 피해 갈 수 없었다. 그들도 모두 이 딱딱한 널빤지에 앉아 최후의 길을 갔다. 단지 그녀가 한 발 먼저 가는 것뿐이었다.
-p312~313]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뿐만 아니라 혁명은 사람을 너무 쉽게 죽였으며, 혁명으로 권좌에 오른 사람들마저 다 죽어야 했다.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은 여러 가지이다. 츠바이크는 이 책에서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해 사실적으로 서술하며 대체적으로 비판적인 시선을 가지지만, 그녀에게 정상 참작의 기회를 준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왕녀로 태어나 다른 나라의 왕비가 되면서, 자신이 가진 것을 당연히 누리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 사람이었다. 국민들이 자신에게 보내는 환호는 당연한 것이고 자유와 권리는 자신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인간이 가지는 편안과 즐거움은 누군가의 희생과 빈곤으로 얻어지는 것이고, 자신의 자리가 어떤 것인지를 이해하지 않고 책임지지 않는 사람은 구제받을 수 없다. 그녀가 프랑스 혁명의 희생양이라는 것도 어느 정도 인정되지만, 앙투아네트는 근본적으로 ‘세상의 모든 비애와 어둠에 관해 무지함(p.63)’의 죄를 지었다.
츠바이크는 프롤로그에서 마리 앙투아네트를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의 평범한 인물’이라고 말한다. 천재나 권력욕이 강한 사람의 반대적 의미로 ‘평범’이란 단어를 사용한 것 같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순수하고 세상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기에 사명감도 없었고 거대한 역사적 운명과 싸우기에 한계가 많은 보통의 사람이었다고 저자는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 저자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평범’과 ‘보통’이 마리 앙투아네트와 연결되지는 않는다. 마지막까지 혁명의 선동자를 증오한 그녀는 대혁명의 과정과 결말에 많은 책임을 져야만 한다.
이화북스의 츠바이크 선집 『마리 앙투아네트』는 번역이 좋지 않았다. 문장의 문맥이나 조사의 사용에서 틀린 부분이 많았다. 또한,
‘국왕을 위해 싸우다 쓰러진 전사들은 무시한 결정이었다’-p.163 ☞전사들을
‘내가 행복할 수 있다면 그것을 오로지 내 아이들 덕분입니다.’-p.192 ☞그것은
‘복잡한 성격을 가지고 있으니 무턱대로 윽박지르면 도리어’-p.193 ☞무턱대고
(내가 여기에 적지 않은 것도 많고, 알아내지 못한 것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슈테판 츠바이크의 문장과 마리 앙투아네트와 프랑스 대혁명을 연결시킨 저자의 구성은 훌륭했다.
**사진은 이 책에서 발췌했고 페이지는 생략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