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성 없는 남자 1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25
로베르트 무질 지음, 박종대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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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함께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20세기 모더니즘 소설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이 세 소설은 ‘20세기 소설의 삼위일체라고도 일컬어진다. 무질은 토마스 만, 프란츠 카프카와 함께 20세기 초 독일 소설을 대표하는 작가이다. 1999년 르 몽드가 선정한 세기의 도서 100권에도 이름을 올렸다. 이 소설의 어떤 점이 그렇게 대단한 건지 궁금했다. 그리고 율리시스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었기 때문에 그 다음엔 당연히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를 읽어야했다.

 

프루스트와 조이스에 비해 나에게 생소했던 작가인 무질의 이 소설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다. 각오를 단단히 하고, 마음을 다잡아 시작했지만 읽기 어려움은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다. 책장을 넘기기 어려운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일단 작가가 쓴 문장의 장황함이 큰 역할을 했다. 무질의 장황함은 프루스트, 발자크,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의 장황함과는 많이 달랐다.

 

무질의 문장에는 동시에 상대적인 것이 같이 들어있어 일관성이 없어 보인다. 작가가 말하고자 한 것이 무엇인지 한 번에 알 수 없어 모호하고 맥락을 이해하고 연결시키기 어렵다. 간결한 문장을 선호하는 작가 헤밍웨이였다면 50페이지에 족했을 내용을 무질은 500페이지가 넘는 문장으로 늘어뜨린다. 하나의 사건과 주목해야 할 간단한 에피소드도 무질은 여러 페이지에 걸쳐 그것을 설명한다. 비유를 들고, 여러 단어로 부연 설명하며 거기에 성찰과 사유를 들이밀며 독자를 고통에 빠뜨린다. 이 소설의 번역자는 원문이 워낙 어렵고 독특해 그대로 살리기보다 어떻게든 독자가 읽을 수는 있게끔 번역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이 소설 읽기는 무척 난해하다. 다음 문장을 읽으면 그 전의 글은 휘발되어 버릴 정도다.

 

로베르트 무질은 군사중등학교를 마치고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대학원에서는 철학을 전공하고 그 뒤 문학으로 진로를 바꾸어 작가가 되었다. 이러한 무질의 이력은 특성 없는 남자의 주인공 울리히와 소설의 내용에 많이 반영되어 있다. 작가가 지나온 길과 비슷하게 이 소설에는 과학적인 요소와 철학적인 것이 섞여 있으며 그것을 문학으로 나타내고자 하는 작가의 치열한 20년간의 고민이 담겨있다. 무질은 사유 소설(사건은 별로 없고 성찰과 사유가 주를 이루는 소설-3, p.602)의 형식으로 인간과 세계를 실험과 추상화 작업으로 서술한다.

 

 

이 소설은 19138,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어느 아름다운 여름날로 시작된다. 1차 세계대전 전 해이다. 여기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카카니엔이라고 불린다. 오스트리아 황국인 ’kaiserlich und kὂnigich’의 약자인 k.u.k를 의미한다. 공적으로는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이었지만, 사람들은 그냥 오스트리아로 말했기 때문이다. 제국의 수도이자 황궁이 자리 잡은 빈이 공간적 배경이다. 오랫동안 명성을 누렸던 왕가인 합스부르크가가 거의 몰락 직전에 있는 상태다. 자본주의와 과학의 발달, 진보는 어느 누구도 꺾을 수 없을 정도로 대세로 자리 잡았다. 1866년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의 패배로 오스트리아는 독일에 밀리고, 점점 독일의 영향이 제국에 스며들고 있었다. 다민족 국가의 한계로 여러 민족의 반발에 직면했고, 결국 이것은 제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된다.

 

 

스위스 아르가우 주의 합스부르크 성에서 출발한 합스부르크 가문은 전략적인 결혼과 영리한 외교술을 통해 세력을 넓혀갔다. 합스부르크 가문은 오스트리아 공작령을 획득하여 점차 주변 영토를 통합해 나중에 거대한 다민족 제국을 건설했다. 14세기에 프리드리히 3세와 레오폴트 3세 집권 시기 빈이 중요한 문화 중심지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알브레히트 2세 시대에 신성로마제국 황제 자리와 보헤미아와 헝가리의 왕위도 계승하게 되어 중부유럽 지배자로 부상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는 제국의 마지막 황제였다. 그의 통치시기에 빈은 화려한 문화예술이 꽃피운 시기였다. 그는 새벽부터 밤까지 국정에 매진하는 성실한 군주였으며, 이러한 그의 근면성은 제국 관료제의 모범이 되었다. 프란츠 요제프 시대의 오스트리아는 산업혁명의 물결을 타고 급속한 경제발전을 이루었다. 그의 통치기는 제국의 마지막 황금기였지만, 동시에 심각한 도전에 직면한 시기이기도 했다.

 

프란츠 요제프 1세의 개인적 삶은 불행했다. 부인 엘리자베트가 무정부주의자의 암살로 목숨을 잃었고, 외아들 루돌프는 마이어링 사건(유부남인 루돌프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비관해 일으킨 동반자살 사건)으로 젊은 나이에 죽었다. 후계자로 지목된 조카 프란츠 페르디난트는 사라예보에서 암살되었다.

 

오스트리아 제국이 이탈리아 통일전쟁과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연이어 패배하면서 제국 내 여러 민족의 반발이 일어났다. 오스트리아는 헝가리와 오랜 협상 끝에 아우스글라이히 협약을 체결해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국가체제를 탄생시켰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11개의 주요민족이 공존했다. 오스트리아와 헝가리는 두 개의 독립된 정치체제로 재편성되어 각자 독자적인 의회와 행정부를 가지게 되었다. 헝가리의 자율성은 제국 내 다른 소수민족들의 불만을 키우는 결과를 가져왔다. 크로아티아, 슬로바키아, 루마니아계 주민들이 강한 반발을 했다. 이중제국 체재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산업화로 체코의 민족의식도 급속히 성장하였다. 보헤미아와 모라비아에서는 독일계와 체코계 주민들 사이의 갈등이 심화되었다. 20세기 초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표면적으로는 강대국이었지만 내부적으로는 다양한 민족들 간의 갈등이 끊임없이 표출되는 상태였다. 이들 다양한 민족은 각자의 정체성과 자치권을 요구했다. 프란츠 요제프 1세는 다양한 정책을 시도했지만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제국의 균열은 심해져 갔다. 독일, 프랑스, 영국, 러시아 등 강대국들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히면서 유럽은 전쟁의 기운이 감돌았다.

 

이러한 시점에서 제국의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는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를 방문했다. 페르디난트는 제국의 개혁을 주장하는 온건파 인물이었는데, 이는 제국 내 보수파와 헝가리 귀족의 반발에 부딪혔고 세르비아 민족주의자들에게도 환영받지 못했다. 보스니아 청년단체 젊은 보스니아의 회원이었던 가브릴로 프린치프는 사라예보를 방문한 황태자 부부를 저격했고, 이 사건은 제 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되었다.

 

제국은 세르비아에 강경한 태도를 보였고, 결국 전쟁으로 이어졌다. 러시아의 세르비아 지원, 독일의 오스트리아-헝가리 지원, 프랑스의 러시아 지원이라는 동맹 체제가 연쇄적으로 작동하면서, 순식간에 유럽 전체의 전쟁이 되었다. 전쟁이 길어지면서 제국의 경제는 급속도로 악화되었고, 제국의 내부는 붕괴되기 시작했다. 전쟁 후반기에 각 민족들은 독립을 위해 움직였고, 제국이 전쟁에 패배하면서 완전한 해체되었고, 여러 개의 독립국가들이 들어섰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역사에 대한 내용은 다음의 책에서 발췌했습니다.

전자책 인간의 역사와 문명-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가의 중부유럽 지배,

이진호, 루미너리북스, 20251

 

 

이러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1913년 전후의 상황은 이 책을 이해하기 위해 꼭 먼저 알아야 할 내용이다. 이 소설 1권의 핵심적 내용은 1918년 독일이 빌헬름 2세 황제의 치세 30주년을 기념해 큰 행사를 여는 것에 대해, 공교롭게도 같은 해에 있는 오스트리아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의 즉위 70주년을 맞아 오스트리아에서도 성대하고도 뜻깊게 기념하자는 것이다. ‘삼십 주년에 불과한 독일 즉위식과 비교해서 축복과 비통함의 역사가 함께한 황제의 칠십 주년의 장대한 무개를 부각해야(p.131)’한다는 것이다.

 

황제의 즉위 칠십 주년을 계기로 다시 한 번 위대한 오스트리아의 영광을 되찾고자하는 애국운동준비위원회가 결성되고 거기에 주인공 울리히가 참여하는 것이 이 소설의 큰 축을 이룬다. 애국대운동’, 다른 말로 독일과 관련되어 평행운동이라고도 불리는 이 거대한 사업에 울리히와 함께 여러 인물이 얽힌다.

 

특성 없는 남자에서 특성은 무엇일까? 왜 울리히는 스스로 자신을 특성 없는 남자라고 선언하는가? 얼마 전 외국에서 돌아온, 지금은 수학자인 특성 없는 남자인 울리히는 32세이다. 그는 출세 지향적이고 조화로운 공존과 일반적 원칙에 따르는 인간(p.21)’69세의 자신의 아버지와는 다른 사람이다. 특성 없는 남자는 반골적이며, 남들과 생각이 다르고 남들의 이상을 경멸한다. 몽상가이기도 하고, 허무적이며 허영기도 조금 가지고 있다.

 

울리히는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외부에서 주어진 특화된 특성을 거부한다. 보통의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 현실감각이라면 울리히는 가능성감각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능성감각 현실과 똑같이 존재할 수도 있는 것을 생각해내고, 존재하는 것을 존재하지 않는 것보다 더 중히 여기는 능력이다(p.22) 무척 섬세한 그물망 즉 안개, 몽환, 가정법의 그물망 속에서 살아가고 현실을 기피하는 대신 과제이자 창작영역으로 다루는 의도적 유토피아주의 같은 것이다.

 

[특성을 가진다는 것은 그것의 실재로 인한 모종의 기쁨을 전제로 하기에, 자기 자신과의 관계에서조차 현실감각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남자가 어느 날 갑자기 스스로를 특성 없는 남자라고 여기는 것은 가능한 일이다 p.25]

 

울리히의 어릴 적 친구인 발터는 특성 없는 남자인 울리히를 아무것도 아닌, 별 것도 아닌, 현대가 만들어 낸 인간 유형이며, 그만의 고유한 내용이 없는 사람이라고 정의 내린다. 울리히는 모든 것에 뛰어나지만, 그것들 개개의 특성을 지니는 것을 거부한다. 하지만 울리히가 오늘날 모든 현상에 담긴 해체된 본질을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인 것을 알기에 발터는 울리히를 질투한다.

 

이 소설을 이끄는 또 하나의 인물은 매춘부를 잔인하게 살인한 서른 네 살의 목수 모스부르거이다. 울리히는 겉으로 드러나고, 사람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전개되는 모스부르거의 재판을 비판하며 모스부르거의 본질을 들여다보기를 원한다. 이 사건에 존재하는 양면의 모습들을 보고자 한다.

 

특성 없는 남자1부는 특성 없는 남자 울리히와 그의 사상, 시간적, 공간적 소설의 배경이 되는 것을 서술했고, 2부에서는 구체적인 사건이 진행되고 여러 다른 인물이 등장한다. 하지만 사건보다는 계속되는 작가 무질의 사유가 주된 내용이다. 무질의 사유는 독특하고 깊이 있으며, 모든 문장에 들어있는 비유 또한 뛰어나다. 다만 문장 하나하나에 집중하다 보면 전체적 맥락과 흐름을 이해하고 따라가기 힘들다. 나무만 보고 숲을 잘 보지 못하는 것 같다. 별다른 사건도 없어 리뷰 쓰기가 무척 어렵다. 아직 1000페이지 넘게 남아있는 무질의 문장이 두렵지만, 이왕 시작했으니 끝장을 봐야겠다.

 

[‘내게 남는 것은 무엇일까?’ 울리히는 씁쓰레하게 생각했다. ‘혹시 누구에게도 양도할 수 없는 용감한 인간이 아닐까? 내면의 자유를 위해 외부 법칙을 거의 인정하지 않는다고 자부하는 인간이 아닐까? 하지만 이런 내적 자유의 본질은 자신이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생각할 수 있다는 점에 있지 않을까? 그것은 곧 모든 인간적 상황에서 자신이 왜 그 상황에 묶일 필요가 없는지는 알지만, 정작 무엇에 묶이고 싶은지는 모르는 것이 아닐까? 그를 사로잡은 이 독특하고 작은 감정의 물결이 다시 해체되는 불행한 순간에는 그도 자기 자신에게 모든 사물에서 두 측면을 발견하는 능력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지 모른다. 그 능력은 거의 모든 동시대인들의 두드러진 특징이자, 울리히 세대의 속성을 형성하거나 그 세대의 운명이기도 한 도덕적 양가감정이다. -p.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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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5-10-15 03: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화이팅 기대합니다. 전 이 책 읽기를 포기했기에.

페넬로페 2025-10-15 07:48   좋아요 0 | URL
네, 꼭, 완독해 보겠습니다.

yamoo 2025-10-15 10: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이 책을 읽으셨네요...읽다가 지루해서 덮었는데...지루하고 재미없으면 덮게되던데, 율리시스도 그렇고...언젠가 한 번 더 도전해 보고 그때도 못읽겠으면 팔아버려야 겠으요~~ㅎㅎ

페넬로페 2025-10-15 11:49   좋아요 1 | URL
일단은 ‘그냥 천천히 읽어보자‘를 목표로 두고 있습니다. 꼭 도전 성공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잠자냥 2025-10-15 11: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아....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읽기 어렵군요.
넘 지루할 거 같아서;;; 저도 아직 도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요. 페넬로페 님은 파이팅입니다!

페넬로페 2025-10-15 11:50   좋아요 0 | URL
어렵고 지루합니다.ㅠㅠ
잠자냥님,
저랑 같이 읽으시고
꼭 무질을 주인공으로 한 장편소설 써 주시면 좋겠습니다.

stella.K 2025-10-15 11: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존경합니다! 저는 다음 생에...ㅎㅎ

페넬로페 2025-10-15 11:51   좋아요 2 | URL
네, 굳이 안 읽으셔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ㅎㅎ
이 책 말고도 좋은 책이 너무 많습니다.

서곡 2025-10-15 19: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에 끌리던 때가 있었는데 지금은 아닙니다ㅋㅋㅋ 모쪼록 완독 성공 기원합니다

페넬로페 2025-10-15 19:42   좋아요 1 | URL
읽기 정말 힘들어요.
그저 완독만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꼭 해 내겠습니다.
응원 감사드려요.

coolcat329 2025-10-16 08: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페넬로페님! 👍 부럽고 멋지세요~

페넬로페 2025-10-16 09:0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꼭 완독해 보겠습니다^^

책읽는나무 2025-10-16 12: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렇게 어려운 책인 줄 모르고 사다놓기만 했어요. 와 읽을 엄두를 못내겠군요.ㅋㅋ
이렇게 리뷰를 쓰시는 페넬로페 님. 저도 존경스럽습니다. 완독 꼭 부탁드립니다.^^

페넬로페 2025-10-16 15:23   좋아요 1 | URL
어려운데 무질 작가가 글은 정말 잘 쓰는 것 같아요.
책나무님!
저랑 같이 읽읍시다^^

책읽는나무 2025-10-16 23:03   좋아요 1 | URL
저는 1,2권만 사다놓았어요.^^
요즘 sf소설에 빠져 있어서 장르가 다른 무질의 소설 세계에 진입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네요. 당장은 아녀도 한 번 생각은 해보겠습니다.
어려운 책이라 미리 후덜덜이네요.ㅋㅋㅋ
 
[전자책] 인간의 역사와 문명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가의 중부유럽 지배
이진호 / 루미너리북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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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트 무질의 사유 소설인 『특성 없는 남자』의 시대적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 읽은 책. 짧지만 합스부르크가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대해 일목요연하게 잘 서술되어 있다. 각 시대의 흐름과 주제에 맞는 핵심적 요소를 간결하게 설명했다. 역사적 사실도 ‘특성‘의 한 부분이기에 유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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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 모틸론 풀리 워시드 - 200g, 홀빈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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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 커피 특유의 묵직함과 함께 은은하게 감지되는 신맛이 있어 좋다. 다크초콜릿같은 진한 원두 색깔에 살짝 긴장했지만 의외로 부드럽다. 콜롬비아 커피중 베스트다. 가을에 어울리는 따뜻한 커피로도, 얼죽아들의 커피로도 손색이 없을 듯 하다. 커피 한 잔으로도 가을엔 기분이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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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 2025-10-03 11: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콜롬비아 커피 중 베스트 ㄷㄷㄷ 저 콜롬비아 커피 매력을 몰랐다가 비교적 최근 들어 알게 된 일인입니다 ㅋㅋㅋ 페넬로페님 연휴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페넬로페 2025-10-03 11:39   좋아요 1 | URL
보통 콜롬비아 커피가 그냥 직진하는 진한 맛인데 이 커피엔 여러 맛이 담겨있어 좋았어요.
긴 추석 연휴네요
서곡님
추석 연휴 건강하게 잘 보내시고
한가위 보름달같은 행운도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레오 아프리카누스
아민 말루프 지음, 이원희 옮김 / 교양인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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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변하는 역사 안에서 한 인간의 삶과 정체성이 온전히, 자의적으로 존재하기는 어렵다. 각자 앞에는 양자택일의 선택지가 놓여있는 경우가 많고 그것에 의해 인생은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일쑤다. 무조건 살아남고 가족을 지켜내야 하는 상황에서 란 존재는 없어진다. 종교, 관습, 조국은 한 개인을 죽이기도, 배반하게도 만든다. 사랑과 연민은 욕망과 권력 앞에서 무용지물이 된다.

 

여기 한 남자가 있다. 이름이 알하산 이븐 무함마드 알와잔 알파시 알자야티에서 조반니 레오 데 메디치로 바뀐, ‘레오 아프리카누스(아프리카인 레오)’로 불리는 사람이다. 태어나면서부터 40대에 이르기까지 이 남자가 부딪혀야할 변화무쌍한 역사는 곧바로 그의 것이 되어버린다. 온 몸으로 역사가 원하는 대로 삶을 바꿔야만 살 수 있다. 그에게는 어느 것 하나 비껴가는 일이 없고, 요행과 불운, 행운이 따른다. 그리고 용케 끝까지 존재한다.

 

8세기에서 15세기까지 이베리아 반도는 이슬람 세력인 무어인의 지배를 받았다. 1469년 아라곤 왕국의 페르난도와 카스티야 왕국의 이사벨의 결혼은 이베리아 반도 내에 있는 모든 가톨릭 왕국을 통합하는 계기가 된다.(p.32) 아라곤과 카스티야는 1480년부터 연합하여 그라나다를 공격했고, 1492년 마지막으로 그라나다의 이슬람 세력을 축출했다. 이 책에는 크리스토발 콜론(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이 등장한다. 그는 계속해서 이사벨 여왕과 만나기를 원했고 여왕의 구미가 당기게 할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었다. 1492년도가 흥미롭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해에 그라나다의 이슬람세력은 가톨릭 세력에 의해 영원히 추방된다.

 

이 책은 1488년 이슬람의 가장 중요한 명절인 라마단 시기에 무함마드의 아들 하산이 할례를 받는 것으로 시작된다. 하산이 태어난 때, 이미 그라나다는 흔들리고 있었다. 가톨릭 국가의 침입과 동시에 이슬람 세력 내에서도 7년째 내전을 이어오고 있었다. 어느 세계든 망하기 직전에는 상황이 비슷하다. 그런 면에서 인간은 정말 거기서 거기에 불과하다. 사기열전의 내용을 거의 답습한다.

 

술탄은 후궁, 그것도 기독교도 귀족 가문 출신의 노예에게 반하여 조강지처인 왕비와 아들들을 감금한다. 왕비는 아들을 탈출시켜 아버지 왕을 죽이게 만든다. 술탄이 된 왕자는 향락과 쾌락에 빠져 국사를 등한시하고 측근들은 수탈로 재산을 축적한다. 군인들은 봉급을 받지 못한다. ‘평화를 원하는 파전쟁을 원하는 파로 나라는 분열된다. 왕위 문제로 세 번이나 내전을 벌여 자멸한다. 가톨릭 연합군에 의해 그라나다는 고립되어 기근과 불안에 휩싸인다.

 

1492년 술탄 보아브딜은 카스티야-아라곤 연합군에 항복한다는 그라나다 조약에 서명한다. 그라나다의 몰락으로 알람브라 궁전을 가톨릭의 왕들에게 내주고 수많은 궤와 천으로 싼 물건들을 실은 말과 노새와 함께 술탄 보아브딜은 떠난다. 비참한 신세로 떠나는 보아브딜이 그라나다를 볼 수 있는 마지막 고개를 넘어가는 순간에 거기서 눈물을 글썽이며 한참을 망연히 서 있었다고 전해진다. ’카스티야 사람들은 실각한 술탄이 거기서 치욕과 회한의 눈물을 흘렸다고 하여 그 언덕배기를 무어인의 마지막 한숨이라고 불렀다.(p89)

 

몇 년 후, 하산 가족은 알메리아 항구에서 북아프리카의 페스로 몰락한 조국을 떠나 망명길에 오른다. 그 뒤 하산은 페스에서 카이로로, 다시 로마로 여정을 떠나야 했으며 그 모든 곳에서 일어나는 역사적 상황에 맞닥뜨리게 된다. 외교관인 외삼촌을 따라 사하라 사막을 횡단했으며, 외교관, 사업가, 여행가로 활동했지만, 메카에서 튀니지로 돌아가던 중에 해적에게 납치되어 로마로 보내진다. 로마에서 교황 레오 10세의 눈에 들어 가톨릭으로 개종해 레오 아프리카누스라는 세례명을 받는다. 하산은 그 긴 여정을 기록한 아프리카 지리지라는 연대기를 쓴다.

 

레바논 사람인 작가 아민 말루프는 레바논 내전으로 인해 1976년 프랑스로 귀화했고 프랑스어로 소설을 집필한다. 레오 아프리카누스는 저자의 첫 작품이다. 이 책에는 1488년부터 1527년까지의 하산이 지나온 곳의 역사가 치밀하고도 세밀하게 서술되어 있다. 레오 아프리카누스 말고도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적 인물이 많이 등장한다. 실존했던 인물들과 작가가 만든 허구의 인물이 잘 어우러져 있다. 작가가 얼마나 고심해서 이 소설을 썼을지 짐작이 간다. 정말 대단하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단연 하산이지만, 사실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 하나하나가 모두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종교, 국가, 관습, 사회, 문화, 인종이 다른 집단이 서로 뒤얽히는 상황에서, 죽고 죽이며, 정복하고 빼앗기는 과정에서, 하루를 버티며 살아내야 했던 그 무수한 사람들의 삶엔 각각 특별한 거대한 운명적 서사가 있었을 것이다. 한 발짝만 물러나면, 모든 것이 부질없고 비합리적이지만, 태풍의 눈 안에서는 그것들이 보이지 않는다. 항상 먼저 신의 이름을 들먹이면서도 정작 신의 뜻을 따르지는 않는 인간들의 모습도 아이러니다.

 

이 책은 소설인데도 한 권의 역사책을 읽는 느낌이 들었다. 이슬람지역에서 사용하는 여러 용어를 비롯해 소설의 내용에 나오는 지역의 역사를 조금이나마 잘 알 수 있게 되었다. 전체적으로 흥미롭고 좋았다. 다만 너무 많은 역사적 내용으로 후반으로 갈수록 묘하게 힘을 잃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모든 것이 산화되는 기분이 들어 아쉬웠다. 별로 여운이 남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아민 말루프 작가와 비슷한 운명을 가졌던 작가 압둘라자크 구르나의 소설과 비교되었다잔지바르가 혁명으로 인해 탄자니아의 일부로 편입되어 이슬람 박해가 심해지자 그는 영국으로 망명한다. 영어로 글을 쓰는 구르나 작가 역시 자신의 뿌리인 동아프리카의 역사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쓴다. 개인적으로 구르나 작가의 작품이 훨씬 좋았다.

 

[하지만 이것은 내가 한 경험의 일부에 지나지 않거늘. 나는 창조주께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잃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창조주께서 내게 빌려주신 시간. 나는 그 시간의 40년을 여행길에서 보냈다. 로마에서는 지혜로운 세월을 보냈고, 카이로에서는 열정적인 세월을 보냈고, 페스에서는 불안의 세월을 보냈고, 그라나다에서는 그저 순수한 세월을 보냈다. -p.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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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5-09-27 12: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책 바람돌이님 서재에서 본 책인데 ㅋ 저도 보관함에 넣어놨어요~!! 이슬람 문화가 좀 생소하긴 해서 어려운데 묘하게 관심이 가더라고요~!!

페넬로페 2025-09-27 15:02   좋아요 1 | URL
네, 저도 바람돌이님의 소개로 이 책을 읽게 되었어요. 역사적인, 새로운 사실을 많이 알게 되어 좋았어요. 그냥 역사책으로 읽는 것 보다 소설로 읽으니 훨씬 더 쉽게 다가왔어요^^

레삭매냐 2025-09-27 18: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상당히 기대를 하고 만난
책이었는데... 산화된다는 느낌
에 아주 공감합니다.

16세기판 <포레스트 검프>라
고 해야 할까요.

여러 제국들이 흥하고 망하는
역사적 순간들에 그렇게 개입
할 수 있었는지 말이죠.

페넬로페 2025-09-27 19:06   좋아요 1 | URL
정말 포레스트 검프 같았어요. 역사적인 상황이 엄청 흥미있었는데, 그래도 이 작품이 소설이라 거기에서 느껴지는 감동을 기대했었는데 그 부분에서 조금 아쉬웠어요. 그럼에도 잘 짜인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작은 일기
황정은 지음 / 창비 / 2025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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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2024) 12월 초, 작가(황정은)는 여전히 글을 썼다. 직업이 소설가이기에 당연히 글을 써야 했을 것이다. 세면대 밸브에서 물이 세는 것을 발견해 기술자에게 전화도 했다. 나는 기껏해야 2주일 정도밖에 남지 않을 것 같던 엄마의 임종에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어야 했다. 그때 대다수의 사람들은 대체로 복잡하고 버거운 일상의 삶을 살고 있었을 것이다.

 

123, 저녁을 먹고 집안일을 하고나서 책을 읽고 있었다. 딸아이가 와서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했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인스타가 난리라고 했다. 아직 귀가하지 않고 있던 남편에게 빨리 집에 오라고 전화를 했다. 제일 먼저 서울 시내를 줄지어 지나가는 탱크가 연상되었다.

 

계엄이라고?’

명동에 외국인 관광객이 넘쳐나고 시스템이 잘 되어있으며, 인터넷 강국인 21세기 대한민국에 계엄이라고? 왜 무엇 때문에? 기가 차고 뜬금없어 헛웃음이 나왔다. 대통령이 자신의 눈에 거슬리는 사람들을 깡그리 잡아넣어 다 제거하려는 그 이유하나만으로 계엄을 선포하다니 믿기지 않았다. 그리고 이상하게 믿음이 갔다. 결국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엄마는 126일 새벽에 돌아가셨다. 127일 국회에서 김건희 특별법, 윤석열 탄핵안에 대한 표결을 한다고 했다. 남편은 계속 그쪽에 마음이 쏠려 있었다. 자주 방 안으로 들어가 TV를 보는 눈치였다. ‘장모와 엄마라는 한 다리 건너의 차이라 그런 것인가?’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만약 시어머니가 돌아가시면 내 마음도 남편의 마음과 다를 것이라 생각되어 그를 이해했다. 부결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슬픈 마음에 천근만근 무거운 마음이 추가되었다.

 

그곳에서 이재명이 싫어 윤석열에게 투표한 큰 언니도, 이재명은 싫지만 윤석열에게는 투표하지 않았다는 오빠도 계엄은 잘못된 것이라고 했다. 이재명의 열렬한 추종자인 남편과 둘째 언니는 당연히 분노를 표출했다. 모두 왜 그랬어야 했는지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 정도면 계엄은 사람들을 납득시키는데 실패한 것이었다.

 

 

작가 황정은은 123일부터 38일 윤석열 석방까지 일기 형식으로 계엄의 시작과 진행 과정, 자신의 느낌을 적어나간다. 덕분에 책을 읽으며 시간에 따라 체계적으로 복기할 수 있었다. 문장의 많은 부분에서 내 생각을 발견할 수 있어 반가웠다. 단순한 나의 생각에 보태진, 작가의 짧지만 깊은 문장으로 의미와 느낌이 완성될 수 있었다. 계속 화가 났지만 집 안에서만 머문 나에 비해 추운 날임에도 매번 집회에 참석해 힘을 보탠 작가가 대단해보였다.

 

이 책에는 계엄에 관련된 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소수자나 사회 약자, 이미 국가권력에 의해 상처받은 사람들에 대한 배려도 있었다. 작가의 일상도 고스란히 담겨있다. 단편과 장편 소설을 쓰고, 몸이 아프고, 산책을 하고, 자매들과 밥을 먹기도 한다. 작가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도, 읽고 있는 책의 제목도 있다. 항상 남이 읽는, 특히 작가가 읽는 책이 궁금하기에 그 부분에서 눈이 번쩍 뜨였다. 그 책들을 인터넷 서점과 밀리의 서재에서 검색해 담아 두기도 했다. 그 사이 무안 공항 제주 항공기 사고와 큰 산불이 일어났고, 강동구 싱크홀로 오토바이 운전자가 사망했다. ‘서울서부지방법원 습격이라는 끔찍한 일이 자행되었다.

 

 

평론가 신형철은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에서 조지 오웰의 글을 인용하며 이렇게 말한다.

 

[조지 오웰은 나는 왜 쓰는가(한겨레출판, 2010)에서 작가가 글을 쓰는 네 가지 동력 중 하나로 역사적 충동을 들고, 이를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 진실을 알아내고, 그것을 후세를 위해 보존해두려는 욕구라고 규정했다. 우리 시대의 작가들에게서 이런 충동이 희귀해졌다. 그것은 역사학이 할 일 아니냐고? 역사는 세상의 길에서도 흐르지만 인간의 마음속에서도 흐른다. 그 마음의 역사를, 소설가가 아니라면 누가 기록할 것인가.

-P.128,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한겨레출판]

 

나는 우리 시대의 작가에게 그런 충동이 희귀해졌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글쟁이들은 역사와 사회에 무심할 수 없다. 쓰고 싶은 충동이 강한 사람들이라 안 쓰고는 못 배길 것이다. 요즘 작가가 가져다 쓸 수 있는 거시적 서사가 과거에 비해 확실히 적은 것은 사실이다. 빈약하기에 그리 보인다고 생각할 수 있다. 세월호 참사와 코로나 시국에 그에 관련된 소설이 많이 나왔지만 오히려 독자들이 또 그 얘기냐고!’하며 이젠 지겹고 식상하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한국 작가가 쓴 소설은 밋밋하고 재미없다고도 한다. 홀로코스트를 소재로 한 외국작가의 작품에 이런 평가는 드물다.

 

소재가 빈약하고 글의 세계를 위협하는 다양한 매체가 많아 작가들에게 어려움이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젊은 작가들이 조지 오웰과 신형철 평론가의 역사는 인간의 마음속에도 흐른다는 말을 기억해주었으면 한다. 전쟁이 아니어도, 홀로코스트가 아니어도, 식민지의 백성이 아니어도 지금 우리나라 역사의 한 장면 장면을 많이 써주었으면 좋겠다. 그것이 어떤 형식이든 반복해서 써주면 우리는 계속 잊지 않고 각성할 것이다. 계엄에 대해 황정은 작가가 물꼬를 터주어 고맙다.

 

한편으로, 지구상에 각종 폭력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너무 많지만 평화로운 지금의 대한민국이 너무 좋다. 빠르게 발전해가고 편리해진 세상에 사는 행운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아날로그 세상으로는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다. 스마트폰 하나로 사람들과 소통하고, 음악을 듣고, 책을 읽을 수 있어 행복하다. 아프면 병원에 가서 신경 주사로 통증을 빨리 낫게 하고 약을 먹을 수 있어 고맙다. 급하게 필요한 것을 다음 날 새벽에 집 앞으로 바로 갖다 주시는 택배 기사님들에 너무나 감사하다.

 

그들이 있기에 나의 일상이 있을 수 있다. 그러기에 먼저 국민의 일상이 평화롭게 지속되어야만 한다. 그것을 위해 권력과 정치가 제발 노력해 주기를 바란다. 그것이 위협받지 않고 지켜지는 사회가 가장 절실하다. 절실함을 이해하고 해결해주는 것이 대통령이 할 첫 번째 일일 것이다.

 

[화가 난다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로 속이 뒤집힌다. 남의 삶을 조금도 아낄 줄 모르는 사람들이 그 삶을 다 무너뜨릴 막강한 힘을 가졌고 지금도 가지고 있다. 그럴 수 있을까. 군대를 동원해 사람들 목숨을 이런저런 전선으로 내모는 계획을 세우면서, 사람을 납치해 고문하고 없애라 명령하면서, 수많은 목숨이며 삶을 전쟁에 쓸어 넣을 계획을 세우면서, 그 머리와 가슴에 사람이 없을 수 있을까. 자신 말고 누구도 피 흘리는 생명체로 보지 않는 마음으로는 그게 될 것이다. 타인의 삶과 고통에 닿는 감각이 발달하지 않는 삶, 그럴 의지도 없는 마음으로는 그럴 수 있다. -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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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9-19 12: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황정은 작가의 남의 삶을 아낄줄 모르는 사람들이라는 말이 콱 와닿았어요. 나쁜 놈이라는 말보다 더 실감나는.... 일상의 소중함은 그것이 없어졌을 때 절실한데 그 일상을 잃고싶지 않아요.

페넬로페 2025-09-19 13:45   좋아요 1 | URL
이 책에 들어 있는 많은 문장들이 제 마음을 콕 집어 표현해주는 것 같아 좋았어요.
우리 모두의 일상이 편안하고 잘 돌아가면 좋겠다는 바람뿐이예요^^

책읽는나무 2025-09-20 10: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작년 겨울. 아빠가 돌아가셔 애도하느라 비상 계엄 저 기간동안 마음이 좀 복잡했었어요. 뉴스를 보면 국민의 한 사람이 되어 분노가 일긴 한데…겉으론 애써 표출이 안 되니…집회 나간다는 친구를 그저 물끄러미 지켜보기만 했었고, 친구의 어떤 말 한 마디가 상처가 되기도 했었죠. 봄이 될동안 계속 슬프고 불안하고 암울했었네요.
그래서인지 이 책을 읽으면서 또 슬픔이 밀려오고 또 부끄러움도 밀려 오고 좀 그랬던 것 같아요.
지금은 서서히 잊어 가며 일상을 살고 있기에 페넬로페 님의 말씀처럼 역사의 한 장면을 자꾸 써줘야 한다는 것에 공감합니다. 요즘 읽고 있는 소설 곳곳에 팬데믹 상황이 언급되는 걸 봤었는데 잊고 있던 무언가를 건드려주며 다시 생각하게 해주는 게 있더라구요. 하물며 비상 계엄 같은 역사 이야기는 더 말할 것도 없겠죠. 이 책은 더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어서 아, 나 그때 무엇을 하고 있었지! 또 상기하게 되었고. 또 한 편으로는 작가 견해의 문장을 통해 마음을 더 단단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는 것 같아 좋았어요.

페넬로페 2025-09-20 12:09   좋아요 0 | URL
그때의 상황이 저와 책나무님이 비슷했기에 그 마음 잘 압니다. 마음이 공허했기에 계엄에 대해 분노하면서도 조금 떨어져 봤었던 것 같아요. 무력감도 있었고요. 아무리 해도 저 권력 가진 자들이 하는 나쁜 짓들을 막지 못 할 것 같다는 생각도 잠시 했어요. 지금도 계속 버티고 있는 걸 보니 기가 차지만 그래도 정권이 바뀌어 얼마나 다행인지~~
이 책이 제 생각을 잘 대변해주어 좋았어요.
근데 전 아직도 엄마의 죽음이 실감나지 않아요.

그레이스 2025-09-22 16: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문제는 아직도 내란이 안끝났다는 사실! 저는 아직도 불안합니다.ㅠㅠ

페넬로페 2025-09-23 05:40   좋아요 2 | URL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