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페넬로페의 서재 (페넬로페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14542162</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기다림. 인생. 그리고 자유!'조개 줍는 아이'와 함께.....</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Wed, 22 Apr 2026 06:21:41 +0900</lastBuildDate><image><title>페넬로페</title><url>http://image.aladdin.co.kr/Community/myface/pt_7145421624113067.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14542162</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페넬로페</description></image><item><author>페넬로페</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알리야와 도쿠에-70대 불필요한 여자들의 품위 - [불필요한 여자]</title><link>https://blog.aladin.co.kr/714542162/17228891</link><pubDate>Mon, 20 Apr 2026 22:3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14542162/1722889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82135031&TPaperId=1722889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10/95/coveroff/k18213503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82135031&TPaperId=1722889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불필요한 여자</a><br/>라비 알라메딘 지음, 이다희 옮김 / 뮤진트리 / 2026년 02월<br/></td></tr></table><br/>만나는 사람마다 모두 주식 얘기를 하는 불장의 시대에 난 아직도 문학을 읽고 있다. 여전히 책이 좋아서 그럴 것이다. 아니 관성으로 읽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제 와서 뭔가 다른 것을 할 엄두도 안 나고 사실 귀찮기도 하다. 세상을 등지고 홀로 떠 있는 섬처럼 외롭게 책을 읽고 있지만 ‘라비 알라메딘’의 『불필요한 여자』같이 책 속에 책이 많이 나오면 반갑기보다 좌절을 더 하게 된다. 여기에 들어있는 책 중 읽은 것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가 여태껏 읽은 것들을 이 책의 주인공인 알리야처럼 적시적소에 인용하며 나비처럼 훨훨 날아다닐 수 있느냐면, 그러지도 못한다. 외로운 섬은 작은 바람에도 사라지고 마는 작고 허술한 것에 불과한 것이었는가 보다.&nbsp;’몸은 늙어도 마음은 청춘이다‘고 말하는 사람을 존경한다. 어떻게 살면 그런 생각이 드는지도 궁금하다. 요즘 몸과 함께 마음도 늙어버린 느낌이 많이 들어서인지 『불필요한 여자』의 소설 속 여러 얘기 중, 알리야의 노년이 더 눈에 들어왔다. 72세의 알리야가 움직이는 공간에서 그녀가 느끼는 미세한 고통과 좌절이 이해되고 심지어 그 감각마저 내 몸에 전달되는 기분이 들었다. 특히 세상과 단절한 채 혼자 살아가는 알리야의 삶은 위태롭게 보이기까지 했다.&nbsp;지난 주, 3개월 동안 전주에서 근무하는 딸아이에게 다녀왔다. 밤늦게 도착해 피곤한 것 같아 식탁위에 있는 쏠라 c를 먹고 자겠다고 했다. 다른 비타민처럼 이 약도 물로 삼키면 될 줄 알았는데, 딸아이가 이건 씹어 먹는 거고 두 알을 먹어야 한다고 했다. 시키는 대로 두 알을 씹어 먹고 물을 마시고 잤다. 다음 날, 간단한 요기를 하고 딸아이와 나가 점심을 먹기로 했다. 딸아이가 잠시 화장실에 간 사이, 역시나 피곤할 수 있으니 비타민을 먹는 게 좋을 것 같아 식탁 위의 쏠라 c 두 알을 한꺼번에 삼키고 물을 마셔버렸다. 알약 두 개가 목에 딱 걸리는 순간, 그제야 이 약은 씹어 먹는 것이라는 사실이 뒤늦게 떠올랐다. 목에 걸린 알약은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계속 가슴을 치고 물을 마시며 넘어가기를 기다렸고, 그 사이 병원에 갈까도 생각했다. 5분쯤 사투(?)를 벌이니 알약은 서서히 목을 지나 식도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목이 많이 아팠다.           &nbsp;이 겁나는 상황에서, 나는 내 몸만 걱정해야 하는데도 머리에서 계속 나 자신을 자책하고 있었다.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는 나를 내가 이해할 수도, 용납할 수도 없었다. 자꾸 잊어먹고, 되풀이되는 황당한 일이 단순한 실수로 인정되지 않았다. ‘내가 왜 이럴까? 왜 이리 멍청한 사람이 되는 걸까?’라고 계속 푸념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마음만은 청춘일 수가 없는 것이다. 마음도 덩달아 초췌해지고 쪼그라들며 작아진다. 노년이란 자신을 명쾌하게 설득할 수 없어 받아들이기 힘든 것인지도 모른다. &nbsp;『불필요한 여자』도 나의 경우와 비슷한 사건으로 시작된다. 알리야는 노안으로 설명서를 잘못 읽어 염색용 샴푸를 정량보다 10배나 더 많이 사용해 머리색이 그만 파란색으로 변해버렸다. 집중력이 떨어지고 멀티태스킹에 약한 알리야는 72세의 혼자 사는 여성이다. 50년 동안 서점에서 근무했으며, 새해 첫 날에 새 책을 번역하기 시작해, 지금까지 37권의 책을 번역했다. 하지만 번역된 원고는 출간하지 않고 자신의 집에 쌓아두고 있다. 어릴 때부터 자신의 삶의 방향을 자신이 정하지 못하는 환경에서 살아왔지만, 이혼당하고 난 뒤에 그녀는 서점, 집, 책, 음악만을 선택한 은둔의 삶을 살고 있다. 물론 정치적 상황이 좋지 않은 레바논의 베이루트에서 그녀에게 평화로운 고립의 삶을 허용하지 않았던 적도 많았지만, 다행히 수차례 위기를 넘겨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nbsp;알리야는 평생 문학과 함께 살아왔다. 바깥세상의 관습에 순종하지 않고 문학에 파묻혀 칩거하며 산다. 유일하게 한나와 교류하며 살았지만, 한나가 죽고 다시 혼자만의 삶을 이어간다. 문학이 그녀의 삶을 지배하기에 그녀에게 모든 것은 문학으로 인용되고 표현된다. 알리야에게 책은 운명이다. 책은 그녀가 유일하게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이며 세상과 단절해도 좋은 이유이다. 하지만 이제 나이가 많이 든 그녀에게 고립은 위험하고도 힘들다. ‘이 나이가 되니 삶은 계속되는 패배의 인정이다. 노년과 패배는 끝까지 의리를 저버리지 않는 피를 나눈 형제이다(p.78~79)’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불필요한 여자라고 인정한다. ‘가까스로 작동하는’ 몸으로 인해 힘들지만 그럼에도 ‘읽는 사람’인 알리야는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고 언제나 그 정체성을 사랑한다.  &nbsp;이 책에는 알리야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혼란스러운 레바논의 베이루트에서 살아가는 것(최근에 이스라엘의 네타냐후는 또 레바논에 미사일을 날렸다), 알리야가 읽은 책과 음악에 관한 얘기도 많고, 여성과 우정이 엮어내는 슬픔도 있다. 특히 노년의 삶을 살아가는 알리야의 현재의 모습과 생각이 다른 책의 문장으로 인용되며 유머러스하고도 애잔하게 표현된다. 책 속에 이렇게 다양한 내용이 들어있는 것이 좋다. 생각이 많아지며, 내 삶을 여기에 대비시키기 좋기 때문이다. 레바논이라는 나라에 대해서도 관심 가지게 되었다.&nbsp;알리야는 끊임없이 자신의 인생을 돌아본다. 결코 녹록치 않았던 그녀의 삶 속에서 어쩔 수 없었던 것은 빼고, 나머지 모두는 알리야가 자신의 인생을 주도한다. 쉽지 않았을 알리야의 선택, 고집과 묵묵함이 멋있었다. 거기에 담겨있는 회한과 허무를 받아들이는 태도도 좋았다. 소설의 마지막에 웃기게도 와장장창 깨져버리는 알리야의 은둔 생활도 재미있었다. 이웃 여자들에게 발견된 숨겨진 번역 원고도 어떤 기대를 하게 만들었다. 그것으로 뭔가 많이 변하지는 않겠지만, 알리야가 혼자가 아닌, 조금은 사람들과 연대할 수 있기를 바래본다.   &nbsp;[나는 아무것도 아니다.늘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무엇이 되고 싶다고 바랄 수조차 없다.그와 별개로, 내 안에는 온 세상의 꿈이 다 있다.-알바로데 캄포스, p.409] <br>벚꽃이 만발한 봄날에, 도라야키(밀가루, 달걀, 설탕을 섞은 반죽을 넣어 둥글납작하게 구워 두 쪽을 맞붙인 사이에 팥소를 넣은 화과자-위키백과) 가게에 한 할머니가 찾아온다. ‘아르바이트 구함’이라는 쪽지를 보고 자신이 이 가게에서 일해보고 싶다고 말한다. 만 76세의 ‘요시이 도쿠에(키키 키린)’는 손에 상처가 많고 손가락이 불편하지만 아무 문제없다고 한다. 하지만 이 가게의 점장인 센타로는 도쿠에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거절하며 자신이 만든 도라야키 하나를 도쿠에에게 준다.&nbsp;도라야키 가게를 운영하지만 단것을 싫어하고 술과 담배를 좋아하는, 얼굴에 세상의 모든 비애를 짊어진 것 같은 사장 ‘센타로’는 사실 빚을 많이 져 이 가게에 빚을 갚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일하고 있다. 마치 지옥에 있는 사람처럼 그는 재미없이 하루하루를 견뎌나가고 있다. 이 가게에는 단골인 여중생 ‘와카나’가 자주 온다. 젊고 철없는 엄마와 함께 사는 와카나는 가난하기에 학원도 다니지 않고, 엄마에게 고등학교도 진학하지 말라는 말을 듣는 우울한 소녀이다. 그렇지만 와카나는 불만스러운 삶을 살기보다 센타로의 말벗이 되어주고, 보다 더 긍정적이고 따뜻하게 사는 학생이다.  &nbsp;며칠 후 다시 찾아온 도쿠에는 센타로에게 자신이 만든 단팥소를 먹게 한다. 그 맛에 반한 그는 도쿠에를 고용한다. 여태껏 업소용 팥을 사용했던 센타로는 도쿠에와 함께 이제 새벽 일찍부터 팥을 삶고 으깨고 설탕을 넣어 소를 만든다. 그들이 합작해 만든 도라야키는 너무 맛있어졌고, 사람들에게 소문이 나 문 열기 전부터 손님들이 줄을 선다. 모처럼 센타로의 얼굴은 밝아졌고 웃게 된다. 그러나 벚꽃이 지고 파란 잎이 무성해진 어느 날 , 가게 주인이 와서 전하는 말은 충격적이다. 도쿠에는 한센병 환자라는 것이고, 그것에 대한 소문이 퍼져 가게엔 손님이 한 명도 찾아오지 않는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도쿠에는 더 이상 가게에 오지 않는다. &nbsp;다시 얼굴에 그늘이 지고 침울해진 센타로는 와카나의 제안으로 단풍이 든 가을에, 도쿠에를 찾아간다. 사실 소문은 와카나가 그녀의 엄마에게 얘기해서 나기 시작한 것이었고, 센타로는 도쿠에를 지켜주지 못해 힘들어하고 있었다. 와카나와 비슷한 나이에 병을 앓게 되어 한센병 격리 시설에 들어간 도쿠에는 그때부터 자유를 얻지 못하고 갇혀 살아야만 했다. 결혼하고 임신도 했지만 아이는 낳을 수 없었다. 평생 그곳에서 팥을 이용해 과자를 만드는 일을 했었다. &nbsp;가게 주인이 자신의 조카와 같이 일하라고 해 더 곤란해진 센타로는 와카나와 다시 도쿠에를 찾아가지만 이미 그녀는 저 세상으로 간 상태였다. 센타로는 도쿠에가 자신에게 남긴 말에 용기를 얻어 가게에서 독립한다. 다시 벚꽃이 만발한 봄날에 사람들이 봄을 즐기는 한가운데에서 도라야키를 판다 그는 큰소리로 미소 지으며  “도라야키 사세요! 도라야키 왔어요!’라고 외친다. &nbsp;소설 『불필요한 여자』와 영화 ‘앙: 단팥 인생 이야기’는 70대 여자의 이야기다. 둘 다 평범하지 않은 인생을 지나왔지만, 한 사람은 자발적 의지로 세상과 자신을 단절시켰고, 다른 사람은 타의에 의해 자유를 잃었다는 큰 차이가 있다. 소설의 내용도 좋았고 나 역시 알리야와 같은 노년을 보내고 싶다는 로망도 있었다. 하지만 영화 ‘앙’을 보고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알리야보다 도쿠에에 연민과 정이 갔고 더 따스함을 느꼈다. 책에 파묻혀 책 속의 문장에서 세상을 들여다보기보다, 세상과 직접 만나며 그 모든 것에 말을 걸며 극진히 모시는 도쿠에의 품위와 정성을 닮고 싶었다. 센타로와 와카나에게도 선하고 좋은 영향을 주는 노년의 모습도 아름다웠다. 모처럼 영화 보면서 펑펑 울었다. &nbsp;[항상 팥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그것은 팥이 보아 왔을 비 오는 날과 맑은 날들을 상상하는 일이지. 어떠한 바람들 속에서 팥이 여기까지 왔는지 팥의 긴 여행 이야기들을 듣는 일이야.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언어를 가졌다고 믿어. 햇빛이나 바람의 이야기도 들을 수가 있다고 생각하지. 그래서일까? 지난밤에 울타리를 넘어 불어오는 바람이 사장님에게 연락을 해 보라고 속삭이는 듯 느껴졌어. 아무 잘못도 하지 않고 살아가는데도 타인을 이해하지 않는 세상에 짓밟힐 때가 있어. 지혜를 발휘해야 할 때도 있지. 이런 인생 이야기도 들려줄 걸 그랬어. 언젠가는 사장님이 사장님만의 특별한 도라야키를 만들어 낼 거라 믿어. 스스로 개척한 길을 걸어가야 해. 사장님은 해낼 수 있어.&nbsp;주중 행사인 산책 중 달콤한 냄새에 끌린 날이었지. 사장님을 처음 보았는데 너무나 슬픈 눈빛이었어. 뭐가 그리 슬프냐고 묻고 싶을 정도로 슬픈 눈을 하고 있었지. 그것은 예전의 내 눈이었어. 평생 담장 밖으로 못나간다고 인정했을 때의 내 눈이었지. 그래서 난 이끌리듯 가게 앞까지 갔던 것 같아. 내 아이가 태어났더라면 사장님 정도의 나이가 됐겠지. 우리 사장님, 그 날 보름달은 나에게 이렇게 속삭였어. ‘네가 봐 주길 바랐단다. 그래서 빛나고 있었던 거야.” 우리 사장님, 잊지 마. 우리는 이 세상을 보기 위해서, 세상을 듣기 위해서 태어났어. 그러므로 특별한 무언가가 되지 못해도 우리는, 우리 각자는 살아갈 의미가 있는 존재야. -센타로에게 들려주는 도쿠에의 말] <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10/95/cover150/k18213503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5109531</link></image></item><item><author>페넬로페</author><category>페이퍼</category><title>‘두고 온‘ 이라는 말</title><link>https://blog.aladin.co.kr/714542162/17207566</link><pubDate>Fri, 10 Apr 2026 01:0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14542162/17207566</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32737464&TPaperId=1720756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5872/86/coveroff/k732737464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39006&TPaperId=1720756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1294/95/coveroff/8936439006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 <br><br><br><br><br><br><br><br><br><br><br><br>그때 왜 헌인릉에 갔는지는 잘 모르겠다. 딸아이가 아주 어렸을 때,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거기에 갔었다. 초여름 경이었고, 난 헌인릉의 존재도 몰랐으니 아마 남편이 가자고 했을 것이다. 지금은 왕릉의 모습보다 사람이 없는 고즈넉한 곳에서 유모차를 밀고 천천히 산책한 기억만 남아 있다. 왕이든, 속인이든, 죽음 앞에서는 언제나 무기력하고 쓸쓸함만 남는다. 그런 곳에서 생명력이 넘치는 아이를 데리고 우리는 무슨 얘기를 나누었을까? 무심코 세월이 흘러버렸다.&nbsp;책을 읽다 책에 나온 어떤 단어에 마음을 뺏길 때가 있다. 성해나 작가의 경장편인 『두고 온 여름』에서 ‘두고 온’이라는 말과 ‘인릉’이라는 단어에 생각이 그만 책 밖으로 나가고 말았다. 내 인생에서 ‘두고 온 것들’이 얼마나 많을지, 거기에 있을 수많은 내가 그리웠다. &nbsp;사진관을 운영했던 기하의 아버지는 인릉으로 자주 출사를 갔다. (소설에서 왜 헌인릉이라 하지 않고 인릉이라고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 소설에서는 사진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사진기로 보는 피사체는 이미 시작부터 왜곡된다. 아무리 아름다운 것이라도 사진에는 완벽히 담길 수 없다. 소설의 등장인물인 기하와 재하는 사진기 안에서만 존재하는 피사체처럼 서로를 담고 싶은 모습과 크기로만 볼 수 있는 관계다. &nbsp;기억도 못할 만큼 일찍 어머니를 잃은 기하는 아버지와 둘이 산다. 그가 19살일 때 아버지는 아들이 있는 여자를 만나고 그들은 같이 살기 시작한다. 생각지도 않은 다른 가족이 나타나 기하는 겉돌기 시작한다. 반면 새어머니의 아들인 재하는 기하와 아버지를 잘 따른다. 4년간 함께 살았지만 기하는 끝까지 새어머니와 재하에게 곁을 주지 않는다. 항상 그들에게 날 선 감정을 내보인다. &nbsp;두 가족의 결합은 여태껏 살아온 방식에 균열이 일어나는 일이고, 자연스러움을 포기하는 것이다. 당연히 내 아이에게 사랑이 많이 가는 것임에도 아버지는 재하를, 새어머니는 기하를 먼저 배려하고 눈치를 보게 된다. 이런 것에 기하는 아버지에게는 섭섭함을, 새어머니에게는 부담감을 느낀다. 그럼에도, 서먹하고 어색하지만 가족이기에 그들은 같이 사진을 찍고, 밥을 먹고, 서로에게 해야 할 일을 한다. &nbsp;그들이 인릉으로 나들이 간 날, 아버지가 재하에게 보인 다정함에 기하의 마음은 완전히 닫히고 만다. 새어머니가 아무리 노력해도 이미 끊긴 마음은 이어지지 않는다. 기하가 대학에 들어가 기숙사로 나가고 세 사람이 살 때, 셋은 다시 인릉으로 간다. 거기서 거대한 사슴 떼가 지나가는 모습을 환상처럼 보고 셋이서 사진을 찍는다. 박복한 사람에겐 늘 그렇듯 재하 친아버지의 횡포로 아버지와 새어머니는 헤어지고, 재하의 삶은 잘 풀리지 않는다. 차갑게만 굴고 정을 주지 않던 기하도 마찬가지다.   &nbsp;서른일곱이 된 기하는 스트리트 뷰를 보다 재하 모자를 우연히 발견해 재하를 찾아간다. 많은 세월이 지나 그들에게는 남들보다 더한 인생의 무게가 씌워져 있었고, 서로에게 솔직하지 못한다. 내세우고 싶은 것도, 공통된 화제도 없다. 서먹함으로 헤어질 찰나 재하는 기하에게 인릉에 가보자고 한다. 인릉은 그들에게 과거를 공유할 수 있는 장소였다. 생각과 입장이 달랐지만 가족이라는 모습으로 같이 추억을 만든 곳이었다. 끝까지 인릉을 인조의 능이라고 착각했고, 민망했지만 둘이 같이 사진을 찍었다. 앞으로 기하와 재하는 다시 만나지 못할 것 같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둘은 그들이 가족이었을 때를 그리워 할 것이다.&nbsp;과거를 돌이켜보면 나도 기하처럼 남에게 상처준 일이 많았다. 지금에야 무엇 때문에 그렇게 날을 세웠는지 내가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소설 속 기하를 보며 안타까울 때도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때의 나 또한 나였고, 기하 역시 그 때의 기하였다. 그 한 때에 두고 온 것이 아쉽고 그리운 건 그때의 나를 바라보며 측은함을 느껴서일지도 모르겠다. 기하와 재하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nbsp;[옥춘당 조각을 집어 입안에 넣었다. 달고 화한 맛이 혀끝부터 천천히 퍼졌다. 입안에서 사탕 조각을 굴리며 내가 왜 이곳에 왔을까 곰곰이 생각했다. 재하에게 해주어야 했을 말들을 뒤늦게나마 중얼대보았다. 잘 지냈니, 보고 싶었어. 잘 지냈으면 좋겠다, 미안해 같은 평범하고도 어려운 말들. 이제 와 전송하기에는 늦어버린, 무용한 말들을. -p.131]&nbsp;&nbsp;소설 『두고 온 여름』을 읽으며 헌인릉에 꼭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했다. 딸아이가 어릴 때 다녀왔던 곳을 먼 훗날 다시 다녀 온 기하와 재하처럼 나도 가고 싶었다. 친구 카리나 님께 같이 가자고 했다. 성해나 작가의 소설 &lt;구의 집: 갈월동 98번지&gt;를 읽고 ‘민주화운동기념관’을 가고 싶어 같이 가자고 했을 때, 카리나 님이 그 소설을 읽었는데 이번에도 나를 위해 &lt;두고 온 여름&gt;을 급하게 읽으셨다. 소설에 언급된 장소에 가면 그 곳 자체도 좋지만 거기에서 소설 속 얘기를 할 수 있어 더 좋고 아름답다. &nbsp;평일 오전의 헌인릉은 한적했다. 거의 우리 둘 만 있었다. 봄이 한창인 그곳엔 벚꽃을 비롯한 여러 꽃이 피어 있었다. 갑자기 꽃샘추위가 오는 바람에 소나무 숲을 지나는 바람 소리가 웅장했다. 소설 속에 들어있는 ‘홍살문’과 ‘오리나무’가 단연 먼저 눈에 띄었다.    <br>[인릉은 아버지가 즐겨찾는 출사지였다. 울창한 오리나무숲이 봉분을 둘러싸고 있었는데 그 풍경이 계절마다, 순간마다 달랐다. -p.32아버지는 능 한편에 서 있는 오리나무를 가리켰다. 우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선퇴가 줄기에 붙어 있었다. 선퇴를 톡 건드리자 나뭇잎이 부서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p.34]&nbsp;오리라는 단어에서 처음엔 동물 오리가 연상되었는데, 직접 본 오리나무의 키가 워낙 커 오리(五里)가 거리를 나타내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길가에 이정표 삼아 5리마다 심었다고 해서 오리나무라고 한다.<br>[숲길을 지나 능에 다다랐을 즈음, 아버지가 불현듯 홍살문 앞에서 멈춰 섰다. 그는 홍살문에서 정자각까지 이어진 돌길을 뷰파인더로 유심히 들여다본 뒤 허공에 포커스를 맞추고 몇차례 셔터를 눌렀다.산자도 망자도 이 문으로 드나든댄다. 보이냐 너희도? -p.33]&nbsp;정문으로 들어가면 인릉의 홍살문이 있다. 문을 지나 능을 보기 위해 위쪽으로 올라갔지만 길이 없어 그만 잔디를 밟고 능 앞으로 가고 말았다. 왕릉이 있는 곳이라 당연히 능을 볼 수 있을줄 알았고 뒤늦게 ‘들어가지 마시오’라는 푯말을 보게 되었다. 인릉은 인조가 아닌 순조와 순원왕후의 합장릉으로 봉분이 하나이다. 헌릉은 조금 안쪽으로 산책길을 따라 들어가면 있다. 이곳 역시 능 앞으로 가는 것이 허용되지 않을 것 같아 우리는 홍살문에서 멀리 있는 능을 봐야만 했다. 헌릉은 태종과 원경왕후의 능이 따로 있어 봉분이 두 개이다. &nbsp;헌인릉 바로 옆에 큰 건물이 하나 있는데 그 앞에는 철제로 된 바리게이트가 촘촘히 있었다. 바리게이트는 지그재그로 서 있었고 그 건물에서 나오는 자동차는 미로를 빠져 나오는 것처럼 천천히 나오고 있었다. 저 건물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저렇게 첩첩이 바리게이트를 쳐 놓았는지 궁금했다. 집에 와 검색해보니 그 건물은 말로만 듣던 국가정보원이었다. 인릉이 국정원과 바로 붙어 있어 인릉 앞에서는 사진 촬영이 금지 되어 있는데,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인릉 앞까지 가 사진을 찍었으니 국정원에 잡혀 갈지도 모르겠다. <br>-하늘에서 본 헌릉 능침, p.232, 왕릉 가는 길, 신정일, 쌤엔파커스<br>-인릉 능침 정면, p.247<br> <br>&nbsp;&nbsp;&nbsp;&nbsp;&nbsp;&nbsp;<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1294/95/cover150/893643900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12949534</link></image></item><item><author>페넬로페</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어른이 되지 못한 어떤 보헤미안의 이야기 - [여행자와 달빛]</title><link>https://blog.aladin.co.kr/714542162/17178378</link><pubDate>Sat, 28 Mar 2026 00:2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14542162/1717837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12831158&TPaperId=1717837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1200/63/coveroff/k51283115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12831158&TPaperId=1717837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여행자와 달빛</a><br/>세르브 언털 지음, 김보국 옮김 / 휴머니스트 / 2023년 03월<br/></td></tr></table><br/>유럽 사람들이 부러운 건, 물론 소설이나 영화에서 거의 대부분 접한 거지만, 유럽에 있는 다른 나라로 여행이 쉽고, 웬만하면 외국어도 두세 개쯤 너끈히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륙으로의 진입이 꽉 막힌 우리와 달리 그들의 자유로운 이동은 깊고 폭 넓은 경험을 가능하게 한다. 그것은 다양한 사고로 이어지고 문학 작품에 온갖 에피소드로도 반영된다. 유럽 작가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매번 새로운 느낌이 드는 이유에 그들의 지리적 환경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nbsp;세르브 언털의 『여행자와 달빛』은 헝가리의 부더와 페스트, 이탈리아, 파리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중산층 이상의, 부르주아가 등장인물로 나오고 그들의 생활 방식도 우리와 많이 달랐다. 이 소설의 주제를 파악하기 전, 일단 등장인물의 삶을 먼저 이해하는 것이 상당히 힘들었다. 모든 등장인물들의 성격과 행동이 평범하지 않고 독특했다.  &nbsp;작가의 경험이 많이 들어있는 이 소설에는 영적인 관점, 죽음, 사랑을 바탕으로 한 인간의 묵직함이 있지만 그에 어울리지 않은 속물적 내용도 많아 완독하고 나서도 소설에 관한 확실한 갈피를 잡기 어려웠다. 소설에 이질적인 것들이 많이 있어 배가 산으로 간 느낌도 들었다. 옮긴이 해설에 있는 용어인 에피스테메(어떤 특정한 시대의 문화를 규정하는 심층적인 규칙의 체계)가 나에게는 상당히 혼란스럽게 다가왔다. 아주 어려운 소설이었다.      &nbsp;학창시절에 만난 친구와 그들과 함께 한 경험에 여전히 지배당하고 있는 주인공 미하이는 어른이 되지 못한 인물이다. 미하이는 과거에서 벗어나 현실을 받아들이기 위해 에르지와 결혼한다. 신혼여행으로 이탈리아로 가지만 그는 도중에 말도 없이 에르지를 떠나버린다. 청춘을 배신하지 못한 미하이는 15년이 지난 후, 결국 그 시절에 함께 했던 사람과 이탈리아에서 한 명씩 재회하고 나서야 조금이나마 앞으로 움직일 수 있게 된다. 타고난 성향에다 인생의 중심이 되었던 그 시절을 벗어나지 못한 미하이는 죽음을 선택하려 했지만 운명적으로 일면식도 없는 한 아이의 대부가 됨으로서 어느 정도 과거에서 벗어날 수 있다. 물론 스스로가 아닌 아버지가 내민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가지만 미하이에겐 그 어려운 한 발이 새 인생의 첫 걸음이었다.         &nbsp;미하이의 고등학교 시절 친구인 울피우시 터마시는 자살하고 그의 여동생 에버는 죽음의 조력자가 된다. 이 책에서 죽음은 아주 미학적으로 서술된다. 어머니의 부재와 강압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라난 울피우시 남매에게 죽음은 자연스러운 선택이고 귀결이었다. 죽음의 순간에 황홀경을 겪는다는 터마시의 말에 ‘죽음’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 삶을 위해 죽음을 망각해야 하는 현실을 사는 평범한 내가 터마시의 죽음을 쉽게 이해할 순 없었지만, 그래도 죽음은 언제나 내 옆에 꺼내 놓아야 하는 것임이 확실하다. 다른 친구인 에르빈은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수도사가 되고 세페트네키 야노시는 사기꾼이 된다. 같은 시절을 거쳤고 모두 다 거기에 몰두했지만 그들의 삶의 방향은 다 달랐다.    <br>휴머니스트 출판사의 세계 문학 시리즈 중 ‘다른 존재가 되어야만 나아갈 수 있는 삶의 결정적 한순간’이라는 테마로 간행된 이 소설에서 미하이는 다른 존재가 되기 위해 여행자가 된다. 이탈리아 여러 도시를 전전하며 학창 시절의 친구들과 새로운 사람들과 조우한다. 미하이에게 결정적 순간은 하나가 아닌 여러개가 될 것이다. 다만 그는 결정적 순간마다 우연을 믿고 도망치는 경우가 많았다. 그의 여행은 모든 것을 떨쳐버리고 희망을 갖고 되돌아오는 것이 아닌, 자신이 아닌 것이 될 수밖에 없는 현실적 삶을 위한 준비였다. 앞으로 무수히 밀려 들 결정적 순간들마다 미하이는 도망가지 않고 자신을 지킬 수 있을지.....&nbsp;책의 앞표지 뒷장에 있는 작가 소개에서 &lt;세르브 언털&gt;은 가톨릭으로 개종했지만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1944년 헝가리 벌프의 노동 수용소로 끌려갔고 1년 뒤인 1945년 그곳의 간수들에게 구타를 당해 세상을 떠났다고 적혀있다. 1년 동안 수용소에서 겪었을 고통에 그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조차 안 된다. 책을 읽는 내내 끔찍한 이 말들이 생각나 내용에 잘 집중할 수 없었다. 현실에 비해 우리가 추구하는 허구는 얼마나 가당찮은지, 부질없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br>[미하이는 우울해졌다. 머리에는 온갖 것이 떠올랐고, 일상적인 그 상황은 공포스럽게 느껴졌다. 영세식에 참석하자며, 그들은 유서를 작성하고 있는 미하이를 방해한다. 그는 갑자기 이렇게 사랑스럽고도 엉뚱한 일들과 마주하게 된 것이다. 끔찍하거나 숭고한 인생의 순간에 항상 사랑스럽고&nbsp;엉뚱한 일들이 발생했으며, 사랑스럽고 엉뚱한 때에는 항상 끔찍하고 숭고한 것들이 그의&nbsp;머릿속에 떠올랐다. 인생은 정해진 형식이 없는 것이거나 최소한 뭔가 매우 복합적인 장르다. -p.363]<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1200/63/cover150/k51283115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12006342</link></image></item><item><author>페넬로페</author><category>페이퍼</category><title>인트로- 우리 안에 들어있는 악령을 먼저 인식해야한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14542162/17164203</link><pubDate>Sat, 21 Mar 2026 17:0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14542162/17164203</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919518&TPaperId=1716420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8559/74/coveroff/8932919518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920117&TPaperId=1716420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3096/29/coveroff/8932920117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3849&TPaperId=1716420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7436/74/coveroff/8937463849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  <br><br><br><br><br><br><br><br><br><br><br><br><br><br>TV 프로그램 중 &lt;냉장고를 부탁해&gt;라는 것이 있다. 재미있어서 내가 자주 시청하는 프로그램이다. 2명의 게스트를 초대해, 그들 집의 냉장고 속 재료를 스튜디오에 그대로 가져와 그들이 원하는 요리를 15분 만에 셰프 들이 뚝딱 만들어내야 하는 미션이 주어지는 내용이다. 그 중 중식요리를 전공한 셰프 들이 중국 요리를 만드는 방식에는 항상 비슷한 법칙이 있다. 일단 재료 손질을 먼저, 완벽히 하고 나서 나중에 불 쇼를 하며 요리를 만들어내는 것이다.&nbsp;벽돌책으로 분류되는 고전 읽기도 중국 요리를 준비하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 보통 고전이라 알려진 작품을 읽을 땐 처음 50페이지나 100페이지 정도는 고통을 견뎌내야 한다. 본격적으로 중요한 사건(요리)이 나오기 전 작가들은 지루하고도 끈질기게 독자들에게 재료 준비하는 모습만을 보여준다. 그러다 불 쇼가 진행되면 그제서야 독자들은 기다려온 보람을 느낀다. 고전이란 언제나 읽다 지칠만할 때가 되어서야 진가가 발휘된다. &nbsp;도스토옙스키의 『악령』도 당연히 그런 고전의 법칙이 적용된다. 한 명씩 등장하는 인물에 대한 설명만 있을 뿐 1권이 끝나도록 그럴듯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 계속 뭔가를 추측하게만 한다. 내가 뭔가 잘못 읽었거나 번역의 문제인가 싶어 다른 출판사 버전으로 다시 읽었지만 마찬가지였다. 민음사판 1권과 열린책들판 상은 주요 인물인 니콜라이와 표트르의 동시 등장으로 그냥 끝나버린다. 아마 2,3권에 중요한 사건이 집중되어 있을 것이다. &nbsp;대작가 도스토옙스키는 이 초반 부분에 엄청 공을 들여 차례로 나오는 등장인물에 따라 문체와 어투를 달리한다. 스테판과 바르바라의 에피소드에서는 이제껏 읽은 도작가의 다른 작품에 비해 엄청 가볍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럼에도 모든 것이 꽉 차 있으므로 작품의 내용에 대해 얘기하기가 너무 어렵다. 뭔가 짧게 요약하기가 힘들다. 도작가의 작품은 그저 묵묵히, 반복해서 읽어내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다.    &nbsp;1800년대 중반 러시아는 정치적, 사회적으로 사상적 혼란의 시기를 지나고 있었다. 1825년 알렉산드르 1세가 사망하고 왕위를 물러 받은 그의 동생인 니콜라이 1세의 즉위식 날 여러 파벌의 혁명가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12월에 반란이 일어났기에 이 사건은 ‘데카브리스트의 난’으로 명명되었다. 러시아는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모든 것이 뒤처진 상태였는데 당시 젊은 지식인이나 장교들은 강력한 개혁과 자유의 필요성을 체감하고 있었다. 니콜라이 1세는 이들을 진압하고, 이 사건에 놀라 극도의 보수주의자가 되어 자유사상을 탄압했다. 도스토옙스키가 1849년부터 참가한 공상적 사회주의의 경향의 페트라쎕스키 모임에서 고골에게 보내는 벨린스키의 편지를 낭독했다는 이유로 사형 선고를 받은 시기도 니콜라이 1세 때였다. &nbsp;도스토옙스키가 『악령』을 집필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lt;세르게이 네차예프(1847~1882) 사건&gt;이었다. 여러 급진 사상을 접한 니힐리스트 네차예프는 학생운동에 참여하고 제네바로 가 바쿠닌을 만난다. 그의 영향을 받은 네차예프는 러시아로 돌아와 혁명 조직을 결성한다. 급진주의자인 네차예프는 폭력 적이었고 살인마저 저질러 체포되고, 이 일은 러시아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악령은 이 사건을 토대로 여진 작품이다. 악령에서의 혁명가들은 모두 니힐리스트였고 도스토옙스키는 그런 그들을 비판하고자 이 소설을 썼다. 그러므로 악령은 작가의 정치소설이다. <br>[본래 니힐리즘은 19세기 러시아의 극도로 반동적이고 압제적인 현실에서 파생되었던 일종의 ‘자유사상’이었다. 이 자유사상, 즉 니힐리즘은 유물론과 개인주의라는 두 개의 사상에 기반했고 그것을 극한으로 추구했다. 니힐리스트들은 유물론자로서 모든 종교, 미신, 형이상학 등 물질적 현실에 기반하지 않은 무언가, 과학으로 분석되지 않은 것, 실질적인 유용성을 가지지 않은 것을 부정했다. 한편으로 개인주의자로서 그들은 완전한 개인의 자유를 위하여 개인에게 부과된 전통을 부정했다....이 니힐리즘이 오늘날 떠올리는 음울한 극단적 혁명이론으로 각인되게 된 것은 전적으로 네차예프라는 인물의 역할이다. 제정러시아의 아나키스트들조차 네차예프를 상종 못할 인간으로 간주했다.-네이버 ‘나무위키’에서 발췌]<br>&nbsp;『악령』은 안톤 라브렌티예비치라는 화자의 연대기적 기술로 진행된다. 아버지 세대를 대표하는 스테판과 바르바라, 아들 세대를 대표하는 니콜라이와 표트르의 대립적 구조로 여러 사건이 얽힌다. 인물 하나하나가 새롭게 등장하며 각자가 가진 캐릭터가 독자를 긴장시키고 나중에 일어날 사건에 대해 추측하게 한다. ‘어떤 도시에서 최근에 일어난 그토록 이상한 사건을 기술(p.13)' 하기 위해 2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 상세히 설명한다. 연대기의 서론에 해당하는 것은 20년 동안 계속된 스테판 베르호벤스키와 바르바라 스타브로기나 사이의 미묘하고도 복잡한 관계에 대한 것이다. 그들은 친구이자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들이다. 친구이지만 ‘서로 잡아먹지 못해 안달하고 평생 그렇게 살면서도 헤어질 수는 없는(p.24)’ 사이로 뒤엉켜 지금은 영지를 소유한 돈 많은 바르바라가 스테판을 지켜주고 유모처럼 보살피고 있다.&nbsp;&lt;니콜라이 스타브로긴&gt;은 바르바라의 외아들이다. 스테판 트로피모보치는 니콜라이의 교육자로 처음 이곳에 왔다. 바르바라는 스테판에게 니콜라이의 교육을 위임했지만 아들에 대한 관심은 지나칠 정도였고 그것을 니콜라이는 병적일 정도로 느끼고 있었다. 그는 ‘병약하고 조용하고 생각에 골몰하는’ 열 여섯이 되었을 때 다른 도시로 공부하러 간다. 그 뒤 군대에 들어가지만 그때부터 니콜라이에 대한 이상한 소문이 들리기 시작한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헨리 4세에 나오는 해리 왕자와 비슷한 행동을 해 그 이름이 별명이 되었다. 니콜라이는 방탕해지고 괜한 시비를 일삼고, 여러 번의 결투로 사람을 죽이고 불구로 만들어 재판까지 회부된다. 페테르부르크에서 사회의 인간쓰레기들과 살고 뒷골목을 전전한다. 소문과는 다르게 교양있고 지식을 갖춘, 잘 생기고 우아하며 단정한 신사로 고향에 돌아 온 니콜라이는 야수처럼 이상한 행동을 한다. <br>[우리의 왕자는 밑도 끝도 없이 갑자기 여러 인물에게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두세 가지 뻔뻔스러운 짓을 저질렀는데, 중요한 것은 그 뻔뻔스러운 짓이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한 것, 그 어떤 것과도 닮지 않은 것, 흔히 통용되는 것이 전혀 아닌, 완전히 걸레짝 같고 어린애 같은 짓, 도무지 목적도, 동기도 전혀 없다는 점이었다.....그래도 나중에는 그가 이런 행동을 하던 그 순간에 ‘꼭 미친 것처럼’ 거의 생각에 빠진 모습이었다는 이야기가 돌았다.....그가 이미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잘 이해했으되 당황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오히려 ‘일말의 후회도 없이’ 악의에 찬 즐거운 미소를 짓던 두 번째 순간만을 열렬히 기억할 뿐이었다.&nbsp;-p.77~78]<br>&nbsp;사람들은 니콜라이를 증오하고 미워한다. 어떤 이유에선지 바르바라는 이러한 일을 예상하고 있었으며 드디어 ’시작됐구나‘라고 생각한다. 간교하고 냉소적인, 때론 섬망 상태의 니콜라는 병원에 입원하고 회복 후에 삼 년 정도 여행을 다녀 점점 잊힌 존재가 된다.&nbsp;스테판은 아들 표트르를 그동안 두 번 보았는데 한 번은 태어났을 때고 두 번째는 페테르부르크에서 대학에 입학하려고 준비할 때였다. 표트르는 바르바라가 대 주는 생활비로 이모들 손에서 자랐다. 금발에 괴짜 같기도 하지만 예의범절이 훌륭하고 자기 확신에 찬 사람으로 스테판에게 돌아온 표트르는 아직은 신비로운 사람이다. 그에 대한 설명에 ‘어쩐지’라는 말이 계속 따라 붙는다.<br>[그는 다급히, 성급히 말하지만 동시에 자기 확신에 차 있고 말이 막히는 일도 없다. 그의 생각은 성급한 듯 보여도 실은 침착하고 분명하며 단정적인데 특히 이 점이 두드러진다. 그의 발음은 놀라울 정도로 또렷하다. 그의 단어는 언제나 당신의 비위에 맞게 선별되고 준비된 것으로 고르고 굵은 밀알처럼 흩뿌려진다. 처음에는 이것이 마음에 들겠지만 나중에는 바로 이 너무 또렷한 발음 때문에, 또 영원토록 준비된 구슬 같은 말 때문에 오히려 혐오스러워진다. 어쩐지 입속에 든 그의 혀가 어쩐지 특별한 형태를 띠고 있으며 어쩐지 이례적으로 길고 가늘며 끔찍이도 붉고 혀끝이 굉장히 뾰족하며 저도 모르게 끊임없이 날름거린다는 생각이 어쩐지 들게 한다.&nbsp;-p.305]<br>&nbsp;니콜라이와 표트르, 바르바라의 친구인 프라스코비야 부인과 그녀의 딸 리자베타, 새 도지사인 렘브케와 그의 아내 율리아가 이 도시로 들어오고, 퇴역 대위이자 주정뱅이인 레뱌드킨의 동생 마리야와 니콜라이의 관계가 시작되는 것이 이 연대기의 진짜 시작이 된다. 도스토옙스키는 이 책의 제사로 4대 복음서에 모두 기록된 마귀에 대한 것을 인용한다. 사람 속에 들어있던 마귀는 예수에게 자기들을 돼지들 속으로 들어가게 해 달라고 요청하고 예수가 허락하자 마귀 떼는 돼지 속으로 들어가 모두 호수로 가서 빠져죽는다. 이렇게 예수는 마귀 들린 사람을 낫게 했다. 악령은 이 구절의 마귀와 뜻이 같다. 악령의 등장인물들에게는 다 마귀가 들어있는 듯하다. 예수같이 이들을 구해줄 것은 무엇이며, 그들 속에 있던 악령은 어디로 갈 것인지 다음 내용이 기대된다.<br> <br>&nbsp;&nbsp;&nbsp;<br><br><br><br><br><br><br><br>『매핑 도스토옙스키』는 제목 그대로 작가 도스토옙스키의 삶을 따라 그가 살았던 곳과 거기서 집필된 작품을 따라가는 연대기적 매핑(mapping)이다. 오랫동안 러시아 문학, 특히 도스토옙스키를 연구한 석영중 교수가 직접 그의 길을 따라 가며 서술한 책이라 더 깊이있고 볼거리가 많다. 신문에 연재되어서인지 글이 쉬워 읽기에 좋다. &nbsp;1867년 재혼한 도스토옙스키는 부인 안나와 함께 유럽으로 떠난다. 주변의 버거운 사람들로부터의 탈출이었다. 4년 3개월 동안 여러 도시를 떠돌며 산 작가는 타국에서 ‘백치’와 ‘악령’을 완성했다.&nbsp;도스토옙스키는 드레스덴에서 자신의 세 번째 장편소설인 『악령』을 집필했다. ‘1860년대 러시아에서 니힐리스트란 모든 사상, 모든 의미, 모든 권위, 모든 도덕을 철저하게 부정하는 급진주의자를 지칭한다(p.335).' 외국에 있으면서도 러시아에 대한 관심을 계속 가지고 있던 작가는 네차예프 사건에 충격을 받고 그것을 계기로 정치소설을 쓰기로 결심한다. 악령의 표트르는 네차예프가 모델이다. 도스토옙스키는 소설 악령에서 니힐리스트의 폭력을 고발하면서도 더 나아가 인간 본성과 자신을 포함한 아버지 세대의 무책임에 대한 반성을 한다. <br>[그가 네차예프 사건에서 파헤친 것은 특정 사상의 문제보다 더 깊은 곳에 있는 인간 본성의 문제였다. 그는 인간 본성의 심연에 뿌리 내린 권력 의지를 끄집어내서 하나의 인간 유형을 창조했다. 그는 네차예프를 광신자라 생각하지도 않았고 멍청이라 생각하지도 않았다. 표트르로 &lt;재탄생한&gt; 네차예프는 인간의 권력 의지를 증폭시켜 보여 주는 무시무시한 괴물이다. 정치 소설로 기획된 작품은 결국 철학 소설로 굳어졌다. -p.339카뮈는 악령이 도스토옙스키 작품 중 가장 예언적인 작품이라 상찬했다....악령은 분명 테러리즘을 예고한다. 그러나 도스토옙스키는 소설에서 당대 현실과 미래에 대한 우려뿐 아니라 과거에 대한 성찰을 보여준다. -p.342]<br>&nbsp;-p.336, 세르게이 네차예프<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7436/74/cover150/893746384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74367485</link></image></item><item><author>페넬로페</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운명이여, 안나에게 들이친 이 어두움이 사랑이기를!  - [안나 카레니나 1]</title><link>https://blog.aladin.co.kr/714542162/17148553</link><pubDate>Fri, 13 Mar 2026 19:4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14542162/1714855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2192&TPaperId=1714855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61/57/coveroff/s06263510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2192&TPaperId=1714855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안나 카레니나 1</a><br/>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연진희 옮김 / 민음사 / 2009년 09월<br/></td></tr></table><br/>세상 사람들에게 세계 문학에서 가장 강렬하게 기억나는 주인공 이름 딱 10개만 말해보라고 할 때, ‘안나 카레니나’는 거의 빠지지 않을 것이다. 너무나 유명한, 주인공의 이름이 표제작인 이 작품을 거의 10년 만에 재독했다. 처음 읽었을 땐 약간 지루했는데, 다시 읽은 안나 카레니나는 그렇지 않았다. 톨스토이의 담백한 문장과 세련된 소설 구성에 감탄하며 단숨에 읽을 수 있었다. 내가 일관되게 애정하고 러시아 최고의 작가라 생각하는 도스토옙스키가 톨스토이에게 자리를 내 줄것 같은 나쁜 예감마저 들 정도로 좋았다.(일단 1권에서)&nbsp;여기엔 여러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고, 그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독자적 삶을 살아간다. 소설 첫 문장의 ‘저마다 나름의 이유(p.13)"는 가정뿐만 아니라 개인의 삶에도 적용되며 나름의 선택으로 행복과 불행이 결정되지만 그것은 어차피 내가 아닌 타인이 내린 판단일 뿐이다. 언뜻 안나 카레니나의 생의 결말이 불행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그녀의 선택은 행복을 위해서였다. 행복과 불행은 다양한 삶에서 어쩔 수 없이 교차될 수밖에 없는 빛과 그림자와 같은 양면성이다. &nbsp;이 소설은 안나 카레니나와 브론스키와 카레닌, 레닌과 카체리나(키티)의 두 축으로 진행된다. 물론 안나와 브론스키의 사랑(불륜)이 가장 주된 내용이지만 이 두 사람이 소설 전반을 완전히 지배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톨스토이는 안나와 브론스키의 사랑의 시작을 찰나적으로만 표현한다. 모스크바 기차역에서 스치면서 서로를 본 두 사람은 운명적으로 사랑에 빠진다. 사랑이라는 것에 구구절절한 이유가 필요 없다는 듯하다. 눈빛 하나만으로도 사랑은 시작될 수 있는 것이다. &nbsp;안나와 브론스키의 사랑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서술되기 전, 안나의 오빠 ‘스테판 오블론스키’와 ‘콘스탄친 드미트리치 레빈’이 먼저 등장한다. 소설의 첫 문장으로 너무나 유명한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 나름의 이유로 불행하다.’는 스테판의 가정에서 먼저 시작된다. 자기 집의 프랑스 가정교사와 바람이 난 스테판은 아내 다리야(돌리)와 냉전중이다. 이 에피소드는 사건의 포문을 여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일을 계기로 두 사람을 중재하기 위해 안나 카레니나가 페테르부르크에서 모스크바로 오게 되고 그것은 브론스키를 만나게 하는 결정적 역할을 한다. 또 하나는 여기에서 스테판과 레빈의 사랑에 대한 관점의 차이를 보여준다.&nbsp;스테판은 쉽게 사랑에 빠지는 사람이다. 서른 네 살의 미남인 그는 벌써 다섯 아이와 죽은 두 아이를 낳은 서른 세 살의 아내 돌리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 그는 바람피운 것을 후회하지 않으며 오히려 이제 아름답지도 않고 쇠잔해진 돌리가 관대함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뻔뻔한 남자이다.(소설 초반의 스테판에 대한 묘사가 굉장히 재미있다.) 브론스키도 이런 유형에 속한다. 브론스키는 키티에게 ‘결혼할 의사도 없으면서 유혹하는 짓(p.128)’을 한다.  &nbsp;반면 레빈은 사랑과 가정은 연결되고 하나인 것으로 생각하며, 절대 배반이란 있을 수 없고 서로에게 충실해야만 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정의하는 사람이다. 돌리의 동생 키티에게 청혼했지만 거절당한 레빈은 실의에 빠지고, 괴로운 상황을 벗어나고자 농민 운동에 몰두한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키티를 사랑하며 그녀에게만 관심을 둔다. 맑고 선하며 빛나는 키티는 그에게 영원하며 끝까지 지켜져야 할 여자인 것이다.    &nbsp;얼핏 가정을 지키고자 하는 안나의 남편 카레닌이 레빈과 비슷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두 사람의 사랑관에는 차이가 많다. 레빈에게 사랑은 자신의 삶 자체이지만 카레닌의 사랑은 남에게 보여 지는 것에 불과하다. 카레닌은 사교계에서 자신의 가정이 완벽하게 보여 지고 구설수에 오르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카레닌에게 가정은 정치가로서 자신이 갖추어야 할 많은 것 중의 하나일 뿐이다.   &nbsp;기차역에서 안나를 우연히 마주친 브론스키는 ‘한 번 더 그녀를 꼭 보아야겠다는 충동(p.137)‘을 가진다. 안나 역시 다정한 눈빛으로 브론스키를 유심히 바라본다. 그것으로 그들의 사랑은 시작된다. 하지만 기차역에서 기차에 치인 경비원의 사고와 스테판의 집에 잠깐 들른 브론스키를 보며 안나는 어떤 공포감과 불길함을 느낀다. 여지껏 평온했던 안나의 삶에 불쑥 들어 온 브론스키를 떨쳐버리려 그녀는 모스크바를 급히 떠나지만 곧바로 브론스키는 안나를 따라 페테르부르크로 온다.&nbsp;안나 카레니나 1권에서의 압권은 어쩌면 처음일 수 있는, 운명적 사랑에 빠진 안나의 심리적 변화이다. 이 부분을 톨스토이는 기가 막히게 표현한다. 모범적이고 습관적인 생활로 돌아가기 위해 기차에 오른 안나에게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제는 다른 사람의 삶을 좇는 것보다 ‘자신의 삶을 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서(p.221)'였다. 브론스키를 떠올리며 뜨거움을 느끼는 그녀는 이제 자신이 예전의 안나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한다. 절대 돌아갈 수 없다는 것도. &nbsp;페테르부르크 역에서 마중 나온 남편을 본 순간 안나는 ‘아, 어쩜! 저이의 귀는 어떻게 저렇게 생긴 걸까?(p.229)'라고 생각하며 남편에 대한 불쾌한 감정에 심장이 조이는 느낌을 받는다. 사실 그러한 감정은 오랫동안 느껴온 것이지만 이제야 그것이 고통스럽고 더 이상 남편에게 위선적 행동을 취할 수 없다는 걸 깨닫는다. 안나의 시선은 이제 카레닌이 아닌 브론스키로 향한다. 분명하고도 확고한 사랑의 시작은 안나를 솔직하게 만든다. 그녀의 전부였던 아들에게조차 다른 감정이 든다. 안나와 브론스키는 페테르부르크 사교계의 표적이 되고 비난의 대상이 된다. 평소 모든 것이 완벽했던 안나를 시샘한 사교계 사람들은 이때다 여기며 덥석 미끼를 문다. 사교계 사람들 대부분은 보통 공공연히 불륜을 저지른다. 다만 그들은 그러한 사실을 몰래 숨기지만, 안나와 브론스키는 서로를 너무나 사랑해 숨길 수가 없다.      &nbsp;아내가 다른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고 인식한 카레닌은 안나를 통해 처음으로 인생의 벽을 느낀다. 그는 예의와 법도를 언급하며 안나에게 경고한다. 안나와 브론스키의 사랑은 거침없이 진행되고 급기야 안나는 브론스키의 아이를 임신한다. 경마 대회에 출전한 브론스키가 말에서 떨어지자 그것을 구경하던 안나는 일어나 비명을 지른다. 그 일을 계기로 안나는 확실하게 카레닌에게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은 브론스키라고 못을 박는다. 키티에게 청혼을 거절당한 레빈은 시골로 돌아가 농장일에 몰두하고, 브론스키에 의해 실의에 빠진 키티는 온천으로 요양을 가 건강을 회복하는 것으로 2부는 끝이난다. &nbsp;안나와 브론스키의 사랑은 분명 불륜이지만 적어도 그들의 시작은 ‘사랑’이었다. 아무 의심 없이 이러한 인식을 할 수 있는 건 분명 작가 톨스토이의 힘이다. 잔잔하고도 애잔하게, 때론 유머러스하면서도 강렬한 이 소설의 흐름은 너무나 매력적이다. 2권이 기대된다. <br>[“당신은 정말로 모르십니까?&nbsp;내게는 당신이 삶의 전부라는 걸.&nbsp;난 평온이란 걸 모릅니다.&nbsp;그래서 당신에게 줄 수도 없습니다.&nbsp;나의 모든 것,&nbsp;사랑....,&nbsp;그렇습니다.&nbsp;난 당신과 나를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습니다.&nbsp;내게는 당신과 내가 하나입니다.&nbsp;그리고 앞으로도 나에게든 당신에게든 평온 따윈 있을 것 같지 않군요.&nbsp;내 눈에는 정말과 불행,&nbsp;아니면 행복,&nbsp;그것도 커다란 행복의 가능성만 보일 뿐입니다.&nbsp;그것이 과연 불가능한 일일까요?.“&nbsp;-p.305]&nbsp;&nbsp;<br>독서 동아리에서 항상 고민되는 건 읽어야 할 책을 선정하는 것이다. 동아리 멤버들과 2026년에 읽어야 할 책을 정하다가 ‘안나 카레니나’를 읽기로 했다. 1년에 한 번은 굵직한 고전을 읽고자 한 것이었다. 나에게는 재독이지만 언젠가는 꼭 다시 읽고 싶었던 책이라 반가웠다. 마침 안나 카레니나 뮤지컬이 상연된다는 소식에 본격적으로 이 소설을 읽기 전에 뮤지컬을 먼저 관람하기로 하고 얼리버드로 예매했다. 안나 역에 세 배우가 더블캐스팅 되었지만 아무래도 옥주현 배우가 출연하는 회차를 관람하고 싶었다.&nbsp;예매할 때는 몰랐지만 나중에 안 사실은 총 38회 공연 중 출연 횟수가 옥주현은 23~25회, 나머지 두 배우는 8회와 7회에 불과한 사실이었다. 한 작품을 올리기 위해 몇 개월 동안 자신이 맡은 역할을 잘 소화하기 위해 똑같이 연습할 건데도 출연 횟수가 이렇게 차이가 나면 나머지 배우는 정말 허탈할 것 같았다. 옥주현의 욕심에 실망했지만 이왕 예매를 했으니 이번에만 보고 다음에는 옥주현은 패스하기로 했다. &nbsp;‘안나 카레니나’라는 방대한 내용의 작품을 뮤지컬에 다 담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안나, 브론스키, 카레닌 VS 키티, 레빈의 두 관계만을 집중해 보여주었다. 기차역을 중심으로 이미지를 계속 변화시켜 보여주는 무대 연출도 괜찮았고, 끊임없이 변화되는 앙상블의 출연도 좋았다. 계속 어두운 분위기로 이어지는 뮤지컬을 보면서 안나는 불행해지더라도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 수밖에 없다는 당위성을 느꼈다.           &nbsp;옥주현 배우의 노래와 연기는 전성기에 비해 많이 떨어졌다. 안나 카레니나에 걸맞는 카리스마도 보이지 않았다. 뮤지컬의 넘버는 거의 같은 분위기였다. 이 넘버를 살리기 위해서는 노래 실력이 좋아야한다. 옥배우의 기량이 기대에 미치지 못해 상당히 지루했다. 뮤지컬 말미에 패티 역의 한경미 소프라노가 나와 아리아를 부른다. 한경미 배우가 노래를 너무 잘 불러 옥주현 배우가 너무 묻혀버렸다. 많이 아쉬웠다. 그리고 세종문화회관은 뮤지컬을 상연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장소였다. 오케스트라 소리에 묻혀 배우들의 발음이 정확하게 들리지 않았다. 국립 뮤지컬 전용극장이 새롭게 건설되기를 간절히 희망한다.&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61/57/cover150/s06263510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615730</link></image></item><item><author>페넬로페</author><category>페이퍼</category><title>“그래서 열심히 살았니?”</title><link>https://blog.aladin.co.kr/714542162/17137882</link><pubDate>Sun, 08 Mar 2026 17:0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14542162/17137882</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62039240&TPaperId=1713788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566/52/coveroff/s632135953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23158&TPaperId=1713788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801/21/coveroff/8932023158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 <br><br><br><br><br><br><br><br><br><br><br><br><br>아무 의심 없이 이 소설의 제목인 ‘비행운‘을 ’비행기가 지나간 자리에 꼬리 모양으로 생성되는 구름‘이라는 뜻의 ’飛行雲‘으로 받아들였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볼 때, 또는 더 높아서 비행기는 보이지 않고 비행운만 보일 때 드는 감정은 언제나 한결같다. 아련함과 왠지 모를 슬픔, 막막함과 동경.…다 늙어버린 지금도 그 모습만 보면 어릴 때 느꼈던 것과 똑같다. 살풋한 희망도 섞인 그 눈부심은 결국 어지러움만 남긴 채 사라지지만 여운은 길었다.&nbsp;김애란 작가는 이 책 어디에도 제목에 대한 한자어를 남겨두지 않았다. ‘비행운’이란 단어는 &lt;하루의 축&gt;에서 인천공항 청소부인 기옥 씨가 이륙한 비행기가 남긴 비행운을 ‘안도의 긴 한숨 자국(p.176)’으로 표현하는 문장에만 한 번 나올 뿐이다. 나머지는 다 이미지와 상징으로 숨겨져 표현된다. &nbsp;작가는 모질게 작정한 듯 여기에 수록된 8개의 단편에 불행을 심어 놓았다. 소설이 아닌 르포를 읽고 있는 착각에 빠질 정도로 자세하고도 집요하게 어떤 이들의 쫓겨남과 비루함, 막막함을 드러낸다. 그 어디에도 희망은 보이지 않는다. 책을 읽으면서 계속 사람 사는 게 이래도 되는 건가 싶게 우울하고 마음이 무거웠다. &nbsp;그런 의미로 제목인 ‘비행운’은 불운이나 고달픈 현실을 뜻하는 ‘非幸運’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飛行雲’과 ‘非幸運’은 뜻의 차이는 있지만 서로 통한다. 누구나 갖고 있는 동경과 희망은 모두에게 성취될 수 없다. 세상은 불공평하고 지독하며, 거기에 ‘자본’이라는 말이 붙는 순간 불운한 사람들은 하늘로 올라간 비행기가 남긴 흔적만 볼 수 있도록 남겨졌다.  &nbsp;소설집 『안녕이라 그랬어』의 &lt;좋은 이웃&gt;과 &lt;빗방울처럼&gt;의 소재와 비슷한, 이 책의 &lt;벌레들&gt;과 &lt;물속 골리앗&gt;은 집과 관련된 것이다. 인간에게 먹는 것 다음으로 중요한 집이 부의 상징이자 계급을 나누는 기준이 된 것은 고대에서부터 있어온 일이라 새삼스럽지는 않다. 다만 월급 받아 아껴 성실히 저축해 주택을 구입할 수 있는 자연스러움이 사라졌다는 사실이 무서운 현실이 되어 버렸다. 아무리 노력해도 경계 밖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는 고단한 삶을 작가는 가감 없이 서술한다. &nbsp;나머지 단편 역시 다양한 소재의 내용으로 구성되었지만, 모두 살아가는 것이 녹록치 않음을 보여준다. 많이 바라지 않고 그저 의식주의 기본만 누리며 살아가기를 원하는 개인들이 각자의 사연으로 좌절하고 배반한다. 어쩔 수 없어서, 잘못된 선택으로, 그저 이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준다. 김애란은 그 잘못된 행위를, 변명으로 읽힐 수 있는 것들을, 쉽게 나쁜 것이라 단정하지 못하게 한다. 다시, 더 깊이 생각해 그들을 수긍하게 만든다. &lt;하루의 축&gt;에서 기옥 씨는 아들인 영웅이 범죄자가 되고 한 가족의 단란이 이렇게도 시시하게 망가지는 것이 어찌 이리 쉽냐고 반문한다. “엄마, 사식 좀.”이라는 영웅의 편지에 무너지지만, 그 사식을 위해 저녁 근무를 신청하는 기옥 씨를 이해하기 위해 소설가 김애란의 글은 꼭 필요하다.  &nbsp;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단편은 『물속 골리앗』이었다. 시각적 이미지와 상징, 내용의 흐름이 완벽히 들어맞았고 그 절절한 문장에 전율이 일었다. 끊임없이 내리는 비와 거기에 고립된 소년과 그의 어머니, 타워 크레인 위에서 농성하다 죽은 소년의 아버지, 끝내 죽어버린 어머니를 녹색 테이프로 칭칭 감던 모습, 모든 것이 물에 잠긴 곳에서 거친 물살에 그만 놓쳐 버린 어머니의 시체, 물속에서 골리앗처럼 서 있던 타워 크레인, 꼭대기에 올라가 발견한 사이다와 라면 한 봉지. 구조를 바라며 희망을 버리지 않는 소년.…그 모든 것이 너무 슬펐고 아름다웠다. 여기에 온갖 의미를 다 갖다 붙인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저 김애란 작가의 문장만으로 모든 것이 느껴진다. &nbsp;[주위는 조금씩 밝아졌다. 놀랍게도 비가 거의 멎은 듯했다. 이러다 다시 내릴지, 완전히 개일지 알 수 없었다. 이 마을 끝에 뭐가 있을지 모르는 것처럼. 앞으로 내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참으로 오랜만에 하늘에 뜬 노란 달을 보았다. 먹구름 사이로 천천히 고개를 내밀고 있는 반달이었다. 비록 흐릿하긴 했지만 그걸 보니 엄마, 나무뿌리에 안겨 떠내려간 엄마 생각이 났다. 녹색 테이프에 감긴 얼굴로 오랫동안 내 쪽을 바라보던 모습도. 어머니는 지금쯤 어디 계실까. 어디쯤 가셨을까. 부디 사람들이 발견할 수 있는 곳에서 편히 쉬고 계시면 좋을 텐데.…그러곤 파랗게 질린 입술을 덜덜 떨며, 조그맣게 중얼댔다. “누군가 올 거야.” 칼바람이 불자 골리앗크레인이 휘청휘청 흔들렸다.-p.126]<br>『비행운』을 읽으며 영화 &lt;만약에 우리&gt;를 봤다. 소설과 영화가 통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lt;너의 여름은 어떠니&gt;와 &lt;서른&gt;에서 만난 힘겹게 사는 청년들이 영화에 있었다. 정원(문가영)과 은호(구교환)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지만 가난하다. 가난한 사람이나 연인에게 들이닥치는 여러 악재가 이들에게도 비껴가지 않는다. 그런 여러 가지 일들이나 부족한 돈이 그들을 헤어지게 만든다. 하지만 그건 그저 변명일 뿐이다. 사실 그들이 헤어진 건 마음 때문이다. 특히 힘들어진 은호의 뒤틀림은 결국 정원을 떠나가게 한다.&nbsp;정원과 은호는 헤어진 후 각자 자신이 원했던 길로 잘 간다. 그렇게 잘 가면서 왜 같이 있을 땐 안 되었던 걸까? 먼 훗날 비행기에서 우연히 만난 정원과 은호는 만약 그때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다면 헤어지지 않았을지 생각한다. 돌이킬 수 없어 소용없지만, 과거에 대한 미련으로 우리 모두가 많이 하는 질문이다. 만약에 그때, 정원과 은호, 비행운에서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그러면 지금의 인생이 좀 더 나아졌을까? 힘들어도 마음만은 단단히 잡아 흔들리지 않은 너와 내가 되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br>그때 내 집이 되어줘서 정말 고마웠어 은호야.-정원&nbsp;<br>작년에 김애란 작가의 두 소설과 커피, ‘안녕이라 그랬어’표지의 북커버를 서재 친구에게 선물로 받았다. 이제야 보내주신 책을 다 읽었다. 비슷한 시기에 투병 중이셨던 아버지와 엄마를 여윈 우리는 서로를 위로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런데 그녀와 나의 애도가 너무 차이가 났다. 난 담담했지만 그녀는 장례 후 일 년이 지난 후에도 깊은 슬픔에 잠겨 있었다. 그 마음이 너무 애틋하고 따뜻해 난 엄마에게 미안했다. 마음이 점점 굳어지고 냉정해지는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비행운’을 읽으며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은 노력하지 않으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는 것도 다시 한 번 새기게 되었다. 그런 이유로 이 친구도 한국 소설을 좋아한다는 걸 안다. 친구가 아니었으면 아마 이 소설을 영원히 읽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좋은 책을 보내준 친구가 고맙다.&nbsp;&nbsp;<br> &nbsp; &nbsp; &nbsp; &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801/21/cover150/893202315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8012102</link></image></item><item><author>페넬로페</author><category>페이퍼</category><title>자유-능동과 수동의 여정, 그리고 휴머니즘</title><link>https://blog.aladin.co.kr/714542162/17115891</link><pubDate>Thu, 26 Feb 2026 18:5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14542162/17115891</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72030451&TPaperId=1711589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117/74/coveroff/k572030451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2036&TPaperId=1711589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50/17/coveroff/8937462036_2.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0068&TPaperId=1711589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6/90/coveroff/s982932230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  <br><br><br><br><br><br><br><br><br><br><br><br><br><br>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재해석한 퍼시벌 에버렛 작가의 소설 『제임스』를 읽기 위해 먼저 이 두 소설을 읽지 않을 수 없었다. 어릴 때, 동화로 읽은 『톰 소여의 모험』은 너무 재미있어 계속 반복해서 읽은 기억이 있다. TV에서 방영된 만화도 여러 번 봤다. 특히 톰 소여가 폴리 이모의 명령으로 높이가 3미터나 되는 30m 판자 담장을 회반죽으로 칠해야 할 때, 그의 기지로 다른 친구들이 신나게 담장을 칠하던 장면은 지금도 생생하다. 다시 읽은 ‘톰 소여의 모험’에서 이 부분은 책의 처음에 속하는데 그동안 내 기억은 딱 여기에서 멈추었던 것 같다.&nbsp;그 뒤의 내용은 이제껏 한 번도 읽지 않았던 것처럼 새로웠다. 개구쟁이 톰, 모험을 좋아하는 이 소년은 황당하고도 게걸스럽게 장난을 치고 있었다. 또래 친구들에 비해 머리 회전이 빠르고(조금 나쁜 쪽으로)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먼저 깨우친 톰은 꼬마 갱단의 리더가 될 수밖에 없었다. 꾀바르고 능청스럽기도 한, 밥 먹듯이 하는 속임수나 거짓이 장난이나 모험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기도 했지만, 톰은 소년이었고 성장하고 있었다. 마음에 사랑이 피어나고, 가족을 생각하며, 결정적일 때 위험을 무릅쓰고 용기를 낼 줄 알았다.           &nbsp;‘톰 소여의 모험’에서 허클베리 핀은 ‘동네에서 이름난 주정뱅이의 아들이자 부랑 소년’으로 서술된다. 동네 어머니들이 하나같이 미워하고 두려워하며,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고 제멋대로인 데다 상스럽고 질이 좋지 않은 아이로 소개된다. 심지어 담배도 피운다. 만약 이번에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읽지 않았다면 나는 계속 헉을 그렇게만 생각했을 거고 영원히 톰에 붙은 곁가지라고만 알고 있었을 것이다.  &nbsp;‘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읽으면 톰의 모험은 딱히 별 거 아닌 게 된다. 톰은 그가 사는 동네를 벗어나지 못했지만 헉은 여러 지역을 오가며 모험을 벌인다. 거기엔 흑인 노예 짐이 함께 있다. 헉은 아버지의 폭력과 더글라스 부인과 왓츤 부인의 양육, 학교, 사회의 구속과 도덕에서 벗어나기 위해 떠난다. 짐은 주인인 왓츤 부인이 그를 다른 사람에게 팔겠다는 말을 듣고 도망친다. 이유는 다르지만 두 사람의 목적은 같다. 둘 다 자유인이 되기 위해서다. &nbsp;자유를 찾으려는 그들의 여정은 험난하다. 백인이지만 어리다는 것과 도망자의 신분인 흑인 노예는 그 어느 곳에서도 의심과 탐욕의 대상이 된다. 특히 흑인 노예에 대한 그 당시의 가혹한 폭력은 지금 우리가 전혀 상상할 수도 없다. 소설 전반에 있는 거짓과 속임은 헉과 짐이 자신들 앞에 놓인 힘들고 어려운 길에서 살아남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나 역시 소설을 읽는 내내 그 부분이 힘들고 지루했다. 하지만 떠난 곳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었던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마지막에 황당하지만 톰이 등장했던 것도 그들의 힘만으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는 그 당시 사회의 폭력과 법이 있었기 때문이다. 악덕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가장 불리한 자가 살아남을 수 있는 선한 방법은 거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nbsp;백인인 헉은 짐이 도망자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묵인해주고 도와준다. 백인은 누군가 다른 백인이 도망자인 흑인 노예를 고발하지 않는다면 깔봐도 되는 시절이었다. 헉은 평등주의자도 아니고 거창한 인류애 같은 것도 가지고 있지 않다. 헉은 짐을 고발하지 않는 것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다. 이것은 자신을 거두고 교육시켜준 왓츤 아줌마에게 지독한 짓을 한다고도 생각한다. 자신의 행동이 비열하고 비참해 죽어버리고 싶은 심정마저 든다. 그럼에도 헉은 자유를 갈망하는 짐을, 자신을 도와줘 고맙다고 말하는 짐을 고발하지 못한다. 자신을 하나밖에 없는 친구이자 가장 좋은 친구로 생각하는 짐을 도와주고 함께 하기로 결심한다. &nbsp;요즘 아이들은 톰 소여와 허클베리 핀을 잘 모른다. ‘흔한 남매’에 열광하는 아이들은 톰과 헉에 별 매력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미국 현대 문학의 아버지이자 작가들의 작가로 불리는 마크 트웨인은 이 소설로 그 시대를 살렸다. 여기에 자신의 경험과 여러 실제 인물이 녹아 있어 우리가 그 시대로 들어가 이 글을 읽지 않으면 별 의미가 없다. 이 두개의 소설 내용에 많은 의미가 담겨있지만, 과연 시대를 넘어 지금까지 울림을 줄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nbsp;‘허클베리 핀의 모험’에서 헉은 짐이 비상한 머리를 가졌다고 말한다. 살다 살다 이런 검둥이는 난생 처음이라고 혀를 내두른다. 헉과 짐이 솔로몬 왕의 재판에 대해 얘기할 때, 짐은 솔로몬이 아이를 반쪽으로 나눠 두 여자에게 준다는 판결에 분노한다. 그것은 어진 것이 아니라고 한다. 반쪽짜리는 아무 의미가 없으며, 재판은 반쪽이 아닌 완전한 애에 대한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짐은 만약 자신에게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이웃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아이의 진짜 엄마를 찾아주겠다고 한다. 헉이 짐에게 요점을 놓치고 있다고 말하자 짐은 ‘요점 같은 소리 하지 말랑게 그러네! 내사 알고 있는 건 알고 있다고 생각헝게. 정말이지, 요점이라는 건 좀 더 멀리, 좀 더 깊은 데 있는 거제. 그건 솔로몬이 자라난 방식과 관련이 있당께. 솔로몬에게는 애새끼 하나둘쯤 없어도 그만, 있어도 그만이랑께’라고 말한다. &nbsp;솔로몬에게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이 어떤 사람에게는 목숨을 걸 만큼 중요할 수 있다. 요점은 좀 더 깊이 있는 것이고 사람은 자라난 방식과 관련이 있다는 말은 결국 헉과 짐에게 주어진 운명의 무게를 말한다. 두 사람 모두 운명을 거부하고 모험을 시작하지만 그 둘의 끝은 다르다. 짐은 자신의 의지가 아닌, 그의 소유주인 왓츤 부인의 유언으로 자유를 찾는다. 반면 헉은 교양 있는 세계로 돌아가길 거부하고 인디언이 사는 지역으로 떠난다. 장난꾸러기 톰이 신사의 세계를 선택했다면 헉은 톰과는 정반대의 길로 간다. 문명과 속박에 얽매이지 않은, 야생에서 영원한 자유인의 모습으로 살아가기를 원한다. 결국 자유를 찾은 헉과 짐의 여정은 헛되지 않았지만 능동과 수동의 차이는 엄청나다. 짐의 자유는 완전하지 않은 상태에서 출발했고, 지금도 여전히 그의 자유는 불안하다. <br>-‘허클베리 핀의 모험’에 수록된 삽화,전자책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서 다운로드 함 <br> <br><br><br><br>&nbsp;&nbsp;<br><br><br><br><br><br>2024 전미도서상ㆍ커커스 프라이즈, 2025년 퓰리처상ㆍ브리티시북어워드를 수상한 『제임스』는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재해석한 소설이다. ’허클베리 핀‘이 백인의 입장에서 서술되었다면 ’제임스‘는 철저히 흑인 노예 짐의 입장에서 서술된다. 제임스는 짐의 완전한 이름이다. 짐은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서 한 번도 제대로 이름이 불린 적이 없다. 그런 이유로 여기에는 마크 트웨인의 글보다 훨씬 더 많은 흑인 노예의 비참한 삶이 들어있다. 그들을 폭력적이고 잔인하게 대하는데 거침없는 백인들의 생각과 행동도 그대로 전달된다.&nbsp;소설 ’제임스‘는 ‘허클베리 핀의 모험’의 과정이 거의 그대로 진행된다. 이 두 소설이 헷갈릴 정도다. 그러나 그 두 소설에 등장하는 똑같은 사람인 흑인 노예 제임스는 ‘허클베리 핀의 모험’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제임스는 헉보다 훨씬 더 아는 것이 많다. 백인들이 흑인들을 구속하는 잘못된 법과 볼테르, 루소, 로크의 자유론과 관용론을 비교할 수도 있다. 읽고 쓸 수 있다는 것은 제임스에게 질문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이다. 불평등하고 억압적인 계급 사회의 모순을 조목조목 따질 수 있고 그것에 대한 합리적 분노를 느낄 수 있다. 그럼에도 제임스는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숨기고 흑인의 말을 사용해야 하며, 무조건 백인에게 순종해야 한다.    &nbsp;영화 ’노예 12년‘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장면은 악랄한 백인 주인이 일요일에 목사로 변신하는 것이었다. 주인은 흑인 노예들을 모아놓고 예배를 진행하며 천국에 대해 설교한다. 참고 견디면 끝내 천국의 문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믿음을 노예들에게 심어준다. 제임스는 그런 종교를 비판한다. 백인 주인은 언젠가 하느님이 줄 보상에 대해 말하지만, 그들이 받을 처벌은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종교는 그저 그들이 편리할 때만 신봉하며 사용하는 통제 수단‘일 뿐이라고 제임스는 말한다.    &nbsp;헉과 제임스는 같이 자유를 찾아 떠나지만 여기서는 오히려 제임스가 헉을 떠나지 않는다. 오로지 절체절명의 생존 자체가 목표인 제임스를 위해 헉은 여기서도 계속 거짓과 속임수를 사용한다. 가장 좋은 친구 사이인 그들의 여정은 여전히 험난하다. 백인과 유색 인종의 경계적 인물인 헉은 보다 더 성숙한 노예해방론자가 되어 있다.  &nbsp;이 책은 가독성이 좋다. 원작인 ’허클베리 핀의 모험‘의 재해석도 성공적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 약간의 억지스러움과 황당함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퍼시벌 에버렛 작가는 그런 모험적인 시도에서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독자에게 분명히 전달한다. 인간이 인간에게 가하는 폭력과 불평등은 잘못된 것이라는 아주 단순한 사실이 사실 단순하지 않다는 것이다. 거기엔 수만 가지의 법과 철학, 사상이 동원되어야 한다. 다만 떠나고 투쟁하며 쟁취하기 위한 기본이 읽고 쓰고 해석하는 능력이다. 그래서 제임스는 한 노예의 죽음으로 얻은 몽당연필과 훔친 책을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닌다.   &nbsp;‘허클베리 핀의 모험’의 작중인물들이 추구하는 자유와 평등 그리고 박애 정신은 다름 아닌 미국 민주주의가 지향하는 이상이다(p.650, 작품 해설 중에서)‘ 이러한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한 미국 정신이 지금은 어떤지 궁금하다. 여전히 유효한가?&nbsp;[믿음은 진실과 아무 관련도 없어. 좋을 대로 믿으렴.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믿으면, 백인 소년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 거야. 내가 진실을 말하고 있다고 믿어도, 어쨌든 백인 소년으로서 세상을 살아갈 수 있어. 어느 쪽이든 달라지는 건 없어.]&nbsp; &nbsp;<br> &nbsp; &nbsp;&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6/90/cover150/s98293223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69092</link></image></item><item><author>페넬로페</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희미하지만, 영원히 이어지는 오래된 빛 - [오래된 빛]</title><link>https://blog.aladin.co.kr/714542162/17096050</link><pubDate>Mon, 16 Feb 2026 17:2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14542162/1709605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22037470&TPaperId=1709605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5852/20/coveroff/k82203747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22037470&TPaperId=1709605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오래된 빛</a><br/>존 밴빌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02월<br/></td></tr></table><br/>지금 현재의 내가 과거로 되돌아간다. 굳어지고 완고해진, 온전하지 못한 기억 속에서 성기고 희미해진 빛을 따라 움직인다. 기억의 숲에서 나뭇잎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오래된 빛’은 나를 왜곡되거나 잘못된, 또는 혼란스러운 길로 안내한다. 설령 확실하게 다가오는 몇 안 되는 지나간 인생의 밝은 빛조차 완벽하게 재현될 수는 없을 것이다. 내 식으로 해석되고 비틀어진 그 기억들에 얼마만큼의 의미를 두고 무슨 단어로 그 느낌들을 생생하고도 자세히 표현할 수 있을까?&nbsp;작가 ‘존 밴빌‘은 제목 그대로 &lt;Ancient Light&gt;를 따라 한 남자의 50년 전과 10년 전의 과거, 현재를 오가며 집요하게 희미한 기억을 끄집어내어 준다. ’알렉산더 클리브‘의 인생 전체를 지배한 그의 15세 때의 몇 달에 대해-‘머나먼 과거의 이미지들이 머릿속에 우글거리고 대개는 그게 기억인지 내가 만들어낸 것인지 알 수 없지만(p.14)’-서술한다. 매 페이지마다 아름다운 문장이 가득했지만, 하이픈으로 연결된 부연설명이 가득한 삽입구가 읽기를 방해했다. 마치 영어 독해를 할 때, 주어 찾기의 어려움을 겪는 것 같았다. 한 사람의 기억의 파편 조각들을 짜 맞춰 연결시키는 일이 쉽지 않음을 작가는 그런 복잡한 문장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거의 끝부분까지 힘들게 따라가다 마지막에 가서야 소설 전반에 대한 이해를 했고, 결국 나에게 감동과 여운, 무수한 생각을 하게 한 작가의 필력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nbsp;50년 전, 15세의 소년 앨릭스는 자전거를 타고 언덕을 내려오다 봄바람에 치마가 뒤집어져 팬티가 노출된 어떤 여인을 우연히 보게 된다. 처음엔 그를 향해 ‘하늘에서 곧장 덮쳐 내려오는 듯’한 여신의 모습으로 보였지만, 사실은 그의 엄마 같은 중년 여성이었다. 그것이 앨릭스와 가장 친한 친구인 빌리 그레이의 엄마인 미시즈 그레이(실리아 그레이)와의 첫 만남이었다. 그 뒤 빌리의 집에서, 거울 속에 자신의 나신을 비추고 있는 미시즈 그레이의 모습을 또 다른 거울을 통해 엿 본 그는 그녀를 향한 수줍지만 은밀한 욕망에 사로잡힌다. 욕망하지만, 사실 그 대상이 늘 배경에 불과한, 무슨 일을 하느라 바쁜 엄마의 모습이기도 한 미시즈 그레이가 아닐 수도 있었다. 그저 우연히 마주친 미시즈 그레이의 모습이 한 사춘기 소년의 성을 자극했고 그는 어떤 다른 여자와도 사랑에 빠질 수 있었을 것이다.&nbsp;며칠이 지나고 테니스 클럽에서 그들은 우연히 다시 만난다. 미시즈 그레이는 소년을 차에 태우고 으슥한 곳으로 데리고 가 이렇게 질문한다. “나한테 키스하고 싶어?(p.61)” 이 말을 계기로 그들의 사랑은 시작된다. 여기에서 궁금해진다. 왜 미시즈 그레이는 그녀보다 스무 살이나 어린, 아들의 친구를 선택하게 되었을까? 소설의 끝에 그 당시 미시즈 그레이의 사정이 조금 밝혀지지만, 책을 읽는 내내 그녀의 심리를 따라가기 쉽지 않았다. 이것은 단순히 그들의 관계에 대한 비판이나 도덕적 심판이 아니었다. 계속 그들을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드는 의문점이었다. 시한부 인생을 사는 자의 마지막 불꽃이었는지, 한 번의 일탈로 거침없이 시작된 육욕의 향연이었는지, 그 일탈이 소년에게 가져다준 변화에 대한 미안함의 책임이었는지, 답답한 시골구석에 갇혀 사는 중년 여자의 몸부림이었는지.....결국 이 모든 것이 노년이 된 알렉산더의 회상이기에 그 역시 추측과 자신의 생각으로만 머물 수밖에 없다. &nbsp;이 소설은 알렉산더와 미시즈 그레이의 사랑뿐만 아니라 10년 전 임신한 채 자살한 알렉산더의 딸 캐스로 인해 힘든 삶을 살고 있는 자신과 아내 리디아의 현재의 모습. 또한 ’악셀 판더(문인, 비평가, 교사)‘라는 사람을 기반으로 한 영화에 출연한 알렉산더와 그의 상대배우인 돈 데번포트와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조사원인 빌리 스트라이커의 인생에 대해서도 나이 든 알렉산더는 관심을 갖는다. &nbsp;세상에는 엄청나게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그 속에서 우리는 ‘그 날 하루를 감당하며’ 살아간다. 각자 견디며 살아내야 한다. 늙어버린 알렉산더 역시 아픔과 회한을 가진 채 하루를 감당하지만 지나온 세월이 준 쓰라림을 그는 사람에 대한 이해와 순명으로 승화시킨다. 딸아이를 잃은 슬픔으로 밤새 광증에 시달린 아내 리디아를 진정시키고 힘들어 둘이 침대에 누웠을 때, 커튼 사이의 바늘구멍만한 틈으로 빛이 들어와 마치 카메라 옵스쿠라의 형태로 보이는 바깥세상의 이미지는 아름다웠다. 새벽빛에 비친 선명하게 뒤집힌 세상의 모습에서 이 세상에 완벽하게 슬픈 것도, 온전히 기쁜 것도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br>소설 ’오래된 빛‘에는 몇 개의 단편 소설로 출간해도 좋을 풍성한 내용들이 서로 교차되며 서술된다. 매 페이지마다 단편 소설 하나가 들어있다고 느낄 정도로 생각할 것이 많았다. 단어 하나마다에 들어있는 비유도 좋았다. 구절구절 멈추어, 작가 존 밴빌, 아니 소년 앨릭스 그리고 노년이 된 알렉산더와 얘기 나누면 좋을 것 같았다. 나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었다고 공감하고 싶었다. 그랬기에 읽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고 이 많은 아름다운 문장의 감상을 표현하기 어려워 책을 들고 카페에 간 날이 많았다.&nbsp;산책길에서 찍은 많은 사진들을 다시 보면, 햇빛에 완전히 노출된 사진보다 빛이 살짝 들어간 사진이 훨씬 더 아름답고 신비롭다. 세상 모든 빛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을 볼 수 없듯, 노년에서 바라 본 과거는 ‘전체적인 난파 속에서 건져 낸 무작위적인 표류물(p.14)’일 뿐이다. 그것들로 고해성사를 하든, 미숙함에 대한 어리석음을 인정하든, 지나온 인생의 여정은 그 어떤 것이라도 슬프고 아름답다. 여전히 모호하고 불안하기도 하지만 ‘삶의 전진적인 난파’에 부표가 되어주기엔 충분할 것이다.&nbsp;[어떤 학자들은 여러 우주가 있고 그것이 모두 함께 존재하며 모두 동시에 진행되는데, 그 안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이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으로 붐비는 키티의 낙원의 평원과 마찬가지로, 이 무한한 층이 있고, 무한히 가지를 뻗는 현실 안 어딘가에서도 캐스는 죽지 않았고, 그애의 아이가 태어났고, 스미드리가일로프는 미국으로 가지 않았다. 어딘가에서는 또 미시즈 그레이가 살아남았고, 아마도 지금까지 살아 있고, 여전히 젊고 여전히 나를 기억하고 있다. 내가 그녀를 기억하듯이. 어떤 영원한 영역을 믿어야 할까. 어느 쪽을 택해야 할까? 어느 쪽도 아니다. 나의 모든 죽은 자는 어차피 나에게 다 살아 있고 나에게 과거란 영원히 빛나는 현재이기 때문에. 그들은 나에게 다 살아 있지만 사라졌다. 이렇게 말들로 이루어진 연약한 내세에만 있을 뿐. -p.351]&nbsp;&nbsp;<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5852/20/cover150/k82203747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58522020</link></image></item><item><author>페넬로페</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무한한 멜랑콜리 속에서’  - [결혼·여름 - 태양, 입맞춤, 압생트 향… 청년 카뮈의 찬란한 감성]</title><link>https://blog.aladin.co.kr/714542162/17065615</link><pubDate>Mon, 02 Feb 2026 09:2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14542162/1706561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72834096&TPaperId=1706561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2086/69/coveroff/k37283409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72834096&TPaperId=1706561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결혼·여름 - 태양, 입맞춤, 압생트 향… 청년 카뮈의 찬란한 감성</a><br/>알베르 카뮈 지음, 장소미 옮김 / 녹색광선 / 2023년 08월<br/></td></tr></table><br/>작가 ‘알베르 카뮈’에 자연적으로 따라오는 이름이 있다. 번역가 김화영 선생이다. 그가 카뮈의 많은 작품을 번역했기에 『결혼ㆍ여름』도 김화영 선생의 번역으로 읽고 싶었다. 그러나 녹색광선 출판사의 표지에 마음이 바뀌었다. 바람에 넘실대는, 흰 포말이 가득한 파도가 일렁이는 푸른 바닷가에서 한 쌍의 남녀가 행복한 표정으로 서 있는 모습을 본 순간, 이 책을 선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책의 제목인 ‘결혼’과 완벽히 어울렸기 때문이다.&nbsp;‘결혼ㆍ여름’이라는 제목에서 나는 이 책의 내용이 카뮈의 연예사와 결혼에 대한 것 인줄 알았다. 하지만 여기에 카뮈 자신은 물론, 그 어떤 남녀의 사랑에 대한 것도 들어있지 않다. 제목과 책표지에서 내가 오해하고 착각한 것이었다. 물론 이건 나의 책임만은 아니다. 출판사의 책표지 역시 한 몫 한 셈이다. 『결혼ㆍ여름』은 1936년에서 1937년 사이에 쓴 에세이를 모은 ’결혼‘과, 1939년에서 1953년 사이에 쓴 에세이를 모은 ’여름‘을 한데 묶은 책이다.(p.9)          &nbsp;여기에서 카뮈가 선택한 단어인 ’결혼‘은 작가의 알제리에 대한 사랑의 다른 표현일 것이다. 카뮈가 태어나서 자란 알제리에 대한 경의는 사랑하는 연인에게 느끼는 무한한 애정과 같다. 알제리의 강렬한 태양과 바다, 그곳의 사람들은 카뮈에게 ’지금 이 순간‘의 환희와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동시에 다음 생을 삭제시켜 버린다. 현실과 자연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그들 인생의 목표이자 가치인 것이다.  &nbsp;나에게 알제리는 카뮈의 소설 ’이방인‘과 ’페스트‘를 통해 먼저 보고 들은 나라다. 이 책에서 카뮈가 여행하며 서술한 알제리의 도시인 티파사, 오랑, 제밀라, 알제는 여전히 나에게 이국적이다. (나의 남은 생 동안 이곳에 가보기는 할 수 있을까? 어려울 것이다.) 너무 이국적이라 상상만으로는 카뮈의 표현을 모두 이해하기 어렵지만, 그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 길목에서 만나게 될 아름다움, 슬픔, 행복, 죽음이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지금 여기에서 내가 가진 삶의 열정과 감정을 모두 소진할 필요를 말해준다. 애써 남기고 맹세하며 인내하여 신의 약속을 받아낼 이유도 없다고 한다. 카뮈가 서술한 ’결혼‘에서 그의 소설 ’이방인‘의 의미가 뚜렷하게 보인다.      &nbsp;'봄에 티파사엔 신들이 머문다(p.19)’로 시작하는 티파사에 대한 자연찬미는 살아가는 동안 명심해야 할 기본 조건을 가르쳐준다. 편견에 맞서 지금 있는 그대로의 삶과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기쁨이고 생활의 기술인 것이다. 내가 보는 것이 바로 믿는 것이고, 거기에 자유가 있다. &nbsp;침묵과 황폐함이 지배하는, 사멸한 도시인 제밀라에서는 그 어느 것도 기대하지 않게 된다. 내일도, 다른 날도 오늘과 같을 것인 우리의 현존을 인식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포기’가 아니라 ‘거부’라고 카뮈는 말한다. 세상의 모든 ‘훗날’을 거부하고 내 앞에 놓인 현재의 풍요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야말로 내 현존의 불안과 무력함을 없애는 것이다. 거기에 ‘나머지는 내 소관이 아니라는’ 여유만 있다면 그럭저럭 우리는 이 세계에 머물 수 있다. &nbsp;카뮈의 알제에 대한 사랑에는 그곳에서 살아 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특별한 감정과 위트가 있다. 알제는 자연의 혜택이 넘쳐난다. 가르침, 약속, 암시도 없이 그저 아낌없이 내주는 곳이라 그곳에서 맘껏 누리기만 하면 된다. 아름다움과 가난이 공존한 알제에서 사람들은 열정적으로 젊음을 소진하고 곧바로 내리막길로 접어든다. ‘수영을 때리고’, 여인들에게 다가가 풍요를 만끽할 수 있는 그 짧은 찰나를 그들은 즐긴다. 나머지 세월을 뒷골목의 카페에서 수다로 보낼지언정. 알제의 시민은 청춘을 만끽하고 서른 살이 되면 다 쓰고 남아있는 것이 얼마 되지 않은 것으로 나머지 삶을 살아간다. 부모가 되고 자식을 키우며 인생의 끝을 기다린다. 서울 시민들이 절대 할 수 없는 모험이다. 그렇게 하지 않는 우리의 나머지 생은 안정되고 풍요로운가? 걱정은 없으며 행복한가? 자부심으로 똘똘 뭉쳐있는 알제인처럼 우리에게도 자부심이 있는가?          &nbsp;[한 존재와 삶 사이에 단순한 일치가 행복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을 행복이라 부른단 말인가? 또한 장수하고 싶은 욕망과 죽을 운명에 대한 이중의 자각이 아니라면 대체 어떤 조화가 더 온당하게 인간과 삶을 이어줄 수 있단 말인가? 여기서 우리는 적어도 아무것에도 기대지 말아야 한다는 것과 오직 현재만을 우리에게 ’덤으로‘ 주어진 유일한 진실로서 간주할 수 있다는 것을 배운다......내가 나의 척도와 만족을 찾기 위해 두 눈을 부릅뜨도록 내버려 두란 말이다! 아니 그럴 것도 없이 눈에 보인다. 피에솔레, 제밀라, 그리고 햇빛을 받고 있는 항구들이. -p.71~72]&nbsp;&nbsp;1939년 이후에 쓴 에세이를 모은 ‘여름’은 지중해에 관련된 것들이 많다. 소설 ’페스트‘의 도시인 오랑, 레 콩쉴 계곡의 아몬드 나무, 유럽의 여러 도시, 남아메리카, 이탈리아, 그리스, 토스카나의 화가, 셰익스피어, 호메로스, 아이스킬로스, 프로메테우스, 헬레네, 신화, 전쟁을 넘나들며 카뮈는 순례자가 된다. &nbsp;알베르 카뮈는 ‘부조리는 인간의 부름과 세계의 불합리한 침묵이 대면할 때 탄생한다’고 했다. ‘수수께끼’에서 그는 작가의 부조리에 대해 서술했다. 책을 많이 읽지 않은 대중은 그저 신문의 기삿거리 하나로 작가를 알게 된다. 대중은 그의 작품을 읽지 않고도 신문기자가 만들어낸 작가의 이미지로 작가의 이름을 알게 되고, 작가는 명성을 얻게 된다. 작가가 여러 작품을 쓸 필요도 없다. 보통 작가는 성실하게 글을 쓰고, 작품을 위해 술도 마시지 않지만 대중은 작가가 해롱거리고 평범한 삶을 살지 않을 거라 믿는다. &nbsp;또한 작가가 책에 쓴 내용이 작가 자신의 얘기가 분명 아닌데도 대중은 그것이 작가 본인의 얘기라고 생각한다. 카뮈는 그것이 낭만주의가 물러준 유치한 유산 중 하나라고 말한다. ‘한 인간의 작품들은 대체로 그가 느끼는 향수나 유혹의 역사를 되짚은 것이지, 실제 자신의 이야기인 경우는 거의 없다....어떤 작가도 감히 자신을 곧이곧대로 묘사하지는 못한다(p.156)’고 말하고 있다.&nbsp;김화영 선생은 앙드레 지드의 ‘지상의 양식’, 장 그르니에의 ‘섬’과 더불어 카뮈의 ‘결혼ㆍ여름’을 20세기 프랑스 3대 시적 산문이라고 했다. 확실히 카뮈가 쓴 이 에세이는 아름답고도 철학적이며 깊은 의미가 담겨있다. 녹색광선 장소미 선생의 번역은 현대적이고 깔끔하지만 카뮈 문장의 아름다움이 살짝 덜 묻어나오는 것 같아 아쉬웠다. 김화영 선생의 번역에 비해 건조한 느낌이 들었다.  &nbsp;카뮈는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알제리에 대해 무한한 사랑을 표현하지만, 프랑스의 알제리에 대한 식민지배에 대한 언급은 없다. 알제리 독립전쟁이 일어났을 때 카뮈의 어머니는 알제리에 계속 남아있는 상태였다. 그는 알제리계 프랑스인의 정체성을 택하여 프랑스 정부를 옹호했다. 카뮈는 알제리 자치권을 인정하거나 연방정부를 구성하면 알제리계 프랑스인과 아랍인들 간의 공존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었으며, 알제리의 완전 독립에는 부정적이었다. 전쟁기간 동안 양측 모두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은 정전협정을 위해 헌신했으며 체포된 알제리인들을 구하기 위해 비밀리에 활동하기도 했다.(작가연보 중,&nbsp;1954년) 나는 카뮈의 인간 실존과 부조리 사상을 좋아하지만 그의 알제리의 독립에 대한&nbsp;생각에는 항상 실망한다.<br>젊은 시절의 카뮈는 배우 알랭 들롱을 닮았다.<br>[우리가 남에게 어떻게 비치든 어떤 온당치 않은 자리를 차지하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우리가 누구이고 마땅히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문제만으로도 삶을 채우고 노력을 쏟기에 충분하다.....또한 죽기 전에 완수해야 할 우리의 책무는 모든 단어들을 동원하여 그것에 이름을 붙이려 노력하는 것임을 배웠다. 예술가들은 저마다 자신의 진실을 찾고 있을 것이다. 위대한 예술가라면 작품마다 진실에 가까워지거나, 아니면 적어도 언젠가는 모두가 찾아와 불타오를, 숨어있는 태양의 중심에서 좀 더 가까이 맴돌 것이다. -p. 158~159]<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2086/69/cover150/k37283409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20866992</link></image></item><item><author>페넬로페</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어쨌든 인공지능이 대세다   - [먼저 온 미래 - AI 이후의 세계를 경험한 사람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14542162/17052726</link><pubDate>Wed, 28 Jan 2026 17:1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14542162/1705272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2626608&TPaperId=1705272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659/88/coveroff/896262660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2626608&TPaperId=1705272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먼저 온 미래 - AI 이후의 세계를 경험한 사람들</a><br/>장강명 지음 / 동아시아 / 2025년 06월<br/></td></tr></table><br/>언젠가 네이버에 ‘일론 머스크’가 한 말이 올라와 읽은 적이 있다. 머스크의 말이 약간 생뚱맞았는데, 거기에 달린 댓글 하나가 강렬해 잊혀지지 않는다. ‘저 미친X이 하는 말이 나중엔 다 맞아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머스크가 한 말처럼 설마 했던 일이, 인간의 상상이라고만 여겨졌던 것들이 지금 우리 눈앞에 버젓이 실현되고 있다. 단숨에 모든 것이 급변하고 있다.&nbsp;바둑의 원리에 대해 거의 모르지만, 이세돌 9단이 알파고에게 완패(물론 5국 중 이 9단이 1승은 챙겼지만)했을 때 나 또한 충격이 컸다. 바둑은 결코 단순한 게임이 아니다. 엄청나게 다양한 기술과 바둑을 두는 사람의 창의력이 어우러진 고난도의 게임이다. 승부를 예측하기도 힘들다. 그런 진입 장벽이 높은 바둑의 세계를 알파고가 너무 쉽게 정복해버렸다.    &nbsp;알파고의 승리는 다시 말해 인공지능의 승리였다. 알파고는 바둑인 뿐만 아니라 다른 업계의 사람들에게도 충격을 주었다. 알파고는 모든 사람에게 ‘앞으로 어떤 세상이 올 것이며, 나는 어떻게 살아야하는가?’에 대해 고민하게 했다. 장강명 작가의 고민도 다르지 않았다. 인공지능이 소설을 쓰고, 그것이 좋고 감동을 준다면  많은 사람이 읽을 것이다. 소설을, 사람이 아닌 AI가 쓴다면 그 스펙트럼이 엄청나게 넓혀질 것은 확실하다. 하물며 거기에 신박함과 재미가 더해진다면 매번 소재가 거기서 거기인 한국 소설을 누가 읽겠는가?&nbsp;장강명 작가뿐 아니라 여러 다른 작가도 ‘인공지능의 영향과 전망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는다. 이 책에 몇 개의 대답이 소개되어 있는데, 그들은 별로 대수롭지 않게, 담대하게 받아들인다. 그런데 인공지능이 먹고 사는 문제에까지 영향을 준다면 그들의 대답이 그렇게 여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아직까지는 인공지능이 인간의 편리함을 도와주는 도구이지만, 자본주의 원리에 의해 빅테크 기업이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밀어붙인다면 결국 인간이 설 자리는 없을 것이다.&nbsp;이 책은 장강명 작가가 2023년 12월부터 2024년 1월까지 전 현직 프로기사 30명과 바둑 전문가 6명에 대한 인터뷰를 바탕으로 해 서술된 책이다. 알파고와의 대결으로 바둑계에 ‘먼저 온 미래’에 대해 바둑 기사 각자의 생각과 앞으로의 대처방안에 대한 질문과 대답이 들어있다. 이들의 대답이 다른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말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책의 3분의 2정도 분량의, 지루하기까지 한 그들의 대답은 결국 AI가 대세이고 바둑은 인공지능 없이는 성립될 수 없는 영역이 되었다는 것이다.           <br>프로 기사들은 이제 거의 바둑 AI 프로그램을 내려 받아 훈련한다. 인공지능을 거부하고 기존의 방식을 고수하면 전혀 승률을 낼 수 없다. 이런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바둑기사들은 은퇴를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되었다. 인공지능을 이용한 바둑이 예전의 낭만을 잃었을지는 몰라도 나름 장점도 많아 기사들은 별 불만이 없다고 한다. 인공지능이 훨씬 더 창의적이고 독창적이라는 것을 대다수가 인정하는 분위기다.     &nbsp;인공지능이 이렇게 바둑 세계의 판도를 바꾸었다면 문학의 영역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서 장강명의 질문이 계속된다. 사실 그 질문은 끝이 없을 정도로 많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이 계속되지만 이에 대한 답이 확실치 않은 것은 이미 대세가 된 인공지능에 대한 대처방법이 확실치 않기 때문이다. 도덕적이며 인간적인 것을 들이밀기는 늦었다. &nbsp;작가 자신도 답답하고 잘 모르기에 고작 가져온 것이 소설 ‘1984’와 ‘멋진 신세계’다. ‘멋진 신세계’를 거부하고 ’1984‘를 경계할지라도 우리에게 달라질 것이 있을까? 작가 말대로 신자유주의의 원리로 빅테크 기업이 움직이고 그것을 권력이 받아들인다면 우리가 ‘멋진 신세계’를 거부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오픈AI의 이미지 생성 기능을 이용해 지브리의 애니메이션의 인물로 자신이나 가족을 바꾸는 것이 인기를 끈 것도 인간은 현재의 자신의 모습이나 상태에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nbsp;이제는 막을 수 없을 정도로 대세가 된 인공지능이지만, 장강명 작가는 이 시점에서 멈추고 생각하고, 모두에게 더 좋은 방향으로의 진행을 위해 고민하자고 한다. 정말 작가의 말을 이해하고 공감하지만, 작가가 가져온 여러 가지에 역부족을 느낀다. 문학도로서의 한계일 것이다. 하지만 작가의 말대로 여기서 한 번 멈춰서 ‘우리가 어떤 세상을 맞이하고, 어떻게 대처할지’에 대한 생각과 고민은 분명히 필요하다. 이 책을 통해 그것이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숙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nbsp;이 책의 시작과 목적이 바둑 기사와의 인터뷰와 분석이었지만 너무 길게 서술해 지루했다. 뒷부분 역시 관념적이고 현실적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우리 누구나 느끼고 있는 위기와 거기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공감했다. 정말이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 걱정된다. &nbsp;장강명 작가의 아내의 쾌유를 빈다. AI이든 뭐든 과학의 발전이 인간의 밥벌이를 빼앗지 말고 인간의 병만 척척 고쳐주었으면 좋겠다. 암과 치매를, 지금 당장.        &nbsp;[우리에게는 시간이 별로 없다. 인공지능처럼 쓸모 있고 강력한 기술은 마치 야수와 같다. 일단 거리에 뛰쳐나오면 붙잡아 우리에 가두는 것이 매우 어렵다. 강하든 약하든, 터미네이터처럼 인간에 적대감을 품고 있든, 아니면 월-E처럼 안전하고 유용한 도구처럼 보이든 간에 말이다. 사실상 그 야수를 통제할 수 있는 것은 그게 아직 거리에 나오기 전뿐이라고 봐야 한다. -p.107]<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6659/88/cover150/896262660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6598823</link></image></item><item><author>페넬로페</author><category>페이퍼</category><title>보이체크가 홈 파티에 초대받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14542162/17040611</link><pubDate>Fri, 23 Jan 2026 16:4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14542162/17040611</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912475&TPaperId=1704061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3399/62/coveroff/8932912475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1221831&TPaperId=1704061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212/95/coveroff/8991221831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62039240&TPaperId=1704061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566/52/coveroff/s632135953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3091&TPaperId=1704061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373/41/coveroff/8937463091_2.jpg" width="75" border="0"></a>&nbsp;<br/><br/>  <br><br><br><br><br><br><br><br><br><br><br><br><br>&lt;보이체크&gt;&lt;홈파티&gt;&nbsp;게오르크 뷔히너의 희곡인 『보이체크』를 알게 된 것은 김애란의 단편소설 &lt;홈 파티&gt;에서였다. 작가가 자신의 글에 다른 작가의 작품을 인용하는 건 그 작품에 들어있는 어떤 의미를 가져오고 싶어서일 것이다. &lt;보이체크&gt;의 본문에는 배경에 대한 설명이 거의 없어 내용을 이해하기 상당히 어려웠다. 세 번을 반복해서 읽었지만 확실한 가닥이 잡히지 않았다.  &nbsp;1836년경에 쓰인 &lt;보이체크&gt;는 미완성 희곡이다. 오스트리아 작가이자 출판업자인 카를 에밀 프란초스가 다시 정리해 1879년 뷔히너 전집에 넣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이 희곡의 주인공인 보이체크는 실존 인물이다. ‘요한 크리스티안 보이체크’가 1821년 어떤 과부를 살해하고, 1824년 라이프치히 시청 앞 광장에서 공개 처형되었다. 보이체크는 어린 시절부터 힘든 삶을 살아갔고 용병으로 군대를 전전한다. 군 생활을 마감하고 1818년 라이프치히로 돌아와 과부 우스트와 연인관계가 되지만, 그녀가 다른 남자들을 만나자 보이체크는 칼로 찔러 죽인다. 그동안 보이체크는 실직해 일이 없는 상태에서 구걸과 노숙을 하며 근근이 살아가는 상태였다. &nbsp;[뷔히너는 이 사건에다 여러 다른 소재를 버무려 한 인간의 개인적 비극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했다. 여기서 비극은 목적론적인 운명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한 인간의 존재 목적이 다른 어떤 존재에 있다면 개인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 소외될 수밖에 없다. 뷔히너는 그런 목적론에 반기를 든다. 개인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오히려 그 개인을 둘러싼 사회적ㆍ역사적 요인이라는 것이다. 이런 식의 사회적ㆍ역사적 결정론과 자기 소외는 뷔히너 문학의 주요 특징이다.&nbsp;사회사적으로 보면 보이체크는 가장 비천한 계층 출신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독일 최초의 비극이다....이 작품에서 그는 주체적 인간이 아닌 타인의 도구이자 사회적 상황으로 파탄 난 개체로 그려진다.          -p.373~374, 뷔히너 전집, 열린책들, 역자해설 중에서]&nbsp;&nbsp;이렇게 보이체크에 대한 배경을 알고 나니 작품에 대한 이해가 확실해졌다. 왜 보이체크에게 환청이 들리고 헛것이 보일 정도로 내내 불안해하며, 정신없이 쫓기듯 뛰어다니며 일을 해야만 했는지 알 수 있었다. 보이체크는 이발사로 대위의 시중을 들고, 완두콩만 먹으며 의사의 실험 대상이 된다. 아내 마리와 아기를 위해 쉴 새 없이 돈을 벌어야하지만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다. 마리는 남자들의 유혹 대상이 되고 결국 군악대장에게 넘어가고 만다. 보이체크는 본래 가지고 있던 불안과 세상에 대한 분노, 사랑에 대한 질투로 아내 마리를 살해한다. &nbsp;김애란 작가는 『홈 파티』에서 배우인 이연의 입을 통해 “왜 보이체크는 자신의 진짜 적인 대위나 군악대장, 하다못해 의사도 아닌 마리를 죽였는지 모르겠다”고 질문한다.(p.31)" 이연의 말처럼 보이체크는 자신에게 ‘착하지만 덕이 없다’고 말하는 대위에게도, 자신을 짐승처럼 대하는 의사에게도, 아내에게 추근대는 군악대장에게도 아무 반발을 하지 못한다.    &nbsp;전염병의 영향으로 모든 바깥활동이 제약을 받을 때, 이연은 대학 동기인 성민의 초대로 오대표의 홈 파티에 가게 된다. 모 대학의 반년짜리 최고경영자 과정에서 만난, 마음 맞는 몇 명이 집에서 만나는데 특별손님으로 끼이게 된 것이다. 계산이 정확한, 상류사회에 속한 그들은 처음에는 이연에게 관심을 가진다. 그러다 결국 돈에 대한 얘기에 집중한다. 언제나 그렇듯 세상 돌아가는 원리를 그들 안의 생각으로만 정리한다. 그들에게 보이체크는 고유명사에 불과한, 아는 체하기 알맞은, 한때의 추억일 뿐이다. 보이체크와 같은 부류의 타인의 삶을 깊게 들여다보는 데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nbsp;부담 없이 가볍게 간 이연은 평소 술을 좋아하면서도 실수하지 않기 위해 물만 마신다. 자신과 딴 세계에 사는 사람들을 그저 흥미롭게 지켜본다. 그러다 점점 그들의 생각과 말에 불편해진다. 이연은 자신도 모르게 와인을 마시며 그들의 말에 반박하고 급기야 먼저 집에 가겠다고 일어나면서 오대표의 80년 된 영국산 빈티지 커피 잔을 와장창 깨뜨리고 만다. &nbsp;이연은 흔들렸지만, 그들은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즐기고 있다. 이연이 보이체크에게 품었던 의문을 이연 스스로 답해주고 있다. 보이체크의 분노가 위가 아닌 아래로 향했듯이 이연 역시 자신이 흔들리고 실수하고 만다. 왜 항상 그들은 성처럼 굳건하고 완고한데 ‘그 나머지’ 사람은 실수하고 자신을 이기지 못하고 잘못된 선택을 하는 건지....물론 이연과 보이체크를 그대로 비교할 순 없지만, 어쨌든 불안과 허무, 소외를 느끼는 쪽은 항상 ‘그 나머지’ 사람 쪽이다. ‘그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안 되는 게 있는’ 이연과 보이체크는 각자의 방식으로 쓸쓸하고도 허무하게 홈 파티와 무대에서 내려온다.                 &nbsp;[그렇지만, 아니 그렇다 해도 이연은 이 연극을 이대로 마치지 않을 생각이었다. 이연은 무대에서 중요한 대사를 치기 전 순간처럼 숨을 깊이 들이쉬며 거실 창문 너머 하늘을 봤다. 미세먼지 탓인지 달이 비현실적으로 붉었다. 이연은 이 밤이, 그리고 또 이 계절이 낯선 듯 익숙해 마치 보이체크가 마리를 죽이기 전 한 말처럼 ‘몸이 차가우면 더 이상 얼어붙지 않으므로’ 많은 이들이 다 같이 추워지기로 결심한 어떤 시절 혹은 시대처럼 느껴졌다.-p.42, ‘홈 파티’ 중에서]&nbsp;&nbsp;&lt;당통의 죽음&gt;&nbsp;’혁명‘이란 단어처럼 이율배반적인 것이 있을까! 고통의 과부하에 짓눌리다 필연적으로 뭔가를 전복시키지만, 분명 혁명의 목적은 민중의 해피엔딩이다. 그 과정에서 폭력과 죽음은 어쩔 수없는 요소이기도 하지만 문제는 그것이 끝나지 않고 끊임없이 반복된다는 사실이다. &nbsp;뷔히너의 희곡 『당통의 죽음』은 프랑스 대혁명에 대해 어느 정도 알아야만 잘 이해할 수 있지만, 알다시피 프랑스 혁명은 과정이 워낙 복잡하다. ‘뷔히너의 &lt;당통의 죽음&gt;은 에베르파가 처형된 후 당통마저 사형당할 때까지의 긴박한 상황을 배경으로 한다.(p.239, 작품해설 중에서)’ 여기에는 국민공회 대의원과 공안위원회 위원 등 여러 실제 인물이 등장한다. &nbsp;실권을 잡은 로베스피에르는 당통파에 대한 숙청을 계획한다. 당통은 맞서든지, 도망을 가든지 해야 하지만, 이미 혁명에 대해 전의를 상실하고 피로감에 젖은 당통은 죽음을 받아들인다. 자신이 열렬히 원하고 실행시킨 혁명의 결과가 그 전과 별로 달라진 것이 없음에 대해 당통은 허무함을 느낀다. 당통이 죽고 얼마 뒤 단두대에 올라 갈 로베스피에르는 그런 사실도 모르고 강경한 입장을 취하며 정적을 제거하고 혁명을 계속 진행한다.     &nbsp;프랑스 혁명이 남긴 의미를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듯이 이 희곡도 복잡하다. 일단 프랑스 혁명에 대해 자세히 알면 좋고, 당통과 로베스피에르 사이의 의견 차이가 무엇인지도 알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차이에 대한 서로의 이해 부족은 모든 권력이 가진 속성이자 민중이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 자리에 머물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혁명의 목적을 쟁취하기 위해 자연적으로 폭력과 공포가 따른다는 사실도 아이러니다. &nbsp;[당통: 무(無)안에 있지. 어디 한번 무의 세계보다 더 마음의 안식을 주는 곳에 빠져 보게나. 최고의 안식을 주는 것이 신이라면 무가 곧 신이 아닌가? 하지만 난 무신론자야. ‘그 무언가는 무가 될 수 없다!’라는 말은 지긋지긋해. 그런데 나는 그 무엇이야. 비통한 노릇이지! 창조가 자리를 다 차지하는 바람에, 무의 자리는 텅 비어있어. 어딜 가나 창조가 득시글거려. 무는 자살했고, 창조는 무의 상처야. 우리는 무의 핏방울이고, 세계는 무가 썩어 가는 무덤이야. -p.188]<br> <br>&nbsp;<br><br><br><br><br><br><br><br><br><br>『프랑스혁명에서 파리코뮌까지, 1789~1871』은 &lt;당통의 죽음&gt;을 이해하기 위해 읽은 책이다. 발자크, 에밀 졸라, 빅토르 위고의 여러 소설에서도 이 시기가 다뤄지기에 한 번쯤은 제대로 정리하고 싶었다. 노명식 선생이 쓴 이 책은 ‘프랑스 역사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는 한국 대학생들과 일반 독자들이 근대 시민혁명의 전형인 프랑스 혁명과 그 이후에 전개된 19세기 프랑스 역사의 흐름을 이해하기 쉽도록 기획’되었다. 선생의 말대로 이 책은 쉽게 읽히며 연대기 순으로 잘 정리되어 있다. 여러 각도에서 다채롭게 프랑스 혁명에 대해 서술되어 있다. 다만 내용이 워낙 많아 요즘처럼 돌아서면 까먹는 내 뇌가 얼마나 많은 것을 기억할지 걱정된다. 역사는 암기가 필수인가보다.<br> <br>&nbsp;&nbsp;&nbsp;&nbsp;&nbsp;&nbsp;<br><br><br><br><br>&lt;레옹스와 레나&gt;&nbsp;뷔히너의 유일한 희극인 『레옹스와 레나』는 희극작품답게 언어유희와 풍자가 가득한 극이다. 하지만 셰익스피어나 몰리에르의 희극에서 보이는 왁자지껄함과는 거리가 멀다. 이 작품은 오히려 비극적 인물인 햄릿을 닮은 레옹스 왕자의 내면의 모습을 더 많이 보여준다. 세상 모든 것에 시큰둥하고 지루함을 느끼는 우울한 왕자  레옹스는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다. &nbsp;그가 단짝인 발레리오(희극의 광대와 비슷한 역할)와 주고받는 대사는 그 어떤 것에 대비시켜도 인생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발레리오는 레옹스를 ‘글자 없는 책(왕자가 자신의 삶을 빈 종이에 비유한 것을 빗댄 말)’이라고 하며 현실적 이기보다 이상주의자인 왕자의 모습을 부각시킨다.&nbsp;포포 왕국의 왕자인 레옹스와 피피 왕국의 공주 레나는 정략결혼을 해야 한다. 페터 왕은 그들의 결혼식 날에 레옹스에게 왕위를 물려줄 예정이다. 레옹스와 레나는 둘 다 그런 사랑 없는 결혼을 거부해 각자 이탈리아로 도망간다. 여행도중 우연히 한 여관에서 만난 레옹스와 레나는 서로의 존재를 모르고 사랑에 빠진다.  &nbsp;이 희극에는 정치적 풍자가 많다. 융통성이 전혀 없는 경직된 관료사회의 모습을 ‘웃기게’ 보여준다. 신랑과 신부가 없음에도 왕은 체면이 깎이지 않기 위해 정해진 날짜에 결혼식을 진행시키고자 한다. 거리에 농부들을 동원시키고, 발레리오가 레옹스와 레나에게 가면을 씌워 자동기계라고 속여 그것으로 신랑 신부를 대신하자고 해도 왕은 받아들인다. 실체가 없어도 형식만 갖춘다면 아무 문제없다는 것이다. &nbsp;가면이 벗겨지고, 레옹스와 레나는 서로의 진짜 존재를 알게 된다. 결국 두 사람의 사랑이 이루어지고 정해진 날짜에 결혼식까지 진행되며 막을 내린다. 이 극은 행복한 결말을 맞아 전형적인 희극처럼 보이지만, 다른 희극에 비해 훨씬 더 진행과정이 치밀하고 연결과정이 매끄럽다. 대사에 들어있는 여러 비유도 의미가 깊어 생각할 것이 많다. 물론 이 극에 들어있는 유머도 좋다. &nbsp;[왕자님, 제가 인간 삶의 모습을 철학적으로 좀 씨불여 볼 테니까 한번 들어 보십시오. 저는 상처 난 발로 추위와 뙤약볕을 뚫고 이 짐을 질질 끌고 다니고 있습니다. 저녁에라도 깨끗한 셔츠를 한번 입고 싶어서요. 그런데 막상 저녁이 되면 이놈의 이마에는 주름이 파이고, 뺨은 움푹 들어가고, 눈은 침침해집니다. 그래도 이제 셔츠를 갈아입나 했더니 그게 수의인 거죠.....왕자님, 이제 여기서 응용과 실천이 나옵니다. 우리는 순전히 수치심 때문에 내면의 인간에게도 저고리와 바지를 입히고, 그 안에 속옷을 입히려고 합니다.-p.216, 발레리오의 대사 중에서]<br>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373/41/cover150/8937463091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3734105</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