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페넬로페의 서재 (페넬로페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14542162</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기다림. 인생. 그리고 자유!'조개 줍는 아이'와 함께.....</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Sat, 01 Aug 2026 09:20:21 +0900</lastBuildDate><image><title>페넬로페</titl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myface/pt_7145421624113067.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14542162</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페넬로페</description></image><item><author>페넬로페</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대문호-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 -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 - 장편소설 속 만남과 헤어짐]</title><link>https://blog.aladin.co.kr/714542162/17413057</link><pubDate>Sun, 26 Jul 2026 18:5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14542162/1741305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2186120&TPaperId=1741305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8200/95/coveroff/897218612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2186120&TPaperId=1741305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 - 장편소설 속 만남과 헤어짐</a><br/>윤새라 지음 / 한양대학교출판부 / 2019년 02월<br/></td></tr></table><br/>올해 들어 내내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의 소설을 읽고 있다. 내가 참여하고 있는 두 개의 독서 동아리는 보통 연말에 내년에 읽을 책을 투표로 결정하는데 이번에 러시아 소설이 거의 선택되었다. 도서관의 ‘클래식’ 독서 동아리는 주로 고전을 읽기에 당연하지만, 동네의 지인들과 함께하는 독서 모임에서도 나중에 남는 건 고전이라며 결국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상반기에 읽기로 했다. 선정된 책 모두가 3권과 4권짜리여서 한 달에 한 권씩 읽다보니 어쩌다 매달 러시아 소설을 읽게 된 것이다.&nbsp;나는 톨스토이보다는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을 많이 읽어왔고, 나의 최애 작가 중 한 사람도 도스토옙스키였다. 하지만 이번에 ‘악령’과 ‘안나 카레니나(재독)’를 동시에 읽다보니 살짝 시계추가 도스토옙스키에서 톨스토이로 기울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악령’에서 도작가에게 실망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전개가 너무 지루했고, 이 작품에서도 여지없이 도작가가 즐겨 사용하는 여러 요소가 있어 식상했다. 작정하고 쓴 정치 소설이라 반감이 들기도 했다. 그에 비해 ‘안나 카레니나’는 너무 훌륭했다. &nbsp;평론가 신형철은 ’세상 사람들이 ‘외도를 하다 자살한 여자’라고 요약할 어떤 이의 진실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 톨스토이는 2000쪽이 넘는 소설을 썼다. 그것이 안나 카레니나다. 이런 작업을 ‘문학적 판단’이라 명명하면서 나는 이런 문장을 썼다. ”어떤 조건하에서 80명이 오른쪽을 선택할 때, 문학은 왼쪽을 선택한 20명의 내면으로 들어가려 할 것이다. 그 20명에게서 어떤 경향성을 찾아내려고? 아니다. 20명이 모두 제각각의 이유로 왼쪽을 선택했음을 20개의 이야기로 보여주기 위해서다.(‘정확한 사랑의 실험’ 중에서, 신형철, 마음산책, 2014)‘고 썼다.&nbsp;신형철의 글처럼 톨스토이는 기승전결의 군더더기 없는 전개로 사람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변화의 과정을 기가 막히게 표현해 ’안나‘라는 한 인간을 이해하게 만든다. 개별적인 것을 보편적인 것으로 만드는 문학의 역할에 잘 맞았다. 요즘 읽고 있는 ’전쟁과 평화‘에서도 톨스토이라는 대작가의 진가는 발휘된다. 막힘없이 잘 읽히면서도, 그 속에서 성장하는 인물과 전쟁의 상황을 어떻게 이렇게 잘 쓸 수 있는지 매번 감탄한다. 그렇지만 너무 세련되고 매끈한 톨스토이의 글을 읽다보면 마음 한 구석에서 도스토옙스키에 대한 그리움이 새록새록 돋아난다. 감상적이지만 절절한 그의 문장이 그립다. 길을 가다 계속 자동차 방지 턱에 걸려 몸이 앞으로 숙여졌다 뒤로 갔다하는, 그런 불편함이 문학의 본질에 더 가깝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nbsp;러시아는 표트르 대제가 페테르부르크를 건설하기 전에는 중세에 머물러 있었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유럽의 다른 나라들에 비해 발전이 느렸다. 1812년 조국전쟁에서 패주하는 나폴레옹을 쫓아간 귀족 군인들이 유럽의 발전된 모습에 너무 놀라 개혁을 요구한 혁명이 ‘데카브리스트의 난(1825)’이었다. 마침 그 봉기는 니콜라이 1세 황제 취임식에서 일어났고 그 사건으로 겁먹은 황제는 집권 내내 철권정치를 시행한다. 푸쉬킨과 도스토옙스키(페트라솁스키 사건)는 강력한 니콜라이 1세 압제의 희생양이었다. 러시아에서의 개혁은 1860년대 이후 알렉산드르 2세 때에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이런 영향으로 러시아 문학은 영미나 프랑스 문학이 가는 길을 순서대로 따라가지 않아 독특한 개성이 있고, 그것이 또한 큰 매력으로 작용한다. &nbsp;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에 대한 평가는 사람마다 다르다. 러시아의 메레쥐콥스키는 도스토옙스키에게, 나보코프는 톨스토이에게 더 후한 점수를 주었다. 반면 상대적으로 다른 작가에게는 낮은 점수를 준다. 메레쥐콥스키는 톨스토이의 글과 삶이 일치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나보코프는 ‘나보코프의 러시아 문학 강의‘에서 톨스토이, 고골, 체호프, 투르게네프 순으로 순위를 매겼고 도스토옙스키에게는 혐오에 가까운 혹평을 하고 있다. 도스토옙스키의 감상적 글쓰기를 비판했는데, 그의 인간에 대한 연민과 순수, 고통의 숭고함에 대한 시각을 너무 간과한 것 같다.       &nbsp;윤새라의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장편소설 속 만남과 헤어짐)는 두 사람의 생애에서 시작해, 6편의 장편 소설을 두 편씩 비교하며 두 작가를 비교 분석한다. 두 작가는 같은 나라, 같은 시기에 살았지만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그들의 작품 역시 공통점보다는 다른 점이 월등히 많다. 태어나고 자란 환경뿐만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서도 차이가 난다.  &nbsp;메레쥐콥스키는 톨스토이는 ‘육체의 비밀을 보는 자’고 도스토옙스키는 ‘정신의 비밀을 보는 자(p.16)‘로 표현했다. 톨스토이는 몸의 작은 디테일을 자세히 서술하지만 도스토옙스키는 외모묘사를  최소화하고 나머지는 주로 대화를 통해 나타낸다.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에서 각 인물에 대한 외모 묘사를 굉장히 자세히 서술한다. 환경에 따른 외모 변화에도 각별히 신경 써 표현한다. 심지어 보리스 드루베츠코이의 엄마인 안나 미하일로브나 드루베츠카야가 등장할 때마다 ‘울어서 부은 듯한 얼굴‘이란 표현을 반복해 약간 거부감이 들기도 한다. 이에 반해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에서는 대화체 문장이 많아 그것을 읽어 내기가 피곤할 때도 있다. &nbsp;조지 스타이너는 두 작가의 대립 구도를 톨스토이는 서사시의 시인이며 이교도인 반면, 도스토옙스키는 극작가이고 기독교신자로 놓고 비교한다. 톨스토이는 호메로스에 가깝고, 도스토옙스키의 글은 연극적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행동을 중심으로 사건을 펼치고, 창작의 뿌리에 살인과 같은 ’극적인 사건‘이 있다고 짚어낸다(p.23). 하지만 미하일 바흐친은 도스토옙스키의 대화는 연극에서의 대화의 역할(극적인 대화)과는 다르게 ’대화적 말‘이라고 하며 ’말‘은 연극적 요소와 다르다고 주장한다. 한 인물의 말 속에 여러 사람의 말이 담겨있다는 것이다. &nbsp;바흐친은 도스토옙스키 소설의 인물들이 작가로부터 독립된 반면 톨스토이 소설은 작가의 말이 인물에 투영되어 있다고 했다. 크로노토프(chronotope)는 시간(chronos)과 공간(topos)이라는 그리스 단어 둘은 한 단어로 결합한 것으로, 그 자체로 시공간이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음을 나타낸다(p.26). 바흐친은 이 단어를 문학에 접목시켜 연구했다. 한 작품 안에 여러 크로노토프가 있을 수 있고 이것은 서로 섞이면서 충돌한다는 것이다.  &nbsp;이 책은 메레쥐콥스키와 스타이너의 비교 연구를 이어가며 발전시킨 두 작가에 대한 비평이다. 두 작가의 장편 소설을 발표순서에 따라 두 개씩 묶어(전쟁과 평화/죄와 벌, 백치/안나 카레니나, 카라마조프 형제들/부활) 시공간과 공통되는 주제에 대해 고찰한다. 먼저 두 작가의 생애를 간략히 소개하며 시작한다. 우리가 잘 알듯이 두 작가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태어났고 그것은 그들의 인생 전체에 영향을 준다. 귀족 출신이자 부자인 톨스토이는 여유 있게 글을 쓰면 되었지만, 도스토옙스키는 돈을 벌기위해 전투적으로 글을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생활을 이어갔다. 원고료도 도스토옙스키에 비해 톨스토이와 투르게네프가 훨씬 더 많이 받았다고 한다. 빚쟁이를 피해 유럽으로 가서 글을 쓴 도스토옙스키는 돈이 궁해 투르게네프에게 돈을 빌린 적도 있었다. 투르게네프는 톨스토이보다 훨씬 더 많은 농노가 있는 영지를 가질 정도로 돈이 많은 작가였다. 그럼에도 도스토옙스키는 나중에 극우주의자이면서 러시아정교의 신봉자가 되고, 톨스토이는 비록 실패했지만 진보적 개혁가가 된다. &nbsp;‘전쟁과 평화’는 1865년부터 ‘러시아 통보’에 연재되고 ‘죄와 벌’은 그 다음해인 1866년에 같은 문예지에 연재된다. 이 시기는 톨스토이가 소피아와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혼 때였고, 도스토옙스키는 시베리아 유형에서 돌아와 1864년 아내와 형을 동시에 잃고 난 후였다. 톨스토이는 행복의 정점에서, 도스토옙스키는 경제난에 시달리며 각 첫 대작을 쓴다. 윤새라는 이 두 소설을 조지 스타이너의 서사시와 비극에 기반해서 비교하며 분석한다. 이 두 소설에 등장하는 나폴레옹에 대한 서술도 굉장히 흥미롭고 유익했다. &nbsp;‘백치’와 ‘안나 카레니나’에서는 그 시대의 여성 문제, 아름다움과 선에 대한 의미에 대해 서술한다. 시공간의 변화도 비교한다. 도스토옙스키의 ‘백치’는 ‘죄와 벌’에 비해 넓어지고,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는 ‘전쟁과 평화’에 비해 좁아진다. ‘죄와 벌’과 ‘백치’는 똑같이 단독 주인공인 라스콜리니코프와 미시킨을 내세우지만 ‘백치’는 여자 주인공인 나스타샤도 부각시킨다. 두 작가의 마지막 장편소설인 ‘카라마조프 형제들’과 ‘부활’에서는 주로 법과 정의의 문제를 다룬다. 두 소설 다 법정장면이 있다. 공교롭게도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과 톨스토이의 ‘부활’은 끝에서 시베리아라는 공간에서 만난다. &nbsp;19세기 러시아 문학을 읽기 위해서는 작가의 생애에서 출발하여 여러 배경지식이 필요하다. 이 책은 그런 면에서 나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작가 개인과 소설적 배경이 구체적이고도 세밀하게 잘 서술되어 있다. 특히 두 작가의 장편 소설을 두 편씩 비교 분석해 그 차이점과 공통점을 설명해주어 훨씬 더 이해하기 좋았다. 책 전체의 문장이 딱딱하지 않고 읽기 쉬운 점도 이 책의 큰 장점이다. &nbsp;여기에 소개된 6개의 장편소설 중 4편을 읽었고, ‘전쟁과 평화’는 읽는 중이고 ‘백치’는 아직 읽지 않았지만, 이 책의 소설에 대한 해석에 대다수 공감했다. 다만 ‘안나 카레니나’에 대한 해석에서는 조금 아쉬움이 남는다. 저자는 안나의 자살을 브론스키에 대한 복수로 본다. 레빈과 안나를 비교하며 그 둘의 차이점을 ‘삶에 대한 기본 태도’로 본다. 여러 단점과 실패에도 레빈은 노력하고 소통하지만, 안나는 질투의 화신으로 브론스키와의 사랑만을 갈구한다는 것이다. 레빈의 견실한 결혼생활을 칭찬하며 안나는 근본적인 삶의 양식을 버리고 레빈과는 정반대의 길을 간다고 한다. 물론 저자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nbsp;하지만 레빈과 안나의 비교는 19세기 러시아가 남자와 여자에게 가하는 차별이 없어야만 정당할 것이다. 똑같이 불륜을 저지르는 브론스키는 안나에 비해 훨씬 더 자유롭다. 안나와 브론스키를 대하는 사교계의 시선도 다르다. 그 시대 여성이 갈 수 있었던 영역은 사교계 아니면 연회뿐이다. ‘전쟁과 평화’의 나탸샤도 파티에 춤을 추러 가거나 집으로 초대된 손님들과 교류하는 것으로만 사회생활을 한다. 마리야 볼콘스카야는 아예 아버지가 짜놓은 시간표대로만 움직여야 한다. 안 그래도 좁은 여성의 영역에서 그마저도 거부당하고 집에 칩거해야할 안나에게 브론스키에 대한 집착과 심리적 불안은 당연한 것이다. 안나의 남편 카레닌은 이혼을 해주지도 않고 안나가 사랑하는 아들을 내주지도 않는다. 그런 면에서 사회적 제약이 너무 많은 안나에게 과연 레빈처럼 건실한 삶에 대한 기본 태도를 보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안나의 오빠 오블론스키에 비해 안나에 대한 비난과 타락에 대한 프레임도 가혹하다고 생각한다.  &nbsp;[이와 같이 테마로 볼 때 두 대가는 첫 번째, 두 번째, 그리고 마지막 장편소설별로 같은 관심사를 가졌음을 알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두 문호가 소설을 통해 만난다고 하겠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점은 같은 테마를 다루는 다른 시각, 다른 가치관, 다른 방식이다. 나폴레옹으로 상징되는 영웅주의에 비판적이면서도 그를 표현하는 방식이 다르고, 사법 개혁으로 달라진 재판의 맹점을 드러내면서도 서술 기법이나 해결책이 다른 식이다. 그렇게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는 만나고 엇갈린다. 더 나아가 시공간 매트릭스를 매개로 살펴본 장편소설의 진화 과정은 두 작가의 만남과 엇갈림을 한층 더 뚜렷하게 드러낸다. 톨스토이는 넓게 시작해 좁아져 가고, 도스토옙스키는 반대로 좁게 시작해 점차 넓어져 간다. -p.283]&nbsp;&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8200/95/cover150/897218612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82009530</link></image></item><item><author>페넬로페</author><category>페이퍼</category><title>유영국-한국 최초의 추상미술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14542162/17398667</link><pubDate>Sat, 18 Jul 2026 17:4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14542162/17398667</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92536174&TPaperId=1739866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0104/55/coveroff/k492536174_2.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32535437&TPaperId=1739866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9588/49/coveroff/k332535437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0532363&TPaperId=1739866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712/22/coveroff/8960532363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 <br><br><br><br><br><br><br><br><br><br><br><br>서울시립미술관에서 기획한 ‘한국 근대 거장전’시리즈 중, 첫 번째인 ‘유영국-산은 내 안에 있다’전시회를 다녀왔다. 며칠 간 계속 무더웠지만, 오늘은 해가 구름에 싸여있고 바람도 조금 불어 미술관 가는 길이 그리 덥지 않아 다행이었다. 전 날(14일) 비가 와, 미술관 앞 나무들이 물기를 머금은 선명한 초록이어서 운치 있었다. 이번 전시는 무료로 진행된다.&nbsp;내가 화가 유영국을 알게 된 건 몇 년 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열린 이건희 컬렉션에서였다. 거기에 유명한 화가의 그림이 정말 많이 전시되었는데 유독 유영국의 ‘산’이 내 눈에 들어왔었다. 그때 유영국 이란 이름을 정확하게 기억하게 되었다. 오늘 같이 간 언니는 어릴 때, 은행에서 근무하신 아버지가 가져 온 달력에서 유영국의 그림을 본 적이 있다고 했다.    &nbsp;화가 유영국은 1916년 강원도 울진(지금은 경북으로 편입)에서 4남 4녀 중 여섯 번째로 태어났다. 그는 장욱진, 김환기, 이중섭과 같은 시기에 활동한 우리나라 1세대 추상 화가이다. 특히 김환기와 가까웠으며 두 사람은 모든 면에서 비교된다. 유영국은 1947년 김환기, 이규상과 함께 ‘신사실파’를 구성한다. &nbsp;[김환기와 유영국은 동시대의 작가로 비교적 같은 조건 속에서 출발하고 있으나 김환기가 비록 파란만장한 삶은 아니라 할지라도 많은 변화로 점철되어 있는 반면, 유영국은 비교적 굴곡이 심하지 않은 삶을 영위했다고 할 수 있다.김환기가 이상주의적 성향을 띤다면 유영국은 보다 현실적인 성향의 소유자라 할 수 있다. -p.13]&nbsp;1935년 유영국은 동경문화학원 미술과로 유학한다. 그 당시 한국 미술은 후기 인상파에서 입체, 야수, 표현, 미래, 구성을 받아들이고 추상미술을 수용할 즈음이었는데, 유영국은 과감히 추상미술을 선택한다. 1940년경 일본이 군국주의의 절정으로 치달아 전위적 예술 활동을 금지 시켰을 때, 유영국은 오리엔탈 사진학교에서 사진을 배우고, 주로 불상, 왕릉, 사찰, 탑 등을 찍으러 다니기도 한다. 라이카 카메라로 찍은 그의 경주 시리즈는 기하학적 형태가 부각되어 있다. &nbsp;일제강점기와 한국 전쟁으로 혼란의 시기를 지날 때, 그는 고향 울진 죽변에서 양조장을 운영한다. 사업수완이 좋아 많은 돈을 벌기도 한다. 서울대에서 학생을 가르치기도 했지만, 그는 사업과 교수직을 과감히 그만 두고 전업 작가(1957년 전후)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그림을 그린다. 그의 추상미술의 소재는 주로 산과 바다였다. 고향 울진의 풍경을 캔버스에 담아 거의 유화로 그려 내었다. &nbsp;죽변과 울진은 나에게 추억이 많은 장소다. 조카가 갓 난 아이였을때 서울에서 근무하던 형부는 울진 원자력 발전소로 전근을 가게 되었고 사택에 들어가기 전에 죽변에서 잠시 살게 되었다. 그곳에서 형부가 몇 년간 근무하는 동안 나는 자주 둘째 언니와 큰 언니네로 놀러갔다. 서울에서 가려면 일단 삼척이나 동해(묵호)로 가서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죽변으로 가야하는데, 가는 길이 멀었지만 7번 국도의 바다를 볼 수 있어 좋았다. &nbsp;울진은 산, 바다, 계곡이 잘 어우러진 곳이라 그곳에 갈 때마다 여기저기 구경을 많이 다녔다. 사택의 다른 가족들과도 교류가 활발해 우리가 가면 초대해 밥을 먹여주기도 했고, 다같이 캠핑이나 덕구 온천을 가기도 했다. 그때 그 시절의 인정 많고 사람 냄새나는 것들이 그립다. 화가의 고향이 울진이라 반가웠다. 대부분 울진과 서울을 오가며 그려낸 유영국의 산과 바다가 그런 의미로 내게 더 친숙하게 다가왔다. <br>이번 전시는 유영국 예술 세계의 정점이었던 1964년의 작품으로 시작된다. 화가는 1964년에 첫 개인전을 열었고, 게다가 작품의 크기가 100호가 넘는 대작이 많았다. 작품의 제목은 주로 산, 바다, 작품, 무제이다. 그만큼 그에게 산은 절대적인 것이었다. 화가에게 산은 물리적인 것뿐만 아니라 ‘자신의 철학을 담아내는 그릇’이었다. 처음에 그는 칸딘스키나 몬드리안의 영향을 받았지만 그 후 자신만의 개성이 있는 독특한 추상의 길을 간다. 그는 매일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꾸준히 그림을 그린다. 지병으로 많은 수술과 입 퇴원을 거듭 했을때도 이 시간은 계속 지켜졌다.<br>-Work(1971)(부제; 랄랄라 시리즈)저절로 콧노래가 나올 정도로 경쾌하다.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br>-Work(1977)심장 수술을 마친 작가가 아내와 부석사를 여행하고 온 후 그린 그림이다. “산 속에 굽이굽이 길이 있고 그것이 인생인 것 같았다”는 화가의 말이 느껴지는 그림이다. 다른 그림에 비해 이 그림은 크기가 아주 작은데 나름 좋았다. <br>-두 그림 중 오른쪽은 BTS의 RM이 소장한 것을 대여한 것이라고 한다. 그림을 보는 안목이 대단한 것 같다. 여러 사람이 인증샷을 남기기에 열렬한 팬은 아니지만 나도 한 장 찍었다.<br>추상으로 표현된 유영국의 산과 바다는 일단 색이 압도적이었다. 추상미술이라 당연히 선이 중요한 역할을 하겠지만, 색에서 받는 느낌이 훨씬 더 강렬했다. 특히 이번 전시에는 큰 캔버스에 그려진 작품이 많아 더 웅장했다. 얼핏 원색으로 보여지는 것 같았지만, 자세히 보면 색깔이 너무 다양했고 붓 터치의 강약이 조화로웠다. 산 그림을 보면서 화가가 어떤 생각으로 그렸는지, 또한 직접 보는 것과 상상으로 확대되는 산의 모습이 어떻게 달랐는지도 궁금했다. 같은 소재로 매번 다르게 그린다는 것은 그만큼 자세히, 깊이 보아야 한다는 것인데 넓어진 지평의 사고가 그림에 고스란히 있는 것 같았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화가에게 배우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br>마침 전시회를 보러 간 날이 초복이라 점심은 서울시립미술관 근처에서 삼계탕을 먹었다. 언젠가부터 식당에서 삼계탕을 먹지 않는다. 태어난 지 3개월도 안 된 영계로 만든 삼계탕을 먹는것이 싫어서인데 이 날은 어쩔 수 없이 먹게 되었다. 역시나 닭은 너무 작았고, 닭다리는 뜯을 것이 없었다. 미슐랭 스타를 받은 식당인데 아마 맛이 깔끔해서 그런 것 같다.<br>서울시립미술관 뒤쪽에 서울시청 서소문청사가 있다. 그곳 13층에 올라가면 ‘정동 전망대’와 카페 다락이 있다. 그곳에서 덕수궁 전체와 정동 일대를 볼 수 있다. 광화문에 자주 나가지만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한 번쯤은 가볼 만한데 역시나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br>  <br><br><br>&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712/22/cover150/896053236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7122207</link></image></item><item><author>페넬로페</author><category>페이퍼</category><title>오베같은 사람이 필요하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14542162/17385769</link><pubDate>Sat, 11 Jul 2026 13:1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14542162/17385769</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D162634556&TPaperId=1738576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9037/56/coveroff/d162634556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D092735484&TPaperId=1738576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9836/74/coveroff/d092735484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6000848972&TPaperId=1738576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5948/68/coveroff/k822536969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62832578&TPaperId=1738576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1282/49/coveroff/k162832578_2.jpg" width="75" border="0"></a>&nbsp;<br/><br/> <br><br><br><br><br><br><br><br><br><br><br><br>며칠 전 마트에 가려고 집에서 나와 엘리베이터를 탔다. 3층에서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한 젊은 여자가 탔다. 1층에 도착해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니 그 앞에 한 남자가 서 있었고, 3층에서 탄 여자가 내리면서 그 남자에게 “아저씨에게 얘기했어?”라고 물었다. 둘은 부부사이인 듯 했다. 그 남자는 아니라고 했다. 여자는 마침 경비실 밖에 나와 있던 관리인 아저씨께(제미나이에게 물어보니 요즘은 경비원이 아니라 관리인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다가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nbsp;“안녕하세요, 아저씨3층 소화전 앞에 바퀴벌레가 있어 저희가 집에서 약을 가지고 나와 뿌려 죽여 놨어요. 지금 가서 그것 좀 치워주세요.” &nbsp;그 말을 듣고 나와 관리인 아저씨 둘 다 동시에 큰 한숨을 쉬었다.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았다. 사실 관리인은 아저씨라기보다 할아버지였다. 아니 나이를 떠나 아파트 관리인의 업무가 바퀴벌레 한 마리의 시체까지도 치워주어야만 하는 것인가이다. 부끄러움도 모른채 저렇게 당당히 얘기할 수 있는 젊은 부부의 뻔뻔스러움에 기가 찼다. 저 건장하고 멀쩡하게 생긴 젊은 남자는 도대체 바퀴벌레 한 마리도 감당할 수 없단 말인가? 그래, 그러니까 저들이 올림픽 공원에서 선관위를 규탄하며 한미공조를 외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일을 우리가 해결해야지 왜 한미공조를 외치는지 몰랐는데 이제야 알겠다. 바퀴벌레 한 마리도 처리하지 못하는 모지리 들이라 그런 것이리라.&nbsp;관리인 아저씨는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고 그저 고개를 숙인 채 바퀴벌레를 치우러 가시는 것이었다. 나는 목까지 치미는 말(욕)을 삼키며 씁쓸하게 마트로 향했다. 걸어가며 ‘오베라는 남자’를 생각했다. 오베는 분명 ‘빌어먹을!’이라는 말을 하며 소설에서 늘 그래왔듯 컴퓨터만 믿고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요즘의 허우대만 멀쩡한 어른을 비난했을 것이다. &nbsp;[오베와 루네 같은 남자들에게 품위란, 다 큰 사람은 스스로 자기 일을 처리해야 한다는 사실을 뜻했다. 따라서 품위라는 건 어른이 되어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게 되는 권리라고 할 수 있었다. 스스로를 통제한다는 자부심. 올바르게 산다는 자부심. 어떤 길을 택하고 버려야 하는지 아는 것. 나사를 어떻게 돌리고 돌리지 말아야 하는지를 안다는 자부심. 오베와 루네 같은 남자들은 인간이 말로 떠드는 게 아니라 행동하는 존재였던 세대에서 온 사람들이었다.-p.370~371] &nbsp;뒤늦게 ‘오베라는 남자’를 읽고 있다. ‘한 여름밤의 영화 산책’이라는 도서관 프로그램을 신청했는데 강의 목록에 ‘오베라는 남자’ 영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기 전에 원작을 먼저 읽고 싶었다. 단순히 영화 전체를 감상하는 것이 아닌, 영화를 통해 어떤 강의를 할지 궁금했다. 첫 날의 영화는 ‘어바웃 타임‘이었는데 강사가 생각하는 영화의 중요한 두 부분을 각 15분씩 보여주고 거기에 대한 자신의 느낌을 우리에게 설명하며 주입시켰다. 심지어 영화 대사도 아닌 자신의 생각을 몇 문장으로 적어 우리에게 복창시키기까지 했다. 영화처럼 자유로운 예술을 완전 자기계발서로 만드는 마술을 부리고 있었다.  &nbsp;게다가 재미도 없는 자기 얘기를 늘어놓았다. 왜 강사들은 프로그램의 목적에 맞는 강의보다 자기 얘기를 더 많이 하는지 모르겠다. 스펙이 조금 좋은 강사는 끊임없이 자기 자랑을 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자신의 인생 고통의 극복담을 늘어놓는다. 작년에 참여한 천선란 작가의 북 토크 역시 실망스러웠다. 자신의 책보다 AI와 미래에 대한 것을 계속 얘기해 지루했었다. 작가와의 질의응답 시간에 어떤 여자는 자기 아이가 고등학생인데 AI시대를 대비해 어떤 공부를 하며 준비해야 하는지를 물었다. 입시전문가가 아닌 소설가에게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 이해할수가 없었다. ‘한 여름밤의 영화 산책’은 그 뒤로 참가하지 않았다. 혼자 책을 읽고 영화를 보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아서였다.&nbsp;<br>오베라는 남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원칙을 지키는’ 것이다. 원칙을 지키기 위해 오베는 융통성이 없고 까칠하며 사람들에게 싹싹하지 않다. 오베는 옳은 것은 옳은 것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아닌 건 아닌 것이고 누구에게나 예외는 없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그는 자신에게도 철저하며 성실하다. 사람들과 어울리기 싫어하는 오베는 자칫 이기적인 인간으로 보일수도 있지만 타인이 도움을 필요로 할 때 불평 하지만 거절하지는 않는다. &nbsp;그 어떤 일에도 도움을 줄 수 있을 만큼 오베는 능력 있는 사람이다. 만인에게 친절하며 좋은 사람으로 살아가지만, 결정적일 때 자신만 챙기고 절대 손해 보지 않으려는 사람이 너무 많기에 오베는 사실 특별한 사람이다. 실천하는 사람과 말만 하는 사람의 차이를 오베는 명백히 보여준다. 원칙을 지킨다는 것이 재미없는 삶의 다른 말일수도 있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경쟁과 강박 속에 사는 현대인은 오베를 꼰대로 보기 쉽다. 정말 그럴까? 요즘 같은 세상에 우리는 오베처럼 사는 것이 더 절실할 것 같은데....&nbsp;오베는 진정한 사랑꾼이다. ‘사랑’이란 단어의 뜻을 완벽히 아는 사람이다. ‘사랑’이란 것을 몸으로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다. 오베와 그의 아내 소냐는 낮과 밤처럼 다른 성향을 가진 사람이다. 오베는 손에 쥘 수 있는 것들, 수학처럼 정답과 오답이 있는 것, 직선, 명료한 것을 좋아한다. 소냐는 책과 음악 같은 추상적인 것을 좋아한다. 오베는 전혀 책을 읽지 않지만, 소냐의 많은 책을 보관할 수 있는 책장을 뚝딱 만들어준다. 교통사고 후 소냐가 휠체어에 의지해 살아가게 되자 오베는 집의 구조를 모두 소냐에게 맞추기 위해 고친다. 장애인이 되어서도 학생을 가르치기를 원하는 소냐의 의지를 존중하고 도와준다. 오베와 소냐는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그것을 받아들임으로 사랑을 완성해 나간다.                    &nbsp;노화는 거침없는 오베에게도 어쩔 수 없는 복병이다. 예기치 않게 오랫동안 일했던 직장에서 해고당한다. 아내의 죽음 후 오베는 하루하루 견딜 수 없는 잉여의 삶을 느끼며 살아야한다. 여지껏 오베의 삶이 결코 평탄하지 않았지만, 잉여야말로 오베에게 가장 힘든 것이다. 그는 그렇게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차라리 낫다고 생각하며 자살을 시도한다. 빨리 아내 곁으로 가고 싶어한다. 하지만 매번 오베의 자살 시도는 실패한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자살을 시도할 때마다 누군가 원칙을 벗어나는 일을 하고, 이웃인 파르바네가 도움을 청하러 오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오베는 자살을 늦추고 사람들을 돕는 방법을 선택한다. 그러면서 오베는 소냐말고도 소통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배운다. 죽을 때까지 배우고 느끼며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숙명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 오베가 자살과 맞바꾼 것이었다. &nbsp;오랜만에 재미있는 책을 읽었다. &nbsp;[“누군가를 사랑하는 건 집에 들어가는 것과 같아요.” 소냐는 그렇게 말하곤 했다. “처음에는 새 물건들 전부와 사랑에 빠져요. 매일 아침마다 이 모든 게 자기 거라는 사실에 경탄하지요. 마치 누가 갑자기 문을 열고 뛰어 들어와서 끔찍한 실수가 벌어졌다고, 사실 당신은 이런 훌륭한 곳에 살면 안 되는 사람이라고 말할까봐 두려워하는 것처럼. 그러다 세월이 지나면서 벽은 빛바래고 나무는 여기저기 쪼개져요. 그러면 집이 완벽해서 사랑하는 게 아니라 불완전해서 사랑하기 시작해요. 온갖 구석진 곳과 갈라진 틈에 통달하게 되는 거죠. 바깥이 추울 때 열쇠가 자물쇠에 꽉 끼어버리는 상황을 피하는 법을 알아요. 발을 디딜 때 어느 바닥 널이 살짝 휘는지 알고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지 않으면서 옷장 문을 여는 법도 정확히 알죠. 집을 자기 집처럼 만드는 건 이런 작은 비밀들이예요.”-p.410~411]<br>원작에 충실했지만 ‘오베라는 남자’ 영화에 오베의 매력을 다 담기는 역부족이었다. 오베의 나이는 59세인데 너무 나이 든 배우가 주인공인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오베가 ‘전형적인 심술쟁이 늙은이‘로 비춰지는 것도 별로였다. HBO에서 제작한 드라마 ’올리브 키터리지‘도 마찬가지다. 오베와 올리브를 너무 심술긏게 부각시킨 것 같았다. 사실 두 사람은 인간적인 사람이다. 살다보면 오베와 올리브처럼 용기 있게 행동하기가 쉽지 않다.&nbsp;<br>   &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1282/49/cover150/k162832578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12824974</link></image></item><item><author>페넬로페</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소금이 바다에 있는 건 맞지만... - [소금이 왜 바다에 있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14542162/17362563</link><pubDate>Mon, 29 Jun 2026 18:2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14542162/1736256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22139217&TPaperId=1736256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469/74/coveroff/k12213921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22139217&TPaperId=1736256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소금이 왜 바다에 있지</a><br/>브리기테 슈바이거 지음, 박광자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26년 06월<br/></td></tr></table><br/>이 책의 출간 소식을 들었을 때 제목이 흥미로웠다. ‘소금이 왜 바다에 있지’라는, 너무 당연해 평소에는 생각지도 않던 문장에 소설의 내용도 특별할 것 같은 기대감이 들었다. 본문에서 어린 화자가 바다에 왜 소금이 있는지 물었을 때, 그녀의 아버지가 사람들이 소금을 싣고 와서 바다에 뿌렸다고 얘기해주고 어머니는 그 말에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이 문장은 상징하는 것이 많고 소설 전체의 주제를 압축해 보여준다. 바닷물에 소금이 들어있어 짜다는 과학적 사실마저 가부장적인 남자의, 말도 안 되는 농담 섞인 한 마디로 무시될 수 있다. 또한 누구나 저항 없이 받아들이는 명제를 끝까지 인정하지 못하는, 태생적으로 우울하고 창작물이 없는 예술가 기질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인생과 고통을 대변하는 말이기도 하다.&nbsp;소설의 배경은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사이, 또는 양 대전 후의 오스트리아 린츠 부근과 빈이다. 지방 소도시에서 존경받고 꼭 필요한 존재인 의사의 딸로 태어난 화자(끝까지 이름을 알 수 없다)는 할머니와 어머니가 살아 온 삶을 똑같이 되풀이만 하면 중산층의 기득권과 소속감이 있는 낙원의 안정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다. 아버지의 말과 표정으로 행과 불행을 오가는 어머니, 끊임없는 핀잔을 들으며 얌전과 순종을 강요당하는 화자는 강한 가부장제의 그늘아래에 있다. &nbsp;나치를 아무 저항 없이, 당연히 받아들이는 그 당시 중산층을 대표하는 아버지는 너무 전형적이다. 화자가 어릴 때 만나 결혼하게 된 남편 롤프도 마찬가지다. ‘남자는 싫으면 싫다고 해도 되고, 싫은 것은 안 해도 된다(p.23)’라는 사고방식이 그 어떤 상황에서도 적용된다.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그것을 당연히 생각하면서도 그들의 입방아에 오르지 않기 위해 위선적인 행동을 하는 것도 가식적이다. &nbsp;롤프와 오랫동안 연애를 했지만, 결혼에 확신을 가지지 못한 화자는 떠밀려, 부모님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결혼하게 된다. 대학 졸업을 하지 못하고 비서로 일하며 타자만 칠 수 있는 화자는 잘 난 남편을 모시며 전업주부의 역할을 잘 해내야 한다. 자신이 ‘칠칠치 못하고 부당하고 고마워할 줄 모르고 쓸모없고 비현실적이며 우울하고 불만투성이에 게으르고 뻔뻔하다고(p.42)' 생각하는 화자는, 남들처럼 살 수 없는 여자다. 다른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전개하는 삶의 진행을 받아들일 수 없다. 예민하며 겉으로 보이는 내가 자신이 아닌 것 같고, 알 수 없는 슬픔에 잠기고, 창작물이 없지만 예술가 기질을 가진 그녀는 가부장적인 남자가 원하는 내조를 할 수 없다. &nbsp;그런 화자의 결혼 생활은 당연히 불행했고, 그녀는 의사인 친구 알베르트와 외도를 한다. 롤프와 화자는 알베르트와 힐데 부부와 친구 사이이다. 하지만 알베르트 역시 롤프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는 화자를 섹스파트너로 여기며 그의 아이를 임신한 화자에게 피임하지 않았다고 비난하며 바로 중절 수술을 해준다. 힐데는 두 사람의 외도를 알지만 아이 때문에, 관습으로 그냥 알베르트와 살아간다. 알베르트와의 관계를 롤프에게 고백하고 그들은 이혼하고 갈 곳 없는 화자는 다시 부모님의 집으로 들어간다.      &nbsp;작가 ‘브리기테 슈바이거’의 자전적 내용이 담겨있는 이 소설은 따옴표를 쓰지 않고 대화체를 서술형 문장 사이에 넣어 형식을 파괴했지만 앉은 자리에서 다 읽힐 정도로 가독성이 좋다. 화자를 완전히 이해한 것은 아니지만 읽는 내내 공감되는 내용이 많았다. 수많은 소설에서, 특히 여성 작가가 쓴 소설에서 많이 본 한 여자와 그 가족에 얽힌 이야기지만, 이런 에피소드는 읽을 때마다 새롭다. 작가가 발표할 당시 페미니즘 소설로 엄청 관심을 모았지만, 지금 사람들은 언제 적 얘기를 되풀이 하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과연 이러한 내용이 지나간 구닥다리에 불과한 것일까?&nbsp;대학 동기인 A, B와 1년에 서너 번 만난다. 서로 하는 일이 비슷해 대화가 잘 통하지만 한 가지만은 이해할 수 없는 게 있다. 싱글인 B의 전업주부론이다. 나와 A는 결혼했지만 전업주부는 아니라 B가 우리들에게 하는 얘기는 아니지만, B의 말을 들으면 거북하고 기분이 나쁘다. B는 전업주부인데 남편에게 그 역할을 다하지 않는 여자를 싫어한다. 밖에서 돈 벌기 힘든데, 집에 있는 여자가 당연히 가사일과 육아를 전담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긴다. 특히 퇴직한 남편을 싫어하고 귀찮아하는 전업주부도 비난한다. 평생 돈 버느라 힘든 남편이 이제 집에서 좀 쉬어야 하는데 구박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B의 말이 전부 틀린 건 아니지만 들을 때마다 반감이 생긴다. B의 생각에는 여성의 가사노동에 대한 경제적 환산이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경제적 가치뿐만 아니라 단지 경제적인 것이 권력과 권위가 되는 것의 무시도 말이 되지 않는다. &nbsp;물론 지금의 MZ세대는 B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겠지만 젊은 남성들은 어떤 태도를 갖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심지어 극우화 되다시피 하는 젊은 남성들이 걱정된다. 그들에게 서로 같이 간다는 의지가 존재하는지.....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은 지금의 우리에게도 많은 것을 준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 작가처럼 화자에게 남겨진 삶 역시 녹록치 않아 보인다. 부모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계속 정신과를 전전할 화자가 말한 ‘누구나 스스로 돌보아야 한다(p.156)'는 의지가 실천되지 못한 채,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은 예감이 들기도 한다. 일요일에 점심을 먹으며, 저녁은 뭐 먹지라는 생각을 하는 나 자신도 화자와 닮아 있다. 마음이 무겁고 우울해진다.&nbsp;[내가 필요한 것을 인정하면서 당신은 왜 날 떠나려는 거야, 라고 롤프가 묻는다. 그래야 하니까…내가. 그리고 카를도 그렇게 말했다…카를이 당신을 돌봐 준대? 아니, 카를이 누구나 스스로 돌봐야 한다고 했어. 길에 관해, 여행에 관해 글을 쓰면서 카를이 그랬어.&nbsp;사람은 길을 가는 중이다. 어딘가로 여행 중이다, 라는 말을 하려고 내가 롤프를 깨운다. 도로 표시가 되어 있고 아스팔트 깔린 길을 가는 사람들이 내가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고 소리치고 있어. 나는 목적지 이름도 몰라. 아는 것이라고는 나 외에 아무도 거기서 날 기다리고 있지 않다는 거야. 카를이 그러는데, 나는 예술가 타입이래. 창작도 안하는데? 일생 동안 창작하지 못하는 예술가 기질의 사람이 있다고 카를이 말했어. 정말이지 카를이 진실을 말한 것 같아. 당신도 카를처럼 되고 싶은 거야? 자유롭고 별나게 살다가 카를이 어떻게 됐는지 봤잖아. 카를이 그러는데....이제 그만 자. 롤프가 말한다.-p.155~157]&nbsp; &nbsp; &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469/74/cover150/k12213921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4697482</link></image></item><item><author>페넬로페</author><category>페이퍼</category><title>데미언 허스트</title><link>https://blog.aladin.co.kr/714542162/17312350</link><pubDate>Tue, 02 Jun 2026 01:4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14542162/17312350</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0536601&TPaperId=1731235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4672/41/coveroff/8960536601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 <br><br><br><br><br><br><br><br><br><br><br><br><br>1965년 영국에서 출생한 데미언 허스트는 어머니와 외할머니와 함께 살아간다. 가톨릭 신자였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데미언도 성당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고, 그곳에서 미래에 자신의 주요 작품 주제가 될 ‘죽음’에 대해 많이 생각한다. 앨러튼 그레인지 스쿨과 리즈 예술 대학을 거쳐 런던의 골드 스미스 대학에 진학해 그림을 배운다. 1970년대 경제 사정이 좋지 않았던 시기에, 데미언과 그의 동료들은 런던 항만 구역의 창고에서 &lt;프리즈&gt;라는 전시를 연다. 자신들의 힘으로만 전시를 기획해야 했지만, 이 전시를 계기로 데미언은 작가로서 뿐만 아니라 큐레이터의 자질을 배웠고, 젊은 영국 예술가 그룹인 'yBa'를 탄생시킨다.&nbsp;데미언 허스트는 예술가로서 자신의 작품 속에서만 머물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자신이 적극적으로 큐레이팅의 전 과정에 참여한다. ‘공간, 사물 및 전시회 자체를 매체로 사용하여 자신의 아이디어와 관심사를 시각과 예술적 실천 의지에 맞춰 큐레이팅(p.35)'하는 것이다. 세계적인 컬렉터인 찰스 사치는 데미언의 작품에 관심을 가져 그를 후원한다. 남다르고 기발하며 파격적인 데미언의 작품은 사회적 관심과 함께 상대적으로 많은 비판도 받는다. &nbsp;어렸을 때부터 데미언은 돌멩이나 광물, 책 등을 수집했다. 머더미(murderme-데미언의 수집 전반을 지칭하는 용어) 컬렉션으로 포름알데히드 동물, 곤충 캐비닛과 같은 작품으로 표현했다.&nbsp;[데미언의 수집품 ’머더미‘는 그의 주된 관심사였던 과학과 예술, 자연사, 죽음과 그 죽음을 이해하려는, 또는 그것을 피하려는 인간의 염원을 수집하고 정리한 행위로 보인다. 그렇기에 그의 수집벽은 불멸의 숭고함을 추구한 인간의 욕망과 절대로 죽음을 이길 수 없는 현실 사이의 간극을 얘기하고자 한 생각을 대변한다. 이런 일관적 태도가 머더미 컬렉션으로 이어졌고 그것이 데미언의 삶의 지도를 그대로 보여준다. -p.47~48]&nbsp;데미언은 나비와 곤충, 해골과 동물 등을 이용한 작품을 만들었다. ’그는 이를 통해 ‘삶에서의 죽음‘이라는 개념을 자연의 역사에 대한 시각으로 조명하는 데 전념해 왔음을(p.52)' 보여준다. 데미언 작품의 특이성은 그가 창립한 회사인 ’사이언스‘를 통해 조직적인 차원에서 창작을 하는 것이다. 체계적 시스템이 움직이는 곳에서 예술과 돈이라는 두 개의 목표에 가치를 둔다. 약국 레스토랑 운영도 하고 비지니스 매니저를 고용하여 그의 작품의 가격을 천정부지로 올려놓았다. 이런 면에서 많은 비판을 받지만 예술 창작에 돈이 필수적이라는 사실도 간과하기 어렵다.&nbsp;데미언 허스트의 작품에는 삶과 죽음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 많다. 필멸의 존재인 인간이 오랫동안 의지한 것이 종교였다면 현대의 인간에게는 과학이 신앙을 대체한다는 사실이 그의 수많은 작품 속에 들어 있다. 이런 작품의 주제를 표현하기 위해 데미언은 해골, 시신 머리, 약병과 각종 수술 도구, 소머리, 파리, 상어와 소를 포름알데히드에 담는 것, 박제된 나비 등을 이용한다. 그런 오브제를 통해 죽음을 직면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한다. 죽음은 외면과 두려움의 대상이 아닌 삶의 일부라는 사실과 생명이 들어있는 육신은 죽으면 결국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nbsp;’약장‘작업을 통해 현대 사회의 의학과 과학도 비판한다. 진열장 속의 수많은 약병에서 죽음을 멀리하고 생명 연장을 실현하려는 인간의 욕망을 표현한다. 그는 자신의 어머니가 ‘신을 섬기면서도 약을 신줏단지처럼 모시는 태도(p.75)’에 대해 의문을 갖고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약은 약 자체로의 효능도 있지만, 형태와 포장에서 사람들의 신뢰를 얻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데미언의 ‘스팟 페인팅’은 제약회사가 약을 제조하듯, 동그라미를 반복적으로 그리며 약을 맹신하며 죽음을 멀리하는 인간의 생각을 풍자하고 있다. 또한 약과 포장 용기의 세련됨과 심미적인 것들이 사람을 기분좋게 해 그것에 대한 거부감을 없애는 것에 대해 비판한다. ’스핀 페인팅‘, ‘팩트 페인팅’, ‘다이아몬드 해골 작업’을 통해서도 계속적으로 죽음, 삶, 예술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한다. &nbsp;&nbsp;『내가 만난 데미언 허스트』는 국립현대미술관 김성희 관장이 집필한 책이다. 데미언 허스트의 연대기적 삶과 그에 따른 작품 세계를 설명했고, 작가와의 인터뷰가 실려 있다. 이번에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기획한 데미언 허스트에 전시에 맞춰 먼저 출간한 것으로 보인다. 책에 실려 있는 작품이 이번에 전시된 작품에 맞춰 잘 설명되어 있다. 마로니에 북스의 여러 화가에 대한 책은 보통 번역된 것이었는데 이번엔 한국인이 집필한 책이어서 반가웠다. 한국어로 쓰여진 책이라 읽기에 어렵지는 않았지만 김성희 관장의 문장은 많이 아쉬웠다. 또한 이 책은 화가에 대한 객관성이 부족했다. 화가의 예술론과 작품에 대한 설명만 있다. 데미언 허스트가 굉장히 사회적으로 비판받는 예술가라는 언급은 그 어디에도 없다. 화가의 이름을 계속 ’데미언‘으로 표기하다 마지막 작가 소개 페이지에&nbsp;‘데미안‘으로 표시되었다.&nbsp;데미언이나 데미안이나 그 어떤 발음도 가능하다는 뜻인지?&nbsp;[데미안 허스트는 1980년대 후반부터 설치미술, 조각, 회화, 드로잉을 통해 현대사회가 의식적으로 외면하거나 놓치면서 만들어낸 고정관념/신념 체계를 고찰하며, 미술과 과학, 종교, 그리고 대중 문화의 전통적인 경계에 도전해 왔다. 그는 특히 ‘죽음’속에 있는 강렬한 생명의 아름다움과 그 일시성의 불가피한 부패 등 삶의 이면에 담긴 숭고한 관념에 주목하며, 이를 관객 개개인이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사물과 물질의 기발한 조합으로 표현한다. -p.222]<br>-&lt;미다스와 무한&gt;, 나비, 큐빅, p.151<br>-&lt;신만이 아신다&gt;, 유리, 양, 포름알데히드 용액, p.155<br>-&lt;신의 사랑을 위하여&gt;와 함께 한 작가, p.182<br>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전시되는 &lt;데이미언 허스트전&gt;을 보러가기 위해 작가와 작품에 대해 먼저 알고 싶었다. (이번 전시는 국립국어원의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데미언 허스트를 ‘데이미언 허스트’로 표기했다.) 책을 읽고 인터넷 검색을 했다. 책에 비해 다른 매체에서는 이 작가에 대한 비판이 많았다. 너무 상업적이라는 것과 그것을 위한 작가의 비도덕적인 사건도 있었다. 특히 예술을 표현하기 위해 인골이나 곤충의 박제, 포름알데히드 용액에 담구는 동물을 이용하는 것에 많은 비판이 있었다.&nbsp;이런 이유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데미언 허스트의 작품을 전시하는 것이 맞는가에 대한 논란도 많았다. 국립현대미술관은 관람료를 8000원으로 저렴하게 책정했고, 오디오 가이드도 무료로 제공해 다른 미술관에 비해 상업적인 것을 지양하는 인상을 주었지만, 그것만으로 모든 비용이 충당되었는지, 아니면 부족분을 국민의 세금으로 상쇄시켰는지는 잘 모르겠다.      &nbsp;데미언 허스트 작가의 작품에 대한 호기심과 너무 돈을 밝히는 것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양가감정으로 전시회 관람을 시작했지만, 완전히 그의 작품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데미언의 창의력에 놀랐고, 그가 추구하는 예술적 의미에 공감했다. 삶과 죽음에 대한 아이러니를 이렇게나 다양한 모습으로 표현할 수 있는 작가의 천재성에 감탄했다. 주제가 작가 자신에게 머물지 않고 사회적 문제와 철학으로 확대되는 것에 생각할 것도 많았다. 무엇보다 작가의 메시지가 잘 이해되는 것이 좋았다. 지난겨울 관람한 &lt;장 미쉘 바스키아&gt;의 작품은 너무 어려워 하나도 이해하지 못한 것과 대조적이었다.   <br>데미언 허스트는 현대 미술의 판도를 뒤바꿔 놓았지만, 가장 논쟁적인 인물 중 하나이다. 이번 전시의 여러 섹션 중 &lt;모든 질문에는 의심이 따른다&gt;는 그의 20대 시절에 제작한 작품을 모아 놓았다. 회화의 소재가 너무 많은 것에 길을 잃은 허스트는 콜라주 시리즈 돌파구를 찾는다. ‘스팟 페인팅’은 한 화면 안에 같은 색을 반복하지 않으며 점 사이에 똑같은 간격을 유지한다. 여기에서 나중에 알약 시리즈로 확대해 나간다. ‘스핀 페인팅’은 1994년부터 연작 시리즈로 시작했으며 모터를 이용해 캔버스를 회전시키며 그 위에 물감을 뿌린다. 스팟 페인팅이 철저히 계산된 것이라면 스핀 페인팅은 우연성과 즉흥성을 표현한다.<br>-’살아있는 자의 마음 속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이 유리 상자는 20톤이 넘고 길이 4m가 넘는 상어가 포름알데히드 용액에 담겨있다.  <br>-’천년‘이 상자 앞에 서면 뭔가 썩어가는 냄새가 난다. 두 개로 나뉘어진 부분 중 한 쪽은 죽은 소의 머리와 피가 있고, 다른 쪽은 구더기들이 파리로 부화한다. 두 쪽의 가운데에 나 있는 구멍으로 부화한 파리는 죽은 소의 머리로 갈 수 있다. 거기에서 영양을 섭취한 파리는 빛에 이끌려 위쪽의 보라색 전기 살충기로 가 죽는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삶과 죽음의 순환을 우리는 이 상자를 통해 보게 된다. 애써 잊으려고 하는 죽음을 적나라하게 나타내고 죽음으로 인해 또 누군가는 생명을 얻으며 그 또한 허망한 죽음을 향해 질주한다. &nbsp;&lt;우리는 시간 속에 산다&gt;는 거대한 유리 상자 안에 내용물을 넣어 관객을 철저히 관찰자적인 입장에서만 작품을 감상하게 한다. 여기서는 주로 죽음에 대한 메시지를 준다. 우리는 누구나 죽는 줄 알지만 그 실체에 대해 경험하지 못한 채 마치 그것이 없는 듯 살아간다.    <br><br><br>-‘신의 사랑을 위해’18세기에 실제 살았던 사람의 두개골을 백금으로 주조하고 8601개의 다이아몬드를 붙였다. 치아는 원래의 것을 살리기로 해 전문적인 세척을 거쳐 다시 이식했다. 두 개의 상반된 이미지를 통해 죽음을 화려하게 치장했지만 결국 우리는 죽을 수밖에 없고 죽으면 누구나 해골의 상태로 남을 뿐이다. <br><br>-사람과 동물의 겉모습은 매끄럽고 아름답지만 피부를 한 꺼풀만 벗기면, 뼈와 혈관, 근육으로 이루어진 물리적 조직체에 불과하다. 하나의 작품에 안과 밖의 두 가지 모습을 보여 줌으로써 역시 죽음을 상기시킨다.<br>-‘벚꽃 시리즈’데미언의 어머니가 좋아했던 벚꽃<br>&lt;침묵의 사치&gt; 섹션은 이전에는 종교와 신을 숭배한 인간이 현대에는 의학과 돈을 맹신한다는 의미의 작품들이 있다. 종교와 과학이 만난 인간의 욕망의 허망함을 보여준다.&nbsp;**전시 작품에 대한 설명은 ‘오디오 가이드’중 일부분을 인용했다. <br>전시회장을 나와 뜨끈한 수제비와 기름진 빈대떡을 먹었다. 데미언 허스트의 작품과 그가 말해주는 죽음의 이미지가 너무 강렬했기 때문이다. 언젠가, 어쨌든 죽을 수밖에 없는 내가 왜 이리 온갖 감정과 고통을 가지고 아등바등 살아가고 있는지 많이 허망했다. 그 헛헛함을 일단 따뜻한 국물과 기름으로 채워야 할 것 같았다. 돌아서면 언제 죽음을 생각했냐는 듯 다시 욕망 가득한 삶을 살겠지만, 그럼에도 전시회장에서 잠시 겸손했고 평화로웠다.&nbsp;&nbsp;<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4672/41/cover150/896053660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46724163</link></image></item><item><author>페넬로페</author><category>페이퍼</category><title>시와 가벼운 단상</title><link>https://blog.aladin.co.kr/714542162/17293233</link><pubDate>Sat, 23 May 2026 18:0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14542162/17293233</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6606056&TPaperId=1729323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9120/56/coveroff/8956606056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0121617&TPaperId=1729323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9/84/coveroff/8970121617_1.gif"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15880&TPaperId=1729323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55/19/coveroff/8932015880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5267&TPaperId=1729323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67/80/coveroff/8932045267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 <br><br><br><br><br><br><br><br><br><br><br><br><br><br>Jtbc 드라마 &lt;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gt;에서 배우 장미란(한선화 분)은 황동만(구교환 분)의 집에 놀러간다. 술을 마시다 미란은 동만의 작업실에 가본다. 원룸 같은 좁은 집의 베란다 한 구석에 동만은 글을 쓰는 공간을 마련해 두고 있다. 난방도 들어오지 않는 추운 곳이다. 미란은 그곳 책장에서 동만의 형인 황진만(박해준 분)의 시집 &lt;어딘가 묻어 있는 잘못&gt;을 꺼내 읽는다. 무심코 읽던 미란은 눈물을 흘린다. 진만의 시에 위로받은 미란은 위스키(분명 비싼 술일 것 같다)를 사서 진만을 찾아간다. 매번 소주만 마시는 진만에게 미란의 마음이 주는 감사였다.&nbsp;오랜만에 시를 읽었다. 한 때 윤후명 작가의 소설을 거의 다 읽은 적이 있다. 제목은 알아도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의 소설이 쉽지는 않았다. 작가가 영면하신지 1주년이 되었다는 잠자냥 님의 글을 읽고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행간과 은유와 상징을 애써 찾아보지 않고 그저 소리내서 읽었다. 그런 것을 알려고 하면 시를 어려워하는 내가 이 책을 끝까지 읽지 못할 것 같았다. 그냥 미란처럼 읽었다. 그러자 나도 미란이 되었다. 글이 이미지가 되고 나는 작가의 길을 따라가고 있었다. 강릉과 부산, 부암동, 서촌, 고흐와 테오가 잠든 오베르 쉬르 우아즈의 무덤이 생각났고, 하얼빈, 차마고도, 둔황, 키르기스스탄의 이식쿨호, 파미르고원, 황하를 상상했다. 시에 윤후명 삶의 궤적이 있었다. 시라는 형식을 빌려와 압축만 시켰지 ‘그냥 나 여기 있소‘ 라고 작가는 말하고 있었다. 시는 그저 짧을 글일 뿐이지, 우주처럼 크고 웅장하다.   &nbsp;강릉에서 태어난 윤후명은 196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 ‘빙하의 새’가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많은 양의 시와 소설을 집필했고, 그림도 그렸다. 작가가 화가로 활동했다는 사실은 이제야 알게 되었다. ’윤후명 시의 주된 키워드는 ‘길’이다. 더 정확하게는 떠남과 귀환이 한 몸이 되는 길, 멀리 갈수록 자기 자신의 기원과 더 가까워지는 길이다(p.107)'라는 문학평론가 허희의 해설처럼 이 시집에는 여러 장소가 나온다. 작가 자신뿐만 아니라, 어머니와 새아버지, 친구, 스승, 다른 작가가 지나온 장소이다. &nbsp;1998년 개봉한 홍상수 감독의 영화 &lt;강원도의 힘&gt;을 보고 나의 지인은 ‘우리는 왜 강원도란 말만 들어도 주눅 들며, 지고 마는 걸까?’라며 자조 섞인 말을 한 적이 있다. 그 말을 듣고 우리는 한참 웃었고 수긍했다. 지금도 난 강원도의 힘을 믿으며 그곳을 좋아한다. 언제 가도 변함없는 산과 바다가 좋다. 윤후명의 고향은 강원도 강릉이다. 이 시집에는 강릉과 연어가 거슬러 올라오는 남대천에 관한 것이 많다. 그에게 강원도는 전쟁, 가난을 거쳐 살아 온, 어머니가 계셨던 삶의 현장이다. 그곳의 모든 것이 작가와 연결된다. &nbsp;나의 시어머니는 투 머치 토커에 해당되는 분이시다.  결혼하고 어머니를 뵐 때마다 어머니는 나에게 쉴새 없이 당신이 살아 온 이야기를 해주셨다. 이야기를 들어 줄 새 대상이 생겨 좋으셨나 보다. 어머니의 말씀은 재미있었고, 난 항상 감탄하며 넉넉한 추임새를 넣어 주었다. 시댁 식구들은 강원도에 산 적이 있다. 어머니는 그 시절의 얘기도 많이 들려주셨다. 한 번은 장독을 사러 기차를 타고 장에 다녀왔는데, 집에 돌아와 장독을 보니 거기에 미세한 구멍이 있었다고 했다. 그 당시 어머니가 느꼈을 속상함과 허무함이 시처럼 아득하게 보였다.     &nbsp;어머니는 이제 거동도 잘 못하시고, 귀가 안 들려 내가 가도 아무 말씀도 하지 않는다. 나이 든 시인은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를 그리워하고, 윤동주, 미당, 목월, 이상과 구보, 동리, 김춘수, 김민기, 박완서, 이미륵을 생각한다. 팔순에 이르렀지만, 아득하고 자신이 어디 있는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어디론가 걸어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시인과 내 엄마는 떠나고 아직 시어머니는 살아 계신다. <br>윤후명의 시를 읽으려고 그랬는지 마침 지난주에 부암동에 다녀왔다. ‘오징어 배를 탄 랭보’에서 시인은 ‘시를 이해하려고 한 것부터가 잘못이었다(p.49)'고 했다. 이해하려 하지 않아도 이 시집이 잘 읽히고 이해되어 시인에게 고맙다. 시 ‘두둥실 두리둥실’을 읽고 나도 오랜만에 ‘사공의 노래’를 듣고 따라 불렀다.&nbsp;[풀밭 길&nbsp;풀꽃 핀 풀밭 길로 가고 싶다노란 꽃, 파란 꽃, 붉은 꽃 흐리게나마 피어가끔 마주치는 길이기를 바란다내 발길이 그 옆에 놓여신발을 벗어놓을 길이기를 바란다그동안 멀고 먼 길을 걸어왔건만’이건 내 길‘이라고 할 길은 어디에도 없었다그렇다면 그 험한 길이 모두 ’이건 내 길‘이었던가신발을 벗어놓고 그 길로 들어가고 싶었던 길비밀의 문이 없어도아무도 몰래 들어가 언제까지 있어도 좋을풀밭 길로 가고 싶다거기서 어디론가 사라져도 좋을풀밭 길로 가고 싶다’이건 내 길‘로 어느덧 가고 싶다 -p.24]<br>   <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67/80/cover150/893204526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1678011</link></image></item><item><author>페넬로페</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생애 전환에 동의하십니까” - [찰스 부코스키 타자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14542162/17287351</link><pubDate>Wed, 20 May 2026 12:3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14542162/1728735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42032113&TPaperId=1728735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488/3/coveroff/k04203211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42032113&TPaperId=1728735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찰스 부코스키 타자기</a><br/>박지영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10월<br/></td></tr></table><br/>‘찰스 부코스키’의 작품을 아직 읽지 않아 작가에 대해 잘 모른다. 어쩌면 앞으로 그의 작품을 읽지 않을 수도 있고, 읽더라도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어떤 소설의 제목에 ‘찰스 부코스키’라는, 살아있는 작가의 이름이 들어 있어 흥미로웠다. 『찰스 부코스키 타자기』는 순전히 제목 때문에 읽은 책이다. 박지영 작가에게 ‘찰스 부코스키’가 주는 의미는 무엇이며, 왜 제목에 그의 이름을 넣었는지 궁금했다. 사실 『찰스 부코스키 타자기』를 읽다보면 ‘찰스 부코스키’보다 ‘타자기’가 더 중요한 단어라는 걸 알게 되지만 왜 하필 찰스 부코스키였을까?&nbsp;생애전환기 건강검진은 만 40세와 만 66세에 해당하는 건강보험 가입자와 의료급여 수급권자를 대상으로 하는 건강검진 프로그램이다. 이 소설은 두 번째 생애전환기 건강검진으로 시작된다. ‘건강’과 ‘60여 년의 생’이라는 단어에서 이 단편 전체가 노년에 대해 서술된 것 인줄 알았다. 몸의 쇠락, 가난과 소외, 외로움에 대한 노년의 삶을 이해하지만 지겨운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첫 부분에서부터 너무 흥미로운 내용이 나와 생각할 것이 많았다. 책을 읽는 동안 ‘나’를 거기에 대입시키고 상상할 수 있는 부분이 있어 재미있기도 했다.  &nbsp;소설 속 두 번의 생애전환기에는 ‘다음 생은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자율적으로 선택 가능(p.13)'하다. ’생애 전환 시행령‘이 국민 법안으로 채택된 후, 첫 번째 생애전환기(만 40세)에는 이대로 계속 살 것인가, 아니면 전환 할 것인가의 가부를 결정한다. 이때 바로 전환된 생으로 넘어가는 사람도 있다. 평균수명 120세를 기준으로 보통 두 번째 생애전환기(만 66세)에 전환을 많이 한다. 그때 자신이 최종 선택한 형태의 삶으로 전환된다. &nbsp;평균수명이 늘어남에 따라 늙어간다는 건 어느새 재앙이 되었다. 병을 달고 사는 세월이 길어지고, 그 기간만큼 다른 사람의 도움과 의료비용을 필요로 한다. 국가적 차원에서 늙음을 관리하기 위해 보편적으로 부담해야 할 세금도 매년 증가한다. 개인적으로도 늙음은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들며 삶에 대한 의미를 없애버린다. 이러한 여러 가지 이유로 나머지 삶을 사람이 아닌 다른 것으로 전환해 살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하지만 합리적이고 좋은 이유에도 많은 변수가 작용한다. 사회적 비용과 전환을 원하는 것에 대한 적절한 배분, 그것에 대한 관리 등, 어쨌든 이 제도도 국가의 관리 하에 엄격하게 통제되어야 하는 것이다. 즉 내가 전환하고 싶은 것으로 무조건 바뀌는 것도 아니고, 전환하고 싶지 않다는 인간의 의지도 사회적 비용 때문에 비판받을 수 있다.  &nbsp;60년의 삶을 그저 그렇게, 평생 과민성대장증후군을 달고 산 승혜는 두 번째 생애전환기 건강검진을 앞두고 있다. 첫 번째 생애전환기에 이미 전환하겠다고 정해 놓았다. 미리 다른 종으로의 전환을 선택해 노후 자금을 마련하지 않아도 되어 보다 여유 있게 살아왔다. 노인이 되어 가난하게 홀로 아프게 살기 싫어 별 고민 없이 전환을 선택했다. 전환을 결정하면 3지망까지 희망하는 생을 적어야 한다. 승혜가 1지망으로 적은 것은 맥반석이었다. 맥반석 정도는 쉽게 될 줄 알고, 2,3 지망은 적지 않았다. &nbsp;소설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난 이런 경우 어떤 결정을 할 것인지 생각했다. 나 역시 당연히 전환을 받아들일 것 같다. 복잡하고 깊이 생각할 것도 없이 내가 희망하는 1지망의 생은 벚나무가 되는 것이다. 높이 자라는 나무가 되는 것도 좋고, 봄이면 아름다운 꽃을 피워서도 멋지다. 잎이 하나하나 떨어져 땅에 모여지는 모습도 아름답다. 여름이면 잎이 무성해진 벚나무는 사람들에게 그늘을 만들어준다. 가을에 곱게 물든 잎은 낙엽이 되어 거리를 풍성하고도 운치 있게 만든다. 2지망은 소설이 쓰여지는 ‘종이’다. 3지망은 천천히 좀 더 생각해봐야겠다.   &nbsp;승혜는 맥반석으로의 전환을 거부당한다. 어, 그러면 나도 벚나무로의 전환이 쉽지 않을 것 같다. 세상과 사람에 대해 준 게 별로 없기에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그늘을 만들어주며 예쁜 낙엽이 되는 벚나무로 전환되는 것이 거부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인간에서 다른 것으로의 전환도 어려운 결정인데 원하는 것이 바로 채택되지 않는 것 또한 힘들 것이다. 생태계의 균형과 소요될 자원이나 비용을 고려해야 하는 지구인의 삶은 언제, 어디서든 만만치 않다. 결국 승혜는 ‘타자기’로의 생을 부여받는다. 똑같은 무생물이지만 자연 상태의 무생물로의 전환은 더 까다로운 조건이 필요했다. 타자기가 된 승혜는 ‘기억예치소’라는 곳에 있다가 여름이 지난 바닷가에서 해변의 타자기가 되어 생을 마감한다. 이 과정에서 아름다운 얘기가 너무나 많다.   &nbsp;작가의 말에서 박지영 작가는 ‘너는 늙어서 뭐가 될래?’라고 묻는다면 해변의 타자기가 되고 싶다고 했다. 작가 아버지의 말의 잃어버림, 자신의 노화를 겪으며 ‘불안과 소멸의 방식을 농담의 형태로 고민(97)'해 보고 싶었다고 했는데 그것이 이처럼 좋은 소설로 승화된 것 같다. 상상된 재미있는 소재로 인간의 존엄과 늙음에 대해 깊이 고민한 흔적이 보인다. 마냥 무겁게 느껴지는 늙음을 이 책이 잠시나마 경쾌하게 해주었다. 기능을 잃어가는 육신보다 쓸쓸하지만 해변의 모래를 뒤집어 쓴 타자기로 남는 것이 더 견디기에 낫다는 생각을 해본다.&nbsp;밥을 먹다 남편과 딸아이에게 이 소설의 내용을 들려주며, 당신들은 무엇으로 생애 전환을 하고 싶은가 물었다. 남편은 ’독수리‘라고 했고, 딸아이는 ’큰 고래‘라고 했다. 그들은 상상의 나래를 펴며 독수리와 고래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했다. 다른 인간으로의 전환을 말하지 않는 것에 다소 안도했지만 그래도 내 가족의 열정과 그에 따른 피로가 느껴져 마음속으로 웃었다. 나의 벚나무와 함께. &nbsp;’찰스 부코스키‘는 타자기를 사랑했던 여러 작가 중 한 명이다.  &nbsp;[온점. 마침표.그것이 인간 여자 고승혜가 해변의 타자기의 생을 거쳐 전환된 마지막 생의 모습이었다. 마침내 승혜는 고요히 단단하고 가장 강한 작은 돌, 하나의 마침표로 남았다. -p,92]&nbsp;고요히 단단하고 강한 온점. 마침표. 전환하지 못할 내 삶도 그렇게 온점을 찍으며 마칠 수 있기를 바란다.&nbsp;   &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488/3/cover150/k04203211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4880344</link></image></item><item><author>페넬로페</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안나와 레빈-성장의 두 가지 모습 - [안나 카레니나 2]</title><link>https://blog.aladin.co.kr/714542162/17275891</link><pubDate>Thu, 14 May 2026 12:2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14542162/1727589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2206&TPaperId=1727589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61/57/coveroff/s07263510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2206&TPaperId=1727589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안나 카레니나 2</a><br/>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연진희 옮김 / 민음사 / 2009년 09월<br/></td></tr></table><br/>분량이 많은 소설은 여러 가지 이유로 거의 나뉘어 출간된다. 분절된 책은 가벼워 읽고 휴대하기 편하지만, 1권을 읽고 바로 2권을 시작하지 않으면 위험할 수 있다. 가뜩이나 벽돌책은 앞의 내용과 뒤를 연결하기 쉽지 않은데, 읽기를 잠깐만 쉬어버려도 소설의 흐름을 따라잡기 힘들다. 그러나 『안나 카레니나』는 1권을 읽고 거의 한 달 반 만에 2권을 읽었지만 괜찮았다. 내용이 어렵지 않아 잘 연결되었고, 2권만을 독자적으로 떼어놓아도 완성도가 높았다. 레프 톨스토이의 &lt;안나 카레니나&gt;가 대작인 이유는 소설의 그 어느 부분에서도 형식이나 내용이 느슨해지지 않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재독이라 내용은 알고 있었지만, 읽을수록 이 책에 이런 내용이 있었나싶게 새로운 것이 많았다.&nbsp;사랑을 느끼는 것은 잠깐이다. 사랑은 대상을 향하지만, 어떤 사람의 숨겨진 내면의 모습도  들어있다. 안나에게 폭풍처럼 들이닥친 사랑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고, 존재를 자각하게 한다. 안나에게 남편 카레닌은 아들 세료자의 아버지라는 역할 말고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것을 알게 된 이상 다시 카레닌에게 돌아갈 수는 없다. 안나는 거짓된 삶을 계속 살수 없었다. 찰나적으로 시작된 사랑은 안나를 카레닌의 둥지에서 벗어나 브론스키의 둥지로 옮겨가게 만든다. 그것은 여성으로서, 시대적 한계로써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브론스키 역시 남자라는 사실이 안나를 불행하게 할 것이다. 안나가 여자이기에 그녀가 추구하는 삶은 자립적이지 못하다.&nbsp;이 소설의 실제 주인공은 톨스토이의 삶이 투영된 레빈이라고도 한다. 그는 자신의 영지에서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농업 혁명을 시도하지만 자주 벽에 부딪힌다. 농노 해방이후, 농민은 아직 농노와 노동자 사이에 어정쩡하게 존재하고 있다. 그들을 노동자나 민중으로 인식해 앞서나가는 레빈에 비해 농부들은 전근대적인 생각과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민중을 사랑하지만, 그들의 ‘만사태평과 방종과 만취와 거짓말(p.12)’에 레빈은 좌절하기도 한다. 많은 시행착오를 겪지만 그럼에도 레빈은 농부의 생명력을 사랑하고, 그들을 향한 이해로 다가간다. ‘개인의 이해와 공공의 이해 사이에 놓인 필연적인 연관을 찾기 위해(p.30)' 분투한다. &nbsp;레빈과 농부들이 함께 풀베기를 하는 모습은 압도적이다. 이론적인 레빈에게 낫을 휘두르는 솜씨와 더위는 두려움의 대상이다. 지치지 않고 화살처럼 똑바르게 풀을 베어 나가는 농부의 관록에서 레빈은 경외심과 노동의 참모습을 본다. 그들과 점심을 먹고 크바스를 마시며 행복을 느끼고, 그들과 가까워진다. 소설에서 이 풀베기의 장면은 시각적이고도 웅장하다. 레빈이 자신이 아닌, 농부의 시선에서 ‘개혁’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nbsp;안나에게 직접 임신 사실과 결별 통보를 들은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 카레닌의 심리 변화도 재미있고 현실적이다. 한 치의 흔들림도 없던 자신의 삶에 균열을 가져 온 안나에게 카레닌은 ‘그녀가 잘못했다‘고 단정하며 안나를 벌하기로 한다. 안나와 브론스키의 행복한 생활을 용납하지 않고 사교계에 알려지기도 원치 않는다. 그는 이전의 생활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안나를 사랑해서가 아닌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서다. 안나가 그것을 거부하자 카레닌은 안나에게 치욕과 고통을 주기 위해 이혼을 원한다. 조건은 아들의 양육권을 주지 않는 것이다. 안나가 브론스키의 아이를 낳다가 거의 죽음 직전까지 가자 카레닌은 그녀에 대해 연민을 갖지만, 안나가 회복되자 다시 안나를 고립시킨다.&nbsp;<br>밀란 쿤데라의 소설, &lt;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gt;에서 작가는 테레자와 토마시의 반려견에게 ‘카레닌’이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여기에 많은 의미가 있겠지만, 밀란 쿤데라가 카레닌을 싫어해서 개에게 그의 이름을 붙여 주었다는 말도 있다. 오죽했으면 그랬을까!&nbsp;사랑의 시작은 순간적이지만 그것을 지켜내는 데엔 많은 조건이 필요하다. 결혼이라는 법적인 제도뿐 아니라 사회적 관습과 사교계의 시선, 자녀와 경제적 능력 등 여러 요소가 안정적으로 결합될 때, 사랑은 유지된다. 불륜으로 시작된 안나와 브론스키의 사랑은 위태롭다. 공교롭게도 브론스키와 카레닌의 지위 역시 위협받는다. 어느 것 하나 그들에게 유리한 것이 없다. 안나와 브론스키의 사랑은 확고하지만, 그들을 둘러싼 모든 것이 불리해지자 안나의 마음은 흔들리고 불안해진다.&nbsp;<br>톨스토이는 카레닌의 심리 변화뿐만 아니라 안나의 마음과 생각의 변화도 탁월하게 묘사한다. 안나가 받은 모욕과 수치는 그녀를 고립시킨다. 그로 인해 야기된 불안은 안나를 피폐하게 만들어 브론스키와의 관계를 위태롭게 한다. 자신의 의도와 선택에 의해 안나는 점점 파멸되어 가지만, 그녀가 여성이었기에 짊어져야 할 무게와 편견, 비난은 분명 공평하지 않다. 만약 카레닌이 불륜을 저질렀다면 안나와 같은 무게를 짊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안나의 오빠인 스테판 오블론스키의 경우를 봐도 이것은 분명하다. &nbsp;작가 톨스토이는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서도 그랬지만, &lt;안나 카레니나&gt;에서도 ‘죽음’에 대해 명쾌하게 서술한다. 레빈의 형, 니콜라이 레빈의 죽음을 통해 톨스토이는 죽음을 대하는 인간의 여러 태도에 대해 묘사한다. 니콜라이는 자신의 죽음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면서도 삶에 대한 강한 의지를 가진다. 그런 니콜라이의 죽음 앞에 레빈은 쉽게 다가가지 못하지만, 키티와 마리야 니콜라예브나는 침착하고도 지혜롭게 대처한다. 그들은 죽음이라는 현상을 의심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는다. 죽음을 앞둔 인간의 고통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환자도 힘들지만, 그것을 고스란히 받아내야 하는 건강한 사람의 견딤과 상실감도 힘들 수밖에 없다. 레빈은 형과 키티를 통해 죽음을 받아들이고 ‘죽음이 존재한다 할지라도 살고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닫는다(p.563).‘ 레빈은 형의 죽음을 통해 오히려 사랑과 삶에 강하게 이끌린다. &nbsp;안나는 카레닌이 허락하지 않았음에도 아들 세료자를 보러 카레닌의 집으로 간다. 안나의 사랑으로 카레닌은 세료자를 다정하게 대하지 않고 다그친다. 안나의 사랑을 응원하지만, 앞으로 세료자에게 닥칠 상황을 생각하면 안타깝다. 안나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리디야 이바노브나 백작부인도 혐오스럽다. 도대체 자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안나는 이탈리아 오페라 가수인 카를로타 파티의 공연을 보러가고 싶었지만 브론스키는 반대한다. 혼자 그곳을 간 안나는 모든 사교계 사람들이 그녀를 무시하고 혐오한다는 것을 느낀다. 안나는 브론스키와의 관계가 삐걱대기 시작한다고 생각하고, 브론스키 역시 안나를 이해하지 못한다. 사랑했을 때의 안나의 똑같은 행동과 표정에 이제는 분노와 증오를 느낀다. 그의 마음에 짜증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nbsp;이 소설의 두 주인공인 안나와 레빈은 성장 중이다. 안나는 자신에게 돌아가고 있고, 레빈은 이론과 사상에서 현실을 받아들이고 있다. 방식은 다르지만 둘 다 삶과 사람을 사랑한다. 다만 그들의 성장이 파멸과 결실로 끝맺을 것 같다는 나쁜 예감이 든다. 안나에게 ‘성장’의 다른 말은 불행일지도 모른다. 여자인 안나에게 그 시대는 불리했고 지금도 여전하다. &nbsp;[“알고 싶지 않아요. 내가 한 일을 후회하냐고요? 아뇨, 아니에요, 정말 아니에요. 다시 똑같은 상황으로 돌아간다 해도, 똑같이 할 거예요. 우리에게, 나에게, 그리고 당신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하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있는가예요. 다른 것은 생각할 것도 없어요. 도대체 무엇 때문에 우리는 이곳에서 따로 지내고 서로 만나지도 않는 거죠? 왜 난 갈 수 없다는 거예요? 난 당신을 사랑해요. 아무래도 상관없어요."&nbsp;그녀는 눈동자에 그가 이해할 수 없는 독특한 광채를 띠고 그를 쳐다보며 러시아어로 말했다."만약 당신의 마음이 변하지 않았다면요. 당신은 도대체 왜 날 바라보지 않는 거죠?"-p.643~644]&nbsp; &nbsp;&nbsp;&nbsp; &nbsp; &nbsp; &nbsp; &nbsp;&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61/57/cover150/s07263510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615795</link></image></item><item><author>페넬로페</author><category>페이퍼</category><title>다리에서 바라본 비극의 모습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14542162/17255737</link><pubDate>Sun, 03 May 2026 20:5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14542162/17255737</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92031494&TPaperId=1725573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203/62/coveroff/k292031494_3.jpg" width="75" border="0"></a>&nbsp;<br/><br/> <br><br><br><br><br><br><br><br><br><br><br><br>나에게 비극 읽기의 시작은 고대 그리스 비극과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이었다. 그래서인지 작품에 애통함과 절절함, 다수의 죽음이 있어야 비로소 비극으로 인식된다. ‘아서 밀러’의 『다리에서 바라본 풍경』은 분명 비극이지만, 내가 읽은 고전에 비해 조금 단순하며 담백한 느낌이 들었다. 쉽게 읽혀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고 독파할 수 있었다. 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감정들과 집착, 그것으로 인해 모든 것이 파멸되는 비극의 전통적 요소가 들어 있었고, 뉴욕 브루클린 노동자 집단의 삶을 통해 장소와 시대가 주는 한계도 잘 녹아 있었다.&nbsp;극에서 비극으로 치닫는 이유는 다양하다. 운명과 예언, 탐욕과 질투, 야망과 주변 사람들의 부추김, 복수 등이다. 보통 이런 이유들과 많은 인물들이 얽혀 극은 절정으로 향한다. 모든 것이 허무하게 끝난 다음에야 잘못된 것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비극의 끝은 모두가 파멸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사실 시작은 한 사람의 악마적 욕망이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 &nbsp;『다리에서 바라본 풍경』 역시 주인공인 &lt;에디 카본&gt;의 성격적 결함이 결정적이다. 특히 여기엔 다른 고전 비극에서 볼 수 있는 조력자나 이간질을 하는 선동자가 전혀 없다. 철저히 에디 카본 스스로 모든 잘못을 하며 그의 심리 변화로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 모두를 고통에 빠뜨린다. 그래서인지 이 희곡은 고대 희랍 비극의 구성을 가져와 코러스 역할을 하는 변호사 &lt;앨피에리&gt;를 등장시킨다. 그는 독백으로 에디의 행동에 대해 설명하고 경고도 하며, 직접 찾아와 호소하는 에디에게 법적으로 해결할 일은 하나도 없다고 냉정하게 말한다. 법은 결과론적 사건에 대해서만 적용될 뿐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nbsp;뉴욕 브루클린 항만 근처인 레드훅이라는, 부두에서 일하는 일용직 노동자들이 모여 사는 슬럼가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을 바탕으로 써진 이 극은 한 인간이 갖는 감정의 변화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보여준다. 보호와 안전이라는 미명아래 덧씌워진 것은 실제로 질투와 집착의 촘촘한 그물이 되고 그것은 어떤 것도 허용되지 않는 아집으로 변형된다. 극도의 가난으로 미국으로 밀항한 이탈리아 노동자들의 열악한 처지 역시 약자에게 주어진 ‘선택 없음’을 대변한다. 이 모든 대립과 갈등은 끝까지 가야 직성이 풀리는 인간의 막장을 보여준다. 그래서 코러스 앨피에리는 계속 ‘중간’을 강조한다.    &nbsp;[앨피에리 : 요즘 우리는 대개 중간쯤에서 타협을 하고 나는 그것이 더 좋습니다. 그러나 진리는 거룩하며 나는 그(에디 카본)가 얼마나 잘못했는지, 그의 죽음이 얼마나 허망한지를 알면서도 전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를 기억할 때 뭔가 삐뚤어지게 순수한 무언가가-순수한 선이 아니라 순수한 그가-생각난다는 걸 고백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에 대한 진실을 온전하게 밝혔고 그래서 나는 모든 지각 있는 의뢰인들보다 그를 더 사랑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중간쯤에서 타협하는 게 훨씬 낫고 당연히 그래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일종의…경각심을 가지고 그를 애도합니다.-p.158]&nbsp;앨피에리가 말한 것처럼 에디 카본의 죽음은 정말 허망한가? 에디의 비극은 결국 자신의 성적인 욕망을 제어하지 못해 질투로 일어난 일이다. 오셀로에게는 천하의 악인, 이야고가 있었지만, 에디는 온전히 자신만의 도덕적 결함으로 주위 사람들과 자신을 파괴한다. 어쩌면 자신에게만 순수한 이 남자의 죽음으로써의 결말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nbsp;마음이 힘들어 내가 나를 제어할 수 없을 때, 심지어 견딜 수 없는 수치와 모멸감을 느꼈을 때조차, 우리는 언제나 품위를 잃지 말아야 한다. 삶은 내 맘대로 되지 않고, 세상은 나에게 무수히 좌절을 주지만, 비극으로 가지 않는 길은 결국 나 자신에게 달려 있다.    &nbsp;작가 아서 밀러는 이 희곡에 서문을 첨가했다. 작가의 생각과 관점인 담긴 희곡이 연극으로 상연되었을 때, 그것은 작가의 의도 그대로 유지될 수 없다. 무대 장치, 배우가 말하는 방법과 액션의 디테일에 따라 극의 모습과 의미는 무수히 달라질 수 있다. 아서 밀러는 서문에서 그것을 인정한 듯하다. &nbsp;[에디는 여전히 눈물의 대상이 되는 남자는 아니다. 이 극은 관객을 눈물바다에 빠뜨리려는 시도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행동을 우리의 행동과 연관시키고, 우리 자신을 고립된 심리적 개체로서뿐 아니라 우리의 동료나 과거와 연결된 존재로 바라볼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p.11, 작가 서문 중에서.] <br>오랜만에 혼자 연극을 보고 왔다. 명동예술극장에서 상연된 국립극단의 &lt;그의 어머니(Mother of Him)&gt;이다. 영국 극작가 ‘에반 플레이시’의 희곡인데 국내에 아직 책으로 번역되어 있지는 않다. ‘다리에서 바라본 풍경’처럼 이 극도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다리에서 바라본 풍경’이 기승전결의 성격을 뛴다면 ‘그의 어머니’는 사건의 결과를 먼저 말해주고 시작한다.&nbsp;브렌다의 장남인 매튜(미성년자)는 하룻밤 사이 세 여자를 강간한다. 연극은 이 엄청난 사건 후, 가택연금 중인 매튜와 그와 같은 공간에서 살아야하는 엄마 브렌다, 동생 제이슨의 일상에서 시작된다. 집 앞에는 엄청난 취재진들이 몰려와있다. 매튜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는 설명되지 않는다. 사건의 원인은 매튜와 브렌다가 아닌 기자들에 의해 파헤쳐진다. &nbsp;그들은 점점 매튜보다 브렌다에게 초점을 맞춘다. 브렌다를 아는 모든 사람을 인터뷰해 과거에 그녀가 했던 말까지 가져와, 사건의 원인을 브렌다에게로 가져간다. 점점 지쳐가는 브렌다는 엄마로서 매튜를 지켜야하지만 실제 감정은 싸늘하게 식어간다. 또한 둘째 아들인 제이슨을 보호하고 정상적인 사람으로 키워내야 하기에 그를 구속하고 매튜와 연결되지 않게 한다. 차가워지고 상실감에 빠진 브렌다는 매튜를 변호사에게만 맡겨두지만, 결국 마지막에 용기를 내어 매튜와 함께 법정에 출석한다.    &nbsp;연극을 보는 내내 브렌다의 입장이 되었다. 답답했고, 벽이 느껴졌다. 도대체 세상은 왜 그렇게 엄마라는 존재에게 온갖 부담을 주는지 잘 모르겠다. 완벽하지 않더라도 최선을 다해 아이를 성장시키지 않는가? 아이의 모든 것의 결과의 원인은 왜 항상 엄마인지.....만약 내가 매튜의 엄마였다면 난 감당할 수 없었을 것이다. &nbsp;하지만 하룻밤에 세 여자를 강간한 매튜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에디 카본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서 원인을 분석해야하는지도 모른다. 책, 영화, 뉴스, 연극에서 파헤쳐지는 인간의 모순과 딜레마는 다양해 그것의 해석 역시 어렵다. 이런 이유로 비극은 한 없이 재생되고 우리는 힘들게 그 속에 들어가 또 다른 감정을 작동시킨다.&nbsp;비록 그것이 다리에서 바라본 풍경처럼 흐릿하고 주관적일지라도…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203/62/cover150/k292031494_3.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2036224</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