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집은 등장하는 인물과 그들의 이야기가 각기 다른데도, 읽다보면 그 단편들이 연결되어 마치 장편소설을 읽고 있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김연수 작가의 소설집인 이토록 평범한 미래가 그랬다. 작가가 시종일관 말하려는 것이 같았고,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이야기의 형식도 비슷해 그랬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사는 세계가 디스토피아에 가깝고 미래는 점점 더 비관적이지만 역설적이게도 김연수의 소설에는 끊임없이 희망이 있었다. 굳이 각 소설을 나누고 분리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희망, 미래, 낙관-

김연수는 우리의 삶이 결코 현재에만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황사영의 아내 정난주(난주의 바다 앞에서), 과거와 미래의 바르바라(다시, 2100년의 바르바라에게)처럼 우리는 과거와 미래에 철저히 연결되어 있다. 그 시간적 흐름에 긁히고 매몰되며 무수한 선택을 강요받는다. 작가는 거기에 희망이 우선되어야 하고 미래를 먼저 기억하라고 강조한다. “모든 글 쓰기는 글 짓기’(P.84)”라고 말한 대로 작가는 작정하고 우리들에게 그것이 옳다고, 그렇게 하자고 손을 내민다.

 

물론 맞다. 그렇지만 계속되는 작가의 타령에 조금 피곤했다. 요즘은 왠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힘들어졌다. 도대체 희망이라는 게 있기나 한 건지....세상 사람들이 바라보는 달의 크기와 희망의 방향이 너무 달라 혼란스럽고, 세상 어디에 나를 두어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이 소설을 읽으며 지인에게 추천받은 드라마, ‘어쩌다 마주친, 그대를 정주행했다. 드라마를 보면서 계속 기시감이 들었는데, 그건 김연수의 소설과 이 드라마의 분위기가 많이 닮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현재와 미래를 바꾸기 위해 자신들이 태어나기 전의 과거로 간 해준과 윤영은 그곳에서 만난 인물들의 삶을 바꾸려고 한다. 그러나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 뭔가를 바꿈으로 예상하지 못한 다른 불행한 일이 생긴다. 우여곡절 끝에 과거에서 결정적인 몇 가지를 바꾸고 다시 현재로 돌아 온 그들은 행복한 삶을 만나지만 더 완벽한 과거를 위해 다시 그곳으로 떠난다.

 

누군가가 과거로 돌아간다고 해서 모든 것을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과거를 바꿀 수 있는 사람은 미래를 아는 사람이어야만 한다. 드라마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할 때 김연수 작가의 소설이 계속 생각났다. 연수씨가 자기 말이 맞지 않냐고 하는 것 같았다. 희망을 위해 사람은 과거를 뒤돌아보고 미래를 먼저 정함으로 그렇게 갈 수 있지 않겠냐고....




 

 

 

 

 

 







유제프 차프스키의 무너지지 않기 위하여를 재독했다. 가을에 있을 도서관 북큐레이션에 동아리 회원들이 참여해야 한다고 해서 난 이 책을 선택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완독한 후에 다시 읽은 이 책의 느낌은 단지 기억만으로도 차프스키가 프루스트와 그의 글에 대한 완벽한 해석과 이해를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너지지 않기 위하여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꼭 연결되지 않아도 된다. 이유를 모르는 죽음 앞에서, 혹한에도 불구하고 하루 종일 노역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 저녁에 지친 몸으로 다닥다닥 붙어 앉아있다. 그들은 우리를 잠식하는 쇠약과 불안을 극복하고 뇌에 녹이 스는 것을 막기(P.10)’위해 강의를 듣는다. 군사학, 역사학, 문학 강의를 맡은 이들은 아무런 자료도 없이 오직 기억만으로 강의를 한다.

 

[우리는 지적 노동을 해서라도 무너지지 않아야 했다.

영하 45도까지 떨어지는 추위 속 노역으로 완전히 녹초가 된 채 마르크스와 엥겔스, 레닌의 초상화 밑에 다닥다닥 붙어 앉아, 당시 우리의 현실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주제에 대한 강의를 열중해 듣던 동료들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당시 나는 감동에 젖어 프루스트를 생각하곤 했다.

-P. 10, 12]

 

춥고 좁은 곳에서 지친 몸을 이끌고 눈을 반짝이며 강의를 듣고, 오직 기억으로만 강의를 하는 어느 포로수용소에서의 사람들....그것만으로도 숭고하다. 비관이 지배하는 곳에서도 희망과 미래를 포기하지 않는 그들이 대단해 보인다. 정말 희망이 맞을까? 김연수 작가가 다시 내게 다가온다. ‘자신의 말이 맞지 않냐고 웃으며 얘기한다.


비관과 희망 사이에 왔다 갔다 하다, 맥주를 두 캔이나 마셔버렸다.

 

그리고 밤 산책을 나섰다. 휘영청 밝기도 한 달이 떠 있다.

 

[우리가 달까지 갈 수는 없지만 갈 수 있다는 듯이 걸어갈 수는 있다. 달이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만 있다면. 마찬가지로 우리는 달까지 걸어가는 것처럼 살아갈 수 있다. 희망의 방향만 찾을 수 있다면.....

선생님, 저도 달을 향해 서 있고, 선생님도 또 저의 이웃들도 달을 향해 서 있어요. 모두가 각자의 달을 향해 서 있는 거예요. 그렇다면 달은 몇 개인가요? 저마다 각자의 달을 보고 있는 거라면 그건 아마도 달이 아닐 거예요.

-P.73~74, ‘진주의 결말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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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3-08-04 23:1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김연수 작가 이 소설집 처음 읽을 땐 비슷한 기분이었는데요...두번째 읽으니까 애쓰고 잘쓰긴 하더라구요 ㅋㅋㅋ 희망 없고 절망이니까 시궁창이니까 그냥 다 죽어...이거보다는 필요한 일인 것도 같아요. 그럼에도 나는 희망을 가지라고 해야지 계속 사랑하라고 해야지- 하는 작가들도 필요하긴 함...그마저 없으면 진짜 도처가 칼부림일 것 같은 어두운 밤입니다...

페넬로페 2023-08-05 00:12   좋아요 2 | URL
네, 저도 처음엔 약간 그런 기분으로 읽다가 두 번째에 집중해서 다시 읽었어요.
다시 읽으니 놓친 문장도 많이 보이고 작가가 말하고자 한 것도 조금은 알겠더라고요.
근데 제가 최근에 체호프의 세계에 빠져버려 약간 비교가 됐어요. 내용이 아닌 형식에서 연수작가가 더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세상이 왜이리 무서워지는지 모르겠어요 ㅠㅠ

얄라알라 2023-08-05 03: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달빛이 저리도 강렬했나요?^^ 밤산책 안전히, 시원히 다니시어요 페넬로페님

페넬로페 2023-08-05 07:36   좋아요 2 | URL
1일에 뜬 달이 슈퍼문이라고 하네요. 저 사진은 2일에 찍은건데 거의 슈퍼문에 가까운 달이었던 것 같아요. 정말 크고 선명했습니다.
여름이라 그런지 밤에도 사람이 많아요. 그래도 조심하겠습니다^^

독서괭 2023-08-05 06:4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이 글 넘 좋네요! 다른 책 이야기로 넘어갔나 싶었는데 <이토록 평범한 미래>로 귀결! 아 제가 이런 리뷰를 쓰고 싶었는데 말입니다..
장편인가, 지치는 느낌, - 이거 좀 공감하고요 ㅋㅋ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이야기하는 작가가 전 참 따뜻하게 느껴져서 좋더라고요^^ 마지막 인용문 가장 맘에 들었던 부분입니다!

페넬로페 2023-08-05 07:47   좋아요 1 | URL
자꾸 중요한 걸 놓치는 게 세상과 시국 탓이라 생각했는데 저 자신의 문제가 더 큰 건 아닌가하는 것을 이 책이 일깨워 주네요. 평범이라는 단어에 있는 의미도 좋았고요. 계속 희망과 따뜻함이 있는 미래를 생각해야겠어요.
저도 결국 저 문장을~~
여러가지로 생각할 수 있는 문장이었어요^^

서곡 2023-08-05 09: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저 드라마 다 봤답니다 끔찍해요 만연한 폭력이......최근 더 흉흉해져서 참......가급적 시원하게 주말 잘 지내시기 바랍니다!

페넬로페 2023-08-05 09:20   좋아요 1 | URL
드라마가 생각을 많이 하게 하더군요.
근데 거기서도 계속 사람 죽은 장면을 보여줘 기분이 좀 그랬어요.
서곡님, 더위 잘 이기시고 건강하게 주말 보내시길요^^

미미 2023-08-05 11: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발췌문 읽고 소름이 돋았어요. 같은 타령에 피곤했다는 말씀도 공감되고요.ㅎㅎㅎ

행복론,긍정론 이런 것보다는 차프스키의 글 처럼 우회해서 보여주는게 더 와닿을 거란
생각도 듭니다. 잃어버렸을 때 더 가치가 빛나는 것들을요. 궁극의 재독을 하셨다니... 늘 멋있는 페넬로페님~♡

페넬로페 2023-08-05 12:24   좋아요 1 | URL
마지막 발췌문에 여러 중의적인 의미가 있는데, 저 문장으로도 느끼는 것이 읽는 사람마다 다 다를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긍정과 낙관이 참 좋은데 연수작가님이 너무 직접적으로 말하고 있어 조금 그랬어요.
근데 오죽 했으면, 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서현역 사건 소식 접하면서 세상이 정말 왜이리 변하는가에 경악합니다 ㅠㅠ
차프스키의 글은 언제 읽어도 좋아요.
날씨가 더워요
더위에 건강 조심하고요^^

새파랑 2023-08-05 22: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쩌나 마주친 그대>는 송골매 아닌가요? ㅋ 페넬로페님의 글을 보니 저도 <무너지지 않기 위하여>를 다시 읽어봐야 겠습니다~!!

페넬로페 2023-08-05 23:44   좋아요 1 | URL
네, 송골매 노래 맞아요. ㅎㅎ
무너지지 않기 위하여는 재독해도 좋네요.비장햐그 숭고하고~~
잃.시.찾과 연결되어 더 그런것 같아요^^

희선 2023-08-09 02: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팔월에 뜬 슈퍼문 보셨군요 30일에도 슈퍼문 뜬다고 하더군요 저는 며칠인지 모르겠지만 달을 봤는데, 보름인가 하고 크네 했어요 그게 슈퍼문이었다니... 보름이 지났을지도 모르겠지만... 실제 보름보다 다음날이 더 크다는 말도 있더군요 희망이 없어 보이기는 해도 희망을 갖고 싶기도 합니다


희선

페넬로페 2023-08-09 20:30   좋아요 1 | URL
보름에다 달도 커서 더 그렇게 느껴진 것 같아요. 보통 음력 날짜를 신경 쓰지 않는데 달을 보면 혹시 오늘이 음력 며칠이지? 하는 생각을 가끔 합니다.

그래도 희망을 가져야겠죠!

얄라알라 2023-09-09 14: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최근에, 북토크를 여러 군데 다녀오신 분과 얘기를 했는데, 청중 질문들이 암울한 미래를 전제하고 있더랍니다. 그에 대한 답변도 결국 ˝소확행˝하세요! 라는 공통점이 있어서 신기했다고 그 분이 이야기 하셨는데,

페넬로페님 말씀을 곱씹어 생각하니, 우리에겐 어쩌면 현실 직시에의 압력보다도, 느슨하게 보고 차라리 낙관적일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한지 모르겠네요....밝은 이야기를 하는 분을 많이 보지 못해서, 갈증을 느낍니다.

페넬로페 2023-09-09 15:53   좋아요 1 | URL
저를 포함해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암울한 미래를 예상하는 건 아무래도 지금의 현실살이가 힘들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김연수 작가도 그런 걸 아니까 자꾸 미래부터 보라고 하는 것 같고요.
미래에 대한 낙관이나 희망이 오히려 조소의 대상이 되는 세상이 되지는 않았는지 한 번 되짚고 넘어가는 계기를 이 소설이 준 것 같아요.
 
바쁜이를 위한 커피백 알라딘 아네모네 블렌드 #1 - 14g, 5개입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3년 4월
평점 :
품절


바쁜이를 위해서도 좋겠지만, 계속되는 폭염이 주는 더위를 피하기 위해서도 이 커피가 유용하다. 커피백이라 간편하고 뜨거운 물에서 빨리 탈출할 수 있다. 아네모네 블렌드는 한 모금 마시고 난 후의 잔향이 좋다. 적당한 산미와 섞여있는 나머지 맛의 어우러짐이 잘 블렌딩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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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3-08-03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커피백은 드립백이랑 다른 건가요??

페넬로페 2023-08-03 19:30   좋아요 1 | URL
네, 드립백은 물을 천천히 부어주어야 하는데
커피백은 차 티백 같은 거예요~~
이 커피의 맛도 맘에 들었어요.

독서괭 2023-08-03 19:53   좋아요 1 | URL
오 그럼 저에게 필요한 커피예요! 이번달 커피쿠폰으로 사야겠어요. 감사합니다~^^
 
마지막 이야기들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30
윌리엄 트레버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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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트레버작가가 말년에 쓴 10편의 단편 소설에 생각보다 오래 붙들려 있었다. 처음엔 읽기 쉬운 것 같았지만, 읽을수록 글이 깊어 그 의미를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걸렸다. 노작가가 만들어 낸 문장에 먹먹해져 그대로 멈춰 있기도 했고, ‘히스클리프적(p.180)’느낌을 너무 잘 알 것 같아 오랜만에 책을 읽고 마음이 아팠다. 아무리 생각해도 모호해 끝가지 이해되지 않는 내용도 있었다.

 

 

나이 들어 뒤돌아 본 삶에 그 어떤 것이든 명확한 게 있을까? <피아노 선생님의 제자>미스 나이팅게일에게도 무엇 하나 확실한 것이 없다.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집에서 피아노 레슨을 하며 외롭게 사는 미스 나이팅게일에게 여지껏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천재 소년이 찾아온다. 제자의 연주를 들으며 파라다이스를 느끼지만, 소년이 다녀가면 집안의 물건이 하나씩 없어지는 대가를 미스 나이팅게일은 치른다.

 

소년은 미스 나이팅게일에게 과거를 소환해 준다. 그녀는 홀로 된 아버지와 오랜 연인이었던 아내가 있는 남자가 자신에게 준 사랑의 진실이 무엇인가를 생각한다. 사랑이라 포장된 것에 사실은 자신을 붙잡기 위한 그들의 기만이 들어있었고, 그것에 이용당한 건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소년의 행동에도 자신을 향한 조롱이 있음을 느낀다. 미스 나이팅게일은 불안과 회환에 시달리지만, 그럼에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행복의 기억만을 남겨 둔다. 자신이 느낀 감정만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살아가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진실 찾기는 의미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음악의 미스터리는 그가 연주를 마치고 그녀의 인정을 기다리며 지은 미소 속에 있었다. 그리고 미스 나이팅게일은 그를 바라보며 전에는 알지 못했던 걸 깨달았다. 그 미스터리 자체가 경이였다. 그녀는 거기서 아무런 권리가 없었다. 인간의 나약함이 사랑과, 혹은 천재가 가져다주는 아름다움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이해하는 데만 너무 골몰했으니까. 균형이 이루어졌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p.17, ‘피아노 선생님의 제자중에서]

 

그렇지만 행복의 기억만을 붙들고 살기에는 인간의 고독한 삶은 너무 길게 늘어진다. 과거의 회한을 안고 사는 여자는 미스 나이팅게일만이 아니다. <다리아 카페에서>의 애니타와 클레어도, <겨울의 목가>의 메리 벨라도 마찬가지이다. 사람에게 다가오는 사랑은 왜 그리 불공평하고 정당하지 않은지....결혼이라는 제도가 그러한 이유로 꼭 존재해야만 하는 건지, 아니면 결혼이라는 제도 때문에 그 사랑이 불행해지는 건지...어쨌거나 인생은 언제나 모호하다.

 

친구 클레어에 의해 자신의 결혼생활이 깨져버린 애니타는 언제나 다리아 카페의 한 자리에서 커피를 마시며 출판사에서 받은 원고를 검토한다. 이 카페는 시인에게 사랑하는 아내를 빼앗긴 이탈리아 남자, 안드레아 카발리가 잃어버린 아내에게 불멸성을 부여하기 위해 그녀의 이름을(p.47)’따서 문을 연 곳이었다. 다른 여자를 사랑하게 된 남편에게 버림받은 애니타에게 여전히 회한은 존재했지만 삶이 평온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자신보다 더 오래 남편과 산 클레어의 삶도 그리 행복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차례로 공유한 남자의 죽음에 애니타와 클레어는 다시 연결된다. 그들의 재회는 예의바르고 차가웠지만 그 밑에 숨겨진 건 복잡함과 아이러니였다. 세월이 지나면 용서할 수 없었던 것도 흐릿해지고, 과거보다 남겨진 삶이 더 중요하다. 애니타와 클레어에게는 앞으로 긴 고독과 외로움만 있을 뿐이다. 그들에게 배반을 주고받은 고통이 크지만, 고독을 함께 이겨 낼 과거의 우정이 절실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나중에 또다시 후회하더라도 결코 그들은 과거의 관계로 돌아가지 못한다. 끝내 그럴 수는 없다. 돌이킬 수 없는, 지켜져야만 하는 인간의 자존심은 매번 절박함(p.62)’을 이겨낸다.

 

 

황무지와 가까운 외진 곳이며 고독감에 시달릴 수도 있는(p.181)’, 매서운 바람이 부는 황량한 장소에서도 목가적인 삶은 늘 있어왔다. 앤서니는 자신이 굉장히 히스클리프적이라고 느낀 마을에 잠시 머물렀고, ‘메리 벨라는 그를 사랑하게 된다.

 

결혼해서 두 딸아이를 두고 행복하게 살고 있는 앤서니는 다시 돌아오지 말았어야 했다. 아니 돌아와 메리 벨라의 사랑을 확인해주고 잠시 동안의 행복을 주었어야 했을까? 그는 그곳에서 계속 살기를 선택한 그녀를 과거 속에만 머물게 하며 나머지 생을 절절한 고독 속의 겨울의 목가에 가둬놓는다. 몹쓸 인간 같으니라고. 히스클리프적이라 느낀 공간에 히스클리프를 남겨 놓고 그는 떠나가 버렸다. 그 나머지엔, 무시무시한 고독과 광기, 결코 뿌리치지 못할 한낱 희망만이 남아 있을 것이다. 히스클리프처럼.

 

[그렇듯 단순하게 메리 벨라에게 고독이 시작되었고, 과거에 그녀가 겪었던 그 어떤 고독보다 지독했다. 그녀가 살아오면서 너무도 자주 접한 고독들을 작아 보이게 만드는 그 무시무시한 고독은 불가사의한 것이기도 한 게, 그녀가 그 누구보다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아직 곁에 있는데도 찾아왔던 것이다.....그의 목소리에는 분노도, 신랄한 짜증도 실려 있지 않았다. 하지만 인내심이 바닥나면 그 두 가지가 다 찾아올 터였다. 그다음엔 무관심, 경멸, 멸시가 이어질 터였다. 그녀는 왜 그걸 알까? 그는 왜 알지 못할까? 한때는 그가 선생님이었는데.

-p.203, ‘겨울의 목가중에서]

 

 

<레이븐스우드 씨 붙잡기>, <크래스소프 부인>, <모르는 여자>에는 불행이 있다.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에 힘듦만이 있는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 하는 것과 그 결과에는 비참함과 죽음만이 있을 뿐이다. 단지 추측뿐인, 목적만 있는 사람의 어긋난 생각들과 기대는 무력함만을 남기고 삶을 비극의 구덩이로 빠트린다.


-애도, 조토 디 본도네, 1305

 

이탈리아 파도바의 스크로베니 예배당에 그려져 있는 조토의 애도에는 10명의 천사들마저 그리스도의 죽음을 슬퍼하며 울고 있다. 기억을 잃은 그림 복원가인 콘스탄틴 네일러는 조토의 애도중 천사들만 있는 복제그림을 복원중이다.

 

창녀인 데니즈는 콘스탄틴에게 접근하고 그의 스튜디오로 따라가 그와 잠을 자지 않고도 돈을 받고, 그가 가진 돈 전부를 훔쳐 나온다. 그녀는 돈을 돌려주고자 마음먹지만 결국 돌려주지 않는다. 아마 그 돈으로 술을 마시며 당분간은 넉넉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기억나진 않지만 콘스탄틴은 그림을 그리는 동안 그와 함께 있었던 누군가를 기다린다. 예수의 죽음을 애도하며 슬피 우는 천사의 눈물은 창녀 데니즈와 기억을 잃어버린 남자에 대한 연민인지도 모른다.

 

 

작가 프루스트는 예술에 있어 역사적인 사건은 새의 지저귐보다 덜 중요하다고 주장(p.36, ‘프루스트와 함께하는 여름’, 책세상했다. 트레버 작가는 단편소설을 순간을 포착하는 예술(P. 241)”이라고 했다. 윌리엄 트레버의 마지막 이야기들에는 거창한 역사적 서사가 없다. 단지 소소한 삶의 단면만이 있을 뿐이다. 전쟁, 홀로코스트, 식민지의 삶이 없어도 우리가 만나고 겪어야 할 평범한 삶은 묵직하고 견디기 힘든 것이 많다.

 

작가는 인생의 길 위에 있는 우리들에게, 삶이란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으며 이해 못할 것도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우리들이 마지막까지 가지고 있어야 할 덕목은 인간에 대한 연민이라고 말한다. 각자가 치러야 할 치열하고도 고독한 삶에 울고 있는 천사의 눈물 한 방울 정도는 있어야 진정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비록 사랑까지는 없더라도....


문학동네판의 마지막 이야기들의 표지가 정말 마음에 든다.


나도 다리아 카페에서의 애니타가 되어 본다.

10편의 단편 중 이 소설이 제일 마음에 와 닿았다.

 

[집을 판다는 표지판이 치워졌다. 다른 사람들이 그 집에서 산다. 클레어가 쓸쓸한 고독 속에 고이 간직하고 있는 것, 그걸 애니타는 지금 뒤늦게 쓸쓸한 고독 속에 받아들인다. 사랑이 오기 전, 우정이 더 나은 것이었을 때 있었던 모든 것을.

-p.64, ‘다리아 카페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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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3-07-30 23: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도 드디어 읽으셨군요~!! 전 이 책 너무너무 좋았습니다 ㅜㅜ

마지막 사진 ‘다리아 카페‘에서 찍으신거 같아요 ㅋ

트레버의 책 국내출판이 마지막이 아니길 바랄 뿐입니다~!!

페넬로페 2023-07-30 23:52   좋아요 2 | URL
저도 정말 좋았고, 아직까지 여운이 많이 남아 있어요.
트레버의 책이 있는 곳이 모두 다 ‘다리아 카페‘ 아니겠습니까, ㅎㅎ
트레버의 소설, 전작 읽기 하고 싶네요.

책읽는나무 2023-07-30 23: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소한 삶의 단면,
인간에 대한 연민.
페넬로페 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저도 그래서 트레버의 작품이 찡하게 좋더군요.

각자가 치러야 할 치열하고도 고독한 삶에 울고 있는 천사의 눈물 한 방울 정도는 있어야 진정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비록 사랑까지는 없더라도....
캬....이건 반칙입니다.ㅋㅋㅋ
이 책을 읽는다면 이런 명문장이 절로 나온다는 거죠?^^
책표지가 예뻐서인지 사진도 이쁘군요.♡

페넬로페 2023-07-31 01:39   좋아요 0 | URL
여운과 울림이 많았어요.
책나무님 말씀처럼 찡하게 좋았어요.

그리고 네네, 그렇게 됩니다.
트레버 작가의 글이 저절로 느낌을 갖게 해줍니다.
이 책, 책나무님 책탑에서 본 것 같아요.
책나무님의 ‘다리아 카페‘도 기대하겠습니다^^

희선 2023-07-31 01: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누구의 삶이든 쉽지 않고 이야기가 되기도 하겠지요 친구와 남편한테 배신 당하면 마음이 아프겠네요 혼자 남은 사람도 쓸쓸하겠다 여기면서도 앞으로 혼자 살면 어떤가 하는 생각이... 혼자서도 꿋꿋하게 잘 살면 되죠 소설을 보면 그런 분위기가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소설이 끝나고는 그렇게 살지 않을지, 그러기를 바랍니다


희선

페넬로페 2023-07-31 01:44   좋아요 2 | URL
우리 삶의 단면들이 다 이야기가 될 것 같아요. 우리와 정서가 조금 달라서인지 이 책에는 결혼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혼자서 잘 살면 되는데 이 책에서 제가 느낀 건 절절한 고독과 외로움이었어요.
그래서 살아나가면서도 왠지 안타깝고도 절박한 느낌이 들 것도 같았어요.

자목련 2023-07-31 08:5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 님의 리뷰로 천천히 마지막 이야기를 듣습니다. 가만히 커피를 마시며 누군가 들려주는 삶의 조각들을 듣는 기분, 행과 불행을 구분하는 일은 아무 의미가 없구나 싶기도 하고요. 좋은 리뷰 잘 읽었습니다^^

페넬로페 2023-07-31 10:04   좋아요 3 | URL
트레버 작가의 깊이를 따라가다보니 쉽지 않아 이 책을 다 읽고 다시 처음부터 읽었어요.
사람마다 이 단편에서 느끼는 감정들이 다 다르겠죠.
그게 무엇이든 그 밑에는 ‘삶‘이라는 것이 깔려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미미 2023-07-31 11:1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제 경우에도 트레버의 글이 빠르게 읽어지지는 않더군요. 그럼에도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는 매력에 꾸준히 사랑받는 것 같습니다. 저도 읽고 싶어집니다^^

페넬로페 2023-07-31 12:39   좋아요 3 | URL
트레버 작가의 글에 많은 여운과 울림이 있어 생각할 것이 많아지더라고요.
그래서 빨리 읽혀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천천히 읽을수록 이 작가를 더 사랑하게 됩니다 ㅎㅎ
가을이 되기 전에 읽으세요
가을과 겨울에 읽으면 더 맘이 아플 것 같아요^^

그레이스 2023-07-31 19: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고 싶어서 마음이 급해지지만 여유있게 읽기위해 조금 느긋하게 시작하려고 합니다^^;;

페넬로페 2023-07-31 19:00   좋아요 1 | URL
ㅎㅎ~~네,
항상 읽어야 할 책이 많으시니까요^^

2023-08-01 02: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8-01 09: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도둑맞은 집중력 - 집중력 위기의 시대, 삶의 주도권을 되찾는 법
요한 하리 지음, 김하현 옮김 / 어크로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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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브리엘 마르케스의 소설, 백년의 고독에는 가상의 마을 마꼰도가 등장한다. 그곳에 매년 삼월이면 찾아오는 집시들이 있었다. 그들 중 한 명인 멜키아데스는 마꼰도 사람들이 구경조차 해보지 못한 진귀한 물건을 가지고 온다. 자석, 망원경, 돋보기, 틀니, 얼음 등등.....마을 사람들에게는 마법 같은, 상상력 속에서나 존재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물건들은 과학의 다른 이름이었고, 멜키아데스는 선진문물을 가져다 파는 상인이었다. 그는 망원경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과학이 거리감을 없애버렸지요. 머지않아 인간은 자기 집에서 나오지 않고서도 이 세상 그 어느 곳에서 일어나는 일들도 다 볼 수 있다니까요.

p.14, ‘백년의 고독 1’, 민음사]

 

1967년에 출간된 이 소설에 서술된 자기 집에서 나오지 않고서도 이 세상 그 어느 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다 볼 수 있다는 마르케스의 글은 놀랍게도 예언적 문장이 되어 버렸다. 디지털화된 스마트한 세상에 살고 있는 지금의 우리들은 집 안에 있어도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알 수 있고, 그 누구와도 소셜미디어를 통해 교류가 가능해졌다.

 

백년의 고독첫 부분에 나오는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읽으며 내 인생에서는 어떤 물건이 나의 영혼을 송두리째 빼앗으며 놀랍고도 화려하게 등장했는지를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오래 생각해볼 필요도 없이 그것은 단연 스마트폰이다. 내 인생의 반은 아날로그로, 반은 디지털의 시대(나이를 너무 줄였나?)에 살고 있는 나에게 스마트폰은 이제 내 신체와 정신의 일부분이 되어 버렸다. 아니 거의 전부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마트폰과 인터넷 세상은 편리하고 많은 장점이 있다. 이 점은 인정하자! 내 미래를 상상해 봐도 그저 TV앞에만 머물러 있는 부모님세대와는 달리 그것은 다양한 선택지를 줄 것이다. 그러나 단점도 많다. 디지털 기기에는 엄청난 중독성이 있다. 버스에서, 지하철에서, 심지어 걸어가면서도 사람들은 스마트폰에 코를 박고 있다. 일방적으로 주어지는 무분별한 정보와 재미는 우리를 계속 그 세계에 머물도록 한다. 세상은 질문하지 않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로 가득 차 버렸고 그에 비례해 우리는 집중력을 잃어가고 있다.

 

나 역시 성인 ADHD가 의심될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다. 뭔가에 오랫동안 집중하기가 힘들고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한 것 같은 강박증세가 계속해서 나타난다. 스마트폰을 보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는 동시에 손가락으로 무한 스크롤을 하고 있다. 머리에 있는 생각들이 뒤죽박죽이고 건망증도 심해졌다. 내 일상과 습관을 변화시키고자 하지만 매번 나는 실패한다.

 

요한 하리의 도둑맞은 집중력은 위기의식에 사로잡힌 최근의 나를 객관적으로 들여다 볼 수 있게 해준 책이다. 저자의 말처럼 이 책은 자기계발서가 아니다. 저자가 제시한 몇 가지 해결책으로는 디지털의 세계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 뻔하다. ‘도둑맞은 집중력은 해결보다는 원인분석에 초점을 맞춘다. 집중력이 없어지는 것이 개인의 노력과 의지 부족이라는 생각의 범위를 넘어, ‘집중력을 거시적 차원의 문제점으로 전환시켜준다. 요한 하리는 우리가 집중력을 빼앗기는 것이 촘촘하게 짜여있는 거대하고 조직적인 시스템이 지배하는 사회에 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것은 우리에게 편리와 재미를 주고 그 대가로 엄청난 시간과 돈을 가져간다. 결국 이것 역시 자본주의 시스템의 문제점과 연결된다. 대표적 소셜미디어인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은 좋아요하트의 세계에 오랫동안 사람들을 묶어두기 위해 실리콘밸리의 천재 기술자들에게 엄청난 돈을 쏟아 붓는다. 국가마저도 국민에게 가짜뉴스를 제공하며 극단적으로 분열시킨다. 이제는 총이 아니라 미디어의 장악이 가장 큰 무기가 되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집중력을 회복할 수 있는가? 집중력이 개인적인 문제가 아닌 구조적 문제라면 그 해결책도 개인의 범위를 넘어서야 하는 것이다. 저자는 3주 동안 스마트폰과 인터넷이 없는 세상(?)으로 피신하기도 한다. 아니 정확히는 일상에서 벗어나 있었다. 당연히 그 결과가 좋겠지만 누구나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는 그만한 여유와 기회가 없다.

 

저자가 여러 전문가를 만나 그들에게 조언을 구하고 우리에게 제시한 방법은 약간 모호하거나 양극단적인 것도 있다. B.F. 스키너의 강화훈련과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의 몰입, 소설 읽기와 (게임), 멍때리기와 (시간낭비), ADHD와 각성제....이 세상에 난무하는 이론들은 완전히 맞는 것도, 틀린 것도 없기에 저자가 주장하는 것들이 다 옳은 것은 아니다. 숙면이 좋은 건 알지만 야간 노동자가 필요한 것도 현실이다. 이처럼 뭔가에 대한 문제점을 파헤치고 알아가는 과정과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찾는 것은 골머리가 아플 정도로 어렵다. 그렇지만 우리는 분명 알아야 하고 당연히 사회가 좋은 방향으로 가야하므로 이 책은 무척 유용하다.

 

[우리의 집중력을 좀먹는 현재의 기술 작동 방식은 과거나 지금이나 선택의 결과다. 이 방식은 실리콘밸리의 선택이며, 실리콘밸리가 그렇게 하도록 허용하는 사회 전반의 선택이다. 트리스탄은 이러한 기술을 전부 그대로 보유하면서, 최대한 우리를 산만하게 하는 방향으로 설계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우리는 정반대의 목표를 가지고 이 기술들을 설계할 수 있다. 집중력을 유지해야 하는 사람들을 최대한 존중하고, 사람들을 최소한으로 방해하는 것이다. 더 종요하고 유의미한 목표에서 사람들을 떼어놓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목표 성취를 돕도록 기술을 설계할 수 있다.

-p.200]

 

유의미한 방법으로,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게설계할 수 있음에도 그렇지 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저자의 주장대로 함께 연대하며 이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우리의 집중력을 빼앗고 있는 세력(p.241)’에 변화를 요구해야 하는 것이다.

 

아이를 키우다보면 내 아이만 건강하고, 착하고, 잘된다고 안심할 수 없다는 것을 부모는 알게 된다. 주위에 분노조절 장애나 ADHD를 겪고 있는 아이가 많을수록 내 아이가 살아가기 힘들 것이다. 저자가 이 책에서 ADHD에 대해 많은 서술을 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이다. 집중력을 떨어뜨리는 사회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며, 아이들도 예외가 아니다. 소셜미디어뿐만 아니라 먹는 음식, 스트레스, 대기오염, 도시환경 등 사회의 전반적인 것이 우리의 집중력을 잃게 하는 원인이 되므로, 다각적인 해결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 책을 읽고 북플을 떠난 친구들이 있다. 내가 이 책을 읽고 난 후의 생각은 북플을 떠난다고 능사는 아니다이다. 그러나 그들을 이해했고 그것도 한 방법이라는 데에는 동의한다. 결국 집중력 회복은 구조적이고도 개인적인, 두 개의 관점이 꼭 필요하고 그것이 병행되어야만 가능하다. 우리의 집중력을 좀먹는 거대 자본주의에 대항하기 위해서도 개인적 노력은 반드시 필요하다. 단순해서 회의적인 해결책을 하나하나 실천해봄도 한 방법일 것 같다. 나에게는 어떤 디톡스가 필요할지 고민해봐야 할 시점이다.

 

[장기적으로 볼 때, 매년 계속해서 성장하고 속도를 높여야 한다는 믿음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결국 우리의 집중력을 구할 수 없으리라 생각한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내가 다 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집중력 반란이 시작되면 우리가 조만간 이 근본적인 문제, 즉 성장 기구 자체와 싸워야 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어쨌든 간에 우리가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다른 이유가 있다. 이 성장 기구는 인간을 우리 정신의 한계 너머로 밀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이 두 가지 위기가 서로 뒤얽혀 있다고 믿게 되었다....

인류에게 바로 지금만큼 집중력(우리 인간종의 초능력)이 필요한 때는 없었다. 현재 우리가 전례없는 위기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p.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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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25 16: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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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25 23: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7-25 23: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7-25 23: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7-25 23: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미미 2023-07-25 19: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스마트폰이 집중력을 앗아가기 전에 잠시 있던 삐삐가 그립습니다.ㅎㅎㅎ
그 과도기적 상황은 짧은 만큼 아날로그적인 낭만이 있었던 것 같은데...
저는 북플만 하는데요 이곳은 그래도 자꾸 책을 읽고 싶게 만드는(큰 장점이 있는)곳이니
이웃분들이 부디 돌아오셨으면 좋겠어요. 그 전부터 안돌아오시는 미니님,툐툐님도 잘 지내시는지 궁금하고요.

페넬로페 2023-07-25 19:31   좋아요 2 | URL
아날로그적 낭만과 그 시절의 에피소드는 밤새워 얘기해도 될 것 같아요. 갑자기 그 시절이 그립네요.
저는 그때 참 게으르게 살았는데, 그래서 더 집중력이 좋았는지 모르겠어요 ㅎㅎ
저도 북플만 해서 이 공간이 참 소중해요.
미니님, 툐툐님 소식, 넘 궁금해요.
여기에 글 올리지 않으셔도 가끔씩 소식만이라도 전해주면 좋겠습니다.
이 공간은 책만 읽는 곳이 아닌 것 같아요. 정이 들어버렸어요~~

건수하 2023-07-25 20: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저도 오늘 다 읽었어요! 이 책은 원인 분석 부분이 가장 좋았고.. 뒷부분은 좀 흐지부지된 것 같아요. 그래도 sns나 미디어가 우리의 주의력을 분산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한다는 것을 알아두는 데에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

페넬로페 2023-07-25 22:10   좋아요 1 | URL
우리 모두가 집중력땜에 고민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다들 이 책을 읽는 거겠죠 ㅎㅎ
이 책이 우리가 생각하던 것과는 다른 방향을 잡아줘서 좋았어요.
실천은 각자의 몫일 것 같아요^^

2023-07-26 10: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7-26 14: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은오 2023-07-26 12: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첫 휴대폰을 산게 초등학교 5학년, 그리고 첫 스마트폰을 산게 중학교 2학년쯤으로 기억하는데.... 휴대폰으로 간단한 게임, 문자, 전화만 하던 때는 별로 달라진 게 없었는데 “스마트폰”이 생긴 이후로 엄청난 변화가 생긴 것 같아요. 짧았지만 스마트폰 없던 시절에 비디오가게에서 비디오 빌려보고 친구들이랑 밖에서 뛰어놀던 시절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벌써 그때가 그립더라고요. ㅋㅋㅋㅋ

페넬로페 2023-07-26 14:09   좋아요 1 | URL
아날로그시대의 감성이 그립습니다.
저는 요즘 유모차에 있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그 아이들은 디지털의 시대만 사는거니 앞으로의 미래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바뀔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거기에 그 아이들은 적응하겠죠~~
근데 우리가 느꼈던 것을 모르니 조금 아쉽다는 생각도 해 봅니다.
어느 사회가 되던 좋은 방향으로 나가야하는데 개인적으로 각자의 몫이 중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많아요, 휴~~어렵네요, 휴~~

물감 2023-07-26 23: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서재를 떠났다가 돌아오길 무한반복 중인데, 이것도 집중력을 도둑맞았다 보면 될까요? ㅋㅋ

페넬로페 2023-07-26 22:49   좋아요 1 | URL
집중력 회복을 위해 노력중이신 것 같은데요~~
서재를 떠나는게 능사는 아니랍니다 ㅎㅎ

새파랑 2023-07-27 12: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책을 읽으면 북플을 떠나기도 하는군요 ㅋ
이 책을 읽으면 안되겠습니다 ~!!

페넬로페 2023-07-27 13:59   좋아요 1 | URL
새파랑님께서는 이 책 읽으셔도 북플 떠니지 않으시리라는 걸 믿습니다~~
근데 새파랑님은 워낙 집중력 좋으셔서 이 책 안 읽어도 될 것 같아요^^

독서괭 2023-08-03 12: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도 이 책 재밌게 읽으셨군요! 함께 자각하고 행동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이 책이 제시하는 게 이상적이어 보이긴 하는데, 못할 건 아닌듯요..
<백년의 고독>에 저런 문장이 있었나요!! N년쨰 재독하려고 생각만 하고 모셔두고 있는 책인데 ㅎㅎ 간만에 열어봐야겠어요.

페넬로페 2023-08-03 15:13   좋아요 0 | URL
네, 이 책이 굉장히 맘에 와 닿았어요. 마침 시간 활용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었거든요.
뭔가를 뜯어 고치려면 항상 이상에서 출발해야 하는 거잖아요.
그러니 뭐라도 해 봐야할 듯요.
백년의 고독, 첫부분에 등장하는 저 집시가 재밌더라고요!
 
도둑맞은 집중력 - 집중력 위기의 시대, 삶의 주도권을 되찾는 법
요한 하리 지음, 김하현 옮김 / 어크로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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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스마트한 세상의 편리함과 단물에 빠져 있는 우리는 절대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단칼로 자르는 알렉산드로스가 될 수 없다. ‘집중력‘은 개인적인 것이 아닌, 거대하고 조직적인 거시적 단어가 되었다. 삶을 방해하는 요소를 제거하기 위해 개인과 사회가 함께 해결점을 찾아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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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3-07-25 13: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스맛트폰 때문에 점점 더 책읽기도
집중력도 저하되고 있다는...

페넬로페 2023-07-25 16:56   좋아요 0 | URL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이탓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스마트폰의 영향이 더 큰 듯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