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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들 - 모마 미술관 도슨트북
SUN 도슨트 지음 / 나무의마음 / 2022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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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현대 미술관에 소장된, 우리가 거의 아는 작가들의 그림을 쉽게 소개한 책! 작가와 작품에 대한 약간의 에피소드와 짤막한 설명들이 재미있게 읽힌다. 고흐, 피카소, 마티스, 샤갈, 마그리트, 호퍼, 리히텐슈타인, 키스 해링..언젠가 한번은 이들을 보기 위해 뉴욕 모마에 갈 수 있기를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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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논픽션의 페르소나는 대리인이 아니다. 논픽션 작가는소설가나 시인이라면 거리를 둘 수 있는 변명과 낭패감을 공개적으로 드러내야 한다. 공공장소에서 소파에 드러눕는 거나매한가지다. 설령 작가가 자발적으로 그리 한다 해도 이런 전략은 대개 잘 먹히지도 않는다. 대체 몇 년이나 소파에 누워 있어야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넋두리와 푸념, 자기혐오와자기변명만 늘어놨다간, 작가 자신 말고는 세상의 모든 사람이 지루해할 텐데 말이다. - P11

작가의 대리인이 아닌 서술자는 자신의 사소한 관심사를 널리 공감할 수 있는 초연한 이야기로바꾸어, 무관심한 독자에게도 가치 있는 글을 써내야 하는 엄청난 과제를 떠맡는다.
아무리 어렵다 해도 에세이나 회고록을 쓸 때는 그런 페르소니를 반드시 만들어내야 한다. 이는 조명 도구나 마찬가지다. 이게 없으면, 주제도 이야기도 있을 수 없다. 회고록이나에세이를 쓰는 작가는 그런 페르소나를 빚어내기 위해 소설가나 시인처럼 자기 성찰이라는 견습 기간을 거치며, 왜 말하는가.
누가 말하는가를 동시에 알아내야 하는 이중고를 겪는다. - P12

모든 문학 작품에는 상황과 이야기가 있다. 상황이란 맥락이나 주변 환경, (가끔은 플롯을 의미하며, 이야기란 작가의머리를 꽉 채우고 있는 감정적 경험, 혹은 통찰과 지혜, 혹은작가가 전하고픈 말이다.  - P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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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15 01: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10-15 09: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왜냐하면 현실이란, 아무리 불가피하다 할지라도 완벽하게 예측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사람들은 흔히 타인의 삶에 관해 뭔가 정확한 세부사항을 알면, 그로부터 정확하지 않은 결론을 도출하고, 또 새로이 발견한 이 사실에서 그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들에 대한 설명을 찾기 때문이다. - P14

원래 우연성의 현실 세계보다 가능성의 세계에 더 많이 
열려 있던 내게 이런 일은 그만큼 더 위험했다. 
가능성의 세계는 인간의 영혼을 이해하도록 도와주지만, 
개인에게 속을 위험이 있다. 내 질투는가능성이 아닌 
이미지에서, 내게 고통을 주기 위해 생겨난 것이었다. 그런데 개인과 민족의 삶에서 (따라서 내 삶에서도 언젠가는 틀림없이 일어날) 어느 한순간 우리는, 동서남북으로 펼쳐진 공간 속에 숨겨진 가능성을 꿈꾸는 대신 다음과 같이 올바르게 성찰하고 생각하는 경찰청장이나 명철한 시각의 외교관 또는 수사반장을 필요로 하기 마련이다. - P38

그때 굶주린 회복기 환자가 아직 허락되지 않은 온갖 음식을 미리 다 먹어 치우듯, 나는 알베르틴과의 결혼이 나를 다른 존재에게 바치는 지나치게 무거운 임무를 수행하게 하고, 또 그녀의 지속적인 현존 때문에 나 자신이 부재하는 삶을 살게 하여 영원히나로부터 고독의 기쁨을 빼앗음으로써 내 삶을 망가뜨리지않을지 자문해 보았다. 고독의 기쁨만이 아니다. 비록 내가 그런 날들에 바라는 것이 욕망뿐이라 할지라도 사물이 아닌존재가 야기하는 욕망 -그런 욕망 중에는 개인적인 
성격의것도 존재한다.  - P43

날씨가 나쁠 때에도 납작한 모자를 쓰고 모피 코트 
차림으로 장을 보려고 걸어서 외출하는 공작 부인을 안마당에서 마주칠 때가 가끔 있었다. 공작령도 공국도 없어진지금 게르망트 공작 부인이라는 이름이 무의미해지면서, 이제 그녀가 많은 지식인들에게 그저 그런 여인에 불과해졌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나는 존재와 고장을 향유하는 방식에서다른 관점을 택하고 있었다. 나쁜 날씨를 무릅쓰고 외출하는이 모피 코트 차림의 부인이, 내게는 공작 부인과 대공 부인과자작 부인으로서 소유하는 그 모든 영지의 성들을 그녀와 함께 가지고 다니는 듯 보였는데, 이는 마치 대성당 정문 상인방에 조각된 인물들이 그들이 건설한 대성당이나 수호하는 도시를 손에 들고 있는 것과도 같았다. 그러나 이런 성과숲 들을, 나는 내 정신의 눈을 통해서만 왕의 사촌 누이인 그모피 코트 입은 여인의 장갑 낀 손에서 볼 수 있었다. 비가 쏟아질 듯한 날씨에 내 육체의 눈이 식별해 내는 것은, 공작 부인이 들고 다니기를 꺼리지 않는 우산뿐이었다.  - P49

우리가 흔히농담으로 하는 말들은 대개는 그 농담과는 반대로, 우리가 어려움에 시달리며, 하지만 어려움에 시달리는 모습을 보이고싶지 않으며, 더 나아가 우리와 얘기하는 사람이 그에 대해 농담하는 걸 들으면서, 그 말이 사실이 아니라고 믿어 주기를 바라는 은밀한 기대를 담고 있는지도 모른다. - P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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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아주 특별한 종류의 은행입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돈을거래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꿈을 꾸고 자유를 갈구합니다.
이 서점에 손님들이 나타납니다. 순식간에 그들은 친구가 되지요. 그리고 또 순식간에 나탈리처럼 변하기 시작합니다.
왜냐하면 책은, 특히 진정성이 있는 책은 당신을 뒤흔들기 때문입니다. 책은 당신 내부에 있는 욕망의 왕국, 가능성의 민족,
안 될 게 뭐야? (pourquoi pas?)"라는 무적함대를 일깨웁니다. - P7

그럴 때면 학생들은 세상이 확신보다는의심에,
방정식보다는 시에 가깝다는 사실을 일아 내곤 했다.
학생들의 진로는 종종 선택하지 않은 결과로 이어졌다. 수학을잘하는 학생들은 월반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다른 선택은 모두 엉망이었다. 이러한 분위기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조성되었고, 어쨌거나 그 뒤로 부모보다는 학교 당국에 의해서진로가 정해졌다. 이과를 선택하는 아이들은 예술이나 문학을 선택하는 아이들보다 훨씬 더 부모의 자랑거리가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은 남자와 여자만 죽인 것이 아니라 문학을 죽이고 숫자를 남겼으며, 교사를 죽이고 기술자를 남겼다.
- P17

나는 책을 통해서 많은 것을 얻었다. 나를 성장케 하고 내 길을선택할 수 있게 해준 것은 독서 였다. 나만의 안경으로 세상을 보지 않고 다른 세상, 다른 시대에 마음을 열 수 있도록 해준 것도독서였다.
책을 읽을 때만큼 나 스스로와 가까워지는 기분을 느끼는 순간은 없었다. 나를 나 자신과 친밀하게 연결해주는 타인들의 글은언제나 내 기분을 살펴가면서 신중하게 움직였다. 그 글들은 나를 알지 못했지만, 나는 그런 글과의 만남을 통해서 내가 누구인지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글을 읽으며 웃고 울었다. - P23

내 기억 속에 책을 가지고 있지 않은 아버지의 모습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버지는 항상 여러 권의 책을 읽는 중이었다. 아침에 읽는 책, 저녁에 읽는책, 베란다 의자에 앉아서 읽는 책, 침대에서 읽는 책......
책은 질투하지 않는다. 책은 새로운 친구에게 기꺼이 자리를내어주고 뒤로 물러난다. 그런 다음 책꽂이를 향해 손을 뻗은 어린아이로부터 다시 선택받게 될 때까지 수 세기 동안 꼼짝 않고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릴 줄 안다.
내 부모님의 책장 앞에서 나는 그런 아이였다.
종이가 누렇게 변한 문고판 책들은 나의 첫 번째 밤동무였다.
케셀Joseph Kessel, 지오노Jean Giono, 메리메 Prosper Merimée, 말로 AndreMalraux, 생텍쥐페리 Saint-Exupéry..…. 나는 잠들기 직전까지 이 대가들을 품에 안고서 그들과 함께 밤을 지새웠다.
- P24

몇몇 학교나 가정에서 문학은 19세기에 멈춰 있다.
스탕달, 발자크 Honore de Balzac, 위고 같은 일련의 작가들은 학생들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지적 훈련 과정의 관문으로 통한다.
그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플랑드르파, 낭만파, 인상파의 그림을 감상할 줄 알아야만 마침내 현대미술을 사랑할 수 있게 된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라디오 덕분에 오직 음악만이 이런 의무적인 관문을 통과할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나는 슈베르트 Schubert나 모차르트 Mozart 를 알기 전에 캣 스티븐스 Cat Stevens,
제네시스 Genesis, 조안 바에즈 Joan Baez를 들었다.
- P36

어린 학생들이 감성을 키우려면 고전문학에서 시작하기보다는자신들과 동시대를 살고 있는 작가를 사랑하게 만드는 것이 훨씬더 나은 방법이다.
학창 시절 동안 이런 의무적인 과정을 거쳤던 수많은 어른들이막상 어른이 되어서도 즐거운 마음으로 고전을 펼치는 데 저항감을 갖고 있다. 그로 인한 첫 번째 희생자는 바로 발자크, 스탕달,
위고일 것이다!
나탕의 경우 역시 그랬다. 그가 프랑스혁명을 배경으로 역사적 사실과 가상의 이야기를 섞어서 쓴 빅토르 위고의 마지막 소설 193년 Quatre - vingt - treize』을 읽으면서 고전문학에 대한 경계를 낮추기로 결심한 지는 불과 3년밖에 되지 않았다.
이 책을 읽고 난 후에 나탕은 문학계의 안나푸르나로 명성이높은 일곱 권의 총서로 무려 2,400페이지에 달하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A la Recherche du Temps Perdu』를 고개를 파묻고 탐닉했다!
온통 프루스트 Marcel Proust와 함께 보낸 여름, 나탕이 작가의 우수 어린 사상에 푹 빠져서 스완의 대사를 읊조리고 끝없이 이어지는 문장을 따라가며 단어에 심취하는 모습을 나는 여름 내내지켜보았다.
대하소설‘이라는 용어는 종종 비하의 의미를 품고 있다. 하지만 대하(大河)란 수많은 유기물과 무기물을 휩쓸고서 결국 바다로흘러들어가는 개울, 급류, 강을 총체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냄새는 아주 적은 양으로도 하나의 공간 전체를 충분히 채울수 있다.
나는 책과 냄새를 아름다운 커플로 결합시키는 데 관심이 많다. 글과 향기의 결합을 통한 이야기의 서술은 독자를 단지 단어에 의지할 때보다 훨씬 더 먼 곳까지 데려갈 수 있다.
『천일야화 The Arabian Nights: Tales of 1,001 Nights』를 읽기에 페스(Fes)의 회교도 거주지 내 리아드 지붕보다 더 좋은 곳은 없으며, 폴 오스터 Paul Auster의 인물들과 하나가 되는 경험을 하기에 뉴욕의 카페테라스보다 더 좋은 곳은 없다.
- P47

나는 삶이 잃어버렸던 색깔을 되찾는 데에 때로는 아주 사소한것들, 혹은 몇 권의 책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소녀에게 미소를 보냈다. - P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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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2-03-05 22: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프랑스 문학이네요. 프랑스 작가 책은 유명한 작가 외에는 잘 몰라서 책 소개 찾아보고 왔어요.
페넬로페님, 주말에 바람이 많이 불어요. 여기는 강풍주의보입니다.
따뜻하고 좋은 주말 보내세요.^^

페넬로페 2022-03-06 00:17   좋아요 2 | URL
언니가 좋다고 해서 읽고 있어요.
마음이 따뜻해질 것 같은 소설이예요.
바람이 많이 불어요.
서니데이님,
감기 조심하시고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희선 2022-03-06 00: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글을 보고는 책방 이야기를 하는 산문 같은 건가 했는데 소설이군요 여러 사람이 에브르 광장에 있는 작은 책방에서 만날지 스쳐 지날지... 이런 이야기 재미있겠습니다


희선

페넬로페 2022-03-06 11:45   좋아요 2 | URL
에르브 광장의 책방을 중심으로 여러 명의 사연이 다른 인물들이 등장하는 내용이예요.
책에 대한 얘기가 많아 공감하며 읽고 있어요^^

서니데이 2022-03-06 17: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주말 잘 보내고 계신가요.
해가 길어져서 요즘 오후가 시간이 조금 더 생긴 것 같습니다.
오늘도 바람부는 날 같아요.
따뜻한 오후시간 되세요.^^

페넬로페 2022-03-06 23:02   좋아요 2 | URL
확실히 해가 많이 길어진 느낌입니다. 똑같은 시간이지만 날이 훤하면 시간이 많이 남은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서니데이님,
다음 한 주도 건강하고 행복하게 보내시길 바래요**

레삭매냐 2022-03-07 20: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점점 레알 서점들은 사라지고
가상의 공간과 창고를 지닌
서점들이 전통의 서점들을 집
어 삼키는 형국이 되어가고
있다는 점이 못내 아쉽습니다.

그래도 온라인 서점의 편리함
과 적립금의 유혹이란 정말.

동시대의 작가를 읽어라는 정
말 마음에 와 닿네요.

페넬로페 2022-03-07 22:03   좋아요 0 | URL
저 역시 요즘 서점에 거의 가지 않아요. 동네 책방도 있는데 아르브 광장의 서점같지 않고 중 고등학교 참고서가 거의 대부분을 차지한 곳이라 가기가 싫더라고요.
이 책이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읽으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 많아요.
뜻밖에 좋은 책을 만났어요^^
 

글쓰기란 어떤 면에서 보면 세계 속에 던져진 자신의 모습을
‘언어‘에 투영하여 작업하는 일이다. 그런데 모국의 언어가 아닌타국의 언어로 글쓰기를 지속해온 작가는 어떨까? 익숙하지 않은 언어를 손에 들고 나는 누구이며 내가 속한 곳은 어디인가라는 물음에 끊임없이 직면하지 않을까? - P7

울지도 않았다. 그리고 거친 숨소리를 내며 내 얼굴을 똑바로 올려다보았다. 유난히눈자위가 하얗게 보였다. 아이들은 내 주위를 둘러싸고 침을 삼켰다. 그 애의 눈에 문득 눈물 한 방울이 맺히는가 싶었다. 하지만그 애는 조용히 눈물을 삼키는 듯한 목소리로 외쳤다.
조오센징노 바까!(조선인, 바보!)"
- P25

그는 따뜻해 보이는이불 속에 발을 넣고 목을 움츠려 보였다. 나에겐 그 모습이 더없이 애처롭게 보였다. 그 애의 눈은 빛나고 입가에는 살짝 웃음이번졌다. 완전히 나에게 마음을 연 것이다. 그의 마음 속 세계에도 이렇게 아름다운 것이 감추어져 있었다니! 어머니에 대한 본능적인 애정도 어찌 이 소년에게만 없겠는가? 그것은 그저 왜곡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주위 사람들로부터 고통받고 배척당한 한 동족 부인을 상상했다. 그리고 일본인의 피와 조선인의피를 함께 받은 한 소년 안에 존재하는 조화롭지 못한 이원적인것의 분열과 비극을 생각했다.  - P37

그렇다면 일시적인 감상이나 격정으로 ‘나는 조선인이다, 조선인이다. 하고 외치는 오뎅 바의 남자와 너는 대체 무엇이 다른 것인가. 그것은 또 나는 조선인이 아니라고 외치는 야마다 하루오의 경우와 본질적으로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인가? 머리 색이 다른터키인의 아이조차 이곳 아이들과 씨름을 하며 순진하게 놀고 있는 것을 본다. 하지만 왜 조선인의 피를 받은 하루오만은 그것이불가능한 것인가? 나는 그 이유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
- P42

작은아버지는 한 군(郡)의 수장이 조선어를 사용해서야 위신이서지 않는다고 생각한 나머지, 코풀이 선생님을 앞세워 본인의 일본어를 조선어로 통역하게 했다. 인식은 이곳에 와서 작은아버지가 일본어 따위 전혀 알지 못하는 젊은 첩에게까지 너무나 의기양양하게, 그것이 또 대단한 일본어인 양 떠드는 것을 몇 번이나보았던 터다. 그런 작은아버지가 누구 한 사람 일본어를 알 턱 없는 산민들을 향해 일부러 통역까지 세워가며 불쌍할 만큼 우스꽝스러운 연설을 한다는 사실이 특별히 놀랍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인식은 뚱뚱하게 살찐 작은아버지 옆에 코풀이 선생님이 쭈뼛쭈뼛 서서 얼굴이 빨개지거나 코를 항케치로 누르거나 하는 광경을 도저히 견디기가 힘들었다.
- P144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오면 한 줌의 흙, 한 다발의 풀조차 새롭게 느껴져 가슴 설레는 그였다. 그렇지만 타고나기를 소박한, 감수성 넘치는 젊은 인식에게는 조사라는 역할보다 오히려 쫓겨 가는 화전민과 함께 울겠다는, 어쩌면 다소 감상적인 생각이 너무 앞섰는지도 모른다. 어떤 면에서는이처럼 가장 황폐한 고향의 품에 돌아와, 뭔가 알 수 없는 자연의위용에 약한 마음을 질타당하고 채찍질당하기를 원했는지도 모른다. 경성에서 동쪽으로 삼십 리, 합승버스로 준령과 협곡을 넘어 이 오지까지 오면서 그는 자신의 가슴이 얼마나 고동쳤는지를기억하고 있다. 불타버린 험산 하늘가에서 화전민들의 시커먼 오두막집을 바라보던 때는 자신의 가슴에서 붉은 피가 솟구쳐 그곳으로 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이 무슨 비참한 고향의 모습인가!  - P157

하지만 지금처럼 비극적인 광경을 보게 되면, 결국 자기 자신까지 가여운 산민들의 무리 속으로 쫓겨 들어가는 것처럼 느껴져다. 그는 그런 자신의 기분을 들여다 볼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일종의 체념과도 통하는 감상이랄까, 그저 의욕을 잃고 극도의 가난에 허덕이는 화전민 사이로 들어가면 마음만이라도 가벼워질거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정작 자신이 그들을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실은 자신도 그중 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때그제서야 자신이 구원받았다고 여겨졌던 것이다. 이것이 감상적 에고이즘인걸까, 
인식은 눈시울을 적시며 생각했다.
- P158

공중의 새를 보라, 뿌리지도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아버지께도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한가. (마태복음 6장 26절)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해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길쌈도 아니하느니라.(마태복음 6장 28절)하물며 너희들에게 있어서랴. 하지만 이곳에는 수고하고 씨뿌리려 하나 땅이 없고, 거두려 하나 거둘 것이 없고, 먹으려 하나먹을 것이 없는, 공중을 나는 새보다도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마태복음 6장 30 절 구절 중 일부)‘보다도 못한 백성이 있다. 그리고 그들의 생명은 무도한 자들의 손에 맡겨져 있고그 생활조차 끊임없이 위협 당한다. - P182

이윽고 나는 시장 안으로 들어가 어린애들의 탐스러운 가죽구두 두 켤레를 사들고 돌아왔다.
메고 갈 륙색의 짐을 덜어 고향에 보낼 헌 옷 꾸러미를 만들고, 이 속에 어린애들의 물건을 차곡차곡 넣어 묶어 놓았다. 
공교롭게도 이 다음날 아침 일곱 시 차로 R여사가 귀국하기로 되어 일이 더욱 순조로웠다.
그날 밤 나는 어머니와 아내에게 무량한 감개 속에서 몇 장의편지를 쓰게 되었다. 떠날 때의 암호대로 ‘여불비(餘不備禮의 준말. 나머지는 예를 갖추지 못한다는 뜻으로, 
옛 편지 말미에 격식 있는 인사로 쓰는말 - 옮긴이)
라고 상서하여 드디어 떠나게 된 사정을 알게 한 것이다. 그리고 떠나는 날짜와 시간도 내박았다. ‘여불비‘라고 쓴 편지가 마지막 편지인 줄 알라고 아내에게 이르고 떠난 것이었다.
- P216

드디어 발차를 알리는 종소리가 요란히 울리기 시작하였다. 뜨거운 악수를 교환하고 나는 열차에 올라섰다.
"베이징이여, 잘 있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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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2-02-21 12: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큰 글자로 된 성경책을 오래 전에 사서 읽었어요. 좋은 구절이 많다는 얘기를 들어서요. 저는 특히 마태복음이 좋더라고요. 밑줄을 그으며 읽었어요.
이 책에도 마태복음이 나와 좋네요. 앙드레 지드의 소설에도 성경 구절이 나오는데 작가가 자기 시각으로 자유롭게 해석하더라고요. 사색적인 데가 있어 좋았어요.^^

페넬로페 2022-02-21 17:05   좋아요 0 | URL
소설을 읽다보면 마태오복음을 인용한 구절들이 많더라고요.
성경을 읽어도 각자의 느낌들이 다를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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