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4일
에리크 뷔야르 지음, 이재룡 옮김 / 열린책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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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좋아하는 나와 다르게 남편은 책을 거의 읽지 않지만, 가끔씩 내가 읽는 책에 관심을 보이기도 한다. 마침 식탁위에 놓여 있던 이 책의 제목을 보고, “714? 프랑스 혁명?... 1789년이던가? 맞지!”라고 자신의 기억력을 대해 약간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세계사 시간에 배운 대로 나 역시 딱 그 정도까지만 알고 있었다. ‘714은 프랑스 민중이 바스티유감옥을 습격한 날이며 1794년까지 이어진 시민혁명의 시발점이 되는 날이라는 구체적인 사실은 기억의 회로에서 지워진 상태였다.

 

프랑스 사람도 아니면서 ‘714에 대해 웬만큼 안다는 건 이 날이 갖는 의미가 무척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토록 유명한 이 날을, 작가 에리크 뷔야르(처음 들어보는 작가이다.)는 어떤 시선으로 바라봤으며, 무엇을 중점적으로 부각시켰을지 궁금했다. 제목만으로 이 책을 꼭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 에리크 뷔야르는 이 소설에서 이름 없는 군중들에게 나름 이름을 찾아주고자 한다. 노동자, 목공, 양복장이, 지게꾼, 노점상, 열쇠공, 인쇄공, 석공, 씨앗 장수, 배달부, 가난한 어린아이, 매춘부, 남편의 성을 사용하는 여자 등, 수많은 민중들의 이름을 불러준다.

 

714,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 지금도 계속되는 전쟁에서 사망하는 사람들, ‘경포가 진나라 포로 20만을 갱()하다라는 문장에서 나는 뭉뚱그려진 인간이 아닌 그들 한 사람, 한 사람 개인을 생각해 본다.

 

공적인 서류에 몇 자밖에 적히지 않고, 일렬로 눕혀져 어떤 상태로 죽었는지에 대한 서술만 있어도 그들 모두에게는 각자의 이름과 삶이 존재했다. 작가는 1789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그때의 상황을 상상하고, 짧은 기록들을 읽어가며 개인의 삶에 초점을 맞춘다. 작가가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다는 것이 반가웠다.

 

장편소설이지만 역사적인 날이 배경이기에 이 책에는 혁명의 원인에 대한 뚜렷한 맥락이 있다. 1789423, 왕립 채색 벽지 제조 공장의 사장인 장 바티스트 레베용은 직공의 급여를 낮추겠다고 한다. 그 당시 프랑스는 흉년이 들어 대기근을 겪고 있었고 민중은 굶주려 있었다. 428일 민중은 레베용의 저택(티통 별장)으로 쳐들어가 약탈하고, 군인들이 그들에게 발포한다. 열여덟 명의 사망자는 통브이수아르 공동묘지로 옮겨졌고 그들 주머니에 레베용 저택에서 훔쳐간 물건이 들어있지는 않은지 경찰들이 와서 샅샅이 뒤진다.

 

루이 14세는 50년에 걸쳐 시골 마을의 저지대에 백성들을 강제 동원해 화려한 베르사유 궁전을 지었고, 귀족들을 불러 모아 사냥과 승마, 당구와 춤을 즐겼다.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 역시 민중들과는 동떨어진 그들만의 세계에 살았다. 이 책에서 작가는 베르사유 궁전에서의 루이 16세와 왕비를 비판하며 비꼰다.

 

[그러다가 왕비가 전원생활을 그리며 향수병에 걸리자 작은 오두막을 짓게 되었는데 여기는 궁정 생활의 근심거리, 왕국의 기근, 국가 채무 등을 잊게 만드는 연극과 축제가 벌어지는 작은 천국, 전원풍 희극의 무대가 되었다....또 장자크 루소의 소설 신엘로이즈에서 영감을 얻기도 했다. 가장 우스꽝스럽고, 아마도 흥미로운 대목은 마리 앙투아네트가 이처럼 사회 계약론의 지은이를 살짝 빌려다 썼다는 점이다.

-p.38~39]

 

반면에

 

[이런 시선들에 지친 마리 앙투아네트는 트리아농의 오두막집으로 도망쳤다. 루이 16세는 왕으로서의 의무를 해야 했지만 왕비는 이런 의무로부터 도망칠 수 있을 때마다 도망쳤다. 사람들의 시선이 미치지 못하는 시골집에서 그녀는 닭과 염소, 양을 기르며, 루소의 자연주의를 몸으로 실천했다. 그리고 어린 딸에게도 소박한 삶의 행복을 가르쳤다.

-네이버 지식백과, 영화 속 클래식, 소피아 코폴라 감독, ‘마리 앙투아네트에서 발췌]

 

어떤 해석이 맞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부자들은 세금을 거의 내지 않았고 부르주아지는 번성했고 민중들은 빵을 살 돈조차 없었다.

 

혁명은 당연했고 714일 새벽에 민중은 앵발리드로 몰려가 무기를 탈취했고 바스티유로 전진했다. 굳게 닫힌 성채의 문을 열기 위해 누군가는 앞장서서 지붕 위로 올라가야 했고, 도개교를 내려야 했다. 그래서 누군가는 그 일을 수행하다가 죽어야 했으며 어떤 사람은 도망을 쳤고, 뒤에 교수형을 당했다. 구경꾼과 폭도도 있었다.

 

[이 사건이 프랑스 역사에서 연출한 역할을 이해하려면 네케르의 경우처럼 당시 바스티유의 상징적 의미를 고찰해야 한다. 파리 중심지에 우뚝 서 있는 바스티유의 성탑은 봉건제도의 음산한 영상으로 보였고 그에 따르는 국왕의 영장과 불법 투옥은 더욱더 불길한 악평을 조성했다....

1789714일은 혁명이라는 대사건의 출발점으로 잠깐 동안 벌어진 파리의 그 소동은 프랑스의 양상을 바꿔놓은 드라마의 제1장이었다. 그날의 사건은 프랑스인과 세계인의 눈에 상징적인 업적으로 길이 남았다.

-p.425~426, 앙드레 모루아, ‘프랑스사’, 김영사]

 

200페이지 정도의 이 짧은 소설에 작가 에리크 뷔야르는 많은 민중의 이름과 역사적 사실들을 정교하게 잘 배치해 놓았다. 그러나 생각보다 묵직한 울림이 없고 약간 지루한 부분도 있어 아쉬웠다. 어쩌면 작가는 역사의 방향을 틀 만큼 의미심장한 사실들을 담담히 표현함으로써 독자들에게 더 깊은 생각을 하도록 의도했을 수도 있다.

 

2023년 현재 프랑스는 격렬한 파업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중이다. 마크롱 대통령의 연금 개혁을 국민은 반대하고 있다. 2023년 현재 한국은 물가가 계속 오르고 있고 사회 불평등은 증가하며, 대통령을 전혀 신임할 수 없는 상황이다. 군벌 간의 충돌로 내전 중인 수단에서 기본적인 국민의 권리는 당연히 없을 것이다. ‘1789714부터 지금까지 무엇이 변했고, 우리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는가? 1789년의 민중과 2023년의 국민은 거창한 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저 평범하고 소소한 삶을 원할 뿐이다.

 

[사고는 사랑하는 모든 것을 뒤로했다. 젊은 아내, 가계부를 적어야 하는 소박한 삶, 플랑슈미브레의 허름한 집, 술친구들, 가나한 사람의 믿음, 그는 뭔가 잘해 보고 싶어서 희망을 갖고 자동인형처럼 몇 걸음 나아갔다.

어떤 기미를 느낄 수 있을까 싶어 첨탑에 시선을 고정한 채 몸을 드러내고 앞으로 나아가는 짧은 순간 그의 가슴은 뜨거우면서도 동시에 차가웠을 것이다....하나로 뭉쳐지지 못하는 진실의 미세한 부스러기들처럼 머릿속에서 모든 것이 소용돌이쳤다.

-p.155]

 

*제목-앙드레 모루아, ‘프랑스사’, p.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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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3-04-30 07: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혁명은 승리자 편에서 기술된다고 느껴집니다. 멋진 글입니다.

페넬로페 2023-04-30 09:04   좋아요 0 | URL
네, 그런 이유로 에리크 뷔야르 작가가 이런 글로 민중을 서술한 것 같습니다.
호시우행님, 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새파랑 2023-04-30 10: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제 프랑스하면 페넬로페님입니다 ㅋ
전 7월 14일이 프랑스혁명일인지 처음 알았습니다 ㅎㅎ

프랑스는 정말 매력적인 나라인거 같아요~!!

페넬로페 2023-04-30 16:38   좋아요 2 | URL
읽다보니 프랑스 소설을 요즘 많이 읽는 것 같아요.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어 다른 책을 참조해 보는데 복잡한 것 같습니다^^

초원 2023-04-30 20: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의미심장한 제목에 저절로 읽게 됩니다. 마리의 <전원생홀>도 ‘자연주의‘입니까 묻는다면 그들만의 잔치라고 할 수 있겠지요. 재미있게 읽었어요, 페넬로페님. 놀다갑니다.

페넬로페 2023-05-01 00:25   좋아요 0 | URL
저도 제목에 인용한 저 문장이 인상적이었어요. 반란이나 폭도로 규정하기보다 혁명으로 인정한다는 게 의미심장했어요.
마리 앙투아네트는 보는 시각에 따라 달리 평가되겠지만 민중의 입장에서 보면 용납되지 않은 부분이 많을 겁니다^^

희선 2023-05-01 01: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프랑스혁명 1789년 7월 14일이라는 거 몰랐습니다 몇해 전에 한번 찾아봤을 텐데 잊어버렸네요 7월 4일 이 날짜는 기억해요 미국독립기념일... 년도는 모르는군요 프랑스혁명이 일어나고 여기저기에서 혁명이 일어났다는 말이 있기도 하고, 그게 한국 그때는 조선에도 영향을 주지 않았나 하는 글을 본 적이 있군요 100년쯤 뒤지만... 지금은 더 빨리 다른 나라에 영향을 주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역사란 이름 없는 한사람 한사람이 만들어 가는 거기도 하군요 그런 사람도 잊지 않아야 할 텐데...


희선

페넬로페 2023-05-01 08:11   좋아요 1 | URL
좀 더 정확히 말하면 7월14일은 프랑스 민중이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한 닐이고 아마 혁명의 전초전이라고 할 수 있겠죠.
7월 4일도 있군요.
학교때 외워 시험도 쳤는데 요즘은 다 가물가물합니다.
인간 한사람 다 중요한데 역사는 그것을 다 기록하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
 
면역 - 당신의 생명을 지켜 주는 경이로운 작은 우주
필리프 데트머 지음, 강병철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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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누군가에게 나에 대한 설명을 해달라고 요청받는다면 난 나를 어떻게 표현해야할까? ‘너풀거리듯~~그렇게 예쁘지는 않지만’-노래 가사를 빌려-엄청 좋은 사람입니다. 아님 겉으로는 조금 냉정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자상하고 타인을 배려하는 츤데레입니다.’라고 해야 하나....막상 나에 대한 얘기를 하려니 쉽지 않다. 반면 아이를 낳던 날을 얘기해달라고 하면 지금도 그날의 모든 것이 생생하게 기억이 나서 자세하게 말해줄 수 있다. 여지껏 내가 아파서 고통 받았던 순간도 마찬가지이다.

 

나의 정체성이나 성격에 대한 것보다 육체적인 것을 표현하기가 더 수월하다. 내 몸은 그 어떤 미세한 것에도 즉각적인 반응을 한다. 통증, 재채기, 가려움, 발열, 알레르기 쇼크 등 몸의 표현은 엄청 다양하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줄곧 생명과 육체를 가지고 그 순환 속에서 살고 있다. 그것이 바로 이지만 정작 나는 내 몸에 대해 대충 알고 있다. 몸 속 장기의 위치와 기능에 대한 기본 상식정도의 수준이다. 의학이 발달해 인간은(물론 아직 그런 혜택을 못 받는 곳도 많다.)태어나자마자 여러 예방접종으로 몸을 예열해놓고, 어딘가가 고장이 나면 그 부위에 따라 특화된 병원으로 달려가면 되니 내 몸에 대해 별로 알 필요가 없다. 더 알고 싶어도 알 길이 없다. 공부를 잘하지 못해 의대에 들어가지 못했고, 의학 서적은 용어부터 너무 전문적이라 내 머리에 과부하가 걸린다.

 

몇 년 전 가슴에 통증이 느껴져, 다른 부위도 아닌 가슴이라 걱정이 되어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다. 내 증상이 폐암의 증상과 비슷했다. 곧장 동네에 있는 내과로 갔다. 의사쌤에게 증상을 얘기하며 인터넷을 찾아보니 폐암 증세랑 비슷하다고 했더니 쌤은 나에게 버럭 화를 내었다. 말도 안 되는 그런 얘기들을 믿지 말라고 하면서 그냥 체기가 있어 명치 쪽이 아픈 것이라고 했다. 먼저 설레발을 쳐서 미안한데 그렇다고 환자에게 버럭할 것 까지는 없지 않은가? 그래도 내가 잘못했다.

 

목 뒤쪽과 어깨가 아파 정형외과에 간적도 있는데, 그곳은 일단 통증부위에 주사부터 놔주기로 유명한 병원이다. 성분을 모르는 주사를 맞기 싫었지만, 고통이 심해 일단 주사를 맞았다. 그것도 1주일에 한 번씩 7회 정도를 맞아야 한다고 했다. 1주일 후 다시 의사쌤을 만났는데, 통증이 가시지 않아 주사가 별로 효과가 없는 것 아니냐고 했더니, 그 쌤 역시 나한테 버럭 화를 내며 환자 자세가 나빠서 그렇지 않으냐며, 먼저 자세를 바로 해야 되는데 그런 의지가 없으니 차도가 있겠느냐고 했다. 목이나 어깨, 허리 통증이 있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아파서 고통스러우면 절대 좋은 자세가 나오지 않는다. 그 고통을 멈추고 좋은 자세를 찾기 위해 우리는 병원에 가는 것이다.

 

이번에는 버럭하는 쌤에게 나도 그냥 물러 설수는 없었다. “환자는 아파서 병원에 오는 것이며, 통증 때문에 자세를 바로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 나는 그냥 1주일 전에 맞은 주사가 통증을 해소하는데 별 도움이 되지 않아 그렇게 말했을 뿐이다. 그러면 쌤이 다른 대안을 마련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왜 이 자리에서 내가 쌤한테 그런 소리를 들으며 책망을 들어야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왜 쌤이 지금 저를 혼내시는 겁니까? 저는 고통스러워 죽겠는데요?” 내가 한마디도 지지 않고 계속 말하자 의사쌤은 나에게 그만 욱해서 그랬다고 미안하다고 했다. 진정한 사과는 아니었다. 그 다음 태도가 싸늘했으며 그러면 어떡하겠냐고 오히려 나에게 물었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할까? 다른 병원으로 옮기든지, 대학병원으로 가야만 하겠지...

 

내 몸에 대해 내가 잘 모르니 여러 매체의 건강 정보를 챙겨보고, 책도 읽는다. 그렇다고 거기에 정답이 있는 건 아니다. 그저 참조할 뿐이다. TV 프로에서 영양제에 대한 방송을 한 적이 있었다. 영양제를 꼭 먹어야 한다, 먹을 필요가 없다는 의견이 반반이었다. 어떤 사람은 하루에 영양제를 몇 십 알 먹었다. 어떤 의사는 영양제가 전혀 소용이 없다고 했다. 결국 그 프로는 열린 결말로 끝을 맺었는데, 먹느냐 마느냐의 결정은 시청자의 몫이었다.

 

필리프 데트머의 면역은 그런 우리의 고민과 궁금증을 최대한 쉽고 친절하게 풀어주려고 노력한 책이다. 유튜브 과학 채널인 쿠르츠게작트-인 어 넛셀(Kuizgesagt-In a Nutshell)'의 설립자이자 책임 저자인 그는 자신을 과학을 쉬운 말로 전달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저자는 의사나 면역학자가 아니다. 오랫동안 면역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는 데 노력했고, 그것을 최대한 과학적인 태도를 유지하면서 정보를 이해하기 쉽고 아름답게 전달(저자 소개 중에서)‘하고자 한다.

 

그런 취지에 맞게 저자는 독자들에게 면역에 대해 재미있고도 쉬운 글로 우리에게 지식을 전달해준다. 일상을 소재로, 예를 들고, 몸속의 세포들을 의인화시켜 설명해 준다. 산책을 나간 사람이 녹슨 못을 밟았을 때의 상황을 설정해 우리 몸의 면역계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그 과정을 서술한다. 각 장의 끝부분에 개념을 요약해놓아 복습도 시켜준다. 우리 몸의 모든 부분이 다 그렇겠지만 특히 면역계는 엄청 복잡하다. 그 복잡함을 쉽게 단순화시킨다고 다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이 책을 통해 내 몸의 메커니즘과 시스템을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었다.

 

[면역계만큼 삶의 질에 결정적인 역할을 미치는 존재는 거의 없다. -p.7

 

우리 자신이 곧 면역계다. 면역계란 자신을 보호하고 계속 살 수 있게 해주는 생물학적 원리가 표출되는 방식이다. 면역계에 관해 이야기할 때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p.24]


-p.30


우리 몸의 침입자는 몸의 외부를 통해 들어온다. 감염에 취약한 곳이 점막인데 입이나 눈꺼풀, 입속, 콧구멍, 귓구멍은 점막 중 눈에 보이는 외부이지만, 몸속에 있다고 생각하는 기관지, 허파, 위와 장, 생식관과 방광도 사실 외부에 속하는 것이다. 하나로 연결되는 이 대롱으로 세균과 바이러스가 우리 몸으로 침투한다. 이 책의 첫 부분에 있는 이 그래픽이 나에게는 충격적이었다. 몸의 내부에 있는 장기라고만 생각했던 것이 우리 몸의 외부에 속할 만큼 병균에 취약한 곳이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정말 맞다. 우리는 끝없이 음식과 세균을 섭취하고 그것들이 이 대롱을 통해 우리 몸으로 들어오고 영양소를 공급해주며 병을 일으킨다. 그러니 외부가 맞는 것이었다. 좋은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생각이 절실하게 든다.


-p.46


우리 몸의 적들을 퇴치시켜 줄 면역 군단이다. 이들은 서로 힘을 합쳐 우리 몸을 방어한다.


-p.105


면역계는 선천 면역계와 후천 면역계의 두 영역으로 나눌 수 있다. 선천 면역계는 '태어날 때부터 존재하며 적이 침입하면 불과 몇 초 안에 작동하는 모든 방어 전략이 포함된다.(p.48)' 자기와 타자를 구분하며, 병균이 침입하는 즉시 출동하여 자신을 불태우며 우리 몸을 방어하는 충직한 군인들이다. 몸의 웬만한 병은 선천 면역계로도 충분히 방어가 된다.

 

후천 면역계는 특이적이다. 선천 면역계만으로 우리 몸을 방어할 수 없을 때, 후천 면역계가 동원된다. 이 두 영역은 복잡한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고, 상호 작용에 의해 그 힘이 발휘된다. ‘후천 면역계는 과거에 존재했던 모든 감염, 현재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감염, 그리고 지금까지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지만 미래에 언젠가 존재할지도 모르는 모든 감염에 대한 무기를 갖고 있다는 뜻이다(p123)'


-p.82


[염증은 어떤 식으로든 면역계가 교란되거나, 손상을 입거나, 자극받았을 때 가장 보편적으로 일어나는 반응이다.....벌레에 물려 피부가 가려운 것도 염증이고, 감기에 걸렸을 때 목이 아픈 것도 염증이다. 간단히 말해 염증의 목적은 감염을 특정 부위에 국한시켜 더 이상 퍼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손상되고 죽은 조직을 제거하는 데도 도움이 되고, 면역 세포와 공격용 단백질들이 즉시 감염 부위로 모여드는 일종의 고속도로 역할도 한다.

-p.80]

 

보통 몸에 염증이 생기면 약을 먹는 데 염증이 꼭 나쁜 것은 아닌 것 같다. 염증은 지금 우리 몸 안에서 면역계가 움직이고 있다는 증거이다. 발열 역시 병원체가 놓은 온도를 싫어하기에 우리 몸이 스스로 열을 높여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더 활성화되지 않도록 나쁜 환경을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몸에 염증이나 발열이 있을 때 무조건 약을 먹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리 심하지 않으면 몸의 자정력을 믿어보는 것도 좋겠다. 지라(비장)와 편도도 면역의 역할을 한다. 조금 불편하다고 해서 몸에 별로 필요 없는 장기를 떼어내는 일이 많은데 저자는 이러한 것을 우려한다.


-p.332~333


면역에 대한 과정을 이 지면에 다 적는 것은 무리이다. 책을 다 읽었지만 나는 아직 면역 시스템에 대해 모두 다 이해하지 못했다. 그만큼 면역의 용어를 비롯해 역할들이 복잡하다. 저자는 면역에 대해 전반적인 것을 설명해주고 나서, 결국 우리가 우리 몸의 면역을 잘 유지시키기 위해서는 몸에 필요한 모든 비타민과 균형 잡힌 식사와 운동이 제일 좋다고 얘기한다. 면역계를 강화시켜준다는 온갖 종류의 건강 보조제는 아무런 효과도, 근거도 없다고 한다. 면역계를 강화한다는 생각은 끔찍한 생각일 뿐이고 중요한 것은 균형 잡힌 면역계, 항상성을 유지하는 것, 공격성과 침착함을 동시에 갖추어야 한다(p.302)’고 한다.

 

원시시대부터 우리의 목숨을 순식간에 빼앗아 간 여러 질병들이 의학의 발달로 감소되었지만 새로운 병들이 계속 생기고 있다. 그 어떤 병균과 바이러스가 우리 몸에 침투하든 우리는 든든한 면역계를 가지고 있다. 이 면역계를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내 몸을 좋은 환경으로 만들어주는 것이다. 건강한 음식을 먹고, 적당히 운동하며, 최대한 위생에 신경 쓰는, 기본을 잘 지키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면역을 강화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며칠 전부터, 발바닥 통증이 시작되었다. 어떤 균이 내 몸에 침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든든한 면역군단은 지금 전쟁을 벌이고 있을 것이다. 선천 면역계의 공격만으로 대충 나의 병이 치유될 수 있기를 바라며 병원까지 가지 않게 되기를 바란다. 그들의 건투를 빈다.


-출판사 제공 책소개 중에서

 

[면역계에서 한 가지 성가신 점은 전체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려면 너무 많은 것을 한꺼번에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랬을 때 면역계는 그 진정한 아름다움을 우리 앞에 드러낸다. 큰 포식 세포, MHC 분자, 사이토카인, T 세포 수용체, 림프계와 항체를 알고 나면, 이 모든 것이 하나 되어 놀랄 만큼 섬세한 시스템을 구축하고 그것이 얼마나 합리적이며 충격적일 정도로 빈틈없이 작동하는지 깨닫게 된다.

-p.334~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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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3-04-07 18: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
이 책 다 읽고 나서 백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번역자의 주장이 납득이 가더라구요.
재밌게 읽었어요

페넬로페 2023-04-07 20:59   좋아요 2 | URL
이해하기 쉽게 잘 설명했더라고요. 저자가 동물실험에만 의한 백신에 대해서는 반대를 표시했는데 코로나 백신이 급하게 동물실험으로 만들어 졌다고도 해서 백신을 안 맞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아요^^

서곡 2023-04-07 18: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츤데레 ㅋㅋㅋ 금요일 저녁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페넬로페 2023-04-07 21:12   좋아요 1 | URL
서곡님께서도 주말 잘 보내시기 바래요**

난티나무 2023-04-07 18: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부터 염증과 친구하고 있는 저도 제 면역군단의 건투를 빌어야 겠어요.^^

페넬로페 2023-04-07 21:14   좋아요 0 | URL
몸 속에 있는 면역이 잘 활성화되면 좋을텐데 제 바램대로 움직여주지는 않은것도 같아요 ㅎㅎ
난티나무님!
어서 건강해지시기를 바래요^^

레삭매냐 2023-04-07 20: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는 과연 누구인가라는 질문
과 마주하게 되네요.

내가 읽는 것이 나를 만든다.
내가 먹는 것이 나를 만든다...

왠지 비슷하면서도 다른 결이
라는 생각이 드네요.

나이 들면 면역에 특히 신경을
써야 한다고 하던데 어느새 그
런 걱정을 할 나이가 되었습니다...

페넬로페 2023-04-07 21:17   좋아요 1 | URL
먹는 것 정말 중요한데 바쁘거나 귀찮아서 대충 먹을때가 많고 야채도 잘 안 먹어요.
요즘은 정신적인 것보다 건강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봐요.
이 책에서 나이들수록 면역기능이 떨어진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더 신경 써야겠어요^^

희선 2023-04-08 02: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프다고 바로 약 먹고 병원 가는 건 안 좋은 듯합니다 저는 아예 안 가요 아플 때가 별로 없기도 하지만 병원 가는 거 싫어서... 그렇지 않아도 갈 때가 많아서 그런 것 같아요 시간이 가면 나아요 감기는 한두주 좀 아프면 나아요 약도 자꾸 먹으면 잘 안 듣기도 하잖아요 약 먹어야 낫는 것도 있으니 그럴 때는 병원에 가는 게 좋겠습니다


희선

페넬로페 2023-04-08 10:55   좋아요 1 | URL
네 전에 저도 그랬어요.
조금 참으면 저절로 나았는데
코로나 시국으로 그런 게 깨져 버렸어요. 감염되어 다른분에게 옮기면 죄를 짓는듯한 분위기가 되다보니 열이 나면 무조건 헤열제부터 먹게 되더라고요 ㅠㅠ
이제는 걸릴 사람은 원만해서는 걸렸으니 좀 견뎌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봐요^^

새파랑 2023-04-08 09: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의 의학 논문을 읽은 기분이 드네요~! 근데 페넬로페님을 치료한 의사들이 좀 이상하네요. 아파서 온 사람에게 화를 내다니 이게무슨..

책에 있는 그림 보니까 쉬우면서도 친절한 책일거 같아요.

발바닥 통증은 면역체계가 잘 작동해서 금방 괜찮아지시길 바라겠습니다~!!

페넬로페 2023-04-08 10:58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의사의 권위를 못버리는 사람이 많아요. 이 책이 쉽게 쓰였는데도 용어가 어렵고 우리 몸의 시스템이 복잡하더라고요 ㅎㅎ

발바닥 통증은 조금 나아지고 있는데 완전히 나은 것 같지는 않아 면역계에게 더 일 잘 하라고 독촉하고 있어요 ㅋㅋ

서니데이 2023-04-09 18: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엔 인터넷으로 여러 자료가 있긴 하지만, 잘못된 의학정보도 많이 있는 것 같아요.
병원의 선생님은 그 분야에 대해 잘 아시는 분이지만, 환자는 그렇지 못하니 이해하는데 차이가 있기도 합니다. 그리고 인터넷 사이트에 검색하면 심각한 병명부터 나오니 공포심도 생기고요.
코로나19 시기를 지나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전보다 실내생활이 줄어서 그런지 최근 감기 환자가 많다고 해요. 감기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도 적을 거에요. 인체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지금도 계속되지만, 우리가 알기에는 너무 어려운 것들과 모르는 것이 많은 것 같습니다.

잘읽었습니다. 오늘은 부활절이예요.
부활을 축하합니다.
좋은 주말 보내세요.^^

페넬로페 2023-04-10 15:35   좋아요 1 | URL
네, 인터넷에 들어가 보면 광고홍보나 병원 광고를 위해 미끼를 던져놓는 경우도 많더라고요~~
똑같은 증세에도 엇갈린 의견을 내 놓는 의사분도 많으시고요.
아프면 병원에 가야하는데 왜 그렇게 가기가 싫은지요 ㅠㅠ
한 번가면 시간도 많이 빼앗겨 귀찮기도 해요
그러니 건강을 유지하는 게 젤 좋은 것 같아요.

서니데이님!
늦었지만
부활 축하합니다^^
 
책만 읽어도 된다 - 50에 꿈을 찾고 이루는 습관 좋은 습관 시리즈 23
조혜경 지음 / 좋은습관연구소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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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세상은 재미있는 것이 많고 볼 것이 넘친다. 직접 어디를 가거나 뭔가를 하지 않아도 몇 시간씩 앉아 영상을 통해 알지 못했던 다양한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 그런 기발하고도 변화무쌍한 곳에서 책만 붙들고 있는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해본다. ‘정말 책만 읽어도 괜찮을까?’라는 의심과 그래도 책 만 한 건 없어라는 자기 합리화를 번갈아가며 한다. 이런 시점에서 알라딘 서재에서 다양하게 책을 읽고 있는 분들을 알게 되고, 책만 읽어도 된다라고 호기롭게 외치는 책을 만나면 반갑고 든든하다. 외동아이를 키우며 외동이라도 괜찮을까?’라는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외동아이가 성공한다라는 책을 발견할 때의 기쁨과 같은 것이다.

 

조혜경의 책만 읽어도 된다는 책을 통해 한 사람이 성장하고, 자신의 세계를 확장시켜 나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책과 관련된 여러 에피소드와 저자가 경험한 독서의 방법도 다양하게 서술되어 있다. 책을 읽고 어렵게 글만 조금 남기는 나 같은 독서가와는 달리 조혜경의 독서는 미래를 설계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게 한다. 블로그를 통해 단기간에 많은 서평을 쓰고 일본어를 공부해 번역가가 되기로 한 결심은 집중과 혹독한 자기 관리로 이어진다.

 

책과 관련된 책을 읽으면 작가와 나의 경험이 만나는 부분이 있다. 이 책에서 나쓰메 소세키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언급되어 있어 좋았다. 리뷰, 후기, 서평, 독후감의 차이를 생각하며 글을 쓰라고 했는데 그런 것을 구별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글쓰기를 하는 내가 생각해 볼 문제이기도 했다. 책을 읽을 때 질문지를 만들어 보는 방식도 도움이 되었다.

 

저자는 건강하게 책을 읽기 위해 108배 운동을 한다. 아주 오래 전 엄마를 따라 절에 갔을 때 108배를 해본 적이 있는데 그것을 해 본 사람만이 108배가 엄청 힘들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책을 읽기 위해 건강을 챙겨야한다는 저자의 말에 격하게 공감한다. 책만 있으면 언제까지나 독서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몇 년 전 목디스크로 허리까지 아프고 서 있는 것조차도 힘들 때 건강하지 않으면 절대로 책을 읽을 수 없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았다.

 

 

나는 걷기를 좋아해 혼자 많이 걷는다. 길 가다가 카페를 만나면 커피를 마시고 싶어 들어가고 싶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커피만 마시자고 카페에 들어가는 것이 시간낭비라는 생각이 든다. 산책하고 커피 마시면서 책도 읽어야 되니까. 시간 여유가 많은 날은 산책길에 책을 꼭 챙긴다.

 

얼마 전 공원의 카페에서 책을 읽으며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옆 테이블에서 대화하는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려 책에 집중할 수 없었다. 여자 둘이 마주보고 앉아 있었는데 한 사람이 거의 일방적으로 말하고 상대방은 그 말에 수긍만 해주고 있었다. 그 사람은 자기 시댁에 대한 불만을 속사포처럼 쏟아내고 있었다. 시댁과 관련된 모든 사람이 보기 싫다고 했다. 그녀는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말했다.

 

그 사람들의 얘기를 들으며 내가 <책을 읽는다는 것>이 그렇게 다행일 수가 없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누군가의 얘기를 경청하는 것이고 그것을 훈련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난 옆 테이블의 여자가 말하는 내용이 아니라 같이 온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 것에 화가 났다. 별로 좋지도 않은 자신의 억울함과 신세한탄을 위해 누군가의 시간을 빼앗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책이 나에게 좋은 것을 많이 주었지만 그중에서 가장 좋은 것은 일방적이지 않게 누군가의 말을 먼저 들어줄 수 있게 해 준 것이다. 먼저 물어봐주고 상대방의 얘기를 들어주는 멋있는 내가 되기 위해 책 만 한 건 없다. 그런 의미에서 책만 읽어도 된다의 행간에는 많은 것이 들어있다. 이 책을 읽으며 그 의미를 느끼고 공감할 수 있는 시간들이 있어 즐거웠다.

 

[그렇다. 나는 좋아하는 책 읽기와 공부로 삶을 얼마나 바꿀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서 이 책을 쓰기로 결심했다.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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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리자 2023-03-19 22:0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과 함께 공감할 수 았는 부분이 있어서 기쁘게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 정말 저도 책을 좋아해서 다행이라는 생각 많이 합니다. 앞으로도 책과 함께 행복하고 성장하는 시간 보내기로 해요.^^

페넬로페 2023-03-19 22:53   좋아요 3 | URL
우리가 책을 좋아하고 열심히 읽는 사람들이라서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어요.
모나리자님!
챽 내시느라 수고 많으셨어요^^
두 번째 책 출간으로~^
가즈아~~~~~

서니데이 2023-03-20 22:0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도 모나리자님의 책 읽으셨군요.
저도 얼마전에 책을 보내주셔서 읽었습니다.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건 좋은 일 같아요.
시작이 어렵지만 하루라도 먼저 시작하는 것도 좋을 것 같고요.
잘읽었습니다. 페넬로페님,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2023-03-23 19: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넬로페 2023-03-21 17:4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개인적으로 새로운 것을 시작하기 힘들어하는 사람이라 모나리자님처럼 꿈을 가지고 정진하는 분을 존경해요~~
독서에 대한 여러 생각도 했습니다^^

희선 2023-03-23 01: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세상에 재미있는 게 많아도 책이 가장 재미있죠 조용히 시간을 보내기에 좋고 여러 가지 생각하게도 하니... 책을 보고 자기 세계를 넓혀가면 좋겠지만, 저는 그러지 못하고 더 갇히는 것 같기도 하네요 그것도 어쩔 수 없나 싶기도 합니다 여러 가지에 관심을 갖고 보면 좋을 텐데... 그런 생각도 했는데 지금은 또 그냥 봅니다 책만 읽어도 된다 좋은 말이에요


희선

페넬로페 2023-03-23 19:50   좋아요 2 | URL
지금 살고 있는 환경에서 변화가 있으면 모르겠지만 아직까진 저도 책이 좋아요. 영화와 음악도 좋아하고요^^
저도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지는 못하고 있어요. 좀 더 스펙트럼을 넓히고 싶은데 그게 잘 안되네요~^
‘책만 읽어도 된다‘라는 말이 위로를 줬어요^^

 
사나운 애착 비비언 고닉 선집 1
비비언 고닉 지음, 노지양 옮김 / 글항아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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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알지 못했던 작가를, 자전적 에세이로 먼저 만난다는 것은 위험할 수도 있는 선택이다. 대책 없이 사랑고백을 먼저 하는 것과 같은 건지도 모른다. 다행히 고백에 성공하여 관계가 좋게 지속될 수도 있지만 인간적 결함에 실망해 뒤돌아보지도 않고 도망칠 수도 있다. 비비언 고닉의 사나운 애착은 고백자를 받아들이되 천천히, 냉정하게 접근하게 만든다. 현대 도시의 상징인 뉴욕 곳곳을 엄마와 딸이 산책하며 보여주는 대립, 사랑, 감정에는 국적과 인종에 관계없이 공감할 수 있는 보편성이 있다. 책표지의 사진에서 누구나 그들이 모녀관계라는 사실을 알 수 있듯이 그들에게 뿜어지는 맹렬한 애증은 세상 모든 딸과 엄마에게 있는 것이고, 보는 사람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는 다양성도 존재한다.

 

그들은 산책과 동시에 외국에서 건너온 이민자들의 거주지로 이루어진 조각보 같은 곳(p.6)인 뉴욕의 브롱크스에서 오래 산, 과거의 삶도 보여준다. 연대기적 순서가 아닌 즉흥적이고 자유로운 연결이 부드럽게 느껴지지만, 사실 그것은 작가의 치밀한 설계에 의해 구성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엄마와 딸이 중심이 되는 그들의 얘기에 여자와 결혼이라는 관점이 연결된다. 그것이 나를 끌어당기고, 나 역시 그들의 걷기에 동참할 수밖에 없다.

 

러시아에서 뉴욕으로 이민 온 유대인이라는 정체성, 엄마, 브롱크스에 살던 이웃 여자들은 화자의 성장과정에서 뼈대를 이루어주는 것들이다. 남들보다 금욕적이며 당당하게 살았던 엄마이지만, 결혼으로 대표되는 사회적 관습의 굴레에는 벗어나지 못한다. 딸이 공부하기를 원하지만 거기서 다른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남편의 죽음으로 엄마는 나머지 삶을 슬픔과 우울로 도배해버린다. 그 우울의 증상들은 화자의 모든 것에 영향을 주며, 끝까지 끈끈하게 붙어있다.

 

[우린 둘 다 어떤 면에서 자질 미달이라는 것을, 늘 하던 대로 살다가 우리가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만다. 우린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게 자기만의 세상에서 고립된 채 살아 온 사람들, 평생 서로의 생활 반경에서 벗어나지 못해 닮아버린 두 여자다.......

가족의 삶이라는 것 모두 해석이 불가능한 세계처럼 느껴지기 시작한다.

-p.72]

 

엄마가 집안에 드리운 무거움은 딸의 삶에 부정적이면서도 진취적인 방식으로 나타난다. 결혼은 그녀에게 관습적 관계라는 어쩔 수 없는 식상함과 무기력을, 그 후의 남자들은 육체적 쾌락만을 줄 수 있을 뿐이다. 자기연민과 공허감은 언제나 화자와 같이 한다. 그렇지만 여섯 살 이후부터 입을 꾹 다물고 책에만 파묻혀 살아온 문학소녀이고 시티칼리지를 해방구(p.163)'라고 생각한 그녀에겐 똑같이 남편을 잃은 이웃 여자 네티가 그려준 프레임에 갇힐 생각은 없다. 자신 안에 직사각형의 공간을 만들고 그것을 넓혀간다. 그것은 불행과 행복 사이에서 쪼그라들고 확장되는 현상이 수없이 반복되지만,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자신만의 것이 된다.

 

남편을 잃은 여자의 모든 것은 당사자가 되지 않고서는 절대 알지 못한다. 거기에는 슬픔과 불안의 한계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상실로 인한 우울과 무기력은 자신을 가두고 주변을 둘러보지 못하게 한다. 엄마가 느끼는 그 어둠은 자식에게 전달되고 그것은 고스란히 그들의 나머지 삶을 지배하게 된다.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것이 엄마와 딸이지만 그들도 언제나 상호관계속에서 서로를 알 뿐이다. 엄마는 딸이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살기를 원하고 딸은 엄마로 인한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들의 평행선은 징글징글한 애착을 낳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모녀는 평생 뉴욕의 거리를 언제나 같이 산책한다. 그들의 산책은 위태롭다. 날이 선 상태에서 서로를 공격하며, 계속 상처를 받는다. 나는 그들을 마음 졸이며 바라본다. 언제쯤 그들에게 평화와 진정한 위로가 있을지를 기다린다. 시간이 지나간다. 세월이 흐른다. 두 사람은 늙어간다. 그리고 그들은 가장 오래된 친구가 된다. 여전히 엄마는 언제나 그렇듯이 날 위해 해 줄게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내가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초조해 하면서도(p.48)' 딸의 직사각형 공간을 침범할 수 없다는 지혜를 얻는다. 끝까지 되받아쳐야만 직성이 풀리는 엄마라는 입장에서 벗어나 수긍하고 이해해주려는 한 인간으로 남는다.

 

나와 딸아이도 비비언 고닉의 모녀와 별반 다르지 않다. 싸우면서도 항상 모든 것을 같이 한다. 언젠가 우리 가족이 어딘가를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남편이 운전하는 차에서 딸아이와 나는 별것 아닌 것을 가지고 말싸움을 하고 있었다. 나와 딸아이의 그런 모습을 남편은 불편해한다. 작은 것으로 큰 갈등을 일으킬까봐 언제나 노심초사하며 중간에서 막아보려고 애쓴다. 그날 딸아이와 나는 그런 남편의 노력에도 차 안에서 끝까지 말다툼을 멈추지 않았다. 남편의 일 때문에 우리는 중간에서 차에서 내려야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딸아이와 나는 무의식적으로 손을 잡고 도로를 걷기 시작했다. 신호등에 멈춰서 우리를 위태롭게 바라보던 남편은 손을 잡고 걸어가고 있는 우리를 보며 엄청 기함했었다. 그렇게 싸우던 사람들이 금방 손을 잡고 걸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배반감까지 느꼈다고 했다. 딸과 엄마사이에는 이렇게 같이 사는 사람조차 알지 못하는 깊은 것이 존재한다. ‘사나운 애착은 호들갑스럽고, 고개를 내젓게 하지만 그 안에 사랑과 여성만의 연대가 촘촘하게 들어있다.

 

좋은 책이란 그들의 얘기에서 나의 기억과 추억을 소환하고 그것을 객관화시켜 줄 수 있는 책이다. 그런 의미에서 비비언 고닉의 사나운 애착은 그 역할을 충실히 해준다. 이 책은 시간이 지나도 한 번씩 펼쳐 보게 될 것 같다. 저자의 다른 책에도 관심이 간다. 나의 대책 없는 사랑고백이 성공했다는 확신이 든다.

 

[엄마를 놓아주지 않는 저 끈질긴 삶이라는 혼란.

 

우리는 말없이 앉아 있다. 우리는 끈끈하게 얽힌 혈육이 아니다. 살면서 놓친 그 모든 것과 연기 같은 인생을 그저 바라보는 두 여자다. 엄마는 젊어 보이지도 늙어 보이지도 않고 그저 당신이 목도하고 있는 바, 그 혹독한 진실에 깊이 침윤되어 있다. 엄마한테 내가 어떻게 보일지는 나도 모른다.

-p.30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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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3-03-18 04: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속 엄마와 딸을 보면서 페넬로페 님은 따님하고 자신을 생각하셨군요 엄마와 딸 사이는 하나만 있지 않겠지요 사이가 좋은 사람도 있고 그저 그런 사람도 있고 사이가 안 좋은 사람도 있는...


희선

페넬로페 2023-03-18 10:29   좋아요 1 | URL
아무래도 저에게 딸이 있으니 이 글을 읽으며 연관이 되더라고요. 부모 자식 사이가 좋았다가 나쁘다를 반복하니 그 과정에서 공감되는 부분도 많았어요^^

서곡 2023-03-18 08: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살면서 놓친 그 모든 것과 연기 같은 인생 ... 늘 하던 대로 살다가 우리가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만다 / 인용하신 부분으로부터 되짚어봤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페넬로페 2023-03-18 10:25   좋아요 2 | URL
이런 문장은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야 이해되는 것 같습니다. 비비언 고닉 작가는 그런 통찰을 문장으로 잘 표현하더라고요. 역시 작가들은 남다르다는걸 다시 깨달았어요 ㅎㅎ
감사합니다^^

책읽는나무 2023-03-18 17:0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엄마와 딸 사이엔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로 표현한다 한들 이해되어지지 않는 그 무언가의 관계가 있죠!
상당히 공감이 갑니다.
리뷰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페넬로페 2023-03-18 19:57   좋아요 3 | URL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엄마와 딸의 스토리는 무궁무진하고 그 어떤 것이든 공감할 수 있어 좋게 읽었어요
그 관계들도 참 이해가 가고요 ㅎㅎ
 
심리학을 만나 행복해졌다 - 복잡한 세상과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심리법칙 75
장원청 지음, 김혜림 옮김 / 미디어숲 / 2020년 3월
평점 :
절판


심리학을 만나 행복해지기보다 오히려 스트레스가 쌓인다. 개별적인 인간의 심리보다 실험집단에 의한 결과에 너무 얽매여 있는 건 아닌지... 이 책은 어떤 면에서 자기 계발서로 읽힌다. 정신 차리고 자신을 통제하지 않으면 성공의 대열에 끼이지 못하고 참담한 실패만이 남는다는 경고를 계속해서 주고 있다.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심리법칙이 이렇게나 많은 것이 놀랍지만, 결국 인간이 사는 세상이 좋아지려면 게임 법칙에서 증명된 모두에게 좋은 최고의 선택을 해야만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 면에서 요즘 한국의 심각한 상황과 연결된다. 굳이 심리학으로 들어가지 않아도 우선 나 자신을 내가 먼저 챙기고 내가 인생의 중심에 서 있어야 한다는 사실은 언제나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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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서 2023-03-15 12: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심리학을 만나면 … 스트레스가 쌓인다. 이리도 저힌테는 와닿는지 모르겠어요. 수십 가지 법칙을 내세운 심리학 책을 완독하지 못했던 기억만 남았어요. ㅎㅎㅎ

페넬로페 2023-03-15 13:10   좋아요 1 | URL
정말 그렇죠!
심리학이 중요하고 임상에서나 사회에서 많이 필요한 건 사실이지만 어찌보면 그것에 조종당하고 있다는 생각도 했어요^^

서니데이 2023-03-16 22:4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교양심리학 책이 여러가지라서 잘 고르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좋은 책도 있지만 읽고 나서 기분이 무거워지거나 불편한 책도 있긴 해요.
나를 잘 챙기고 내가 인생의 중심에 있어야 한다는 건 필요한 것 같습니다.
페넬로페님, 따뜻한 밤 되세요.^^

페넬로페 2023-03-17 08:55   좋아요 2 | URL
네, 심리학에 대한 책도 엄청많아요. 근데 그것을 읽다보면 도움도 되지만 금방 또 망각하게 되더라고요.
언제라도 내가 세상의 중심에 있도록 살아야하는데 그것도 쉽지 않고요 ㅎㅎ
서니데이님!
오늘 하루도 행복하게 잘 보내세요^^

희선 2023-03-18 03: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심리학에 관심 갖고 책을 볼까 했지만, 사례가 나온 게 더 많더군요 심리학을 공부하려면 이론책을 봐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걸 잘 모르는군요 그냥 소설 보면서 사람 마음을 알아야지 하는데, 그것도 잘 모르겠어요 저랑 다른 사람만 있어서... 그런 사람도 있구나 하는 정도로 보는군요


희선

페넬로페 2023-03-18 10:39   좋아요 2 | URL
심리학책보다 저도 소설보며 사람 마음을 알게 되는게 훨씬 좋아요.
이런 책은 그래도 여러 집단에 대해 연구한 것이라 참고는 되더라고요^^

그레이스 2023-03-18 21: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심리학은 자신을 이해하고 사랑하고 타인을 용납하기 위함이란 생각, 그게 행복이란 생각입니다. ^^ 제 댓글 넘 재미없나요?

페넬로페 2023-03-18 23:40   좋아요 2 | URL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타인을 이해하고 용납하면 좋은데 요즘은 그냥 용납하는 경향도 많아요~~ㅠㅠ

우리가 재미는 좀 없는 사람들이지 않습니까!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