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귀와 말, 권총과 족구 - 대외원조 1세대의 원조현장 최전선 이야기
이욱헌 지음 / 스토리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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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원조받던 나라에서 원조하는 유일한 우리나라에 대한 자긍심을 회복하게 됩니다. 원조에 대한 성숙한 시각을 갖게 하는데 원조란 ‘어두운 골목길에 등불을 비춰 주는 것‘이라는 정의와 함께 그 안에 너무 많은 의미와 의도를 담지 않으면 좋겠다는 저자의 제안이 참 진실하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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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의 복음, 요한계시록
조영민 지음 / 죠이북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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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그렇게 나이 차이가 많아 보이지 않는 목회자가 담임목회를 하면서 책의 저자로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이 부러움과 도전으로 다가왔다. 바로 이 책의 저자인 조영민 목사님이다. 개인적인 친분은 없지만 SNS나 지면으로 그의 목회의 여정을 간접적으로나마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읽는 설교 룻기’를 통해 큰 감명을 받았기에 이번 책도 기대감을 가지고 대할 수 있었다.

요한계시록은 많은 편견과 잘못된 선입견으로 대하기 쉬운 책이다. 이단들이 급진적 종말론적인 시각을 가지고 자신들의 교리를 전하기 위해 문자적으로 사용한 전례가 있기 때문에 어렵다는 느낌이 크다. 또한 여러가지 상징과 이미지들이 나타나며 심판과 멸망에 관한 내용이 등장하기 때문에 막연한 두려움이 있다. 어렸을 때 부흥회에서 보았던 휴거에 관련된 영상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요한계시록을 바르게 해석하며 오늘에 살아있는 메시지로 적용할 수 있도록 돕는다. 무엇보다 성도들이 요한계시록을 바르게 잘 이해하고 말씀을 따라 살도록 하고자 하는 목자의 마음이 잘 느껴진다. 그렇기 때문에 너무 학문적으로 어렵다거나 반대로 개인 묵상의 차원이 아니라 공적인 설교의 자리에서 쓰여졌기 때문에 요한계시록을 대하는데 있어서 적절한 균형이 잡혀있는 책이다.

저자는 요한계시록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소망, 그리스도, 복음 이 세 가지를 축으로 삼았으며, 교회를 향한 메시지가 있는 본문 11개를 선택하였다. 이 책을 통해서 확인하게 된 중요한 두 가지는 요한계시록은 미래를 예언하기보다 현재를 위한 책이라는 것과 핍박이라는 당시의 배경을 염두에 두는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대와 상황은 다르지만 여전히 신앙이 위협을 받는 우리에게도 생생히 살아있는 말씀으로 들려지는 유익을 누리게 된다.

가장 감동적이었던 부분은 마지막 장으로 새 하늘과 새 땅을 유업으로 누리기 위해서 성도는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부분이다. 그런데 여기서 이기는 자는 싸움을 잘하는 자나 높이 올라가는 자가 아니라 ‘생명수에 목마른 자(221쪽)’로 ‘주님만이 주실 수 있는 참된 생명수 샘물을 기다리며, 타는 목마름으로 주님이 오시기를 기다리는 사람들(222쪽)’입니다. 가난한 심령과 겸손이라는 성경을 관통하는 하나님 나라의 가치와 잘 어울리는 탁월한 해석이 아닐 수 없다. 양들에게 있어서 입에는 쓰지만 영혼에 유익이 되는 참된 목자가 주는 진정성 있는 메세지로 다가온다.

점점 시간이 갈수록 교회 공동체를 세운다는 것이, 신앙을 생생하게 유지한다는 것이 너무나도 어려워지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교회, 목회자, 그리스도인들 때문에 오히려 우리는 절망과 환멸을 느끼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포기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우리에게 복음의 소망을 확고하게 제시하는 요한계시록의 말씀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목자의 따뜻하고도 자상한 시선으로 안내하며 깨닫게 해주는 이 책을 강력하게 추천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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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과 그리스도인의 삶 - 바울에 관한 새 관점의 윤리적, 선교적 함의
스캇 맥나이트.조지프 모디카 지음, 최현만 옮김 / 에클레시아북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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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과 그리스도인의 삶을 보는 새 관점


바울의 새 관점몇 해 전부터 온라인 상에서 계속 접했던 용어이다톰 라이트니 샌더스니 하는 학자들이 이 관점을 주장했고이것으로 인해 기존의 학자들이나 목회자들과 칭의 논쟁이 후끈했다는 정도로 알고 있었다. SNS에 올라온 새 관점에 대한 알기 쉬운 설명이나 도표도 보았지만 이 관점이 정말 무엇이 다른지를 알지는 못했다그러나 이번에 이 책을 통해서 바울의 새 관점이 무엇인지를 배우고 알 수 있었다.

 

이 책을 통해 바울의 새 관점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게 되어서 좋았다옛 관점에서 유대교는 행위 의의 율법주의 종교로율법의 행위는 행위와 공로 쌓기를 근거로 하나님 앞에 자신을 세우려는 인간의 시도를 가리키는 것으로 본다다분히 구원론 중심이고 개인의 구원이 강조된다.

그러나 새 관점에서 유대교는 언약적 신율주의로 유대인들은 언약을 따라 선택을 받아 구원을 이미 받았고이제 율법은 그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려주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가르침이다바울이 공격했던 율법은 유대인이 준수했던 율법 중 그들을 이방인과 구분하는 역할을 했던 행위들이다결국 여기에서는 교회론이 중요하며 이방인과 유대인의 하나됨이 부각된다.

 

신약성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바울서신의 주요 주제를 살피고그것들을 한 흐름으로 연결시켜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여러 저자들의 논문을 묶은 책이지만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주제들이 있다성령을 따르는 삶십자가를 본받는 삶자기희생사랑교회의 하나됨과 이를 위한 연합과 포용이다이전에는 이런 주제들이 따로따로 느껴졌다면 이 책을 통해서 이것들이 서로 촘촘히 연결되며 한 흐름 가운데 있다는 것을 보게 되었다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듯이 이 책은 바울신학을 하나로 볼 수 있게 하는 유익이 있다.

 

한국교회의 상황과 연결되어서 그런지 새 관점의 강점이기도 한 교회론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특히 교회의 연합과 하나됨이 중요한데 그 이유는 단합된 공동체 자체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선언되는 수단이기 때문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쟁취하신 승리가 적대적인 우주의 세력들에게 명백하게 드러나는 수단이며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헛되지 않음을 증명하는 수단”(213)이라고 한다여러 가지 이유로 분열과 갈등의 몸살을 앓고 있는 한국교회가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를 깨닫고 회복의 길로 돌아서기를 소망해본다.

 

무엇보다 이 책은 성서와 신학 차원의 논의에서 그치지 않고 그리스도인의 삶까지 연결시키고 있다그래서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현학적이거나 어렵지 않고 삶에 와닿는 느낌이다어떤 신학을 갖느냐에 따라 성경에 대한 해석이 달라지고 삶과 교회를 새롭게 보게 되는데오랜만에 기존의 틀을 깨고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하는 고민과 탄성을 자아내는 책을 만나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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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앵무새 - 오늘, 우리를 위한 성경읽기
스캇 맥나이트 지음, 전의우 옮김 / 성서유니온선교회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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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 파란 앵무새 서평 


성서유니온에서 나온 ‘성경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와 ‘책별로 성경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라는 책이 있다. 성경의 각 책에 대한 개론과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하도록 도움을 주는 좋은 책이다. 지금도 가까이 두고 필요할 때마다 찾아서 읽으며 도움을 받고 있다. 그런데 성경을 읽을수록 '그때 거기'에서의 의미 뿐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의 해석과 적용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성경을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가 관건이다.

어떤 구절은 오늘날에도 문자적으로 적용하여 그대로 지키지만, 다른 구절들은 더이상 시대와 상황에 맞지 않는다고 지키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런 기준들은 어디에서 누가 정해주는 것일까? 이런 고민은 나만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저자인 스콧 맥나이트는 참새들 사이에서 서로 친해지지만 결코 익숙해지지 않던 파란 앵무새에 비유하여 우리에게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성경의 본문들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설명해나간다.

'그 때는 그랬고, 지금은 다르다.' 이 책에서 꽤 많이 반복되는 문장이자 저자의 입장을 핵심적으로 드러내는 문장이다. 그는 단순히 성경의 개념과 행위를 되살리거나, 전통을 통해서 성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전통과 함께 읽기를 제안한다. '우리가 성경으로 돌아가는 것은 교회를 통해 앞으로 나아가며 우리 시대에 우리의 방식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다(48쪽).' 전통과 함께 읽는다는 개념이 추상적인데, '과거를 너무 존중해서 전통주의에 빠지면 안되지만, 속도를 늦춰 하나님이 과거에 교회에 말씀하셨는지를 살펴볼 정도로는 존중해야 한다'는 그의 설명은 이해가 쉽고 유익하다.

또한 성경을 대할 때 위키 이야기로 볼 것을 제안한다. '옛 이야기를 자기 시대에 맞는 새로운 방식으로 들려주기 위해 새로운 저자들이 성경 이야기를 끊임없이 고쳐주는 것(90쪽)'으로 설명한다. 또한 이 책에서 가장 탁월한 부분이었다고 느끼는 것은 성경의 이야기가 창조, 타락에 이어서 구속으로 가기 전에 언약 공동체가 있다고 설명한 점이다. 이것은 창세기 12장부터 말라기에 이르는 내용으로, 여기에는 하나 되기 위한 노력이 담겨 있다고 본 것은 구약의 꽤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이 본문들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무엇보다 성경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목적 중심의 귀 기울이기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리는 인격적이신 하나님께 귀를 기울여야 하는데, 귀를 기울인다는 것은 주목, 흡수, 행함의 단계가 있다고 설명한 부분이 참 좋았다. 목적 중심의 귀 기울이기는 결국 선행의 삶으로 열매맺어야 한다고 강조하는데, 이것은 자칫 공허한 논쟁으로 그칠 수 있는 성경 해석의 논의에 대해서 바른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성경을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에 대한 저자의 집중력은 책의 후반부를 여성 안수와 여성 사역에 대한 논의로 다 채웠다는 것에서 잘 드러난다. 이런 저자의 성경해석 사례를 통해 성경 해석과 적용에 대해 한방에 정리할 수 있었다 말하기는 어렵지만, 성경의 이야기를 이 시대에 바르게 이해하고 적용하려는 그의 참신한 노력과 통찰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성경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를 읽은 독자들에게 후속편으로 이 책을 강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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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두 지평 - 에른스트 블로흐와 위르겐 몰트만의 희망사상
이종인 지음 / 박영사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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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흐몰트만희망신대원 시절 조직신학 수업 시간에 들었던 단어들이다몰트만이라는 세기의 신학 거장이 희망의 신학이라는 화두를 만들어 낼 때 영향을 받았던 사람이 블로흐라는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다그런데 이 두 사람의 희망을 분석한 책이라니어려울 것 같아 읽기 부담스러웠지만희미하게 남아있는 두 거장의 희망을 분명하게 알고 싶은 마음에 이끌려 책을 집어들게 되었다.


먼저 블로흐와 몰트만 두 사람의 공통점이 존재한다모두 희망이라는 개념을 붙들었고, “다가올 시간즉 종말론적 기대와 희망이 현재를 바꾸는 동력이고 힘”(153)이라고 주장했다이런 공통점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유대적 메시아니즘에 대한 관심이다그리고 희망과 다른 현실을 마주할 때 발생하는 저항과 반역을 강조한 점도 유사하다.


그러나 이런 공통점 보다 차이가 더 크게 느껴진다희망의 기초를 두고 블로흐는 인간의 무한한 발전 가능성과 유토피아적 미래희망을 말하는 반해몰트만은 변함없고 신실한 하나님의 계시와 약속을 강조한다블로흐는 예수를 전형적인 저항의 전범으로 보았지만몰트만은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에서 약속의 성취와 미래희망의 근거를 끌어낸다.


또한 몰트만은 그리스도의 부활에서 가진 확실하고 분명한 미래희망을 갖는다그러나 블로흐는 양자택일은 어찌될 줄 확신할 수 없는 아직-아님의 미래적 종말관을 지닌다.


하나님 나라에 있어서도 차이를 보인다몰트만에게 있어서 하나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증거된 약속의 완성을 내다본다하지만 블로흐는 미래의 희망 역시 하나님으로부터의 탈출을 통한 인간의 나라를 희망한다는 점에서 크게 차이가 난다.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은 몰트만이 희망이 어떻게 우리로 하여금 저항의 삶을 살게 하는지 설명한 것이다. “희망은 우리로 모순의 세상과 투쟁하게 하고약속을 따라 저항하며 살아가는 삶을 가능하게 만든다이는 세계사적이고 선교적 사명에로의 소명이 발생하는 장소이기도 하다.”(96형이상학적이고 뜬구름의 희망이 아니라 피와 땀의 희망이 우리에게 있어야 함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반대로 기독교 신앙을 가진 사람으로써 가장 아프게 다가왔던 한 구절이 있었다블로흐가 루터를 비판한 것으로 기독교가 저항과 전복의 정신을 잃고 체제 순응적인 성격만을 갖게 되었다는 점이다. “루터의 견해에 따르면 고통의 십자가를 짊어져야 하는 자들은 권력자가 아니라뼈 빠지게 일하는 농부들이어야 한다는 것이다.”(165힘 있는 자들 보다는 힘 없는 자들에게 십자가를 지라고 쉽게 말하는 신앙의 민낯을 본 것 같아 부끄러웠다.


이 책 한 권으로 두 거장의 희망을 다 알게 되었다 말하는 것은 교만한 일일 것이다그러나 이전의 흐릿한 지평에서 좀더 분명한 지평으로 나아가게 되었다는 것은 기쁜 일이다그러면서 한 가지 소득은 지금도 책꽂이 한켠에 먼지 수북이 쌓인 채로 꽂혀 있는 몰트만의 희망의 신학을 읽겠다는 다짐이 생겼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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