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문제적 고전살롱: 가족기담

문제적 고전 살롱 : 가족 기담 - 인간의 본성을 뒤집고 비틀고 꿰뚫는
유광수 지음 / 유영 / 2020년 6월

우리는 고전작품에 대해 상당히 높은 평가를 하며 고전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자 한다. 그런데 그 속에 들어있는 사상과 이데올로기마저 과연 우리가 배워야 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 소설은 예나 지금이나 그 시대의 상황을 반영하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고전은 어떨까.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수많은 고전 속에는 의외로 깊게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들이 내포되어 있다. '문제적 고전살롱:가족기담'에서는 그러한 것들을 낱낱이 풀어헤쳐 보여주고 있다.

옹고집전, 홍길동전, 사씨남정기, 춘향전, 구운몽, 심청전...... 이 책에서는 어릴 적부터 동화로 들어온 쥐변신 설화부터 시작하여 다양한 고전들을 다루고 있다. 그 동안 우리가 친숙하게 여겨온 다양한 고전들, 표면적으로는 권선징악과 효 등 교훈을 주는 이야기들이 많다. 그런데 그 이면에 숨겨진 잔혹사들에 대해서는 읽으면서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가족'이라는 틀에서 놓고 그 안의 관계를 살펴보면, 특히 조선시대 유교문화권 안에서 여인들, 아이들의 위치가 얼마나 부당하였으며 그것이 얼마나 당연시되었는지가 작품들 속에 녹아들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쥐 변신 설화, 옹고집전의 시어머니는 진짜 아들을 몰라보았으면서도 며느리에게 쥐뿔도 모른다며 모든 죄를 뒤집어씌울 수 있었고, 여자들은 성적인 주제를 함부로 입밖에 내어서는 안되었으며, 여성의 성욕과 남은 인생은 철저하게 무시된 채 남편이 죽으면 열녀가 되어 남편을 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기를 강요받기까지 했던 시대. 공식적으로 처와 첩을 두어 남자들은 편리함을 추구하고 욕망을 억누르지 않는 가운데 여자들, 특히 첩들은 남자의 소유물로 취급되어 제대로 인권조차 보장받을 수 없던 사회.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고전들 속에는 이런 잔혹한 시대상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홍길동의 통쾌한 활약상에 가려져 길동 어머니의 잔혹한 삶은 배경처럼 무시되고, 처첩을 두어 제 욕망만 앞세운 남편은 면죄부를 받고 그저 생존하고자 했던 사씨남정기의 교씨는 투기를 부린 천하의 악녀가 되었다. 정절을 지켜 끝내 신분상승을 이룬 춘향의 삶도 여성적 시각으로 보면 참 처절하기 그지 없다.
여성 뿐 아니라 아이들도 그렇다. 가부장 중심의 사회에서 아이들은 여성과 마찬가지로 약자다. 적서를 막론하고 자식들은 가장의 소유물이나 다름없으며, '손순매아'에서는 가난을 핑계로 아이를 생매장하는 패륜이 효로 탈바꿈하기도 한다. 먹고살기 힘든 시대에 아이들은 또 낳으면 그만인 존재였으며 덜어야 할 입이었다. 요즘처럼 아이가 귀한 시대의 기준으로 보자면 까무러칠 일이다.

요즘은 페미니즘을 외치고 다니는 사람들 때문에 난리다. 아직도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은근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여러 관습들 때문일 것이다. 그 근원에 자리잡고 있는 사상들을 고전 속에서 직접 확인해보니 참 씁쓸하다. 물론 고전은 보전해야 할 가치가 있다. 그러나 비판 없이는 발전도 없다. 권선징악과 효의 이데올로기를 벗어나 고전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각도 참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다시 한 번 느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