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가 걸어오다
박신일 지음 / 두란노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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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세상에는 크지만 작은 것이 있고, 작지만 큰 것이 있습니다.

거짓말은 아무리 커도 힘이 없습니다.

진실이 오면 무너지고 맙니다.

반면 진실은 조용히 말해도 힘이 있습니다.

사람은 거짓 가운데 있으면 아무리 떠들어도 자신의 초라함을 압니다. p.134 ”

 

 

 

거짓 가운데 큰 목소리를 냈지만, 초라한 인생이었던 야곱의 삶.

은혜 위에 진실을 노래하게 된 반전의 인생 이야기를 엿봅니다.

박신일 저자의 <은혜가 걸어오다>

"하나님의 은혜가 나의 불행을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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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탄한 삶을 사는 이가 있고, 삶의 언저리마다 역경과 맞닥뜨리는 삶을 사는 이도 있습니다.

후자의 스펙터클한 삶을 사는 이들은 위인이나 영웅 등이 되거나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의 삶이 전자가 되길 희망합니다.

역경과 고난, 고통이 없는 밋밋한 주인공은 드라마상에서는 매력도 재미도 없지만, 실제 삶에서는 그 많은 고비를 넘기지 않아도 일상을 무리 없이 살아갈 수 있고, 거기다 다복한 안락함이 더해진다면 더 바랄 게 없습니다.

우리 대부분의 인생은 평범한 쪽에 속하는 경우가 많고 그 안에서 안정과 편안함을 느끼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인생은 죽음을 향해 가고 있고, 고난은 수시로 우리의 일상을 찾아오는 불청객이란 사실은 진리만큼 명확합니다.

우리 모두는 알고 있습니다.

인생은 누구에게나 녹록지 않고, 어떤 인생도 '삶과 죽음의 경계 앞에 멈춰 서게 되는' 그야말로 피할 수 없는 절체절명의 순간이 온다는 것을.

 

 

 

누구의 삶이 아닌, 나의 삶에 대한 이야기

 

성경은 인생에는 형통한 날과 곤고한 날이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인생에게 이 두 날을 병행하게 했고, 그 이유는 장래 일을 헤아리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라 했습니다. (전도서 7:14)

신이 형통한 삶만 인간에게 허락했다면 과연 이 세상은, 사람은 지금과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까, 문득 궁금합니다.

 

우리 인생에 '곤고한 날'이 필요충분조건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기에 분명 지금보다 더 좋은 모습은 아니겠지요.

그래서일까요, 인간은 고난에 처한 사람에게 연민을 느끼고, 딛고 일어서 사람에겐 감동을 받고, 성장한 발걸음을 보여주는 이에겐 자극과 격려를 받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본질적이고 숙명적인 희망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여기 야곱이 그러합니다.

성경의 역사 속에서 가장 인간적이고 실수가 많고 이기적인, 우리와 닮은 한 사람.

그래서 그의 삶은 여러모로 궁금하고 공감되고 아이러니하게 더 감사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가 걸어가는 삶의 모습과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큰 괴리감을 느끼게 해서일까요.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은) 나의 삶 속에서 동일하게 발견하게 되는 주님의 은혜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어서일까요. 야곱의 인생 스토리는 만날 때마다 새롭고 다행스럽고, 마음을 다잡게 만듭니다.

 

본서 <은혜가 걸어오다>는 창세기 속 야곱의 삶 전체를 다루며, 한 인생을 향한 창조주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의 여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야곱의 출생과 어린 시절부터 생을 마감하기까지 그의 기질과 배경, 가족, 도망자의 삶, 연애와 결혼, , 적과의 대치, 관계의 회복, 자녀, 기다림, 변화와 성장 등 그 속에서 뒤엉키는 사건을 바탕으로 소용돌이치는 그의 인생을 총망라하여 보여줍니다. 그러고 보니 성경 속에서 한 인물의 일대기를 이렇듯 조목조목 보고 느낄 수 있는 인물도 드문 것 같습니다.

 

<은혜가 걸어오다>는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술술 읽히는 책이라 읽는 내내 즐거웠습니다. 잘 아는 내용이기도 하지만, 저자는 정말 쉽고도 편안한 어조로 그의 삶의 이야기를 우리네 삶과 이어주고 있어 더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누구라도 부담 없이 어렵지 않게 야곱의 인생을 만나볼 수 있고, 동시에 자신의 인생을 돌아볼 수 있게 만듭니다.

 

 

 

고난은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는 것일까요?

 

책을 읽는 내내 앞서 말했던 인생의 고난과 실패가 우리의 삶을 어디로 향하게 하는지에 대한 답을 얻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야곱의 수많은 선택의 실수와 그에 따른 결과가 그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었고, 그 순간들에 하나님은 숨어있는 듯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야곱이 겪었던 고난과 실패와 절망이 과연 그의 인생에 어떤 흔적과 의미를 남길 수 있을까요. 저는 그런 초점을 가지고 책을 읽어내려갔습니다.

 

하나님이 숨어있는 듯 보였다는 건 완벽한 오해였습니다. 야곱에겐 들리지가 않았던 것입니다. 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자신의 욕망을 표출하고 스스로의 판단과 지혜를 신뢰했습니다. 임기응변. 눈앞의 시급한 문제만 넘어간다면 자신이 원하는 걸 손쉽게 얻을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오만한 자는 귀를 닫는 법입니다. 잘나가는 사람에게 귀한 충고가 귀에 들어오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들어야 될 것을 듣고 보아야 할 것을 보는 것만큼 중요한 건 없습니다. 이것은 인생을 후회하게 되는 가장 큰 원인이자 인생의 방향을 잘못 들어서게 만드는 실수를 낳습니다.

 

실패와 좌절 가운데 처하자 주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이처럼 우리는 가장 낮아졌을 때, 세상에 기댈 것이 없어졌을 때에야 비로소 하나님이 보이고 말씀이 들립니다.

그동안 안 보이던 것이 보이고, 안 들리던 것이 들리는 것입니다. 역설적이지만 이것이 바로 고난과 실패를 통해 만나는 축복입니다. p.73

 

참된 복은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바를 깨닫는 것입니다.

야곱의 문제는 하나님이 계속 말씀하셨는데 그것을 듣지 못했다는 데 있습니다. 이것은 내 믿음이 죽어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매일의 삶 속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성경을 통해서도, 사람을 통해서도, 환경과 모든 만물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 세미한 음성을 듣는 것이 바로 복입니다. p.58

 

 

하나님의 본심에 대하여

 

하나님은 야곱의 넘어지고 쓰러진 인생을 그냥 지나치지 않으셨습니다. 책을 읽으며 그런 대목을 발견할 때, 하나님의 성품을 느낄 수 있어 새삼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그 고난의 순간에만 그 하나님을 더 가까이 경험할 수 있다는 것 또한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신약에서 예수님을 만난 이들을 떠올려 봅니다. 그들은 자신의 삶에 구체적인 아픔과 고통을 해결 받고자 하는 나름의 이유를 가지고 나아왔습니다. 그들의 대부분은 사회적 약자나 병자, 루저, 왕따, 창녀, 세리 등 천시 받고 소외되는 이들이었죠. 결국 그들은 영혼의 구원뿐만 아니라 삶의 모든 부분이 축복으로 변화되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런 분이세요.

그분은 절망의 순간에 먼저 우리에게 다가오세요. 그게 그분의 본심입니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본질을 보시고 우리가 바라지 않은 것까지도 축복으로 채워주시는 분이세요. 그리고 모든 것이 변화되었습니다.

저자는 말합니다. 그것은 "죄송한 은혜"라고. 자격이 없는 자에게 주시는 감당할 수 없는 은혜라는 의미라고 전합니다. '구원'만이 아니었습니다. 한 사람의 삶의 모든 부분에 그분의 사랑의 흔적이 그분의 본심을 말해줍니다.

 

 

 

변화의 시작은 예배

 

하나님은 야곱의 절망의 자리에 친히 가셨습니다. 성경에 보면 도망자 야곱이 지쳐서 누운 그 자리에 사다리가 나옵니다. 주님은 그 피폐한 절망의 자리를 예배의 자리로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그곳이 바로 야곱의 변화의 시작점이 되었습니다. 불안과 두려움에 떨던 도망자의 삶에 빛이 비치는 순간이었겠지요. 철저히 혼자였던 그 외로웠던 순간에 찾아오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야곱의 마음은 어떠했을지 사뭇 궁금합니다.

 

실패와 좌절의 밤에 하나님께서 야곱의 예배를 회복시켜 주시면서 그의 믿음을 깨워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의 힘입니다...

은혜는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p.86~87

 

이후의 야곱의 행적을 보면서 인간은 감동과 기적만으로 변화될 수는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사실 그것이 저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변화라는 것이 정말 쉽지 않은 것임을 절감하게 되는 대목입니다.

 

 

이 이야기는 철저히, 사랑 이야기

 

이 책을 읽으며 가장 감동적이었던 건 한 인생을 향한 신의 놀라운 인내와 사랑이었습니다.

야곱의 삶의 이야기 속에는 한 인간의 처절한 인간스러움과 방황, 그리고 성화의 과정이 담겨 있을 뿐만 아니라 인간을 향한 신의 절절한 마음이 여실히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포기하지 않는 사랑. 끝까지 기다리는 사랑. 전부를 동행하는 사랑. 기회를 주는 사랑. 그리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의 사랑.

 

한 사람을 향한 그분의 마음, 태도는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는 그분의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이후로도 야곱은 끊임없이 배반하고 신뢰를 깨고 약속을 잊고 눈앞의 욕심을 향해 돌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포기치 않는 사랑이었습니다. 야곱의 인생 전체를 향한 은혜와 축복을 예비한 그분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야곱의 이야기 중 단연 인상적인 부분은 하나님과 씨름하여 이기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신이 지는 법이 있을까요? 한 인간에게 신이 져 줄 이유가 있을까요?

야곱이 하나님과 씨름하여 이기는 이 희귀하고도 놀라운 장면은 한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깊이와 너비가 담겨있습니다. 이 부분을 저자는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하나님이 이기지 못한다는 이 표현에는 적어도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이것은 하나님께서 야곱을 고치시기로 결심하셨다는 뜻입니다.

둘째, 하나님은 진심으로 찾는 자에게 언제나 져 주십니다. p.172

 

 

 

훈련에 대하여

 

 

왜 나에게만 이런 절망적인 시간이 왔냐고 질문하게 될 만큼 어려운 시기가 있습니다. 그때야말로 앞서 말한 하나님의 본심을 봐야 하는 순간입니다. 그 본심을 보지 못하면 절망만 남게 됩니다. 역경을 통해 성장할 나와 새롭게 걸어갈 내일을 바라봐야 합니다. 훈련의 시간은 왜 이러한 시간이 나에게 허락되었는지를 깨닫고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과 믿음을 선보여야 하는 시간입니다. 그 훈련 안에서 나를 향한 사랑과 예비된 축복을 볼 수 있는 믿음의 시야가 필요합니다.

 

이 훈련의 시기에는 실패의 경험이 아름다운 성장의 자산이 되고 다시 일어서 걸을 때 놀라운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또한 역설적이지만 적극적으로 감사하는 것, 그것이 훈련을 이겨내는 성경적 비법이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우리가 훈련 가운데 있을 때 겪게 되는 결핍의 어려움은 최대의 감사의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아이를 키워보면서 결핍의 소중함과 강력함을 느끼곤 합니다. 너무 사랑해서 모든 것이 넉넉하고 풍족하게 자란 아이에게는 감사도 간절함도 생기지 않습니다. 그것이 아이에게 결과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더 많이 남깁니다. 감사와 간절함은 삶의 깊은 원동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간절히 원하는 마음, 소원함. 그것이 삶에 얼마나 놀라운 변화와 믿음을 주는 것인지 살아갈수록 느끼게 되는 대목입니다.

 

부족함은 우리가 주님을 의지하는 통로가 되어 줍니다. 이것이 인생을 경영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p.109

 

진정한 복은 하나님을 갈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준비해 주신 것을 하나님의 뜻대로 받는 것이 참된 복입니다. p.50

 

 

 

반복되는 죄의 문제 앞에서,

 

야곱은 끊임없이 머리 회전을 하며 꾀를 부리는 캐릭터입니다. 자신의 계산과 생각을 철저히 신뢰하고 이행하며 살아왔습니다. 결과만 좋으면 동기나 과정은 무시합니다. 끊임없이 죄를 의지하고 또 반복적인 죄가 죄를 낳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탁월하신 점은 이런 야곱을 바로 응징하거나 몰아세우거나 심판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다시 '자유의지'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신이 인간을 사랑하는 가장 큰 증거가 '십자가'와 이 '자유의지'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대상에게 사랑을 요구하고 강압하지 않는 것. 하나님은 인간에게 그런 의미로 '자유의지'를 주셨고, 그로 인해 파장되는 수많은 죄와 상처를 기꺼이 감당하셨습니다.

저는 신앙을 가지고 살수록, 또 하나님을 알아갈수록 이 부분이 놀랍고 아직도 그 깊이를 다 알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굳이 그러지 않으셨어도 되었고, 정말 그로 인해 참 많이도 파생된 어려움이 있지만, 정말 사랑은 자발적 의지이기 때문입니다. 그게 찐사랑이니까요. 인간을 향한 신의 절절한 사랑의 표현이 바로 이 '자유의지'입니다.

죄의 문제도 바로 이것과 관련이 많습니다. 하나님이 죄에 대해 바로 응징하시고 심판하셨다면 살아남을 인생이 있을까요?

하나님은 우리의 동기와 선택 그리고 결과까지 함께 하시지만 그것을 운행할 자유를 인간에게 주셨고, 우리가 올바른 방향을 가지 못한다 할지라도 합력해서 선을 이루어가시는 은혜를 더하십니다.

 

안타까운 것은 한 번 죄를 지을 때는 가슴이 떨리다가도 세 번, 네 번 똑같은 죄를 짓고 나면

더 이상 가슴이 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무렇지 않게 죄를 지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삶에 떨림이 없는 죄가 자리를 잡았다면 그것은 영적인 비극입니다.

반드시 돌이켜야 할 일입니다. 무뎌지는 것만큼 두려운 일도 없습니다. 죄도 자꾸 짓다 보면 습관이 되어 갑니다. 나쁜 습관은 참으로 빨리 익숙해집니다. 하지만 그 나쁜 습관을 바꿀 때는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는지 모릅니다. p.55

 

주님은 야곱을 기다리셨고 또 죄 가운데 있는 그를 찾아가셨고 돕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리고 훈련을 통해 그를 깨닫게 하시고 그의 삶의 하나님을 향해 돌이키길 기다리셨습니다. 결국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길이었는데 야곱은 참 많이도 돌고 돌았습니다.

야곱의 삶은 과정 가운데에서도 변화와 순종이 있었지만 여전히 제자리걸음 하며 다시 같은 죄를 짓기를 반복합니다. 그 과정 가운데 하나님의 계속적인 도우심과 은혜가 있었습니다. 주님은 그를 떠나지 않으셨고 늘 함께 하셨습니다.

이제 야곱은 하나님 앞에 겸손히 죄를 고백하고 그 은혜 안에 들어서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반복되는 죄에 절망하고 넘어져 포기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저도 이 부분에서 깊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결국 이 죄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가면 됩니다. 이것이 가장 큰 은혜입니다.

 

우리의 죄보다 주님의 은혜가 더 큽니다.

우리의 실수보다 하나님의 은혜가 언제나 더 깊고 강합니다. p.203

 

내가 알고 있는 믿음의 사람들은 모두 죄인이며 의심하는 사람이며 변덕스럽게 행동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안전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자신을 믿을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믿어 주신다고 확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변화되었지만 아직 다 바뀌지 않은 야곱, 그는 다리를 절며 걸어가는 순례자입니다. 그러나 혼자가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걷고 있다는 것이 소망입니다. p.188

 

 

인생의 최대 문제 앞에,

 

야곱은 자신의 삶의 최대 난제였던 형 에서를 만나는 지점에서 그는 하나님의 큰 은혜를 맛봅니다. 여전히 자신의 생각과 죄 가운데 있었지만, 하나님 앞에 자신을 놓고 그분을 의지하며 인생을 나아가기로 결단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그런 야곱을 향하여 하나님은 야곱뿐만이 아닌 원수가 되어 버린 형제 에서를 만지시는 놀라운 섭리를 보여주십니다. 야곱의 중심이 하나님을 향했을 때 하나님이 문제를 풀어가시는 모습은 우리의 관계 속의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삶의 깊은 통찰과 지혜를 전해줍니다.

 

비단 이것은 관계에만 속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상황과 인생의 길에서 문을 여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믿음을 경험을 통해 얻게 되는 것입니다.

야곱은 묶였던 과거와 상처로부터 해방되는 진정한 자유를 맛보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야곱의 과거는 늘 두려움을 쫓는 도망자 신세였지만 이제는 진정한 자유를 얻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신이 예비한 진정한 축복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우리가 죄의 길에서 돌아서고 하나님 말씀 앞에서 정직하게 돌이키면, 그때 하나님께 닫혔던 문과 막혔던 길을 활짝 열어 주시는 역사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성경이 보여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나만이 아니라 나와 불편했던 관계 속에 있던 사람의 마음까지도 만지실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의무는 먼저 내 마음이 바른지를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른 사람이 변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변하기를 원하십니다. p.194

 

 

사람은 변화될 수 있을까?

 

평소 많이 생각하던 주제이기도 하지만, 본서를 읽으면서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결론은 정말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변화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고쳐 쓰는 거 아니라'라는 말을 신뢰해 왔습니다. 사람은 변할 수 없다는 불신이 강했습니다. 저의 경험치로는 그랬습니다. 하지만 <은혜가 걸어온다>를 읽으며 하나님이 만지시면 못 고칠 인생이 없다는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연약한 한 사람을 향한 꿈이 있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그 약속을 지키십니다. 실수와 죄, 연약함으로 가득했던 야곱의 삶이었지만, 포기치 않는 주님의 사랑과 은혜는 그의 삶의 중심을 완전히 변화시켰고, 그는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받고, 새로운 인생을 걷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인생 가운데에 하나님의 약속과 뜻이 이뤄진 것입니다.

야곱은 주님의 약속과 같이 축복의 땅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우리는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께 계속해서 나아가고 그 은혜 가운데 머물고 예배해야 합니다. 예배 가운데 우리는 새롭게 나아갈 수 있습니다.

 

 

 

환경, 상황을 초월하는 기쁨 가운데 사는 비법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사는 것입니다.

저자는 하나님의 은혜는 한 번의 은혜가 아닌 우리의 삶 전체를 덮는 은혜라고 말합니다.

 

한 번의 은혜로는 믿음의 길을 계속해서 걸어갈 수 없습니다. 매일의 은혜, 은혜 위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이 하나님의 은혜가 넘어지는 우리를 매 순간 일으켜 주는 것입니다. p.205

 

우리는 과거와 미래의 가장 절묘한 교차로인 현재를 살고 있습니다. 이렇게 과거와 미래에 끼여 살아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마치 안전한 한쪽 그네를 놓고 공중으로 날아가 반대쪽 그네를 붙들어야 하는 그네 타기 곡예와도 같습니다. 한순간 곡예사는 어느 쪽도 붙잡고 있지 않는 그 시간을 대면해야 합니다. 순례의 길은 매 순간 저편에서 나의 손을 잡아 주실 하나님을 믿고 걸어가는 것입니다. p.214

 

영적인 어른이 된다는 것은 상황이나 눈에 보이는 것 때문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복잡한 삶에서 단순한 삶으로 옮겨 가는 것입니다.하나님의 말씀에 깊이 뿌리내려 가기 때문입니다. p.237

 

 

 

.... 이런 그대에게, 추천해요

 

저와 같은 이런 의문과 질문을 가진 분들께 <은혜가 걸어오다>를 추천드립니다.

 

정말 하나님의 은혜가 나의 불행을 이길 수 있는가?

정말 내 삶에 하나님의 은혜가 존재하고 있는가?

신이 한 사람에게 이토록이나 오래도록 인격적으로 마주할 수 있는가?

하나님의 사랑은 어떤 것인가?

기독교가 말하는 하나님의 은혜란 무엇을 뜻하는가?

사람은 변할 수 있는가?

내 삶은 변화될 수 있는가?

기독교가 말하는 하나님은 진정 어떤 분인가?

 

 

야곱의 삶이 이스라엘로 변화된 것처럼 이 책을 만나시는 분들의 삶에 아름다운 변화의 열매가 가득하시길 저도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저 역시도 아름다운 성화를 꿈꾸며 날마다 때마다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놓치지 않고 살겠습니다.

갈수록 더욱 빛나는 인생이 되기를...!!

그 은혜가 늘 함께 하시길 축복해요!! 귀한 책 만들어 주신 저자와 두란노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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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팩트체크 - 기독교 핵심 질문에 26권의 변증서로 답하다
안환균 지음 / 두란노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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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기독교 팩트체크

이 책의 제목이 단숨에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명료하고 심플하지만 가장 강력하게 느껴지는 단어, ‘팩트(fact)’. ‘팩트란 입증할 수 있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란 사전적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최근에 사회 전반을 보면서 생각했던 부분도 바로 이 팩트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요즘 이 시대는 왜 있는 그대로의 팩트를 인정하고 받아드리는 것이 이토록이나 어려운 것일까하는 질문이 혼란과 답답함을 주곤 했습니다.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하는 것은 그 다음 수순입니다. ‘팩트라는 건 개인의 가치관이나 상황, 집단적 목적 등과는 무관해야 하며 어떠한 목적에 의해서도 변할 수 없는 사실인데도, 실상 받아드리는 팩트는 제각각 너무도 다릅니다.

그런 의미에서 현시대를 살아가며 가장 중요한 것은 있는 그대로를 볼 수 있는 객관적 시선과 체크의 영역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믿음이란 것이 이성적인 판단이나 계산, 확인할 수 있는 사실만으로 규정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닙니다. 우리가 영혼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 인간의 학문이나 언어, 문화 등으로 설명 불가한 부분이 분명 존재합니다. 진리에 대해서는 타협하지 않는 속성도 분명 기독교 신앙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부분(자기가 믿고 싶은 대로 믿는 신에 대한 이미지나 신앙생활, 사회활동, 그로 인해 파생되는 부정적 영향력)이 하나님과 기독교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대단히 많이 생성시켜 왔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 부분이 늘 안타깝고, 크리스천의 한사람으로서 반성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본서의 이 대목이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하나님의 실체에 대해 어떤 이미지를 가지느냐가 그분과의 올바른 관계가 핵심인 한 사람의 신앙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 하나님에 대한 가장 정확한 이미지는 예수님이시다. 이 지점에서 구약과 신약의 하나님의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p.21)

기독교 팩트체크

 

 

오늘날의 크리스천과 기독교가 본질적인 정체성을 회복하기 위해서 가장 유념하고 체크해야 할 부분은 바로 하나님과 믿음의 삶에 대한 팩트체크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믿는 신과 믿음에 대하여 나는 펙트를 제대로 알고 있는가?’ 혹은 제대로 의심하며 질문하고 있는가?’, ‘그 물음의 답으로 삶을 제대로 살아가고 있는가?’

크리스천은 끊임없이 묻고 고민하고 변화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이러한 과정은 만만하지 않습니다. 귀찮거나 버거울 수 있고,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진정성 있는 믿음이 스스로의 삶이 되고, 그것이 기독교의 본질적인 회복의 시초가 된다고 생각해 보면 반드시 진지하게 맞닥뜨려야 하는 부분입니다.

 

본서 기독교 팩트체크는 변증 방식을 통하여 제 안의 많은 의심과 물음에 대한 갈증에 폭넓은 답을 제시하여 주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서두를 장황하게 푼 것은 저와 같이 답답한 마음으로 질문하시는 분이 많을 거라 예상하기 때문입니다. (먼저 의심과 질문이 있다는 것이 믿음이 없거나 문제가 있는 것이 절대 아니라는 점을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 이런 분께 추천하고 싶어요

하나님에 대해 이해할 수 없거나 불신이 있는 분, 하나님에 대한 오해와 편견으로 신앙생활이 어려운 분, 성경에 의구심이 드는 분, 과학이나 진화론과 상충되는 부분이 궁금하신 분, 기독교가 진리라 주장하는 것에 의문점이 있으신 분, 그분들께 본서가 도움이 되리라 확신합니다.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을 완벽하게 이해하거나 전부를 공감한 것은 아니지만, 궁금하거나 의문점이 있었던 질문에 꽤 시원한 발견과 답변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타종교를 믿는 분, 기독교를 혐오하거나 반대하시는 분, 회의론자, 무신론자인 분들께도 이 변증서를 한번 읽어보시길 권유하고 싶습니다. 기독교인이 아니라도 기독교는 왜 이런 주장을 할까 궁금하셨던 부분이 꽤 있으실 거라 생각됩니다. (본서는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문제, 창조론과 무신론적 과학주의의 문제, 성경의 진정성, 기독교적 종말론, 예수님의 유일성 및 회심의 문제 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책은 변증서입니다. 성경에 대한, 기독교에 대한 질문의 변증입니다. 변증이라는 게 사실 조금 생소하고 어렵게 느껴집니다.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변증법이란 모순을 통해 진리를 찾는 철학방법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 정명제와 반명제를 사용하여 이들 간에 모순되는 주장의 합명제를 찾거나 최소한 대화가 지향하는 방향의 질적 변화를 일구어내는 논법의 방식입니다. (Wikipedia 참조)

사전적 정의가 조금 어렵네요. 우리가 어떤 질문을 하거나 의구심이 드는 부분에 대하여 모순을 성경 안에서 찾고 그에 대한 답을 얻는 거라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이 책은 예수라는 분을 창조주 하나님으로 믿고 심기는 기독교가 어떻게 이 세계의 창조 질서를 그대로 담아내고 있는 유일한 진리 체계인지에 대해 소개하고자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특이하고 재미있었던 부분은 하나님이나 기독교 진리에 관하여 의문을 가지는 질문에 대하여 섹션별로 26권의 변증서(참고 도서)들을 불러와서 답변을 해주는 형식이라는 점입니다. 물론 저자의 의견과 안내가 더해져 있습니다. 덕분에 다양한 질문에 대한 다양한 답변들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좋은 책들을 알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더 깊이 알고 싶은 질문에 대해서는 해당 저서를 찾아서 깊이 있게 더 알아갈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다양한 변증가들의 책들이 모여 있어서 더욱 종합적이고 객관적일 수 있는 점 등이 매력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챕터별로 주제가 있고 해당되는 변증서 내용의 요약이 나옵니다. 마무리 부분 마다 주제를 더 깊은 탐구 할 수 있도록 돕는 질문과 관련 도서 안내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읽으면서 조금은 어렵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지만 그런 부분도 새롭게 공부하는 자세로 임하게 되는 내용이었고, 참고할 부분이 무척 많다고 생각했습니다.

 

 

부활의 가장 큰 증거는 지금도 남아 있는 그 확고한 영향력이다. (p.135)

예수님이 실제로 부활하지 않았다면 기독교 신앙 자체가 다 헛것이다. 반면에 부활이 정말 일어났다면, 기독교의 모든 이야기는 사실 그대로다. 그만큼 부활 사건에 대한 확고한 증거를 붙잡는 일은 기독교 신앙을 굳건히 세우고 전하는데 결정적이다. (p.136)

기독교 팩트체크

 

 

개인적으로는 기적이나 예정론, 죽음 이후, 종말론, 동성애 등을 다룬 챕터가 인상적이었고, 부활에 대한 변증 부분은 아주 유익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부활 사건은 기독교 신앙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믿기 때문이며 부활을 믿지 않는 이에게 설명할 수 있는 좋은 방안이 될 거라 생각되어집니다.

변증서로 소개된 <게리 하버마스의 부활 논쟁>에서 실제로 2003년 베리타스 포럼(저명한 기독교 사상가와 무신론 사상가들이 초대되어 강연 및 토론을 하는 포럼)에서 열린 부활 논쟁과 토론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해당 책의 2,3부에는 토론에 참가했던 무신론 사상가가 유신론자로 회심하는 인터뷰 등이 담겨 있는데, 신의 존재에 대한 인간의 갈망은 정말 원초적이고 근본적이며 치열하다고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또한, 변증적 방식이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지를 새삼 느낄 수 있었고, 이러한 접근과 대화가 무척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특별히 인간이 살면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이를테면 신앙이나 진리, 가치관, 인생 등을 논할 때에는 관점과 방식에서 맹목적이 아닌 변증적인 태도로 접근하는 것이 무척 유익할 수 있다는 재발견이라고 할까요.

기독교 변증으로 대화한 책으로는 <데이비드 그레고리의 예수와 함께 한 저녁 식사>가 무척 인상적이라 개별로 사서 읽고 싶어졌습니다.

 

 

이 책에서(예수와 함께 한 저녁 식사) 예수님은 전도 대상자를 대중의 한 사람으로 대하시지 않는다. 인격적인 한 개인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시고, 그의 삶의 콘텍스트 안에서 그가 가진 질문에 대답하면서 그에게 맞는 복음을 그가 알아듣도록 전하신다.

포스트모던 시대의 가장 큰 특징은 획일주의에 대한 거부. 교회가 고압적인 자세를 버리고 획일화된 대중이 아닌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성 있는 인격체를 대상으로 복음을 전하고자 문턱을 낮추는 성육신의 섬김을 기꺼이 감당할 때, 예수님 또한 그러한 모습으로 세상에 더 널리, 더 온전하게 드러날 것이다. (p.198)

기독교 팩트체크

 

 

저는 모태신앙입니다만, 돌아보면 하나님에 대해서 끊임없이 의구심을 가지고 힘겹게 질문해 왔던 것 같습니다.

세상에 편재된 고통과 아픔, 이해할 수 없는 사고, 부당함, 무너진 공의, 범죄 등을 바라볼 때 하나님은 왜 이 모든 것을 허락하시는지 이해하기 힘들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가장 기본적인 팩트가 자유의지임을 알게 되었고, 이 모든 상황을 구현한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여전히 변함없이 우리를 향해 있음을 믿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이 주신 자유 의지를 따라 자의로 하나님을 외면하고 무시하며 사는 그것이 하나님이 그들을 사랑하시는 이유가 된다. (p.19)

사람이 주는 자유를 만끽하려면 관계에 헌신하는 구속이 필요하다. 하나님은 성육신의 사랑을 통해 먼저 인간에게 자신을 맞추시는 희생을 감당했고, 그리스도인은 이 사랑의 증인이다. (p.21)

기독교 팩트체크

 

신앙이란 끊임없이 하나님을 알아가는 여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제가 40년 가까이 알아오고 있는 신은 알아갈수록 참으로 인격적인 분이십니다. 그렇지 않다면 믿음을 유지해 오지 못했을 거라 생각합니다. 제가 어떠한 모습과 상황에 있더라고 하나님은 변하지 않고 신실하셨습니다. 그래서 앞으로의 여정 또한 기대와 소망을 품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말씀 안에서 또 삶과 일상 가운데에서 더 적극적으로 알아가고 변증하는 습관도 기르고 싶습니다. 그래서 맹목적이 아닌 깊이 있고 실체적인 믿음이 우리의 일상 가운데 생생한 능력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본서를 읽으면서 역시 이 많은 질문과 기독교 진리의 귀결점은 예수였습니다.

예수가 팩트인지 밝히는 것보다 모든 팩트가 예수를 향하고 있음을 알라

이 하나의 문장이 그 놀라운 답을 전해줍니다.

본서가 많은 분들의 답답한 마음과 질문에 시원한 생수가 되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며, 귀한 책 내주신 두란노서원과 저자님께 감사한 마음을 전해봅니다.

 

 

 

 

#기독교팩트체크 #안환균 #삶이되는책 #두란노 #두포터10#기독교변증 #나를복음으로살게한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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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로역정 고전의 숲 두란노 머스트북 1
존 번연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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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tvN 예능 ‘스페인 하숙’에서 순례길을 스스로 선택하여 걷는 많은 순례자가 등장했다. 전 세계에서 모여든 수많은 순례자들은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그들이 마음으로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을 얻었을까.

문득 순례길을 마친 그들의 뒷이야기가 궁금해졌다.

녹록치 않은 그 순례길이 우리네 인생의 순례길을 축약해 놓은 듯 닮아있기에.

 


어린 시절 여름이 되면, 교회학교에서는 여름성경학교를 개최했다.
시원한 수박과 자두가 한 소쿠리 가득 담긴 모습, 노래와 암송 경연대회를 연습하던 아이들의 얼굴, 달란트 모으기에 혈안이 되었던 나, 맛있고 재미난 것이 가득했던 그곳에는 늘 아이들이 북새통을 이뤘다.

뭐가 그리 즐거웠을까. 그 시절을 떠올리면 그리운 행복감을 느낀다.


여름성경학교에는 늘 빠지지 않는 코너가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천로역정’이라는 코너였다.

우리는 삼삼오오 팀을 이뤘고, 단계별 관문을 넘듯 한 주제가 담긴 장소에서 미션을 성공해야 했다. 성공한 팀만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었고, 마지막 관문을 넘긴 팀은 달란트 선물을 받았다. 마지막에 이르는 곳은 천성, 바로 천국이었다.
어린 나에게 스릴과 재미를 안겨주었던 그 코너 덕분인지 내게 ‘천로역정’이란 단어는 어려서부터 각인된 단어라 잊을 수 없는 단어다.

 

 

 


 

 
존 번연의 ‘천로역정’은 수많은 책과 설교자들로부터 들었던 이름이기도 했다. 기독교의 대표적인 고전이며 성경 다음으로 가장 많이 인쇄된 베스트셀러라는 점은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유명하다.

그런데도 단 한 번도 이 고전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었다는 것은 내 신앙 여정에도 아이러니한 부분이었다. 고전이 주는 의무감이 무겁게 느껴졌다고 할까. 언젠가 한번은 봐야하는데 쉽사리 손이 가지 않는 책이었다.
30대 후반이 된 지금에서야 비로소 순례자의 삶에 대하여 고민하고 묵상하게 되면서, 마음에서부터 이끌려 ‘천로역정’을 펼치게 된 것 같다. 이 책을 통하여 진리에 비추어 내 삶의 나아갈 방향을 엿볼 수 있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한 구절 한 구절을 읽었다.

 


존 번연은 말한다.

 

 


이 책은 무관심한 마음이 깨어나도록 대화체로 쓰였습니다.

생소해 보이지만 그 안에 진실하고 정직한 복음의 진리가 담겨 있답니다.

 

 

 


나는 이 두 문장이 ‘천로역정’이란 책을 제대로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크리스천에게는 진리와 복음을 담은 이 소설의 여정이 놀라운 통찰력을 전해주며 큰 격려가 될 거라 믿는다. 또한, 비기독교인에게는 기독교 신앙의 정수와 복음을 이만큼 잘 표현하고 전달하는 책이 없으리라 생각되어 꼭 권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무관심한 마음이 깨어난다는 이 표현은 실로 놀랍다.

 


믿음의 여정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고민해 본다.

스스로 느끼기에는 진리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는 것. 자신이 믿고 싶은 대로 믿는 것이 가장 경계해야 할 두려움이지 않을까. 오늘날, 많은 이가 이러한 왜곡된 믿음을 가지고 살고 있다. 그렇게 왜곡된 믿음을 고집하고, 주장하는 것은 신앙을 가진 이들, 가지지 않은 이들 모두에게 큰 상처를 주고 있으며, 궁극적으로 그 칼날의 방향은 신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는 모르는 듯하다. 그리고 결국 자신을 파멸로 이끈다는 것도 알지 못한다.
‘천로역정’ 에도 세속현자, 단순, 나태, 거만, 수다쟁이, 사심, 무지 등 이러한 인물들이 많이 나온다. 자신이 옳다고, 옳은 길을 잘 가고 있다고 철석같이 믿는 그들의 믿음이 두렵게 느껴졌다. 그들 속에 내 모습이 있어 회개하는 마음으로 읽은 구절도 많았다. 특별히 ‘무지’는 천성에 가장 가까이 왔던 이들 중 하나였다. 그러나 그는 최종 목적지에 들어가지 못했다.

 

 

 

 

 

 

 

이 책을 읽으며 순례의 여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고민해 본다.

마태복은 7장 21~24절 말씀을 꼭 기억하며 살아야겠다. 스스로를 끊임없이 말씀으로 비춰보며 돌아보아야 하겠다.

 


‘천로역정’이 더욱 은혜가 되는 이유 중 하나는 작가 존 번연의 삶이 아닐까.
그의 삶은 그야말로 드라마틱한 고난의 연속이었다. 가족의 죽음, 장애를 가진 아이, 부인의 죽음, 전쟁터에 내몰리고 보았던 죽음들, 감옥살이 등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극도의 고통과 좌절을 맛본 사람이다. 그러나 그가 붙들었던 복음과 진리는 그의 삶을 포기하지 않고 ‘천로역정’의 주인공처럼 끝까지 순례길을 멈추지 않게 만들었다.

 


주인공 크리스천과 소망이 죽음의 강을 건너와 천성 앞에 이르러 천사와 대화하는 장면이 있다.

천사는 우리의 최종 목적지를 이렇게 말한다.

 

 

 

 

 

 

“거룩한 곳에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지금까지 한 모든 수고에 대한 위로를 받고, 모든 슬픔은 기쁨으로 변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왕을 위해 뿌린 모든 기도와 눈물, 고통의 열매를 거둘 것입니다. 금 면류관을 쓰고 거룩하신 분의 ‘참모습’을 영원토록 볼 것입니다. 눈으로는 전능하신 분을 보고 귀로는 그분의 음성을 들으니 한없이 즐거울 것입니다.”

 

 

 

천국을 소망하는 것이 막연하게 느껴졌던 나는 ‘천로역정’을 읽으며 새로운 소망을 품게 되었다.

그리고 걸어갈 여정 끝에 믿음의 완주를 잘하였노라 고백하는 날을 꿈꿔본다.


우리는 누구나 인생 앞에 진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순간을 맞닥뜨린다. 인생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 앞에 서 있다면, 큰 좌절과 고난의 시점에 멈춰서 있다면, 믿음의 여정에서 좌절하며 불신으로 괴로워하고 있다면 당신에게 꼭 이 책을 소개하고 싶다.
‘천로역정’은 우리가 걸어가는 인생과 신앙의 가이드북이 되어줄 것이다.

 


우리 세대의 새로운 언어와 접근방식으로 고전을 소개해 준 두라노서원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고전의 무게가 담고 있는 깊이가 고전을 만드는 것임을 절감하게 해 준 책이었다. 이러한 고전은 새로운 세대들에게 반드시 전해져야 할 책이며, 그 책임감을 실천해 주시는 분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앞으로도 귀한 고전을 계속 만나보길 소망한다.
 
이동원 목사님의 말씀처럼,
‘고전은 언제나 그 시대를 대표하는 새 언어로 번역될 필요를 느낀다.’

 


아주 절실하게 말이다.

 


 

 

"거룩한 곳에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지금까지 한 모든 수고에 대한 위로를 받고, 모든 슬픔은 기쁨으로 변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왕을 위해 뿌린 모든 기도와 눈물, 고통의 열매를 거둘 것입니다. 금 면류관을 쓰고 거룩하신 분의 ‘참모습’을 영원토록 볼 것입니다. 눈으로는 전능하신 분을 보고 귀로는 그분의 음성을 들으니 한없이 즐거울 것입니다."
- P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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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가 이긴다
이재훈 지음 / 두란노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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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는 오늘을 살아가는 지침이자 미래를 내다보는 힘이 있다. 우리가 현재에도 끊임없이 역사적 사건과 인물을 반추해 보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성경 안에도 광활한 역사가 담겨있다. 성경은 허구가 아닌 신의 역사가 생생하게 기록된 책이다. 그런 의미에서 성경의 대목들은 무척이나 무거운 역사를 보여주는 부분이 많다. 그 역사를 어떻게 바라보고, 제대로 알아가야 할까. 우리의 영적 여정 가운데에도 이 질문은 무척이나 중요한 지표가 될 것이다.


본서 『은혜가 이긴다』는 성경 속 예언서를 다루고 있는 책이다.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 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냐, 요나, 미가, 나훔, 하박국, 스바냐, 학개, 스가랴, 말라기까지 총 16개의 예언서를 챕터별로 나누었고, 각 예언서의 주제를 명료하게 전달해 준다.


저자가 서문에서 말했지만, 심판을 다루는 내용을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을까. 좋아하는 성경 본문이 예언서인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치열한 경쟁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강단은 위로와 격려의 말씀을 쏟아내 왔다. 성도 역시 듣기 편하고 덜 부담스러운 말씀이 좋은 편향적인 귀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크리스천은 성경 그대로를 아는 것이 하나님을 있는 그대로 아는 유일한 방법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은혜가 이긴다』는 그런 이 시대, 이 시점의 기독교인과 교회를 향해 정말 들어야 할 외침을 전해주고 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본서를 읽으며 아래와 같은 부분을 묵상할 수 있었고, 그것은 큰 유익이었다.

첫째, 역사 속에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 수 있었다는 점이다. 고로, 필히 역사서와 예언서를 읽고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자각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 큰 유익이었다. 이것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말씀을 읽고 공부하는 원동력이 되어 줄 거라 믿는다.


다시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무너뜨리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은 결코 하나님의 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길은 언제나 변화이고, 새로운 살길이며, 회복입니다.

그래서 예언서에는 놀랍게도 가장 통렬한 지적 및 심판의 예언과 동시에 매우 아름다운 회복의 약속들, 곧 심판의 한복판에 이스라엘을 향한 메시아의 예언에 관한 말씀들이 집중적으로 등장합니다. p.15


둘째,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을 다루는 방식이 있다는 점이다. 하나님의 역사 속에는 그분의 사랑, 권고, 지적, 분노, 심판과 예언, 그리고 회복과 약속이 담겨 있다. 그리고 그분의 ‘은혜’가 새겨져 있다.

예언서의 독특한 점은 신이 자신의 백성 전체를 다루는 역사를 보여주는 것뿐만 아니라, 그들의 통로가 되는 하나님의 사람, 선지자(예언자)를 통하여 인생을 다루고 인생을 사용하시는 인격적인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아무리 상황이 힘들어도 내 마음에 기쁨이 있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나아가면 앞에 절벽이 있다 해도 절벽이 무너질 것입니다. 길이 없는 곳에 길을 만드시고, 사막에 강을 내시고, 골짜기에 다리를 놓으시고, 대역전을 일으키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날 것입니다. p.121


셋째, 하나님의 본심을 알 수 있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가장 큰 감동이자 수확이었다고 생각한다. 『은혜가 이긴다』를 읽으면서 하나님의 본심은 재앙과 심판이 아니라, 우리에게 미래의 소망을 주는 것이라는 말씀을 계속해서 되뇌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진정 믿어진 것이 참으로 감사했다.


마지막으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늘 고민하고 집중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을 제대로 알 때, 그분의 마음을 제대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정말 중요한 것을 깨닫고 그 푯대를 향해 성화를 향한 걸음을 내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치지 않는 행복을 맛볼 수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


어떤 성품, 어떤 열매, 어떤 인격, 어떤 마음이냐가 하나님에게는 더 중요합니다. 오직 하나님이 내신 길을 받아들이고, 믿음으로 행하며, 하나님과 겸손하게 행하는 것이 진정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만들어 내는 모든 것으로부터 돌이켜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미 말씀하신 것을 따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공의와 사랑과 겸손을 우리 성품에 빚어 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p.223


이 시대, 이 시점에 참 귀하고 고마운 서적을 읽게 된 점을 다시금 감사, 감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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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한 순종 - 당신 삶에 복음이 살아 있습니까?
김병삼 지음 / 두란노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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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하다’는 단어의 사전적 뜻은 ‘기세나 세력 따위가 불길같이 맹렬하다.’라는 의미이다. 열정적인, 주도적인, 뚜렷한 목표를 가진 집중력, 추진력 등의 느낌이 떠오르는 형용사다. 자의식이 강하고 기호가 뚜렷한 요즘 세대에게는 꽤 매력적이면서도 지친 일상을 대변해 주는 단어로도 다가온다. 다시 말해,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고 받아드리기 어렵지 않은 단어이다.

반면, ‘순종’이란 단어는 ‘순순히 따름’이란 사전적 의미가 있는 명사인데, 어감이 수동적이고 유약한, 작은, 지배받는 등의 느낌을 받게 된다. 사뭇 이질적인 두 단어가 만난 듯 보이는 제목 『치열한 순종』은 어떤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


저자는 고린도전서 말씀을 가지고, 고린도교회를 통하여 우리에게 그리스도인의 삶과 교회라는 총제적인 신앙생활의 적용점을 제시한다. 진정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 교회의 본질, 신앙생활의 올바른 기준, 내적 변화와 성숙 등 크리스천이라면 꼭 정립해야 할 내용으로 본서는 가득 차 있다.


개인적으로 목차를 읽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뜨거워지는 부분이 있었다. 저자의 깊은 통찰력에 탄복했는데, 본서의 구성이 본질적 핵심을 따르고 있고, 누구에게나 매우 중요한 부분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균형을 잡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입니다.

이것만은 놓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 놓아야 할 것이 보입니다. 가장 중요한 일이 우리 가운데 고백되면 중요하지 않은 일이 보입니다. p.290



본서를 읽고 나니, 하나님이 원하시는 ‘순종’은 내 생각과는 참 많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 책 하나만 보더라도 생각하고 실천할 것들이 많고, 우리의 삶 가운데 신경 쓰고 해야 할 일이 넘쳐난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매 순간 놓치지 않는다면, 진정 ‘치열한 순종의 삶’에 한걸음 다가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소망을 품는다.


자기식대로 믿는 신앙, 삶의 모습, 교회생활을 향하여 너무도 분명히 ‘NO`라고 말하는 저자의 글은 말씀을 통하여 기준을 정립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고린도교회 성도들 역시 겪고 느꼈던 혼란과 감정을 이 시대 우리 역시 동일하게 경험하고 있기에, 모호했던 것이 명확해지고, 변화가 절실한 부분을 정확히 느끼게 된다.


‘성숙`한 신앙이란 그리스도의 복음에 장애가 되지 않도록 사는 것입니다. p.44


우리가 받은 그 은혜 때문에 누군가의 은혜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할 때 그것이 진정한 은혜입니다. 우리의 옳음, 우리의 정의, 우리의 신앙을 자랑하는 것은 은혜가 아닙니다. 우리는 이 은혜를 가슴에 늘 간직해야 합니다.


본문의 이 구절을 보면서 얼마나 뜨끔했는지 모른다. 대단한 것을 이룩하고, 성공적인 삶을 살지 못하더라도, 내 삶이 이러한 목표를 향해 가길 소망하게 된다. 그 목표가 하루하루 나를 조금씩이라도 성숙하게 해 주고, 신앙이라는 테두리가 교회 안에서만이 아닌 일상 속 어느 범주에서도 스며들어 나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 작은 손짓에서 나타나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리고 마침내, 예수님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씀하신 그 사랑이 내 안에도, 마주하는 이들에게도 충만하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해 본다.


그러기 위해서 매일 겸손하게 그분 앞에 나아가야겠다. 그렇지 않으면 또 끊임없이 내가 믿고 싶은 대로 믿고, 믿는 것에 따라 생각하고, 그 테두리 안에 하나님을 가두고 오해하고 원망하는 어리석음을 반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는 것이 왜 중요한지 절실히 느끼게 되는 대목이다.


책을 읽고 내 안에 명확해진 것이 있다.

순종은 복종과 다르다. 순종은 스스로 결단과 자세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이 순종이라는 단어를 자주 듣게 되는데 왜인지 모르게 이 단어는 뭔가 부담스럽고 편하지가 않았다. 스스로 ‘순종’이라 읽고, ‘복종’이라 느꼈던 것은 아닐까. 아니면, 이미 치열한 삶을 살고 있는(내 기준에서) 지친 나에게 필요한 것은 쉬운 신앙, 쉬운 예수, 편한 복음, 편한 교회생활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이러한 질문을 자신에게 할 수 있게 해 준 『치열한 순종』.

그 질문이 너무 소중하다는 것을 느꼈기에, 더 많은 이에게 이 마음과 귀한 글이 전해지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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