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 대하여 은행나무세계문학 에세 3
율리 체 지음, 권상희 옮김 / 은행나무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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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 코로나가 등장한다고?

'코로나가 등장하는 소설이라니. 페스트가 아니라? 내가 잘 읽은 것이 맞나?' 싶어 '코로나'란 단어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어떤 글이나 영화는 관련 내용을 전혀 모른 상태로 만나 깊은 몰입을 가져다준다. 내게 <인간에 대하여>는 딱 그랬다. 무심하게 펼쳐 읽게 되었고 소설 속에 등장하는 '코로나'에 '에세이인가? 소설 아니었나?' 여러 의문으로 잠시 어안이 벙벙했지만 환경론자인 연인 로베르트를 떠나 농촌 브라켄 마을로 이사한 '도라'에 잔뜩 이입하여 빠져들었다. '도라'는 한번 시작한 프로젝트를 끝내버리는 능력으로 생계를 이어오고 있으며, 그 능력은 일상에서도 적용된다. 그녀의 연인 '로베르트'는 광적이고 타협할 수 없는 사람처럼 환경 의제로 '도라'를 죄어오곤 했다. 이런 상황은 코로나로 인한 봉쇄령, 폐쇄, 거리두기 등이 행해지면서 더욱 강한 통제로 이어졌다. '로라'는 이 현실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었고 결국 함께 사는 집에서 탈출하기에 이르렀다.

환경론자인 연인과의 관계가 돌이킬 수 없을 듯 갈라진 것은 코로나 이후였으나, 사실 그 이전부터 둘의 관계는 조금씩 삐그덕대고 있었다. 환경론자답게 분리수거를 강조하는 '로베르트'에게 보란 듯 고의로 분리수거물을 섞어 버리는 '도라'를 보며 웃픈 현실을 본다. 어떤 견해나 실천은 100% 옳고 타당할지라도 그것에 강요나 질타가 첨가되면 지시를 받고 따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내적 저항심이 건드려진다. '도라'가 딱 그런 상황이지 않았을까 싶다. 코로나로 인해 생겨난 규제를 강요하기 보다는 그것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설명하는 과정이 꼭 있어야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어쨋든 둘은 더 이상 이전의 연인관계를 유지할 수 없었고 '도라'의 시골생활은 시작되었다.

그럼에도 계속 나아가고, 그럼에도 살아 있다.

보수공사가 필요한 옛 대농장 관리인의 집을 매매한 '도라'는 브라켄 마을에서 썩 유쾌하지 못한 일들을 겪는다. 예상보다 더 넓은 마당을 온종일 삽으로 파다보니 근육통에 시달린다. 피할 수도 없는 옆집 이웃은 막말을 하는 나치주의자 '고테'가 살고 있다. 지역 주민들 역시 그리 평범하지는 않다. 프라이버시가 지켜지는 대도시와는 달리 잘 알지도 못하는 남자가 말을 걸고 '도라'의 집을 안다며 태워다주는 시골 마을의 유기적 관계를 처음부터 익숙하게 받아들이기는 힘들 것 같다. 하지만 브라켄 마을에서는 서로가 서로에게 다가간다. '도라' 역시 그 속에서 서서히 깨달아간다.



코로나로 고립된 사람들의 사회적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인적 자원을 연결하는 직업을 가진 나로서는 그 문제가 더욱 위협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인간은 이러한 고립을 아주 오래전부터 경험해왔다. 코로나로 인한 물리적 고립이 시작되기 훨씬 이전부터 인간은 이데올로기로 편을 가르고 전쟁을 해왔다. 우리나라 역시 그 이데올로기, 패러다임으로 인해 분단국가가 되어야하는 뼈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 어디 그 뿐일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인종차별 등 숨 쉬는 지금 현재에도 사람을 내몰고 상처주는 일은 반복되고 있다. <인간에 대하여>는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관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약간은 거리를 두어야할 것 같은 소설 속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편협한 사고에서 벗어난다면 또 다른 이면을 발견하게 된다는 희망을 건넨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 조금 더 알아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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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데이아 을유세계문학전집 118
에우리피데스 지음, 김기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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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곡이 이렇게 재미있었나?'

이전에도 두 번 정도 희곡을 접했던 경험이 있었다. 그 당시 '희곡'은 내게 낯선 장르였고 기존에 읽던 소설, 시 등과 비교하여 문체가 달라 속도를 내기가 어려워 포기했던 기억이 남아있다. 특히 고전주의 희극은 당대의 역사, 문화, 언어에 무지하다면 읽는 이에게 극강의 혼돈을 선물하기에 섣불리 도전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메데이아>는 마치 막장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서사가 쉽게 이해되었고 흥미진진하여 손을 뗄 수가 없었다. '아니, 희곡이 이렇게 재미있어도 되는거야?'란 생각을 매 순간마다 떠올리며 쉼 없이 종이를 넘겼다. 쉽게 읽힐 수 있었던 이유가 몇 가지 있었다. 친절한 번역, 친절한 계보도, 친절한 각주, 친절한 해설까지 을유문화사의 친절한 배려와 책의 높은 퀄리티에 매우 감격했다. '왜 지금껏 을유세계문학전집을 읽지 않은거야!.' 라며 질타하는 나를 발견했다.

세 편의 이야기 모두 비극적이지만 각각의 작품은 시대를 뛰어넘어 현재를 아우르는 깊은 성찰을 전해준다. 말 그대로 '예나 지금에나'란 말이 절로 나온다. 특히 「메데이아」편을 읽으며 여러 생각에 젖게 되었다. 남편 '이아손'을 위해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힌 '메데이아'는 망명당한 코린토스에서 공주와 바람이 난 남편에게 분노하고 복수를 결심한다. 여성의 지위나 역할을 되새기며 복수의 기회를 노리던 메데이아는 막장 드라마의 악역으로 등장할 법하지만 그녀가 겪어 온 과정을 알기에 극 요소인 코러스의 일원으로서 그녀를 걱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메데이아>를 읽는 내내 뮤지컬을 글자로 관람하는 느낌이 들었다. 상상력이 발동되었고 머릿 속에서는 쉼 없이 배우들이 등장해 극을 꾸며나갔다. 문장에서 노랫소리가 들리는 느낌마저 들었다. 애초에 희곡이 연기를 위해 쓰인 문학작품, 즉 각본이라고 할 수 있으니 연극보다 뮤지컬을 좋아하는 내게는 웅장한 뮤지컬 무대처럼 느껴졌다. 게다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익숙한 신들이 등장해 반가웠다. 상식 정도로만 알고 있었던 몇몇 신들의 등장으로 내적 친밀감이 뭉개뭉개 피어올랐다. 봄이 오는 3월, 좋은 작품을 만나 한 없이 빠져들었다.



*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기이한 풍습과 관습 안에 도착해서는 집에서 배우지도 않았지만, 남편이 어떤 사람인지 그와 어떻게 해야 가장 잘 지낼지, 예언자가 되어야 한답니다. 우리가 이런 엄청난 수고를 해내고 남편이 결혼의 멍에를 마다하지 않고 함께 살아 주면 우리의 삶은 선망의 대상이죠. 그렇지 않다면 죽음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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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목표는 다정해지기입니다 - 나에게 괜찮은 사람이 되기 위한 행복 루틴 78
이치다 노리코 지음, 윤은혜 옮김 / 언폴드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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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해를 맞이하며 다짐을 한다. '올 해는 꼭 이루어야지.' 수많은 바람들이 설렘과 함께 나부낀다. 저자인 '이치다 노리코' 는 '다정해지기'란 목표를 가지고 한 해를 시작했다. 그렇게 한 해를 보낸 뒤 다정해지기 위해 노력하며 걸어왔던 자신의 일상을 속속들이 기록하여 책으로 출간했다. 글은 1월부터 12월까지 날짜 순으로 기록되어 있어 일기를 엿보는 기분이 든다. 지극히 평범한 일상들의 기록이지만, 일상을 부지런히 알뜰살뜰 챙기는 사람이었다. 그러기 위해 다정한 시선으로 삶을 바라보고 오늘보다 내일, 조금 더 성장할 수 있도록 매일 5밀리미터씩 이것저것 시도하며 나아간다.

나에게 괜찮은 사람이 되기 위해 자신만의 의식과 생활패턴을 갖는다. 평소 새벽 5시에 기상해 20분간 반신욕을 한 뒤 욕실청소를 한다. 머리를 말리는 동안 부엌에서 철 주전자에 물을 끓여 차를 마시며, 매일 싱크대를 정리하고 스트레칭과 근력운동을 한다. 여러 시도 끝에 정착한 모닝 루틴은 '이치다 노리코'의 하루에 활력을 가져다준다. 평소에는 매년 새해가 되면 목욕타올과 핸드타월을 모두 새 것으로 바꾸고 작은 불편함이나 위화감도 내버려두지 않는다. 마음이 약해지는 날들은 그런 날에만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한다. 이런 작은 순간들을 쌓여 매일이 된다고 믿기에 일상을 소중히 여긴다.

다정해지는 순간들을 기억해보았다. 정성껏 요리한 음식을 맛보는 일, 독서를 하며 충만함을 느끼던 날, 우울한 하루 스스로를 다독이기 위해 써내려간 글들이 떠올랐다. 자신만의 철학으로 루틴 있는 삶을 사는건 매우 중요하다. 타인에게 휘둘리지 않고 안정감있는 생활을 만들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일이든지 노력이 필요한 법이다. 나를 소중히여기고 다정한 삶을 살기를 정했다면 부지런해져야 한다. 더 생각하고 고민해야한다. 그 노력이 있기에 조금씩 나아가는 것이다.

저자의 글을 보며 매일매일을 기록하는 행위는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일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 기록에 일상을 담고 생각을 정리하며 애정어린 시선과 다짐을 통해 나를 가꾸어나간다. 매일의 기록이 나를 다듬는 것이다. 자신을 조금 더 이해하고 바로 보기 위해 글을 쓰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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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ML + CSS + 자바스크립트 - 코딩만 따라 해도 웹페이지가 만들어지는
반병현 지음 / 생능북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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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말머리를 보며 희망을 보았다. 컴퓨터공학을 전공하지 않은 분들, 더 나아가 코딩을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분들을 위해 정교하게 설계된 책이란 저자의 첫 문장은 컴퓨터 무식쟁이인 나에게는 생명과도 같았다. 전세계적으로 컴퓨터의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 기술을 접목한 각종 산업들이 떠오르고 있고 요즘에는 코딩이 필수교육이라 한다. 아주 어릴 때부터 코딩을 배우는 것이다. 새로운 배움에 호기심이 일긴 했지만 내게는 어려운 말 투성이라 독학은 꿈도 못 꿀 것만 같았다. <코딩만 따라 해도 웹페이지가 만들어지는HTML+CSS+자바스크립트>는 학습 진도표를 제공하여 늦어도 16일 내에 진도를 따라올 수 있도록 제공하고 있다. 또한, 예제를 다운로드할 수 있는 홈페이지를 열어준다. 와우! 좋다~

 

  책은 두껍지 않았고 쉽게 설명되어 있어 컴퓨터 무식자인 나도 따라갈 수 있었다. 챕터대로 따라만 간다면 웹페이지를 만들 수 있을거란 희망이 계속해서 샘솟고 있었다. 우선 기본 용어를 익히는 것부터 시작한다. 이전에도 프로그래밍 언어를 들어본 적은 있었지만, 단지 '컴퓨터 언어' 정도로 생각하고는 했다. 아주 쉬운 설명으로 이러한 기본 용어들을 가뿐히 이해하고 넘길 수 있었다.

 

  이제 본격 시작! 본격적인 코딩 공부를 위해 설치해야되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다시 장벽이 느껴지는 순간이었지만 꼼꼼하게 설명을 읽으며 따라가니 성공! 이것만으로도 왠지모를 성취감이 느껴지는 컴알못... 그렇게 독학은 시작되었고 아직은 갈길이 멀다. 하지만 늘상 꿈만 꾸던 컴퓨터의 세계에 입문했다는 사실이 신기하게만 느껴진다. 당장 공부를 서둘러야 할 이유는 없지만 차근차근 공부하면서 나의 실력을 쌓아나가고 싶다. 그 과정에 도움을 많이 받을 수 있는 책을 만나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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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잎 한 장처럼 - 오늘을 살아가는 당신을 위한 이해인 수녀의 시 편지
이해인 지음, 오리여인 그림 / 샘터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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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시울이 자꾸 붉어졌다. 차오르는 눈물이 툭 떨어져 책장을 적시는데 마음이 따스해졌다. 이해인 수녀님은 <꽃잎 한 장처럼>에 자신의 이야기를 시로 편지글로 수록했다. 희소식보다 사건, 사고, 부고 소식이 더 많은 나이, 죽음에 더 가까워진 나이, 이해인 수녀님은 80을 바라보고 있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글에는 죽음에 대한 언급이 많다. 병들어가는 몸으로 여기저기 아픈 날에는 우울한 하루를 기록하기도 한다. 그러나 기운을 잃지 않으려 웃어보는 모습에 나를 돌아보게 한다. 어떤 이의 삶은 충고나 조언, 잔소리의 부재에도 사람들의 고개를 숙이게 하고 반성케한다. 성인을 보며 사람들이 깨닫는 진정한 성찰이라 생각한다. 사랑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려 노력하는 태도.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베푸길 좋아하는 태도가 글 곧곧에 묻어있다. 그 삶의 태도를 보며 따뜻함을 느꼈다.

자연에서 삶의 이치를 깨닫곤 한다. 이해인 수녀님 역시 나무, 꽃, 태풍, 거미, 비를 보며 그들이 일러주는 이야기를 잘 기록해 두셨다. 도시에서 바쁘게 살다보면 인간 중심적인 효율, 편의, 결과중심 등으로 사고하게 된다. 슬프게도 그런 사고방식으로 인해 우리의 터전인 지구가 병들고 있다. 그럼에도 해마다 계절은 돌아오고 자연은 절기에 맞게 변화한다. 산이라면 학을 뗐던 나는 서른 중반에 접어들며 등산을 즐기기 시작했고 산이 주는 풍요로움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었다.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싹을 틔우는 식물들을 보며 새로운 배움을 느끼고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풍경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자연이 주는 이치를 깨닫기엔 여전히 부족한 내공이지만 새롭게 다가오는 경험이 즐겁다. 나의 풍경을 소중히 여기고 잘 가꾸기 시작하면 어느새 큰 사랑이 된다는 이해인 수녀님의 말처럼 나의 터, 나의 가족과 지인들, 내가 돌보는 모든 것들에 마음을 주고 잘 가꾸어야지.

모든 시와 편지글이 좋았지만, 가장 감명깊게 읽은 시 한 편을 소개하려 한다.

어떤 죽은 이의 말

안녕?

나는 지금 무덤 속에서

그대를 기억합니다.

이리도 긴 잠을 자니

편하긴 하지만

땅 속에 차가운 어둠이

종종 외롭네요.

아직 하고 싶은 일도 많고

보고싶은 일들도 많은데

이리 빨리 떠나오게 될 줄 몰랐지요.

나의 떠남을 슬퍼하는 이들의

통곡소리가 아직도 귀에 선해요.

서둘러 오느라고

인사도 제대로 못해 미안합니다.

꼭 한 번만 살 수 있는 세상

내가 다시 돌아갈 수 없지만

돌아간다면 더 멋지게 살거라고

믿는 것도 나의 착각일 겁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많은 말들

다 못하고 떠나왔으나

그래도 이말만은 꼭 하고싶어요.

삶의 정원을

순간마다 충실히 가꾸라는것

다른 사람의 말을 잘 새겨듣고

왠만한 일은 다 용서할 수 있는

넓은 사랑을 키워가라는 것

활활 타오르는 뜨거움은 아니라도 좋아요.

그저 물과 같이 담백하고 은근한 우정을

세상에 사는 동안 잘 가꾸려 애쓰다 보면

어느새 큰 사랑이 된다는 것

오늘도 잊지 마세요. 그럼 다음에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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