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를 판 사나이 열림원 세계문학 5
아델베르트 샤미소 지음, 최문규 옮김 / 열림원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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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림원 세계문학 다섯번째 시리즈로 그림자를 판 사나이가 출간되었다. 뮤지컬로 더 친숙했던 이야기였는데 소설로 만나게 되어 반가웠다. 소설은 어떻게 이야기가 전개될지 설렘 가득 페이지를 넘겼다. 「그림자를 판 사나이」의 슐레밀은 회색 옷을 입은 남자와 거래하여 자신의 그림자를 넘기는 대신 금화가 마르지 않는 주머니를 받게 된다.

슐레밀은 금화가 마르지 않은 주머니 덕분에 엄청난 재력가가 되지만 그림자를 잃은 대가는 혹독했다. 어딜가나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과 조롱을 받게 되었고 끝내는 사람들을 피해 다니며 칩거생활을 하거나 그림자가 지지 않도록 조명을 세팅하여 간헐적으로 외출을 했다. 엄청난 부를 획득하여 저택을 짓고 많은 신하를 거느렸지만 잘못된 거래는 슐레밀을 암흑으로 밀어넣었다.

당연해서 그 소중함을 놓치는 우리들처럼 슐레밀은 자신의 그림자를 별 고민없이 내어주었다. 그리고 엄청난 부를 얻었음에도 사람들과 어울리며 지내지 못하고 사회에서 배척되는 처지에 놓인다. 돈이면 다 된다는 식의 사고가 만연한 시대에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소설이 쓰인 19세기에도 물질만능주의에 대한 비판이 있었으니 자본주의의 오랜 역사를 직접 체감한 듯 하다.

다행히도 그에게는 충실한 신하 ‘벤델’이 있었다. 그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외로움을 덜 수 있었지만, 사랑하는 연인 ‘미나’와는 결국 헤어지고 말았다. 악마는 끝내 그림자를 빌미로 또 다른 거래를 제안한다. 슐레밀이 끝까지 자신을 지킬 수 있을지 관전하는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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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얼굴의 여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5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 / 비채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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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르소설을 읽었던 적이 언제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래서인지 '미쓰다 신조' 호러미스터리 「검은 얼굴의 여우」를 읽을 때 설렘이 가득했다. 일본의 추리소설 작가인 '미쓰다 신조'는 도조 겐야 시리즈로 이름을 알렸는데, 이번 책은 '모토로이 하야타' 시리즈의 새로운 출발을 알린 작품이다. 처음 접하는 작가에 대한 호기심이 언제나 충만한지라 「검은 얼굴의 여우」를 접한 뒤 '도조 겐야 시리즈'가 궁금해졌다.


  어느 추리소설이 그렇듯이 500쪽이 넘는 벽돌책을 자랑한다. 하지만 책장을 넘기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어느 순간 마지막 장에 다다랐다. 일제 치하에서 강제 노역을 하던 조선인들이 있었던 역사적 사실을 기억한다. 그 중에서도 탄광에서는 제대로 된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한 채 노예로 전락해 많은 조선인들이 노역을 강요당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으로 미스터리가 펼쳐져 더욱 호기심이 일었다. 만주의 건국대학을 나온 엘리트였던 '모토로이 하야타'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패전한 일본의 재건에 관심을 가지던 그는 정처없이 돌아다니다 역사에서 '탄광부' 제의를 받는다. 썩 질이 좋아보이지 않는 위협적인 남성에게 끌려갈 뻔한 것을 '아이자토 미노루'가 재치있게 구해주게 된다.


커다란 사고와 불가사의하게 연속되는 죽음 때문에 넨네 갱 자체가 어둡게 가라앉았다. 탄광부도 기운이 없다. 기운은커녕 내빼야 할지 상담하는 사람이 나오기 시작하는 지경이다.


  '아이자토 미노루' 는 탄광부 일을 하고 있었는데, 둘은 이 후 이야기를 나누었고 '모토로이 하야타'는 그를 따라 탄광에서 일하기를 결정한다. 만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본격적으로 넨네 갱에서 일하게 되며 사건이 시작된다. 스포가 될 수 있어 간단히 얘기하자면 탄광에서 의문의 죽음이 연쇄적으로 일어난다. 연쇄살인사건을 '모토로이 하야타'가 파헤치며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데 얽힌 실타래가 조금씩 풀려나갈 때 소름이 돋았다.


백여우님 혹은 백신님으로 모시는 여우 신은 풍요의 신이다. 농촌과 산촌에서는 결실과 수확을 의미하는데 탄광에서는 당연히 석탄 채굴량 증가로 연결된다. 흑여우니 혹은 흑신님으로 두려워하는 여우신은 흉작의 신이다. 여기서는 갱내에서의 모든 사고를 의미했다.


  탄광은 목숨을 걸고 하는 일임으로 예로부터 미신을 믿어왔고 입갱하기 전에 무사를 바라는 기도를 올린다. 민속학적 요소가 가미되어 있기에 사건의 실마리가 '사람'인지 혹은 '마물'인지 범인의 정체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하얀 여우와 검은 여우를 모시는 탄광 사람들은 특히 흉작의 신, 갱내 사고를 뜻하는 검은 여우를 두려워한다. 검은 여우에 홀려 갱내에서 사라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오래 전부터 전해지며 그 두려움은 더욱 강화되었다. 이 추리는 미신적 요소와 함께 전개되어 더욱 흥미롭게 읽었던 것 같다.



*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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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이야기
이이지마 나미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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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이야기’가 가득한 푸드 스타일리스트 이이지마 나미의 에세이에 푹 빠져 버렸다. 이전에 감명 깊게 보았던 영화와 드라마 <카모메 식당><안경><바닷마을 다이어리><심야식당> 속 음식을 만들어 낸 사람이라니,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 영화 속에 들어가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영화 속 레시피와 비하인드가 글로 구현될 때마다 영화를 다시 보고싶어졌다. 조만간 <카모메 식당>은 다시 볼지도 모르겠다.


영화 일은 여느 요리책의 요리들과는 달리 원작이 있으므로 그 세계에 맞는 요리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영화 현장은 라이브 감각이다. 아무튼 현장 상황을 보면서 임기응변으로 대응해야 한다.


영화나 드라마의 음식을 연출하는 푸드 스타일리스트는 역시 생각대로 멋진 직업이다. 하지만 역시 고민과 노력은 꾸준히 동반된다. 우선 극 전개의 분위기에 맞는 식자재, 레시피 및 식기를 선택한다. 이 과정도 녹록치는 않다. 이미지에 맞는 음식을 구현하기 위해 주문제작을 하거나 조리도구 및 식기를 찾기 위해 발품을 파는 등 갖은 노력을 들인다. 또한, 배우들이 편리하고 맛있게 먹으며 연기할 수 있도록 신경써서 준비하고 현장 흐름에 방해되지 않도록 눈치껏 음식을 준비해 내놓아야 한다. 음식이 단순 소품이 아니라는 사실을 글을 통해 여실히 깨닫는다.


’식’의 지혜와 문화가 사라지지 않도록 사회 전체가 고려해나갈 필요가 있지 않을까. 만드는 쪽도 요리하는 과정을 더 적극적으로 즐기면 좋겠다.


열 사람이면 열 사람 다 다른 우엉조림. 밖에서 사먹을 때는 쉬이 만날 수 없는, 문득 무한히 먹고 싶어지는 여러분의 ‘하나뿐인’ 요리는 무엇인가요.


요리하는 이에 따라 같은 요리도 그 맛과 향이 달라진다는 사실이 재미있다. 그리고 이를 반갑게 받아들이는 저자의 태도에 미소가 지어졌다. <맛있는 이야기>에는 일본의 식문화도 담겨있다. 왁자지껄 음식을 나누는 사가 현 가라쓰의 전통행사 ‘가라쓰쿤치’는 흥미로웠고 일본의 다양한 채소절임도 맛보고 싶어졌다. 한국의 음식도 등장해 눈길을 사로잡기도 했다. 아무래도 요리를 연구하는 직업이다보니 다양한 나라의 식문화에 관심을 기울이는 건 푸드 스타일리스트인 저자로서는 행복한 일이 아닐까싶다.


좋은 것을 발견하면 소문을 내고 싶어진다. 맛있는 것은 나누고 싶어진다. 입소문이 나서 가게를 찾아가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미지의 가게를 발품을 팔아 찾아가는 일은 ‘가는 길’ 캠페인과도 통하니까요.


정갈하게 담긴 저자가 직접 만든 음식 사진들은 어찌나 입맛을 다시게 하는지 야심한 밤에 읽게 된다면 식욕을 주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저자의 맛있는 이야기가 정답고 공감가는 이유는 넉넉한 그의 인심과 마음 씀씀이 덕분인 듯 하다. 맛있는 걸 먹으면 나누고 싶어하는 인정, 안 해봤으니까 안 한다, 가 아니라 안해봤으니까 도전한다. 는 그만의 ‘가는 길’ 캠페인처럼 말이다. <맛있는 이야기>는 눈과 입의 즐거움 뿐 아니라 마음까지 든든하게 채워주는 영양만점 에세이다.




*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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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로에서 시작하는 자본론 Philos 시리즈 27
    사이토 고헤이 지음, 정성진 옮김 / arte(아르테)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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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 맑스의 「자본론」을 공부하다가 두통으로 지끈거렸던 대학 시절이 떠올랐다. 물론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흐지부지 끝이 났지만, 자본가는 노동자의 노동으로 인한 잉여가치로 부를 굴린다는 개념이 뇌리에 남았다. 자본주의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자본'이 굴러가는 방식은 너무나 당연하다. 이윤창출이 유일한 목적이자 최대 목표인 기업들, 하나부터 열까지 상품화된 세상에서 의식주를 해결하려면 노동력 제공이 불가피한 노동자, 이에 대한 부작용이 끝없이 열거되고 있지만 한 번 굴러가기 시작한 자본이란 톱니바퀴는 멈출 기미가 없다. 그럼에도 '자본주의' 세상을 살고 있기에 이를 공부하고 이용해야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아주 오랜만에 「자본론」을 주제로 한 책을 읽게 되었다. 사이토 고헤이의 「제로에서 시작하는 자본론」은 칼 맑스의 자본론을 바탕으로 우리가 어떤 시대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견을 제시한다. 저자는 머리 싸매며 읽었던 「자본론」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명쾌한 해설을 덧붙여 '자본주의'가 아닌 21세기에 알맞은 '새로운 사회'를 상상하도록 한다. 어려울 것 같아 살짝 겁먹고 시작했던 독서였지만, 이해하기 쉬운 설명과 사유의 지평을 넓혀 준 흥미로운 내용들로 몰입하여 읽었다. 자본주의의 대안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노예는 단지 외부의 두려움에 의해 노동하지, 자신의 생활을 위해 노동하는 것이 아니다. 이에 반해 자유노동자는 자신의 필요에 의해 노동한다. 자유로운 자기결정, 즉 자유에 대한 의식과 그에 따른 책임의 감정은 자유노동자를 노예보다 훨씬 더 나은 노동자로 만든다.

    📌자본주의사회에서는 노동자의 자발적 책임감, 향상심, 주체성이 자본의 논리에 '포섭'된다고 마르크스는 경고했습니다.

    '자본주의'는 사람들에게 평등한 기회와 보상을 제공한다는 '로또'와 같은 희박한 희망을 선사한다. 하지만 실상 노동자들은 '자유'를 앞세운 자본에 자발적 착취를 강요당하고 있다. 끝없이 가치 증식하는 '자본가'와 인간다운 삶을 원하는 '노동자'의 이해관계는 애초에 양립할 수 없기에 자본의 논리에 포섭된 노동자는 더 열심히 일하고 자신이 원하는 상품을 구매한다. 그 역시 자본가에게 득이 되는 방식이다.

    이전에는 자급자족했던 것들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모두 '상품화'되어 화폐를 통해 거래된다. 이것이 자본주의가 가지는 속성이다. 생애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상품화한다. 논란이 되고 있는 '민영화', '사유화'도 같은 이치이다. 삶의 필수적으로 작용하는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 화폐가 필요하니, 우리는 노동력을 자본가에게 제공한다. 노동을 제공하고 받은 대가는 다시 자본가의 배를 불리는데 사용된다. 또한, 자본가는 노동자의 노동을 제공받아 잉여가치를 얻는다. 그리고 노동자의 구매로 또 다시 이윤을 창출한다.

    📌마르크스 연구자들은 소련이라는 '사회주의'를 표방한 체제가 있었다는 것에 안주해서 포스트자본주의의 가능성을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중에 소련의 붕괴를 맞이했고, 그 뒤 자본주의 이외의 사회상을 상상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졌습니다. 이리하여 우리는 여태까지 자본주의를 대체할 새로운 사회상을 그려 내지 못했습니다.

    '자본주의는 나빠!'를 얘기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가 굴러가는 방식과 이면의 어두운 현실(불공정성, 양극화, 착취 등)을 직면해야 건강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 인간의 삶이 자본의 가치로만 굴러간다면 곪다가 터져버릴 것이다. 이는 벌써 여러 사회문제(노동, 자연파괴 및 이상기후 등)로 나타나고 있기도 하다. '사회구조'의 문제가 있으니 이를 타개할 방법이 있다면 얼마나 희망적인 일인가.

    칼 맑스의 자본론의 한계를 넘어선 상상력은 '21세기 코뮤니즘'으로 설명된다. 저자는 맑스의 미출간 원고들 및 숨겨져 있는 문제의식들을 찾아내 이를 연구했다. 환경과 사회적 기반이 보호되고 사람들이 안전하고 공정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 유토피아적 상상일 수 있지만 더 나은 사회로 내딛는 소중한 한 걸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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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티시 - 광신의 언어학
    어맨다 몬텔 지음, 김다봄.이민경 옮김 / arte(아르테)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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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어’가 지닌 파급력을 체감한 적이 있다. 이전에 시민단체에서 활동을 하였는데 ‘봉사활동’을 ‘자원활동’으로, ‘봉사자’를 ‘자원활동가’라고 불렀다. 그 의미가 매우 강조되었는데 사람은 부르는대로 사고하기 마련이라 ‘봉사’란 단어가 지닌 시혜적이고 수동적인 이미지를 탈피하고자 함이었다. 이는 봉사를 받는 대상은 불쌍한 자가 되고, 하는 대상은 착한 자가 되는 기존의 일방적 ‘봉사’ 패러다임을 바꾸기 위한 노력 중 하나였다. 나는 당시 언어가 지닌 힘을 느꼈고 그 의미에 매우 몰입되었다.

    ▪️언어가 지닌 힘은 여러 분야에서 드러난다. 일상생활부터 조직생활을 하는 학교, 회사, 정치, 종교 그리고 범죄에 이르기까지 그 파급력은 강하다. <컬티쉬>는 광신의 언어학, 즉 특정 인물이나 사물에 대한 예찬, 열광적인 숭배의 집단, 주교적 종교단체를 뜻하는 ‘컬트’ 집단의 언어적 영향력을 얘기한다. 미국에서의 컬트(cult)는 꽤 중요하게 다뤄지는데 광신의 언어가 사람들을 어떻게 장악하는지 그 과정이 참 흥미롭다.

    📌공동체와 연대감을 조성하고, ‘우리’와 ‘저들’을 구분하고, 공동의 가치를 확립하고, 의심스러운 행동을 정당화하고, 이데올로기와 두려움을 유발함으로써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기이한 방식은 컬트적으로 흡사하다.

    📌언어는 단순히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묘사하거나 반영하기만 하는 게 아니라 우리 존재를 형성한다. 말 자체에 행동을 완성하는 능력이 있어서 어느 정도 내재적 힘을 지니기 때문이다.

    ▪️언어학자인 ‘컬티시’의 저자 ‘어맨다 몬텔’은 아버지의 영향으로 컬트에 관심을 갖게된다. 그녀의 아버지는 ‘시나논’이라는 컬트 공동체에 속해 있었는데 그들의 사회 통제 방식을 언어에서 찾았다.

    ▪️’컬트’의 옛 이야기부터 현재의 ‘컬트’가 가지는 의미까지 흥미롭게 읽었다. 한 사람이 어떤 집단에 소속되어 빠져들기까지 개인의 문제로 규정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나약한 정신 혹은 세뇌, 가스라이팅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왕국을 이루는 집단 및 언어적 힘이 가지는 영향을 고려해본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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