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스트 키즈 - 패티 스미스와 로버트 메이플소프 젊은 날의 자화상
패티 스미스 지음, 박소울 옮김 / 아트북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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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ay we were에서 서로 다른 성향의 로보트 레드포드와 바브라 스트라이샌드가 가각 같은 캠퍼스 내에서 조깅과 전단지 살포로 아침을 열때 나오는 그 사운드트렉을 듣는 것 같았다. 냉전과 매카시즘으로 젊은이들이 같이 스스럼없이 자유롭고 활발하게 모든 사상과 인종, 문화와 종교를 품을 수 있는 그 찬란한 시절에 정치적인 억압과 편가르기에 묶여 사랑도 몰래 숨어서 쉬쉬하며 해야 했던 그 시절의 모습이 고스란히 오버랩되어 나타났기 때문이다.게다가 배경이 뉴욕이니 영화가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 패티 스미스와 로버트 메이플소프라는 주인공들의 삶을 이 the way we were을 본 사람이라면 쉽게 이해할 수 있고 느낄 수 있다. 락커란 직업, 그것도 여성락커의 성향이니 당시 명문가의 여성들이라면 고분고분 어른들이 시키는대로 외모를 가꾸다가 사교계에서 만난 장래가 기대되는 남자를 만나서 결혼을 하는 것이 정해진 길인데 이 패티 스미스는 누가 보아도 사고뭉치, 말썽쟁이, 정말 별나서 골치 아픈 전향적인 여성이다. 그런 그에게 운명같은 사랑이 찾아오는 장면에선 눈을 감을 수 밖에 없었다. 너무 짜릿하기도 하고 그 운명의 강함에 이끌린 두 사람의 미래가 아찔하기도 해서였다.

 

전혀 부드럽지도 무난하지도, 그렇다고 여성스럽다거나 예쁘지도 않은 패티 스미스를 자신도 미처 몰랐던 여성성을 끌어 내게 만드는 한 남자, 로버트 메이플소프가 신처럼 특별한 초능력자로 느껴졌다. 그의 따뜻한 미소와 사람을 향한 관심, 그리고 선호가 분명한 패티와 달리 많은 사람들이나 사물과도 어렵지 않게 어울릴 수 있는 폭 넓음이 그를 더욱 멋지게 보이도록 만들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것은 역시 예민하지만 그래서 더욱 끌리는 감수성이었다. 남자가 어쩌면 저렇게 여자의 불편함을 ,마음을 속속들이 정확히 알고 느끼며 반응할까에 매료되어 이 땅에 있는 삼겹살에 소주만 마시면 아무 곳에서나 하품과 트림을 용감하게 해 대는 남자들이 살고 있는 곳에 꼭 저런 남자를 하나만 보내주셨으면 하는 안타까움으로 번졌다.

 

너무나 다르고 접점이라고는 찾기 어려운 두 사람의 관계의 시작은 정말 영화같았다. 그만큼 짜릿하고 긴장되면서 흥분을 느꼈으니까. 하지만 과연 생활이라는 것을 함께 할 수 있을까란 의구심이 들었는데 그것은 새와 물고기 같은,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아야지만 숨을 쉬며 생존할 수 있는 두 사람이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란 생각이 들었고 결말이 뻔한 그 사랑을 하지 않았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라는 현실적인 생각도 들었다.

 

사랑이란 그렇게 지도을 보는 것처럼 이 길을 통해 저 곳으로 간 다음, 저 곳에서 왼 쪽으로 빠져서 직전 도로를 달리면 되는 네비게이션과는 너무나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패티가 더 깊고 아물지 않은 상처를 입게 되지만 그녀가 로보트와의 사랑을 알게 되기 전의 자신으로 돌아가길 희망하거나 사랑자체를 후회하지 않고 그 처절한 아픔과 그리움을 고스란히 자신의 기억 속에 저장하는 것을 보고서 그녀의 당참과 용기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자신의 전 생애 가운데 음악과 저술활동, 그리고 로보트라는 한 남자를 결코 놓을 수 없었던 패티의 젊은 시절의 모습을 보면서 나에겐 저런 용기가 과연 있을까 싶었고 사랑을 하기 위해선 저렇게 전부를 건, 목숨을 건, 운명을 건 러시안룰렛같은 희생이 없으면 안 되는 것일까란 고민이 생겼다.

 

오래가지 않은 연인과의 생활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천상의 기쁨과 열정을 갖게 해 준 로보트에게 여전히 사랑과 감사를 보내는 패티를 보며 그렇게 순수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묻고 싶어졌고 그녀의 용기 있었던 삶에 풍선을 띄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나에게도 사랑에 무엇을 걸어야 하는지를 알려주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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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에는 희망만 보였다 - 장애를 축복으로 만든 사람 강영우 박사 유고작
강영우 지음 / 두란노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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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강영우 박사의 원동력을 읽고서 얼마 되지 않아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뉴스를 들었을 때 무척 서운하면서도 가슴이 아팠다. 책을 통해 만난 한 사람이, 그리고 그 책이 어떤 이론이나 지어낸 이야기가 아닌, 환갑이 넘은 사람의 긴 시간 동안의 시행착오와 그 안에서 얻은 깨달음들을 인생의 후배들에게 들려주는 것이었기에 그 섭섭함은 생각보다 컸다. 그렇게 세상에 태어나서 책을 통해 만나게 된 스승을 떠나보내는 슬픔은 그를 이제 막 알기 시작했기 때문에 더 컸던 것 같다. 그리고 이제 그가 살았던 발자취는 남긴 책, 내 눈에는 희망만 보였다를 통해 조금이라도 더 뒤좇아 가고 싶었다. 여러 유명교회 목사들의 추천글이 가득한 표지를 보면서 마음이 끌렸던 것이 아니다. 그의 성공이 부러워서도 아니다. 그가 솔직하게 자신의 처지를, 앞을 못 보면 이 나라에서는 안마시술을 익히며 인간대접 받지 못하며 살았던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 놓았기 때문이다. 그가 고아로서 평생을 의지할 수 있는 가족의 보호 속에 살지 못했음에도 미움과 한탄, 원망을 털어 놓기보다 다리는 멀쩡하니 일어서서 걸었다는 점에 나와는 다른 큰 차이를 느꼈기 때문이다.

 

내용 가운데 자신이 시각장애를 갖고 있으면서 그 축구공에 맞아 실명을 하게 된 불운을 떨쳐 버린 것이 가장 놀라웠다.그리고 그 장애를 저주가 아닌, 축복이라고 처음엔 의지적으로 그렇게 이해하려 노력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는 시력을 잃고서 그 상실에 매달려 있지 않고 자신을 평생 존중하며 보호하며 자신의 눈이 되어 옆에 있어 준 아내에게 진심으로 고마움과 사랑을 느꼈고 그것을 대중 앞에서 스스럼 없이 표현했다. 고마운 것을, 미안한 것을 마음으로만 간직하지 않고 공공연한 장소에서 그렇게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은 그만큼 아내에 대한 뼈 속 깊은 감사한 마음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거기에 이 책의 감동이 있다. 시력을 잃었기에 다른 감각이 발달했음은 물론이고 사소한 것, 일상적인 것, 반복적인 것의 가치를 그는 누구보다 잘 알게 된 것이다. 말을 다듬어서 상대방의 마음에 편안하게 전달되도록 노력한 것도 그 중의 한 예다. 명령적인 말, 강압적이고 분노를 담은 말, 거칠고 감정을 상하게 하는 말을 스스로가 차단하고 긍정적이며 부드러운 말을 하려도 자신을 훈련시킨 점이 그의 인격의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이고 나 또한 그 점에 작지만 강여우란 사람을 있게 한 시작이라 생각한다.

 

장애인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미국이란 대국에서 고위직에 오르고 두 아들을 모두 유명대학에 입학시켜 전문직을 갖게 한 성공이 대단해서 그것을 따라하고자 책을 읽은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붙잡을 것이 없는 암담한 현실 가운데 눈 먼 고아소년의 불우할 수 밖에 없는 운명에 순응하지 않았고 모험과도 같았던 미국으로 건너가 살면서 현재의 자신이 있게 해 준 미국의 시스템과 문화,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을 잊지 않았던 그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흔히들 미천했던 자신의 모습을 기억조차 하기 싫어 어려운 시절 도움을 주었던 사람들을 모른체 하는 경우가 태반인데 그는 정직했다. 미국에 살면서 장애인을 비장애인과 동등한 인격으로 대접받게 하기 위한 일에 힘을 기울였고 자신과 같은 장애를 갖은 사람들이 각각 다른 분야에서 장애인인권을 위해 어떠한 씨알도 먹히지 않는 노력들을 강하게 해 오고 있었는지에 대해 알리는데 노력했다.

 

그리고 가장 놀라운 점은 그가 장애를 어떻게 인식하는가였는데 장애를 극복의 대상, 싸워서 없애야 하는 대상, 혹은 불쌍해서 적선을 해 주어야 하는 대상으로 여기지 않고 장애를 우리가 늘 숨을 쉬는 공기와 같이 일상적이며 자연스러운 것으로 인식하는 것에 놀랐다. 정말 대단한 자신감이 아닐 수 없다. 그래도 조금은 아쉬움과 열등감이 남아 있을 것이라 여겼던 나의 생각과는 많이 달랐다. 아무리 다른 장애인들의 인권을 위해 앞장서는 대장의 자리에 있더라도 남들처럼 눈으로 이 아름다운 세상을 보며 사랑하는 아내와 두 아들의 얼굴을 보며 평범한 가장으로 살고 싶은 생각이 없었을까! 그런 생각을 여전히 갖은 채 읽고 있던 나에게 내 장애에 대한 편견이 얼마나 깊은지를 단적으로 깨닫게 해 준 것이다. 내게 있어서 여전히 장애란 없으면 좋은 것이고 생기면 당황스럽고 불안하고 두려운 것, 불편한 것이다. 그의 말대로 65세 이후의 인구 가운데 장애가 발생하는 비율이 50&가 넘는다는 것도 맞다. 앞으로 선척적 장애인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후천적 장애, 노인성 장애에 대한 인식과 연구, 그리고 받아들임에 대해 전혀 준비가 되지 않은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강여우가 보여주는 희망은 작지만 씨앗같이 그 성장이 무한한 것이라 생각한다.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다면 앞을 보지 못한 채로 일생을 마감한 그의 곁에서 평생을 살아 온 가족들의 진솔한 심정이다. 그의 아내, 그리고 두 아들의 입장을 듣고 싶다. 장애인으로서 그 신체적 불편에도 굴하지 않고 당당힌 인간으로서,아버지로서 , 남편으로서 자신의 몫을 다 하고 간 그를 직접 보며 겪은 사람들의 감회를 듣고 싶다. 실제 노인성 장애를 겪고 계신 분들과 생활을 같이 하게 된 것은 1년 여 남짓이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힘이 든다. 걸어가다가도 한숨이 깊게, 그것도 아주 길게 나오는 것이 습관처럼 되었고 간단한 음식을 드려도 입으로 들어가는 것과 밖으로 흘러 나오는 것의 양이 만만치 않으니 챙겨 드리고 나면 그것을 치우느라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한다. 걷는 것도 대소변을 해결하는 것도 결코 정상인들, 아니 대여섯 살짜리 아이보다 더 힘이 드는 것이다. 그래서 눈물이 많아졌다. 같이 살아가면서 모든 것을 나에게 점점 의지해가시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자꾸만 약해져서 장애인과 함께 살아 온 사람들의 실제 이야기를 듣고 싶어지게 된 것이다.  

 

내 옆에 있는, 내가 대신해 주지 않으면 일상생활이 어려운 장애를 갖고 있는 가까운 사람들에 대해 늘 마음에 짐스러움과 어려움이 끊이질 않았다. 피하고 싶고 보지 않으면 모른 척 할 수 있다고, 편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며 회피하려고 했는데 그것이 얼마나 무지해서 나온 것인지를 이 책을 통해 깨달았다. 앞으로 눈물이 더 많아지게 될지, 아니면 그래도 웃음을 따스한 격려와 사랑의 말이 더 많아질지는 솔직히 자신이 없지만 그래도 강영우박사가 내게 남겨 준 것은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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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식탁 VS 건강한 밥상
다음을 지키는 엄마들의 모임 지음 / 민음인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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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뇨밥상이나 몸이 건강해지는 기적의 주스, 암환자를 위한 식단 등  올해에만도 여러 권의 음식관련 서적들을 구입했다. 건강보험공단에서 보내주는 매거진도 얇긴 하지만 유용한 정보가 쏠쏠하다. 이 책에서 가장 공감하고 많은 도움을 받은 부분이 바로 맛있게 요리하는 비법이나 칼로리를 줄이는 방법 등 작은 스킬 중심에서 벗어나 근본적으로 우리 몸이 찾고 몸의 균형을 바로 잡는데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 항목들을 단계별로 알려 준다는 점이다.

 

요약하면 가장 좋은 방법은 집 앞에 작은 땅이라도 꼭 가족의 입으로 들어갈 채소를 기르라는 것이다. 텃밭가꾸기라는 책은 이미 구입한 상태로 작년부터 처음 텃밭을 경작해 보았는데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다. 모종을 가져다 심고 비료를 주고 풀을 뽑아주고 가문 여름에 3일에 한 번씩 찾아가서 물을 흠쩍 호스로 뿜어주어야 겨우 며칠 먹을 수 있는 상추, 치커리, 가지 등을 수확할 수 있었기에 작업량이 많고 소출은 적은 찌는 여름 날 초보농부의 하루는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 농사를 짓는 것을 기초로 해야만 우리 가족의 건강을 지킬 수 있다는 주장이니 상당히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4장으로 나누어 각각 곡류와 채소&과일, 수산물, 육식으로 설명을 했는데 제대로 먹고 산다고 목표를 정하면 이렇게 일 년 열두 달을 경작과 채집, 목축에 신경을 써도 모자랄 판이라는 것이 눈에 훤히 보였다. 동시에 그래서 지금 내 주변에 많은 분들이 70세가 넘으면 병원에 누워 간병인의 수발을 받으며 연명치료에 돌입하고 있구나라는 것도 깨달았다. 그 순간 너무 머리가 아파왔다. 열심히 새벽부터 일하기 위해 아침을 시리얼과 우유 등으로 하고 점심은 근처의 국수나 피자집, 저녁은 당연히 고깃집으로 하는 생활을 너무 오랫동안 해 왔나 싶었다. 암이나 당료로 큰 수술을 여러 차례 받은 주변의 사람들은 직업과 성별, 나이의 구별이 없이 누구나 걸렸고 누구는 환자의 보호자가 되어 치열한 건강식단 차리기에 온 힘을 쏟아내고 있으니 정말 마음이 아프다. 그런데 그렇게 아프게 된 원인을 알려주는이 없이 그냥 수술날짜를 잡고 항암치료를 하고 집으로 돌려보내는 의료진에 대해 원망이 안 생길 수가 없다. 그러고 나면 끝이 나는 것이 아닌 것을...

 

책을 읽으면서 외식을 한 끼 하면 도저히 그 동안 노력해 온 일들이 허사가 되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다라는 것을 느꼈다. 여러 가지 요리를 한 끼에 즐기며 먹을  수 있는 샐러드바와 같은 뷔페를 너무나 좋아하는데 끊을 수 있을까 싶은 마음도 들었고 가공식품과 첨가물에 대한 것은 냉동만두 한 봉지를 먹거나 어묵을 먹으면 그 날 제한양을 몇 십배 초과하고도 남을 양이라니 충격적이었다. 햄에 들은 아질산나트륨을 빼 내기 위해 끓는 물에 한 번 데쳐서 접시에 담는 방법 등은 생활 속에서 아주 작지만 유용한 정보이다. 그럼에도 내가 만든 음식보다 훨씬 맛이 기가 막히게 좋은 가공식품들을 몽땅 포기하자니 그 동안 길들여진 입맛때문인지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겠다. 그리고 텃밭을 가꾸면서 화원에서 사 온 물비료(화학비료)를 주어 토마토를 키웠는데 그 액상으로 된 화학비료가 그리고 땅과 우리 인체를 산성화 시키며 망가뜨리는 주원인이라는 것을 지금에서야 알게 되었다. 항생제와 성장촉진제로 키워지는 닭과 오리, 소와 돼지 등의 사육실태를 접하니 광우병 소고기를 수입하는 것에 대한 찬반이 거세었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게 되었다. 순진한 마음에 정부에서 선전하는 대로 불에 잘 익혀서 먹었다. 정말 잘 익혀서...너무나 어리석었음을 이제 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나!!!

 

이렇게 생명과 직결되는 농,수,축산 생산물들에 대해 안심하고 먹을 것이 없다는 것이 현실이다.

[소비자가 용서할 수 없는 마트신선식품]을 읽어보면 십여 년 이상 농축수산물을 구매하던 경험을 바탕으로 일본내에서의 도저히 허용할 수 없는 남은 생선으로 초밥만들기,유통기한 마음대로 정하기,계란의 포장일자를 산란일자로 만들기 등등 너무나 끔찍하고 비도덕적인 방법으로 소비자에게 유통시키는 기발한 방법을 쓰는 것을 확인하고서 경악을 금치 못했다.팔다 남은 생선으로 초밥이나 즉석식품으로 재가공을 하는 것이 거의 공식으로 정해져 내려오고 있었다. 일본의 실정을 다룬 것인데 특히나 마트의 즉석빵은 절대 사 먹어서는 안 되는 것으로 주장하고 있다. 이유는 수 개월에서 일 년 전에 반죽해서 냉동된 것을 아르바이트생이 구워 팔기 때문에 아주 오래 된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위생에 대해 일본보다 더 철저히 지키고 있다고 볼 수가 없기 때문에 확실히 농축수산물에 대한 자신만의 방법이 필요하다는 것을 관련서적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내 가족의 입에 들어갈 것은 가능한 내 손으로 직접 경작한 것으로 해야만 그나마 해결방법이 생긴다는 것을 뼈아프게 깨달았다. 처음에 가졌던 너무나 엄청나고 번거로우며 노동력을 착취하는 수준의 텃밭경작에 대해 이제는 아무런 불만이 없다. 대안이 없기 때문이고 이대로 10여 년만 지속하면 우리 가족들 역시 병상에서 노년을 보내게 될 것은 자명하기 때문이다. 식탁에 올릴 재료를 직접 기르는 것, 그리고 가능한 저농약과 유기농법으로 기른 과일과 야채를 구입하는 문제, 항생제를 쓰지 않은 계란과 축산물, 수산물을 구입하는 것 등은 생존의 필수조건이라는 것을 뚜렷하게 알게 되었다.

 

생산부터 유통까지 어느 것 하나 마음을 놓고 믿고 맡길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은 매우 충격이다. 그래서 실제로 퇴비를 만들어 농사를 짓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는 점에는 전혀 무리가 없다는 것도 인정하게 되었다. 실제로 수산물에 성장촉진제나 염산과 같은 약품을 사용하고 있다라는 것을 진작부터 알았더라면 아무리 편리하고 입맛이 당긴다고 해도 절대 그런 식품은 먹지 않았을 것이다. 얼마나 많은 노력과 땀을 흘려야만 제대로 우리 입으로 들어갈 수 있는 진짜 먹거리를 만들어 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렇게 중중환자를 비롯한 어린이들, 노약자들이 절대 가까이 해서는 안 되는 식품에 대해 제대로 알려주는 책을 만난 것은 정말 운이 좋았다. 집에 놓고서 필요할 때마다 꺼내서 수시로 보게 되는 필수 지침서가 되었다.

 

 

이렇게 솔직하게 이 땅의 농,수,축산의 현실을 신문이나 인터넷에서 알려 주었더라면 훨씬 많은 사람들이 더 일찍 먹거리에 대해 신경을 썼을 것이고 건강한 삶을 살고 있을 텐데 도무지 용기가 없고 정의감이 없는 언론은 뒷 전에 서서 딴 청만 부리고 다음을 지키는 엄마들이란 용감한 여성들이 모여서 책으로 이런 사실을 있는 그대로 세상에 '폭로'를 하다니 정말 대단하고 고맙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저만 알고 쉬쉬하고 있을 때에 입을 열어 독약이 든 식품을 먹지 말라고 외칠 수 있는 그런 용기를 이제는 이 책을 통해 지역 곳곳에 알려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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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견 치로리 - 쓰레기장에 버려진 잡종개가 치료견이 되어 기적을 일으키다, 개정판
오키 토오루 지음, 김원균 옮김 / 책공장더불어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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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폭피해로 시력도 청각도 장애를 가진 원숭이를 맡아 기르면서 그 작은 생명이 살려고 안간힘을 쓰는 동안 삶의 눈물과 기쁨 등을 경험을 한 가족의 이야기를 읽은 후 이 책 치로리를 만나니 일본인들의 동물에 대한 의식과 동반자적 삶은 국내보다 몇 단계나 앞 서 있음을 느꼈다. 이 책의 저자 역시 일본인 오키 토오루이며 아무 연고도 없이 길에 버려 진 개를 데려다가 기르면서 오히려 자신이 개를 통해 많은 '은혜'와 '사랑'을 받았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다이고로야 고마워>를 읽으며 그 앙상하고 조그만 원숭이를 그렇게 온 힘을 다 해 기르고 치료방법이 없어 눈물과 절망을 하는 그 일본인 가족들의 생활을 사진과 글로 만났을 때만 해도 일본인들의 동물사랑이 '유난스럽다'라고 느낄 뿐이었다. 하지만 제대로 걷거나 뛰지도 못하는 다이고로가 점점 쇠약해져가면서 마침내 물도 넘기지 못하고 마지막 숨을 쉬었을 때 그 생명채가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가족'이었는지를 비에 몸이 젖듯 그렇게 촉촉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함께 한 그 시간이 다시 올 수 없는 아름답고 감사한 시간이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전문 작가가 아닌, 평범한 일본일들의 삶 속에 들어 있는 동물과 함께 한 삶에 대해 높은 관심이 생기게 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인을 비롯한 아시아권 사람들의 의식에 조금은 아타까움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책 곳곳에 '잡종견'이란 용어가 나오기 때문이다. 오히려 호주나 캐나다 등에 사는 사람들은 한 마리의 개를 이름을 붙여서 부를 뿐, 특별히 이 개는 슈나우저이고 저 개는 비글이다 등의 식으로 개를 종별로 나누어 부르지 않고 그렇게 차별하지도 않건만 유독 아시아권에서는 이렇게 개를 볼 때에도 가문을 의식하니 무척이나 안타까웠다. 책을 통해 일본도 한국과 비슷한 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아니, 어쩌면 이런 종의 구분을 애타게 부르짖는 몹쓸 문화가 일본으로부터 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새끼를 4마리나 낳은 어미로서 그것도 한 쪽 다리를 제대로 쓰지 못하고 절면서 길에 돌아다니는 치로리는 일본인들이 보기엔 어서 빨리 치워버려야 할 '쓰레기'로 보였던 것 같다. 비단 일본만이 아니라 한국에서도 건강하지 못한 개를 보는 흔한 인식이다. 그럼에도 주인에게 버림을 받고 너무나 딱한 처지에 놓인 치로리네 가족에게 마음이 안 쓰일 수가 없었다. 안락사를 당할 처지에 당면한 장면에서는 가슴이 먹먹하면서 더 읽고 싶지가 않았다. 누가 생명을 함부로 그리도 쉽게 죽일 수 있는지, 세상에 태어나서 제대로 살아 보지도 못한 채 약물에 의해 죽임을 당해야 하는 한다는 규정을 만든 인간의 잔인성에 분노가 치밀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치로리가 저자네 집에서 함께 살게 되면서 표정이 밝아지는 것을 보니 정말 흐믓함 이상이었다. 괜시리 뿌듯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생명을 아끼는 사람이 이 세상에는 아직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치로리를 단순히 애완견이나 반려견으로 평생 끼고 살 작정이 아니라 무엇인가 인간을 위해, 병자들을 치료할 수 있는 치료견으로 체계적으로 훈련을 시키는 저작의 성실함과 목표의식에 무척 고무되었다. 장애견을 데리고 훈련을 시키는 것이 너무 무리가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항상 찌푸린 환자들,반기지도 않는 신경질적인 노인들한테나 데리고 다닐 작정이라는 것에 쉽게 찬성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초고령화 사회인 일본에서 병약하고 삶의 고통에 찌든 노인환자들에게 꼬리를 흔들며 가까이 다가가는 모습을 보니 동물이지만 무척 대견하고 사랑스러웠다. 그 맑고 선한 눈빛을 본 환자들이 잠깐이나마 자신의 고통을 잊고 천진난만하게 웃는 모습... 돈이 아무리 많고 주변에 미사여구로 용기를 불어 넣어주는 면회객이 많아도 웃음이 나오지 않았던 환자가 치로리의 순진무구한 행동에 활짝 웃는 모습을 보니 기쁨과 함께 사람과 동물이 함께 어울려 사는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더 놀라운 것은 치로리를 만난 환자 가운데 단순히 일시적으로 기분이 좋고 행복감을 느끼는 것에서 더 나아가 몸의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꼼짝할 수 없는 끔찍한 전신마비의 헤이코의 손이 움직였을 때엔 눈물이 맺혔다. 정말 기적이란 것이 있고 그 기적이 의사나 가족이 아닌, 이 작은(비록 덩치는 좀 있긴 하지만)개로 인해서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싶어서였다. 도대체 일본의 앞 선 의술로도 고칠 수 없었던 이 마비를 치로리는 어떻게 풀었을까? 할머니의 마음의 응어리가 풀리면서 막혔던 신경이 제 기능을 되찾은 것일까? 의학적으로도 그 이유를 제대로 풀이할 수 없는 이 놀라운 기적을 보면서 큰 감동을 받았다.

 

허세가와씨가 걸을 수 있게 된 것도 놀라웠다. 무지막지하게 노력을 해 보아도 전혀 다리에 힘을 실을 수가 없었던 허세가와씨가 치로리를 향해 발걸음을 뗄 수 있다니...사람의 몸이란 것이 도대체 무엇일까? 약물과 수술로도 먹히지 않고 아무 처치도 하지 않았건만 자신을 향해 꼬리를 치며 다가와 살을 비벼대는 이 작은 동물 앞에서 그 차가운 마음이 녹아지다니... 정말 놀랍고 또 놀라웠다.

 

충견 하치이야기에서 주인이 죽어 돌아오지 못하는 것을 모르는 하치가 기차역으로 마중을 나가는 이야기가 마온다. 동네 아이들이 장난삼아 주인 없는 개라며 주먹만한 돌멩이로 치고 막대기로 때려도 잠시 피했다가는 다시 그 자리로 돌아와 해가 저물 때까지 주인을 기다리는 모습에 오히려 역 주변의 장사꾼들이 변하기 시작했다. 개를 짐승으로만 여기던 사람들이 자신이 파는 어묵이나 소시지, 풀빵 등을 먹이며 하치와 친구가 되어 갔다. 손님들이 더러운 개라며 무조건 발길질부터 해 댈라치면 주인들이 맞서서 사람과 맺은 한 번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하치의 편을 드는 기이한 일도 생겼다. 아파도 자신의 주인을 혹여 만날까봐 매일 허탕을 치면서도 기차역으로 마중을 나왔던 하치는 평범한 사람의 생각과 마음을 바꿨다.지금 일본에는  아이들에게 맞아서 생긴 상처로 다리를 절게 되고 제대로 치료도 받지 못한 채 죽은 하치를 기념해서 그의 동상이 있다. 

 

치로리는 끝이 더 희망적이고 따스해서 마음이 즐거웠다. 인간에게 생명의 고귀함과 신비로움, 그리고 세상이 조화롭게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려주었다.치로리를 만난 행운의 사람들, 그리고 불편한 몸으로 병실이나 요양원의 환자들을 의사가 회진하는 것처럼 성실하게 방문하는 순박하며 귀여운 치로리를 보며 단순히 개인의 특성에 따라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인간의 신체와 면역기능에 사랑이란 약이, 관심이란 약이 얼마나 대단히 큰 작용을 하고 있는 것인지 의아해하면서도 알게 되었다. 암에 걸린 사람들과 자폐증을 갖고 있는 아이들, 특히 정신질환이 많고 우울증이 많은 이 한국 사회에 정신과의사와 심리상담사가 할 수 없는 일들을 이 치로리와 같은 동물들이 할 수 있을 것 같다. 개 목에다 전자칩이나 박아 넣을 생각 대신에 이렇게 사람을 치료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도록 훈련프로그램이 생겼으면 좋겠다. 지나가는 개를 무조건 혐오하기보다는 그 생명체가 지니고 있는 놀라운 생명에너지를 함께 나누어 건강한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이런 일들을 실제 추진했고 그 과정과 결과들을 기록으로 남긴 저자의 높은 의식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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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데르센 메르헨 문지아이들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지음, 김서정 옮김, 니콜라우스 하이델바흐 그림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1월
평점 :
품절


묵직함을 넘어 꽤 무겁다는 느낌이 드는  이 책은 두께도 예사롭지 않았다. 제목부터가 예전의 평범한 안데르센동화와 달랐는데 메르헨의 사전적 뜻이 구전, 전래동화 등에 덧붙여 그림동화라는 의미가 있어 안데르센의 초기 작품을 원형에 가깝게 복원한 책이 아닐까 싶었는데 기대는 적중했다. 백조의 얼굴이 표지로 나온 것을 보면 누구나 안데르센의 동화집이라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안데르센의 실제 삶이 순탄지 못했다는 점, 이야기마다 퍼즐의 조각처럼 몇 개씩 맞추어 갈 수 있다는 점도 이 책을 읽는 재미 중 하나였다.

 

작가가 작품을 쓸 때 어떤 절박함이나 자신의 불우한 처지를 벗어나서 밝은 희망의 빛을 찾아 공상에 젖어 상상력을 불어 넣는 것이 당연하다. 특히 동화의 경우엔 장르상 현실성이 떨어져도, 조금은 말이 안 되어도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다. 그런 동화의 형식을 안데르센이야 말로 가장 잘 활용한 예라 할 수 있고 그런 점에서 안데르센이 인식한 당시 덴마크의 현실에 대한 부정적이면서도 날카로운 인식을 상상의 옷을 입혀 세상에 내 놓을 수 있었으며 안데르센이 인식한 문제점은 세대를 넘어, 그리고 국경을 초월하여 지금까지도 많은 어른과 어린이들이 함께 보는 책이 된 것이다.

 

안데르센이 구두수선공인 아버지와 세탁부였던 어머니의 아들로 태어났다는 널리 알려진 사실 이외에 그가 평생 결혼을 안 한채 한 부유한 가문의 후원을 받아 집필에 전념할 수 있었다는 것은 , 또 그 집의 둘째 아들에 대한 안데르센의 지나친 집착 때문에 결국 그 부자집의 후원이 끊겨 이 후 몹시 빈곤한 생활 가운데 외로운 시간들을 보내다 생을 마쳤다는 사실은 안타깝게도 숨겨져 있다. 그리고 더욱 심각한 것은 안데르센이 유언으로 자신이 사랑하던 그 둘째아들의 묘 옆에 묻어 달라는 것이었는데 이 사실을 알게 된 그 가문에서 아들의 묘를 이장해 가 버린 사실이다. 어린이들에게 안데르센아저씨는 그저 가난한 구두수선공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후에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동화작가로 성공한 입지전적인 영웅으로 만들고 싶었던 어른들의 지나친 배려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런 점에서 작가인 안데르센의 실제 자라 온 환경과 그의 주변 인물들에 대해 알고 동화를 읽는 것이 무엇보다 작품을 이해하는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 안데르센은 가난했고 어린 시절부터 책 읽기를 좋아해서 어머니와 할머니가 세탁부로 일하는 병원에 따라가서는 기다리는 동안 책을 읽곤 했다.그의 문학적 자질은 빈곤함도 꺾을 수는 없었으나 영향을 받지 않을 수는 없어 자라나는 성장기에 마음껏 친구들과 교류하지 못한 채 외톨이로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재능은 있지만 성장환경이 다른 안데르센을 진정 친구로 받아주는 사람은 많지 않았던 까닭에 단 한 명, 안데르센의 후원자 집안의 둘째 아들이 자신을 동등한 인격체로 존중해주며 관심을 가져주자 그만 그에게 집착하게 된 것이다. 그런 사정들이 다른 외모 때문에 늘 무리에서 따돌림과 괴롭힘을 받는 못 생긴 아기 오리(미운 오리새끼)에 잘 녹아 있다. 어른이 읽어도 가슴 깊숙한 곳에서 오는 울림이 있는 이 못 생긴 아기 오리(미운 오리새끼)는 바로 안데르센이 후원자 가문에서 생활하면서 그 집안의 자제들과 어울리지 못한 채 늘 주눅들고 외롭게 산 경험들과 아픔들, 그 가운데에서도 언젠가 이들보다 훨씬 큰 날개로 저 높은 세상을 날아오르겠다라는 꿈을 가진 젊은 안데르센의 모습이 역력히 녹아 있다.

 

또 하나의 이야기인 성냥팔이소녀는 안데르센의 어머니를 떠 올리게 한다. 마음이 착하고 가족을 지극히 사랑했던 그녀였지만 늘 아무리 일을 해도, 발버둥을 쳐 보아도 가난을 벗어날 수 없었던 안데르센의 어머니, 그런 어머니가 결국엔 이 험난하고 끝없는 고생만 가득한 땅을 떠나 성냥불을 켤 때  나온 환하고 따뜻한 불빛을 보며 하늘나라로 떠나는 이야기는 안데르센이 두고두고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연민을 갖고 있음을 잘 드러낸 이야기이다. 착하고 약한 어머니를 소녀로 각색한 안데르센의 창의력과 용기가 놀랍다.

 

그 이외에도 나이팅게일, 바보 한스, 임금님의 새옷, 엄지 아기 등 43편의 색깔이 다양한 이야기들이 기가 막힌 표현력과 상상력으로 재미있게 읽고 넘어갈 수 있으나 그 안에 담긴 안데르센의 아팠던 자신의 생활, 감정, 생각, 비판의식 등이 곳곳에 보물처럼 잘 숨겨져 있어서 그 이야기 속에 담긴 퍼즐조각들을 찾는 재미가 상당히 크다. 만약 안데르센이 자신이 몸소 겪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미웠던 것, 아팠던 것을 싣는 대신 무조건 미화시키거나 두루뭉수리하게 넘어가서 무조건 아름답고 교훈적인 이야기를 썼더라면 후세에 이렇게 이름을 남길 수 있었을까!

 

그는 비참한 현실을 온 몸으로 견디며 그 속에서 글을 썼다. 자신이 처한 부조리한 상황을 동물세계에 빗대어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며 그 아픔을 털어냈다. 그런 진실됨이 있었기에, 그런 용기와 지혜가 담긴 책이기에 지금도 안데르센이 전해 준 이야기들은 어린이가 어른이 되어서도 다시 찾게 되는 것이다. 삶의 지혜와 진리가 담긴 책이기에 홀로 사람들의 따돌림과 가난 속에서도 글을 통해 세상에게 소리 칠 수 있었던 안데르센을 다시 만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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