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색시는 누구일까 보리피리 이야기 9
김종도 글.그림 / 보리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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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도 선생님이 직접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책

돌이와 하나씨의 예의가 있으면서도 친밀함이 넘치는 밥상머리의 장면
을 보며 그 예전엔 이렇게 한 가족이 모여 밥을 통해 서로를 더 가까이 사랑하며
아껴주었구나를 느꼈다.

그림이라고는 좀처럼 믿어지지 않을만큼 아름답고 사실적인 소나무 앞에 펼쳐진 풍경에
넋을 잃었다. 드넓은 논에 자유로이 날고 있는 고추잠자리와 새들의 모습이 너무나 정겹게 묘사가 되어 있다.

진짜 중요하고 심오한 것들은 학교에서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란 것을 또 한 번 깨닫게.되었는데 미래의 색시감이 누구일까 드디어 떠오르는 찰라이다^^ 잊혀져 가는 고유어들과 그 언어를 통해 맛깔스럽게 전해지는 할머니와 손자의 철철 넘치는 사랑과 정에
이 메마른 삶 가운데 희망을 찾았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를 배웠다.
그림을 통해서도 정감이.넘치는 우리의 문화를 보았지만 서서히 잊혀져가는 그 아름다운
고유어들만큼은 절대로 잃어버리지 않겠다라는 각오가 생겼다.
진심으로 김종도선생님같은 안목을 가진 분들이 더 많은 책을 통해 후세에 가르침을 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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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난이대 일신 베스트북스 8
하근찬 지음 / 일신서적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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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부터 정거장대합실에서 이제나저제나 목이 빠지게 한 순간도 아들이 나올 출입구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기다리는 만도의 지나친 설렘이 오히려 불길한 예감이 들게 했다.지난 번 읍에서 돌아오는 길에 외나무다리를 건너다가 그만 물에 빠졌던 일을 상기하는 것 또한 그렇다.

젖은 옷을 말리는 동안 팔 하나가 몽땅 잘려나간 자신의 흉한 몸뚱이를 보이지 않으려 사람들이 지나갈 때면 일부러 물에 빠져 얼굴만 내 놓았던 그 시린 기억.그 서러운 외나무다리를 건너 아들을 만나러 상기된 얼굴로 기다리는 외팔이 아버지 만도가 기차역 대합실에서 처음으로 아들 진수를 대면할 때의 모습은 잊을 수가 없다.


살아 돌아온 아들을 마냥 감격에 겨워 맞이할 수 없는 만도의 참담하고 처참한 심경은 이런 영화 같은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을까를 생각하기에 앞서 자식을 향한 아픔으로 혼이 나가기 직전인 아비의 절절한 마음을 느낄 수 있게 했다.


짧게 터져 나오는 한 마디 " 에라이 이놈아!" 는
학력이 거의 없다시피 한 만도의 한탄이자 비명이었다. 고등어를 쥔 손이 불끈 주먹이 쥐어졌다는 것은 어떤 말보다, 진수의 눈에서 흐르는 꾀죄죄한 눈물보다 더 진한 아버지의 참담함이 담겨있었다.어쩌면 다정다감하게, 혹은 겉으로나마 태연스럽게 전쟁터에서 살아 돌아온 아들을 담담히 맞아주지 못하고 이다지도 직설적인 실망감과 안타까움을 단 번에 내 뱉을 수 있는 것일까!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솔직한 만도의 모습에서 너무나 평범하고 큰 세력이 없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아버지, 만도를 통해서 아버지를 느꼈다.빠르게 전개되는 이야기 속에서 다리 한 쪽을 잃은 진수가 소변을 볼 때도 나무둥치를 안고서야 겨우 하는 모양을 보고 속으로 신음을 토해내는 만도의 실망과 속상함은 장면 내내 내 마음을 심란하게 했다.건강하고 젊은 아들이 한 순간에 지팡이를 끌고 다니면서 다리가 있어야 할 바지 한 가랑이가 잘려버린 다리처럼 무력하게 바람에 나풀거리는 모습을 지켜보는 만도의 심경이 너무나 절절하게, 과장 없이 사실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집으로 가는 길에 들른 주막집에서 주인 여자에게 국수 한 그릇을 말아달라면서 곱빼기로 달라는 둥, 참기름도 쳐 달라는 둥, 평소와 다르게 이것저것 주문이 많아진 만도의 모습에서 가슴 깊은 곳에서 나오는 찡한 울림이 있었다.



지금 뉴스거리로 오르내리는 부자세습이나 부정입학, 혹은 고위직 아버지를 둔 자녀의 특혜 등으로 많은 이들에게 소외감과 함께 박탈감을 가져다주는 그런 '부정'(父情)과는 확실히 차이가 있었다.자식사랑이라는 본능을 앞세워 힘을 가진 자가 옳지 못한 방법으로 제 자식이란 이유만으로 무조건적으로 쏟아부어주는 그런 것과는 다른, 오히려 정상인보다 못한 외팔이 아버지가 이제 같은 신세가 되어버린 하나 밖에 없는 아들에게 온 마음을 다해 술독에 넘치는 술을 따라내듯 가득한 정을 퍼주는 그런 사랑이었다.



힘 있는 아버지들이 아들에게 금력이나 권력으로 이룬 왕국을 물려주는 것이라면 만도와 같은 아버지들은 아들에게 한 그릇의 장터국수, 고등어 한 손, 그리고 마지막으로 불편한 제 몸까지 내어준다는 사실에서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결코 헤아릴 수 없는 아버지란 사람들의 고된 숙명을 느낄 수 있었다.그 두려운 외나무다리 앞에 이른 만도가 홍해를 가른 모세의 지팡이대신 아들에게 노구의 등을 내미는 장면은 아무 것도 줄 것이 없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주는 세상 최고의 사랑 그 자체였다. 망설이는 아들에게 등허리를 댄 채 외팔로 아들의 하나 뿐인 다리를 꼭 안는 그 장면은 몇 번을 보아도 참 많이도 아프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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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로시티 - 디지털 혁명에서 살아남는 7가지 법칙
스테판 올랜더.아자드 아메드 지음, 백승빈 옮김 / 시드페이퍼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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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원론시간에 들은 이론들, 그리고 그룹토의 과제로 선정한 GE의 경영이론들을 떠올리며 경영의 놀라운 발전을 넘어선 진화에 대해 점점 겁이 날 지경이다. 그것은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쉽게 회사가 처한 상황을 주면서 떠올려보게 하는 대안법을 찾으면서 매우 스피드하고 시간 안에 그 해결점을 그것도 정확한 지점을 찾아 내야 의미가 있음을 공격적으로 알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나이키의 디지털 스포츠팀 부사장 스테판 올랜더라는 이름은 책이 나오기 전 미국의 나이키사에서 근무하는 지인의 입을 통해 들었던 것이라 무척 친근감이 느껴졌다. 한국시장에서는 나이키란 단순히 상표를 앞세워 아직 눈도 뜨지 못한 어린애들한테 비싼 값에 파는 물건이라고만 생각해 왔는데 그 지인을 통해 나이키사의 스포츠용품팀이 실제로는 컴퓨터가 아닌, 손으로 디자인하고 로고를 새긴 제품 샘플들이 한 달에만 수 십만 가지가 나왔다가 사라진다는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그 때 나온 이름이 바로 스테판 올랜더였는데 그는 매우 창의적이면서도 격식을 갖추거나 형식에 까다로움을 피우는 전형적인 한국의 임원들이나 관료와는 완전히 다른, 매우 천진난만하며 자유롭고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며 새로운 것이 비록 미완성이라 할지라도 그 자체로서의 기능이나 디자인의 장점을 볼 줄 아는 특이한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그런 그가 당연히 디저털, 컴퓨터와 더 스피드하고 편리한 신기술 프로그램에 대해 자신있어할 줄 알았고 그런 정보에 대해 기대가 컸다. 하지만 이 책에는 그가 지난 15년 동안을 나이키를 이끌며 변화에 대해 두려움과 압박을 느끼면서도 매 시간, 매 순간을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익숙해지는데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 왔는가에 대해 써 있었다. 참, 시각이 다른 것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한국적인 상황에서는 다만 작은 기술 하나라도 더, 시간을 절약하면서 비용절감을 할 수 있는 잔기술 하나라도 더 익히고 싶은 것이 당연한데 그는 미국이란 엄청난 기술집약국에 살면서도 오히려 시골아저씨처럼 더 기본적인것 인간과 인간의 소통에 대해 그토록 가치를 두고 열심히 살아왔다는 것이 신기했다. 조직을 더 기능적으로 잘 개편하여 이끌려고 노력한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소속되어 있는 직원들의 체질과 특성을 파악해서 그들이 이미 갖고 있는 기능들을 변해가는 시류속에 어떻게 하면 최대한 발휘할 수 있게 만들까에 그의 관심의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것이 정말 놀라웠다. 내가 살고 있는 한국과는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다. 쉰 만 넘으면 연봉에 비해 기능이 떨어지는 직원들에게 퇴직금정산과 함께 은근한 압박을 가해 권고퇴직을 권하는 사회에 살다보니 한 살이라도 더 어린 새내기 직원을 뽑아 조직을 더 젊고 유동적으로 만들려고 노력하는 분위기가 어느새 당연했던 것이다.  

 

 

아무나 대표가 되거나 조직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소속되어 있는 사람들을 제대로 파악하고 그들의 기량을 최대한으로 끌어 낼 수 있는 사람만이 가능하다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새로운 직원, 더 젊고 스펙이 화려한 직원, 다양한 경험과 경륜을 갖춘 직원을 뽑는 것만이 회사가 나아가야할 길이 아님도 배웠다.그럼에도 빠르게 변하는 기업들의 속도전 속에 오로지 그런 위기 상황을 가장 정확하고 핵심있게 그리고 빨리 파악하고 대처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춘 사람만이 가능하다는 미국식 사고방식에 적잖이 당황스러운 것은 사실이다.한국은 창업주의 아들이나 손자,손녀로 태어나면 자연스레 그 회사의 대주주가 되며 경영권도 은근슬쩍 물려 받게 되는 것인데 아무리 입사성적이 뛰어난들 그 고귀한 혈통이 아닌 이상 임원이 되어 퇴직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인데 무엇하러 힘들여 위기대처 능력을 배워야 하겠나 싶어서이다.그래서 한국이라면 재벌가의 아들,딸이 배워야 하는 것인데 미국은 정말 기회의 나라이구나 싶었다. 

 

스테판의 주장대로라면 고용불안에 떠는 한국은 정말 큰 위기이다! 젊을 때 채용해서 20여 년이 지나면 쓰고 버리는 지금의 상태로라면 앞으로 더 빨라지는 시대의 변화를 따라잡기에는 너무 큰 무리가 뒤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언제 잘릴지도 모르는 직장에서 틈이 나는대로 새로운 직장을 알아보거나 창업을 준비하거나 아니면 더 높은 연봉을 줄 직장으로의 이직을 알아보아야 하는 한국의 직장인이 어떻게 매 순간 새롭게 변화하기에 최선을 다 바칠 수 있겠는가 말이다! 자신이 속한 기업이 살아남아야 나도 살아남는다라는 동반자의식을 기대하기엔 더더욱 무리가 따르는 것도 두말하면 잔소리이다. 언제나 기업이 잘 되어도 나와는 별개로 내 미래는 내가 책임져야만 한다는 이런 기업문화 속에서는 절대 가능한 일이 아님을 뼈 아프게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고객의 수준에서의 늘 제품에 대한 기능향상의 필요성을 겸손하게 듣고 아이디어가 접수되면 그 자리에서 만들어 본다는 점은 정말 대단한 혁신이다. 전문가도 아닌, 일개 소비자의 의견에 그렇게 귀가 얇아서야 하며 자신의 원칙과 기술을 고집하는 기업인이 아니라는 점이 대단히 신기하고 멋지게 보였다. 이 쯤 되면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변화를 좋아하고 추구하는 쪽으로 기업의 방향이 맞추어져 있다고 볼 수 있겠다. 빵을 연구하는 사람들을 만나보았을 때, 그들 역시 맛이나 향 뿐만 아니라 모양에 대해 무척 열심이 다양한 샘플들을 만들고 있었다. 똑같은 맛이 나는 빵들을 몇 십 개씩이나 다른 모양으로 만들어 소비자의 평가를 받는 그 자세에 대해 감탄한 적이 있었는데 규모는 작아도 아마 그 기업은 스페판과 같은 기업철학을  갖춘 사람이 조직을 이끌고 있는 모양이다.

 

스티브잡스의 사망이 벌써 2년이 되었다. 미국의 젊은 청년이 세계에서 가장 큰 IT회사를 창업했고 이끌었으며 애플이란 명성을 만든 장본인이라 그의 사후에 나온 자서전을 읽고 싶어 기다리면서 까지 구입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카페베네를 이끈 김선권대표의 꿈에 진실하라 간절하라를

읽으면서 작은 오락실 프랜차이즈로 성공한 청년 장사꾼이 어떻게 뉴욕까지 진출할 수 있었던 커피체인점의 대표가 되었는지도 보았다. 그리고  이 책 벨로시티를 읽으며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고 뛰어든다는 것에 대한 막막한 불안감을 떨쳐버리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자본이나 주변에 앞 선 정보를 갖춘 인맥들이 있어야 안전하다는 구시대적 사고를 떨쳐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내가 시작하는 사업에 대해서는 준비가 필요하고 또한 미리 50여 년 이상을 앞 서 있는 미국의 여러 회사들의 탄생과 성장, 소멸에 대해 배우는 시간이 꼭 필요했다. 책을 읽는다는 것, 그것이 쌓여서 내가 살아보지 못한 나라와 문화권, 그리고 기업환경에 대해 터특하고 준비하는데 많은 것을 얻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확신한다. 그래서 뒤로 미루지 않고 금 이 자리에서 읽는 적극적인 자세가 큰 도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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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식당 10 심야식당 1
아베 야로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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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히 가공식품을 좋아하며 상당한 수준의 미각을 갖고 있는 이라 하더라도 이 정도 되는 책을 쓰기란 정말 어려울 것 같다란 생각이 들었다. 웅장하고 커다란 대형의 전문레스토랑이 아니라 몇 걸음 걸어가면 간판이 보이는 작은 분식집의 메뉴들이 나와 있기게 뭔가 주메뉴에서 살짝 벗어나 사이드디쉬라든지 감칠맛을 더해주는 소스나 드레싱에 까지도 관심을 갖고 실어 준 작가의 정신에 신선함을 느꼈다. 동시에 일본의 맛도 느낄 수 있었다.

 

지하철 청정에 매달린 광고판을 보고서 "심야식당이란 아! 뮤지컬이었군!" 할 것이다. 일본의 드라마로도 벌써 방영된 이 책은 먹거리와 메뉴가 주인공이라기 보다는 그것을 매개로 야심한 밤에

벌어지는 낮과 다른 있는 모습 그대로의 텁텁하면서도 굴곡진 다양한 개인들의 삶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그렇기에 나이와 성별에 구애됨 없이 많은 사람들의 뜨거운 관심과 공감을 불러 일으키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아예 무대가 선술집이나 호프집이 아니라 어째서 식당일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사람들의 속내를 털어 놓기에는 그래도 술집이 제격일 테니까!  거기에 바로 이 시대를 읽는 작가의 깊은 통찰력이 숨어 있었다.

 

삶이 그 만큼 힘들다는 것!

그것을 작가는 꿰뚫어 보고 있는 것이다. 개개인이 져야 할 하루라는 짐의 무게가 너무나 무겁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매일의 반복적으로 해야할 의미도 없고 가치도 크지 않은 소소한 일상을 지탱하기에 인간이 너무나 약하며 삶을 향상시키거나 할 여유를 찾기 힘들다는 것까지도 간파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이 돌리는 쳇바퀴를 깨뜨리고 나올 힘도 없어서 그 안 갇힌 채 서서히 희망도 힘도  잃어가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자정이 넘어서 허기진 배를 안고서 주머니 걱정을 하지 않고 바로 밀고 들어가서 아무데나 마음에 드는 테이블에 턱 앉을 수 있는 곳, 그리고 어디서나 쉽게 주문만 하면 먹을 수 있는 카츠돈이나 달걀샌드위치, 그것도 아니면 봉지만 뜯어 프라이팬에 볶을 수 있는 비엔나소시지를 앞에 놓고서 자신의 억울함과 분통 터지며 답이 없는 사연을 거리낌 없이 풀어 놓을 수 있는 곳이 바로 이 곳<심야식당>이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내 얘기를 마음 놓고 할 수 있고 들어줄 사람이 있는 곳이니 얼마나 따뜻하겠는가!

 

나는 이 심야식당이 바로 오늘의 교회와 성당이 해야할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전혀 다르니 매우 안타까울 뿐이다. 정작 억울하고 고통스럽고 때론 울분을 삭이지 못해 고민이 되는 마음을 안고 교회나 성당을 찾아갔다가 곧 되돌아 나오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교양과 학식이 있는 척을 하는 곳에 '가난한 심령'을 안고 들어가다니 정말 제 정신이 아닌 사람 취급을 당하기에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가난한 심령'을 안고서 향하는 곳이 바로 간단히 요기나 할 수 있는 정도의 식사를 팔지만 나와 같이 삶의 애환을 갖고 고민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심야식당인 것이다.

 

반찬이나 다름 없는 메뉴를 매개로 삼아 이렇게 특별하게 재미와 감동을 주는 스토리를 만들다니 놀라웠고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왜냐하면 전에는 한 번도 달걀이나 감자, 어묵처럼 평범한 재료들을 이렇게 생각하고 만들어 볼 수 있겠다라는 것을 전혀 몰랐다. 그런데 만화 속 세밀화 등을 보니 대단한 것은 아닌데 자꾸만 좋아 보이고 먹음직스럽게 보이는 것이 예사롭지 않아서이다. 등장하는 인물들 역시 굵직한 인물이 없이 너나 할 것 없이 너무나 평범한 사람들인데 이 사람들이 사는 삶의 현장은 참으로 흥미진진하고 그 곳에서 고군분투하는 모습에 박수를 쳐 주고 싶었다.

 

음식을 먹는 것 뿐만 아니라 만드는 것에 관심이 많은 작가란 것을 알게 되었다. 자신의 손을 움직여서 직접 가공된 재료에는 없는 자연스러움과 맛을 얹여주는 센스가 타고난 사람이란 것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상이 너무 단출하다 싶을 정도로 한 접시에 음료 한 병 정도가 고작인데에도 그 곳을 찾는 손님들의 발걸음은 끊이질 않는 것도 재미가 있었다. 인테리어가 세련되고 화려한 것도 아니고 공간도 협소하고 불편하게 보이는데 그럼에도 삶의 먼지가 구두에 뽀얗게 내려 앉은 사람들의 걸음이 이 곳을 들어올 때와 나갈 때가 다르다는 것도 눈에 띄었다. 

 

 

그것은 주인이 손님을 맞는 태도가 사람의 지친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 주어서가 아닐까! 단순히 먹고 흥겹게 즐기다가 정신없이 값을 치루고 떠나는 흔한 레스토랑과는 달리 엄마나 누나의 가슴을 느낄 수 있는, 단출하지만 정성과 소박함이 물씬 풍겨나기에 제 집처럼 그렇게 찾게 되는 것 같다. 이런 식당이, 교회가, 성당이, 사찰이  내가 사는 곳 어딘가에는 있을 것이란 희망이 있다. 그리고 그 곳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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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아들 창비세계문학 2
리처드 라이트 지음, 김영희 옮김 / 창비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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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버스에서의 흑백차별에 저항했다가 혹독한 곤혹을 치르고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흑인인권운동가의 선봉에 서게 되는 로자파크라는 실존여성의 일을 다룬 책<싫어요!>가 이 책 <미국의 아들>보다는 그나마 '인권'이라는 의식이 어느 정도 생긴 터전에서 나온 소출이다. 흑인신분에 버스에 빈 좌석이 없음에도 감히 백인을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기사에게 심한 폭언과 협박을 받은 후 감옥에 갇히고 해고를 당하고 마침내는 흑인들의 대중교통 파업을 선동했다는 죄명을 얻어 아무나 맘 내키는 대로 죽여도 좋을 '흑인여성'이 되는 참으로 두렵고 험한 인생을 살게 되는 로자파크의 이야기는 그나마 덜 잔인한 것이었다니... 

 

책을 읽으면서 힘이 들었다. 인간의 약함과 악함을, 그리고 군중심리를 이용하여 숨어서 저지르는 사법살인에의 동참에 대해 심각하고 아프게 느낄 수 있게 만드는 책이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흑인의 우발적인 백인여성에 대한 살해를 문제 삼고 있지 않고 그 사건의 진실을 조사해 가면서 실제 진실을 알고 싶어하지도 않고 혹 알고 있더라도 자신들이 이미 내린 결론을 짜 맞추기 위한 조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읽는 내내 부담이 되었다. 그리고 그 실정이 한국의 현대사에서 종종 보아 온 모습, 어찌 보면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모습이기에 그러했다.

 

알고 있으면서도 진실을 왜곡하는 백인사회가 자신을 방어하거나 변호할 힘조차 미약한 작은 흑인 소년을 상대로 보여주는 폭력성이 너무나 노골적이며 유치하기도 하고 잔인하기 때문에 작가의 필력이 대단하다고 감안하면서도 미국사회의 추악한 뒷 모습에 배신감마저 들었다. 한국에 사는 내가 미국이란 나라를 보는 시각은 큰 나라이면서도 자신의 힘을 과시하거나 약자를 함부로 짓밟는 것과는거리가 먼, 논리적이며 자유와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존중하는 민주주의의 본국이라고 생각해 왔었다. 그런데 이런 나의 생각이 정말 미국을 전혀 모르는 초딩수준의 잘못된 이해였다니 부끄럽고 창피하다.

 

미국을 비판하거나 내가 알고 있는 미국과 다른  미국을 말하는 재미교포 친구들이나 미국인들을 만난 적이 있는데 그들은 나의 이야기를 듣고서는 씩~~웃어 버리거나 믿고 싶은대로 다 믿으면 안 된다는 뼈가 있는 충고를 했었는데 이런 것들을 이제야 이해할 수 있게 되었지만 씁쓸함은 상상을 초월한다. 내가 살고 있는 한국과 다를 바가 전혀 없는 미국이란 나라에 대해서 실망이 너무 크다. 

 

딸을 잃은 충격과 슬픔은 이 사회에서도 곳곳에 찾아 볼 수 있다.그래서 사건현장을 조사하거나 재판정에서의 판결에 대한 불만으로 고성과 욕설이 흉악스럽게 울려 퍼진 것이 불과 몇 달 전이었다 . 당연히 피해자 가족들과 그 이웃들이 입은 상처는 가해자를 응징하고 처단하는 것을 통해 조금은 풀어질 수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미국의 상황은 약자로 대변되는 흑인소년을 강자들의 잔인무도한 철퇴로 사정없이 난도질 하는 모습이었다.

 

 

이런 사회의 악한 단면을 잘 드러낸 영화와 드라마, 앵무새 죽이기와 추적자를 통해서 절대로 나를 거스르면 그 누구도 살아남지 못할 줄 알라로 대변되는 강자들의 폭력성은 살인사건에서 가장 중요시 되는 고의성이냐 아니냐를 무시한 채 결론적으로 죽여 없애서 더 큰 공포와 두려움을 온 사회에 퍼뜨리는 데에 있다.

 

링컨대통령, 마틴루터 킹이 미국의 흑인들을 해방시킨 것인줄 알았는데...

수 많은 비거와 같은 억울함을 겪은 흑인들이 주인공이라니...

너무나 모르는 것이 많다. 

 

그런 사건을 통해 미국 사회가 안고서 곪을 대로 곪아 있음을 대표해서 발설하는 작가의 용기와 그 상처를 치요하고자하는 애정이 큰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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