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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이덕일 / 김영사 / 200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를 읽고
내가 알고 있는 송시열은 효종 때 북벌을 주창한 사람 중의 한 사람이었다는 것 뿐, 그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지 않다. 그러다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이덕일 지음, 김영사 펴냄)라는 이 책이 출간되면서 화제가 되었고, KBS1의 역사스페셜에서 ‘송시열’을 보고 이 책을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송시열은 우리 역사에서 하나의 신화이자 금기사항이라고 한다. 그를 평가하는 학자들의 입장은 극과 극을 달렸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자못 궁금했다.
그를 알기 위해선 그의 학문적 배경이 매우 중요하다. 송시열은 그의 아버지로부터 학문을 배우기 시작하고, 율곡의 학통을 이었다는 김장생과 김집 송시열로 이어지는 조선 성리학의 주류인 예학을 이어받았다. 예학은 임진란 이후 흔들리는 신분체제를 공고히 하려고 하는 학문으로, 한마디로 사대부는 영원한 지배계급이고 농민은 영원한 피지배계급이라는 진보적인 학문이 아닌 수구적인 학문이었다.
조선은 임금보다 사대가부가 강한 나라였다. 그래서 저자가 ‘그들의 나라’라고 했는지 모른다. 비극의 뿌리인 인종반정 후 조선은 당쟁에 휘말리게 되고, 나라의 안위와, 대위보다 당략과 당권이 우선시 되는 나라였다. 광해군을 폐위시킨 서인이 정권을 잡은 인조는 불행의 시작이었다. 인조, 효종, 현종, 숙종에 걸쳐 일어났던 일련의 당쟁은 많은 희생이 따랐고 결국 서인정권 노론의 승리로 오늘날에 이르러 서인의 영수라고 할 수 있는 송시열은 송자가 되었으며 신화가 되었다.
16세기, 17세기 조선의 모습은 조선 초기 모습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사농공상에 많은 변화가 있었으며, 신분제를 고집하기에는 사회가 변화를 요구하고 있었다. 하지만 성리학은 예학을 강조하면서 변화를 수용하려 하지 않았고 오히려 농민과 여성을 억압했으며 사대부의 이익만을 강조했다.
서인과 남인의 정권의 교체에서 보여 준 모습은 화합이 아닌 보복 뿐 이었다. 그리고 일제 때 대부분의 노론이 일제에 협력하여 호의호식하고 소론이며 남인들은 독립운동을 했으며 미군정권을 지난 현대의 정권에 이르기까지 아직도 사회의 주류는 노론이 차지하고 있으며, 여전히 그들이 나라인 셈이다. 인조 때 시작된 비극이 지금까지 이어져 왔고 언제까지 갈지 의문스럽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역사적 인식을 좀더 넓은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인현왕후과 장희빈의 경우, 대부분의 사람은 장희빈을 아주 나쁘게 생각하고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을 보면서 서인과 남인의 사이에 인현왕후와 장희빈이 있으며 정권의 이익에 따라 한 인물의 평가는 달라진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은 이긴 자의 역사가 되고 이야기가 된다는 것을. 분명 송시열은 강직하고 대학자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의 위치로 조선이라는 나라를 진일보한 사회로 이끌어 갈 수 있었을 텐데 단지 당의 이익만을 위했다는 것에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