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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이세요? ㅣ 창비청소년문학 133
표명희 지음 / 창비 / 2025년 3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당근이세요'라는 제목을 접했을 때, 많은 독자들이 그러하듯 단순히 당근마켓을 통한 중고거래 에피소드를 엮은 유쾌한 소설집을 예상했다. 하지만 책장을 넘기며 마주한 이야기는 표면적인 가벼움을 넘어 우리 사회의 다양한 단면과 깊이 있는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특히 작가의 전작들이 지닌 무게감을 떠올리자, 이 소설집이 단순한 에피소드 모음이 아니라는 확신은 더욱 커졌다. 『어느 날 난민』, 『버샤』 등 난민 문제를 천착해 온 작가의 시선은 『당근이세요』 속 평범한 일상에 스며들어 비범한 울림을 만들어낸다.
소설집의 문을 여는 '딸꾹질'은 2002년 월드컵이라는 모두에게 익숙한 배경을 통해 우리의 현대사를 능숙하게 건드린다. 주인공의 부모님 대화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6월 민주항쟁과 스포츠가 정치적으로 이용되던 시절의 이야기는, 당시를 직접 경험하지 못한 청소년들에게도 흥미로운 질문을 던진다. 단순히 역사적 사건을 나열하는 대신, 개인의 삶과 밀접하게 연결 지어 제시함으로써 젊은 독자들이 우리 사회의 질곡을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하도록 돕는 탁월한 장치이다. 이는 어쩌면 작가가 그리는 ‘진짜’ 중고거래, 즉 시대를 통과하며 주고받는 삶의 가치와 경험의 공유를 은유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집의 표제작이자 중심축이라 할 수 있는 '당근이세요'는 무심코 아이들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그들이 마주하는 평범한 일상 속에 숨겨진 가족 공동체의 의미와 이주민 가족의 삶과 같은 현대 사회의 중요한 담론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중고거래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행위를 통해, 언뜻 보기에 아무런 문제 없는 듯 보이는 사회 속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었던 혹은 애써 외면했던 다양한 형태의 가족과 이웃의 존재를 환기시킨다. 이 작품은 이주민의 삶이 더 이상 특별하거나 이질적인 것이 아닌, 우리 일상 속에 이미 깊숙이 자리 잡은 자연스러운 부분임을 보여주면서도, 동시에 그들의 삶이 더욱 자연스럽고 포용적으로 받아들여지기를 바라는 작가의 따뜻한 바람이 짙게 배어 있는듯 하다. 이는 단순한 물건의 교환을 넘어, 사람과 사람이 진정으로 교류하고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으로서의 ‘당근 거래’를 이야기하는 듯하다.
'오월의 생일케이크'는 앞선 작품들보다 훨씬 직접적이고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특히 5.18 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청소년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역사적 사실을 다루고 있어, 젊은 독자들이 사회적 문제와 역사의식을 더욱 깊이 있게 고민하도록 이끈다. 작품 속에서 드러나는 분명한 메시지는 아이들에게 정의와 희생, 그리고 연대의 가치를 각인시키는 강력한 힘을 가진다.
마지막 작품인 '개를 보내다'는 최근 우리 사회의 중요한 문제로 부상한 유기견 문제를 다루며 소설집의 여운을 이어간다. 생명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와 책임감에 대한 깊은 성찰을 요구하는 이 작품은, 단순히 버려진 동물의 이야기가 아닌, 인간 소외와 생명 경시 풍조에 대한 은유로도 읽힐 수 있는듯하다.
'당근이세요'는 제목이 주는 선입견을 깨고, 우리 사회의 다양한 이슈들을 일상적이고 따뜻한 시선으로 포착하여 독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선사한다. 작가는 현대적이고 보편적인 소재를 통해, 역사, 사회, 그리고 생명이라는 다층적인 주제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며, 독자들이 스스로 질문하고 고민하도록 이끄는 힘을 보여준다. 이 책은 단순히 읽고 소비되는 이야기를 넘어, 우리 삶의 다양한 면모를 다시금 돌아보고, 나아가 더 나은 공동체를 상상하게 하는 사려 깊은 소설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