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한정판 더블 커버 에디션)
알랭 드 보통 지음, 김한영 옮김 / 은행나무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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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에세이에 안에 철학적인 면과 소설의 구성이 결합된 알랭 드 보통의 글들은 몰입이 쉽게 되는 책은 아니다.

그럼에도 그의 첫 작품집을 대한 이후에 꾸준히 그의 출간 책들을 접할 때면 왠지 꼭 읽어야만 속이 후련해지는 그 분위기는 무엇인지....

 

그가 무려 21년 만에 사랑하는 사람들의 관계를 다룬 책을 통해서 이번에도 여실히 그의 존재감을 느끼게 된다.

 

결혼---

며칠 전 방송에서 어떤 패널이 우스개 소리로 인간 수명 100세 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이 한 배우자와 50여 년 이상을 같이 살아간다는 것은 말이 안 되니, 법적으로라도 고쳐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느냐?

비록 웃고자 하는 멘트 성의 말일지라도 결혼이라는 제도는 인류가 태동하고 정착이란 의미로 안주하고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제도화된 안정적인 장치의 하나로서 생각이 된다고들 하는데, 과연 그렇다면 동화에서 그려지는 두 사람의 사랑의 결실이란 결과물인 '결혼'을 한  이후에 그들은 과연 어떻게 살았을까요?라는 물음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저자가 정의하는 '결혼'이란 의미는 

 

 결혼 : 자신이 누구인지 또는 상대방이 누구인지를 아직 모르는 두 사람이 상상할 수 없고 조사하기를 애써 생략해버린 미래의 자신을 결박하고서 기대에 부풀어 벌이는 관대하고 무한히 친절한 도박

 

결혼 : 자신이 사랑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에게 가하는 기이하고 궁극적으로 불친절한 행위

 

 

도박이란 말에 역시 알랭 드 보통답다는 느낌이 와 닿는다.

 

라비와 커스틴이라는 커플의 결혼 생활을 통해서 보이는 결혼의 과정과 결혼한 사람들의 일상적인 생활들을 통해 진정한 사랑과 결혼의 의미를 되새겨 보게 되는 이 책은 소위 말하는 두 눈에 콩까지가 껴서 죽고 못 살 정도로 서로가 서로를 안다고, 필요하다고 느낄 때 결혼하는 과정과 두 사람 간의 친밀한 섹스를 넘어 아이를 낳고 각자가 짊어진 엄마와 아빠라는 명칭에 부합되는 생활에 치이다 서서히 서로에 대해 바라보는 관심의 무 심경한 눈길, 섹스조차도 이젠 부담스럽다가도 거부당했을 때의 자존심 상하기, 그러다 외도와 둘 사이 간의 폭발적인 대화를 통해 서로가 서로에게 말로써 상처를 주는 일들의 정도가 깊어지는 모습을 통해 결혼의 생활을 되새겨보는 일련의 과정들이 어떤 특정 계층의 생활상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지난한 과정들 들여다보는 듯한 상세한 묘사가 인상적이다.

 

 

 

하긴 우리는 너무나도 많은 영상과 동화 같은 이야기를 통해 현실과는 동떨어진 행복한 결과만을 보았고 읽어왔기에 이렇게 현실적으로 부딪치는 작고 소심한 일(이케아에서 컵을 사더라도 다른 관점에서 보는 경향 탓에 다투는 일)에서부터 직장에 관한 한 걱정, 아이들의 교육문제, 그리고 뭣보다 가정 안에서 점점 부부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두 성인들의 본질적인 서로에 대한 배려와 관심, 불만, 이것들이 왜 배우자에게 향하는지에 대한 사례들을 통해 결혼을 하면 더욱 행복한 일들만 가득할 것이란 기대는 현실에서는 영원할 수는 없다는 낭만주의적 연애에 대한 일침을 놓는 글들이 솔직하게 그려진다.

 

 

 

노년에 이른 부부들의 인터뷰를 보면 상대방을 고치려 하지 말고 그대로 인정하면서 살아가란 말을 종종 듣는다.

내 기준에 맞춘 상대방의 어긋나는 행위들을 사랑이란 감정이란 마음으로 우러나와 가르치려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서로의 모자란 점을 보완해나가는 삶, 그것이 결혼생활을 잘할 수 있는 방법 중의 하나라고 하는 사례들이 이 책에서도 보이는 바, 어떤 결혼의 생활방식이 옳고 그르다고는 판단할 수는 없다.

 

다만, 서로의 이상과 가치관의 성향을 점점 알아가는 과정, 그 과정 속에 착오와 오해, 불신, 싸움을 겪으면서 행복한 결혼으로 이르는 생활은 라비의 경우처럼 결혼 16년 차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결혼을 할 준비가 되었다고 하는 이유들이 공감대를 형성하게 만든다.

 

 

 

결혼만 했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까지 행복한 생활로 접어드는 절차가 아닌 결혼의 시작은 한 사람이 상대방을 어떻게 바라보고 지켜주고, 이해를 하며 서로의 관심을 가지고 이어나갈 수 있을까에 대한 또 하나의 새로운 인생 시작이란 점, 더 나아가 사랑에 대한 열정만이 아닌 결혼에도 기술이 필요하단  저자가 쓴 이 책은  모두가 생각할 부분들을 던져주는 책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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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투스
존 윌리엄스 지음, 조영학 옮김 / 구픽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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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 우연히도 읽게 된 '스토너'의 작가 존 윌리엄스의 작품이다.

한 사람의 보통의 일생을 다룬 책이지만 정말로 가슴에 와 닿은 감동, 먹먹한 가슴 울림 속에 너도나도 인생을 관통하고 살아가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통해서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던 작가 작품 세계는 그만의 필치를 통해서 다른 문학과는 다른 선호하는 작가 중의 한 사람으로 기억에 새겨놓았다.

 

이번에 신간 출간 소식을 접하고 바로 읽기 시작한 것이 이 책이다.

 

보통의 역사적인 이야기를 토대로 살을 덧붙이고 가상의 인물들이 약간씩 섞여서 당시의 사회상이나 정치적인 정적들, 초대 황제로서 자리에 등극하기까지의 이야기를 그린 것을 소재로 삼는다면 얼마든지 이야기의 창작성은 무한대일 수도 있겠으나 이 책은 흔치 않게 서간문과 구어체로만 쓰인 작품이다.

 

 

 

저자 자신이 발표 당시 가장 큰 영광을 얻었던 생전의 작품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무척 차분한 분위기 속에 그 안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표현해내는 글의 내용을 통해 아우구스투스 라 불린 자, 초대 황제인 가이우스 옥타비아누스의 생애에 관한 전반적인 인생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크게 3부로  그려진 책의 내용인 첫 1부는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자신의 조카이자 아우구스투스의 어머니인 아티아에게 쓰는 편지에 옥타비아누스에 대한 이야기를 그린 내용을 시작으로 카이사르가 암살당했단 소식을 접한 옥타비아누스의 모습을 그의 곁에서 지켜본 사람들이나 수많은 인물들이 서로 바라 본 사실들을 엮은 서간체 형식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문득문득 옥타비아누스의 행동이나 말들이 언뜻 보이기도 하지만 정작 옥타비아누스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카이사를 죽인 암살범들을 처리하는 과정과 악티움 해전에서의 안토니우스와의 싸움, 그리고 원로원에서 인정하는 지위를 승낙하고 누리기까지의 일들이 두서없이 한 사람의 시선을 쫓아서 내용을 훏는 것과 동시에 곧이어 다른 사람들이 바라 본 당시의 정세와 옥타비아누스의 행동들이 보인다.

 

2부에서는 옥타비아누스의 딸인 율리아의 일기 형식을 통해서 그녀와 그녀 자신의 결혼생활, 그리고 아버지인 아우구스투스로부터 간통이란 죄목으로 로마에서 추방당하기까지의 일들이 어린 시절부터 회상하는 식으로 엮여 있다.

 자신을 작은 로마 라 부르며 비록 엄마와는 이혼을 하고 리비아란 여인과 재혼을 했지만 당시의 시대적인 상황에서 필요한 여인으로서의 의무감, 책임감을 결코 거부할 수 없었던 율리아의 망나니 같던 생활들이 왜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는지에 대한 한 인간으로서의 정치와 권력에 갇혀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수 없었던 상황에서 벗어나 자유인으로서의 누릴 온갖 탐욕에 깃들었던 자신의 생활을 돌이켜보는, 그러면서 끝내 아버지로부터 추방당한다는 통고를 받는 당시의 심정들이 보인다.

 

3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그동안 1. 2부에서 등장했던 사람들과의 관계와 함께 76세란 노구의 힘으로 인생을 살아오면서 자신이 겪었던 인생을 관통하는 모든 것들을 되돌아보는 형식의 편지 형식이 보인다. 

 

초대 황제로서 정치인으로서의 삶과 한 가정의 아버지로서 자신이 내세운 법에 따라 딸을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추방을 해야 했던, 한 사람의 아픈 심정을 드러낸 글들이 모든 사람들이 생각하는 권력의 최고 정점에 있었던 한 권력자의 모습 속에 간직된 외로움과 로마란 나라를 제대로 세우기 위해 행해왔던 모든 일들의 정책이 자신의 뜻대로 후계자 계획에 차질을 빚는 일들까지, 무소불위의 막강한 권력이라도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인생의 한 단면을 보는 것과 동시에 단 하나의 혈육인 딸의 배신과 그릇된 행동이라도 아버지의 입장에서 극단적인 방법으로라도 살릴 수밖에 없었던 회한의 사적인 가장으로서의 고민들이 쓸쓸한 모습을 통해 독자들로 하여금 그와 같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인생이란 결국 자신이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간에 살아가는 과정에서 필히 겪는  친구와의 이별, 배신과 피가 낭자한 정치계의 세계 속에서도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많은 고민과 차후 로마 제국에 대한 걱정을 쉼 없이 했었던 그의  인생을 엿볼 수가 있었으며,  그도 역시 우리네와 별다른 바 없었던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같은 고민과 행복, 불행, 그리고 노구를 이끌고 머지않아 자신의 삶을 정리하며 세상을  관조하는 자세를 통해 많은 감동을 안겨 준다.

 

저자가 그리는 아우구스투스에 대한 투영은 어떤 거대한 산으로도 비쳐 그릴 수도 있었겠으나 이것을 배제한 채 그린,  아우구스투스란 명칭도 떼어놓고 본다면 결국 그도 우리와 같은 삶을 살다 간 사람이란 동질성을 느끼게 해 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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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이는 요리책 - MWA 선정 세계 최고 미스터리 작가들의
케이트 화이트 엮음, 김연우 옮김 / 라의눈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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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가 정말 속된 말로 죽인다.!!!!

 

섬뜩하게 다가오기도 하고 요리는 요리인데 무엇이 들어가는 음식이길래 과격한 단어인 죽이는~이라는 말을 사용한 것일까?

한 수를 월등히 뛰어넘은 정말 요란한 죽이는 요리책-

하긴 요즘 방송에는 너도나도 요리에 관한 한 다양한 연령층에 어울릴만한 소재의 발굴과 더불어 보기만 해도 군침이 꿀꺽 넘어가게 만드는 영상미가 압권이긴 하지만 이 책은 그런 범주로 생각한다면 오, 마이 갓! , 헐, 어머나! 를 연발하게 한다.

 

책 속에 나오는, 그것도 추리, 스릴 소설에나 나오는 내용들 속에 들어 있는 음식에 관한 레시피와 함께 사진이 들어 있고 더군다나 작가가 직접 소설 속에서 나오는 인물들이 어떤 설정 하에 이런 음식을 만들게 되었는가에 대한 상황을 곁들인 요리 설명, 자신이 직접 가족을 위해, 또는 즐겨 먹는 음식에 대한 레시피로 구성이 되어 있다.

 

 

 

 

정식으로 차려진 코스를 연상케 하는 책의 구성은 참여한 작가의 쟁쟁한 이름과 함께 익살스러움이 묻어난다.

같은 뜻을 품고 있더라도 '참여한 유력 용의자들' 이란 말을 붙인다면 훨씬 독자들의 입장에선 당시 읽었던 책을 연상시키는 이중 효과를 누릴 수 있는 센스를 가미한 책이기에 차례를 훑어보는 것부터, 일단은  스릴이고 추리고, 저 멀리 내 주위에 놓고 실질적으론 눈이 저절로 책으로 빠져들게 한다.

 

브랙퍼스트, 애피타이저, 수프와 샐러드, 앙트레, 사이드 디쉬, 드링크로 순서를 잡되 그 안에서는 이 방면에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 독자라면 반가워할 사람들의 명단이 쭈욱 자리를 잡고 어서 오라고 연신 손짓을 한다.

 

 

 

 

어때요? 내가 쓴 소설 속에 이런 음식은 이렇게 만들고 사실, 난  이러한 배경 속에 등장인물이 이런 심정으로 만들었을 것이란 가정 하에 음식의 표현을 했답니다.~ 뭐 이런 식의 호객행위라면 당연히 독자들로서는 발길이 머물 수밖에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사실 추리와 스릴이 주는 묘미는 심리전, 육체적인 부딪침 속에 여러 가지 상황에 맞게 독자들을 흥분시키는 묘미, 특히 죽음에 이르는 원인이 음식과 연결이 되어 독성으로 같이 발전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짧은 유익한 제공의 단서들에 대한 안내는  추리를  좋아하는 독자들로서는 다양한 정보를 알 수 있게 한다.

이러한 장르로써 자리를 잡은  점에 한 발 더 나아가 미국 미스터리작가협회 MWA가 음식과 살인의 연계성을 고려해서 책을 발간했다는 점이 부러움을 산다.

 

음식이 주된 인간의 에너지원이고 보면 스릴이나 추리 속에서 등장하는 인물들 간의 고조된 갈등이나 긴장, 그 안에서 잠시나마 숨을 돌릴 수 있는 매개체로서 음식의 역할은 작은 소품 일지 모르나 배경의 커다란 그림 안에서는 그 역할이 작지만은 않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렇다면 무엇을 먹는 것이 좋을까? 아니, 이 기회에 한번 천천히 따라 해 보는 것은 어떨지..

주요 음식 소재와 요리 법을 읽고 있노라면 배경이 되는 타국의 음식의 근원, 더 나아가 근원에다 플러스가 가미된 현지의 음식으로 자리를 잡은 또 다른 음식의 향연을 눈으로 즐길 수 있게 구성한 점이 돋보인다.

 

 

어깨를 움츠리고 손과 발에 땀이 뒤섞인 긴박한 느낌 속에 아침식사는 어떤 식으로 하면 좋을까? 하드보일드식, 아니면 그냥 전 날에 폭음을 했기에 아침을 거르고 산뜻하게 샐러드와 간단한 커피만으로 해결을 할까? 이도 저도 아니면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파스타, 손 조차도 까딱하기 싫다면 리 차일드가 권하는 커피를 내리는 방식으로 한 잔의 여유만으로 하루를 즐길까?

 

 

 

 

 

 

 

 

 

어쩜 이 모든 정식 코스를 제대로 한 번 마음을 크게 먹고 제대로 먹어 보는 것도 꽤 괜찮을 것 같은데, 스릴, 추리 모두 좋아하는 독자들이여!

그대들은 어떤 코스로 정하셨는지요?

 

죽이는 요리책이란 제목이 갖는 이중의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도 즐길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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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2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김춘미 옮김 / 비채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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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시절 방학 과제물로 모형 만들어 오기란 제목 하에 공작 숙제가 있었다.

그럴 때면 항상 당시 고등학교에 다니는 사촌 오빠가 집에 들렀다.

지금도 유행하는 광고 음료 상자를 약국에서 갖고 오면 먼저 연필을 잘깍고  하얀 종이에 대충 쓱싹쓱싹 연필로 그림을 그리고 여기저기 고갯짓을 하면서 생각을 하고, 그러면 어느샌가 하얀 종이는 그냥 하얀 백지가 아닌 하나의 건물이 우뚝 선 모습으로 변형이 된 종이로 되어 있었다.

그 옆에서 엎드려 오빠가  무엇을 그리는 것일까? 연신 오빠 쳐다보고 종이 쳐다보고....

 

잠시 한눈을 판 사이에 음료 상자는 2층 양옥집으로 변신을 한다.

위에 옥상이 있고 그 옥상에는 나무와 작은 채소밭이, 아래에는 층마다 빗물받이와 함께 창이 닫혀 있는 곳도 있으며 열려 있는 곳도 있고 마당에는 개와 개집, 그리고 쉴 수 있는 작은 마루 형태의 사각형 의자와 커다란 나무가 서 있었다.

한 순간에 변해버린 변신의 상자는 내겐 커다란 충격과 놀람이었고 그 이후에도 계속 공작 모형은 오빠의 손에 해결을 보았던 기억이 난다.

 

그때부터였을까?

결국 오빠는 건축학과에 들어갔고 졸업할 즈음엔 학교에 공모전에 당선이 되어 학교 건물에 이름을 올리게 됐고 그런 영향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사촌 아이도 지금 건축을 전공하고 있다.

 

당시의 연필이 스쳐 지나가면서 완성되어가는 설계도를 보아서였는지 모르겠지만 건축에 관한 노벨상을 누가 탔다더라, 아니면 여행 중에 보는 건축물에 대한 설명을 듣는 것을 좋아한다.

 

이처럼 눈과 귀로 보는 실제의 건축물은 기본이지만 책을 통해서 고스란히 그런 느낌을 받는다면 작가의 대단한 필치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앉아서 바로 그 지역의 건물을 보고 싶다는 유혹을 느낀다면, 저자로서의 기쁨은 무척 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오랜만에 건축에 관한 책을 접했다.

그냥 전문적인 건축에 관한 책이 아닌 자연과 그 계절에 걸맞은 향기와 풀벌레 소리, 새소리, 창을 열면 환한 태양이 안으로 서서히 스며들면서 전체적인 채광을 밝게 해준다는 느낌을 고스란히 독자가 느끼고 받아들일 수 있는 책-

 

 

 

사실 이야기는 짐작해보건대 50이 약간 넘은 '나'가 23세에 처음 발을 들였던 건축 사무소 사장님이었던 노 건축가의 여름 별장에서 보낸 한 달 여남은 기간의 과거를 회상하면서 다시 30여 년이 지난 후에 이 별장을 찾아서 여러 감상에 젖는 이야기를 그린 책이다.

 

젊은 신입사원을 뽑지 않기로 유명한 건축 설계 사무소에 자신이 그린 설계와 신입사원으로서의 채용을 바란다는 내용을 보낸 이후 정말 놀랍게도 채용이 된 나의 이름은 사카니시 도오루다.

 

평소 존경하던 무라이 슌스케의 설계 사무소에 직원이 된 후 매년 여름 동안 사무실을 도쿄에서 여름은  가루이자와로 옮겨 설계에만 전념하는 이색적인 회사로 그려진다.

 

여름 별장에서 온 직원이 합숙을 하면서 일상에서 벌어지는 잔잔한 일들은 무라이 슌스케의 새벽 산보로 시작해서 도시보다 맑은 공기와 그 탓에 일찍 찾아오는 어둠과 가슴이 탁 트일 정도의 공기 냄새, 장을 봐오고 음식을 만들면서 설계에 관한 토의를 하는 일반적인 일들을 그리고 있지만 그 안에서는 사람 냄새 외에 건축가로서 건축을 바라보는 자세와 신념, 긍지, 하나의 건축물이 탄생하기까지의 전 과정이 그려져 있기에 건축에 문외한인 사람들이라도 하나의 걸작품이 만들어지는 데에 걸리는 노고와 여러 가지 보이지 않는 미세한 부분들을 경탄하면서 읽을 수가 있다.

 

 

 

 

 

 

여기에는 물론 로맨스도 들어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나'란 인물의 인생을 관통하고 있는 하나의 과정 중에 있는 있다는 점과 실제 문무 장관의 부탁으로 국립현대 도서관 설계 공모전에 응하기 위해 설계를 하는 과정에서부터 모형 제작을 통해 부족한 점들을 보완해 가는 절차들이 그려져 있기에 이 책에서 보이는 건축과 그 건축물 안에서 실제 사용하는 인간과의 관계를 들여다보노라면 작은 소품처럼 다뤄지는 문고리 하나라도 어디까지나 인간 중심으로 맞추려는 노 건축가의 의지를 엿보는 점들이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책 속에 나오는 스톡홀름 시립도서관과 숲의 묘지는 그런 점에서 인간과 자연과의 조화, 도서관 이용자들의 실용성과 호감을 이끌만한 군데군데 요소적인 부분들이 건축물이란 이름 하에 어떻게 건축이 되는지에 대한 새롭게 '앎'이란 이런 재미구나 란 것을 느끼게 해 준다.

 

일본인다운 노년의 건축 설계사무소를 마무리 짓는 과정도 그렇지만 다시 돌아와 느끼는 중년의 '나'가 다시 느끼는 여름 별장의 의미, 독자들은 이 책을 집어 든 순간 벌써 그 여름 별장으로 달려가 있을 것이란 확신을 들게 하는 책이다.

 

건축학을 전공하고 있거나 건축에 관심이 있는 독자, 굳이 아니더라도 이 책을 통해서 건축이란 인간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에 대해 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여름의 풀벌레 향기를 느낄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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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에게 절대로 말하지 않는 것들
셀레스트 응 지음, 김소정 옮김 / 마시멜로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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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리디아는 죽었다. 하지만 그들은 아직 이 사실을 모른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이 소설은 평범하게 보이는 한 가정에 일어난 커다란 파문을 , 그 파문의 여파 속에는 저마다의 가슴속에 깊이 간직하고 있던 비밀들이 해제되면서 일어나는 일들을 그린 책이다.

 

저자의 이력을 보니 홍콩에서 이주한 아버지 때문에 미국에 정착하고 살고 있는 이민자의 후손이다.

그래서 그랬을까?

 이 책에서 보이는 설정들의 주인공들은 혼혈아, 다문화 가정의 자녀들이다.

1950년대의 미국은 지금은 거의 없어졌다고들 하지만 여전히 인종 차별적인 정치적인 일들이 많이 벌어지고 있다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소설의 배경인 1950년대는 인종차별적인 시선이 더 심했을 것이란 짐작이 간다.

그랬던 만큼 동양인 아버지 제임스와 백인 어머니 메를린 사이에서 태어난 세 아이들은 아들 네스와 막내 한나만 빼고 둘째인 리디아만 백인적인 특성을 지닌 아이로 태어난다.

학교에서 잘못한 것도 없지만 왠지 모를 왕따 비슷한 것을 겪었던 아이들, 그런 둘 사이에서의 남매애는 특별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리디아의 눈에 비친 엄마가 자신에게 거는 기대치는 엄청 중압감을 느꼈을 것이다.   

 

자신의 이런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던 한 사람인 오빠 네스마저 아빠 자신이 시대적인 인종차별에 맞서지 못하고 자신이 하고 싶었던 행동들을 기대하는 중압감을 견디면서 살아왔기에 오로지 대학 입학으로의 탈출만이 희망적이었던 가족의 분위기-

 

당시만 해도 드물었던 여 의사란 직업에 대한 희망을 안고 하버드에 입학했지만 제임스와의 사랑에 빠지고 네스를 임신하는 바람에 주부로서 안착할 수밖에 없었던 엄마는 리디아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거는데, 한 번 집을 나갔던 엄마의 부재는 리디아에게 커다란 충격이었고 그런 기대치에 부응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를 할 수밖에 없었던 힘겨웠던 리디아의 삶을 반영한다.

 

이들 가족에게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

리디아의 죽음이라는 문제의 시점에서 시작한 이 소설은 리디아가 호수에서 시체로 발견이 되고 본격적으로 그 이후의 남겨진 가족들의 사이를 과거와 현재를 오가면서 보여준다.

 

리디아의 죽음의 원인이 처음엔 잭이란 불량 청년에게 용의자로 지목이 되는 과정에서부터 시작이 되지만 이것을 하나의 과정의 일부분이면서도 가족 전체에게는 리디아의 죽음이란 해결을 풀기 위한 가족 전체에 짊어진  과제였다.

 

이 책은 인종차별이란 설정하에 뛰어난 실력임에도 교수직을 맡지 못하고 보스턴을 떠나 오하이로로 이사 갈 수밖에 없었던 제임스란 인물을 통해 이민자로서 주류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를 썼던 사람들의 모습을, 엄마 메를린은 여성이란 이유로 차별적인 사회적인 인식에 도전에 성공하지 못했던 시대상을 반영하면서도 가족이란 이유로 무엇하나 제대로 터놓고 대화를 하지 못했던 소통 부재에서 온 아픈 과정들을 그리고 있는 책이다.

 

부모들은 자신들의 삶보다 더 나은 삶을 바라기 위해 자녀들에게 무한의 기대치를 걸게 된다.

자녀들의 인생은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로서의 삶이란 생각을 하면서도 쉽사리 그들의 인생에 손을 떼기가 쉽지 않은 상황들이 마치 우리나라의 부모들의 모습을 본 것 같기도 하고, 이런 자녀들의 아픔을 부모들은 자신들의 생각에 갇혀서 제대로 아이들이 무엇을 힘들어하고 외로워하며, 그들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알고자 하려는 노력이 없었단 사실이 서글픔을 전달해준다.

 

처음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는 리디아의 죽음의 범인은 누구일까? 어떤 식으로 밝혀질까를 염두에 두고 읽어나갔지만 결국 이 책은 리디아의 죽음을 둘러싼 한 가족의 분열과 해체, 그리고  다시 복원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책이기에 여타 다른 책들과는 다른 아픔과 안타까움을 전해준 책이기도 했다.

 

책 제목인 내가 너에게 절대로 말하지 않는 것들...

정말 내용에 부합되는 제목이란 생각이 든다.

가족이기 때문에 나를 이해해주겠지, 내가 힘들어한다는 것을 알아주겠지, 내가 이런 말을 해도 가족이니까 이해하고 넘어가겠지....

 

이 모든 것을 너무나도 간과하고 지나쳐버렸던 한 가족의 모습을 통해 진정으로 가족이란 무엇인가? 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하는 책이 아닌가 싶다.

 

말하기 싫어서 말을 안 했던 것이 아닌 말할 수가 없어서였단 사실이 책을 덮고서도 떠나지 않게 하는 아픈 감정을 지니게 하는 책, 뭣보다 책을 통해 내 가족과의 관계를 더듬어서 생각해 보게 책인 만큼 한 번 읽어봐도 좋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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