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자에게
김금희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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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유난히 비가 많이 내렸다.

어제도 갑자기 광풍이 불면서 한때 큰 소나기가 내리더니 언제 내렸나 싶게 하늘은 청명하고...

 

제주도의 청량한 기운과 계절상의 변화를 글로 느낀다는 것은 시각으로 접해보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을 준다.

 

 제주도의 부속섬인 고고리 섬 또한 그러하지 않을까? 하는 느낌을 받은 책, 김금희 작가의 '복자에게'를 통해 만나본다.

 

 

 

 

부모의 사업 실패로 인해 뿔뿔이 흩어진 가족의 분열, 부모와 떨어지게 된 영초롱이가 주인공이다.

 

남동생은 큰아버지 집에, 자신은 제주도 고고리 섬에서 의사로 있는 고모와 살게 된다.

 

남들과는 다른 비교적 일찍 큰 경험을 한 탓일까, 좀체 환경에 적응할 수없었던 영초롱이 곁에 말을 건넨 아이는 할머니와 살고 있는 복자였다.

 

다친 발을 끌고 아이스크림을 사러 매점으로 가던 중 만난 아이, 스스럼없이 말을 건네주고 그 이후 말이 통하는 친구가 된 두 사람의 인연이 제주도의 계절만큼이나 다채롭게 펼쳐진다.

 

 

 

이혼한 엄마와 떨어져 사는 복자에겐 엄마처럼 느껴지는 이선 이모, 자신에겐 고모가 있다는 사실,  이모와 고모의 사이가 섬에서 유독 가까웠단 것을 통해 더욱 친밀감을 가지게 된다.

 

이후 시간이 흐른 후 판사로서 다시 제주도로 좌천되면서 오게 된 영초롱이, 그녀에겐 이 장소가 결코 낯설지도 그렇다고 친밀하게 다가오지도 않은 과거의 어느 한 곳에 머물러 있다.

 

복자와 이선 고모, 자신과 자신의 고모가 원치 않았지만 다른 결과를 낳았던 아픈 기억들, 다시 만난 복자를 만나게 되면서 친구가 겪고 있는 소송 사건을 통해 다시 과거와 현재를 마주하는 이야기가 제주도의 고고리 섬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경애의 마음'이란 작품을 읽으면서 리뷰를 쓰기가 어려웠단 기억이 난다.

내용은  아는데 그것을 받아들이며 쓰는 나 자신의 감정을 추스르며 적어나가기가 힘들었던 책, 저자의 글 하나하나에 담긴 오롯이 그 사람에 대한 마음에 대한 글들이 너무도 다가왔기에 이번 '복자에게'란 책 속의 등장인물들 또한 그러했다.

 

어린 시절 이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던 일의 결과물로 생긴 아픔, 그 이후 다시 만난 복자를 통해 자신이 미처 다지지 못했던 과거의 일들과 현재 법관으로서 자신이 생각하는 바가 현실의 주변 여건으로 인해 부딪칠 때  영초롱이는 실패를 생각하지 않았을까?

 

여기엔 현실적인 여성으로서, 사회에서 바라보는 무언의 압력행사, 이를 이겨내고 꿋꿋이  힘겨운 법정 소송을 하는 복자란 친구를 바라보면서 겪는 영초롱이의 심정이 섬세하게 그려진다.

 

그런 점에서 어린 시절 겪었던 아빠의 사업 실패는 아빠가 병석에 누워있을 때 '실패'란 것에 대해 영초롱이의 생각을 대변해 준다.

 

 

“내가 아빠를 미워했어, 아빠가 실패해서 아빠를 미워했어. 그런데 그러면 나는 아빠가 아니라 실패를 미워한 셈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빠는 내 말을 들었는지 몸을 기우뚱하고 있다가 잠시 허리를 세웠다.
“나는 아빠를 안 미워했어. 그걸 알아줬으면 좋겠어. 내가 진짜 사회지도층 인사가 됐는데, 그럴 리가 없잖아.”
아빠는 그걸 들었는지, 아니면 무심코 그랬는지 아주 잠깐 이가 보이도록 웃었다.  -
P. 61

 

누구나 성공만 하며 살아갈 수는 없다.

 

그렇다면 인생의 희로애락이란 말이 생기지도 않았을 터-

 

실패란 것을 통해 다시 재기의 발판을 삼아 일어설 수 있는 원동력을 제공하는 면도 있다는 것, 저자는 기존의 작품에서처럼 이 작품에서도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 실패는 있을 수 있어도 그 실패 자체가 인생의 자체가 되지는 않음을, 따뜻하게  들려준다.

 

 

나는 한 계절 몇 달 만에 그렇게 멀어져 버린 그곳에 대해 슬픔을 느꼈다가 따귀를 갈기듯 불어오는 바닷바람에 이를 꽉 물고 그런 마음을 내리눌렀다. 그리고 복자처럼 바닷바람을 정면으로 맞으며 꼿꼿이 서 있으려고 노력했다. 도시의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몸 자체를 쥐고 흔드는 바람의 세기에 적응하고 싶었다. 그 힘을 맞으면서도 눈을 감지 않는 것, 에워싸이고도 물러서지 않는 것, 바람이 휘몰아쳐도 야, 야, 고복자! 이렇게 이름을 부를 수 있는 것, 춥거나 햇볕이 따갑다고 엄살떨지 않는 것 -  P. 86~87

 

 

아픈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봉합되고 다시 그 위에 새 살이 돋아나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그 누구도 실패만 하며 살아가진 않는다는 사실, 복자를 통해서, 또 다른 길을 선택한 영초롱이를 통해서 독자들은 인생의 삶에 대한 여러 길을 통해 느낄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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