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여자의 딸
카리나 사인스 보르고 지음, 구유 옮김 / 은행나무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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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선택한 건 이미 사망한채로 발견된 옆집 여자 집에서 우연히 스페인 여권 발급이 허가되었다는 우편물을 발견하고, 그녀의 신분을 훔칠수 있디면 지옥에서 벗어난다는 문구가 마음을 끌었기 때문이다.

현재의 삶이 어떻게, 얼마나 지옥이길래 다른 이로 탈바꿈 하는것이 지옥을 탈출하는 티켓이었을까 궁금했다. 작가는 분명 '카리나 사인스 보르고'라는 베네수엘라 사람인데, 번역된 책 특유의 문장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번역이 잘되어 있었다. 작가가 외국인이 맞는지 몇 번 확인 할 정도로... '구유'라는 역자도 필시 글을 쓰거나 많이 읽는 사람일 거라 생각되었는데 영어-스페인어 문학 번역을 공부했다고 한다.

주인공 이름은 '아델라이다 팔콘'으로 엄마와 이름이 같다. 소설은 엄마의 죽음으로 시작한다. 자고 일어나면 물건 가격이 상승해 있는 즉 실물경제가 붕괴된 베네수엘라를 여실히 보여준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때도 장례를 치를 때도 필요한 돈의 가치는 베네수엘라 화폐로는 거래가 어려운 실상이다. 종이 쪼가리 그 이상의 가치가 되지 못하는 한나라의 화폐. 힘이 있는 자가 약한 자들의 것을 빼앗아 살아가야 하는 현실.

엄마를 그곳에 두고 올 수 없었다. 머지않아 좀도둑이 안경을, 구두를, 심지어는 유골까지 훔쳐 가겠다고 엄마의 무덤을 파헤치리란 생각을 하면 도저히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주술이 국가 종교가 되어버린 그 무렵, 뼈는 높은 가격에 거래가 되었다. P35

다른 엄마와 달랐던 '아델라이다 팔콘'은 미술관에 데려가며, 늘 책을 읽으며 치열하게 혼자서 주인공을 양육한다. 엄마와 함께 했던 지난 일상들을 회상하며 엄마의 죽음을 애도한다. 행복했던 과거와 현실 같지 않은 현재를 오가는 장면의 연속이다. 어쩌다 국민들을 위협하는 나라로 변모했을까 싶어 끔찍했다.

'아델라이다, 내 말 잘 들어라. 이제 끝이랄 게 없는 거야. 이 끔찍함의 끝이 어딘지 우리는 보지도 못할 거다 나가지 말렴. p126

잠깐 외출한 사이에 두 달 치 식량을 쌓아둔, 엄마의 그릇과 유품이 있고, 소중한 책들이 있는 집까지 빼앗긴 그녀에게 선택의 여지가 얼마나 남았을까.

검과 벽 중에서 고르라면, 언제나 검을 택할 수 있는 법이다. 그 여권은 내 무기, 부정하게 손에 넣은 엘시드의 검이었다. 후회할 때가 아니야. 나 자신에게 말했다. 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일뿐이야. 내 의무는 살아남는 것이었다. p248

스페인 여자인 '아우로라 펠라타'가 되기 위한 과정에서 제발 성공하기를 바라며 실패할까 봐 마음이 바짝바짝 타들어갔다.

엄마가 생사를 헤맬 때, 국가는 미쳐갔어요. 살기 위해 우리는 꿈에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일들을 해야 했어요 다른 사람을 등쳐먹거나 침묵하거나, 다른 사람의 멱살을 잡으러 달려들거나 다른 쪽으로 눈을 돌리거나. 엄마가 살아서 그런 꼴을 보지 않아 다행이에요. 이제 내가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건 엄마의 이름과 내 이름이 의미를 갖던 나라를 버리고 싶어서가 아니에요. 이름을 바꾼 건, 엄마, 두려움이 나를 집어삼켰기 때문이에요. P264

국민을 보호하지 않는 나라가 어떤지 여실히 보여준다. 코로나로 인해 필요한 정책이지만, 미래의 소득을 끌어와 현재에 써버리는 지금의 우리나라는 이대로 괜찮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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