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무언가를 분명하게 가리키거나 정의하는 대신 무언가하고의 관계를 이었다 끊었다 하며 그 관계라는 것에 생명줄을 부지하고 있기에 언제나 임의적이고 괄호로 남아 있는 가능성의 또 다른 이름일 따름인 데다 입 밖으로 나와 괄호를 채우는 순간 진정한 의미를 잃어버리는 거였는데 말입니다. 그 사실을 처음 알았을 ㄸ는 어차피 영원한 괄호가 될 테니 차라리 비워두는 게 완성의 다른 이름일지 모른다고 생각도 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괄호란 언제나 무언가로 채워야 의미가 있는 것이더군요. 그 채움으로 발생하는 끝없는 오류의 반복이야말로 말이 존재하는 이유였던 겁니다.
그런데 짧지 않은 기간에 걸쳐 얻어낸 결론이라곤 말에는 처음부터 아무 힘도 없다는 사실뿐이었습니다. 말로써 무언가를 표현하려고 하면 할수록 그 무언가는 자꾸만 어디로 달아나거나 때론 아주 사라지기를 반복했거든요.
사람은 누구나 이생 한가운데 분기점을 찍는 결정적이고 낭만적인 순간을 만나거나 수차례의 치명적인 고비에 이르러서쯤은 시인이 된다는 전형적이지만 서정적이기도 한 믿음을 갖고 있었기에 시인은 주인의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레즈비언 커플, 난자와 난자끼리의 임신을 소재로 써내려간 소설이다. 작가의 첫 작품이라기에 소재도 참신하고 이야기의 몰입도도 높다. 현실에서는 보통 임신을 못하는 경우 체외수정을 하거나 정자를 기증받는데 과학기술이 발전하면 난난임신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해져도 책 속에서와 같이 사회적 반대에 부딪힐 것 같다. 난난임신이 가능해진다고해서 모든 커플, 여성들이 이 방식으로 여자아이를 갖게 되는 것은 아닐텐데 남녀성비불균형이 일어난다며 반대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아마도 남성 없이도 여성들이 결혼, 임신이 가능해진다는 점을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일 것 같다. 작가의 다음 작품이 나온다면 다음 작품도 읽어보고 싶다.
술이 가진 매력이 있다. 술이 좋기도 하지만 술과 함께하는 사람들이 좋아서 술을 마신다. 몸 속에 알콜이 적절히 들어가면 평소와는 조금씩 달라지는 태도도 좋다. 평소에는 하지 못하던 말들도 어렵지 않게 꺼낼 수 있고 술을 마신 이들끼리 느껴지는 친근함도 좋다. 술로 인해 가끔은 고통스럽기도 하고 이제 술과 멀어져야겠다고 다짐을 하기도 하지만 결국 나는 또 술의 매력속으로 빠져버리고 만다. 실수만 하지 않으면, 취한 상태로 나누는 진솔한 대화만큼 설레고 좋은 것이 또 있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