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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들은 참지 않아 ㅣ 탐 청소년 문학 34
설재인 지음 / 탐 / 2023년 8월
평점 :
소녀들은 참지 않아, 제목은 조금 유치하게 느껴졌어요. 표지도 불바다 속에 서 있는 소녀들의 모습인데 그렇게 심각하게 느껴지지는 않았거든요. 그리고 첫 문장 '우리는 학교를 항문중학교라 부르곤 했다.' 흠... 이런 건 소녀들하고는 전혀 어울리지 않잖아요. 그래도 왠지 모르게 이야기에 빠져들게 되더라고요.
이야기는 명하가 자신의 쌍둥이 오빠 명익이 학교 최고 인기녀이자 인스타 셀럽인 유진에게 악성 DM을 보낸 놈이란 사실을 알게 되면서 시작해요. 명하는 오빠뿐 아니라 어쩌면 엄마와 자신의 삶까지 망쳐질지 모른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일을 그냥 묻어버리려 하지 않아요. 일단 엄마에게 말하죠. 그리고 피해자 친구에게도요.
하지만 어쩐 일인지 이 일은 조용히 묻히려 하고 있어요. 도대체 왜죠?
명하의 엄마는 사실 명하와 명익이 다니는 학교의 인기짱 선생님이에요. 다른 꼰대 선생님들과는 달리 아이들과 말이 통하는 그런 사람이죠. 그런데 그랬던 엄마가 명익의 편에 서서 변명하기 바쁩니다. 그리고 학교도 명예를 더럽힐 수 없다는 이유로 조용히 덮고 넘어가려 하죠. 피해자 유진의 신고를 받은 경찰마저도 피해자의 편이 아닙니다. 어쩌면 이건 정말 우리 사회를 그대로 명징하게 보여주는 장면인 것 같아서, 어른인 저로서는 뜨끔하지 않을 수 없군요. 뉴스에서 많이 보잖아요. 유력 인사 자녀의 학폭 사건은 학폭위도 열리지 않고 조용히 없던 일이 되어 버리는....
요즘 선생님들이 매주 나와 시위를 하고 있는데, 저는 누구 하나의 문제라기보다는
우리 교육계의 구조적인 문제가 쌓여서 생긴 일인 것 같더라고요. 깊이 알지는 못하지만 학폭위, 학생기록부, 대입, 아동보호법 등등, 이런 것들이 얽혀서 이런 일이 안 일어나야 안 일어날 수 없도록 만드는 건 아닌지 모르겠어요.
솔직히 만약에 우리 아이가 가해자여서 대입에 심각한 문제를 줄 수 있는 일이 생긴다면, 무슨 수를 써서든 내 아이의 피해를 최소화하려고 하겠죠. 진짜 피해자 생각은 할 겨를이 없을지도 몰라요. 그런데 정말 그렇게 하면 우리 아이가 잘 자랄지는 의문입니다. 죄를 지었다면 그에 맞는 대가를 치러야 남은 인생을 잘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저는 믿거든요.
암튼 이 소설은 요즘 우리 시대와 맞물려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하더라고요. 저는 부모 입장에서 정말이지 우리 사회가 좀 더 많이 나아지길, 그리고 나도 그 일에 동참하는 사람이 되길 바라봅니다. 이런 사회 속에서는 피해자도 가해자도 또 그 모습을 지켜보는 사람도 모두 상처받게 되니까요. 어서 공교육이 정상화되어야 할 텐데 말입니다....
그리고 책에서 곤줄박이 친구의 활약은 말을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군요. 책에는 여러 화자가 등장하는데요. 저는 그중 하나인 요 곤줄박이가 참 맘에 들더라고요!
요런 캐릭터를 만들어 낸 설재인 작가님! 처음 작가님의 작품을 읽었는데 작가님의 매력에 푹 빠질 것 같아요. 좋은 작품을 써 주셔서 감사해요.
작가님의 다른 책도 읽어보고 싶네요!!
물론 청소년 소설에서 요렇게 동물이 사람처럼 이야기 속에 화자로 등장하니까 동화 느낌이 나긴 했어요.
근데, 새가 화자로 등장하는 《맏이》도 생각나고, SNS 속 세상과 현실 속 세상에서 성장해 나가는 아이들을 그린 《고요한 우연》도 생각나더라고요. 《고요한 우연》이 잔잔한 호수라면 《소녀들은 참지 않아》는 태풍이 지나간 후의 맑은 하늘 같은 느낌이랄까요.
[책만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쓴 감상입니다.]
다들 조금씩 상처 받았어요. 잘못이 있는 사람도, 잘못이 하나도 없는 사람도, 세상만사가 완벽히 정당하게 돌아가는 세상은 결코 아닌 거죠. - P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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