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집단에서 쫓겨나는 것에 대한 공포가 있다. 우리의 사회 정체성은 우리가 속한 집단과 너무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에, 집단에서 추방당하는 것은 죽음의 키스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다. 우리가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그 공포는 우리를 집단 착각 중에서도 가장 최악의 착각에 빠져들게 하며, 심지어 우리를 그 공범으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다.



‘추방하다’(ostracize)라는 동사는 그리스어 단어 ‘도편추방’(ostracon)에 유래를 두고 있다. 도편추방은 기원전 5세기, 탄핵이라는 정치적 절차가 발명되기 한참 전, 아테네인들은 그들이 가장 싫어하는 정치인, 허풍쟁이, 거짓말쟁이, 그 외 사람들이 싫어하는 이를 아테네 밖으로 쫓아내기 위해 고안된 법으로, 깨진 도자기 조각(도편 ostraca)에 추방하고자 하는 사람 이름을 적어내는 방식으로 원치 않는 자를 그들 속에서 솎아내기 위한 투표였다.



매년 아테네 시장에서는 도편추방 투표를 하는 사람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투표가 끝나고 나면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개표가 진행됐다. 여기서 가장 많은 표를 받은 사람은 누가 됐건 아테네를 떠나야 했다. 도편추방 대상자에게는 짐을 싸서 떠나기 위한 열흘의 말미가 주어졌고, 10년을 꼬박 채우기 전까지는 귀환이 허용되지 않았다. 하지만 일단 10년을 채우고 나면 돌아와서 아테네인으로서의 생활과 직업을 이어갈 수 있었다. 또한 그가 도시 내에서 보유하던 자산은 안전하게 보존되도록 정해져 있었다. 도편추방자 중에는 아리스토텔레스라든가, 영웅적 업적을 남긴 페리클레스처럼 유명한 사람들도 있었다.



다양한 연구를 통해 추방당한 이들은 혈압이 높고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의 농도 또한 높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사회적 관계에 손상을 입든 물리적 부상을 입든, 우리 뇌는 동일한 경고 신호를 발산한다. 심지어 사회적으로 배척당한 고통은 허리와 척추의 통증 및 심지어 출산의 고통과도도 관련성을 보인다. 마음의 상처가 마치 다리 골절상처럼 고통스러운 일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고통에 엄청난 사건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사회적 추방에 대한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아주 약한 수준의 냉대와 무시만으로도 고통을 야기할 수 있다. 일상적으로, 때로는 매일 경험하는 일로 인해 그런 고통이 벌어질 수 있다는 건 더욱 안 좋은 일이다. 참가자 40명을 대상으로 일상 속에서 배척당한 경험을 할 때마다 일기에 기록하도록 한 연구가 있었다. 참여자들이 기록한 사건 중 7백여 건 이상은 (버스나 기차에서 낯선 이가 반가운 표정을 짓지 않았다거나, 친구가 이메일에 제때 답장을 해주지 않는 등) 비교적 흔한 일이었다. 하지만 (배우자로부터 싸늘한 침묵만을 돌려받는 등) 보다 심각한 경우도 있었다. 이렇게 특히 가족이나 친지들로부터 추방당한 경험을 하고 나면 참여자들은 귀속감, 자기 통제감, 자존감 등의 하락을 보여주었다. 또한 자신 존재를 더욱 의미 없게 느꼈다.



거절에 대한 우리의 내적 감각은 너무도 예민하게 발달해 있는 나머지, 심지어 그 일이 멀리 떨어져 있거나 작위적인 상황이라는 걸 분명히 아는 경우에도 고통을 느낀다. 인터넷에서 무시당하거나 배제당하는 기분, 즉 사이버 도편추방은 사람을 만나서 거절당하는 일보다 훨씬 더 쉽게 벌어질 수 있다. 하지만 그로 인해 발생하는 물리적, 감정적 반응은 거의 유사하다. 문제는 우리가 ‘좋아요’가 낳는 즉각적인 만족의 세상 속에서 수천여 명의 가상 ‘친구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무시당하는 기분을 느끼기가 너무도 쉬운 세상이 되었다. 가령 누군가가 쓴 게시물에 댓글을 달아놓고 상대방 반응을 기다리지만 돌아오지 않는 것처럼 사소한 경우를 떠올려 보자. 사이버 도편추방을 당하는 사람은 귀중한 소속감이나 자기존중감의 상실을 겪게 된다. 



거절의 크기나 강도가 얼마나 큰지는 상관없다. 일단 거절당했다는 사실이 인식되고 스위치가 켜지고 나면, 우리에게 내제된 도편추방 경고등은 가장 큰 소리로 쩌렁쩌렁 울려 퍼지기 시작한다. 심지어 사회적 거절이 아주 미세하게 벌어질 때조차 생명이 위협당할 때와 맞먹은 스트레스를 경험한다. 여러 차례 반복된 한 실험을 살펴보자. 피험자는 방 안에서 다른 두 사람과 함께 공 넘기기 게임을 한다. 그러던 중 갑자기 두 사람은 제대로 된 이유도 가르쳐주지 않은 채 피험자를 따돌리고는 자기들끼리만 공을 주고받는다. 이 실험은 온라인에서 ‘사이버볼’이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 수천여 명을 상대로 진행되기도 했다. 온라인에서든 오프라인에서든 같은 패턴이 드러났다. 사회적 추방을 단 2분에서 3분 정도 경험한 것만으로도, 특히 슬픔이나 분노 같은 ‘강력하게 부정적인 감정’이 발생한 것이다. 낯선 이들과 공을 주고받는 인위적인 상황임에도, 심지어 컴퓨터 앞에서 공을 주고받는 상황에서조차, 배제당한 참여자는 감정이 격양되고 말았다. pp. 94-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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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3-06-21 12: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도편추방은 태생적으로 엉뚱한 결과가 나올 수 있는 제도였네요.ㅠㅠ 내편이 아니면 추방 가능한 제도이니까요.

북다이제스터 2023-06-21 13:09   좋아요 0 | URL
넵, 다수결(투표)이 항상 옳거나 좋은 것이 아닐 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선거 결과를 봐도 그런 거 같습니다.^^
 
















“인간은 집단에 짓눌리지 않기 위해 언제나 안간힘을 써야만 한다.” - 니체





우리 뇌는 우리가 집단에 대해 가지고 있는 ‘믿음’에 반응한다. 그 믿음이 사실에 근거하는지 아닌지 여부는 상관이 없다. 다른 이들과 행동을 조율하고 싶은 충동을 사회학자들은 흔히 ‘순응 편향’(conformity bias)이라고 부른다. 순응 편향 성향에 따르면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마치 우리를 무차별적으로 끌고 들어가는 지구의 중력마냥 군중과 함께하고자 하는 우리 본성은 무의식에서 작동하며, 이것이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이고 인간은 여기서 탈출 불가능한 듯하다. 설명 ‘집단의 선호’라는 것이 완전한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해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뜻을 오해할 위험이 있을 뿐 아니라, 다른 이들의 생각이나 기대를 잘못 알고 거기에 순응해버릴 위험을 끌어안은 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가장 근본적인 차원에서 볼 때, 우리는 다수에 순응하는 경향성을 지니고 있으며, 우리는 집단 환상의 손쉬운 먹잇감이 되기 십상이다. 



사회학자 윌리엄 아이작 토머스와 그의 부인인 도로시가 1928년 제시한 이른바 ‘토머스 정리’(Thomas theorem)는 다음과 같다. “만약 사람들이 어떤 상황을 현실로 정의한다면, 결과적으로 현실이 된다.” 우리가 믿는다면, 그러한 믿음에 실질적인 근거가 있건 없건 상관없이, 그러한 믿음에 따른 결과만큼은 현실화될 수 있다. pp. 24-27. 우리의 사회적 본능은 마치 감정처럼 우리에게 내장되어 있다. 감정이나 사회적 영향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그 사실을 의식하지 않는다면 위험하고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 p. 33. 집단에 속하는 개인들이 개인으로서 판단을 내려야 집단 지성이 올바르게 발현될 수 있다. 사람들이 다른 이의 선택을 볼 수 있을 때, 그래서 다른 사람 선택을 보고 흉내 낼 수 있을 때, 집단 지성은 순식간에 ‘집단 무지성’으로 전락하고 만다. p. 56.



1841년 스코틀랜드의 언론인 찰스 맥케이가 모방의 연쇄에 대한 책, <대중의 미망과 광기>를 펴냈다. “사람들은 집단 속에서 생각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그가 탐구한 사례 중 하나가 그 유명한 네덜란드의 1634년 ‘튤립 광란’이었다. 네덜란드의 엘리트들이 어느 날 갑자기 튤립 구근의 도창적 컬렉션을 절대적 필수품인 양 여기기 시작하면서 벌어진 일이었다. 그 꽃에는 어떤 내재적 가치도 없었지만, “튤립을 소유하고자 하는 광기는 곧 네덜란드 사회의 중산층을 덮쳤고, 심지어 무역상과 상점 점원들마저도 어느 정도 손을 댈 정도가 되었다’고 맥케이는 기록하고 있다. 오늘날 한 학자의 추산에 따르면 튤립 광기가 절정에 달했던 1635년, “튤립 구근의 평균 가격은 같은 무게의 금 가격을 뛰어넘었고, 희귀한 튤립 구근 단 하나가 오늘날 돈으로 5만 달러 이상에 거래되는 경우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맥케이에 따르면, 가격이 요동치다 떨어지기 시작하자 시장의 자신감은 무너졌고, 딜러들은 전반적인 충격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거대한 튤립 열풍은 막대한 튤립 거품 붕괴로 이어지고 말았다. 이 광기가 일시적인 것을 파악한 네덜란드 당국은 선언했다. 이 광란의 정점에서 맺어진 모든 계약은 무효로 선언되어야 한다. pp. 58-59.



이런 식의 사기극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익숙하게 들린다. 그렇다면 과연 생수가 정말로 더 깨끗하고 안전한 물이 맞긴 한 걸까? 화산 활동으로 만들어진 현무암 지반으로 걸러졌다는 둥, 구름까지 뚫고 올라가는 일본의 명산에서 체취했다는 둥, 숫제 천사의 눈물을 받아왔다는 둥, 온갖 이유를 붙인 고급 생수들은 고작 세 컵 분량에 5달러가 넘게 팔리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경우 99퍼센트의 수돗물은 음용 가능할 뿐 아니라, 사실 많은 사람이 생수라고 생각하며 마시는 물은 수돗물이다. 병입되어 판매되는 물 중 절반 이상이 약간의 처리 과정을 거친 수돗물이며, 양대 생수 브랜드인 아쿠아피나와 다사니는 (참고로 이들은 펩시와 코카콜라의 상품인데), 그저 디트로이트시가 제공하는 물을 한번 걸러서 플라스틱 병에 담아 넓은 시장에 판매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병에 들어 있는 물을 생수라고 마실 때마다 우리는 이런 엄청난 사기극에 속는 동시에 거들고 있는 셈이다. 생수를 구입하면 4.5리터짜리 한 병에 평균적으로 1.5달러를 내게 되는데, 이는 우리가 같은 영의 수돗물을 사용할 때 내는 돈의 2천배에 육박한다. 



오늘날의 생수를 둘러싼 현상은 튤립 광란과 다를 바 없다. 우리는 사실상 거짓말이나 다를 바 없는 무언가에 수천억 달러를 쓰고 있는데, 그런 소비를 별개로 보더라도 그 막대한 플라스틱 병 사용으로 인한 환경 영향이 실로 엄청나다. 생수 한 잔에는 같은 양의 수돗물에 비해 2천 매나 더 많은 에너지가 소비된다. 한편 미국만 놓고 보더라도 플라스틱 생수병의 70퍼센트는 곧장 매립되며 그리하여 토양을 오염시키고 물길을 막는다. 이러한 연쇄 작용 결과 캘리포니아와 하와이 사시 어딘가에는 텍사스주의 두 배 정도 크기를 이룰 정도로 넓은 플라스틱 부유물 군집이 만들어지고 말았다. pp. 61-63.



우리는 우리와 비슷한 관점으로 세상을 보고 비슷한 믿음을 지니는 이들에게 자연스럽게 끌리는 경향이 있다. 18세기 도덕철학자 애덤 스미스에 따으면 우리는 ‘어떤 특정한 정신적 조화’를 찾고자 한다. 의견을 공유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면 집단적 정체성이 강화되고, 신뢰, 협조, 평등, 생산성이 강해진다. 소속 집단과 현실을 공유함으로써 우리는 공통의 관점을 형성할 뿐 아니라 비슷한 감정과 세계관까지 갖게 된다. 이는 우리의 핵심적인 가치관을 함양하며 우리 자신에 대한 믿음을 키우는데 도움을 준다. 또한 우리의 삶에 의미가 부여되며 자기 존중감을 얻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 행동과 상호작용이 우리가 속한 집단의 공통적 경험을 확인시켜주기에, 우리 뇌는 갈망하는 행복 호르몬의 분비로 보상을 얻게 된다. 자기 인식이란 우리가 지닌 고유한 특성과 함께 우리가 속한 귀속집단에의 감각이 결합되어 만들어지는 것이다. 사실 우리의 개인적 정체성은 우리의 사회적 정체성과 너무도 깊숙이 결부되어 있으며 그래서 우리 뇌는 그 둘을 따로 떼어놓지 못한다.



이게 전부가 아니다. 우리는 본인의 개인적인 경험에 기반을 두고 입장을 정하기 전부터 특정한 관점에 정서적 선호를 드러내거나 호감을 느낀다. 이런 상황에서 순응 편향이 곧잘 작용한다. 귀속집단에서 이미 확립되어 있는 결론을 강화하는 것에 불과한 증거를 찾아내기 때문이다. 또한 이렇게 공유하는 감정이 클수록, 우리는 자신이 생각하는 귀속집단의 관점에 순응하기를 원하게 마련이다. 이미 특정 귀속집단에 시간과 에너지, 믿음을 투입한 다음이라면, 그래서 그 소속감이 우리 정체성 중 일부를 구성하게 되었다면, 그 집단의 관점을 우리는 기꺼이 보호하고자 한다. 고통을 무릎쓰고서라도 집단적 관점을 강화하고자 하는 것이다. 귀속집단 바깥에 있는 이를 향해 더 적대적으로 대할 수 있게 되는 것은 물론이다. pp. 9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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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적(敵)은 

제국이나 자본이라고 불리지 않는다. 

그것은 민주주의라고 불린다.” 

- 알랭 바디우 







대의(代議) 민주주의는 국민 정치권력을 선거로 한 사람 혹은 다수 대표자에게 양도하는 이념이다. 사람들은 대의 민주주의의 산실인 의회가 국민 의지를 실행하는 '공복'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 사정은 그렇지 않다. 헤겔 지적처럼 의회는 관료들 판단을 국민에게 알리고 마치 국민 자신이 결정한 것처럼 생각하게 만드는 정교한 장치다. 의회가 탄생한 역사를 보면 그러한 정교한 조작이 반영되어 있다. 


















19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지배계급은 ‘민주주의’란 단어를 몹시 혐오했다. 하지만 점차 세월이 지나자, 지배계급은 민주주의 운영 규칙을 자신들이 정할 수만 있다면 민주주의가 그리 큰 위협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게다가 나폴레옹(1769~1821)은 도시에서 어떠한 일이 일어나도 정보를 잘 통제하고 유언비어를 퍼뜨려 유권자들을 겁줄 수만 있다면, 선거에서 당당히 승리하고 자신이 민주적임을 몸소 증명했다. 



1871년 파리 코뮌(역사상 최초 파리 시민들이 세운 사회주의 자치 정부) 때문에 프랑스는 민주주의를 도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때 부르주아는 딜레마에 빠졌다. 민주주의는 인민대중이 지배함을 의미하는데, 이들은 대체로 가난한 자들이다. 가난한 자와 부유한 자, 특권층과 비특권층 간의 이해관계는 명백히 달랐다. 따라서 인민대중이 정치에 참여하면, 지배계급의 기득권이 훼손될 수 있었다. 하지만 민주화는 불가피해졌다. 비록 지배계급은 이러한 상황을 반기지 않았지만, 사회주의 혁명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민주주의를 도입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민주주의 제도를 조작할 필요가 있었다. 가장 노골적인 조작은 의회 기능에 엄격한 한계를 부여하는 것, 특정 집단과 특정 기구에 특별 투표권을 부여하는 것, 상원을 통해 하원을 압박하는 것이었다. 


 















영국 지배계급도 대중이 선거권을 획득해도 자신들이 국가 정책을 결정하는 일에 크게 지장이 없음을 점차 깨달았다. 국가 권력 대부분은 의회의 통제 범위 밖에 있었기 때문이다. 국가 권력은 비선출 조직인 군부나 경찰, 사법부, 행정부에 있었다. 이러한 국가 조직은 의회 활동을 규정하고, 마음에 안 드는 조치는 위헌으로 거부할 수 있었다. 의회는 대중이 지배계급을 압력 하는 창구가 되지 못하고, 대중의 대표자를 길들이는 수단으로 전락했다. 지배계급은 자신들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만 의원들이 요구사항을 제기하도록 강요했다.



이처럼 지배계급이 민주주의를 받아들였다고 해서 민주주의로 전향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민주주의 효과를 약화하려는 시도였다. 또한 정부와 언론인, 자본가, 금융가는 민족주의를 앞세워 지배계급과 피착취 계급이 공동운명체라고 주장했다. 한쪽이 호화롭게 사는 동안 다른 한쪽은 땀 흘려 일하거나 굶어 죽는데도 그들 모두 ‘한 배를 탔다’는 것이다. 그러한 조치로 지배계급에게 치명적인 위협으로 여겨졌던 선거권이 노동자 대표들을 길들이는 수단으로 바뀌었다. 


















무엇보다 영국 의회는 상업자본 뜻에 따라 선거가 좌우되는 상황을 창출하고자 하였다. 토리당(국교회와 지주계급를 대표)과 휘그당(비국교도와 상인을 대표) 중 어느 당도 의회가 국민 전체를 대표하는 기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단순히 왕실에 대해 자신들 특권을 보장하는 장치로 간주했다. 게다가 의회는 이러한 계급 성격을 계속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정치를 완전히 독점하던 휘그당과 토리당의 수십 개 가문은 장남을 상원에, 차남 이하 아들을 하원에 보내어 국가를 교대로 통치했다(대륙의 프랑스나 스페인과는 달리 영국은 귀족 특권이 장남에게만 상속되었다). 의원 3분의 2는 그냥 임명되었고 나머지 3분의 1만 유권자 16만 명가량이 선거로 뽑았는데, 그나마 일부 투표는 매수로 이루어졌다. 선거권을 부여하기 위해 지대 수입을 파악했던 호구조사는 처음부터 토지 소유 계층이 의회를 지배하도록 보장했다. 이처럼 영국도 프랑스에서처럼 선거권을 생득권리가 아니라 토지 소유에 근거했기에 하층계급을 민주주의에서 훨씬 쉽게 배제할 수 있었다. 


















1787년 미국 헌법제정회의에서 보여준 지도력으로 흔히 미국 헌법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제임스 매디슨(1751~1836)은 모든 시민이 투표할 수 있는 고대 직접 민주주의인 ‘순수한’ 민주주의를 비판했다. 시민들의 정념으로 폭압적인 의회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보면서, 그는 “모든 아테네 시민이 소크라테스였다 해도 모든 아테네 민회는 여전히 폭도의 모임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매디슨은 소수가 다수를 대표하여 민중의 정념을 숙고와 심의로 조정할 수 있는 대의정치 방식을 선호했다. 

 

















미국 건국 아버지 중 한 명인 해밀턴은 한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부자들이 가지고 있는 이점이 있습니다. 부자들 악행은 아마도 궁핍한 사람들 악행보다는 국가 번영에 더 이로울 것이며, 도덕적으로 덜 타락한 것입니다.” 해밀턴은 부유함이 대표 선발에 미치는 영향을 그 어떤 사람보다도 공개적으로 옹호했다. 그는 경제력이 역사적 위대함을 향해 나아가는 올바른 길이라고 여겼다. 따라서 그는 부유하고 용감하며, 근면한 상인들이 국가를 지도하길 바랐다. 18세기 미국의 대의 정부는 선거 그 자체만으로 귀족적/과두적 효과를 낳을 것으로 이미 알고 있었다. 



형식상 하층계급이 선거에서 배제되지 않은 현대 대의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대중과 부자 의견이 갈릴 때는 부자 의견이 채택된다. 정치학자 벤저민 페이지와 마틴 길렌스는 이익집단과 부유한 미국인, 일반 시민 중에서 미국의 공공정책에 실제로 영향을 미치는 집단을 측정하는 방법을 고안했다. 두 사람은 1981년부터 2002년까지 일자리와 임금, 교육, 건강보험, 시민권, 경제 규제, 문화 관련 쟁점, 외교 정책과 같은 분야에 제안된 정책 약 2,000개를 분석해서 세 집단 중 어떤 집단이 최종 결과에 영향을 미쳤는지 살폈다. 그들은 “일반 시민은 연방정부 정책에 거의 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라는 결론을 얻었다. 조사 결과는 일반 시민 중 3분의 1 정도만 자기 뜻을 관철했다. 하지만 이조차도 그들 견해가 이익단체나 부자 견해와 일치할 때만 가능했다. 일반 시민은 정책 수립 과정에서 의미 있는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그들 목소리는 부유하고 조직적인 이익집단, 특히 기업 목소리에 묻혀 아예 들리지 않는다. 이 연구를 통해 미국인 대부분이 느끼는 사실, 즉 자기 목소리는 중요하지 않으며, 일반 시민은 자기가 통치되는 방식에 대해 의미 있는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는 자연 상태를 가정하여 국가 성립과 대의 정치를 정당화한 철학자 토머스 홉스(1588~1679)의 사회계약론은 심오한 뜻이 있다. 철학자 안토니오 네그리(1938~ )는 인간이 자신의 정치권력을 다른 사람에게 양도한다는 홉스 주장을 다시 해석했다. 권력을 대표자에게 양도하는 순간, 우리는 권력이 없는 존재, 즉 글자 그대로 노예로 전락한다. 그리고 권력을 양도받은 대표자는 과잉된 권력을 가진 존재로 사람들 위에서 군림하게 된다. 자발적인 권력 양도가 ‘자발적인 복종‘으로 이어지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다. 그래서 대의 민주주의는 결코 민주주의적일 수가 없으며, 오히려 진정한 민주주의를 가로막는 심각한 장애가 된다. 루소도 영국식 의회민주주의를 최선의 사회 체제라고 보지 않았다. 선거란 시민의 권리인 동시에 약점이기 때문이다. “영국인은 스스로 자유롭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커다란 착각이다. 그들은 의회 의원을 뽑는 동안에만 자유로울 뿐이다. 의원들이 선출되는 즉시 시민들은 곧바로 노예가 되어버린다.” 


















데이비드 흄은 인간이 결코 자유롭게 사회계약을 맺기 어렵다는 사실을 ‘가난한 농민들과 장인들의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다른 지역으로 떠나서는 결코 살 수 없는 가난한 사람들은 어떤 계약이든 달게 수용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만약 진정으로 사회계약이 가능하려면, 모든 사람이 자유롭게 주어진 국가나 사회를 떠나서 살 수 있어야만 한다. 이 점이 바로 흄이 당시 유행하던 다양한 사회계약론 모두가 허구에 불과하다고 공격했던 핵심 근거다. 우리는 어떤 국가나 사회를 자율적으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국가나 사회에 맹목적으로 던져져 훈육되는 존재일 뿐이다.


















홉스 사상은 표면상 ‘리바이던’이란 국가의 옹호가 아니다. 그의 철학은 바로 합리적인 계산으로[자유의지로] 자신 이익을 추구하는 개인이 계약을 통해 자신 주권을 ‘양도’했지만, 개개인의 내적인 힘[자유의지]이 전혀 정치에 반영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개개인의 집합은 그저 다중일 뿐이며, 국가라는 끈이 없다면 이 다중은 그저 무질서하게 흩어져 있는 구슬에 불과한 존재일 뿐이라고 홉스가 주장하기 때문이다. 홉스의 세계에서는 국가와 다중이 있을 뿐, 개개인들이 서로 간의 관계로 형성하는 ‘사회’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렇게 홉스가 자신 이론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전제한 자발적 계약[자유의지]과 결과로 나타나는 반-개인주의[반-자유의지]가 홉스 정치철학의 핵심이다. .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1883~1950)는 유권자들이 정치가들의 영향력에서 독립된 정치 의지를 가지고 있지 않음을 발견했다. “정치 과정에 대한 분석에서 우리가 알게 된 것은 대개 진정한 의지가 아니라 ’가공된 의지’(manufactured will)다. 개인이 정치가들 제안과는 독립된 명확한 자기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가정하지 말아야 한다. 정치에서 대중의 선호는 정치가들 행위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역사학자 로버트 위브(1930~2000)는 대중의 참정권은 시민이 “개인의 자유의지를 토대로 사회적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권력을 쥐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고 설명한다. “보통 선거권과 다수결이라는 규칙은 그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개인이 국가를 형성한다는 이미지를 사람들 상상력 속에 불어넣었다.” 결국 ‘자유로운 인간이 자기가 살아갈 정치 형태를 스스로 결정하기 위해 투표장에 가는 장엄한 모습’은 그저 환상에 불과하다. 개인 선택이나 동의 행위 범위를 넘어 사람들 삶을 지배하는 권력 구조가 이미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우리가 생각하는 민주주의에 관해서 어려운 질문을 던져보라고 요구한다. 그는 선거가 결국 가장 뛰어난 인물을 뽑는 것이 목적이기에 귀족정 방식이라고 설명한다. 만약 민주주의의 진짜 의미를 다수가 통치하는 제도라고 간주한다면, 미국과 같은 선거제는 오늘날 일부 정치학자가 판단하듯 과두정에 가깝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저서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바람직한 정체(政體)와 그렇지 않은 정체를 구분하고 세부 정체에 우선순위를 부여했다. [바람직한 정체(왕도정>귀족정>금권정), 타락한 정체(민주정>과두정>참주정)]



“정체에는 세 종류가 있고, 그것들이 왜곡된 또는 타락한 형태도 셋이다. 세 종류의 정체란 왕도정체와 귀족정체 그리고 세 번째로 재산평가에 근거한 정체다. 세 번째 정체는 금권정체라고 부르는 것이 타당해 보이지만, 대부분 사람은 혼합정체라고 부르곤 한다. 이들 가운데 최선은 왕도정체고, 최악은 금권정체다.



왕도정체가 왜곡된 것이 참주정체다. 참주정체는 왕도정체가 타락한 것으로, 사악한 왕이 참주가 된 것이다. 참주는 자신 이익을 추구한다. 참주정체가 세 가지 왜곡된 정체 가운데 최악임은 분명하다. 반면 과두정체는 치자들의 악덕으로 빚어져 귀족정체에서 생겨난다. 그들은 부를 가장 중요한 요소로 보기에 소수 사악한 자들이 권력을 장악한다. 끝으로, 민주정체는 금권정체에서 생겨나는데, 이 둘은 서로 이웃하기 때문이다. 금권정체도 다수자 지배를 목표로 하는데, 재산평가를 충족하는 자는 누구나 동등하기 때문이다. 이상이 가장 흔한 정체 변화다. 약간의 변화만 생겨도 그러한 이행은 아주 쉽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역사학자 에드워드 카(1892~1982)는 “지금까지 알려진 민주주의는 대중 전부가 아니라 일부 특권층만 자유롭고 평등했을 때 가장 융성했다“고 지적한다. ”일반인에게 민주주의 제도의 기원이며 표본이라고 간주되어 온 아테네 민주주의가 일부 특권층 사람들 사이에서 만들어지고, 또 그들의 특전이 되어 온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또한 근대 민주주의 전통의 창시자인 존 로크가 18세기 영국 휘그당에 속한 과두정치의 중요한 철학자이며 예언자였던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더욱이 19세기 영국의 민주주의의 전당(殿堂)이 소수 재력가에게만 선거권을 갖게 하는 방식을 토대로 한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1883~1946)도 비슷한 지적을 했다. “민주주의는 여전히 시험 중에 있다. 이유는 부자들이 숫자 면에서 얼마만큼 대의(代議)를 하는가와는 상관없이 부자들 힘은 수적인 비율보다 항상 클 것이기 때문이다.”


















루소는 스스로 법을 만드는 국민과, 자신을 대신하여 법을 만들어 줄 대표를 선출하는 국민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고 보았다. ‘대의정’과 ‘민주정’은 근본적으로 서로 다르다. 오늘날에는 대의 정부를 민주정에서 파생한 것으로 간주하지만, 18세기 후반에는 대의제에 따라 조직된 정부는 민주정과 확연히 다른 것으로 이해되었다. 오직 선거에 기초한 정부에서는, 공직을 가질 동등한 기회를 모든 시민이 가질 수 없다. 관직 배분 차이는 하찮은 것이 아니다. 예를 들면 의회에 농부보다 변호가가 더 많다는 점은 시시한 문제가 아니다. 변호가가 의회에 들어갈 기회를 더 많이 가지게 된다는 것이 농부에게 상대적으로는 무관심한 일이라 해도 말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몽테스키외, 루소 모두는 선거가 본질적으로 과두정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과두정은 선거가 사용되는 환경과 조건에서 파생된 것이 아니라, 선거 그 자체 속성에 기인한 것이라고 믿었다.



수많은 자료는 선거가 아닌 ‘추첨’[제비뽑기]을 민주정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소개하고 있다. 더욱 중요한 점은 추첨이 바로 민주적 선출 방법으로 묘사된 반면, 선거는 다소 과두정이나 귀족정인 것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추첨을 통해 집정관을 지명하는 것은 민주정이고, 선거에 의한 것은 과두정이다”라고 말했다. 추첨은 민주적이고 선거는 과두적이라는 생각은 우리 상식을 벗어난다. 



몽테스키외도 추첨을 민주주의로, 선거를 귀족주의로 밀접하게 연관시킨다. 몽테스키외는 “추첨에 의한 선발은 민주정의 특성이요, 선거에 의한 선발은 귀족정 특성이다. 추첨은 누구의 감정도 상하게 하지 않는 선발 방법으로, 각각 시민에게 조국을 위해 봉사하고자 하는 희망을 준다”라고 썼다. 몽테스키외는 민족정이 추첨과, 그리고 귀족정이 선거와 어울린다는 사실을 하나의 불변적인 법칙으로 상정했다. 이 두 방법은 어떤 독특한 문화에 속한 것이거나, 어떤 민족에게만 한정된 산물이 아니다. 이 둘은 바로 민주정과 귀족정의 본질 그 자체에서 파생된 것이다.



루소 역시 <사회계약론>에서 추첨을 민주정으로, 선거를 귀족정으로 연결시킨다. 행정관을 선발하는 데에는, 어떤 방법을 사용할 것인지를 선택해야 한다. 이 질문을 다룬 구절에서, 루소는 몽테스키외 말을 인용하며, “추첨에 의한 선발은 민주정의 본질”이라는 그의 생각에 동의를 표한다. “추첨은 민주주의에 적당한 선발 방식이다. 추첨은 어떤 특정집단의 의지 개입 없이 행정직을 배정하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민주정의 자유 원칙’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민주정의 기본 원칙은 시민이 통치자이자 피통치자라는 두 위치를 번갈아 가며 차지할 수 있어야만 한다. “자유의 형태는 다스리고 또 다스림을 받는 것을 번갈아 하는 것이다.” 민주적 자유는 내일이면 자신이 차지할 그 자리에 오늘 앉아있는 그 누군가에게 복종하는 것이다. 통치자는 입장을 바꾸어 지배받는 사람 처지에서 결정을 내리도록 유도된다. 피통치자 처지를 잘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정의를 외치는 것, 즉 권력에 있는 사람들에게 통치를 받는 사람들 처지를 상상해 보라고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통치자들에게 그렇게 할 수단과 동기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결과적으로 이 근본적인 원칙에 따르면 추첨은 합리적인 해결책이 된다. 



오늘날 생각과는 달리, 시민이 권력을 행사한 대부분 정치제도에서는 추첨이 사용되었다. 추첨은 로마 시민 의회에서도 제한적이기는 했지만 일정한 역할을 담당했다. 중세와 르네상스 시기 이탈리아 공화국들에서는 추첨을 통해 행정관을 선발하곤 했다. 11세기와 12세기에 설립된 초기 이탈리아 코뮨에서는 행정관을 선발하기 위해 추첨을 사용했다. 공화주의 부흥의 중심지였던 피렌체에서, 공화주의 체제 핵심은 바로 추첨을 통한 행정관 선출이었다. 베네치아에서는 1797년 몰락할 때까지도 추첨이 계속 사용되었다.  추첨의 목적은 자신이 속한 파당 사람을 선택하는 도당들을 막기 위해 고안되었다. 피렌체인들도 공화정 기간 동안 다양한 행정관과 정무위원회 위원 선발에 추첨을 이용했다. 14세기 말 추첨은 행정관 선발에 공평성을 보장하고 파당을 막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추첨은 개인이나 당파에 의해 행정관이 선출이 조작되는 것을 막았다. 어느 누구도 추첨 과정의 단계를 통제하거나,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없었다. 추첨이라는 중립적이고 조작 불가능한 메커니즘이 바로 공정하다고 느끼도록 만들었다.



지만 추첨이 평등하고 민주적인 특성이 있다는 신념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은 아니며, 실제로 15세기 말까지도 논란의 여지가 없던 사안도 아니었다. 오늘날 우리도 추첨을 괴상한 관습 정도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추첨은 통치에 특별한 재능이 없는 사람을 포함해, 무작위로 아무나 선발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따라서 추첨은 분명 결점이 많은 선출 방법이고, 추첨이 이제 사라진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같은 결론은 타당한지 의심해 보아야 할 주장이다. 



고대 아테네 민주주의에서 모든 평의회위원들과 판사들 뿐 아니라 대부분 행정관은 전문가가 아니라 보통 시민이었다. 아테네인들은 각각의 정치적 기능은 비전문가에 의해서 수행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내린 가정은 만약 전문가들이 정부에 관여하게 되면 불가피하게 그들이 지배하게 되리라는 것이었다. 아테네인들은 아마도 집단적 정책 결정에서 다른 사람들이 가지지 않은 지식과 기술을 가진다는 것 자체가 권력의 한 근원이 되며, 법률적으로 그들 각각 권력이 어떻게 규정되든, 그러한 기술을 가진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이점을 갖는다고 판단한 듯하다. 전문가로 이루어진 평의회 또는 전문 행정관이 민회를 좌지우지할지도 모르고, 법정에서 전문가들은 다른 판사들의 중요성을 축소시킬 것이다. 


















마이클 샌델은 최근의 역사적 경험으로 봐도 “최고의 인재들이 저학력자 동료 시민들보다 통치를 잘한다는 생각은 능력주의 오만에서 비롯된 신화일 뿐”이라고 말한다. 1945년 윈스턴 처칠의 보수당을 눌렀던 영국의 클레멘트 애틀리(1883~1967) 내각의 장관 가운데 일곱 명이 탄광 갱부 출신이었다. 매우 유능하다고 평가받은 외무장관 어니스트 베빈은 전후 세계질서의 설계자 중 한명이었다. 그는 11세 때 학교를 중퇴하고 노동조합 지도자로 성장했다. 하원 의장과 부수상을 지낸 허버트 모리슨은 14세에 중퇴하고 지방정부에서 일하며 명망을 쌓았는데, 런던의 대중교통 시스템을 개발한 공로가 컸다. 보건부 장관 어나이린 베번은 13세에 중퇴한 뒤 웨일스에서 광부로 일했고, 장관이 되어서는 영국 국민의료보험 제도를 수립했다. 



‘20세기 영국에서 가장 개혁적인 정권으로 평가되는 애틀리 정권은 노동계급에 힘을 실어주었으며, 애틀리 전기 작가는 ‘영국의 새로운 사회계약에 쓰일 윤리 언어를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샌델은 “정책 결정이 ‘스마트하냐 우둔하냐’ 문제로 여겨질수록 ‘스마트한 사람(전문가나 엘리트)’이 결정하고, 일반 시민들이 토론과 결의를 하는 일에서 배제하는 게 옳다고 여겨지지 마련”이라고 ‘정치 엘리트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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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man 2023-06-15 21: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그리의 홉스 해석은 갸우뚱하네요. 네그리가 하고 싶운 말이 있는데, 그걸 위해 홉스를 이용한 느낌이랄까요? 저도 홉스를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집에 있는 책들과 교차검증 해봐야겠습니다 ㅋㅋㅋ

북다이제스터 2023-06-15 22:17   좋아요 1 | URL
저도 잘 모르지만 네그리와 홉스는 거의 같은 과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사실 그건 중요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저도 제 주장을 위해 이것저것 짜집기 한 거 뿐입니다. 여타 학자들이 그렇듯이요.
 

미국 국립과학재단이 지난 20년간 수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3분의 2 이상은 DNA가 유전을 밝히는 열쇠임을 알지 못한다. 열에 아홉은 방사선과 그것이 인체에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성인 다섯에 하나는 태양이 지구 주의를 돈다고 확신한다. 이런 응답들은 초• 중등학교의 공교육이 놀랄만큼 실패했음을 가리키고, 따라서 대중이 왜 진화론이나 기후변화에 대한 과학자의 경고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이해하려 하지 않는지를 이해하기란 어렵지 않다.


태양이 지구를 중심으로 돌지 않는다는 것, 혹은 DNA에 우리 개개인을 인간 종의 고유한 성원으로 만드는 생물학적 지시 사항이 들어 있다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 꼭 지식인이 되어야 하거나 학사 학위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문제는 이런 수준의 과학 문맹이 더없는 무지에 기초한 정치적 호소가 자라기에 비옥한 토양이 된다는 것이다. 이는 지구온난화를 거짓말이라고 일축해버린 트럼프를 유권자들이 심판하지 않은 이유도 설명해준다. 전문가를 조롱할수록 트럼프는 지지자들의 사랑을 더 받을 뿐이었다. 2017년 8월 21일, 대통령으로서 일식을 관측할 때 트럼프는 눈 보호를 위해 NASA가 권장한 특수 안경을 착용해야 한다는 강권을 무시했다. 진짜 사나이는 태양으로부터 망막을 숨기지 않는다!


같은 맥락에서 트럼프가 아무렇지도 않게 ‘책‘을 무시하는 것은 그런 문화를 반영한다. 현재 읽기와 쓰기에서 미국인의 모습을 가장 잘 묘사하는 표현은 문맹이 아니라 활자를 싫어하는 사람이다. 2002년 국립예술기금이 발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2001년 미국 성인 가운데 소설이나 시집을 한 권이라도 읽은 이는 절반이 안 되었다. 탐정소설, 로맨스소설, 요한계시록에 기초한 ‘휴거‘ 소설도 포함해서 말이다. 논픽션을 한 권이라도 읽은 미국인은 57퍼센트뿐이었는데, DNA가 무엇인지 모르는 이가 많은 이유일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인이 점점 더 활자를 싫어하면서 독서의 즐거움뿐 아니라 비판적 사고도 위기에 처해 있다. 미국인이 40년 전에 비해 사색과 판단력이 부족해진 사회에 살고 있다.



1998년 텍사스대학 연구 조사원들이 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공립학교 생물학 교사 넷 중 하나가 인간과 공룡이 동시대에 살았다고 믿었다. 이런 오인들을 통해 교사들의 종교적 믿음이 어떠한지를 확실히 알 수는 없을지라도 미국 교사들 상당수가 얼마나 형편없는 교육을 받았는지는 확인할 수 있다. 더 혼란스럽게도 미국인은 과학뿐 아니라 종교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도 그만큼 무지하고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선진국 가운데 가장 종교적이라고 하는 국가의 성인 대다수가 4대 복음서를 대지 못하거나 창세기가 성경의 첫 번째 저작이라는 것을 모른다. 그들도 한때 ‘진화’라는 말을 금기시하고 교사가 공룡과 인간이 함께 땅 위를 돌아다녔다고 시사하는 수업을 들은 수백만의 아이들 중 하나였다면, 그들이 진화의 정의를 이해하리라고 어떻게 기대할 수 있겠는가?




인터넷에는 세계 각지의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을 연합시키는 명백한 잠재력이 있으며 그에 따라 소셜미디어와 결부된 문화적 편협성이 급격하게 늘어나는 현상을 알아차리는 데 특히 늘였다. 문제는 ‘생각이 비슷한’이란 수식어에 있다. 자신과 견해가 같은 이들에게만 귀를 귀울이고 편견에 더 사로잡힌다면 사람들은 거의 무엇이든 믿게 될 것이다. 편협함과 반지성주의는 늘 밀접한 관련을 맺어왔지만 소셜미디어가 서로 멀리 떨어진 지역들을 연결해 즉석에서 편협한 커뮤이티를 만들어내는 역량은 새로운 것이다.

이념 혹은 문화에서 생각이 다른 상대에게서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는 생각을 거부하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악마에게 뿔이 있다면 직접 만져봐야 알겠다는 그런 종류의 호기심은 모든 사회의 지적, 정치적 건강에 필수적이다. 오늘날 미국에서는 지식인과 비지식인 모두가 똑같이, 좌파건 우파건, 자신의 주장에 공명하지 않는 목소리는 모조리 듣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이런 외고집은 게으른 정신과 반지성주의 본질을 드러내는 징후다.
- P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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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시민 자유는 우리 현대인이 생각하는 자유 개념과 거리가 아주 멀었다. 고대 자유는 곧 도시 통치에 어떤 역할을 맡는 것이었다. 고대 자유는 의회에 출석하고, 토론장에서 의견을 발표하고, 논쟁에 대한 판단을 내리고, 어느 한 쪽 편을 들면서 투표할 특권과 의무로 이뤄져 있었다. 아울러 행정관으로 봉사하거나 필요한 경우에 배심원으로 일할 가능성도 고대 자유에 속했다. 고대 자유는 정치 과정에 대한 무관심을 허용하지 않았다. 공적 일이 가장 중요했다."<개인의 탄생>



















토크빌은 자유를 두 가지로 나눈다. 하나는 자연적 자유(natural liberty), 다른 하나는 시민적 자유(civil liberty) 또는 공민적 자유다. 프랑스 대혁명에서 발생한 모순과 충돌이 대단히 컸던 탓에 프랑스인은 그들 구호(자유, 평등, 박애) 중 자유를 자연적 자유, 곧 구속받지 않고 자기 멋대로 하는 자유로 이해했다. 그들은 혁명 전 사회에서 수많은 불합리한 제한과 압박을 받았고, 혁명으로 이 제한과 압박을 깨부쉈으므로 그 결과 모두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살 수 있게 됐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토크빌은 미국이 자유로운 국가지만 미국인이 자기 국가에서 누리는 자유는 결코 자연적 자유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미국인의 자유는 처음부터 영국인에게서 쟁취한 것, 곧 시민적 자유, 공민적 자유라고 본 것이다. 미국 독립 혁명의 기원은 식민지 백성이 모국 영국 시민과 동등한 권리를 가지겠다고 요구한 것이다. 그들은 임의로 조종당하거나 자기 재산을 침범당하지 않는 기본적 자유를 원했다. 이러한 자유는 시민적 자유이며, 특정한 권리 영역에서의 자유이지 프랑스인이 생각한 전면적이고 보편적이며 무한정의 자유가 아니다.



토크빌은 프랑스인이 이러한 공공 정신을 훈련받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공공 정신은 시민의 기본 조건이다. 미국은 시민이 국가를 이루지만 프랑스에는 시민이 없고 속민(subjects)만이 있을 뿐이다. 시민은 공공사무를 자신의 일로 여기지만 속민을 공공사무를 윗사람 일로, 자신을 관리하는 사람의 일로 생각한다. 이것은 간단하지만 중대한 차이다. 토크빌은 프랑스 독자들에게 미국의 민주주의를 설명하면서 자극적인 방식을 선택한다. “대혁명 이래로 프랑스인은 줄곧 시민을 소리 높여 외쳤다. 심지어 입으로는 모든 사람을 시민이라고 불렀다. 시민 말고는 다른 존재가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러한 ‘온 거리를 가득 채운 시민’의 사회는 사실 말로만 시민이었을 뿐이다. 프랑스인은 그토록 시민을 떠들썩하게 외쳐 댔지만 모두 뼛속은 여전히 속민이었다. 진정한 시민이 될 수 없어서 시민을 입에 달고 살았는지도 모른다.”



토크빌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미국 정치의 근본이 고도의 독립성을 갖춘 타운 그리고 마찬가지로 고도의 독립성을 가진 주라고 해석합니다. 연방 대통령은 주지사에게 지시를 할 수 없다. 처음부터 타운의 행정은 시민이 선출한 공공사무위원이 책임지고 처리한다. 타운에는 심지어 대표도 없다. 모든 타운은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단위로서, 주에는 주 의회가 있어서 각 타운의 법률과 규범을 제정한다. 하지만 주의 법규 범위 밖에서는 타운이 직접 민주주의로 운영되는 타운 집회를 통해 자신의 처리 방법을 결정한다. 주는 여타 타운을 대표하고, 연방 내의 다른 각 주와 관련을 맺기도 하지만, 주 정부는 여전히 임의로 타운의 독립권을 간섭하거나 침범할 수 없다.



이것이 토크빌이 19세기에 본 미국의 상황이다. 그 이후로 미국 정치에는 여러 가지 변동이 생겼다. 하지만 이러한 구조, 특히 구조에 깔린 설계의 정신은 줄곧 보존되었다. 미국 정치의 실체는 자립적인 단위로서의 수천 개, 수만 개의 타운이며 대부분의 권력은 이러한 위계로 배치되었다.” <미국의 민주주의를 읽다> pp. 170-174.



















“자유가 전제되지 않으면 칸트의 도덕법칙은 의미를 상실한다. 자유롭지 않은 존재에게 도덕법칙을 명하는 것은 난센스다. 칸트는 “너는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너는 해야 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너는 자유롭다. 너는 도덕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거꾸로 말해, 너는 도덕적 존재이기에 분명 자유로운 존재일 것이다. 자유로운 의지가 지향하는 궁극의 가치는 최고선이다. 그리고 자유의지가 최고선으로 나아가게 해주는 두 조건은 바로 영혼불멸과 신인 것이다.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이며, 자신의 영혼이 불멸한다는 것 그리고 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요청함으로써 최고선을 지향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실천이성의 요청’, 나아가 ‘실천이성의 우위’다.



홉스 철학의 의미도 절대왕정의 옹호라는 그 표면상의 주장이 아니라, 바로 철저한 ‘개인주의’, 합리적으로 계산해서 자신 이익(자유의지)을 추구하는 개인이라는 개념을 제시한 점에 있다. 개인들이 계약을 통해 자신들 주권을 ‘양도’한다면, 거기에는 그 어떤 다른 이유도 없다. 오로지 그것이 자신에게 이익이 되리라는 철저한 계산의 결과일 뿐이다.



하지만 그가 결과적으로 구성해낸 국가 모습은 개인의 자유의지와 모순된 것이 아닐 수 없다. 일단 개개인의 권리의 ‘양도’를 통해 성립한 홉스의 리바이어던에서 모든 안전과 번영은 적으로 국가 몫이며, 개개인들에게 외적인 방식으로만 가능한 것이 된다. 개개인의 집합은 다중일 뿐이며, 국가라는 끈이 없다면 이 다중은 그저 무질서하게 흩어져 있는 구슬에 불과한 존재들이다. 여기에는 오직 국가가 외적으로 부여하는 정치만이 있을 뿐, 개개인들의 내적인 힘[자유의지]을 통해서 그들 사이에서 성립하는 정치는 존재할 수 없다. 홉스의 세계에서는 국가와 다중이 있을 뿐, 개개인들이 서로간의 관계를 통해서 형성하는 ‘사회’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국가의 법과 시민사회 고유의 도덕, 관습, 문화 차원들 사이의 구분도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국가라는 주물과 그것이 형태를 찍어낼 때 사용되는 재료로서의 다중이라는 구도를 극복하고서 시민사회의 자율성, 시민사회라는 고유한 차원을 창조해낸 것이 근대적 정치의 가장 핵심적인 성취하는 점을 감안한다면, 홉스의 정치철학은 오히려 전근대적인, 아니 전근대보다 더 후퇴한 그 무엇이라고까지 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그 이론적 구성 과정에서 전제되는 강렬한 개인주의와 그 구성 결과에서 나타나는 강렬한 반-개인주의가 드러내는 모순이야말로 홉스 정치철학의 핵심적인 한계라 할 수 있다.



로크에게 자연권의 기초는 사유재산이다. 로크는 자신이 확립한 경험적 주체 개념에 입각해 정치적 주체를 사유했다. 인식론적 맥락에서 주체적 경험은 곧 ‘인식’이다. 이에 비해 정치철학적 맥락에서 주체적 경험은 바로 ‘노동’이다. 인식의 주인공이 마음[자유의지]라면 노동의 주인공은 몸이다. 노동이란 한 주체가 자연을 가공해 변형하고, 그 변형을 통해 그 자신도 변형되는 과정이다. 이때 가공된 대상은 곧 노동주체의 ‘소유’가 되며(노동가치설), 그 소유를 통해서 주체는 그 자신의 고유한 것으로서 ‘property’를 가지게 된다. 노동은 이렇게 한 주체 고유의 ‘property’를 생성시키는데, 노동 이전에 한 개인이 천부인권으로서 소유하는 것은 생명과 자유이므로 결국 한 개인의 ‘property’는 그의 생명과 자유, 재산을 뜻한다.



다만 내전 시대를 살았던 홉스에게 생명이 가장 소중했다면, 명예혁명 시대를 살았던 로크에게는 재산이 가장 중요했다. 로크 사유에서는 사유재산을 가지고서 사회계약을 하는 것이지 사회계약을 통해서 사유재산이 분배되는 것이 아니다. 생명과 자유만이 아니라 사유재산 또한 자연권인 것이다. 스피노자에게서의 자연권은 한 주체의 ‘존재’ 즉 내적인 역량이지만, 로크에게서는 그의 ‘가진 것’ 즉 외적인 소유다. 이것은 형이상학자인 스피노자와 경험주의자인 로크 차이이기도 하다. 하지만 경험주의자인 로크가 당대 현실을 상세하게 관찰하기보다는 원시적인 상황을 상정해 논의를 전개한 것은 묘하게 느껴진다. <통치론>의 저자 로크는 자신이 <인간지성론>의 저자라는 사실을 잊고 있는 것 같다. 로크 정치철학의 이런 경향은 영국 중산층에게 유리했는데, 사유재산을 절대시하는 것은 곧 위로는 권력자들의 강제적 탈취를 부정하는 것이고 아래로는 하층민들의 무력 도발을 부정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로크의 저작이 18세기 이래 본격화되는 ‘자유주의’ 철학의 성경이 된 것은 바로 사유재산에 대한 이런 절대 시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철학사 3>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기회가 평등하게 주어지고 기회를 제한하는 어떤 구조도 없다. 모든 사람은 재산을 늘리고 쌓을 권리와 기회가 있다. 다시 말해 평등한 사회에서는 신분의 높고 낮음은 사라져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분 차이가 중요하지 않게 된다. 귀족이나 평민, 승려, 장인, 농부 등이 모두 같아진다. 그래서 사회 지위를 결정하는 기준이 재산이 많고 적음에 따르게 되는 경향을 피할 수 없다. 돈이 있으면 부러움을 받고 존경을 얻을 수 있는데, 이는 평등한 사회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불평등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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