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관찰하는 대상이 

자연 그 자체가 아니라

과학 방법론에 노출된 자연 일부라는

사실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 하이젠베르크







‘진리는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에 ‘모르겠다’로 답한다면, 그 믿음은 회의주의(상대주의)다. 인간 한계로 진리가 있는지 알 수 없다는 주장이다. 회의주의는 진리가 존재한다고 믿는 절대주의(객관주의)와는 다르다. 대표적인 회의주의자는 고대 그리스의 소피스트인 프로타고라스다. 그는 호모 멘수라(homo mensura), 즉 “인간이 만물의 척도다”라고 회의주의를 명쾌하게 정의했다. 프로타고라스는 유일무이한 진리를 발견할 수 없으며, 특정 조건에서 특정인에게 주어지는 진리만 있다고 말했다. 상반되는 주장이라도 다른 사람이나 다른 시기에  모두 똑같이 진실일 수 있다는 말이다. 모든 진리와 선, 아름다움은 상대적이고 주관적이다. 따라서 모든 것의 기준이나 척도는 인간 자신일 수밖에 없다. 프로타고라스는 아테네 민회에서 자신 회의론을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나는 신들이 존재하는지 안하는지, 그들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른다. 많은 것이 우리 인식을 혼란하게 한다. 대상은 모호하고 우리 인생은 너무 짧다.” 아테네 민회는 신에 대한 프로타고라스의 부정적 견해에 당황해하며, 그를 추방하고 모든 아테네인에게 그의 책을 불태워 버릴 것을 명령했다. 

















과학 이외에 다른 분야라면 시대나 문화 변천에 따라 서로 다른 ‘진리’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도 있다. 과학은 회의주의(상대주의)를 거부한다. 과학은 객관적이다. 공정하고 객관적인 탐구방법과 증거에 기초한다. 과학자들은 가설을 세우고, 실험을 통해 검증한다. 같은 결과가 반복해서 나오고 방법상 어떠한 오류도 없다면 가설은 이론으로 살아남는다. 이 규칙은 엄격하게 적용된다. 과학에서 진리를 찾는 데는 특별한 변명거리가 필요하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어떤 진리를 말하는 것일까? 같은 진리일지라도 시대마다 서로 달라 보였다. 고전역학에서 뉴턴은 중력을 ‘서로 당김[만유인력]’이라고 보았고, 근대역학에서 아인슈타인은 같은 중력을 ‘공간의 휘어짐’이라고 보았다. 과학자는 외부 대상을 연구하지만, 그들이 다루는 것은 자연 그 자체가 아니라 인간 지식과 경험이 반영된 것이다. 자연의 법칙은 가설, 곧 과학자의 직관과 마음에서 태어났기에 우리는 과학자들 마음을 살펴보는 것으로 자연법칙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다. 닐스 보어는 “물리학은 객관적인 자연에 대한 연구가 아니라 인간의 경험을 정리하고 조사하는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눈이 아니라 뇌가 물체를 인식한다. 실재를 알기 위해서는 뇌 안에 이미 세계를 바라보는 형식이 존재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눈을 통해 뇌에 들어온 신호는 어떤 의미도 갖지 못한다. 뇌는 무질서한 신호를 분류하고 재배열하고, 때론 무시하며 의미를 부여한다. 실재는 뇌가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렇기에 간혹 착시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비트겐슈타인 말을 인용하면, “당신은 보고자 하는 것만 보는 것”이다. 그렇지만, 과학자들은 자연에 수학 형태의 법칙이 실제 존재하기에 자연에 객관적인 법칙이 존재한다고 한다고 항변한다. 하지만, 예를 들어, 케플러의 제1 법칙도 행성 궤도가 타원에 가까울 뿐이다. 실제 자연을 아주 비슷하게 기술한 자연에 대한 근사일 뿐이다. 과학자들은 실제 복잡한 자연 세계의 여러 조건 중 특정 조건에만 초점을 맞춘 뒤 과학법칙을 얻어낸다. 그래서 많은 과학법칙이 수학적 형태를 띠고 있다. 자연이 ‘수학이라는 언어’로 쓰였기 때문이 아니다. 자연에서 수학적 관계를 만족하는 특정 변수에만 초점을 맞춰서 변수 사이에 연관 관계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과학은 법칙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낸다.


















그러므로 외부 세계를 관찰하는 행위는 항상 기존 지식과 경험에 바탕을 둔 ‘이론 부가’(theory-burdened)적이다. 결국 우리 지식이나 경험은 그 지식이나 경험이 예상되는 기대 범위 내에서 관찰자에게 인식된다. 그렇지 않은 것은 의미가 없거나 부적절한 것으로 거부된다. 이것은 구조, 즉 게슈탈트가 모든 인식과 모든 행동을 조절한다는 의미다. 구조는 모든 인간 활동이 일어나는 모든 상황을 이해할 수 있도록 견해를 제시한다. 구조는 가치를 결정하고 의미를 부여하며, 도덕과 윤리, 목표, 목적을 결정한다. 따라서 ‘과학이 찾는 진리란 어떤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진리는 현대 구조에 의해 정의된다’라는 답변밖에는 구할 수 없다.



구조는 연구 과정과 절차를 제공한다. 연구자들은 증거를 수집하지만, 증거가 받아들여지거나 거부되는 판단은 이미 구조에 의해 부여된 가치들에 좌우된다. 사건과 관계없다고 여겨지는 어떤 데이터도 무시될 것이다. 따라서 과학은 무엇보다도 대상이 어떻게 보이느냐에 관한 학문이 아니다. 과학은 객관적인 것도 아니며 편견이 없는 것도 아니다. 자연에 관한 모든 관찰은 이론이 스며들기 때문이다. 자연은 너무나 복잡하고 너무 임의적이기에, 자연에 관한 특정 사실을 예상하는 체계적인 도구를 이용해서만이 접근할 수 있다. 이러한 패턴이 없다면, 심지어 ‘내가 무엇을 보고 있는가’라는 단순한 물음에조차 답할 수가 없다. 미지 세계는 구조 용어로 먼저 정의되어야만 조사가 가능하다. 이것이 함축하는 바는 과학은 오직 동시대 용어로 정의되고 동시대 도구로 연구된 동시대 문제에만 답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진리는 인위적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모든 시기의 모든 견해는 마찬가지로 타당성을 지니고 있다. 절대적인 실재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론이 변하면 우주도 변한다. 진리는 상대적이다.



물리학자이자 심리학자, 생리학자, 역사학자인 에른스트 마흐는 어떠한 형태의 절대주의도 반대했다. 마흐는 모든 이론과 법칙이 현상을 묘사하고 예측하기 위해 고안된 계산상 장치에 불과하다는 조지 버클리의 자연에 대한 도구주의 견해에 동의했다. 이론과 법칙은 실재를 설명하지 않는다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시간과 공간이라고 부르는 것은 오직 특정한 현상을 통해서만 인식된다. 공간과 시간 결정은 다른 현상을 결정하는 방식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우리는 별 위치를 시간 견지에서 정의 내리는데, 그것은 실제로는 지구 위치에서 본 견지에서다. 공간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다른 현상과 견주어진 결정에 비추어 눈앞에서 벌어지는 것으로부터 위치를 인식한다. 질량과 속도, 그에 따르는 힘은 모두 상대적인 것이다. 절대적으로 결정될 수 있는 것은 없다. 우리가 마주치는 것, 우리가 받는 힘 모두 상대적이다. 프톨레마이오스 또는 코페르니쿠스 설은 하나의 해석일 뿐이다. 하지만 둘 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아인슈타인은 마흐에게 크게 영향을 받고 상대성원리를 내놓았다. 더욱이 하이젠베르크가 주장했듯이 실재를 묘사할 때는 언제나 근원적이고도 불확실성이 동반되고 관찰자는 관찰하는 동안 그 현상을 변하게 할 수밖에 없다.
















철학자 이사야 벌린은 진리는 영원하지 않다며 이렇게 말한다. “글로 썼건 또박또박 명시했건 냉철한 시간에 분별 있는 인간들이 얻어낸 것일지라도 뭐든지 얄팍한 피상적인 것에 불과하며, 똑같이 건전하고 똑같이 이성적인 다른 사람들이 논박하고 나서면 붕괴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그런 것은 실재에 참된 기반을 두고 있지 않다.” 근대 회의주의 철학자 데이비드 흄도 우리가 궁극적 실재의 본질을 결코 알 수 없다고 주장한다. 궁극적 실재의 본질을 알 수 있다고 주장하는 철학자은 무뢰한이거나 바보이다. 바보라 함은, 우리 인간이 감각 지각으로만 지식을 얻을 수 있으므로 궁극 실재에 대한 지식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그들이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를 무뢰한이라고 하는 것은 지식 한계를 알면서 자신의 그릇된 철학을 따르라고 우리를 설득하기 때문이다. 

















흄에 따르면 우리 정신은 오히려 일종의 신체 반응으로, 이성은 개인 생존과 욕망 실현을 위해 필요한 분석적, 계산적 기능에 지나지 않는다. 도덕률 또한 욕망을 실현하기 위한 사회적 묵계 산물로 인간 본성 산물이지 객관적 진리와 무관하다. 근대 유럽철학은 흄에 이르러 비로소 진리라는 몽상과 이 몽상에 바탕을 둔 독단의 잠에서 깨어났다. 불완전한 이성 한계를 자각해야 한다. 이성 한계는 경험이다. 이성이 경험을 넘어서면 필요 없는 사변에 빠질 수밖에 없고, 이것은 독단과 몽상으로 이어진다는 것이 흄 철학의 기초다. 그렇다고 해서 경험을 논거로 삼을 수도 없다. 경험을 논거로 삼을 수 없는 이유는 경험 자체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흄은 독단에 대해 비판하고, 상식에 맹종하는 일상 태도에 경종을 울린다. 그리고 우리가 언제나 상식을 비판하고 교정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한다. 흄에 따르면, 나의 손가락 생채기보다 전 세계 파멸을 선택하는 것이 이성과 상충되지 않으며, 낯선 사람 편의를 위해 나 자신 파산을 선택하더라도 이성과 상충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이성은 정념의 노예일 뿐이다. 즉 이성은 진리를 인식하고 자신 자유의지에 따라 정념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정념의 실현을 위해 이후에 이성을 사용한다.  
















그런데 진리가 있는지 알 수 없다고 말하는 회의주의자들은 자신 주장을 증명할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 진리가 있는지 ‘모르겠다’라는 주장 자체가 그러한 진리를 인정한 것이기에 자기모순에 빠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회의주의자들은 종종 웃음거리가 된다. “세계는 환상에 불과하다”(아낙사르코스)라고 말한다면 그렇게 말하는 아낙사르코스 자신도 환상에 불과하고, 따라서 그의 말을 신뢰할 수 없다. 누군가가 “모든 진리 주장은 알고 보면 권력욕의 표출에 불과하다”라고 말한다면, 이 명제 자체도 그 사람의 권력욕의 표출에 불과하게 된다. 사실 이러한 ‘자기지시’(self-reference)의 모순은 흔한 일이다. 이해하고자 하는 대상이 이해의 주체인 ‘내’ 자신이 될 때는 필연적으로 풀기 어려운 자기지시 문제를 만들어낸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거짓말쟁이의 역설’이나 러셀의 ‘이발사의 역설’이다. ‘지금 내가 하는 말은 거짓이다’ 혹은 ‘이 이발사는 스스로 머리를 깍지 않는 마을 모든 사람만의 머리를 깍아준다’라는 참과 거짓을 말할 수 없는 역설이 존재한다. 참도 거짓도 될 수 없는 이유는 이 같은 문제가 자기 스스로를 가리키는 자기지시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역설을 언급하는 이유는 우리가 진리라고 인식하는 것을 잘못 이해하고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거짓말쟁이 역설은 참과 거짓을 구별하는 것이 생각보다 까다로울 수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발사의 역설은 사물을 속성에 따라 서로 다른 집단으로 분류하는 것이 얼마나 복잡한 일인지 보여준다. 이처럼 진리를 아는 것 자체가 논리적으로 불가능할 수 있다.
















철학자 섹시투스 엠피리쿠스는 회의주의가 함축하는 이런 자기지시 문제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그것을 좀 더 유연한 형태로 변환시켰다. 엠피리쿠스는 진정한 회의주의자라면 ‘어떤 것도 알 수 없다’라는 식의 모순된 주장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회의주의자는 판단을 유보할 뿐이다. 회의주의 목적은 진리가 존재한다는 독단주의를 치유하여 마음의 평온을 얻는 것이다. 회의주의 핵심은 다음 구절에 담겨 있다. “회의주의란 어떤 방식으로든 감각된 것들과 생각된 것들을 대립시키는 능력이다. 이때 서로 대립하는 대상과 생각이 팽팽히 맞서기에, 우리는 판단중지(epoche)에 이르게 되며, 그로써 평온함(ataraxia)에 도달하게 된다.” 회의주의는 일종의 치유다. 독단주의자를 치유함으로써 독단이 가져올 문제점을 풀고자 하는 것이다. 회의주의 목적은 독단주의자들, 즉 확고한 의견을 가진 자들의 자만과 경솔을 치유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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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진화는 

헤겔주의자나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어떤 목표를 향해 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어떠한 방향도, 

어떠한 최종단계도, 

어떠한 완성도 있을 수 없는 

맹목적인 누적적 인과관계의 체계다.” 

- 쇼스타인 베블런







인간이 진보를 이룩해 낸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중단되지 않고 멈추지 말아야 할 ‘진보’에 대한 믿음은 이 시대에 진정한 종교와도 같은 힘을 갖고 있다. 사람들은 가난했던 옛날을 경멸하고 비웃는다. 오늘날 우리 각자는 고대 로마의 어떤 황제보다도 더 큰 힘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진보는 나날이 발전하는 새로운 과학과 기계문명의 기적에 의해 명백하게 입증된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우리가 지금까지 성취한 수십 년을 앞으로 더 나은 진보와 발전의 예비 단계로 여긴다. 철학자 프란시스 베이컨도 진보라는 개념을 믿었다. “세상은 점점 나이를 먹어가므로 지난 시대는 언제나 고대다. 지금 우리 시대도 지나고 나면 곧 고대가 된다.” 그는 어른이 아이보다 더 지혜롭듯이 후세 사람들이 과거보다 더 많은 지식을 축적한다고 보았다.



하지만 고대 문명은 주로 정적이거나 순환적인 우주관을 믿었다. 초기 히브리인들 철학을 엿볼 수 있는 성경 <전도서>를 보면 그들의 순환관을 알 수 있다. “우주는 어떠한 목적도 없이 영원히 떠도는 하나의 기계다. 일출과 일몰, 탄생과 죽음은 단지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순환일 뿐이다. 그리고 ‘태양 아래에서 새 것이란 없다.”(<전도서> 1:9)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등 고대 그리스인들도 문명이 황금시대를 지나면 몰락한다는 순환론을 믿었다. 군주정은 참주정을 낳고, 참주정은 귀족정, 과두정, 민주정, 무정부주의를 거쳐 다시 군주정으로 돌아간다는 식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름지기 ‘사회적 생명’은 순환적인데도 사람들이 그걸 도무지 깨닫지 못하는 까닭은 사이클 국면이 인간 수명보다 길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유럽 중세 사상가들에게도 완전한 지식은 과거에 속했다. 최초 인간인 아담은 에덴동산에서 모든 것을 알고 있었지만 아담의 지혜는 이브와 함께 금단의 열매를 먹고 낙원에서 쫓겨난 후 점차 잊혀졌다. 따라서 중세 사상가들은 진보에 대한 의식이 없었으며, 지식이란 과거 사람들이 알았던 것을 찾아내어 복원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앞선 시기 사상가일수록 아담과 더 가깝기에 아담 지혜를 더 많이 기억할 것이라고 여긴 것이다. 그러므로 중세 사상가들은 스스로 새로운 지식을 발견할 수 있다고 여기지 않고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과거 사상가들을 연구했다. 과거 중국인들도 사람이 희망할 수 있는 최상의 것은 고대에 있었던 황금시대를 재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공자는 자신이 당시 지혜에 아무런 보탬이 되지 못했다고 믿었다. 어떻게 보면, 자신 사상이 새로운 것이라는 사실을 부정한 그의 태도는 전적으로 옳았다. 공자는 깊은 향수에 잠겨 주나라 초기시대, 그보다 오래된 은과 하의 시대, 전설적인 삼황오제 시대를 되돌아보았다. 과거를 바라보는 그런 눈으로, 공자는 당대 핵심문제와 씨름했다. 묵자도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이 자기에게 이익을 안겨 줄 도구를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국가는 더욱더 무질서해진다. 교활하고 빈틈없는 행동이 많아질수록 이상한 간계도 많아진다. 법을 내세우면 내세울수록 도둑과 강도도 많아진다. 사람들이 옛날로 돌아가면 거친 음식도 맛나게 생각하고, 검소한 옷도 아름답게, 누추한 처소도 안식처로, 평범한 일도 즐거움의 원천으로 생각할 것이다.”


















그러다 18세기 유럽 계몽주의 시대에 이성 중심의 합리주의적 사고로 역사가 진보한다는 진보 사상이 형성되었다. 계몽 사상가들은 각 시대가 새로운 지식을 첨가함으로써 인간 지식과 경험이 더 풍부해진다고 확신했다. 그들에게 역사 진행 속 지식과 경험 축적은 진보를 의미했다. 따라서 그들은 인간이 이성에 근거해서 고대시기에 대한 숭배와 교회의 도그마적 신앙에서 벗어나 진보한다고 생각했다. 계몽주의 철학자 칸트는 역사에는 우주적 목적이 있으며, 인간은 자연법에 따르는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게 그 목적의 인도를 받는다고 생각했다. 칸트는 뉴턴이 행성 법칙을 밝힌 것처럼 역사와 진보의 자연법도 원칙적으로 발견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인간 내부에는 언제나 이웃 이익을 돌보는 사회적 존재와 자기 자신만 돌보고 성공과 독립을 실현하려는 이기적 존재의 갈등이 있다. 이 항구적인 갈등이 시대에 따라 변하면서 사회적 영역과 개인적 영역에서 모두 진보를 이끌어낸다. 이 창조적 갈등이 최고조에 달하려면 강력한 국가로 사회생활을 규제하면서 개인적 자유를 최대한 허용해 개성이 살아나도록 해야 한다. 칸트는 진보의 도덕적 개념을 명확히 규정했다. 그 목적은 최대 다수가 자유로이 자신 개성을 구현하면서 이웃을 돌보는 데 있다.

















초기 사회학자인 생시몽도 진보 이론을 내세웠다. 당시 신흥 사회과학이었던 사회학에서는 진보의 개념이 주요한 초점이었다. 그는 진보를 단지 이론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현하는 데 관심이 많았다. (이런 의미에서 사회학 탄생은 그 자체로 진보의 일환이었다.) 다음은 잘 알려진 그의 글이다. “시인의 상상력은 황금시대를 인류의 요람에서 찾았다. 하지만 그들이 정작 찾은 것은 철의 시대였다. 황금시대는 우리 과거에 있지 않고 우리 미래에 있다. 사회 질서가 완성되는 것이 곧 황금시대다. 우리 조상들은 그것을 보지 못했고 장차 우리 후손들은 거기에 도달할 것이다. 그 길을 닦는 게 우리 임무다.” 프랑스 혁명의 폭력과 비합리성에 환멸을 느낀 생시몽은 산업화만이 유일한 전진의 길이라는 믿음에서 기계를 옹호하는 데 앞장섰다.



계몽주의 시대인 18세기 특징은 자연과학의 방법과 방식을 처음으로 인간에게 적용하려 한 데 있었다. 물리학이나 화학, 생물학 등 자연과학은 커다란 진보를 이루었다. 그 반면에 심리학이나 사회학, 경제학 등 인문과학은 대폭적인 합의를 이루지 못했고, 예측의 힘도 발휘하지 못했다. 당시 사회과학자들은 지리적 혹은 문화적 성격을 가졌던 ‘지역’에 관한 연구를 법칙정립적 학문들과 융화시키기 위해 천재적인 지적 대안을 만들었다. 이것이 바로 ‘발전’(development) 개념이었다. 독립적인 단위의 사회가 모두 동일한 기본방식으로 하지만 서로 다른 속도로 발전한다는 가정이었다. 사실 이 요술에는 실용적인 측면이 있었다. ‘가장 발전한’ 국가는 자신을 ‘덜 발전한’ 국가들에게 모델로서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하였고, 덜 발전한 국가들로 하여금 자신 모델을 모방하도록 부추겼고, 그 무지개 끝에는 보다 높은 수준과 보다 자유로운 정부구조(정치적 발전)가 놓여 있다는 약속을 제시했다.” 















우리에게 연 경제 성장률 2퍼센트나 3퍼센트는 낮아 보이지만, 분석에 따르면 경제 성장을 우선시하는 사회의 붕괴와 종말은 2030년부터 2070년 사이로 잡고 있다. 부의 축적이라는 꿈은 그때가 되면 악몽으로 뒤바뀔 것이다. 양적인 망상은 ‘복리(複利)의 위압적인 효력’ 하에 우리를 견딜 수 없는 상황으로 전락시킬 것이다. 일인당 국민 총생산이 연 3.5퍼센트 증대하면 경제 규모는 100년 후 31배가 된다. 중국의 현재 경제 성장률(연 10퍼센트)를 가정할 경우 경제 규모는 7년 후 2배가 되고, 100년 후에는 736배가 될 것이다. 중국 경제 성장은 또 다른 의미도 갖고 있다. 중국 환경부에 따르면 중국 경제 성장이 유발하는 생태계 파괴의 연간 비용은 그 국내 총생산의 10퍼센트 또는 12퍼센트에 해당한다. 즉 국가 경제 성장률과 똑같은 수준이다. 시간 경과에 따라 경제 성장이 만족스러운 삶을 자동으로 만들어낸다면 지금쯤 우리는 진정한 낙원 속에서 생활하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 눈앞에는 지옥이 기다리고 있다. 이 아찔할 정도의 경제 성장은 생태계 파괴의 증가를 의미한다. 국민 총생산이 마치 ‘국민 삶의 질의 총계’ ‘국민 쾌락의 총계’ ‘국민 행복도의 총계’ 혹은 ‘국민 완성도의 총계’를 의미하는 것처럼 취급되는 경향이 있지만, ‘국민 총생산 = 국민 오염 생산의 총계’라는 방정식은 여전히 유효하다. 















하지만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유럽 일부 ‘진보된’ 지역에서조차 대부분 사람이 가졌던 최고 희망은 그저 육체를 보존하고, 식구들이 한데 모여 살고, 머리에 지붕이 있는 집이 있고, 충분한 옷을 가지기에 충분할 정도만큼 버는 것이었다. 따라서 당시에는 역사가 진보한다는 주장은 ‘발전된’ 나라에서도 그다지 동의를 얻지 못했다. 후진지역에서도 진보라는 개념은 환영받지 못한 개념이었다는 점 또한 분명한 사실이었다. 후진지역 사람들에게 진보란 침략이나 기껏해야 착취, 억압, 고향으로부터의 박탈, 떠돌이 생활 등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것이란 특히 도시 사람들과 외국인들이 외부에서 수입했던 까닭에, 뭔가 개선을 가져다주는 것이라기보다는 옛날의 정착된 방식을 방해하는 그 무엇으로 간주되었다. 그것이 거추장스러움을 가져왔다는 증거는 엄청나게 많다. 새로운 것이 개선을 가져온다는 증거는 확실하지도 않았고 불투명했다. 세계는 진보하지도 않았고, 진보한다고 생각되지도 않았다. 어떤 경우이든 옛날의 지혜와 방식이 최고였으며, 진보란 젊은이가 늙은이를 가르칠 수도 있다는 식의 의미를 함의했다. 
















사실 인류는 전진하거나 후퇴할 수 없다. 인류는 행동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집합적 실체는 의도나 목적을 지닐 수 없다. 스피노자는 인류를 포함한 모든 것을 목적론으로 결부시키는 시도를 거부했다. “사람들 편견은 모든 자연물도 어떤 목적을 위해 작용한다고 추측하며, 게다가 신이 모든 만물을 어떤 목적에 따라 이끈다고 확신한다. 사람들은 신이 인간을 위해 모든 만물을 만들었으며 신을 숭배하도록 인간을 만들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자연은 자신에게 아무런 목적도 설정하지 않으며, 모든 목적인(目的因)은 인간이 만들어낸 허구에 불과하다.” 정치철학자 존 그레이도 인류 진보는 열정과 환상일 뿐이라고 말한다. “과학 지식 발전도 이러한 사실을 바꾸지 못한다. 진보를 믿는 사회민주주의자나 신자유주의자, 마르크스주의자, 무정부주의자나 과학기술을 믿는 실증주의자는 윤리와 정치를 과학과 동일하다고 생각하기에 지금 내딛는 한 걸음이 미래 진보를 가져온다고 믿으며 사회 발전은 누적된다고 믿는다. 즉 하나의 악을 제거하고 나면 그 다음 악을 제거할 수 있고 이 과정이 영원히 반복된다. 하지만 인간사는 그렇게 누적되지 않는다. 이미 성취한 것이라도 눈 깜박할 사이에 잃어버릴 수 있다. 인간 지식은 증가하는 경향이 있지만, 그 결과 인간 문명 수준이 더 높아지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모든 형태의 야만에 빠질 수 있다. 지식 성장은 인간의 물적 조건을 향상시키지만, 인간 사이에 빚어지는 갈등의 야만성 또한 증폭시켰다.” 















문명 수준이 더 높고 진보했다고 믿는 현대인이 윤리 측면에서 원시인보다 더 나은 것도 아니다. 역사학자 윌 듀런트는 설득력있는 한 가지 사례를 제시한다. 한번은 영국인이 ‘원시인’ 사모아인에게 런던 빈민에 관해 이야기 해 주자 그 ‘야만인’은 깜짝 놀라 이렇게 물었다. “도대체 어떻게요? 음식이 없다고요? 친구도 없어요? 살 집이 없다고요? 그 사람이 자란 곳이 어디인데요? 그의 친구가 가진 집도 없어요?” 그들에게는 마을 어딘가에 옥수수가 자라는 한 음식이 모자라는 사람이 있을 수 없다. ‘원시인’ 호텐토트족 경우, 다른 사람보다 많이 가진 자가 있으면 모두 똑같아질 때까지 잉여분을 나누는 것이 관례다. 이들은 배고픈 자를 돌보지 않았다고 비난받느니 차라리 자기 배가 고프고 마는 편을 택한다. 그들은 스스로를 하나의 커다란 가족으로 생각한다. 
















‘진보’라는 목적론이 그럴듯해 보이는 것은 설명이 가능한 건 필연이고 설명이 불가능한 것은 우연이라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진보가 필연적이라는 것은 역사가 우연한 사건들의 연속이 아니라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역사에 어떤 법칙이 내재한다는 것을, 그렇게 내재하는 법칙에 의해 역사 흐름이 필연성을 띠고 발전해간다는 것을 말한다. 근대 역사철학은 그런 진보의 필연성에 대한 이론적 증명이다. 원래 목적론은 모든 것을 쉽게 설명하지만 동시에 아무것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모든 사물과 현상을 목적에 비추어 설명하면 결과가 원인이 되는 순환론, 동어반복 성격을 탈피할 수 없다. 현상에서 목적을 빼면 생성만이 남는다. 현상은 목적을 향해 접근하는 과정이 아니라 우연으로 점철된 변화의 과정이며, 무한한 생성의 흐름이다. 생성이 연속적이라는 사실은 너무도 당연한 상식이어서 어떤 면에서는 강조하는 것 자체가 새삼스러워 보인다. 하지만 베르그송은 실증주의자들이 그런 상식을 잊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연속성이란 시간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베르그송에 따르면 ‘살아 있는 것은 생명의 흔적을 시간에 남긴다.’ 그런데 실증주의는 시간 차원을 완전히 배제하고 주체가 대상을 관찰하는 것이 언제나 똑같은 결과를 가져다주는 것으로 착각한다.” 
















목적론적 관점(그리스어로 텔로스, 영어로는 끝과 종말을 의미)에서 역사를 파악하는 기독교들은 역사에 예정된 목적이 있고, 그 목적이 달성되면 역사가 끝나 천년왕국이 도래한다는 역사의 종말을 믿었다. 마르크스와 후쿠야마 같은 사상가들은 기독교의 목적론을 이어받아 '역사의 종말(천년왕국)'이라는 주장의 바탕으로 삼았다.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순환의 통일성을 거부하도록 일반인을 부추기고 ‘우리’와 ‘그들’의 대립구도로 여론을 몰아간다. 서양 전문가들이 의도적으로 잇따라 쏟아내는 경고의 메아리는 언론과 출판을 통해 전 세계로 퍼져나간다. 후쿠야마가 역사의 종말을 떠들더니 버나드 바버가 지하드(성전) 대 ‘맥월드’(맥도날드적 세계)의 대결을 외친다. 로버트 카플란은 임박한 ‘무정부’ 상태를 우려하고 새뮤얼 헌팅턴은 문명의 ‘충돌’을 논한다. ‘악의 제국’ 소련이 붕괴하자 서양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이슬람과 중국을 새로운 위협세력으로 거론한다. 악이 파괴될 수 있다는 신념은 예수의 추종자들이 속한 종말론 분파에서는 핵심적인 신념이었다. 이런 천년왕국 신념이 미국 아들 조지 부시 정부에서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선이 승리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역사에 악이 극복될 종착점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역사를 진보적 운동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그런데 진보했다고 믿어지는 금세기 들어 생산력이 엄청나게 증가했고 또 지금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데도, 극심한 빈곤이 퇴치되거나 고통받는 노동자 짐은 가벼워지지 않는다. 오히려 빈부 격차는 더 심화되고 생존경쟁은 더 치열해지고 있다. 한편에서는 거대한 부를 축적하고 있는데 여전히 굶주리는 사람들이 있다. 이른바 물질적 진보라고 하는 추세는 건강하고 행복한 인생의 필수 요소를 기준으로 볼 때, 최하층 상태를 개선해 주지 못한다. 아니 실제로 최하층 상태를 오히려 압박한다. 물질적 진보는 오랫동안 품어온 희망이나 믿음과 달리 상층에 있는 사람들에게 삶이 향상되었지만, 하층 사람들은 무너지고 있다.



“현실에서 빈곤이 진보와 함께 나타나는 진정한 원인은 생산에 아무런 기여도 하지 않는 지주가 지대(地代)를 차지하는 것을 합법화하는 토지 사유제 때문이다. 진보하는 지역에서 생산력이 증대하는데도 임금과 이자가 상승하지 않는 이유는 지대가 상승하기 때문이다. 향상된 생산력은 지대로 흡수되어 버리고 임금과 이자는 전과 달라지지 않는다.” 그 이유를 자세히 설명하자면, “생산요소는 토지, 노동, 자본이다. 생산물인 부(富)는 이 세 가지 요소에 대한 대가로 모두 분배된다. 즉 지대, 임금, 이자로 분배된다(부=지대+임금+이자). 이중 “지대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부-지대=임금+이자’가 된다. 이처럼 임금과 이자는 노동과 자본의 생산물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물 중 지대를 공제하고 난 뒤 잔여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생산력이 아무리 높아지더라도 지대가 같은 정도로 높아진다면 임금과 이자는 상승할 수 없다. 지대가 지나치게 오르면 노동과 자본은 적은 대가로 만족하거나 생산을 중단할 수밖에 없다. 생산 중단은 수요 중단으로 나타나고, 다시 또 다른 부문의 생산을 제약한다. 지대 또는 토지가치의 투기적 상승은 토지 소유자가 노동과 자본을 배척하는 효과를 낸다. 노동자가 물자 부족을 겪으면서도 실업이 발생한다. 부의 분배가 불평등한 가장 큰 원인은 지대를 전유할 수 있는 토지소유의 불평등 때문이다.” 
















헤겔 역사철학의 가장 중요한 논제는 역사를 자유의식의 진보 과정으로 보는 것이다. “세계사란 자유의식에 있어서의 진보 과정이며, 우리는 그 과정의 필연성을 인식해야 한다.” 우리는 이 진보 이념이 근대 역사철학 전체에 대해 갖는 의미를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근대 역사철학 자체는 진보 이념과 더불어 탄생하고 진보 이념과 더불어 소멸할 것이다. 진보나 경제 발전으로 너무나 큰 부가 극소수 사람에게 집중되는 바람에 연간 소득 분배는 엄청나게 불평등해졌다. 자본가들이 그 어마어마한 부의 보유에서 얻는 연간 소득은 너무나 커서, 아무리 낭비적이고 사치스럽게 소비를 하더라도 여전히 엄청난 양의 과잉 소득 –또는 저축 –이 남게 되어, 이들은 이를 어쩔 수 없이 더 많은 자본축적에 투자하는 것밖에 다른 도리가 없게 된다. 소득 분배는 너무나 불평등하여 심지어 노동자 소비 지출 모두에다 자본가가 실제로 소비할 수 있는 (이들이 아무리 사치를 부린다고 해도 상품을 사와서 소비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라는 궁극적 제약 요소가 있기에 그 양에는 한계가 있다) 모든 돈을 다 합친다고 해도, 자본가가 강제로 저축하게 되는 양은 여전히 엄청나다. 그리고 만약 이 저축을 모두 생산 설비를 늘리는 데 썼다가는 소비재를 생산할 수 있는 생산 능력의 성장 속도가 그 수요(이는 노동자 소득과 자본가가 실제로 소비할 수 있는 최대 능력으로 제한된다)의 성장 속도를 훌쩍 뛰어넘게 된다. 생산 능력이 소비자 수요보다 빠르게 늘어나면 금방 생산 능력의 과잉 상태(소비자 수요에 비추어)가 나타나며, 따라서 국내에는 이윤이 나올 만한 투자처를 찾기가 거의 불가능해진다. 
















해외 투자가 그 유일한 대안이다. 하지만 모든 공업화된 자본주의 나라에서 이와 똑같은 문제가 존재하므로, 그러한 해외 투자는 오직 비자본주의 나라들이 ‘문명화’되고 ‘기독교화’되며 ‘고상해질’ 때만, 즉 그들의 전통적 제도를 강제로 파괴하고 사람들을 시장 자본주의의 보이지 않는 손의 지배 아래로 강제로 끌고올 때만 가능하다. 이제 자본은 국내시장을 넘어서는 더 넒은 경제영역을 개척하기 위해 해외시장에 진출하지 않으면 안 된다. 경제학자 루돌프 힐퍼딩은 자본의 해외수출에서 상품들을 수출하거나 대부자본(화폐자본)을 수출하는 것보다는 해외에서 철도나 공장을 짓는 직접투자가 훨씬 더 경제영역 확대에 기여한다고 주장한다. 해외직접투자는 본국으로부터 화폐자본뿐 아니라 생산재 등 상품들을 수입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해외직접투자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본국 정부의 정치적, 외교적, 군사적 지원이 필수불가결하게 되며, 자본주의 열강 사이에 식민지와 종속국 등 경제영역을 둘러싼 투쟁과 전쟁이 불가피하게 된다고 힐퍼딩은 전망한다. 그리고 힐퍼딩은 금융자본의 경제정책인 제국주의에 대해 프롤레타리아가 “자본주의 타도를 통해 경쟁을 완전히 지양”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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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는 해탈을 심해탈(心解脫)과 혜해탈(慧解脫)로 구분하며, 심해탈은 아공(我空)을 깨달아 아집(我執)을 벗음으로써 가능하고, 혜해탈은 법공(法空)을 깨달아 법집(法執)을 벗음으로써 가능하다고 한다. 특히 자아를 둘러싸고 있는 일체 세간에 대해 그것을 사람 마음을 떠난 객관적 실재라고 간주하고 있는 한, 그것은 잘못된 허망분별의 망집이기에 혜해탈을 이룰 수 없다. 이 망집을 주관적 아(我)와 대비되는 객관적 실재에 대한 집착이란 의미에서 법집이라고 한다. 객관 실재에 대한 집착이 남아 있는 한, 그에 대면하고 있는 자아에 대한 집착 역시 심정적으로만 극복되었을 뿐 이지적 차원에서 그 뿌리는 잔존하고 있다. 일체 법의 분별이 마음의 소산이라는 것, 그 마음을 떠나 아(我)도 법(法)도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심정적으로 아집을 넘어서는 것과는 또 다른 차원에 속하는 일종의 지혜인 것이다. 그것이 곧 일체 법의 공성을 자각하는 법공의 깨달음이다. pp. 219-220.



이렇게 보면 불교에 있어 윤회를 벗어나는 해탈이란 굳이 사후 문제가 아니라, 현생적 삶에 있어서도 발생 가능한 하나의 사건이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자아 또는 객관세계라고 집착하는 것이 모두 그렇게 분별 집착하는 마음을 떠나 그 자체 자기 자성을 갖고 존재하는 객관 실체가 아니라는 것, 모두가 인연화합하여 발생하는 연기적 존재하는 것을 단지 논리적으로가 아니라 직관적으로 깨달아 아는 것은 바로 마음의 자기 자각이며, 그것이 곧 견성(見性: 본래 그대로의 자기 본성을 보는 일 )인 것이다. p. 221. <동서양의 인간 이해>

















“칸트가 자신 철학을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이라고 표현한 바에 따르면, 그는 우리 마음이 세상에 일치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대상이 우리 마음에 일치해야 인식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즉 인식은 우리 마음이 대상에 자신 범주를 부여함으로써 생겨난 현상이다. 우리의 모든 지식은 오직 경험계 구조에 대한 지식이다.“<서양 윤리학사>

















“서양에서 불교에 대한 연구는 16세기 서구의 스리랑카 점령이나 17세기 중국 선교 이후 마테오 리치나 칸트, 라이프니츠, 헤겔, 쇼펜하우어, 니체 등에 의해 행해졌다.”<심층 마음의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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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델은 불완전성의 원리를 발표했다. '적어도 하나의 자연수 이론이 포함된 형식적 체계의 무모순성은 해당 체계 안에서는 증명될 수 없다'를 증명했다. 이 말은 우주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증명되어도, 우주 자체가 증명되는지는 알 수 없다는 의미다. 한 마디로 안에서는 결코 증명될 수 없고, 벗어난 다음에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 현실너머 편>

















‘이 명제는 증명될 수 없다’는 문장은 불확실한 진술이다. 괴델 말처럼 이 문장은 증명될 수 없다. 그 문장이 참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것을 증명할 수 있는 논리 도구가 없는 것이다. 문제는 이 문장이 거짓말쟁이 패러독스와 마찬가지로 자기 자신에게 관한 진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자기 연관성(self-refrence)이 개입된 문장이다. 자기와 관련된 것은 종종 풀 수 없는 모순을 낳는다.



자기 연관성이 초래하는 많은 결과 중 가장 놀라운 점은 우리가 자신을 꿰뚫어볼 능력이 없다는 사실이다. 스스로의 행동을 예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스스로 행동을 예언하려면 스스로 생각을 추월해야 하기 때문이다.<우연의 법칙>


















업력(業力)을 간직한 무의식적 심층 마음이 곧 근본식인 아뢰야식이다. 그런데 아뢰야식은 개인  자신이 행한 과거의 업(業)에 의해서일 뿐만 아니라 다른 개인들과 더불어 함께 살게 되는 공통적 환경세계의 모습을 형성하는 식이기도 하다. 이처럼 공적 세간을 개인의 업의 결과로 간주한다는 것은 곧 불교가 독립적 객관 세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몸담고 사는 세계가 우리 자신과 분리된 별개의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 심층에서 우리 자신과 본질적으로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물질세계는 그렇게 인식하는 개인의 식에 대해 그 식의 경계로서만 존재하는 것이지, 그 식을 떠나 그 자체로 존재하는 객관적 실재가 아닌 것이다. 인간이 인식한 대로의 이 세계는 그렇게 인식하는 인간에 대해서만 그렇게 존재하는 것이지, 인간 아닌 다른 존재, 예를 들어 개나 곤충, 천사에게도 바로 우리에게와 동일한 방식으로 존재할 것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이처럼 동일한 사물도 그것을 인식하는 자에 따라 다르게 인식될 수 있다는 것, 따라서 인식하는 자의 인식을 떠나 객관적 세계 자체를 논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불교에서는 흔히 ‘일수사상(一水四相)’의 비유를 제시한다. 말하자면 같은 물이라 해도 아귀에게는 그것이 피고름으로, 물고기에는 삶의 터전이나 길로, 천인에게는 보석의 땅으로, 인간에게는 마시는 물이나 바다 등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 대상의 상대성에 대한 자각을 유식은 ‘유식무경(唯識無境)’의 깨달음으로 간주한다. pp. 82-83.



인간 의식은 동물적 본능 또는 사회 경제적 권력에 의해 지배받고 규정되는 수동적 산물이다. 개인적 욕망과 그 욕망이 지향하는 사회적 권력이 서로 얽힌 관계에서 인간의 무의식적 본질을 규정하고, 인간의 일상적인 표면적 의식이란 단지 그 무의식이 최종적으로 표면화된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게 해서 이제는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던지는 자가 그 대답을 자기 자신 안에서, 즉 자신 의식 안에서 찾아내려고 하면, 그것은 이미 빗나간 길을 가는 것이 된다. 내가 나 자신을 어떤 존재로 자각하고 인식하는가, 내가 나 자신의 삶을 어떤 방식의 삶이 되도록 결단하는가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어떤 의식적 생각이든 어떤 의지적 결단이든 그 안에 작동하는 무의식적 메커니즘이 들어 있으며, 바로 그 무의식적 메커니즘을 밝혀냄으로써만, 그 생각과 결단의 본질, 한마디로 인간 본질을 제대로 이해한 것이 된다. pp. 110-111. 



대상 세계와 접하여 생겨나는 상(像)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생겨나는 느낌이 바로 수(受)다. 그 다음 그러한 상을 능동적으로 마음에 취하는 것이 바로 상(想), 즉 생각이다. 경계의 상을 취하는 과정에서 각종 명언(名言), 즉 언어를 시설하게 된다. 그 다음 행(行)이란 마음의 조작을 뜻한다. 마음이나 말이나 몸으로 짓게 되는 각종 업(業)이 바로 이 마음의 조작인 행에서 비롯된다. 마지막으로 식(識)이란 세계를 이러저러하게 분별하여 인식하는 과정이다. 우리가 자아라고 생각하며 아끼고 집착하는 것, 자기 자신을 그 안에서 발견하며 자신과 동일시하는 그런 것들이 바로 이러한 몸이나 느낌, 생각, 의지, 인식들에 다름 아니다. pp. 141-142.



불교에 따르면 우리 자아에 대한 집착은 곧 상일주재(常一主宰)적 자아에 대한 집착이다. 다시 말해 변하지 않고 항상되며 단일한 상일(常一)의 자아, 그리고 바로 나 자신이기에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주재(主宰)적 자아가 존재한다고 집착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의 신체나 느낌, 생각이나 의지, 인식 등 그 모든 것은 처음부터 나의 본질로 정해져 있던 것이 아니라, 나의 유전적 조건들 그리고 나를 둘러싼 사회 문화적 쪼는 자연적 환경에 의해 그렇게 형성된 것이며, 따라서 환경 변화에 따라 항상 바뀌어갈 수 있는 그런 것들이다. 그러므로 그 어느 것도 절대적으로 나 쪼는 나의 것이라고 집착할 이유가 없다. 이와 같이 집착할 만한 자아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무아의 깨달음이 바로 해탈로 나아가는 지름길이 된다. 아집을 극복케 할 무아의 깨달음이 어느 정도 심각하게 받아들여져야 하는가는 다음 비유가 잘 말해 주고 있다. p. 145.



어떤 사람이 남의 심부름으로 멀리 가서 빈방에 혼자 있는데, 밤 중에 귀신이 송장 하나를 메고 와서 그의 앞에 던진다. 이내 뒤를 이어 다른 귀신 하나가 따라와서 앞의 귀신을 꾸짖되 "이 시체는 나의 것인데 어째서 네가 메고 왔느냐?" 하니, 앞의 귀신이 답하기를 이 것은 나의 것이므로 내가 메고 왔다" 하였다. 그러나 나중의 귀신이 말하기를 "이 시체는 실로 내가 메고 왔다"고 하여 마침내 두 귀신이 서로 시체의 팔을 하나씩 잡고 다투다가 먼저 귀신이 이렇게 제의를 했다.

"여기 인간이 하나 있으니 그에게 물어보자"

이 말에 따라 나중의 귀신이 물었다.

"이 시체는 누가 메고 왔는가?

그 사람이 생각하기를 "이 두 귀신은 힘이 센데, 사실대로 말해도 내가 죽음을 당할 것이요. 거짓을 말해도 죽음을 당할 것이다. 어차피 죽음을 당할 것이라면 거짓말을 해서 무엇하랴" 하여 사실대로 "그 시체는 앞의 귀신이 메고 왔다"고 하였다.

그러자 나중의 귀신이 화를 내어 그 사람의 팔을 뽑아 땅에 던져 버리니, 먼저 귀신이 시체의 팔 하나를 뽑아다가 그에게 붙여주어 멀쩡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하여 두 팔, 두 다리, 머리, 허리 등 온몸을 모두 시체의 것과 바꿔놓은 뒤에 두 귀신은 뽑아 버린 사람의 몸을 다 먹고 입을 닦으면서 어디론가 가 버렸다.

이 때 그 사람이 생각하였다. "나는 지금 어머니가 낳아 주신 몸을 몽땅 두 귀신에게 먹히고, 나의 이 몸은 몽땅 저 시체의 것이니, 나는 지금 몸이 있는 것인가, 몸이 없는 것인가? 몸이 있다고 하자니 모두 귀신에게 먹히었고, 몸이 없다고 하자니 지금 이렇게 존재하고 있지 않은가?

이렇게 걱정하기를 마치 미친 사람 같더니, 이튿날 아침에 길을 떠나 가다가 목적한 국토에 이르렀는데 불탑과 스님들이 있었다. 그는 찾아가서 다른 말은 하지 않고 오직 "자기의 몸이 있는가, 없는가?"만을 물었다. 비구들이 도리어 묻기를 그대는 누구인가?" 하니, 그는 "나도 사람인지 사람이 아닌지 모르겠소"라고 하면서 지난 일을 자세히 이야기하였다.

비구들은 그 사람이 무아의 도리를 잘 알아서 제도하기 쉬울 것을 알고 그에게 말했다. 그대의 몸은 본래부터 항상 나가 없었다.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다만 사대가 화합하기 때문에 내 몸이라는 생각을 내었을 뿐이니, 그대 본래의 몸이 지금의 것과 다름이 없다." 비구들이 제도해 주니, 도를 닦아 번뇌를 끊고 곧 아라한을 이루었다. 이것이 때로는 남의 몸에 대하여 나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너와 나를 구분하여 나가 있다라고 말하지 못하는 도리이다. pp. 146-147.



이러한 자아관은 어찌 보면 상일주재적 자아개념을 더 이상 간직하고 있지 않은 현대적 인간 이해를 대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공공연히 “주체는 죽었다’를 선언하는 포스트모더니즘적 사유에 따르면 항상된 자기 동일적 자아정체성이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자아는 생물학적 요인들 및 사회 문화적 관계 안에서 형성되고 만들어지는 것일 뿐이다. 자아 또는 인간이란 것 자체가 자연적으로 사회적으로 진화되고 발전되어 온 것이며, 따라서 자아란 그러한 자연적, 사회적 법칙과 관계들을 통해 규정되고 형성된 것이다. pp. 148-149.

<동서양의 인간 이해>






기독교는 신 자신과 그 신에 의해 창조된 일체의 피조물들과의 질적 차이를 강조하기 위해 ‘신으로부터의 창조가 아닌 무로부터의 창조’를 역설한다. 일체의 피조물은 무로부터의 존재이며, 자체 안에 신과 자신을 구분짓게 하는 무성을 지닌 것이다. 피조물의 하나에 불과한 인간 역시 신에 의해 창조되었지만 무로부터 창조되었기에 존재와 무라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결국 기독교적 우주 창조론에 있어 우주 창조를 설명하는 기본 축은 신과 무라는 양 원리다. 이 이원성 안에서 우리는 다시금 희랍적 형상과 질료, 정신과 물질의 이원적 사고방식을 발견하게 된다. 창조에 전제된 무가 정말 순수 무라면, 무로부터의 창조와 신으로부터의 창조가 과연 구분될 수 있겠는가? 우주와 신, 피조물과 창조자, 인간과 신 가의 절대적 구분이 과연 정당화될 수 있겠는가? pp. 102-103 - P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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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소성은 인간 욕망이 무한하고 달성하고픈 목적은 끝이 없는데 수단이 부족할 때를 말한다. 하지만 적게 일하고 적게 먹고 많이 노는 사회”에서도 희소성 원리가 적용될까? 하고픈 일도 없고 되고픈 것도 없는 사람들이 사는 사회에서도 희소성 공리는 보편적으로 적용될까?” 우리는 “인간 운명이 희소성과의 투쟁이라고 선언한 뒤 불철주야 경제 행위에 매진하다 일 중독증이나 과로사에 봉착하고 마는 근대형 인간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어떤 목적이 욕구의 무한함을 불러일으킬 만큼 추상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그 수단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냐에 따라 항상 부족을 일으키진 않는다. 고대 아테네 폴리스처럼 ‘잘 사는 생활’이란 인생 목표가 ‘폴리스에 헌신하는 것’ 혹은 ‘폴리스에 헌신을 위한 여가’와 같은 것이라면, 이 무한한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온종일 극장에서 소일하는 것’ ‘배심원이 되는 것’ ‘선거운동을 하여 공직을 맡는 것’ ‘성대한 제사에 감동을 하여 고상한 기분이 드는 것’과 같이 사용해도 부족해지지 않는 수단들이 필요할 뿐이다.” 따라서 “주어진 상황에서 ‘희소’라는 말이 수단에 알맞은 말인가 아닌가는 사실의 문제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 진부한 ‘희소성’ 격언을 여러 현상 이면에 작동하는 경제 법칙인 양 취급함으로써 경제에서 ‘실제적인 것’의 의미는 무시되고 결국 잊혀버리게 된다는 점이다. 이렇게 논리가 사실을 훈육한다.”<칼 폴라니, 反경제의 경제학>

















신체적 쾌락을 좇는 욕망은 왜 저급하고, 정신적 만족을 좇는 욕망은 왜 고급한가? 신체적 욕망과 정신적 욕망 차이는 무엇인가? 신체적 쾌락을 좇는 욕망이 저급한 욕망으로 해석되는 까닭은 그 욕망이 개체적 욕망이고 인간 상호간에 서로 충돌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식욕을 채워줄 수 있는 음식물은 내가 먹거나 네가 먹거나 둘 중 하나다. 그러므로 그러한 욕망에 무제한적으로 충실하다 보면, 인간 상호간의 배려인 도덕성 여지가 들어설 수 없게 된다.



이에 반해 이성적 만족을 좇는 욕망이 고급한 욕망이 되는 것은 그것이 보편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나의 지식욕을 충족시키는 것은 그대로 너의 지식욕도 채워준다. 그것은 서로 나눌 수 있는 것이며, 개체성을 떠난 것이다. 즉 사적이지 않고 보편적, 공적인 것이기에 보다 높은 가치가 부여되는 것이다. 보편적이고 공적인 원리에 더 높은 가치가 부여되는 것은 그것만이 만인이 더불어 살 수 있는 이성적 사회를 건립할 수 있는 원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직 개체 아닌 보편, 사 아닌 공을 생각할 수 있는 이성적 인간만이 이성적 사회를 형성할 수 있다.



그러므로 ‘동물도 숫놈 아닌 암놈이 새끼를 돌보니 자식을 돌보는 것은 당연히 에미 몫이다.’라든가 ‘인간 역시 자연의 일부이니 자연적 방식의 삶이 가장 바람직하다’라든가 또는 ‘자연에서도 강자만이 살아남고 약자는 도태될 수밖에 없으니 강자의 생존전략을 좇을 수밖에 없다’라는 식으로 인간 사회 질서의 원형을 동물사회에서 구하는 것은 인간과 동물 차이를 간과한 동물적 주장일 뿐이다. pp. 126-127



플라톤은 인간을 신체라는 감옥에 갇힌 영혼으로 이해한다. 인간이 이 생애에 있어 부자유한 것은 신체를 가졌기 때문이다. 신체를 먹여야 하고 입혀야 하기에, 신체의 욕구를 충족시켜야만 살 수 있기에, 인간은 부자유하며 무수한 비도덕적인 것들도 행하게 된다. 인간 자유는 신체적 욕망으로부터의 자유로움을 뜻한다. 먹어야 하고 입어야 하는 것 등의 신체적 욕망에서 야기되는 자연필연성의 강제성으로부터 벗어나는 자유로움이 곧 인간 영혼의 자유다. 이는 곧 신체적 욕망을 벗어나 이성 그 자체로 존재하게 됨을 뜻한다. 하지만 영혼이 신체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은 신체를 벗어남으로써만 가능하다. 영혼이 육체를 완전히 벗어나는 것, 그것은 곧 죽음이다. 철학이란 아직 죽지 않은 상태에서 죽어서나 가능한 자유를 최대한 실현하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즉 이성적, 보편적으로 사유하며 이성적 원리대로 살아가는 것을 훈련하는 것이다. 인간의 개체적 욕망을 넘어서며 욕망의 필연성으로부터의 자유를 추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철학이란 한마디로 죽음의 연습이 된다. pp. 128-129. <동서양의 인간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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