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모르는 민주주의 - 자본주의와 자유주의의 불편한 공존
마이클 샌델 지음, 이경식 옮김, 김선욱 감수 / 와이즈베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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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에 많은 미국인은 임금노동(wage labor), 즉 임금을 받을 목적으로 수행하는 노동은 자유라는 개념에 부합하지 않다고 여겼다. 당시와 시대적으로 멀리 떨어진 지금 관점에서 보면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우리가 임금을 놓고 논쟁을 벌일 때는 주로 최저임금이나 일자리에 대한 접근성, 임금 격차나 작업장 안전성 등이 쟁점이다. 오늘날 임금노동이라는 개념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19세기에 많은 미국인이 이의를 제기했다. 공화주의적 자유 개념에 따르면 임금을 받을 목적으로 일하는 사람이 진정으로 자유로운지는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노동과 임금의 교환에 당사자가 자발적으로 동의한다는 점에서 보면 자유롭다고 할 수 있다. 부당한 압력이나 강요만 없다면 임금노동은 자발적으로 계약을 맺는다는 의미에서 자유노동이다. 하지만 노동을 임금과 교환하는 자발적 합의조차도 자유노동에 대한 공화주의적 개념을 충족하지 못한다. 많은 사람이 경제적 독립성이 시민의식에 필수적 전제조건이라는 오랜 공화주의의 신념을 갖고 있었다. 유럽의 무산계급인 프롤레타리아처럼 고용주가 지급하는 임금만으로 생계를 꾸려야 하는 사람들은 자유 시민으로서 어떤 문제를 스스로 판단할 도덕적, 정치적 독립성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었다. 한때 제퍼슨은 오로지 자작농이라는 신분만이 견실한 공화주의 시민에게 필요한 덕목과 독립성을 길러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19세기 초 수십 년 사이에 공화주의자 대부분은 농장에서뿐만 아니라 공장의 작업장에서도 시민적 기본 소양이 배양된다고 믿게 되었다. pp. 96-97.



임금노동을 둘러싼 논쟁은 노예제와 관련된 투쟁 때문에 한층 더 첨예해지고 복잡해졌다. 노동운동과 노예제 폐지운동은 거의 동시에 일어났다. 두 운동 모두 일과 자유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제기했지만, 양측 진영은 서로에 대해 크게 공감하지 않았다. 노동운동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반대하는 임금노동을 남부 노예제와 동일시함으로써 자기주장을 극대화했다. 실제로 그들은 임금노동 체계를 ‘임금노예제(wage slavery)’라고 불렀다. 임금노동은 노동자를 가난하게 만든다는 점에서뿐만 아니라 공화주의적 시민의식에 반드시 필요한 경제적, 정치적 독립성을 부정한다는 점에서 노예제와 다름없다는 것이었다.



브라운슨은 “임금은 노예 소유자가 감당해야 하는 온갖 비용과 말썽과 증오 없이도 노예제의 모든 이점을 별다른 양심의 가책 없이 누일 수 있게 해주는 교활한 악마의 장치다”라고 규정했다. 임금노동자는 남부의 노예보다 더 극심한 고통을 겪는 것은 물론, 나중에 생산수단을 소유하는 자본가가 될 가능성도 거의 없었으므로 노예보다 자유롭다고 할 수도 없다는 말이었다. 브라운슨은 임금노동이 자유와 양립하고자 한다면 독립성 확보를 보장하는 일시적 조건의 임금노동을 만드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우리의 동료 시민 가운데 그 누구도 임금노동자로 평생 힘들게 살아가는 운명을 짊어지는 계층이 있어서는 안 된다. 임금노동을 용인해야 한다면 반드시 조건 하나가 전제돼야 한다. 어떤 노동자가 인생의 어떤 연령대에 도달해 자기를 잡아야 할 때, 자기가 가진 돈으로 농장이든 가게든 간에 자기 소유의 작업장을 마련해 독립적 노동자가 되기에 충분한 자본을 축적할 수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다.” pp. 101-102.



하지만 노예제 폐지론자들은 임금노예제라는 개념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들은 노동 옹호론자들과 달리 시민적 자유관이 아니라 자발주의적 자유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노예제도가 도덕적으로 잘못됐다고 생각한 이유로 노예들의 경제적, 정치적 독립성의 부족을 거론하지 않았다. 그보다 노예가 자기 의지에 반해 노동하도록 강요받는다는 것을 문제 삼았다. pp. 103.



토지 개혁을 주장했던 조지 헨리 에번스는 노예제 폐지론자들이 개혁의 전망을 한층 넓게 확장하도록 설득하려고 노력했다. 에번스는 “빈곤과 질병, 범죄, 매춘 등을 몰고 오는 임금노예제는 노예를 재산으로 여기는 남부에 존재하는 제도보다 삶과 건강과 행복에 훨씬 더 파괴적이다. 그러므로 노예제를 임금노동제로 대체하려는 사람들이 기울이는 노력은 방향 자체가 매우 잘못된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에번스는 두 가지 형태의 노예제를 해결할 방법으로 공공 토지에 주택을 지어 정착민에게 무료로 나눠주는 정책을 제안하고 촉구했다. 무료로 제공하는 토지는 빈곤을 줄일 뿐만 아니라 임금노동이 만들어낸 시민의 종속성도 줄여줄 것이라면서 “이 정책은 한 형태의 노예제를 다른 형태의 노예제로 단순히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형태의 노예제를 완전한 자유로 대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pp. 104-105.



남부 노예제의 선도적 이론가였던 조지 피츠휴는 북부 노동 지도자들이 말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북부의 임금노동자는 남부 노예보다 자유롭지 않다면서 “노예주가 노예를 부리듯이 자본이 노동을 부린다”라고 주장했다. 단 하나 차이가 있다면 남부의 노예주는 노예가 늙고 병들어도 이들을 책임지고 보살피지만 북부 자본가는 이런 책임을 전혀 지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당신들은 당신들이 가진 자본 덕분에 노동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한 노예 소유주다. 그런데 노예주이면서 노예주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 노예주에 불과하다. 당신을 위해 일하고 당신 소득을 창출하는 사람은 당신 노예다. 그것도 노예가 누릴 수 있는 권리를 박탈당한 노예다.”



피츠휴에 따르면 끊임없는 가난과 불안 속에 살았던 북부의 임금노동자는 남부 노예보다 실제로 자유롭지 않았다. 남부 노예는 적어도 나중에 늙고 병들 때 노예주의 보살핌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자유노동자는 일을 하든가, 굶어 죽든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자유노동자는 흑인 노예보다 더 노예처럼 살아간다. 노예보다 돈도 적게 받으면서 더 오랜 시간을 더 힘들게 일해야 하고, 또 노동이 끝난 뒤에야 비로소 자기를 돌볼 수 있기 때문이다. 자본은 인간 노예주가 노예를 대하는 것보다 한층 더 강력하고 완벽하게 강제력을 행사한다. 자유노동자는 일하지 않으면 굶어야 하는 일상을 살아가지만, 노예는 일을 하든 하지 않든 간에 노예주가 먹여살리기 때문이다. 비록 자유노동자 각자에게 특정한 주인이 따로 있지는 않지만, 그들 자신은 가진 것 없이 가난한데 다른 사람이 자본을 가지고 있는 상황 때문에 노예가 된다. 이 노예는 주인이 없는 노예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주인이 너무도 많고 심지어 주인이 없는 것만큼이나 상황이 나쁜 노예이기도 하다.”



피츠휴는 북부의 토지 개혁자들과 같은 주장을 하면서 자본가가 재산을 독점함으로써 북부 노동자에게서 자유를 빼앗는다고 비난했다. “자유 사회라는 거짓 이름으로 불리는 것의 정체는 매우 최근에 발명된 것이다. 이것은 약하고 무지하며 가난한 사람들을 소수가 독점적으로 소유하는 세상에서 자유롭게 만들겠다고 제안한다.” 하지만 “재산이 없는 사람은 이론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단 하나의 권리도 누리지 못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좁은 방과 축축한 지하실 그리고 혼잡한 공장에서 더러운 공기를 마실 수밖에 없도록 방치된 사람은” 머리를 누일 곳조차 없다. “사유재산이 토지를 독점했으며 가난한 사람의 자유와 평등을 모두 파괴했다. 가난한 사람은 삶을 안전하게 이어갈 안전판이 박탈됐다. 고용과 충분한 임금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데, 그 누구도 이 사람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고용을 보장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피츠휴는 만일 누군가가 노예라면 노동자로 살 때 못지않게 의존적 삶을 살겠지만, 적어도 의식주는 걱정하지 않을 것이라고도 했다. 또 노예제 폐지론자들의 주장에 반박하면서 사실상 노동운동의 자유 개념을 인용했다. 예컨대 “자유노동자라는 잘못된 이름으로 불리는 사람들이 안전하게 살아가기에 충분한 재산이나 자본을 줘서 그들을 실질적으로 자유롭게 만들어라. 그런 다음 우리 남부에 흑인을 해방하라고 요구하라”라면서, 그렇게 하기 전까지는 북부의 임금노동자가 남부의 노예보다 자유롭지 않다고 주장했다.



다른 남부 사람들도 비슷한 논리로 노예제를 옹호했다. 사우스캐롤라이나 상원의원 제임스 헨리 해먼드는 전 세계에서 오로지 미국 남부에만 노예제가 남아 있다는 주장에 이의를 제기했다. 그는 “그렇다, 명칭 자체는 폐지됐다. 하지만 실상은 그대로다”라고 지적했다. “날품팔이 노동으로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 자신의 노동을 시장에 팔아 자기가 얻을 수 있는 최대치를 얻는 사람, 이런 사람은 여전히 현실에 존재한다. 요컨대, 육체노동을 하며 돈만 주면 뭐든지 하는 사람 또는 이른바 ‘직공(operative)’은 본질적으로 노예다. 그런데 당신들의 노예와 우리 노예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우리의 노예는 평생 고용이 보장되고 보상도 잘 받기에 굶주릴 일도 없고 구걸할 일도 없다. 하지만 당신들의 노예는 하루 단위로 고용되고 보살핌을 받지 못하며 쥐꼬리만큼밖에 보상받지 못한다.” 이는 북부 도시 거리마다 늘어선 거지 행렬이 증명한다. pp. 106-109.



남북전쟁이 끝나고 임금노동 체계의 옹호자들은 자본주의적 생산과 자유노동이라는 시민적 개념이 조화를 이루도록 하겠다는 시도를 포기하고 자발주의적 개념을 채택한다. 그들은 임금노동이 도덕적이고 독립적인 시민을 길러내는 수단이 아니라 고용주와 피고용인 사이에 맺어진 자발적 계약의 산물이기에 자유 개념과 일치한다고 주장했다. 로크너 시대의 대법원이 헌법과 일치한다고 판단한 것이 바로 이런 자유 개념이다. 미국 역사에서 1897년경에서 1937년에 이르는 시기에, 1895년 뉴욕주는 제과점 점원의 근무시간을 1일 10시간, 1주 60시간으로 제한하는 법률을 제정했다. 3년 후 로크너라는 제과점 주인이 해당 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벌금형을 받았다. 로크너는 종업원들에게 노동을 강요한 것이 아니라 상호 합의에 따라 노동시간을 정했다고 항변했다. 즉 그 법률이 ‘계약의 자유’라는 대원칙에 어긋나기에 무효라는 것이었다. 여기에 대해 미국 연방대법원은 근무시간 제한이라는 수단이 공공복리 증진이라는 목적과 합리적으로 연관되지 않고, 오히려 제과점 점원과 주인 사이의 계약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그 법률이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이 전환을 계기로 시민의식의 정치경제학에서 경제 성장과 분배 정의의 정치경제학으로, 공화주의적 공공철학에서 절차주의적 공화주의의 등장을 알리는 자유주의적 버전으로 바뀌었다. pp. 100.



공화당의 핵심적 이념은 자유노동을 방어하는 것이었다. 공화당의 한 대변인은 “공화당은 노예제에 반대하는 정당일 뿐만 아니라 자유노동을 대변하는 정당으로서도 국가 앞에 서 있다’라고 선언했다. 1830년대에 공화당이 수행하던 노동운동에서 규정한 자유노동은 영구적 임금노동이라기보다 경제적 독립이라는 궁극적 목표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거칠 수밖에 없는 노동이었다. 노동의 존엄성은 고용주가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해 일하는 수준으로 지위를 높일 기회가 보장된다는 데 있었다. 공화당은 북부 사회가 이러한 사회적 이동성을 가능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칭송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청년은 자기 소유의 농장을 살 돈을 모을 때까지만 돈을 받고 일한다. 또는 당신이 원하는 표현을 쓰자면 ‘노동’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고서 그는 고용주가 된다.”



링컨도 임금노동을 비판하는 남부의 비판자들이 바로 이런 자유노동 체계의 특성을 간과했다고 말했다. “그들은 자신이 부리는 노예들이 북부의 자유인보다 훨씬 더 잘 산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북부의 노동자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 그들은 노동자가 영원히 노동자 계층으로 남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계층은 없다. 작년에 남에게 고용돼 일하던 사람이 올해는 독립해 일하고 내년에는 다른 사람을 고용할 것이다.” pp. 117.



링컨은 평생을 임금노동자로 보내는 사람은 노예나 마찬가지라는 발상에 의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는 자유노동을 자유롭게 만드는 것은 임금을 받고 일하겠다는 노동자의 동의가 아니라 임금노동자라는 지위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자영업자 지위로 올라설 수 있는 가능성과 기회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자유노동 제도의 개방성을 확신했기에 자립에 실패한 사람들은 “의존적 성격의 소유자이거나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이거나 또는 드물게 있는 불운한 사람”일 뿐이라고 했다. 반면 열심히 일해 가난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신뢰를 받으며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들만큼이나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pp. 117.



그렇지만 1870년을 기준으로 생산에 종사하는 미국인 중 3분의 2가 자기 생계를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는 임금노동자였다. 독립성과 자영업을 찬양하는 나라였던 미국에서 자기 농장에서 일하거나 자기 소유의 가계를 운영하는 사람 비율은 세 명 중 겨우 한 명뿐이라는 말이었다. pp. 120.



임금노동에서 비롯되는 문제는 임금노동이 키우는 가난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의 시민적 역량에 미치는 피해, 즉 그것이 만들어내는 “비굴한 어조와 비굴한 사고방식”이다. 노동운동 해결책은 과거의 농업사회를 회복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가 노동에 따른 이익을 분배하고 스스로 통치하는 협동조합 방식으로 임금 체계를 대체함으로써 산업 자본주의를 새롭게 만드는 것이다. 또한 그는 노동운동에 대해 다음과 같이 촉구했다. “임금체계 또는 노예적 굴종의 체제라고 불러야 옳을 이 체제가 노예제나 농노제처럼 완전히 소멸할 때까지, 돈만 주면 무엇이든 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을 때까지 여론 환기의 선동과 단결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pp. 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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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마음에 의한 자각을 의미한다. 가령 어떤 생각이 마음속에 찾아와 여러 감정이나 상상을 유발하되 마음이 그것을 의식하지 못할 수 있다. 이런 생각은 데카르트에게 생각으로 간주될 수 없다. 의식되지 않는 생각, 그것은 ‘둥근 삼각형’과 같은 형용모순이다. 생각은 생각하는 자아에 의해 의식된다는 것을 본질적 계기로 하기 때문이다. 심리학적 의미의 사고를 정의하는 핵심이 이렇게 의식에 있다면, 의식의 중심에는 자아가 있다. 의식된다는 것은 자아에 의해 의식된다는 것이고, 이를 통해 사유는 자아를 위한 자의 사유가 된다. 좀 더 정확히 말해서 데카르트에게 의식은 지성을 핵으로 하는 자아를 전제하고, 따라서 의식은 언제나 자기 의식이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혼론에서 의식은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지 못한다. 의식은 사유를 사유화되게 하는 원리라기보다 생의 쾌감을 설명하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게다가 의식은 공통감의 기능으로 설명된다. 데카르트에게서처럼 지성 기능으로 설명되지 않는 것이다.” pp. 109-110 <근대적 세계관의 형성>
















‘상상을 통해 고통을 받는 자와 입장을 바꿔봄으로써 고통을 받는 사람이 느끼는 것을 느낄 수 있거나 그가 느끼는 것에 영향을 받는’ 과정에서 핵심은 ‘입장을 바꿔본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상상력을 발휘하는 일입니다. 상상력을 발휘하여 타인과 같은 감정 상태에 들어서는 것은 ‘공통감’입니다. 근대에서 이 개념의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이탈리아의 잠바티스타 비코가 있습니다. 비코에게 공통감은 사려깊음과 설득력이 결합된 것입니다. 주어진 상황에 대해 다양하게 고찰하고 그것을 설득력 있게 내놓는 것이 공통감입니다. 이것은 상황 판단력과 같은 말입니다. 



더욱이 비코에게는 단순한 상황 판단력이 아니라 도적적 해결 능력까지도 포함합니다. 우리가 이런 판단을 하게 되는 과정을 생각해봅시다. 우리 앞에 어떤 상황이 벌어져 있습니다. 우리는 그 상황의 파편들을 주워 모읍니다. 이것은 특수들입니다. 그런 다음 우리 머리 속에 전체가 어떠하리라는 막연한 구도를 떠올린 후, 그 특수들을 보편적인 것으로 집약하려 합니다. 다시 말해서 주어진 특수들을 보편적인 것에 종속시킴으로써 올바른 것이 생겨나게 하는 것이 공통감일 것입니다. 여기서 특수들을 집약하는 보편은 일정한 원리에 따라 미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집약되는 특수들이 그 보편으로부터 이끌어져 나왔던 것들도 아닙니다. 이 보편과 특수들은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형성된 것일 뿐입니다. 비코의 이 공통감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천적 지혜와 같은 것입니다. 실천적 지혜는 윤리적 존재의 규정적 내용과 수단을 취사 선택하는 통제적 능력입니다.<철학 고전 강의>
















“이념으로서 공통감은 개인 판단을 규제하는 이상적인 공통체 정신에 해당한다. 보통 ‘상식’이란 이런 의미의 공통감이 통속화된 것이다. 상식은 공동체 안에서 이미 공유되어 습관처럼 굳어진 관점을 가리킨다. 하지만 여기서 공통감은 사실이 아니라 당위에 가깝다. 그것은 하나의 개인적인 관점이 모든 사람에게 전달 및 인정될 수 있기 위해 언제나 타인 관점에서 먼저 판단해야 한다는 의무를 가리킨다.



이런 의무로서 공통감이 전제되고 실행될 때만 취미 판단의 필연적 전달 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공통감 이념에 의해 우리가 반성적 판단에 끌어들여야 하는 타인이란 누구인가? 그것은 존엄한 인격체로서의 타인, 자율적 내면성의 주체로서의 타인이다.



사실 칸트는 경험적 차원에서 성립하는 모든 사회성의 원천에는 공통감의 이념이 자리한다는 점을 암시한다. 모든 인간관계나 사회적 질서의 뿌리에는 타인 입장에서 판단하려는 공통감 이념이 있다는 것이다. 요즘 말로 하면 공통감 이념은 ‘상호주관성’의 이념이라고 할 수 있다.”<왜 칸트인가>







"헤겔 역사철학의 가장 중요한 논제는 역사를 자유의식의 진보 과정으로 보는 것이다. 이 논제는 헤겔의 역사철학을 구조화하는 핵심이자 헤겔을 포함한 근대 역사철학 전체에 통일성을 부여하는 근본이념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 진보 이념이 근대 역사철학 전체에 대해 갖는 의미를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근대 역사철학 자체는 진보 이념과 더불어 탄생하고 진보 이념과 더불어 소멸한다. 근대 역사 철학은 진보 이념을 모태로 태어났으며 진보 이념이 쇠퇴하자마자 위기를 맞이한다.

‘세계사란 자유의식에 있어서의 진보 과정이며, 우리는 그 과정의 필연성을 인식해야 한다.’ 이런 헤겔의 문장이 말하는 것처럼 근대 역사철학 일반은 진보가 필연적임을 논증하는 과제와 더불어 완성된 형태에 도달한다. 진보가 필연적이라는 것은 역사가 우연한 사건들의 연속이 아니라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역사에 어떤 법칙이 내재한다는 것을, 그렇게 내재하는 법칙에 의해 역사 흐름이 필연성을 띠고 발전해간다는 것을 말한다. 근대 역사철학은 그런 진보의 필연성에 대한 이론적 증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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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란 이름 자체가 자유주의가 가장 열중하는 목표가 무엇인지 말해준다. 바로 자유다. 자유주의가 매력과 회복력을 겸비한 것으로 입증되어온 까닭은 무엇보다 인간 영혼에 아주 깊숙이 박혀 있는 자유에 대한 갈망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자유주의가 역사적으로 부상하고 전 세계에서 매력을 발휘해온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자유주의는 특히 임의적 통치, 부당한 불평등, 만연한 빈곤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호소해왔다.



물론 자유주의는 자유를 향한 인간 갈망을 발견하지도 발명하지도 않았다. 리베르타스(libertas)는 먼 고대에 생긴 낱말이며, 자유를 지키고 실현하는 것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 정치철학을 처음 시도할 때부터 주요한 목표였다. 서구 정치 전통의 근간을 이루는 문헌들은 특히 폭정의 충동과 주장을 어떻게 제약하느냐는 문제에 초점을 맞추었고, 폭정 유혹에서 벗어나는 핵심 방안으로 덕성 함양과 자치를 꼽았다. 특히 그리스인은 자치가 개인 차원에서부터 정치제 차원까지 이어진다고 생각했고, 어느 차원에서든 절제, 지혜, 중용, 정의 같은 덕목들이 서로를 지탱하고 증진할 경우에만 자치를 실현할 수 있다고 보았다. 달리 말해 자치라는 덕목이 시민들 영혼을 다스릴 경우에만 도시 자치가 가능하고, 시민권 자체를 법과 관습을 통해 덕성을 몸에 익히는 일종의 지속적인 습관들이기로 이해하는 도시에서만 개인들 자치를 실현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리스 철학은 파이데이아(paideia), 즉 덕성 교육을 폭정을 미연에 방지하고 시민 자유를 보호하는 주된 방안으로 강조했다.



그렇지만 이제 자유라는 단어는 그대로 유지되었다 해도 그 내용은 근본적으로 새롭게 인식되었다. 근대의 현저한 특징은 이 오래된 정치관을 거부했다는 것이다. 사회적, 정치적 합의는 효력도 없고 바람직하지도 않은 것으로 간주되었다. 자유주의 뿌리는 사회 병리의 원천 – 즉 분쟁 근원이자 개인 자유를 제한하는 장애물 -으로 치부되기에 이른 다양한 인간학적 가정과 사회 규범을 뒤집으려는 노력에 있었다. 자유주의 토대를 놓은 사상가들의 주요 목표는 국내 평화를 위해 비합리적이라고 결론 내린 종교와 사회 규범을 해체하는 것이었다. 이로써 안정과 번영을 증진하고 궁극적으로 개인 양심과 행동 자유를 증진할 것으로 그들은 내다보았다.



이처럼 덕성을 훈련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버팀목으로 – 따라서 폭정에서 벗어날 자유의 전제조건으로 – 여겨지던 것들이 근대 들어 압제나 임의성, 제한 원천으로 간주되기에 이르렀다. 데카르트와 홉스는 비합리적인 관습과 검증되지 않은 전통(특히 종교적 믿음과 실천) 지배가 임의적인 통치와 비생산적인 내분의 원천이며, 따라서 안정적이고 번영하는 정체의 장애물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은 각자 ‘사고실험’을 도입해 현재 관습과 전통을 교정하자고 제안했다. 달리 말라면, 사람들은 그들의 선천적 본질로 환원하는 – 각자 진정한 본성을 가리는 우연적 속성들을 개념상 벗겨내는 – ‘사고실험’을 통해 철학과 정치를 합리적이고 반성적인 기반 위에 올려놓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두 사람 모두 행동을 인도하는 오래된 사회 규범과 관습을 대체할 수 있는 한층 개인주의적인 합리성에 자신감을 보였다. 설혹 합리성에서 이탈하는 사례가 생기더라도 중앙집권화된 정치국가의 법적 금지령과 제재로 바로 잡을 수 있다고 믿었다.



뒤이어 수십 년 수백 년 동안 잇따라 출현한 사상가들은 자유를 재규정한 이들의 기본적인 사상 혁명을 기반으로 삼았다. 이들이 규정한 자유는 기성 권위에서 해방되는 것, 임의적인 문화와 전통에서 벗어나는 것, 학문적 발전과 경제 번영을 통해 자연에 대한 인간 힘과 지배력을 확대하는 것을 의미했다. 자유주의가 흥기하고 승리하는 데에는 꾸준한 노력이 필요했다. 고전고대와 기독교 자유관을 약화시키고, 널리 퍼진 규범과 전통, 관행을 해체해야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개인을 우연한 출생 성분으로부터 분리된 존재로, 국가를 개인 권리와 자유를 지키는 주 보호자로 재개념화할 필요가 있었다.



자유주의가 이런 사유와 실천의 혁명을 받아들인 것은 엄청난 도박이었다. 다시 말해 기존 철학 전통과 종교, 사회 규범을 뒤집고 인간과 자연의 새로운 관계를 도입함으로써 완전히 새로운 자유를 추구하고 또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른바 이 도박은 두말할 나위 없이 성공을 거두었다. 자유주의 도래에 힘입어 무지몽매한 시대가 종언을 고하고, 인류가 어둠에서 벗어나 억압과 불평등을 극복하고, 군주정과 귀족정이 쇠퇴하고, 번영이 이루어지고, 기술이 발전하며, 지속적으로 진보하는 시대가 찾아온다는 것이다. 자유주의는 종교전쟁을 중단시키고, 관용과 평등 시대를 열고, 오늘날 세계화로 정점에 이른 개인 자유 영역과 사회적 상호작용 영역을 확대하고, 성차별주의, 인종주의, 식민주의, 이성애 정상주의를 비롯해 사람들을 갈라놓고 비하하고 차별하는, 용납할 수 없는 온갖 편견에 계속 승리를 거두는 공적을 인정받고 있다.



자유주의 성공 자체가 현재 자유주의를 가장 위협하는 요인이 자유주의 외부가 아닌 내부에 있을 가능성을 성찰하기 어렵게 만든다. 이 위협 요인의 잠재력은 자유주의의 근본적인 성격에서, 즉 사람들이 생각하는 자유주의 강점(특히 자유주의가 스스로를 교정하는 능력을 갖고 있으며, 계속해서 진보하고 좋아진다는 믿음)에서 생겨난다. 그리하여 자유주의는 자신 최대 약점을, 심지어 스스로 초래하는 쇠퇴마저 대체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현시대 병폐가 무엇이든, 자유주의 해법을 더욱 완벽하게 적용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없다는 입장인 것이다.



이런 병폐 중 하나가 사회와 시민을 좀먹는 자기이익이다. 고대의 덕성 의존을 극복하려는 치료법에서 생겨난 이 병폐는, 모든 사회적 상호작용과 제도에서 갈수록 뚜렷하게 드러날 뿐 아니라 자유주의 정치에까지 침투하고 있다. 자기이익은 공동선에 호소하는 모든 주장을 무력화하여 일종의 제로섬 게임 사고방식을 유도한다. 그 결과 시민들은 사적이고 대체로 물질적인 관심사에 점점 집착하다가 전국 규모로 양극화된다.



이와 비슷하게 권위적인 문화로부터 개인을 해방할 수 있다는 ‘치료법’은 사회적 아노미를 초래하는데, 그런 상황에서는 부득이 법적 교정책, 경찰 통제와 감시를 확대해야 한다. 예를 들어 사회 규범과 예절이 약해졌거니와 인성을 강조하는 견해가 가부장적이고 억압적이라는 이유로 거부되어온 까닭에, 오늘날 전국에서 점점 더 많은 학구들이 학교에 감시 카메라(사후 처벌을 유발하는 익명 감독성)를 설치하고 있다.



자유주의는 가장 근본적으로 보면 자유주의 제도에 특정한 지향성과 특색을 부여하는 인간학적 가정으로 이루어진다. 그것은 인간학적 개인주의와 주의주의(主意主義)적 개념이다. 주의주의 이념 – 개인의 규제받지 않는 자율적 선택 -을 정치 토대로 삼는다는 것이다. 이 주장을 처음으로 분명하게 표현한 사람은 원형적 자유주의 입장에서 군주정을 변호한 토머스 홉스다. 홉스에 따르면 인간은 근본적으로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상태로 존재한다. 이런 취약한 조건에서의 삶이 ‘추하고 잔인하고 짧다’는 것을 인식한 사람들은 합리적인 자기이익에 따라 주권자로부터 보호와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 자신 자연권을 대부분 포기한다. 정당성은 사람들 동의에서 생겨난다.



하지만 자유주의는 사람들이 결정을 내리는 토대에 대해 중립적이지 않다. 경제학 강의가 인간을 그저 효용을 극대화하는 개별 행위자로 기술할 뿐이라고 주장하면서도, 실은 학생들에게 영향을 끼쳐 더 이기적으로 행동하게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유주의는 사람들에게 헌신을 피하고 유연한 관계와 유대를 받아들이라고 가르친다. 자유주의에 따르면 정치적, 경제적 관계만 대체 가능하고 끊임없이 재규정되는 것이 아니다. 장소와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 국가와의 관계, 가족과의 관계, 종교와의 관계를 막론하고 모든 관계가 그러하다. 자유주의는 느슨한 연계를 조장한다.



자유주의가 이해하는 자유는 실정법 제약을 받지 않는 영역 안에서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상태다. 이 자유 개념은 지난날 이론에 지나지 않았던 상상 속 자연상태를 실제로 만들어 낸다. 다시 말해 선천적 개인주의 이론이 점점 더 현실이 되는 세계를 만들어낸다. 오늘날 그 세계는 법과 정치, 경제, 사회라는 구조물 보호를 받고 있다. 자유주의 체제에서 사람들은 갈수록 자율성 상태에서 살아가며, 그 상태에서는 법을 시행하고 그에 상응해 국가 역할을 확대하는 방법으로 이른바 자연적 인간 조건의 위협적인 무질서를 통제하고 억누른다. 사람들이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서 해방되는(그리하여 느슨한 연계만 남는) 한편 자연을 이용하고 통제함에 따라, 자율적 자유 영역은 한없이 팽창하는 것처럼 보인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율성 영역을 더욱 완전하게 보호하려면 국가 역할을 더 확대할 수밖에 없다. 자율성 영역에서 자유를 누리려면 가족부터 교회까지, 학교부터 마을과 공동체까지, 비공식적이고 익숙한 기대와 규범으로 행동을 통제하는 모든 형태의 결사와 관계로부터 해방될 필요가 있다. 이런 통제는 대체로 정치적인 통제가 아닌 문화적 통제였다. 법은 가족과 교회, 공동체를 통해 배우는 비공식적인 행동 기대치인 문화 규범만큼 포괄적이지 않았고, 대체로 문화 규범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개인들이 이런 결사에서 해방됨에 따라 실정법을 통해 그들 행동을 규제해야 할 필요성은 더욱 커진다. 그와 동시에 사회 규범은 권위를 잃어가면서 갈수록 과거의 임의적이고 억압적인 잔재로 느껴진다.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뿌리 뽑아야 할 잔재인 것이다.



자유주의는 결국 두 가지 존재론적 요소, 즉 해방된 개인과 통제하는 국가에 이른다. 홉스는 <리바이던>에서 이 두 실체를 완벽하게 묘사했다. 국가는 오로지 자율적인 개인들로만 구성되고, 이 개인들은 국가에 의해 ‘억제’된다. 개인과 국가는 존재론적으로 가장 상위에 있는 두 가지 요소를 나타낸다. 오늘날 세계에서는 과거에 대한 존중과 미래에 대한 의무가 즉각적인 만족 추구로 대체되고 있다.



예컨대 안정적인 평생 결혼생활의 규범은 결혼을 했든 안 했든 개인들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다양한 합의로 대체된다. 자녀는 갈수록 개인 자유를 제한하는 원인으로 간주되며, 이런 시각은 원하면 낙태를 할 수 있게 해주겠다는 자유주의 약속을 강화한다. 그 결과 선진 세계 전반에서 출생률이 감소한다. 경제 영역에서는 대개 당장 이익을 내라는 끊임없는 요구에 쫓겨 단기 수익을 올리려는 충동이 투자와 신탁을 대체한다. 그리고 자연과의 관계에서 지구의 풍부한 자원을 단기적 시각으로 착취하는 것이 우리 생득권이 된다. 설령 훗날 우리 자녀들에게 표토와 식수 같은 자원이 부족해질지라도 개의치 않는다. 이런 활동을 규제하는 일은 실정법을 시행하는 국가 소관으로 치부되지 문화 규범의 산물인 교양 있는 자치 결과로 여겨지지 않는다.



자기실현을 추구하고 갈망 충족을 위해 더 많은 권력을 원하는 이들에게, 언제나 가속되는 경제성장과 사회에 만연한 소비가 필요하다. 자유주의 사회는 경제성장이 둔화될 경우 여간해서는 생존하기 어렵고, 경제성장이 얼마간이라도 멈추거나 역행할 경우 무너질 것이다. 이렇게 인간 목적에 무관심한 – ‘좋은’보다 ‘권리’를 강조하는 – 사람들의 유일한 목표이자 명분은 자유주의적 인간, 스스로를 형성하고 표현하는 개인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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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의 근본 전제는 계몽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의 개인 자율성 전제와 관련있다. 자유주의 문제는 칸트 철학이 악용되었다는 데 있지 않다. 개인 자율성을 고양한 것이 처음부터 잘못이었고, 지난 수십 년 동안 이 잘못이 점차 분명하게 드러났을 뿐이다. 누적되는 재앙을 우리가 자유주의 이상에 부응하지 못하는 증거로 여길 것이 아니라, 자유주의가 초래한 폐해가 바로 자유주의 성공의 징후임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자유주의적 조치를 더 많이 적용해 자유주의 병폐를 치유하자는 주장은 불난 집에 기름을 붓자는 격이다. 그렇게 해서는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도덕적 위기가 더욱 심해질 뿐이다.



처음에 자유주의는 자유 이름으로 낡은 귀족정을 대체하겠다고 약속했다. 귀족정에 반기를 들었던 선조들 소망대로 자유주의는 옛 질서의 흔적을 남김없이 지우고 있다. 그럼에도 오늘날 후손들은 그렇게 대체된 질서를 어쩌면 더 해로울지도 모르는 일종의 새로운 귀족정으로 여기고 있다. 오늘날 미국 선거 절차는 국내 정책, 국제 협정, 그리고 특히 전쟁 수행에 비할 바 없이 자의적인 권한을 행사할 인물에게 대중이 동의한다는 인상을 주기 위한 연출로 보인다.



자유주의 체제의 설계자들은 시민들에게 사적 관심사에 초점을 맞추는 생활을 장려하려 했다. 그 체제는 그들이 ‘공화국’이라 부른 ‘사적인 사람들(res idiotica)’의 체제였다. 하지만 체제 ‘유지’에 어려움을 겪을 경우, 공화국은 ‘공적인 것들’ 없이는 생존할 수 없다. 사사주의를 장려함으로써 ‘잠정 협정’을 이루어낼 수 있다는 자유주의 신념은 지배층의 거의 완전한 분리와 시민성 없는 시민들로 귀결되었다.



경제적 불평등은 예전부터 늘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승자와 패자를 이토록 완벽하게 분리하는 문명, 또는 성공할 사람과 실패할 사람을 가려내는 이토록 거대한 장치를 만들어낸 문명은 이제껏 거의 없었다. 마르크스는 언젠가 경제적 불만의 최대 원천이 반드시 불평등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그 원천은 소외에 있다. 즉 노동자를 생산물로부터 분리하고 그에 따라 노동 목표이자 대상과 노동자 사이에 아무런 연관성도 없게 만드는 소외야말로 가장 큰 원인인 것이다. 패자들은 과거 가장 부유한 귀족과 비교해도 자신들이 훨씬 더 풍족하다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위로한다. 물질적 안락은 영혼의 불만을 손쉽게 달래는 방법이다.



대학들은 실용적인 ‘학습 성과’를 앞다투어 제시하고, 이를 위해 학생들을 즉시 고용할 만한 상태로 만들거나 기존 학과들 이미지를 쇄신하고 지향을 재설정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다수 도입하고 있다. 세계화가 진행되어 경제적 경쟁이 치열한 세계에서는 이렇게 하는 것 말고 다른 ‘선택지가 없다.’ 영원히 자유로운 선택을 보장한다는 선진 자유주의 체제에서 ‘선택지가 없다’는 말이 갈수록 흔해진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리하여 자유주의가 정점에 이른 순간에 자유학예(liberal arts: 반복적인 기예나 돈벌이 학문과 대비되는 자유민 소양에 필요한 학예를 의미했다. 문법과 논리학, 수사학, 산술, 기하, 음악, 천문학으로 구성되었다.)가 대학에서 내쫓기고 있다. 오래전부터 자유학예는 자유민에게, 특히 자치를 열망하는 시민에게 필수인 교육 형태로 이해되었다. 그런데 이제 위대한 문헌(결코 채울 수 없는 욕망의 압제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법을 알려주는, 어렵게 얻은 교훈을 담고 있기에 위대한 문헌)을 폐기하고 그 대신 한때 ‘노예교육’이라 여겨지던 것을 선호하고 있다.



즉 오로지 돈벌이와 직업생활에만 몰두했고 따라서 ‘시민’ 칭호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만 받았던 교육에 매달리는 것이다. 오늘날 자유주의자들은 한때 자유민과 농노를, 주인과 노예를, 시민과 하인을 구분했던 정체를 비난한다. 하지만 우리는 무지몽매했던 선조들보다 우리가 도덕적으로 우월하다고 기고만장하면서도 지난날 자유를 박탈당한 사람들만 받았던 교육 형태를 거의 전적으로 채택해왔다. 그리고 찬란한 자유를 누리면서도 자유학예라는 호사, 이름 자체에 자유민 함양을 근본적으로 지탱한다는 뜻이 담긴 이 교육을 더 이상 누리지 않는 이유를 물어볼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자유주의에서 말하는 ‘자유’는 개개인을 ‘주어진’ 조건에서 해방하기 위해, 특정한 직분, 의무, 부채, 관계로부터 벗어날 자유를 주기 위해 사용되었다. 이런 목표는 두 가지 주요 실체(국가와 시장)를 매개로 이루어진 비인격화와 추상화를 통해 달성되었다. 국가와 시장은 우리를 점점 더 벌거벗은 개인으로 만들기 위해 협공작전을 펼쳐왔건만, 정치 논객들은 두 가지 힘 가운데 어느 한쪽과 동맹을 맺어야 다른 한쪽의 침탈을 피할 수 있다는 주장으로 국가와 시장의 동맹을 감춘다. 그리하여 우리의 주된 정치적 선택은 어떤 비인격화된 메커니즘이 우리 자유와 안전을 증진시킬 것인지 고르는 일이 된다. 다시 말해 시장 공간과 자유주의 국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일이 된다. 시장 공간은 우리 욕구와 필요를 채워줄 수많은 선택지를 제공하면서도, 타인 욕구와 필요에 대한 그 어떤 구체적인 생각이나 견해를 우리에게 요구하지 않는다. 한편 자유주의 국가는 시장에서 충분히 다루지 못하는 욕구와 필요에 대처하는 비인격화된 절차와 메커니즘을 확립한다.



요컨대 개인 자유 보호와 국가의 활동 확대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라는 한결 같은 요구는 국가와 시장의 진짜 관계를, 즉 국가와 시장이 항상 필연적으로 함께 성장한다는 사실을 감춘다. 국가주의는 개인주의를 가능하게 하고, 개인주의는 국가주이를 요구한다. 변혁을 다짐하는 온갖 선거 구호 – ‘희망과 변화’든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든 -에도 불구하고 현대 자유주의가 우리를 더 개인주의적인 동시에 더 국가주의적인 존재로 만든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한 정당이 개인주의를 촉진하면서 국가주의를 축소하지 않기 때문도 아니고, 다른 정당이 이와 반대로 하지 않기 때문도 아니다. 오히려 두 가지 움직임 모두 우리의 가장 깊은 철학적 전제와 조응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해야 하는 가장 힘겨운 과제는 자유주의 사회의 병폐를 더 많은 자유주의를 실현해서 바로잡을 수 있다는 신념을 거부하는 것이다. 자유주의가 강요하는 불가피성과 제어 불가능한 힘에서 해방되는 유일한 길은 자유주의 자체에서 해방되는 것이다.”<왜 자유주의는 실패했는가>

















"노르웨이에서는 광고가 조장하는 외모지상주의를 불식시키기 위해서 시민단체와 정부가 연대활동을 벌이고 있는데, 특히 적색당 산하의 붉은 젊은이들이 벌이는 ‘광고보정 반대운동’이 주목받고 있다. 이들은 리처칭(보정)한 거리의 광고판에 모델 아름다움의 비밀이 사실은 ‘만들어진 거짓’임을 알리는 포스터를 붙여놓는다. 포토샵 프로그램으로 ‘모델 허리와 팔, 다리가 가늘게 보정되었다’거나 ‘가슴과 엉덩이 비율을 확대시켰다’ 혹은 ‘피부 잡티라든가 여드름, 주름 등을 지웠다’는 내용이다.



패션과 뷰티산업은 이처럼 광고보정을 통해 막대한 돈을 벌어들이지만, 어린 소녀와 소년들이 자신 외모에 만족하지 않는 경우, 지속적으로 광고가 토해내는 사실상 불가능한 외모에 사로잡혀 자신 몸과 얼굴을 성형으로 왜곡시킨다.



*


노르웨이 정부는 한국 정부와 달리 석유 자원을 통해 안정적으로 국가 재원을 확보할 수 있기에 완전보장형 국민의료보험을 시행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틀린 말이다. 국민의료보험은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것이기에 자신 수입에서 큰 부분을 국민의료보험에 쓰는 것에 동의한 대다수 국민들 합의가 가장 중요하다.



노르웨이를 제외하고 스웨덴, 덴마크, 핀란드, 아이슬란드는 모두 석유자원을 갖고 있지 않지만, 노르웨이와 비슷한 의료보장체계를 갖고 있다. 노르웨이가 석유자원을 개발하기 전에도 국가 재정의 원천인 높은 세율을 징수하고 있었다는 점을 상기해보면 석유자원이 완전보장형 국민의료보험을 실행하는 열쇠가 아니라는 점은 너무나 분명하다.



사실 한국은 이미 국가 수입 상당 부분을 의료에 지출하고 있다. GDP 대비 의료 관련 지출비율은 2011년 노르웨이 9.2퍼센트, 한국 7.2퍼센트로 2퍼센트 차이가 난다. 하지만 실제로 체감하는 의료보험 보장성 차이는 2퍼센트보다 크다. 의료비 지출의 본인 부담비율은 노르웨이 15.3퍼센트, 한국 33.8퍼센트로 한국이 두 배 이상 높기 때문이다. 국민건강보험의 부족 부분을 모두 다 채워줄 것처럼 광고하는 민간의료보험이 실제로 의료비를 보장하는 비중은 5.9퍼센트다. 민간의료보험 시장으로 투입되는 자금을 국민건강보험에 편입시키고 세율을 높이거나 차선책으로 본인부담금 상한선을 높은 수준으로 책정한다면 완전보장성 국민건강보험을 실시하는 것이 지금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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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난 13년 동안 노르웨이에서 느낀 복지국가의 가장 큰 장점은 근심 걱정이 없는 나날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직업에 귀천이 없기에 아이들이 경쟁에서 겪어야 하는 힘듦과 그로인해 부모들이 겪어애 하는 걱정이 없고, 노후에 기본보장이 되기에 오늘 악착같아야 할 이유가 없다. 내가 남보다 더 맛난 것을 먹어야 할 이유도, 내가 남보다 더 잘나야 한다는 부담감이 주는 불필요한 스트레스도 없이 스스로 만족하면서 행복한 날을 구가하는 그런 사회가 복지사회다.


기본적으로 아이들과 노약자, 병자, 장애인들은 도움 없이 인간적인 생활을 스스로 꾸려갈 수 없다. 그들이 최소한 인간적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하기 위하여 어느 한 개인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사회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 모색이 사회보장제도 성립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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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보다는 그래도 노르웨이를 비롯한 북유럽이 부의 불평등을 약간 더 잘 줄인 사회라고 봐야 할 듯하다. 한국은 지금도 산업으로서 최악의 비정규직 비율(노동인구 중 56퍼센트 정도)을 전혀 줄이지 못하고 있지만, 노르웨이는 비정규직이 약 8퍼센트에 불과하고, 스웨덴은 16퍼센트 정도다. 1998~1999년 이후 북유럽에서 비정규직 비율은 거의 올라가지 않았는데, 이는 비정규직 양산을 막는 법제 장치들이 마련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불평등이 실재하고 비정규직들이 -적은 비율이라 하더라도 -존재한다는 것은 북유럽 사회들도 우리와 같은 자본주의임을 증명해주지만, 그러한 여건을 만들어냈다는 것은 북유럽 노동 대중의 투쟁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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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에서 복지국가의 기본적 기틀이 마련되기 시작한 것은 대공황 시절인 1930년대 초기였다. 당시 노르웨이 지배자들은 노동자들이 혁명을 일으켜 인접국가 소련처럼 아예 체제를 전복시킬 위험이 있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공산당은 비록 의회에서는 약세였지만, 급진적인 노조에서는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보수정당들이 차선책으로 차라리 복지개혁을 실시하겠다는 노동당 집권을 수용한 것은, 결국 혁명에 대한 공포로 인한 하나의 양보였다면 양보였다.



1945년 이후에는 노동당이 장기집권했는데(1961년까지 의회에서 절대다수를 확보해, 복지 관련 법안을 문제없이 통과시킬 수 있었다) 공산당은 여전히 노조에서 만만치 않은 세력이었다. 친미적 노동당으로서는 이는 최대 경쟁이자 위협이었고, 공산당에 노동자들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집권기반을 튼튼히 하기 위해 복지 개혁에 박차를 가해야만 했다. 교육과 의료무상화부터 시작해 1960년대 중반 노년연금/병가수당 등을 지급할 종합적인 국가복지기금 설립까지, 1945년부터 1960년대 중반까지 주된 복지 개혁들은 이렇게 이루어졌는데 이는 궁극적으로는 혁명 가능성을 봉쇄하기 위한 조치이기도 했다. 또 일면으로는 자본으로서도 내수 기반 내실화, 즉 유효 수요 늘리기 차원에서 복지 개혁들이 유리한 측면이 있어서 이와 같은 계급 간 타협이 가능했다. 하지만 밑으로부터의 투쟁과, 보다 가열찬, 혁명적 투쟁의 가능성이 없어다면 그런 타협은 오지 않았을 것이다.”<나는 복지국가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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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에서 일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열세 살 정도 된 한 여학생에게 실기 주법에 관한 설명을 적었던 칠판을 지우라고 지시했다. 그 학생은 약간 당황하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다시 침착해졌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미안하지만 저는 선생님 요구를 들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이 일은 선생님 직무에 속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월급을 받는 데에는 이 일도 포함된다고 생각해요. 만약 꼭 내가 도와주길 원하신다면 제게 예의를 차려서 부탁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노르웨이 사회에서는 동료 선생을 존중하듯 학생들에게도 언행을 조심해야 한다. 또한 일곱 살짜리 어린이 인격은 여든 살 된 노인 인격과 마찬가지로 존중되어야 한다. 차이점이라고는 아이에게는 더 많은 도움과 교육이 필요할 뿐이라고 인식하는 것이다.



나는 노르웨이에 살게 된 한국인 이민자들에게서 이해하기 어려운 불평을 들었다. ‘여기 선생들은 공부 잘하는 애들한테 관심도 없고, 오히려 싫어한다니까요.’ ‘맞아요, 너 혼자 잘났냐? 왜 혼자 튀나? 뭐, 이런 분위기인 것 같아요.’ ‘다들 잘 살고 배가 부르니까, 엘리트 교육은 필요 없다 이건가요?’ ‘오히려 공부 못하는 애들은 엄청 챙겨주고 시간도 투자하고 관심을 준다니까요.’ ‘너네 잘난 애들은 좀 가만히 있어, 이기적으로 그러지 말고. 우린 모자라는 애들, 도움이 필요한 애들이 우선순위야! 이러니 내 참 기가 막혀서.’



노르웨이 선생님들은 수업 시간에 질문을 많이 하는 학생에게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 다른 사람들도 배려해야 하니 한 사람이 질문을 너무 많이 하면 안 돼요. 수업 중에 한 번씩만 해주면 고맙겠어요. 그게 서로에 대한 예의죠.’



교육 당국의 배려는 학습 능력이 저조하거나 15세부터 나오기 시작하는 각 과목 성적이 다른 학생들에 비해 현저히 저조한 학생들에게 적용된다. 하지만 그 학생들이 단지 공부를 못하기 때문이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잘하는 일이나 강한 면, 또는 취약한 면을 가지고 태어난다. 좋은 시스템은, 이처럼 개인들의 약한 면을 탓하지 않고 당연히 그럴 수 있다고 보고 좀 더 잘 할 수 있게 이끌어주는 것이라 본다. 지난 13년 간 노르웨이 교육을 보면서 느낀 점은 그들 교육 중점은 학습에 있어서의 ‘낙오자가 없도록’ 도와주는 데 있지 않은가 하는 점이다.



노르웨이는 사실 숙제 자체가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학생뿐 아니라 부모님들도 대부분 그렇게 생각한다. 숙제는 교육에 별 도움이 되지 않을 뿐더러 학생들에게 복종심을 심어 넣기 때문이다. 2011년 9월에 일명 ‘숙제철폐운동’이 벌어진 것은 그런 흐름 중 하나다. 적색당 청년조직의 수장인 이베르 어스텐볼은 숙제철폐를 위한 학생들의 시위를 조직하는가 하면, 전국적인 학생들의 동맹휴업, 즉 맹휴까지도 조직했다. 맹휴 참여는 한 시간 동안의 수업참여 거부와 숙제철폐를 위한 서명 등으로 이루어지는데, 참가 의사를 밝힌 학생들은 700개 학교에서 4만 명이었다. 노르웨이 학생들은 이렇게 어렸을 때부터 일종의 ‘정치의식’이 높다.



노르웨이 대학생들은 은행에서 학자금 대출을 받는다. 일반적으로 학자금 대출은 공부 기간에 따라 많게는 2억 원까지 되기에, 나중에 직업을 가지게 되어 대출금을 같아야 하는 부담이 가볍지 않다. 그래서 노르웨이에서는 공부를 하려는 사람은 동기와 의지가 확고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게다가 고등교육을 받지 않아도 충분히 잘 살 수 있기에 우리나라만큼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이 선망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여기서 공부는 학위를 따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느 분야를 말 그대로 ‘공부’하고 싶은 사람만이 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일이 여기서는 웃음거리가 될 수 있고, 여기서 상식적으로 생각되는 일이 한국에서는 전혀 이해되지 않는 일도 많다.”<나는 복지국가에 산다>



















덴마크, 노르웨이와 같은 북유럽 사람들에게는 “관습법과 같은 '얀테의 법칙(Law of Jante)'이 있다. 그중 일부는 '자신이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 말라',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잘났다고 착각 말라', '다른 사람을 비웃지 말라', '누가 혹시라도 네게 관심 둔다고 생각 말라', '자신이 누군가를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 말라' 등이다.”<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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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하게 2023-02-20 18: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노르웨이도 복지국가로 유명하니까 당연히 등록금도 무상일 줄 알았는데 아니군요. 근데 숙제 철폐 때문에 시위까지 할 정도라니. 😮 한국에도 청소년들이 만든 자발적인 정치조직들이 있지만, 숙제 폐지는 못 들어본 거 같아요. (두발 자유화라든가, 체벌 금지 같은 건 들어봤지만)

숙제가 복종심을 심어준다라... 그런 시각으론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데, 그러고 보니 그런 면이 있을 수 있겠네요.

얀테의 법칙은, 예전부터 생각했는데 좀 긍정적인 문장으로 바꾸면 어떨까 싶어요. ‘나만큼이나 남들도 모두 특별한 사람들이다.‘ ‘우린 상대가 누구든 서로서로 가르칠 수도 있고 배울 수도 있다‘라든지...

그들 문화니까 제가 간섭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요. ㅎㅎ 쓰다 보니 너무 길게 주절거렸네요. 둘다 원래 아는 책이지만 추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