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집단에 짓눌리지 않기 위해 언제나 안간힘을 써야만 한다.” - 니체





우리 뇌는 우리가 집단에 대해 가지고 있는 ‘믿음’에 반응한다. 그 믿음이 사실에 근거하는지 아닌지 여부는 상관이 없다. 다른 이들과 행동을 조율하고 싶은 충동을 사회학자들은 흔히 ‘순응 편향’(conformity bias)이라고 부른다. 순응 편향 성향에 따르면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마치 우리를 무차별적으로 끌고 들어가는 지구의 중력마냥 군중과 함께하고자 하는 우리 본성은 무의식에서 작동하며, 이것이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이고 인간은 여기서 탈출 불가능한 듯하다. 설명 ‘집단의 선호’라는 것이 완전한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해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뜻을 오해할 위험이 있을 뿐 아니라, 다른 이들의 생각이나 기대를 잘못 알고 거기에 순응해버릴 위험을 끌어안은 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가장 근본적인 차원에서 볼 때, 우리는 다수에 순응하는 경향성을 지니고 있으며, 우리는 집단 환상의 손쉬운 먹잇감이 되기 십상이다. 



사회학자 윌리엄 아이작 토머스와 그의 부인인 도로시가 1928년 제시한 이른바 ‘토머스 정리’(Thomas theorem)는 다음과 같다. “만약 사람들이 어떤 상황을 현실로 정의한다면, 결과적으로 현실이 된다.” 우리가 믿는다면, 그러한 믿음에 실질적인 근거가 있건 없건 상관없이, 그러한 믿음에 따른 결과만큼은 현실화될 수 있다. pp. 24-27. 우리의 사회적 본능은 마치 감정처럼 우리에게 내장되어 있다. 감정이나 사회적 영향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그 사실을 의식하지 않는다면 위험하고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 p. 33. 집단에 속하는 개인들이 개인으로서 판단을 내려야 집단 지성이 올바르게 발현될 수 있다. 사람들이 다른 이의 선택을 볼 수 있을 때, 그래서 다른 사람 선택을 보고 흉내 낼 수 있을 때, 집단 지성은 순식간에 ‘집단 무지성’으로 전락하고 만다. p. 56.



1841년 스코틀랜드의 언론인 찰스 맥케이가 모방의 연쇄에 대한 책, <대중의 미망과 광기>를 펴냈다. “사람들은 집단 속에서 생각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그가 탐구한 사례 중 하나가 그 유명한 네덜란드의 1634년 ‘튤립 광란’이었다. 네덜란드의 엘리트들이 어느 날 갑자기 튤립 구근의 도창적 컬렉션을 절대적 필수품인 양 여기기 시작하면서 벌어진 일이었다. 그 꽃에는 어떤 내재적 가치도 없었지만, “튤립을 소유하고자 하는 광기는 곧 네덜란드 사회의 중산층을 덮쳤고, 심지어 무역상과 상점 점원들마저도 어느 정도 손을 댈 정도가 되었다’고 맥케이는 기록하고 있다. 오늘날 한 학자의 추산에 따르면 튤립 광기가 절정에 달했던 1635년, “튤립 구근의 평균 가격은 같은 무게의 금 가격을 뛰어넘었고, 희귀한 튤립 구근 단 하나가 오늘날 돈으로 5만 달러 이상에 거래되는 경우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맥케이에 따르면, 가격이 요동치다 떨어지기 시작하자 시장의 자신감은 무너졌고, 딜러들은 전반적인 충격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거대한 튤립 열풍은 막대한 튤립 거품 붕괴로 이어지고 말았다. 이 광기가 일시적인 것을 파악한 네덜란드 당국은 선언했다. 이 광란의 정점에서 맺어진 모든 계약은 무효로 선언되어야 한다. pp. 58-59.



이런 식의 사기극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익숙하게 들린다. 그렇다면 과연 생수가 정말로 더 깨끗하고 안전한 물이 맞긴 한 걸까? 화산 활동으로 만들어진 현무암 지반으로 걸러졌다는 둥, 구름까지 뚫고 올라가는 일본의 명산에서 체취했다는 둥, 숫제 천사의 눈물을 받아왔다는 둥, 온갖 이유를 붙인 고급 생수들은 고작 세 컵 분량에 5달러가 넘게 팔리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경우 99퍼센트의 수돗물은 음용 가능할 뿐 아니라, 사실 많은 사람이 생수라고 생각하며 마시는 물은 수돗물이다. 병입되어 판매되는 물 중 절반 이상이 약간의 처리 과정을 거친 수돗물이며, 양대 생수 브랜드인 아쿠아피나와 다사니는 (참고로 이들은 펩시와 코카콜라의 상품인데), 그저 디트로이트시가 제공하는 물을 한번 걸러서 플라스틱 병에 담아 넓은 시장에 판매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병에 들어 있는 물을 생수라고 마실 때마다 우리는 이런 엄청난 사기극에 속는 동시에 거들고 있는 셈이다. 생수를 구입하면 4.5리터짜리 한 병에 평균적으로 1.5달러를 내게 되는데, 이는 우리가 같은 영의 수돗물을 사용할 때 내는 돈의 2천배에 육박한다. 



오늘날의 생수를 둘러싼 현상은 튤립 광란과 다를 바 없다. 우리는 사실상 거짓말이나 다를 바 없는 무언가에 수천억 달러를 쓰고 있는데, 그런 소비를 별개로 보더라도 그 막대한 플라스틱 병 사용으로 인한 환경 영향이 실로 엄청나다. 생수 한 잔에는 같은 양의 수돗물에 비해 2천 매나 더 많은 에너지가 소비된다. 한편 미국만 놓고 보더라도 플라스틱 생수병의 70퍼센트는 곧장 매립되며 그리하여 토양을 오염시키고 물길을 막는다. 이러한 연쇄 작용 결과 캘리포니아와 하와이 사시 어딘가에는 텍사스주의 두 배 정도 크기를 이룰 정도로 넓은 플라스틱 부유물 군집이 만들어지고 말았다. pp. 61-63.



우리는 우리와 비슷한 관점으로 세상을 보고 비슷한 믿음을 지니는 이들에게 자연스럽게 끌리는 경향이 있다. 18세기 도덕철학자 애덤 스미스에 따으면 우리는 ‘어떤 특정한 정신적 조화’를 찾고자 한다. 의견을 공유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면 집단적 정체성이 강화되고, 신뢰, 협조, 평등, 생산성이 강해진다. 소속 집단과 현실을 공유함으로써 우리는 공통의 관점을 형성할 뿐 아니라 비슷한 감정과 세계관까지 갖게 된다. 이는 우리의 핵심적인 가치관을 함양하며 우리 자신에 대한 믿음을 키우는데 도움을 준다. 또한 우리의 삶에 의미가 부여되며 자기 존중감을 얻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 행동과 상호작용이 우리가 속한 집단의 공통적 경험을 확인시켜주기에, 우리 뇌는 갈망하는 행복 호르몬의 분비로 보상을 얻게 된다. 자기 인식이란 우리가 지닌 고유한 특성과 함께 우리가 속한 귀속집단에의 감각이 결합되어 만들어지는 것이다. 사실 우리의 개인적 정체성은 우리의 사회적 정체성과 너무도 깊숙이 결부되어 있으며 그래서 우리 뇌는 그 둘을 따로 떼어놓지 못한다.



이게 전부가 아니다. 우리는 본인의 개인적인 경험에 기반을 두고 입장을 정하기 전부터 특정한 관점에 정서적 선호를 드러내거나 호감을 느낀다. 이런 상황에서 순응 편향이 곧잘 작용한다. 귀속집단에서 이미 확립되어 있는 결론을 강화하는 것에 불과한 증거를 찾아내기 때문이다. 또한 이렇게 공유하는 감정이 클수록, 우리는 자신이 생각하는 귀속집단의 관점에 순응하기를 원하게 마련이다. 이미 특정 귀속집단에 시간과 에너지, 믿음을 투입한 다음이라면, 그래서 그 소속감이 우리 정체성 중 일부를 구성하게 되었다면, 그 집단의 관점을 우리는 기꺼이 보호하고자 한다. 고통을 무릎쓰고서라도 집단적 관점을 강화하고자 하는 것이다. 귀속집단 바깥에 있는 이를 향해 더 적대적으로 대할 수 있게 되는 것은 물론이다. pp. 9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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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적(敵)은 

제국이나 자본이라고 불리지 않는다. 

그것은 민주주의라고 불린다.” 

- 알랭 바디우 







대의(代議) 민주주의는 국민 정치권력을 선거로 한 사람 혹은 다수 대표자에게 양도하는 이념이다. 사람들은 대의 민주주의의 산실인 의회가 국민 의지를 실행하는 '공복'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 사정은 그렇지 않다. 헤겔 지적처럼 의회는 관료들 판단을 국민에게 알리고 마치 국민 자신이 결정한 것처럼 생각하게 만드는 정교한 장치다. 의회가 탄생한 역사를 보면 그러한 정교한 조작이 반영되어 있다. 


















19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지배계급은 ‘민주주의’란 단어를 몹시 혐오했다. 하지만 점차 세월이 지나자, 지배계급은 민주주의 운영 규칙을 자신들이 정할 수만 있다면 민주주의가 그리 큰 위협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게다가 나폴레옹(1769~1821)은 도시에서 어떠한 일이 일어나도 정보를 잘 통제하고 유언비어를 퍼뜨려 유권자들을 겁줄 수만 있다면, 선거에서 당당히 승리하고 자신이 민주적임을 몸소 증명했다. 



1871년 파리 코뮌(역사상 최초 파리 시민들이 세운 사회주의 자치 정부) 때문에 프랑스는 민주주의를 도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때 부르주아는 딜레마에 빠졌다. 민주주의는 인민대중이 지배함을 의미하는데, 이들은 대체로 가난한 자들이다. 가난한 자와 부유한 자, 특권층과 비특권층 간의 이해관계는 명백히 달랐다. 따라서 인민대중이 정치에 참여하면, 지배계급의 기득권이 훼손될 수 있었다. 하지만 민주화는 불가피해졌다. 비록 지배계급은 이러한 상황을 반기지 않았지만, 사회주의 혁명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민주주의를 도입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민주주의 제도를 조작할 필요가 있었다. 가장 노골적인 조작은 의회 기능에 엄격한 한계를 부여하는 것, 특정 집단과 특정 기구에 특별 투표권을 부여하는 것, 상원을 통해 하원을 압박하는 것이었다. 


 















영국 지배계급도 대중이 선거권을 획득해도 자신들이 국가 정책을 결정하는 일에 크게 지장이 없음을 점차 깨달았다. 국가 권력 대부분은 의회의 통제 범위 밖에 있었기 때문이다. 국가 권력은 비선출 조직인 군부나 경찰, 사법부, 행정부에 있었다. 이러한 국가 조직은 의회 활동을 규정하고, 마음에 안 드는 조치는 위헌으로 거부할 수 있었다. 의회는 대중이 지배계급을 압력 하는 창구가 되지 못하고, 대중의 대표자를 길들이는 수단으로 전락했다. 지배계급은 자신들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만 의원들이 요구사항을 제기하도록 강요했다.



이처럼 지배계급이 민주주의를 받아들였다고 해서 민주주의로 전향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민주주의 효과를 약화하려는 시도였다. 또한 정부와 언론인, 자본가, 금융가는 민족주의를 앞세워 지배계급과 피착취 계급이 공동운명체라고 주장했다. 한쪽이 호화롭게 사는 동안 다른 한쪽은 땀 흘려 일하거나 굶어 죽는데도 그들 모두 ‘한 배를 탔다’는 것이다. 그러한 조치로 지배계급에게 치명적인 위협으로 여겨졌던 선거권이 노동자 대표들을 길들이는 수단으로 바뀌었다. 


















무엇보다 영국 의회는 상업자본 뜻에 따라 선거가 좌우되는 상황을 창출하고자 하였다. 토리당(국교회와 지주계급를 대표)과 휘그당(비국교도와 상인을 대표) 중 어느 당도 의회가 국민 전체를 대표하는 기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단순히 왕실에 대해 자신들 특권을 보장하는 장치로 간주했다. 게다가 의회는 이러한 계급 성격을 계속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정치를 완전히 독점하던 휘그당과 토리당의 수십 개 가문은 장남을 상원에, 차남 이하 아들을 하원에 보내어 국가를 교대로 통치했다(대륙의 프랑스나 스페인과는 달리 영국은 귀족 특권이 장남에게만 상속되었다). 의원 3분의 2는 그냥 임명되었고 나머지 3분의 1만 유권자 16만 명가량이 선거로 뽑았는데, 그나마 일부 투표는 매수로 이루어졌다. 선거권을 부여하기 위해 지대 수입을 파악했던 호구조사는 처음부터 토지 소유 계층이 의회를 지배하도록 보장했다. 이처럼 영국도 프랑스에서처럼 선거권을 생득권리가 아니라 토지 소유에 근거했기에 하층계급을 민주주의에서 훨씬 쉽게 배제할 수 있었다. 


















1787년 미국 헌법제정회의에서 보여준 지도력으로 흔히 미국 헌법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제임스 매디슨(1751~1836)은 모든 시민이 투표할 수 있는 고대 직접 민주주의인 ‘순수한’ 민주주의를 비판했다. 시민들의 정념으로 폭압적인 의회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보면서, 그는 “모든 아테네 시민이 소크라테스였다 해도 모든 아테네 민회는 여전히 폭도의 모임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매디슨은 소수가 다수를 대표하여 민중의 정념을 숙고와 심의로 조정할 수 있는 대의정치 방식을 선호했다. 

 

















미국 건국 아버지 중 한 명인 해밀턴은 한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부자들이 가지고 있는 이점이 있습니다. 부자들 악행은 아마도 궁핍한 사람들 악행보다는 국가 번영에 더 이로울 것이며, 도덕적으로 덜 타락한 것입니다.” 해밀턴은 부유함이 대표 선발에 미치는 영향을 그 어떤 사람보다도 공개적으로 옹호했다. 그는 경제력이 역사적 위대함을 향해 나아가는 올바른 길이라고 여겼다. 따라서 그는 부유하고 용감하며, 근면한 상인들이 국가를 지도하길 바랐다. 18세기 미국의 대의 정부는 선거 그 자체만으로 귀족적/과두적 효과를 낳을 것으로 이미 알고 있었다. 



형식상 하층계급이 선거에서 배제되지 않은 현대 대의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대중과 부자 의견이 갈릴 때는 부자 의견이 채택된다. 정치학자 벤저민 페이지와 마틴 길렌스는 이익집단과 부유한 미국인, 일반 시민 중에서 미국의 공공정책에 실제로 영향을 미치는 집단을 측정하는 방법을 고안했다. 두 사람은 1981년부터 2002년까지 일자리와 임금, 교육, 건강보험, 시민권, 경제 규제, 문화 관련 쟁점, 외교 정책과 같은 분야에 제안된 정책 약 2,000개를 분석해서 세 집단 중 어떤 집단이 최종 결과에 영향을 미쳤는지 살폈다. 그들은 “일반 시민은 연방정부 정책에 거의 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라는 결론을 얻었다. 조사 결과는 일반 시민 중 3분의 1 정도만 자기 뜻을 관철했다. 하지만 이조차도 그들 견해가 이익단체나 부자 견해와 일치할 때만 가능했다. 일반 시민은 정책 수립 과정에서 의미 있는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그들 목소리는 부유하고 조직적인 이익집단, 특히 기업 목소리에 묻혀 아예 들리지 않는다. 이 연구를 통해 미국인 대부분이 느끼는 사실, 즉 자기 목소리는 중요하지 않으며, 일반 시민은 자기가 통치되는 방식에 대해 의미 있는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는 자연 상태를 가정하여 국가 성립과 대의 정치를 정당화한 철학자 토머스 홉스(1588~1679)의 사회계약론은 심오한 뜻이 있다. 철학자 안토니오 네그리(1938~ )는 인간이 자신의 정치권력을 다른 사람에게 양도한다는 홉스 주장을 다시 해석했다. 권력을 대표자에게 양도하는 순간, 우리는 권력이 없는 존재, 즉 글자 그대로 노예로 전락한다. 그리고 권력을 양도받은 대표자는 과잉된 권력을 가진 존재로 사람들 위에서 군림하게 된다. 자발적인 권력 양도가 ‘자발적인 복종‘으로 이어지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다. 그래서 대의 민주주의는 결코 민주주의적일 수가 없으며, 오히려 진정한 민주주의를 가로막는 심각한 장애가 된다. 루소도 영국식 의회민주주의를 최선의 사회 체제라고 보지 않았다. 선거란 시민의 권리인 동시에 약점이기 때문이다. “영국인은 스스로 자유롭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커다란 착각이다. 그들은 의회 의원을 뽑는 동안에만 자유로울 뿐이다. 의원들이 선출되는 즉시 시민들은 곧바로 노예가 되어버린다.” 


















데이비드 흄은 인간이 결코 자유롭게 사회계약을 맺기 어렵다는 사실을 ‘가난한 농민들과 장인들의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다른 지역으로 떠나서는 결코 살 수 없는 가난한 사람들은 어떤 계약이든 달게 수용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만약 진정으로 사회계약이 가능하려면, 모든 사람이 자유롭게 주어진 국가나 사회를 떠나서 살 수 있어야만 한다. 이 점이 바로 흄이 당시 유행하던 다양한 사회계약론 모두가 허구에 불과하다고 공격했던 핵심 근거다. 우리는 어떤 국가나 사회를 자율적으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국가나 사회에 맹목적으로 던져져 훈육되는 존재일 뿐이다.


















홉스 사상은 표면상 ‘리바이던’이란 국가의 옹호가 아니다. 그의 철학은 바로 합리적인 계산으로[자유의지로] 자신 이익을 추구하는 개인이 계약을 통해 자신 주권을 ‘양도’했지만, 개개인의 내적인 힘[자유의지]이 전혀 정치에 반영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개개인의 집합은 그저 다중일 뿐이며, 국가라는 끈이 없다면 이 다중은 그저 무질서하게 흩어져 있는 구슬에 불과한 존재일 뿐이라고 홉스가 주장하기 때문이다. 홉스의 세계에서는 국가와 다중이 있을 뿐, 개개인들이 서로 간의 관계로 형성하는 ‘사회’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렇게 홉스가 자신 이론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전제한 자발적 계약[자유의지]과 결과로 나타나는 반-개인주의[반-자유의지]가 홉스 정치철학의 핵심이다. .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1883~1950)는 유권자들이 정치가들의 영향력에서 독립된 정치 의지를 가지고 있지 않음을 발견했다. “정치 과정에 대한 분석에서 우리가 알게 된 것은 대개 진정한 의지가 아니라 ’가공된 의지’(manufactured will)다. 개인이 정치가들 제안과는 독립된 명확한 자기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가정하지 말아야 한다. 정치에서 대중의 선호는 정치가들 행위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역사학자 로버트 위브(1930~2000)는 대중의 참정권은 시민이 “개인의 자유의지를 토대로 사회적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권력을 쥐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고 설명한다. “보통 선거권과 다수결이라는 규칙은 그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개인이 국가를 형성한다는 이미지를 사람들 상상력 속에 불어넣었다.” 결국 ‘자유로운 인간이 자기가 살아갈 정치 형태를 스스로 결정하기 위해 투표장에 가는 장엄한 모습’은 그저 환상에 불과하다. 개인 선택이나 동의 행위 범위를 넘어 사람들 삶을 지배하는 권력 구조가 이미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우리가 생각하는 민주주의에 관해서 어려운 질문을 던져보라고 요구한다. 그는 선거가 결국 가장 뛰어난 인물을 뽑는 것이 목적이기에 귀족정 방식이라고 설명한다. 만약 민주주의의 진짜 의미를 다수가 통치하는 제도라고 간주한다면, 미국과 같은 선거제는 오늘날 일부 정치학자가 판단하듯 과두정에 가깝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저서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바람직한 정체(政體)와 그렇지 않은 정체를 구분하고 세부 정체에 우선순위를 부여했다. [바람직한 정체(왕도정>귀족정>금권정), 타락한 정체(민주정>과두정>참주정)]



“정체에는 세 종류가 있고, 그것들이 왜곡된 또는 타락한 형태도 셋이다. 세 종류의 정체란 왕도정체와 귀족정체 그리고 세 번째로 재산평가에 근거한 정체다. 세 번째 정체는 금권정체라고 부르는 것이 타당해 보이지만, 대부분 사람은 혼합정체라고 부르곤 한다. 이들 가운데 최선은 왕도정체고, 최악은 금권정체다.



왕도정체가 왜곡된 것이 참주정체다. 참주정체는 왕도정체가 타락한 것으로, 사악한 왕이 참주가 된 것이다. 참주는 자신 이익을 추구한다. 참주정체가 세 가지 왜곡된 정체 가운데 최악임은 분명하다. 반면 과두정체는 치자들의 악덕으로 빚어져 귀족정체에서 생겨난다. 그들은 부를 가장 중요한 요소로 보기에 소수 사악한 자들이 권력을 장악한다. 끝으로, 민주정체는 금권정체에서 생겨나는데, 이 둘은 서로 이웃하기 때문이다. 금권정체도 다수자 지배를 목표로 하는데, 재산평가를 충족하는 자는 누구나 동등하기 때문이다. 이상이 가장 흔한 정체 변화다. 약간의 변화만 생겨도 그러한 이행은 아주 쉽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역사학자 에드워드 카(1892~1982)는 “지금까지 알려진 민주주의는 대중 전부가 아니라 일부 특권층만 자유롭고 평등했을 때 가장 융성했다“고 지적한다. ”일반인에게 민주주의 제도의 기원이며 표본이라고 간주되어 온 아테네 민주주의가 일부 특권층 사람들 사이에서 만들어지고, 또 그들의 특전이 되어 온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또한 근대 민주주의 전통의 창시자인 존 로크가 18세기 영국 휘그당에 속한 과두정치의 중요한 철학자이며 예언자였던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더욱이 19세기 영국의 민주주의의 전당(殿堂)이 소수 재력가에게만 선거권을 갖게 하는 방식을 토대로 한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1883~1946)도 비슷한 지적을 했다. “민주주의는 여전히 시험 중에 있다. 이유는 부자들이 숫자 면에서 얼마만큼 대의(代議)를 하는가와는 상관없이 부자들 힘은 수적인 비율보다 항상 클 것이기 때문이다.”


















루소는 스스로 법을 만드는 국민과, 자신을 대신하여 법을 만들어 줄 대표를 선출하는 국민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고 보았다. ‘대의정’과 ‘민주정’은 근본적으로 서로 다르다. 오늘날에는 대의 정부를 민주정에서 파생한 것으로 간주하지만, 18세기 후반에는 대의제에 따라 조직된 정부는 민주정과 확연히 다른 것으로 이해되었다. 오직 선거에 기초한 정부에서는, 공직을 가질 동등한 기회를 모든 시민이 가질 수 없다. 관직 배분 차이는 하찮은 것이 아니다. 예를 들면 의회에 농부보다 변호가가 더 많다는 점은 시시한 문제가 아니다. 변호가가 의회에 들어갈 기회를 더 많이 가지게 된다는 것이 농부에게 상대적으로는 무관심한 일이라 해도 말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몽테스키외, 루소 모두는 선거가 본질적으로 과두정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과두정은 선거가 사용되는 환경과 조건에서 파생된 것이 아니라, 선거 그 자체 속성에 기인한 것이라고 믿었다.



수많은 자료는 선거가 아닌 ‘추첨’[제비뽑기]을 민주정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소개하고 있다. 더욱 중요한 점은 추첨이 바로 민주적 선출 방법으로 묘사된 반면, 선거는 다소 과두정이나 귀족정인 것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추첨을 통해 집정관을 지명하는 것은 민주정이고, 선거에 의한 것은 과두정이다”라고 말했다. 추첨은 민주적이고 선거는 과두적이라는 생각은 우리 상식을 벗어난다. 



몽테스키외도 추첨을 민주주의로, 선거를 귀족주의로 밀접하게 연관시킨다. 몽테스키외는 “추첨에 의한 선발은 민주정의 특성이요, 선거에 의한 선발은 귀족정 특성이다. 추첨은 누구의 감정도 상하게 하지 않는 선발 방법으로, 각각 시민에게 조국을 위해 봉사하고자 하는 희망을 준다”라고 썼다. 몽테스키외는 민족정이 추첨과, 그리고 귀족정이 선거와 어울린다는 사실을 하나의 불변적인 법칙으로 상정했다. 이 두 방법은 어떤 독특한 문화에 속한 것이거나, 어떤 민족에게만 한정된 산물이 아니다. 이 둘은 바로 민주정과 귀족정의 본질 그 자체에서 파생된 것이다.



루소 역시 <사회계약론>에서 추첨을 민주정으로, 선거를 귀족정으로 연결시킨다. 행정관을 선발하는 데에는, 어떤 방법을 사용할 것인지를 선택해야 한다. 이 질문을 다룬 구절에서, 루소는 몽테스키외 말을 인용하며, “추첨에 의한 선발은 민주정의 본질”이라는 그의 생각에 동의를 표한다. “추첨은 민주주의에 적당한 선발 방식이다. 추첨은 어떤 특정집단의 의지 개입 없이 행정직을 배정하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민주정의 자유 원칙’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민주정의 기본 원칙은 시민이 통치자이자 피통치자라는 두 위치를 번갈아 가며 차지할 수 있어야만 한다. “자유의 형태는 다스리고 또 다스림을 받는 것을 번갈아 하는 것이다.” 민주적 자유는 내일이면 자신이 차지할 그 자리에 오늘 앉아있는 그 누군가에게 복종하는 것이다. 통치자는 입장을 바꾸어 지배받는 사람 처지에서 결정을 내리도록 유도된다. 피통치자 처지를 잘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정의를 외치는 것, 즉 권력에 있는 사람들에게 통치를 받는 사람들 처지를 상상해 보라고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통치자들에게 그렇게 할 수단과 동기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결과적으로 이 근본적인 원칙에 따르면 추첨은 합리적인 해결책이 된다. 



오늘날 생각과는 달리, 시민이 권력을 행사한 대부분 정치제도에서는 추첨이 사용되었다. 추첨은 로마 시민 의회에서도 제한적이기는 했지만 일정한 역할을 담당했다. 중세와 르네상스 시기 이탈리아 공화국들에서는 추첨을 통해 행정관을 선발하곤 했다. 11세기와 12세기에 설립된 초기 이탈리아 코뮨에서는 행정관을 선발하기 위해 추첨을 사용했다. 공화주의 부흥의 중심지였던 피렌체에서, 공화주의 체제 핵심은 바로 추첨을 통한 행정관 선출이었다. 베네치아에서는 1797년 몰락할 때까지도 추첨이 계속 사용되었다.  추첨의 목적은 자신이 속한 파당 사람을 선택하는 도당들을 막기 위해 고안되었다. 피렌체인들도 공화정 기간 동안 다양한 행정관과 정무위원회 위원 선발에 추첨을 이용했다. 14세기 말 추첨은 행정관 선발에 공평성을 보장하고 파당을 막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추첨은 개인이나 당파에 의해 행정관이 선출이 조작되는 것을 막았다. 어느 누구도 추첨 과정의 단계를 통제하거나,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없었다. 추첨이라는 중립적이고 조작 불가능한 메커니즘이 바로 공정하다고 느끼도록 만들었다.



지만 추첨이 평등하고 민주적인 특성이 있다는 신념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은 아니며, 실제로 15세기 말까지도 논란의 여지가 없던 사안도 아니었다. 오늘날 우리도 추첨을 괴상한 관습 정도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추첨은 통치에 특별한 재능이 없는 사람을 포함해, 무작위로 아무나 선발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따라서 추첨은 분명 결점이 많은 선출 방법이고, 추첨이 이제 사라진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같은 결론은 타당한지 의심해 보아야 할 주장이다. 



고대 아테네 민주주의에서 모든 평의회위원들과 판사들 뿐 아니라 대부분 행정관은 전문가가 아니라 보통 시민이었다. 아테네인들은 각각의 정치적 기능은 비전문가에 의해서 수행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내린 가정은 만약 전문가들이 정부에 관여하게 되면 불가피하게 그들이 지배하게 되리라는 것이었다. 아테네인들은 아마도 집단적 정책 결정에서 다른 사람들이 가지지 않은 지식과 기술을 가진다는 것 자체가 권력의 한 근원이 되며, 법률적으로 그들 각각 권력이 어떻게 규정되든, 그러한 기술을 가진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이점을 갖는다고 판단한 듯하다. 전문가로 이루어진 평의회 또는 전문 행정관이 민회를 좌지우지할지도 모르고, 법정에서 전문가들은 다른 판사들의 중요성을 축소시킬 것이다. 


















마이클 샌델은 최근의 역사적 경험으로 봐도 “최고의 인재들이 저학력자 동료 시민들보다 통치를 잘한다는 생각은 능력주의 오만에서 비롯된 신화일 뿐”이라고 말한다. 1945년 윈스턴 처칠의 보수당을 눌렀던 영국의 클레멘트 애틀리(1883~1967) 내각의 장관 가운데 일곱 명이 탄광 갱부 출신이었다. 매우 유능하다고 평가받은 외무장관 어니스트 베빈은 전후 세계질서의 설계자 중 한명이었다. 그는 11세 때 학교를 중퇴하고 노동조합 지도자로 성장했다. 하원 의장과 부수상을 지낸 허버트 모리슨은 14세에 중퇴하고 지방정부에서 일하며 명망을 쌓았는데, 런던의 대중교통 시스템을 개발한 공로가 컸다. 보건부 장관 어나이린 베번은 13세에 중퇴한 뒤 웨일스에서 광부로 일했고, 장관이 되어서는 영국 국민의료보험 제도를 수립했다. 



‘20세기 영국에서 가장 개혁적인 정권으로 평가되는 애틀리 정권은 노동계급에 힘을 실어주었으며, 애틀리 전기 작가는 ‘영국의 새로운 사회계약에 쓰일 윤리 언어를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샌델은 “정책 결정이 ‘스마트하냐 우둔하냐’ 문제로 여겨질수록 ‘스마트한 사람(전문가나 엘리트)’이 결정하고, 일반 시민들이 토론과 결의를 하는 일에서 배제하는 게 옳다고 여겨지지 마련”이라고 ‘정치 엘리트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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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man 2023-06-15 21: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그리의 홉스 해석은 갸우뚱하네요. 네그리가 하고 싶운 말이 있는데, 그걸 위해 홉스를 이용한 느낌이랄까요? 저도 홉스를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집에 있는 책들과 교차검증 해봐야겠습니다 ㅋㅋㅋ

북다이제스터 2023-06-15 22:17   좋아요 1 | URL
저도 잘 모르지만 네그리와 홉스는 거의 같은 과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사실 그건 중요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저도 제 주장을 위해 이것저것 짜집기 한 거 뿐입니다. 여타 학자들이 그렇듯이요.
 
















"헤르메스주의는 헬레니즘시대(BC 305-30)에 이집트의 현자였던 것으로 추정되는 해르메스 트리스메기스투스에 근거한 사상이다. 1471년에 피치노가 <해르메스 문서>를 번역해 출간함으로써 활성화되었다(하지만 훗날 이 문헌은 사실상 2세기의 신플라톤주의 맥락에서 만들어진 문헌이었음이 밝혀지게 된다). 헤르메스주의는 자연을 영험한 힘으로 가득찬 곳, 힘 – 공감과 반감(인력과 척력) -의 그물망으로 이해했으며, 르네상스 시대의 철학자들은 그 심층적 힘을 읽어내 우주의 신비를 밝혀내고자 했다. 아울러 파라켈수스(1493~1541)가 역설했듯이, 인간을 소우주로 보고 이 소우주로서의 인간에게서 대우주로서의 자연의 생명력을 발견하고자 했다.



헤르메스주의는 근대 물리학의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중력’ 개념으로서 물리학의 중심에 있는 만유인력 개념이 이 헤르메스주의에서 연원했다. 근대 물리학 맥락에서 ‘운동’이란 사물의 본성에 관련된 것이 아니라 단지 사물의 ‘상태’일 뿐이다. 사물 자체는 그저 x로 놓으면 그만이다. 이것은 어떤 특별한 발견이라기보다도 특정 영역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의 초점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생명의 차원과 물리의 차원 사이에 존재하는 존재론적 분절을 예민하게 고려하기보다는 연속적인 방식으로 파악했다는 점에 있다. 근대 역학은 이 체계에서 물리적 측면을 따로 떼어내어 그 부분을 탐구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이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존재론은 틀린 것이고 새로운 존재론이 맞는 것임을 뜻하지 않는다. 어떤 특정한 맥락에서(이 경우 역학의 맥락에서) 그런 존재론을 취할 필요가 있다는 것과 그 존재론이 ‘옳다’는 것은 다른 문제인 것이다. 역학이라는 특정한 맥락을 위해 이런 식의 존재론 혁신이 필요했다고 해서, 그 존재론이 존재론 자체 맥락에서 아리스토텔레스 존재론보다 더 ‘진리’인가 하는 것은 따져볼 문제다. 아니, 애초에 양자의 비교는 짝이 잘 맞지 않는 비교라 하겠다. 짝이 맞는 비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세계와 근대 역학을 철학화한 기계론적 유물론의 세계일 것이다.



‘과학적 사유’의 기본틀은 무엇인가? 첫째, 연구하고자 하는 대상을 세계에서 분절해낸다. 현대식으로 말해 어떤 ‘계’(system)를 분절해낸다. 이 점에서 과학적 사유는 철학적 사유와 다르다. 철학적 사유가 세계를, 삶을 그 전체로서 보려는 데 핵심이 있다면, 과학적 사유는 반대로 세계의 어떤 부분을 오려내서 ‘대상화’함으로써 시작한다. 둘째, 이 계를 구성하는 주요 요소들을 변항(variable)으로서 잡아낸다. 즉, 시간에 따라 양적으로 변화하는(때로는 계속 유지되는) 핵심적인 존재단위들(entities)을 설정한다. 이것이 과학기술이라는 행위의 핵심적인 존재론적 설정이다. 예컨대 낙하 운동의 경우 시간(t), 거리(s) 등이 될 것이고, 천문학적 계의 경우 질량(m), 거리(R), 힘(F) 등이 될 것이다. 물론 이 변항들을 어떻게 설정하느냐는 맥락에 따라 달라진다. 이 변항들 중 가장 근본적인 변항, 정확히 말하면 ‘선택의 여지가 없는’ 변항은 시간(t)이다. 왜일까? 과학의 기본 목적은 운동의 법칙성을 잡아내는 것이다. 그런데 운동이란 항상 시간에서의 운동이다. 따라서 모든 변항 중 가장 일차적인 변항은 바로 시간이라는 변항인 것이다. 셋째, 이 변항들에 관한 데이터를 모아 그것들 사이의 함수관계, 특히 미분방정식을 사용한 함수관계를 잡아낸다. 이 함수관계가 확증되면 그것은 ‘법칙’으로 승격된다.



넷째, 이렇게 얻어낸 수학적 이론을 검증하기 위해 그 이론에 있어 중요한 부분 – 그곳을 실증할 경우 그 이론의 설득력이 비약적으로 높아질 수 있는 부분 -에 관련해 실험을 즉 ‘결정적 실험’을 행한다. 이렇게 실험을 통해 이론의 타당성을 확증한다. 다섯째, 모든 운동 법칙은 결국 시간의 함수이므로, 시간-변항의 각 함수값은 곧 해당 시간에서의 그 운동 법칙 전체의 함수값을 산출한다. 따라서 운동 법칙에 미래의 어떤 시간을 대입하면 미래의 해당 계의 상태를 예측할 수 있다. 예컨대 천문학에서, 훗날 라플라스가 장담하게 되듯이, 물리법칙과 해당 초기조건만 주어지면 어떤 시간에서의 우주 상태도 예측 가능하다는 것이다.



동북아에서 왜 먼저 과학기술이 발달하지 ‘못했을까’라는 물음은 곧 과학기술 발전은 인류 역사에서 긍정적인, 때로는 거의 당위적인 가치를 가진다는 판단을 은연중에 깔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과학기술, 특히 기술문명이 가져온 세계가 과연 긍정적이고 심지어 당위적인지는 매우 의심스럽다. 사람들은 기이하다 싶을 정도로 과학기술의 비극들에는 무관심하고, 과학기술이 가져오는 흥미/재미와 ‘부가가치’에만 관심을 쏟는다. 드론이 가져올 편리와 부가가치에는 관심을 가져도 (최근 중동이나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서 무차별로 이루어지는) 무인폭격의 섬뜩함은 잘 이야기하지 않는다. 인공지능에 열광하면서도 그것이 가져올 불행에 대해서는 거의 ‘숙명’처럼 받아들이는 듯하다. 이런 흐름은 대중매체/대중문화에 의해서 점차 공고한 것이 되고 있다. 따라서 위와 같음 물음은 결국 자본주의-과학기술-대중매체에 의해 형성된 가치를 밑에 깔고서 제시되는 물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런 가치와는 반대의 가치를 가진 경우, 오히려 물음을 반대로 던져야 할 것이다. “왜 서양에서는 세계에 대한 형이상학적 비전이 몰락하고, 외물에 집착함으로써 마음을 잃어버리는[玩物喪心] 과학기술이 기형적으로 발달했는가?’라고. 하지만 오늘날 이런 식으로 물어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것은 우리가 자본주의 가치에 이미 강하게 세뇌되어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와 과학기수은 운명공동체다. 자본주의는 신기술을 발명해야 이익을 볼 수 있고, 신기술은 자본을 통해서 일반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들의 막강한 힘은 경제만 좌우하는 것이 아니다. 돈의 힘이 정치는 물론이고 사람들의 생각과 감정, 문화도 지배하는 것이다.



역사를 바라보는 균형 감각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런 감각을 가지고 볼 때, 동북아 지식인들이 왜 외물을 조작하려는 경향[機心, 기심]을 경계하면서 내면 가꾸기에 힘썼는가를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이들은 물질문명의 폭주가 가져올 파괴와 혼란을 이미 감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이 문명에서 물질문명은 지식인들보다는 장인들에게 맡겨져 있었고, 이 두 집단 사이 거리는 멀었다. 그리고 동북아 지식인들은 그 거리를 메울 수도 있었을 자본주의 경향에 대해서도, 특히 윤리 없는 상업의 위험성에 대해서도 충분히 감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 돈을 많이 버는 사람들, 신기한 물건을 만들어내는 사람들, 감각적 쾌락을 주는 사람들은 상찬의 대상이 되지만, 이런 가치들의 폭주를 경계했던 선철들의 지혜는 ‘고리타분한’ 것으로 매도되기 일쑤다. 바로 그런 가치/시선이 이미 현실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발걸음을 멈추고 근대 과학기술문명의 세계사적/인류사적 함축에 대해 다시 한 번 곰곰이 생각해보아야 하는 게 아닐까? 왜 사람들은 자연에 대한 경외심이나 자연과의 합치를 잃어버리고 인간이 만든 장난감에만 열광하는지. 왜 우리 선철들이 그토록 애써 가꾸었던 ‘사랑의 마음’을 헌신짝처럼 내던지고 사물의 조작과 계산에만 몰두하고 인간 스스로를 그런 틀 속에 밀어 넣어 물화(物化)하고 있는지. 왜 사람과 사람 관계는 소홀히 하면서 외물이 가져다주는 흥미와 이익에는 그토록 집착하는지 생각해본다면, 우리는 근대성과 과학기술문명에 대해 보다 균형 잡힌 시선을 가지게 되지 않을까? 무엇이 진정한 ‘진보’인지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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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23-06-07 16: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연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를 위한 도구, 목적론적인 관점에서 보는 시각의 한계는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존재와 비존재, 목적과 수단 등에 대한 지나친 분화를 통해 과학문명이 발달할 수 있었다면, 이제는 이러한 세분화된 관점이 종합적인 판단을 방해하는 것은 아닐까를 페이퍼를 통해 생각해봤습니다...

북다이제스터 2023-06-08 15:15   좋아요 1 | URL
넵, 그런 것 같습니다.
부분의 합이 전체가 아닌데, 분석으로 부분만 보고 종합적인 판단을 못하여 전체를 보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존재하는 대로의 인간일 뿐 아니라

스스로에 대해 생각하는 대로의 

인간이기도 하다.” 

- 군나르 시르베크








우리는 나중에 발생한 일이 이전 일보다 더 완벽한 상태라고 믿으며 ‘발전’ 개념을 확신한다. 하지만 이러한 확신은 그냥 새로운 태도일 뿐이며, 특히 19세기 말 무렵 이전에는 거의 존재하지 않은 태도다. 찰스 다윈(1809~1882)의 『종의 기원』(1859)이 발표되면서 진보란 개념이 확산되었고, 그와 함께 역사란 더 나은 방향으로 가는 과정이라는 생각도 생겨났다. 『종의 기원』 마지막 페이지에 ‘진보’라는 단어가 있다. “자연선택은 오로지 각 개체에 의해, 개체를 위해 작동하므로 모든 정신과 물질적 자질은 완성을 향해 ‘진보’되어갈 것이다.” 하지만 진화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1941~2002)는 “진화는 특정한 방향성이 있는 진보가 아니다”라고 단언한다. “진화는 ‘무엇인가’가 어디론가 움직여 가는 것이 아니라, 자연에서 일어나는 변이가 확장되거나 위축되는 일로 봐야 한다”라며, 다음과 같은 표현은 모두 잘못된 사실이라고 지적한다.



· 35억 년 전 지구에 살던 생물은 박테리아와 그 사촌들 같은 아주 간단한 종류의 단세포 생물들뿐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지구는 쇠똥구리와 해마, 피튜니아[관상용 식물], 인류 등으로 붐비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진보가 생명의 역사를 진전시켜 온 기본 추진력이 아니라고 부인할 수 있는가?

· 지난 몇 십 억년 동안 동물은 전체적으로 몸의 크기, 먹이 섭취 및 방어 기술, 뇌와 복잡한 행동, 사회적 조직화, 환경 조절의 정확성 등에서 상승 진화했다.

· 진화가 진행됨에 따라 생물의 구조나 생리 기능에서 전문화 정도가 커진다.

· 인간의 해부학적 복잡성, 신경의 정교함, 습성의 다양성과 유연성 등 호모 사피엔스의 생명 특성을 보면, 인간은 틀림없이 어떤 진보의 경향을 보인다.

· 생명체 발달 과정은 복잡화, 조직화, 전문화를 통해 진화 단계를 하나씩 밟아 사다리 위로 올라간다. 어마어마한 대뇌 피질과 기막히게 복잡한 행동 패턴을 소유한 인류는 우리가 아는 한 그 정상에 위치에 있다.

· 인류가 지구 시간의 마지막 순간에 나타난 존재라는 지질학 발견을 봐선, 진화 방향은 인간을 향한 예정된 진보다. 

· 다른 생물은 인류보다 못하다.



우리가 이렇게 착각하는 이유는 “경향성을 알고 싶어 하는 강렬한 인간 욕망이 종종 실재하지도 않는 방향성을 찾아내거나 입증되지 않는 원인을 추론해” 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사건에서 반드시 패턴을 찾아내려는 습성이 있어서, 단순히 무작위로 발생한 사건도 뚜렷한 경향성을 잡아내어 그 원인으로 삼는다. 대부분 사람은 순전히 무작위적인 결과에서도 규칙성이 자주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르고 있다.” 착각인 “외견상 방향성이나 경향성은 사실 자연계에서 변이 정도가 축소되거나 확장된 ‘부차적’ 결과이지, 어떤 것이 특정 방향으로 움직인 결과가 아니다.”
















‘다른 생물은 인류보다 못하다‘는 믿음은 인간의 ’고질병‘이다. 이러한 인본주의 사상은 중세 초기 그리스도교 사상에서 이미 ‘세상은 곧 인간과 같다’라는 개념으로 그 씨앗을 엿볼 수 있다. 신학자 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354~430)의 우주관은 “인간이 신에게 더 가까이 갈 수 있도록 세계가 인간 형상으로 만들어졌다”고 여겼다. 수도사였던 성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 역시 인간 이성에 대해, 인간 삶에 대해, 인간 구원에 대해 인간은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고 높이 평가했다. 성 토마스와 같은 스콜라 신학자들 또한 인간 본성을 영광스런 신의 피조물로 찬양했으며, 인간과 신의 동역(同役) 가능성을 믿고 있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同役)자 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고린도전서 3:9>) 더욱이 그들은 인간 이성 능력을 굳건히 믿었다. 이후 스콜라 철학에 영향 받은 단테(1265~1321)도 현세가 인간의 유익을 위해 존재한다고 보았다. 그는 인간이 자유의지로 선을 택하고 악을 피할 수 있다고 보았다. 무엇보다도 인간성에 대한 그의 희망과 궁극적 믿음은 중세 전성기를 지배했던 분위기를 대표한다. 이 점에서 단테는 인간에 대해 가장 긍정적인 확신을 표명한 작가 중 하나로 손꼽힌다. 















중세 후기가 되자 신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새로운 계급, 곧 상인 계층이 번성했다. 상인은 당시 영주와 성직자, 기사, 농노로 이어지는 봉건 피라미드에서 설 자리가 없었다. 상인은 농노를 자유민이라고 이름 붙인 임금노동자로 삼기위해 영주와 대립할 수밖에 없었다. 상인은 또한 자신이 번 재산을 지키기 위해 사회가 안정되길, 소유권이 보장되길 원했다. 그들은 돈이 넘쳤는데, 세입을 늘리는데 한계가 있던 국가와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 왕은 상인들에게 세금을 늘려 국가 권력을 강화할 수 있었다. 상인과 국가가 함께 공생하며 발전하는 체계가 만들어졌다. 신에게 사랑받지 못한 상인 계급은 자신들 위상을 강화할 다른 방법도 찾았다. 당시 유럽보다 모든 면에서 우월했던 이슬람 세계가 상인들 소망을 이룰 방안이 되었다. 이슬람 세계가 그동안 연구한 그리스-로마 문명을 십자군 전쟁 원정으로 접하게 된 상인들은 기독교 이전 고전 사상에 탐닉하게 되었다. 그 사상은 중세 신학자들이 보잘것없고 덧없는 존재로 여겼던 바로 ‘인간’이었다. 무역이 발달했던 고대 그리스인에게 인간은 독립적이고 지적이며, 모험심이 강하고 능력도 있는 그런 존재였다. 중세 상인들에게 이러한 인간형은 전형적으로 돈을 잘 버는 바로 자신들과 같은 사람들이었다. 르네상스 시기(14~16세기) 상인 계급은 인본주의라는 뿌리를 고대 그리스에서 캐어내 자본주의에 이식했다. 

 


스피노자(1632~1677)는 인간이 자신만의 기준으로 세계를 판단하기에, 예컨대 ‘식물과 동물은 인간에게 양분을 제공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식의 목적론적 세계관을 가지게 된다고 비판한다. 이러한  세계관으로 인간은 신이 “자신 형상을 따라 인간을 만들었다”면서 스스로를 ‘만물의 영장’으로 여기고, 인간만의 가치를 세계에 투영해서 좋음과 나쁨, 질서와 무질서, 아름다움과 추함 같은 이항대립적 가치론을 구축한다. 하지만 이런 가치론은 사물의 참된 원인을 몰라서 내리는 인본주의일 뿐이라고 스피노자는 비판한다. 사람들은 모든 자연물이 어떤 목적을 위해 작용한다고 추측한다. 하지만 자연은 아무런 목적도 없으며, 모든 목적인(目的因)은 인간이 만들어낸 허구에 불과하다. 
















특히 목적론 사고 속에서 사물은 언제나 하나의 고정된 본질만 가지며, 그러한 본질을 향해 나아가는 미완(未完)의 존재로 간주된다. 사물 변화는 오직 본질을 실현하기 위한 과정으로 설명되며, 이로부터 벗어난 것은 비본질적이고 비정상적일뿐이다. 이러한 목적론 사고가 갖는 위험성은 ‘차별주의’ 논리로 쉽게 전용된다. 스피노자는 이러한 목적론 사고 바탕이 다름 아닌 ‘인본주의’ 사고임을 보여준다. 그런데 우리가 인간인 이상 애초부터 인본주의 사고를 벗어날 순 없지 않을까? 스피노자는 우리가 인본주의 사고를 벗어나 그 ‘외부’를 사유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예를 들어 현재 우리는 남자와 여자를 평등한 이분법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이러한 이분법은 서양 역사에서 최근 들어 보편화되었다. 고대에서 르네상스까지 인류 분류 방식은 하위 속물에서 상위 이상형 상태까지 위계적 연속체를 이룬다는 ‘단성 모델’이 선호되었다. 물론 그때에도 인간을 크게 여자와 남자 두 무리로 분류할 수 있음을 알고 있었지만, 이상적인 형태는 단 하나라고 생각했다. 과거부터 계속되어 온 여성 억압의 원인을 이해하려면 분류의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단성 모델에서 전통적인 남성성은 더 큰 열정에 의해 단일 사다리의 정상에 있고, 전형적인 여성성은 힘의 생성이 상대적으로 약하기에 단일 사다리 밑에 위치한다). 객관적인 자연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우리는 범주를 통해서 자연과 교감한다. 이 점을 잘 알면서도 사람들은 어떠한 범주가 너무나 명확하기에 그 구분법은 시간과 문화를 초월해서 절대 변하지 않을 것으로 여긴다. 



영장류학자 프란스 드 발(1948~ )도 인간이 항상 자신 망상 속 사다리의 꼭대기에 스스로를 위치시키고자, 다른 동물들을 실제보다 과소평가한다고 말한다. 드 발은 과학자들이 침팬지의 ‘키스’를 ‘입과 입의 접촉’이라고 부르고, 영장류의 ‘친구’를 ‘특히 좋아하는 제휴 파트너’라고 부르며, 까마귀와 침팬지가 도구를 만들 수 있다는 증거에 대해서는 인류를 정의하는 종류의 도구 제작과는 질적으로 다르다고 해석한다. 어떤 면에서 동물들이 우리보다 뛰어난 인지 능력을 지닌다면 – 예를 들어 특정한 새들은 수천 개의 씨앗이 있는 정확한 위치를 기억할 수 있다 – 과학자들은 이를 지능이 아니라 본능이라고 치부한다. 정치철학자 존 그레이(1948~ )는 “인본주의란 과학을 통해 인류가 진리에 다가설 수 있고, 그래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신념지만, 과학은 세계를 이해하는 능력 면에서 인류가 다른 동물과 다르다는 속임수를 지탱하기 위해서 사용”되어 왔을 뿐이라고 냉소한다. 과학자들은 수년 전에 인간만이 도구를 이용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얼마 뒤 침팬지나 코끼리 같은 몇몇 동물이 나무 막대기와 돌 같은 물건을 도구로 이용한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그들은 인간만이 자신이 사용하는 도구를 변형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후 침팬지가 막대기를 목적에 따라 변형시킨다는 사실이 또다시 밝혀졌다. 그들은 이제 인간만이 도구를 이용해 다른 도구를 만든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자연에서 인간만이 독보적인 지위를 갖고 있다고 주장하는 견해는 새로운 과학적 발견을 통해 수정되고 있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점이라곤 스스로가 특별한 존재라고 느끼고 싶어 하는 욕구밖에 없다. 

















도시에 사는 까마귀들은 횡단보도가 있는 도로 위에 견과류를 떨어뜨려 지나가는 차바퀴에 껍질이 깨질 때까지 기다린다. 그다음에는 부리로 길 건너기 버튼을 눌러 자동차가 지나가지 못하게 막은 다음에 껍데기가 열린 견과류를 안전하게 회수해 온다. 이러한 행동은 여러 도시에서 여러 번 관찰되었다. 
















문어는 무척추동물로 분류될 뿐 아니라, 지능이 없다고 알려진 달팽이나 조개류와 마찬가지로 연체동물에 속한다. 조개류는 심지어 뇌가 없다. 하지만 문어는 뇌가 있으며 영리하다. 어린아이들이 열지 못하도록 설계된 약병 뚜껑을 문어는 열 수 있다는 사실이 보고된 바 있다. 무척추동물 치고 문어 뇌는 거대하다. 호두 정도 크기인데, 아프리카 회색앵무새 뇌 크기와 똑같다. 훈련된 어떤 회색앵무새는 구어체 영어단어 수백 개를 의미 있게 사용하는 법을 익혔다. 형태와 크기, 재료 개념 또한 이해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고, 수학을 할 수 있었으며, 질문을 던졌다. 회색앵무새는 또한 조련사를 고의로 속이다 못해, 속인 일이 발각되면 사과할 줄도 알았다. 동물 뇌의 처리 능력을 좌우하는 것은 신경세포 수다. 문어는 신경세포 3억 개가 있다. 쥐는 2억 개가 있고, 개구리는 아마도 1600만 개가 있을 터다.



미국 시애틀 아쿠아리움에 사는 태평양대왕문어는 반쯤 돌려서 나사로 고정시킬 수 있는 야구공 크기의 플라스틱 공을 즐겨 가지고 놀았다. 직원은 공 안에 음식을 넣어두었는데, 나중에 놀란 점은 문어가 공을 여는 데 그치지 않고 다시 나사를 조여 원래대로 조립해놓았다는 사실이다. 집에서 어류를 키우는 사람 다수는 문어가 자신들과 함께 텔레비전 보기를 즐기는 듯싶다고 말한다. 권위 있는 저서 『두족류: 가정 수족관을 위한 문어와 오징어』에서, 심지어 주인과 문어가 함께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도록 TV를 수조와 같은 방에 두라고 권한다.



타인 생각이 내 생각과 다를 수도 있다는 생각은 고도로 발달한 인지 상태로, 소위 ‘마음 이론’(theory of mind)으로 알려져 있다. 한때 마음 이론은 오직 인간에게만 있는 능력이라 여겨졌다. 일반적인 어린이는 마음 이론이 3세에서 4세 사이에 발생한다. 마음 이론은 의식의 중요한 요소라고 간주되는데, 자의식의 존재를 암시하는 까닭이다(‘난 이렇게 생각하지만, 당신은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 개조차도 자신에게 없는 지식이 다른 개체에게는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해한다. 그렇지만 다른 생물 마음이 어떠한지 그려보는 지구상 모든 생물 가운데 으뜸은 틀림없이 문어일 듯하다. 그런 능력이 없다면, 문어는 각양각색의 기만술로 자신을 보호하는 일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문어 암컷한테는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 호르몬이, 수컷한테는 테스토스테론 호르몬이, 둘 다에게는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티코스테론이 있다. 암컷 문어의 에스트로겐 수치는 산란 연령일 때와 수컷을 만날 때 급등한다. 수컷의 테스토스테론 수치도 올라간다. 호르몬과 신경전달물질은 인간의 욕구와 공포, 사랑, 즐거움, 슬픔에 관계하는 화합물이며서 여러 생물에게도 잘 보존되어 있다. 이는 인간이든, 원숭이든, 새든, 바다거북이든, 문어든, 조개든 간에 내면 깊숙이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생리적 변화는 동일하게 보인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무뇌 생물인 가리비의 작은 심장조차도 포식자가 접근해오면 한층 빨리 뛴다.



인간은 다른 동물이 감정과 지능이 없다고 여기려 한다. 이런 선입견은 어류와 무척추동물에 대해서 특히 더하다. 하지만 동물은 우리가 상실했거나 결코 획득한 적 없는 감각이 확장된 세계에서 우리가 끝내 듣지 못할 목소리를 내며 살아가는 존재다. 

















동물들이 잠을 자는 방식도 놀랍다. 돌고래와 고래는 꿈을 꾸지 않는 비렘수면으로 잠을 자는 데, 한쪽 뇌 반구만 잠들 수도 있다. 즉 어느 한 시점에는 뇌 반쪽만 잠을 자고 있다는 뜻이다. 한쪽 반구가 잠을 충분히 자고 나면 서로 교대하여, 깨어 있던 반구는 깊은 비렘수면에 푹 빠져든다. 뇌 반쪽이 자고 있을 때에도, 돌고래는 계속 움직이고, 심지어 음성대화까지 할 수 있다. 뇌 활성을 교대로 ‘켜고, 끄는’ 경이로운 기술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수생 포유류만 양쪽 뇌가 따로따로 깊은 비렘수면을 취하는 능력을 지니지 않았다. 조류도 할 수 있다. 조류는 주변을 지켜보기 위해서 그렇게 한다. 새가 혼자 있을 때는, 뇌의 반쪽과 그 반쪽이 담당한 눈은 깨어서 주변에 어떤 위협 요인이 있는지 계속 지켜본다. 그렇게 할 때, 다른 쪽 눈은 감긴다. 그럼으로써 그 눈을 담당하는 뇌 반구는 잠이 들 수 있다.



새들이 함께 모여 있을 때는 더욱 흥미로운 일이 벌어진다. 일부 종에서는 새들이 무리지어 있을 때면, 양쪽 뇌 반구가 동시에 잠을 자는 개체를 많이 볼 수 있다. 그들은 어떻게 위협을 피할 수 있을까? 답은 참 창의적이다. 무리는 먼저 나뭇가지에 한 줄로 죽 늘어서 앉는다. 양쪽 끝에 있는 개체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뇌 양쪽 반구 모두가 잠에 빠져든다. 양쪽 끝에 앉은 새들은 뇌의 반쪽(서로 반대쪽)만 깊이 잠든다. 따라서 한쪽 끝 새는 오른쪽 눈을, 다른 한쪽 끝 새는 왼쪽 눈을 활짝 뜨고 있다. 그럼으로써 무리에서 양쪽 반구 모두가 동시에 잠들 수 있는 개체 수를 최대한 늘리면서, 무리 전체를 위해 두 마리 새만 위협 요인이 있는지 주변을 지켜본다.. 시간이 좀 지나면, 양쪽 보초병들은 일어나서 몸을 180도 돌려서 다시 앉아, 다른 쪽 뇌를 잠재운다.



대양을 건너서 수천 킬로미터 이주하는 철새들은 한 자리에서 충분히 잠잘 기회가 없다. 하지만 뇌는 이런 상황에서 창의적인 방법을 찾아냈다. 철새들은 비행할 때 겨우 몇 초씩 지속되는 놀라울 만치 짧은 잠에 빠지곤 한다. 이 극도로 강력한 선잠만으로도, 오랫동안 전혀 잠을 자지 못했을 때 뇌와 몸에 닥칠 여러 결핍 증상을 충분히 막을 수 있다. 흰정수리멧새는 아마 장거리 비행 때 잠을 줄이는 능력 면에서 가장 경이로운 사례일 것이다. 이 흔한 작은 새를 미군이 수백만 달러 들여서 연구하고 있다. 미군은 24시간 잠을 자지 않는 군인을 만들고 싶은가 보다. 

















여왕개미 평균 수명은 14년이며, 한 마리가 평생 낳는 알의 수는 약 1억 5천만 개에 달한다. 이처럼 많은 알을 낳기 위해 여왕개미는 숫개미 여러 마리와 교미하며 적어도 정자 2억 개 이상을 비축한다. 여왕개미는 저정낭이라 불리는 정자주머니 속에 정자를 저장해 놓고 평생 사용한다. 여왕개미가 알을 낳을 때 저정낭에서 정자를 꺼내어 수정시키면 암컷이 되고 저정낭을 막아 미수정란을 낳으면 숫컷이 된다. 다시 말해 숫컷들은 동정녀로부터 태어난 개체다. 숫개미는 정자 도움 없이 오로지 난자로부터 만들어지는 반수체 동물이기에 그들 세포 속에는 언제나 단 한 벌의 염색체만 들어 있다. 숫개미는 아버지가 없는 개체다. 



남미 지역에 사는 잎꾼개미 군락 하나가 파 엎은 흙 양은 평균 20m^3가 넘으며 무게로 따지면 약 44톤이나 된다. 일개미 한 마리마다 자기 몸무게 너댓 배나 되는 흙덩이를 적어도 10억 번 이상 굴 밖으로 끌어낸다. 이파리를 운반할 때도, 사람으로 치면, 약 15km나 되는 귀갓길을 300kg이 넘는 짐을 입에 물고 시속 24km 속력으로 달리는 셈이다.



개미는 태양과 각도를 측정하여 갈 길 방향을 찾는다. 개미는 먹이가 있는 곳으로 가는 동안 태양과 각도를 측정해 두었다가 먹이를 짚어들고 180도 회전하여 집으로 향한다. 해를 방향지표로 사용하는 데는 한 가지 문제가 있다. 만일 먹이를 구하러 나가는 시각과 집으로 돌아오는 시각 사이에 상당한 차이가 생겼을 경우다. 하지만 개미 뇌 속에 생물시계가 있어서 한 시간에 15도씩 각도를 조절하여 정확하게 집으로 향한다.



일개미는 자기 의사도 전혀 없는 기계적인 개체가 아니다. 그들도 엄연히 독립적인 몸을 가지고 개별적인 삶을 영위하는 생명체다. 일개미가 알을 낳는 경우도 상당수 관찰되었다. 암놈인 일개미가 낳을 수 있는 알은 결국 미수정란이므로 모두 숫개미로 성장한다. 여왕이 버젓이 살아 있는 동안 일개미가 숫개미를 키우는 일이 언제나 순조롭지만 않다. 실제로 많은 종에서 여왕개미와 일개미들 간 갈등은 끊일 날이 없다. 일개미들은 대체로 여왕 화학물질 영향력이 급격히 약화되는 군락 변방이나 굴 속 어느 한 방 입구를 막은 채 여왕 눈을 피해 자기들끼리 알을 낳는다. 여왕개미가 일개미의 역적모의를 눈치 채면 손수 역도 소굴로 행차하여 그들을 가차 없이 물어 죽이는 일도 있다. 개미 군락에서 일개미들이 아무런 지각도 없이 그저 전체 복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삼엄한 군주의 압제 하에서도 틈틈이 자기 이익을 위해 행동한다. 














꿀벌이나 다른 곤충들이 빠르게 날갯짓을 하면 순간적으로 상당한 정전기가 발생한다. 정전기로 충만한 곤충 몸뚱이가 꽃 속으로 들어오면서 촉촉한 암술대와 암술머리에 닿으면서 식물의 중앙 관다발 시스템으로 직접 연결되는 전기장을 만들어낸다. 전기장은 뿌리로 연결되는 수분에 의해 접지되어 땅속으로 흐르게 된다. 이러한 정전기 이동은 곤충 몸에서부터 꽃가루가 떨어져 나와 암술머리에 달라붙기 쉽게 해준다. 또한, 꿀벌이 긴 겨울을 보내기 위해 취하는 방법 중 하나는 겨울 동안 자신들 머리 무게를 줄이는 것이다. 핀란드의 어느 한 학자가 꿀벌은 겨울에는 뇌 활동과 뇌 크기를 줄이고 꽃이 피는 봄에는 뇌 크기를 늘린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야말로 겨울에 에너지를 절약하는 아주 훌륭한 방법이 아닐 수 없다. 자신 내부 컴퓨터 용량을 줄이는 것이다. 꿀벌을 치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러한 ‘뇌의 축소’에도 불구하고 꿀벌은 겨울 동안에도 꽃이 피어 있던 방향을 기억할 수 있다고 한다. 핀 머리만 한 크기의 뇌로서도 기억력은 나쁘지 않은 것이다. 

















인간에게는 근면이 미덕이라는 윤리의식이 있지만, 게으름 피우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럽고 변별 있는 행동 양식이며,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동물이 공유하는 미덕이다. 이솝 우화에는 일벌과 일개미가 대단히 부지런한 동물로 나온다. 하지만 그 동물들이 과즙을 모으거나 집을 청소하는 시간은 낮 시간의 20%에 불과하다. 그외 시간에는 게으름뱅이처럼 일은 안 하고 빈둥거리기만 한다. 개미나 벌이 근면한 동물의 대명사로 불리게 된 것은 벌집이나 개미집 전체가 보여주는 번잡함 때문인 듯하다. 벌집이나 개미집은 겉보기에는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작은 우주 같다. 하지만 과학자들이 각각의 개미와 벌이 매순간 무엇을 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개체 하나하나에 일일이 꼬리표를 붙여 관찰한 결과, 벌과 개미의 휴식 시간이 상당히 길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최근에는 군집생활을 하는 곤충들이 사소한 활동에 에너지를 낭비할 여유가 없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새로운 연구 결과가 속속 나오고 있다. 개미와 벌은 건전지와 같아서 집단을 위해 사용할 일정량의 에너지를 지니고 태어난다. 하지만 그 에너지는 재충전 되지 않기에 빨리 사용하거나 천천히 사용할 수는 있지만 잘 먹고 규칙적으로 운동한다고 해서 더 얻을 수는 없다. 결국 열심히 일할수록 빨리 죽게 된다. 이러한 사실을 생각하면, 꿀을 모으지 않고 휴식을 취하고 싶어 하는 벌들의 심정 공감된다.



인간은 생존에 쓰고도 남을 만큼의 자원을 모은다. 인간의 물욕은 대개 문화적인 탓인 것 같다. 사냥이나 채집을 통해 자원을 획득하고, 그렇게 획득한 자원을 대체로 그날그날 소비하는 동물들은 하루에 서너 시간만 일한다. 사실 일밖에 모르는 사람들까지도 일하지 않고 빈둥거리고 싶어 하는 선천적인 욕구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무시할 수 없기에, 인간은 일부러 게으름을 육욕이나 대식과 함께 일곱 가지 죄악(seven deadly sins) 중 하나로 여기는 것이 아닐까? 



옥수수가 도움을 요청하는 메시지를 내보낼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다. 또는 나무가 다른 나무와 조난신호를 ‘주고받을 것’이라고는 더더욱 생각하지 못한다. 또한 아무도 식물이 공격을 받게 되면 재빠르게 화학적 대응책을 강구할 것이라고도 생각하지 못한다. 식물들은 단순히 한자리에 앉아 있기만 한 것이 아니라 문제가 발생하면 이에 대응할 수 있고 또 방어물질도 동원할 수 있다. 비록 식물이 신경망도 없고 뇌도 없지만 그들 세포는 서로 연락도 할 수 있고 협조된 대응 체계도 만들어낼 수 있다. 비록 전기충격처럼 신경 섬유를 따라 빠르게 전달할 수는 없지만 식물의 여러 다양한 부분은 질병에 대해 반응할 수 있고 식물의 다른 부분과 의사소통을 할 수도 있다. 몇 년 전만해도 이러한 주장은 대단히 놀라운 발견이었다.



옥수수는 상업적으로 중요한 작물이기에 많은 연구가 있었으나 최근에서야 놀랄 만한 사실을 발견했다. 먹성이 좋은 옥수수 천공충이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먹거리인 옥수수 줄기를 갉아먹기 시작하면 옥수수는 냄새나는 화학물질을 만들어내 이에 대응한다. 이 화학물질은 휘발성이 강하고 바람에 의해 멀리까지 전달된다. 이 냄새는 바로 조그만 나나니벌들을 자극해 모여들도록 하는데, 나나니벌은 옥수수 천공충 애벌레에 모여든다. 암컷 나나니벌은 천공충 애벌레 몸뚱이 속에 알을 낳는다. 그리고 그 안에서 새로운 나나니벌 애벌레가 깨어나 자라나면서 옥수수 천공충 애벌레를 서서히 안으로부터 갉아먹는다. 나나니벌 애벌레가 당장은 옥수수를 보호해주는 못한다. 천공충 애벌레는 금세 죽지 않고 계속해서 옥수수 줄기를 갉아먹기 때문이다. 하지만 천공충 애벌레가 성충이 되는 것을 막아 천공충 번식을 제어하기에 장기적인 안목에서 보면 대단히 중요한 방어 전략이 된다.



생물학자들은 꽃을 피우는 식물을 속씨식물이라고 부른다. 속씨식물 종의 수는 대략 26만여 종이나 된다. 지구상 모든 식물 종의 수가 30만 종정도 된다고 점을 감안한다면 우리 주변 식물 중에서 속씨식물이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꽃을 피우는 식물이 생물학적 분포 전체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아니다. 나비나 나방, 딱정벌레, 벌, 베짱이, 메뚜기 같은 곤충들만 전부 더해도 100만 종은 훌쩍 넘기 때문이다. 딱정벌레만 해도 그 종류가 4만5,000종을 넘고 지금도 새로운 종이 매일매일 발견되는 실정이다.



생물학은 정확하게 말하면 과학이 아니다. 화학이나 물리학과는 다르게 어떤 규칙이나 법칙이라고 부를만한 것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물론 그중에는 몇 가지 단순한 규칙이 보이기는 하지만 생물학 분야는 일반적으로 광범위한 다양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은 ‘꽃’과 같은 정도의 생물은 아주 간단하게 그 정의와 특성을 얘기할 수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꽃은 그 크기나 모양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아주 다양하다. 



우리가 동물이나 식물이 단순하고 열등하다고 여겨 지배하려 든다면, 우리가 만든 인공지능이 인류를 지배하는 일이 더 바람직할 수도 있다며 물리학자 김상욱(1970~ )은 우리의 잘못된 논리를 꼬집는다. “폭발물 탐지 로봇은 인간을 위해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위험에 몸을 내던진다. 기계지능이 인간과 비교하여 열등한 것이 있다면 욕심이 없다는 것이다. 수많은 종교가 추구하던 궁극의 경지란 대개 자아와 욕심을 버려서 도달하는 상태다. 기계지능은 버려야 할 자아나 욕심이 아예 없다. 기계지능은 인간이 도달하고자 한 열반의 경지에 이미 도달한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인간 대신 이들이 지구를 지배할 때 더 나은 세상이 될 거라 상상하는 것이 지나친 비약은 아닐지도 모른다. 더 낫다는 기준에 반드시 인간이 고려되어야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하찮은 인간, 호모 라피엔스』(2010) 저자 존 그레이에게 인본주의의 다른 말은 곧 악의 상징, 루시퍼의 속성인 ‘오만’이다. 인간은 자신의 분수를 모르고 ‘경계를 넘어’버렸다는 의미에서 그에게 거의 ‘악’에 가까우며, 그 대표적인 오만한 인간의 사상이 인본주의라는 것이다. 그레이에게 서양 인본주의의 기원은 기독교에 있다. 21세기에 이르기까지 서양철학은 좌든 우든 기본적으로는 이 ‘인본주의’ 사상과 ‘진보’의 결합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다는 게 그레이의 주장이다. 기독교의 힘은 어느새 사라져버렸고, 그 자리에 과학과 기술이 들어와서 종교의 위치를 차지했다. 인간은 다시 자신이 과학과 기술을 잘 다스려서 운명을 개척하여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과학과 기술이 ‘객관적 지식’인 듯 보여도 그것의 활용방식은 인본주의이고, 그 인본주의의 기원은 기독교이고, 기독교는 인간의 욕망을 보여주는 편협한 신화일 뿐이다. 그렇다면 다시 과학/기술이 지배하는 세상이 구원을 얻을 것이라는 믿음 역시 하나의 허상이다. 

















심리학자이자 철학자인 조슈아 그린(1974~ )은 “인본주의가 중요한지 아닌지 알아낼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지적한다. “인본주의는 우리의 주관적 느낌을 마치 추상적인 도덕적 실체인 양 만드는 편리한 합리화 도구일 뿐이다. 합리적 논증이 필요 없는 상황이라면 인본주의를 수사적인 무기로 삼을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을 함부로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인본주의에 호소하는 것은 논증을 펼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오히려 논증의 시간이 끝났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인본주의는 사람-동물 관계에서 뿐 하니라 사람-사람 관계에서도 수사적인 무기로 삼지 말아야 한다.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1949~ )은 인본주의가 지배 계급의 가장 효과적인 전략이라고 비판한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포함된 자와 배제된 자 사이의 틈이 메워질 수 없을 정도로 급격히 커지고 있는데도 인본주의 방식은 이런 진짜 모순을 덮으면서 시스템 문제를 ‘인간’과 개인 문제로 돌려버린다. 겉으로 진보적이고 의식 있게 보이는 인본주의이야말로 오히려 현 체제를 유지하는 데 더할 나위 없이 효과적인 수단으로 기능하고 있다.”



평론가 문강형준(1975~ )은 휴머니즘 강조가 사회문제를 개인 ‘인간’ 문제로 둔갑시킨다고 비판한다. <인간극장>처럼 휴머니즘(인본주의)을 방영하는 다큐멘터리는 “매번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지, 사람들이 살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일하고 있는지 감동적으로 그려내, 삶의 소중함을 일깨우려고 노력한다. 이러한 ‘일상의 행복’을 선전하는 프로그램은 일말의 진실은 있을지 몰라도, 생활세계의 잡다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제들을 싸잡아 ‘마음의 변화’ 하나로 해결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런 메시지야말로 힘든 세상 문제는 그대로 두고 정신의 변화만 요청해서 자기만의 가짜 행복에 빠져들게 만드는 아편이기도 하다. 오직 마음의 문제로만 환원시키면 결국 사회와 인간의 분리만 가속된다. 행복은 결코 개인적인 결단으로만 가능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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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란 습관들이기 나름인가 보다!” 

- 셰익스피어, 『베로나의 두 신사』 中








4,000년 동안 존재했던 인간사회 100여 개를 표본 삼아 분석한 한 인류학자는 식인풍습 사회가 34% 정도 있었던 것으로 보았다. 현재 식인이 불러일으키는 우리 혐오감은 보편적인 일이 아니다. 인류에게 식인이 생각보다 낯선 일이 아니라면, 사람들은 왜 식인을 할까? 예를 들어, 비행기 추락사고의 생존자들이 굶어죽을 극단적인 경우에는 사람들은 대개 먼저 죽은 사람을 먹는 것이 도덕적으로 용납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극단적인 상황이 아닐지라도 사람은 식인을 왜 할까?
















특정 사회에서는 시체를 땅에 묻는 것이 아니라 먹는다. 인류학자들은 자기 부족 시체를 먹는 행위를 족내 식인풍습이라고 부르는데, 다양한 형태가 있다. 베네수엘라 아마존의 야노마미족은 시체를 장작불에 태워서 타고남은 뼈 조각을 수습해서 가루로 만든다. 죽은 자 친척들이 뼈 가루를 바나나 죽에 섞어 먹는다. 반대로 파라과이의 구아야키족은 시체를 잘라서 굽는다. 죽은 사람 가족을 제외한 부족 전체가 시체 살을 종려나무 수액에 곁들여 먹는다. 뼈는 잘라서 불태워 버린다. 족내 식인풍습은 살아있는 자가 죽은 자를 흡수한다는 의미로 죽은 자는 산 자에게 완전히 통합된다. 

















장례의식 절차로써 자손이 죽은 자를 먹는 것이 허락된 사회는 산 자와 죽은 자의 영원한 결합을 상징한다. 이런 사회에서 적절한 식인 의식이 거행되지 않으면, 사람들은 자신 삶이 불행해 질 것이라고 느낄 것이다. 그 같은 장례 만찬은 종교적인 일체감과 관계가 있거나, 죽은 자의 살이 살아있는 자들을 은유적으로 먹여 살린다는 생각과도 관계있다. 물론 그런 의식은 아무리 그럴듯하게 정당성이 부여되더라도 오늘날에는 혐오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사회가 도덕적으로 잘못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 모든 문화에서 쉽게 인정하는 가치 – 고인의 마지막 소망을 존중하는 것, 다른 사람들과의 결합, 사랑의 표현 –를 고려한다면 그렇다. 고인에 대한 존경이 다양한 형식으로 표현될 수 있다. 

















반면, 투피-구아라니족이나 카리브족처럼 많은 남미 부족은 전쟁 포로를 처형하여 의례적으로 먹었다. 아즈텍 사람들도 수십만 명을 식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즈텍 문명은 전쟁-인신 공양-식인풍습의 복합적 문화 풍습을 만들었다. 식인 대상은 주로 전쟁 포로였다. 아즈텍 군대는 신에게 제물로 바치는 의식 후 식인할 포로를 되도록 많이 잡아오는 일에 어찌나 열심이었던지, 적의 항복이 이루어지기 전에 너무 많은 적군을 죽이게 될까봐 군사적 우세를 밀고 나가는 것을 종종 삼갈 정도였다. 아즈텍 문명의 피라미드는 가파른 경사로가 있는데 신에게 제물로 바쳐진 희생자 몸뚱이가 피라미드 꼭대기에서 쉽게 굴러떨어질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그 희생자를 성직자가 거두어다 사람들에게 인육으로 배분했다. 아즈텍인들의 식인풍습은 종교적 의식 일환으로 사람을 겉치레로 먹는 시늉이 아니었다. 식인풍습은 불과 100년 전까지도 전 세계 광범위하게 생각보다 많이 행해진 문화였다. 

















인류학자 마빈 해리스는 “사람에게 식인은 천성이 아니지만, 문화적으로 이에 쉽게 길들여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인류는 ‘천성이 아니지만’ 주변 생태 환경이 파괴되고 고갈되어 먹을 것이 없을 경우에만 식인을 서슴지 않고 할 수 있을까? 문명사학자이자 철학자인 윌 듀런트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밝힌다. “다른 식량이 부족해 식인풍습이 생겼다는 주장이 있지만, 확실치는 않다. 일단 생겨난 인육에 대한 입맛은 식량부족 사태가 해결된 뒤에도 사라지지 않았고, 인육은 사람들이 열렬히 찾는 대상이 되었다. 원시 부족은 인육을 즐겨 먹는 것을 절대 수치로 느끼지 않았다. 아마 인육을 먹은 것이나 동물 고기를 먹는 것이나 도덕적으로 아무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 듯하다.” 식인 풍습은 한때 거의 보편적인 현상이었다. 원시부족 중 식인풍속이 없는 곳은 거의 없었다. 멜라네시아에서는 친구들에게 구운 인육을 대접하면 추장의 사회적 명성이 크게 높아지곤 했다. 브라질의 한 현인 추장은 이렇게 이야기하기도 했다. “나는 인육보다 맛있는 사냥감은 알지 못 한다. 당신네 백인들은 정말 음식을 너무나 가린다.” 



아일랜드인, 이베리아인, 픽트인(로마 제국 시기부터 10세기까지 스코틀랜드 동부 및 북부에 거주하던 부족), 11세기 데인족(덴마크계 게르만족) 같은 후대 종족들도 식인풍습을 가지고 있었다. 인간고기를 주요 교역 상품으로 취급하고, 장례식 같은 건 모르던 부족도 상당수 달했다. 콩고의 우알라바 강에서는 남자와 여자, 어린 아이를 말 그대로 식품 일종으로 산 채 사고팔았다. 뉴브리튼 섬에는 현재 우리가 정육점에서 고기를 팔 듯 인육을 파는 가게가 있기도 했다. 솔로몬 제도 일부 지역에서는 잔치에 쓰기 위해 인간 제물을(여자를 더 선호했다) 돼지처럼 살찌우기도 했다. 한편 푸에고인들(남미 마젤란 해협 남쪽 섬사람들)은 ‘개고기에는 수달 맛이 난다’며 여자 인육을 개고기보다 높이 평가했다. 타이티 섬의 한 늙은 폴리네시아인 추장은 자신이 먹는 음식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백인 고기는 제대로 구우면 잘 익은 바나나 맛이 난다.” 하지만 피지인들은 백인 인육은 너무 짜고 질기며, 유럽 선원 인육은 먹을 수 없는 지경이라며 불평하곤 했다. 폴리네시아인 인육 맛이 더 났다는 것이다.



한편 16세기 철학자 몽테뉴 눈에는 죽은 사람을 구워먹는 것보다 신의 이름으로 인간을 고문하는 것(몽테뉴가 살던 시대에는 그런 일이 다반사였다)이 더 야만적인 일로 비쳤다. 듀런트는 이렇게 지적한다. “우리 인간은 서로가 가진 착각을 존중해야 할 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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