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는 존재를 결정하지만, 

관념의 본질을 결정하지 않는다.“

- 피터 버거





자유란 남에게 해가 되지 않는다면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알려져 있다. 자유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지고의 가치다. 현대 시민 사회에서 말하는 '자유'는 이처럼 개인의 자유를 말한다. 그렇지만 자유가 무엇인지 쉽게 말하기는 어렵다. 역사를 보면 매 시기마다 자유 의미가 달랐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 문명, 특히 아테네 문명은 자유와 개인 존엄성을 높이 평가한 사회다. 자유를 뜻하는 그리스어 ‘엘레우테리아(Eleutheria)’는 당시 다른 고대 근동 사회의 어떠한 언어로도, 심지어 히브리어로도 번역할 수 없었다. 그리스를 제외한 고대 문명 대부분 사회는 개인이 집단에 종속된 상태인 절대주의나 교권주의에 압도되어 있어 자유라는 개념조차  떠올릴 수 없었다. 엘레우테리아에 해당하는 로마어는 ‘리베르타스’(Libertas)다. 이는 뉴욕 자유의 여신상(Statue of Liberty)의 모티브가 되었다. 자유를 ‘liberty’라고 해석한다면, ‘억압으로부터 벗어나서 얻은 자유’라는 뜻이 담겨있다. 반면, ‘freedom’은 ‘원래부터 부여받은 권리로서 자신 의지대로 행할 수 있는 자유‘다. 토크빌은 ’freedom‘을 ’자연적 자유‘라고 이름 붙인 반면 ’liberty‘는 ’시민적 자유‘나 ’공민적 자유‘라고 정의했다.  


 















이렇게 보면 우리가 현재 흔히 말하는 자유는 liberty라기보다는 freedom에 가깝다. 고대 도시국가 그리스인들이 생각한 자유 개념은 이처럼 우리 생각과 매우 달랐다. 고대 자유는 폭정과 억압을 방지하고 진정한 자유를 누리고자 한다면, 시민이 도시 통치에서 어떠한 역할이라도 맡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의회에 출석하고, 토론장에서 의견을 발표하고, 정치 논쟁을 판단하고, 어느 한 쪽 편을 들어 투표할 특권과 의무가 바로 고대 자유였다. 아울러 행정관으로서 봉사하거나 필요한 경우 배심원으로 참석하는 일도 고대 자유에 속했다. 


















고대 자유는 이처럼 시민이 자치에 참여함(self-governing)을 의미했다. 공동체를 위한 선(common good)을 달성하고자 동료 시민과 함께 깊이 고민하고 정치 공동체 운명을 만들어가는 데 힘을 보태는 일이 고대 자유였다. 따라서 자치를 위해 시민은 바람직한 인성이나 시민적 소양(시민적 덕성), 예컨대 공적인 일에 필요한 지식을 쌓고, 공동체 소속감을 키우며, 전체를 생각하는 마음을 갖추는 일이 요구되었다. 그래서 자유에는 자치가 필요하고 자치는 시민 덕성에 의존한다는 생각이 고대 자유사상의 핵심이다. 

 















고대 그리스인은 개인이 교육을 통해 절제와 지혜, 중용, 정의 같은 덕목들을 함양할 경우에만 자치가 실현될 수 있다고 보았다.  곧 그리스 철학은 ‘파이데이아’(paideia), 즉 덕성 교육이 폭정을 미연에 방지하고 시민 자유를 보호하는 주된 방안이었다. 그래서 자치를 열망하는 자유 시민들에게는 ‘교양학’(liberal arts) 교육이 강조되었다. 교양학은 반복적인 기예나 돈벌이 학문이 아닌 자유 시민이 갖추어야 할 학문이기에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문법과 논리학, 수사학, 산술, 기하학, 음악, 천문학으로 구성되었다. 정치학자 페트릭 데닌(1964~ )은 “이름 자체에 자유민을 함양한다는 뜻이 담긴 이 교양학 교육을 우리가 더 이상 누리지 못하는 이유를 이제 사람들은 물어볼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라며, 현 상황을 고대 사회와 대비하며 안타까워한다. 우리는 “한때 ‘노예교육’이라 여겨진 학문을 선호하고 있다. 즉 오로지 돈벌이와 직업교육에 몰두하며, ‘시민’ 칭호를 누리지 못했던 사람들이 받았던 교육에만 매달리고 있다. 오늘날 자유주의자들은 한때 자유민과 농노를, 주인과 노예를, 시민과 하인을 구분했던 정체(政體)를 비난한다. 우리는 무지몽매했던 선조들보다 우리가 도덕적으로 우월하다고 기고만장하지만, 지난날 자유를 박탈당한 사람들만 받았던 교육 형태를 채택하고 있다.” 

 















자유(freedom)는 어느 정도 개신교에 뿌리 두고 있다. 유럽의 종교개혁은 단순한 예배 의식보다는 늘 진심 어린 신앙을 추구하며 개인 양심을 존중했다. 개신교 교의는 인간 죄가 종교적 예식이나 도덕적 행위가 아니라 믿음에 따라 용서됐기 때문이다. 과거 가톨릭교회는 인간 죄가 종교적 또는 도덕적 행위에 따라 용서된다고 가르쳤고, 따라서 각종 의식과 의례가 성행했다. 반면 믿음을 통해 죄를 용서받는다는 개신교 교의는 특정한 행위나 의례보다 동기가 더 중요했다. 어떤 행동이 순수한 마음과 하느님을 향한 믿음에서 나온 것인지 알려면 자기 마음을 살펴봐야 했기에 각자 개인적인 양심에 의존하게 되었다. 바로 이 점이 그냥 신을 따르고자 하는 가톨릭 전통을 약화시켰다. 개신교에서 개인의 양심은 유럽을 ’세속화‘시킨 힘이었다. 그 덕분에 한 나라에 여러 종교가 공존하거나 아예 종교가 없는 관용의 자유도 가능해졌다. 



처음에는 종교적 의미에서 관용의 자유로 시작했으나 나중에는 자유 자체가 하나의 권리로서 존중되었다. 이것이 1789년 프랑스 혁명을 일으킨 자유(freedom)였다. 프랑스 대혁명에서 발생한 모순과 충돌이 대단히 컸던 탓에 프랑스인은 그들 구호(자유, 평등, 박애) 중 자유를 자연적 자유, 곧 구속받지 않고 자기 멋대로 하는 자유로 이해했다. 그들은 혁명 전 사회에서 수많은 불합리한 제한과 압박을 받았고, 혁명으로 이 제한과 압박을 깨부쉈으므로 그 결과 모두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살 수 있게 됐다고 생각했다.



자유가 가치 있다고 여겨진 것은 프랑스 혁명부터다. 1801년 출간된 한 논문의 문장이 ‘자유’라는 가치의 탄생을 알린다. “현재 개혁가들이 널리 퍼뜨리고 신성시하고 불가사의한 의미를 각인시킨, 10년 전에는 미치지 않은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도 떠올리지 않았을 법한 단어는 ‘자유’나 ‘휴먼’과 같은 표현들이다.” 프랑스 혁명 여파로 ‘자유’라는 단어는 19세기에 정치의 핵심 개념으로 부상했다. 특히 “자유사상은 앙시앙 레짐 몰락이 가져온 변화를 강조하고, 개인 권리를 관대하게 인정하려는 정치적 실천”처럼 보였다. 

 















1815년 나폴레옹 패배 이후 유럽이 신성동맹 지배 아래 놓이게 되자 마침내 권력의 정상에 서게 된 귀족 보수주의자들에게 대항하기 위해 부르주아 자유주의자들이 결집했다. 자유주의자들은 공포통치에 동조했던 사회주의 급진주의자들을 해산시키고 자신들이 생각하는 프랑스 혁명의 근본정신인 자유가 구현되기를 희망했다. 프랑스 혁명 구호 가운데 자유주의자들에게 가장 와 닿았던 것은 ‘재주만 있으면 어떠한 경력이든 추구할 수 있다’는 오늘날 ‘능력주의’라는 용어로 더 익숙한 구호였다. 결국 능력주의나 엘리트주의는 자유주의 개념의 하위 범주가 된다. 



따라서 자유주의자들은 대중이 개혁을 주도하는 것에 반대했다. 자유주의자들 눈에 대중이란 기본적으로 배우지 못한, 따라서 비합리적인 존재로 비쳤기 때문이다. 자유주의자들이 도달한 결론은 주도권을 갖고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 결정할 수 있는 유일한 집단은 능력 있는 전문가 집단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전문가 집단은 어떠한 분야든 학습을 통해 현실을 이해하고 필수적이고 바람직한 개혁을 가장 잘 이루어낼 수 있는 집단으로 정의되었다.



이러한 자유(freedom) 개념은 서유럽 선진국에서 1860년과 1890년 사이에 점차 확산되었다. 여기에는 존 스튜어트 밀의 기여가 컸다. 그는 1859년에 『자유론』을 펴냈다. 독재 국가가 자유(liberty)를 위협하는 경우는 낯익은 문제였기에 그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의 관심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나타나는 개인이나 소수의 자유(freedom)에 대한 다수의 지적 강압이었다. 그는 주변에서 과거에 보잘것없었던 사람들이 권력을 장악하면 남들 권리를 부인하고 견해 차이를 용납하지 않는 경우를 자주 보았다. 그래서 그는 자유를 새롭게 정의하기로 마음먹었다. “어떤 행동이 상대방에게 더 좋다는 이유로, 그것이 상대방을 더 행복하게 만들 것이라는 이유로,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그렇게 하는 것이 현명하다거나 혹은 심지어 올바르다는 이유로 상대방이 어떤 행동을 하거나 하지 않도록 강제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라고 밀은 주장했다. 
















1840년 중반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정치적 자유 의미를 부르주아 계급과 연결시켰다. 부유한 지배층이 자신이 소유한 부(富)를 지키기 위해 모든 시민의 자유를 강조했다. 그 당시 부유층 다수는 반혁명이 일어날 것을 두려워했다. 평등을 내세운 가난한 다수가 소수 부유층의 재산을 침해할 가능성이 있었다. 자유권을 강조하고 자유권 침해를 제도적으로 방지하기 위해 자유의 중요성을 헌법에 명시한 것이다. 자유는 부르주아의 실제 이해관계를 감추는 관념적 표현이었다. “자유주의는 국가 생활 속에서 절대적으로 자유로운, 제약받지 않는 지배자들이 자유롭지 못한 시민을 지배하기 위한 억압”이라고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지적했다. 



부르주아가 부를 지킬 수 있도록 필요한 사상을 개발한 철학자가 존 로크(1632~1704)다. 그는 사유재산제를 정당화하기 위해 시민의 자유(freedom)를 자신 논리의 근거로 삼았다. 경제적 독립이 불가능하다면 시민들의 자유는 미사여구에 불과하다는 것, 이것이 바로 로크의 핵심 통찰이었다. 로크는 이를 논증하기 위해서 우선 천부인권이라는, 자연 상태에서 인간에게 부여된 권리에서 출발했다. 개인의 인신(人身)은 그 사람 소유며, 자기 인신을 소유할 권리는 천부적 권리라고 말한다. 그리고 자기 인신에 대한 소유권을 기반으로 생산한 것의 소유 권리를 정당화한다. 즉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자기 인신에 대한 소유권을 갖고 있기에 자기 인신이 수행한 노동으로 획득한 대상도 그 사람 소유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로크는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인간이 공동체를 결성하고 스스로를 정부 지배하에 두고자 하는 가장 큰 목적은 그들 재산을 보존하기 위함이다.“ 

 














애덤 스미스(1723~1790)는 『국부론』에서 그 핵심을 간결하게 말한다. ”귀중하고 방대한 재산을 획득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정부 수립을 요구하게 된다. 재산이 없으면 정부가 그다지 필요하지 않다. 정부는 재산 안전을 위해 형성되는 한, 실제로는 가난한 사람에 맞서 부자를 지키기 위한, 혹은 재산을 전혀 갖지 못한 사람에 맞서 어느 정도의 재산을 가진 사람을 지키기 위한 것에 다름 아니다.“ 개인 재산, 특히 공장과 자본 설비의 소유권 보호는 물론 자본주의 필수 조건을 보호한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자본가들이 경제 권력과 정치권력을 갖게 된 것은 이렇듯 생산수단을 소유하기 때문이다. 소유 관계를 보호하는 구실을 정부에 부여하는 것은 경제적이고 정치적인 지배 계급인 자본가 권력 원천을 보호하는 일을 정부에 맡긴다는 뜻이다.

 
















역설적으로 로크와 스미스의 국가 논리에는, 개인의 사유재산이 부당하다는 무의식 판단이 함께 전제되어 있다. 만약 사유재산 제도가 정당하다고 여겼다면, 사유재산을 가진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다른 사람들에 대해 당당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사유재산을 긍정하자마자 그것을 보존하기 위해서 보호 장치로서 국가의 강제력을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로크가 논리로 만든 자유는 명백한 한계를 가진다. 그것은 공적인 삶이나 공공 가치[liberty]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인신을 통해서 획득한 재산과 그 보호[freedom]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밀의 자유주의는 1870년 이후 면모를 바꾸어 신고전파 패러다임으로 변하게 되며, 오늘날에도 신자유주의 내용을 규정하고 있다. 이제 자유라는 개념에는 경제활동만이 부각되고 여러 정치적, 사회적 차원은 은폐된다. 
















자유(freedom)라는 개념은 가장 근본적으로 다음과 같은 인간의 특징을 가정하고 있다. 그것은 ‘개인주의’와 ‘주의주의’(主意主義, voluntarism)라는 개념이다. 특히 개인이 규제받지 않고 자율적으로 하는 선택이라는 뜻의 주의주의 이념을 윤리와 정치 토대로 삼는다. 페트릭 데닌은 칸트(1724~1804)가 자율성을 본격적으로 고양한 철학자임에 주목한다. “자유주의의 근본 전제는 계몽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의 개인 자율성 전제와 관련있다. 자유주의 문제는 칸트 철학이 악용되었다는 데 있지 않다. 개인 자율성을 고양한 것이 처음부터 잘못이었다.” 칸트는 계몽주의 인간관에 기초한 자유주의 윤리학의 강력한 대변자다. 개인으로서 인간 자유와 존엄성을 모토로 하는 자유주의 윤리학 기초는 칸트의 원자론적 인간관에서 시작되었다.



따라서 당연히 자유란 무엇인지, 어떻게 가능한지 구체적으로 따져보는 것이 윤리학의 일차적 과제가 된다. 하지만 이 과제와 씨름하던 칸트의 모든 노력은 미궁에 빠지고 만다. 자유라는 것이 이성의 필연적인 전제임에는 틀림없으나 결국 구체적인 사례를 들 수도, 개념적으로 파악될 수도, 이성적으로 통찰할 수도 없는 불가해한 사태라는 결론에 이른다. 신비한 자유 이념 앞에서 이성은 전적으로 무능력에 빠진다.



칸트는 이성 체계의 중심에 자유를 놓고 그 자유의 객관적 실재성을 입증하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하지만 최후에 깨달은 것은 자유 이념의 불가해성이다. 자유를 이론적으로 엄밀하게 증명한다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다만 ‘이성의 선험적 사실’로 받아들인다. 자유는 설명하거나 증명할 수 없는 것이기에 우리에게 무조건 닥치는 주관적 사실로서, 혹은 윤리학의 가능성을 위해 반드시 전제되어야하기에 무조건 요청되는 것이다. 
















사실 처음으로 주의주의를 분명하게 표현한 사람은 국가를 옹호한 철학자 토머스 홉스(1588~1779)다. 홉스에 따르면 인간은 근본적으로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상태로 존재한다. 이런 취약한 조건에서 삶이 ‘추하고 잔인하고 짧다’는 것을 인식한 사람들은 합리적인 자기이익에 따라 국가로부터 보호와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 자신 자연권을 대부분 포기한다. 그 정당성은 사람들이 자율적으로 선택한 계약에서 생겨난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율적이고 이성적으로 선택했다고 생각한 일도, 무의식 상태에 내린 잘못된 결정일 수 있다. 예컨대, 경제학자들은 경제학 강의가 그저 인간을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개별 행위자로 기술할 뿐이라고 주장하지만, 실은 학생들에게 나쁜 영향을 끼쳐 더 이기적으로 행동하게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다. 1993년 로버트 프랭크가 수행한 한 실험은 경제학과 학생들이 다른 학과 학생들보다 “경제학에서 널리 사용되는 자기 이익 모델이라는 소리를 자꾸 듣다보면 실제로도 자기 이익 방식으로 행동하는 정도가 더 증가한다”라고 결론을 내렸다. 자기 이익이라는 개념은 교육으로 학습되는 개념이다. 자기 이익이라는 생각은 자연스럽게 여러 가지 꼼수와 잔머리, 심지어 거짓말로까지 확장된다. 프랭크가 행했던 또 다른 실험에서는, 공동 구매 경우에 친구들을 희생해 가면서 업자로부터 상납을 챙겨 먹을 가능성이 경제학과 학생들 집단에서 현저히 더 높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경제학 학습의 결과는, 자기 이익에 입각한 행동이 만사에 깊숙이 침투해 있으며, 자기 이익은 대체로 적절한 것이고 심지어 바람직한 것이기도 하다는 믿음을 강화한다. 그리고 이 믿음은 다시 자기 이익을 떳떳이 과시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프랭크의 여러 실험은 경제학을 배우는 과정에서 학생들의 그러한 성향이 더욱 강화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그는 경제학과 한 학년 전체를 조사했다. 그중 절반은 게임 이론가(게임 이론 자체가 자기 이익이라는 동기를 기초로 이론을 수립하는 학문이다)에게 미시 경제학을 배웠으며, 다른 절반은 공산주의 중국 경제 발전을 연구하는 전문가로부터 미시 경제학을 배웠다. 학기가 끝날 무렵 게임 이론가로부터 배운 학생들이 다른 쪽 집단 학생들보다 자기 이익에 따라 행동하는 성향이 더 많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자유주의 개념 번창은 이기주의나 개인주의 이론이 점점 더 현실이 되어가는 세상을 만들어낸다. 오늘날 자유주의 체제에서 사람들은 갈수록 자율적으로 살아가며, 이러한 상태에서는 국가 역할을 확대하여 무질서를 통제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개인의 자율성을 더욱 보호하려면 국가 역할이 더 확대하고 실정법을 통해 개인을 규제해야 할 필요성은 더욱 커진다. 자유주의는 결국 두 가지 요소, 즉 해방된 개인과 통제하는 국가뿐이다. 홉스는 『리바이던』에서 이 두 실체를 완벽하게 묘사했다. 국가는 오로지 자율적인 개인들로만 구성되고, 개인들은 국가에 의해 ‘억제’된다. .

 













따라서 자유주의 사회에서 개인과 국가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기에 과거 전통에 대한 존중이나 미래 세대에 대한 의무가 무시되고, 즉각적인 자유 추구만이 대세가 된다. 예컨대 자녀는 갈수록 개인 자유를 제한하는 원인으로 간주되기에 원하면 낙태를 할 수 있는 자유주의 사상이 강화한다. 그 결과 출생률이 감소한다. 경제 영역에서는 대개 당장 이익을 내라는 끊임없는 요구에 쫓겨 단기 수익을 올리려는 충동이 장기 투자를 막는다. 그리고 시장에서 넘쳐나는 상품에 감탄할 뿐이지, 지구의 풍부한 자원이 단기간 내 고갈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갖지 못한다. 설령 훗날 우리 자녀들에게 식수와 같은 귀중한 자원이 부족해질지라도 개의치 않는다. 이런 활동을 규제하는 일은 실정법을 시행하는 국가 소관으로 치부되지 문화 규범의 산물인 교양 있는 개인 일로 여겨지지 않는다. 
















자기실현을 추구하고 욕망을 충족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언제나 더 큰 경제성장과 사회에 만연한 소비가 필요하다. 자유주의 사회는 경제성장이 둔화될 경우 여간해서는 생존하기 어렵고, 경제성장이 얼마간이라도 멈추거나 역행할 경우 무너질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공공의 선(common good)에 무관심한 사람들의 유일한 목표가 바로 ‘자유’(freedom)다. 더욱 중요한 점은 칸트가 우리에게 하나의 중요한 문제, 즉 자유의 문제를 남겨놓았다. 이 세계에서 어떻게 자유가 가능한가? 이러한 세계에서 우리가 자유롭게 행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도대체 가능하기나 한 일인가? 우리는 직관적으로 매우 강력하게 자유가 실재함을 옹호한다. 하지만 우리 직관이 과연 자유가 존재한다고 주장할 만큼 확실한지 반드시 물어보아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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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3-06-28 17: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고 싶은 도서들이 많이 보이네요.

북다이제스터 2023-06-28 19:07   좋아요 0 | URL
네, 대부분 책이 나쁘지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
 
















온라인 세상에서 활동하는 일종의 로봇인 소셜 봇의 등장에 따라, 다수 지향 편향성을 지닌 우리는 더욱 더 쉽게 극단적인 관점으로 쏠릴 우려를 안게 되었고, 이는 위험한 무기가 될 수 있다. 소셜 봇은 마치 놀이동산에 설치된 매직미러처럼, 우리가 이미 생각하고 있는 것에 맞는 세상을 보여주고 나와 같은 생각을 지닌 사람들이 많은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그리하여 우리가 ‘실제로’ 다수의 지지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가령 내게는 트럼프만은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하는 정통 공화당 지지자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어느날 전직 대통령에 대한 입장을 트위터에 올렸다가 증오심 어린 부정적 반응의 쓰나미를 맞닥뜨리고 말았다. “이 부정적인 반응을 만드는 사람들을 다 합쳐봐야 수천 명 뿐이라는 걸 나도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 하지만 마치 온 세상이 나를 잡으러 덤벼드는 것 같더라고.” 이런 일을 겪고 난 후 그는 트위터를 그만 두었다.



이렇듯 자동적으로 반응하는 가짜 소셜 미디어 계정들의 목적은 무언가에 ‘좋아요’를 누르고, 공유하고, 기타 게시물을 올리면서 인간 활동을 흉내 낸다. 어떻게 프로그래밍 되어 있느냐에 따라, 소셜 봇은 그럴듯해 보이는 논쟁을 벌이면서 주장을 펼쳐나갈 수도 있고, 특정한 사람이나 게시물의 좋아요 수를 폭발적으로 늘려서 그런 주장이 인기 있는 것처럼 환상을 불어넣을 수도 있다(이런 식의 조작을 흔히 ‘분위기 대량생산’이라고 한다). 한 연구자가 지켜본 바에 따르면, 소셜 봇은 사람들 생각을 움직이고 싶어 하는 이에게 매우 큰 힘이 되어줄 수 있다. 페이스북에서 허구한 날 정치 논쟁을 벌이는 짜증나는 친구를 떠올려 보자. 만약 그 친구에게 소셜 봇 5천 개가 있다면 상황은 더욱 나쁜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다. 소셜 봇은 바로 그런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소셜 봇이 만들어내는 가짜 다수는 사람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제공한다. 그리하여 이른바 ‘침묵의 나선’(spiral of silence)을 촉발시킬 수도 있다. 침묵의 나선이란 사람들이 자기 검열을 하기 시작할 때 벌어지는 일을 묘사하는 개념으로, 노엘-노이만에 의해 처음 제시되었다. 러시아는 푸틴과 그의 정책에 대한 반대 의견을 몰아내기 위해 오랜 기간 소셜 봇을 사용해 왔다. 가령 베네수엘라의 마두로 대통령처럼, 다른 지도자들 역시 소셜 봇의 정치적 잠재력을 간파하고 있었다. 2013년 10월 31일 트위터는 6천 개 이상의 소셜 봇 계정을 예고 없이 폐쇄했는데, 이 봇들은 마두로가 올린 트윗을 리트윗하도록 프로그래밍 되어 있었다. 이러한 봇은 ‘어떤 계정이나 게시물이 실제보다 더 인기 있거나 활발한 것으로 보이게 하기 위한 부정 활동’에 해당하는 것으로, 트위터의 사용 계약을 위반한 것이다. 마두로의 전체 팔로워 숫자에 비하면 봇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고작 0.5퍼센트에 지나지 않지만, 소셜 봇이 차단되자 마두로 트윗의 리트윗 수는 평균 81퍼센트 폭락하고 말았다.



경제학자 후안 모랄레스는 이 사건을 보다 깊게 연구해 보았다. 우리가 온라인 세상에서 무언가 혹은 누군가를 인기 있다고 여기는 현상에서 소셜 봇이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고자 한 것이다. 6개월 이상 올라온 20만 개 이상의 트윗을 분석한 결과, 마두로가 소셜 봇을 이용해 만들어낸 가짜 인기가 사라진 것과 대통령에 대한 비판이 증가하고 야당에 대한 지지가 높아진 것에는 상관관계가 있었다. 반대로 생각해 보자면 소셜 봇을 통해 인위적으로 부풀려진 ‘다수 의견’으로 인해 베네수엘라의 정치적 토론은 침묵의 나선으로 빨려 들었다고 볼 수 있다. 그 가짜 다수의 거품이 꺼지고 나자 소셜 봇이 만들어낸 환상이 무너진 자리에 현실이 보이기 시작했고 대중 의견은 그에 맞춰 영점 조절을 다시 할 수 있었다. 이렇게 현실 인식이 재조정되자 베네수엘라 사람들은 설령 정치적 다수가 아닐지라도 자신 본심을 좀 더 거리낌 없이 드러낼 수 있게 되었다.



오늘날 소셜 네트워크에서 벌어지는 의사소통 가운데 사람 대 사람이 아니라 사람 대 로봇에서 오가는 것의 비중이 얼마나 될까? 19퍼센트다. 그리 많은 이들이 알고 있지 않은 소름 끼치는 현실이다. 소셜 미디어의 통계적 모델링을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전체 계정 중 5~10퍼센트 정도의 봇을 확보하고 있기만 하면 자신들의 입맛에 맞도록 다수 의견을 형성하고 주무를 수 있다. 그것만으로도 자신들 입장을 지배적인 것으로 만들어, 결국 모든 참여자 중 3분의 2 이상이 동의하게 할 수 있다.



세상에는 다수 의견이 아니지만 다수 의견을 대변하는 것처럼 주장하며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다수의 무지에 힘입어, 혹은 어느 방향이 대세가 될지 지켜보자는 생각으로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이들을 적절히 길들인다. 사회적인 에너지를 왜곡된 방향으로 순식간에 강화하고 고착시키는 것이다. 실제로는 소수 지지를 받고 있을 뿐이지만 마치 다수가 된 것처럼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런 의견은 집단 착각으로 이어진다. 결국 우리는 입에 재갈을 문 채 위험하기 짝이 없는 침묵의 나선에 갇히고 마는 것이다. pp. 147-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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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라디오 2023-06-22 19: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소셜 봇 생각보다 충격적이네요.

북다이제스터 2023-06-22 19:13   좋아요 2 | URL
김어준이 매번 소셜 봇에 속지 말라고 할 땐 저도 잘 몰랐는데요, 이 글을 보니 저도 그 구체적 악영향을 알게 되었습니다. ^^
 

















우리는 집단에서 쫓겨나는 것에 대한 공포가 있다. 우리의 사회 정체성은 우리가 속한 집단과 너무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에, 집단에서 추방당하는 것은 죽음의 키스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다. 우리가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그 공포는 우리를 집단 착각 중에서도 가장 최악의 착각에 빠져들게 하며, 심지어 우리를 그 공범으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다.



‘추방하다’(ostracize)라는 동사는 그리스어 단어 ‘도편추방’(ostracon)에 유래를 두고 있다. 도편추방은 기원전 5세기, 탄핵이라는 정치적 절차가 발명되기 한참 전, 아테네인들은 그들이 가장 싫어하는 정치인, 허풍쟁이, 거짓말쟁이, 그 외 사람들이 싫어하는 이를 아테네 밖으로 쫓아내기 위해 고안된 법으로, 깨진 도자기 조각(도편 ostraca)에 추방하고자 하는 사람 이름을 적어내는 방식으로 원치 않는 자를 그들 속에서 솎아내기 위한 투표였다.



매년 아테네 시장에서는 도편추방 투표를 하는 사람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투표가 끝나고 나면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개표가 진행됐다. 여기서 가장 많은 표를 받은 사람은 누가 됐건 아테네를 떠나야 했다. 도편추방 대상자에게는 짐을 싸서 떠나기 위한 열흘의 말미가 주어졌고, 10년을 꼬박 채우기 전까지는 귀환이 허용되지 않았다. 하지만 일단 10년을 채우고 나면 돌아와서 아테네인으로서의 생활과 직업을 이어갈 수 있었다. 또한 그가 도시 내에서 보유하던 자산은 안전하게 보존되도록 정해져 있었다. 도편추방자 중에는 아리스토텔레스라든가, 영웅적 업적을 남긴 페리클레스처럼 유명한 사람들도 있었다.



다양한 연구를 통해 추방당한 이들은 혈압이 높고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의 농도 또한 높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사회적 관계에 손상을 입든 물리적 부상을 입든, 우리 뇌는 동일한 경고 신호를 발산한다. 심지어 사회적으로 배척당한 고통은 허리와 척추의 통증 및 심지어 출산의 고통과도도 관련성을 보인다. 마음의 상처가 마치 다리 골절상처럼 고통스러운 일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고통에 엄청난 사건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사회적 추방에 대한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아주 약한 수준의 냉대와 무시만으로도 고통을 야기할 수 있다. 일상적으로, 때로는 매일 경험하는 일로 인해 그런 고통이 벌어질 수 있다는 건 더욱 안 좋은 일이다. 참가자 40명을 대상으로 일상 속에서 배척당한 경험을 할 때마다 일기에 기록하도록 한 연구가 있었다. 참여자들이 기록한 사건 중 7백여 건 이상은 (버스나 기차에서 낯선 이가 반가운 표정을 짓지 않았다거나, 친구가 이메일에 제때 답장을 해주지 않는 등) 비교적 흔한 일이었다. 하지만 (배우자로부터 싸늘한 침묵만을 돌려받는 등) 보다 심각한 경우도 있었다. 이렇게 특히 가족이나 친지들로부터 추방당한 경험을 하고 나면 참여자들은 귀속감, 자기 통제감, 자존감 등의 하락을 보여주었다. 또한 자신 존재를 더욱 의미 없게 느꼈다.



거절에 대한 우리의 내적 감각은 너무도 예민하게 발달해 있는 나머지, 심지어 그 일이 멀리 떨어져 있거나 작위적인 상황이라는 걸 분명히 아는 경우에도 고통을 느낀다. 인터넷에서 무시당하거나 배제당하는 기분, 즉 사이버 도편추방은 사람을 만나서 거절당하는 일보다 훨씬 더 쉽게 벌어질 수 있다. 하지만 그로 인해 발생하는 물리적, 감정적 반응은 거의 유사하다. 문제는 우리가 ‘좋아요’가 낳는 즉각적인 만족의 세상 속에서 수천여 명의 가상 ‘친구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무시당하는 기분을 느끼기가 너무도 쉬운 세상이 되었다. 가령 누군가가 쓴 게시물에 댓글을 달아놓고 상대방 반응을 기다리지만 돌아오지 않는 것처럼 사소한 경우를 떠올려 보자. 사이버 도편추방을 당하는 사람은 귀중한 소속감이나 자기존중감의 상실을 겪게 된다. 



거절의 크기나 강도가 얼마나 큰지는 상관없다. 일단 거절당했다는 사실이 인식되고 스위치가 켜지고 나면, 우리에게 내제된 도편추방 경고등은 가장 큰 소리로 쩌렁쩌렁 울려 퍼지기 시작한다. 심지어 사회적 거절이 아주 미세하게 벌어질 때조차 생명이 위협당할 때와 맞먹은 스트레스를 경험한다. 여러 차례 반복된 한 실험을 살펴보자. 피험자는 방 안에서 다른 두 사람과 함께 공 넘기기 게임을 한다. 그러던 중 갑자기 두 사람은 제대로 된 이유도 가르쳐주지 않은 채 피험자를 따돌리고는 자기들끼리만 공을 주고받는다. 이 실험은 온라인에서 ‘사이버볼’이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 수천여 명을 상대로 진행되기도 했다. 온라인에서든 오프라인에서든 같은 패턴이 드러났다. 사회적 추방을 단 2분에서 3분 정도 경험한 것만으로도, 특히 슬픔이나 분노 같은 ‘강력하게 부정적인 감정’이 발생한 것이다. 낯선 이들과 공을 주고받는 인위적인 상황임에도, 심지어 컴퓨터 앞에서 공을 주고받는 상황에서조차, 배제당한 참여자는 감정이 격양되고 말았다. pp. 94-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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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3-06-21 12: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도편추방은 태생적으로 엉뚱한 결과가 나올 수 있는 제도였네요.ㅠㅠ 내편이 아니면 추방 가능한 제도이니까요.

북다이제스터 2023-06-21 13:09   좋아요 0 | URL
넵, 다수결(투표)이 항상 옳거나 좋은 것이 아닐 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선거 결과를 봐도 그런 거 같습니다.^^
 
















“인간은 집단에 짓눌리지 않기 위해 언제나 안간힘을 써야만 한다.” - 니체





우리 뇌는 우리가 집단에 대해 가지고 있는 ‘믿음’에 반응한다. 그 믿음이 사실에 근거하는지 아닌지 여부는 상관이 없다. 다른 이들과 행동을 조율하고 싶은 충동을 사회학자들은 흔히 ‘순응 편향’(conformity bias)이라고 부른다. 순응 편향 성향에 따르면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마치 우리를 무차별적으로 끌고 들어가는 지구의 중력마냥 군중과 함께하고자 하는 우리 본성은 무의식에서 작동하며, 이것이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이고 인간은 여기서 탈출 불가능한 듯하다. 설명 ‘집단의 선호’라는 것이 완전한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해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뜻을 오해할 위험이 있을 뿐 아니라, 다른 이들의 생각이나 기대를 잘못 알고 거기에 순응해버릴 위험을 끌어안은 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가장 근본적인 차원에서 볼 때, 우리는 다수에 순응하는 경향성을 지니고 있으며, 우리는 집단 환상의 손쉬운 먹잇감이 되기 십상이다. 



사회학자 윌리엄 아이작 토머스와 그의 부인인 도로시가 1928년 제시한 이른바 ‘토머스 정리’(Thomas theorem)는 다음과 같다. “만약 사람들이 어떤 상황을 현실로 정의한다면, 결과적으로 현실이 된다.” 우리가 믿는다면, 그러한 믿음에 실질적인 근거가 있건 없건 상관없이, 그러한 믿음에 따른 결과만큼은 현실화될 수 있다. pp. 24-27. 우리의 사회적 본능은 마치 감정처럼 우리에게 내장되어 있다. 감정이나 사회적 영향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그 사실을 의식하지 않는다면 위험하고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 p. 33. 집단에 속하는 개인들이 개인으로서 판단을 내려야 집단 지성이 올바르게 발현될 수 있다. 사람들이 다른 이의 선택을 볼 수 있을 때, 그래서 다른 사람 선택을 보고 흉내 낼 수 있을 때, 집단 지성은 순식간에 ‘집단 무지성’으로 전락하고 만다. p. 56.



1841년 스코틀랜드의 언론인 찰스 맥케이가 모방의 연쇄에 대한 책, <대중의 미망과 광기>를 펴냈다. “사람들은 집단 속에서 생각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그가 탐구한 사례 중 하나가 그 유명한 네덜란드의 1634년 ‘튤립 광란’이었다. 네덜란드의 엘리트들이 어느 날 갑자기 튤립 구근의 도창적 컬렉션을 절대적 필수품인 양 여기기 시작하면서 벌어진 일이었다. 그 꽃에는 어떤 내재적 가치도 없었지만, “튤립을 소유하고자 하는 광기는 곧 네덜란드 사회의 중산층을 덮쳤고, 심지어 무역상과 상점 점원들마저도 어느 정도 손을 댈 정도가 되었다’고 맥케이는 기록하고 있다. 오늘날 한 학자의 추산에 따르면 튤립 광기가 절정에 달했던 1635년, “튤립 구근의 평균 가격은 같은 무게의 금 가격을 뛰어넘었고, 희귀한 튤립 구근 단 하나가 오늘날 돈으로 5만 달러 이상에 거래되는 경우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맥케이에 따르면, 가격이 요동치다 떨어지기 시작하자 시장의 자신감은 무너졌고, 딜러들은 전반적인 충격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거대한 튤립 열풍은 막대한 튤립 거품 붕괴로 이어지고 말았다. 이 광기가 일시적인 것을 파악한 네덜란드 당국은 선언했다. 이 광란의 정점에서 맺어진 모든 계약은 무효로 선언되어야 한다. pp. 58-59.



이런 식의 사기극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익숙하게 들린다. 그렇다면 과연 생수가 정말로 더 깨끗하고 안전한 물이 맞긴 한 걸까? 화산 활동으로 만들어진 현무암 지반으로 걸러졌다는 둥, 구름까지 뚫고 올라가는 일본의 명산에서 체취했다는 둥, 숫제 천사의 눈물을 받아왔다는 둥, 온갖 이유를 붙인 고급 생수들은 고작 세 컵 분량에 5달러가 넘게 팔리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경우 99퍼센트의 수돗물은 음용 가능할 뿐 아니라, 사실 많은 사람이 생수라고 생각하며 마시는 물은 수돗물이다. 병입되어 판매되는 물 중 절반 이상이 약간의 처리 과정을 거친 수돗물이며, 양대 생수 브랜드인 아쿠아피나와 다사니는 (참고로 이들은 펩시와 코카콜라의 상품인데), 그저 디트로이트시가 제공하는 물을 한번 걸러서 플라스틱 병에 담아 넓은 시장에 판매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병에 들어 있는 물을 생수라고 마실 때마다 우리는 이런 엄청난 사기극에 속는 동시에 거들고 있는 셈이다. 생수를 구입하면 4.5리터짜리 한 병에 평균적으로 1.5달러를 내게 되는데, 이는 우리가 같은 영의 수돗물을 사용할 때 내는 돈의 2천배에 육박한다. 



오늘날의 생수를 둘러싼 현상은 튤립 광란과 다를 바 없다. 우리는 사실상 거짓말이나 다를 바 없는 무언가에 수천억 달러를 쓰고 있는데, 그런 소비를 별개로 보더라도 그 막대한 플라스틱 병 사용으로 인한 환경 영향이 실로 엄청나다. 생수 한 잔에는 같은 양의 수돗물에 비해 2천 매나 더 많은 에너지가 소비된다. 한편 미국만 놓고 보더라도 플라스틱 생수병의 70퍼센트는 곧장 매립되며 그리하여 토양을 오염시키고 물길을 막는다. 이러한 연쇄 작용 결과 캘리포니아와 하와이 사시 어딘가에는 텍사스주의 두 배 정도 크기를 이룰 정도로 넓은 플라스틱 부유물 군집이 만들어지고 말았다. pp. 61-63.



우리는 우리와 비슷한 관점으로 세상을 보고 비슷한 믿음을 지니는 이들에게 자연스럽게 끌리는 경향이 있다. 18세기 도덕철학자 애덤 스미스에 따으면 우리는 ‘어떤 특정한 정신적 조화’를 찾고자 한다. 의견을 공유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면 집단적 정체성이 강화되고, 신뢰, 협조, 평등, 생산성이 강해진다. 소속 집단과 현실을 공유함으로써 우리는 공통의 관점을 형성할 뿐 아니라 비슷한 감정과 세계관까지 갖게 된다. 이는 우리의 핵심적인 가치관을 함양하며 우리 자신에 대한 믿음을 키우는데 도움을 준다. 또한 우리의 삶에 의미가 부여되며 자기 존중감을 얻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 행동과 상호작용이 우리가 속한 집단의 공통적 경험을 확인시켜주기에, 우리 뇌는 갈망하는 행복 호르몬의 분비로 보상을 얻게 된다. 자기 인식이란 우리가 지닌 고유한 특성과 함께 우리가 속한 귀속집단에의 감각이 결합되어 만들어지는 것이다. 사실 우리의 개인적 정체성은 우리의 사회적 정체성과 너무도 깊숙이 결부되어 있으며 그래서 우리 뇌는 그 둘을 따로 떼어놓지 못한다.



이게 전부가 아니다. 우리는 본인의 개인적인 경험에 기반을 두고 입장을 정하기 전부터 특정한 관점에 정서적 선호를 드러내거나 호감을 느낀다. 이런 상황에서 순응 편향이 곧잘 작용한다. 귀속집단에서 이미 확립되어 있는 결론을 강화하는 것에 불과한 증거를 찾아내기 때문이다. 또한 이렇게 공유하는 감정이 클수록, 우리는 자신이 생각하는 귀속집단의 관점에 순응하기를 원하게 마련이다. 이미 특정 귀속집단에 시간과 에너지, 믿음을 투입한 다음이라면, 그래서 그 소속감이 우리 정체성 중 일부를 구성하게 되었다면, 그 집단의 관점을 우리는 기꺼이 보호하고자 한다. 고통을 무릎쓰고서라도 집단적 관점을 강화하고자 하는 것이다. 귀속집단 바깥에 있는 이를 향해 더 적대적으로 대할 수 있게 되는 것은 물론이다. pp. 9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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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적(敵)은 

제국이나 자본이라고 불리지 않는다. 

그것은 민주주의라고 불린다.” 

- 알랭 바디우 







대의(代議) 민주주의는 국민 정치권력을 선거로 한 사람 혹은 다수 대표자에게 양도하는 이념이다. 사람들은 대의 민주주의의 산실인 의회가 국민 의지를 실행하는 '공복'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 사정은 그렇지 않다. 헤겔 지적처럼 의회는 관료들 판단을 국민에게 알리고 마치 국민 자신이 결정한 것처럼 생각하게 만드는 정교한 장치다. 의회가 탄생한 역사를 보면 그러한 정교한 조작이 반영되어 있다. 


















19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지배계급은 ‘민주주의’란 단어를 몹시 혐오했다. 하지만 점차 세월이 지나자, 지배계급은 민주주의 운영 규칙을 자신들이 정할 수만 있다면 민주주의가 그리 큰 위협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게다가 나폴레옹(1769~1821)은 도시에서 어떠한 일이 일어나도 정보를 잘 통제하고 유언비어를 퍼뜨려 유권자들을 겁줄 수만 있다면, 선거에서 당당히 승리하고 자신이 민주적임을 몸소 증명했다. 



1871년 파리 코뮌(역사상 최초 파리 시민들이 세운 사회주의 자치 정부) 때문에 프랑스는 민주주의를 도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때 부르주아는 딜레마에 빠졌다. 민주주의는 인민대중이 지배함을 의미하는데, 이들은 대체로 가난한 자들이다. 가난한 자와 부유한 자, 특권층과 비특권층 간의 이해관계는 명백히 달랐다. 따라서 인민대중이 정치에 참여하면, 지배계급의 기득권이 훼손될 수 있었다. 하지만 민주화는 불가피해졌다. 비록 지배계급은 이러한 상황을 반기지 않았지만, 사회주의 혁명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민주주의를 도입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민주주의 제도를 조작할 필요가 있었다. 가장 노골적인 조작은 의회 기능에 엄격한 한계를 부여하는 것, 특정 집단과 특정 기구에 특별 투표권을 부여하는 것, 상원을 통해 하원을 압박하는 것이었다. 


 















영국 지배계급도 대중이 선거권을 획득해도 자신들이 국가 정책을 결정하는 일에 크게 지장이 없음을 점차 깨달았다. 국가 권력 대부분은 의회의 통제 범위 밖에 있었기 때문이다. 국가 권력은 비선출 조직인 군부나 경찰, 사법부, 행정부에 있었다. 이러한 국가 조직은 의회 활동을 규정하고, 마음에 안 드는 조치는 위헌으로 거부할 수 있었다. 의회는 대중이 지배계급을 압력 하는 창구가 되지 못하고, 대중의 대표자를 길들이는 수단으로 전락했다. 지배계급은 자신들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만 의원들이 요구사항을 제기하도록 강요했다.



이처럼 지배계급이 민주주의를 받아들였다고 해서 민주주의로 전향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민주주의 효과를 약화하려는 시도였다. 또한 정부와 언론인, 자본가, 금융가는 민족주의를 앞세워 지배계급과 피착취 계급이 공동운명체라고 주장했다. 한쪽이 호화롭게 사는 동안 다른 한쪽은 땀 흘려 일하거나 굶어 죽는데도 그들 모두 ‘한 배를 탔다’는 것이다. 그러한 조치로 지배계급에게 치명적인 위협으로 여겨졌던 선거권이 노동자 대표들을 길들이는 수단으로 바뀌었다. 


















무엇보다 영국 의회는 상업자본 뜻에 따라 선거가 좌우되는 상황을 창출하고자 하였다. 토리당(국교회와 지주계급를 대표)과 휘그당(비국교도와 상인을 대표) 중 어느 당도 의회가 국민 전체를 대표하는 기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단순히 왕실에 대해 자신들 특권을 보장하는 장치로 간주했다. 게다가 의회는 이러한 계급 성격을 계속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정치를 완전히 독점하던 휘그당과 토리당의 수십 개 가문은 장남을 상원에, 차남 이하 아들을 하원에 보내어 국가를 교대로 통치했다(대륙의 프랑스나 스페인과는 달리 영국은 귀족 특권이 장남에게만 상속되었다). 의원 3분의 2는 그냥 임명되었고 나머지 3분의 1만 유권자 16만 명가량이 선거로 뽑았는데, 그나마 일부 투표는 매수로 이루어졌다. 선거권을 부여하기 위해 지대 수입을 파악했던 호구조사는 처음부터 토지 소유 계층이 의회를 지배하도록 보장했다. 이처럼 영국도 프랑스에서처럼 선거권을 생득권리가 아니라 토지 소유에 근거했기에 하층계급을 민주주의에서 훨씬 쉽게 배제할 수 있었다. 


















1787년 미국 헌법제정회의에서 보여준 지도력으로 흔히 미국 헌법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제임스 매디슨(1751~1836)은 모든 시민이 투표할 수 있는 고대 직접 민주주의인 ‘순수한’ 민주주의를 비판했다. 시민들의 정념으로 폭압적인 의회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보면서, 그는 “모든 아테네 시민이 소크라테스였다 해도 모든 아테네 민회는 여전히 폭도의 모임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매디슨은 소수가 다수를 대표하여 민중의 정념을 숙고와 심의로 조정할 수 있는 대의정치 방식을 선호했다. 

 

















미국 건국 아버지 중 한 명인 해밀턴은 한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부자들이 가지고 있는 이점이 있습니다. 부자들 악행은 아마도 궁핍한 사람들 악행보다는 국가 번영에 더 이로울 것이며, 도덕적으로 덜 타락한 것입니다.” 해밀턴은 부유함이 대표 선발에 미치는 영향을 그 어떤 사람보다도 공개적으로 옹호했다. 그는 경제력이 역사적 위대함을 향해 나아가는 올바른 길이라고 여겼다. 따라서 그는 부유하고 용감하며, 근면한 상인들이 국가를 지도하길 바랐다. 18세기 미국의 대의 정부는 선거 그 자체만으로 귀족적/과두적 효과를 낳을 것으로 이미 알고 있었다. 



형식상 하층계급이 선거에서 배제되지 않은 현대 대의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대중과 부자 의견이 갈릴 때는 부자 의견이 채택된다. 정치학자 벤저민 페이지와 마틴 길렌스는 이익집단과 부유한 미국인, 일반 시민 중에서 미국의 공공정책에 실제로 영향을 미치는 집단을 측정하는 방법을 고안했다. 두 사람은 1981년부터 2002년까지 일자리와 임금, 교육, 건강보험, 시민권, 경제 규제, 문화 관련 쟁점, 외교 정책과 같은 분야에 제안된 정책 약 2,000개를 분석해서 세 집단 중 어떤 집단이 최종 결과에 영향을 미쳤는지 살폈다. 그들은 “일반 시민은 연방정부 정책에 거의 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라는 결론을 얻었다. 조사 결과는 일반 시민 중 3분의 1 정도만 자기 뜻을 관철했다. 하지만 이조차도 그들 견해가 이익단체나 부자 견해와 일치할 때만 가능했다. 일반 시민은 정책 수립 과정에서 의미 있는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그들 목소리는 부유하고 조직적인 이익집단, 특히 기업 목소리에 묻혀 아예 들리지 않는다. 이 연구를 통해 미국인 대부분이 느끼는 사실, 즉 자기 목소리는 중요하지 않으며, 일반 시민은 자기가 통치되는 방식에 대해 의미 있는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는 자연 상태를 가정하여 국가 성립과 대의 정치를 정당화한 철학자 토머스 홉스(1588~1679)의 사회계약론은 심오한 뜻이 있다. 철학자 안토니오 네그리(1938~ )는 인간이 자신의 정치권력을 다른 사람에게 양도한다는 홉스 주장을 다시 해석했다. 권력을 대표자에게 양도하는 순간, 우리는 권력이 없는 존재, 즉 글자 그대로 노예로 전락한다. 그리고 권력을 양도받은 대표자는 과잉된 권력을 가진 존재로 사람들 위에서 군림하게 된다. 자발적인 권력 양도가 ‘자발적인 복종‘으로 이어지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다. 그래서 대의 민주주의는 결코 민주주의적일 수가 없으며, 오히려 진정한 민주주의를 가로막는 심각한 장애가 된다. 루소도 영국식 의회민주주의를 최선의 사회 체제라고 보지 않았다. 선거란 시민의 권리인 동시에 약점이기 때문이다. “영국인은 스스로 자유롭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커다란 착각이다. 그들은 의회 의원을 뽑는 동안에만 자유로울 뿐이다. 의원들이 선출되는 즉시 시민들은 곧바로 노예가 되어버린다.” 


















데이비드 흄은 인간이 결코 자유롭게 사회계약을 맺기 어렵다는 사실을 ‘가난한 농민들과 장인들의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다른 지역으로 떠나서는 결코 살 수 없는 가난한 사람들은 어떤 계약이든 달게 수용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만약 진정으로 사회계약이 가능하려면, 모든 사람이 자유롭게 주어진 국가나 사회를 떠나서 살 수 있어야만 한다. 이 점이 바로 흄이 당시 유행하던 다양한 사회계약론 모두가 허구에 불과하다고 공격했던 핵심 근거다. 우리는 어떤 국가나 사회를 자율적으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국가나 사회에 맹목적으로 던져져 훈육되는 존재일 뿐이다.


















홉스 사상은 표면상 ‘리바이던’이란 국가의 옹호가 아니다. 그의 철학은 바로 합리적인 계산으로[자유의지로] 자신 이익을 추구하는 개인이 계약을 통해 자신 주권을 ‘양도’했지만, 개개인의 내적인 힘[자유의지]이 전혀 정치에 반영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개개인의 집합은 그저 다중일 뿐이며, 국가라는 끈이 없다면 이 다중은 그저 무질서하게 흩어져 있는 구슬에 불과한 존재일 뿐이라고 홉스가 주장하기 때문이다. 홉스의 세계에서는 국가와 다중이 있을 뿐, 개개인들이 서로 간의 관계로 형성하는 ‘사회’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렇게 홉스가 자신 이론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전제한 자발적 계약[자유의지]과 결과로 나타나는 반-개인주의[반-자유의지]가 홉스 정치철학의 핵심이다. .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1883~1950)는 유권자들이 정치가들의 영향력에서 독립된 정치 의지를 가지고 있지 않음을 발견했다. “정치 과정에 대한 분석에서 우리가 알게 된 것은 대개 진정한 의지가 아니라 ’가공된 의지’(manufactured will)다. 개인이 정치가들 제안과는 독립된 명확한 자기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가정하지 말아야 한다. 정치에서 대중의 선호는 정치가들 행위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역사학자 로버트 위브(1930~2000)는 대중의 참정권은 시민이 “개인의 자유의지를 토대로 사회적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권력을 쥐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고 설명한다. “보통 선거권과 다수결이라는 규칙은 그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개인이 국가를 형성한다는 이미지를 사람들 상상력 속에 불어넣었다.” 결국 ‘자유로운 인간이 자기가 살아갈 정치 형태를 스스로 결정하기 위해 투표장에 가는 장엄한 모습’은 그저 환상에 불과하다. 개인 선택이나 동의 행위 범위를 넘어 사람들 삶을 지배하는 권력 구조가 이미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우리가 생각하는 민주주의에 관해서 어려운 질문을 던져보라고 요구한다. 그는 선거가 결국 가장 뛰어난 인물을 뽑는 것이 목적이기에 귀족정 방식이라고 설명한다. 만약 민주주의의 진짜 의미를 다수가 통치하는 제도라고 간주한다면, 미국과 같은 선거제는 오늘날 일부 정치학자가 판단하듯 과두정에 가깝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저서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바람직한 정체(政體)와 그렇지 않은 정체를 구분하고 세부 정체에 우선순위를 부여했다. [바람직한 정체(왕도정>귀족정>금권정), 타락한 정체(민주정>과두정>참주정)]



“정체에는 세 종류가 있고, 그것들이 왜곡된 또는 타락한 형태도 셋이다. 세 종류의 정체란 왕도정체와 귀족정체 그리고 세 번째로 재산평가에 근거한 정체다. 세 번째 정체는 금권정체라고 부르는 것이 타당해 보이지만, 대부분 사람은 혼합정체라고 부르곤 한다. 이들 가운데 최선은 왕도정체고, 최악은 금권정체다.



왕도정체가 왜곡된 것이 참주정체다. 참주정체는 왕도정체가 타락한 것으로, 사악한 왕이 참주가 된 것이다. 참주는 자신 이익을 추구한다. 참주정체가 세 가지 왜곡된 정체 가운데 최악임은 분명하다. 반면 과두정체는 치자들의 악덕으로 빚어져 귀족정체에서 생겨난다. 그들은 부를 가장 중요한 요소로 보기에 소수 사악한 자들이 권력을 장악한다. 끝으로, 민주정체는 금권정체에서 생겨나는데, 이 둘은 서로 이웃하기 때문이다. 금권정체도 다수자 지배를 목표로 하는데, 재산평가를 충족하는 자는 누구나 동등하기 때문이다. 이상이 가장 흔한 정체 변화다. 약간의 변화만 생겨도 그러한 이행은 아주 쉽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역사학자 에드워드 카(1892~1982)는 “지금까지 알려진 민주주의는 대중 전부가 아니라 일부 특권층만 자유롭고 평등했을 때 가장 융성했다“고 지적한다. ”일반인에게 민주주의 제도의 기원이며 표본이라고 간주되어 온 아테네 민주주의가 일부 특권층 사람들 사이에서 만들어지고, 또 그들의 특전이 되어 온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또한 근대 민주주의 전통의 창시자인 존 로크가 18세기 영국 휘그당에 속한 과두정치의 중요한 철학자이며 예언자였던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더욱이 19세기 영국의 민주주의의 전당(殿堂)이 소수 재력가에게만 선거권을 갖게 하는 방식을 토대로 한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1883~1946)도 비슷한 지적을 했다. “민주주의는 여전히 시험 중에 있다. 이유는 부자들이 숫자 면에서 얼마만큼 대의(代議)를 하는가와는 상관없이 부자들 힘은 수적인 비율보다 항상 클 것이기 때문이다.”


















루소는 스스로 법을 만드는 국민과, 자신을 대신하여 법을 만들어 줄 대표를 선출하는 국민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고 보았다. ‘대의정’과 ‘민주정’은 근본적으로 서로 다르다. 오늘날에는 대의 정부를 민주정에서 파생한 것으로 간주하지만, 18세기 후반에는 대의제에 따라 조직된 정부는 민주정과 확연히 다른 것으로 이해되었다. 오직 선거에 기초한 정부에서는, 공직을 가질 동등한 기회를 모든 시민이 가질 수 없다. 관직 배분 차이는 하찮은 것이 아니다. 예를 들면 의회에 농부보다 변호가가 더 많다는 점은 시시한 문제가 아니다. 변호가가 의회에 들어갈 기회를 더 많이 가지게 된다는 것이 농부에게 상대적으로는 무관심한 일이라 해도 말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몽테스키외, 루소 모두는 선거가 본질적으로 과두정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과두정은 선거가 사용되는 환경과 조건에서 파생된 것이 아니라, 선거 그 자체 속성에 기인한 것이라고 믿었다.



수많은 자료는 선거가 아닌 ‘추첨’[제비뽑기]을 민주정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소개하고 있다. 더욱 중요한 점은 추첨이 바로 민주적 선출 방법으로 묘사된 반면, 선거는 다소 과두정이나 귀족정인 것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추첨을 통해 집정관을 지명하는 것은 민주정이고, 선거에 의한 것은 과두정이다”라고 말했다. 추첨은 민주적이고 선거는 과두적이라는 생각은 우리 상식을 벗어난다. 



몽테스키외도 추첨을 민주주의로, 선거를 귀족주의로 밀접하게 연관시킨다. 몽테스키외는 “추첨에 의한 선발은 민주정의 특성이요, 선거에 의한 선발은 귀족정 특성이다. 추첨은 누구의 감정도 상하게 하지 않는 선발 방법으로, 각각 시민에게 조국을 위해 봉사하고자 하는 희망을 준다”라고 썼다. 몽테스키외는 민족정이 추첨과, 그리고 귀족정이 선거와 어울린다는 사실을 하나의 불변적인 법칙으로 상정했다. 이 두 방법은 어떤 독특한 문화에 속한 것이거나, 어떤 민족에게만 한정된 산물이 아니다. 이 둘은 바로 민주정과 귀족정의 본질 그 자체에서 파생된 것이다.



루소 역시 <사회계약론>에서 추첨을 민주정으로, 선거를 귀족정으로 연결시킨다. 행정관을 선발하는 데에는, 어떤 방법을 사용할 것인지를 선택해야 한다. 이 질문을 다룬 구절에서, 루소는 몽테스키외 말을 인용하며, “추첨에 의한 선발은 민주정의 본질”이라는 그의 생각에 동의를 표한다. “추첨은 민주주의에 적당한 선발 방식이다. 추첨은 어떤 특정집단의 의지 개입 없이 행정직을 배정하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민주정의 자유 원칙’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민주정의 기본 원칙은 시민이 통치자이자 피통치자라는 두 위치를 번갈아 가며 차지할 수 있어야만 한다. “자유의 형태는 다스리고 또 다스림을 받는 것을 번갈아 하는 것이다.” 민주적 자유는 내일이면 자신이 차지할 그 자리에 오늘 앉아있는 그 누군가에게 복종하는 것이다. 통치자는 입장을 바꾸어 지배받는 사람 처지에서 결정을 내리도록 유도된다. 피통치자 처지를 잘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정의를 외치는 것, 즉 권력에 있는 사람들에게 통치를 받는 사람들 처지를 상상해 보라고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통치자들에게 그렇게 할 수단과 동기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결과적으로 이 근본적인 원칙에 따르면 추첨은 합리적인 해결책이 된다. 



오늘날 생각과는 달리, 시민이 권력을 행사한 대부분 정치제도에서는 추첨이 사용되었다. 추첨은 로마 시민 의회에서도 제한적이기는 했지만 일정한 역할을 담당했다. 중세와 르네상스 시기 이탈리아 공화국들에서는 추첨을 통해 행정관을 선발하곤 했다. 11세기와 12세기에 설립된 초기 이탈리아 코뮨에서는 행정관을 선발하기 위해 추첨을 사용했다. 공화주의 부흥의 중심지였던 피렌체에서, 공화주의 체제 핵심은 바로 추첨을 통한 행정관 선출이었다. 베네치아에서는 1797년 몰락할 때까지도 추첨이 계속 사용되었다.  추첨의 목적은 자신이 속한 파당 사람을 선택하는 도당들을 막기 위해 고안되었다. 피렌체인들도 공화정 기간 동안 다양한 행정관과 정무위원회 위원 선발에 추첨을 이용했다. 14세기 말 추첨은 행정관 선발에 공평성을 보장하고 파당을 막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추첨은 개인이나 당파에 의해 행정관이 선출이 조작되는 것을 막았다. 어느 누구도 추첨 과정의 단계를 통제하거나,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없었다. 추첨이라는 중립적이고 조작 불가능한 메커니즘이 바로 공정하다고 느끼도록 만들었다.



지만 추첨이 평등하고 민주적인 특성이 있다는 신념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은 아니며, 실제로 15세기 말까지도 논란의 여지가 없던 사안도 아니었다. 오늘날 우리도 추첨을 괴상한 관습 정도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추첨은 통치에 특별한 재능이 없는 사람을 포함해, 무작위로 아무나 선발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따라서 추첨은 분명 결점이 많은 선출 방법이고, 추첨이 이제 사라진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같은 결론은 타당한지 의심해 보아야 할 주장이다. 



고대 아테네 민주주의에서 모든 평의회위원들과 판사들 뿐 아니라 대부분 행정관은 전문가가 아니라 보통 시민이었다. 아테네인들은 각각의 정치적 기능은 비전문가에 의해서 수행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내린 가정은 만약 전문가들이 정부에 관여하게 되면 불가피하게 그들이 지배하게 되리라는 것이었다. 아테네인들은 아마도 집단적 정책 결정에서 다른 사람들이 가지지 않은 지식과 기술을 가진다는 것 자체가 권력의 한 근원이 되며, 법률적으로 그들 각각 권력이 어떻게 규정되든, 그러한 기술을 가진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이점을 갖는다고 판단한 듯하다. 전문가로 이루어진 평의회 또는 전문 행정관이 민회를 좌지우지할지도 모르고, 법정에서 전문가들은 다른 판사들의 중요성을 축소시킬 것이다. 


















마이클 샌델은 최근의 역사적 경험으로 봐도 “최고의 인재들이 저학력자 동료 시민들보다 통치를 잘한다는 생각은 능력주의 오만에서 비롯된 신화일 뿐”이라고 말한다. 1945년 윈스턴 처칠의 보수당을 눌렀던 영국의 클레멘트 애틀리(1883~1967) 내각의 장관 가운데 일곱 명이 탄광 갱부 출신이었다. 매우 유능하다고 평가받은 외무장관 어니스트 베빈은 전후 세계질서의 설계자 중 한명이었다. 그는 11세 때 학교를 중퇴하고 노동조합 지도자로 성장했다. 하원 의장과 부수상을 지낸 허버트 모리슨은 14세에 중퇴하고 지방정부에서 일하며 명망을 쌓았는데, 런던의 대중교통 시스템을 개발한 공로가 컸다. 보건부 장관 어나이린 베번은 13세에 중퇴한 뒤 웨일스에서 광부로 일했고, 장관이 되어서는 영국 국민의료보험 제도를 수립했다. 



‘20세기 영국에서 가장 개혁적인 정권으로 평가되는 애틀리 정권은 노동계급에 힘을 실어주었으며, 애틀리 전기 작가는 ‘영국의 새로운 사회계약에 쓰일 윤리 언어를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샌델은 “정책 결정이 ‘스마트하냐 우둔하냐’ 문제로 여겨질수록 ‘스마트한 사람(전문가나 엘리트)’이 결정하고, 일반 시민들이 토론과 결의를 하는 일에서 배제하는 게 옳다고 여겨지지 마련”이라고 ‘정치 엘리트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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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man 2023-06-15 21: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그리의 홉스 해석은 갸우뚱하네요. 네그리가 하고 싶운 말이 있는데, 그걸 위해 홉스를 이용한 느낌이랄까요? 저도 홉스를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집에 있는 책들과 교차검증 해봐야겠습니다 ㅋㅋㅋ

북다이제스터 2023-06-15 22:17   좋아요 1 | URL
저도 잘 모르지만 네그리와 홉스는 거의 같은 과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사실 그건 중요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저도 제 주장을 위해 이것저것 짜집기 한 거 뿐입니다. 여타 학자들이 그렇듯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