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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자본 이동과 축적이라는 덫에 딱 걸렸다. 게다가 자본 축적은 화폐로 인해 더욱 심화된다. 그렇다면 화폐란 무엇일까?



정치경제학자 칼 폴라니는 부(富)의 모든 형식 중에서 오직 화폐만이 정해진 한계가 없다며, 자본 축적의 부조리를 생생한 비유로 설명한다. “궁전 다섯 개를 짓기 원하는 왕자도 궁전 5,000개 짓는 일에는 망설일 것이다." 폴라니는 아리스토텔레스 사상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화폐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를 최초로 구분한 사람이 아리스토텔레스였다. ‘실물에 대한 인간 욕망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옷이 만 벌이 있다면 아무리 사치스러운 사람도 부담을 느낄 것이다. 매일 하나씩만 갈아입어도 30년 가까운 세월이 걸릴 테니 말이다. 배고플 때 죽 한 그릇이 배부를 때 산해진미보다 나은 법이다(사용가치). 하지만 화폐 축적에는 한정이 없다. 1억 원이 있으면 10억 원을 욕망하고, 10억 원이 있으면 100억 원을 욕망한다. 숫자에는 끝이 없기에 화폐에 대한 욕망도 끝이 없다(교환가치). 이것이 화폐 마술이다. 이 때문에 어느 새인가 사람들은 부(富)가 단지 화폐 축적에 다름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이른다. 이렇게 해서 본말이 전도되며, 사람들은 악다구니를 쓰면서 돈에 환장하게 된다. 하지만 실물의 존재(사용가치)와 화폐의 존재(교환가치)는 엄연히 다르다.‘ 

















여러 생산물이 화폐로 비교된다고 할 때, 방법은 질적인 사용가치가 아니라 양으로 비교된 교환가치다. 화폐로 인해서 질적 가치가 양적 가치로 변화한다. 사실 서로 다른 상품을 질(質)과 상관없이 양(量)으로 비교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서로 다른 상품의 “등가형태”란 무엇인가라고 마르크스가 『자본』 첫머리에서 물었을 때, 그는 모든 어려운 문제를 거기에 응축시킨 것이나 다름없었다. 다종다양한 물건이 양으로 비교될 수 있다는 점은, 곧 질적으로 동등하다고 여기는 것인데 이는 사실일 수 없다. 이러한 가정은 물건의 진정한 성질이 아니기 때문이다.‘ 화폐 영향을 받아 우리는 질적인 일을 양적인 일로 쉽게 재단하여 무의식에서 잘못된 판단을 내린다. 예컨대, “너는 따귀 한 대만 맞았잖아, 나는 다섯 대나 맞았어”라든지, “너는 일 년만 복무했잖아, 나는 삼 년이나 복무했어”라고 질적인 가치를 양화(量化)하여 비교한다. 누군가에게는 따귀 한 대가 열 대만큼 아플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일 년이 십 년보다 더 긴 세월일 수 있다. 
















’기업은 모든 임금노동자 노동을 수량적인 단위로 환원한다. 하지만 노동자의 구체적인 노동은 양으로 환원될 수 없는 질을 갖고 있다. 회사 입장에서 자본과 임금노동의 교환은 등가 교환이다. 회사에 임금노동은 또 하나의 상품이며 상품으로 환원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동자 입장에서 자본과 임금노동의 교환은 부등가적이다. 노동자에게 임금노동은 자신의 생명을 재생산하는 것일 뿐 아니라 새로운 삶을 전개하는 활동이기 때문이다. 노동력이 생명적 욕구를 갖고 자기 활동을 전개하는 한, 항상 양화되는 것을 전제로 하는 자본의 내적 논리, 즉 이윤 추구라는 체제 안에 온전하게 포섭될 수 없다.‘ 



‘현재 우리는 “노동은 자원(HR: human resource)”이라는 은유에 의해 살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전혀 은유로 여기지 않는 경향이 있다. 우리가 일을 보는 방식과 의도된 목적 때문에 이러한 은유가 우리 문화 속에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물질’이라는 존재론적 은유를 이용하여 노동이 양화될 수 있게 해 준다. 즉 평가되고, 점진적으로 소모되는 것으로 간주되고, 금전적 가치를 할당받게 해 준다. 그리고 은유를 통해서 우리는 시간과 노동을 다양한 목적에 ‘사용될 수 있는’ 어떤 것으로 간주할 수 있게 된다.

 

  

‘노동은 자원’ 은유를 받아들이고, 이런 방식으로 정의된 자원의 비용은 낮게 유지되어야 한다고 가정할 때 싼 노동은 싼 기름과 마찬가지로 좋은 것이 된다. 이 은유를 통한 인간 착취는 ‘거의 무한정에 가까운 싼 노동 공급’을 자랑하는 나라들에서 가장 현저하게 드러난다. 이 말은 중립적으로 들리는 경제적 언명이면서도 인간 퇴락의 실재를 은폐하고 있다. 이 은유를 맹목적으로 수용한다면 ‘진보’된 사회의 의미 없는 생산직 또는 사무직은 실제 노예처럼 퇴락한다.‘ 
















화폐로 인해 사용 가치가 교환 가치로 전환되었다면, 화폐는 교환 가치에서 기원했을까? 화폐 기원을 인류 교환 성향에서 찾은 학자가 애덤 스미스다.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초기 사회 사람들은 분업으로 자신이 생산한 상품과 서비스를 직접 서로 교환했다. 그렇지만 어떨 때는 내가 생산한 상품을 아무도 원하지 않거나, 반대로 내게 필요한 상품을 누구도 충분히 갖고 있지 않아서 물물교환이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러한 불편을 해소하고자 교환의 매개수단을 생각해 냈다. 사회가 더 복잡해지자 사람들은 가치가 있다고 널리 인정된 금이나 은 등을 교환 매개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경제가 더 복잡해져 사람들은 금과 은을 대행하는 지폐를 발명했고, 이는 통화 시스템이 발전하도록 이끌었다고 스미스는 추측했다. 
















화폐가 단지 교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이처럼 자연스럽게 등장할 수 있었을까? 요즘도 여전히 우리는 가족과 친척, 친구 등 가까운 사이에는 금전 거래를 하지 말라고 한다. 우리는 오랜 경험을 통해 가까운 사이의 돈 거래가 원만한 인간관계를 망칠 수 있단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화폐는 자연스럽지 않은 인간관계를 만든다. ‘가족이나 친구처럼 친밀한 관계에서 화폐거래가 잘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그런 인간관계가 화폐 발달을 저지하기 때문이다. 친밀감이 높고 내적인 결속이 강한 공동체에서 화폐 거래는 어떤 어색함을 불러일으킨다. 공동체에 화폐가 침투하면 “공동체적 유대”가 “화폐적 인간관계”로 변해 갈등이 크게 일어난다. 개인이 화폐로 재화를 획득하는 일은 공동체에 커다란 위협이 아닐 수 없었다. 사회적 힘이 개인 사적인 힘으로 대체되기 때문이다. 과거 사회는 화폐가 사회의 경제적, 도덕적 질서를 파괴한다고 비난했다.’ 이처럼 교환을 목적으로 하는 화폐는 쉽게 발전할 수 없었다.
















화폐와는 서로 떼어내어 생각할 수 없는 시장의 기원도 흔히 다음과 같이 알려져 있다. 개인이 가진 물물교환 성향에서 마을 장터가 생겼고, 마침내 교역 필연성으로 대외무역, 심지어 원거리 무역까지 나올 수밖에 없다고 추론해 나간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 순서는 거의 정반대로 뒤집어야 옳다. 시장 발생의 출발점은 마을 장터가 아니라 원거리 무역이다. 칼 폴라니는 유럽에서 19세기에 자신이 말하는 ‘대전환(great transformation: 산업혁명, 자본주의 출현)’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세계 어느 지역에도 원격지무역은 고사하고 제대로 된 시장관계도 형성되어 있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시장은 마을 장터보다는 원격지 무역 등 두 지역 사이의 필요에 의해 사용되고 형성되었다. 마을 장터는 대개 생계유지를 위한 물품이 거래되었기에 호혜적으로 영위되고, 화폐로 매개되는 좀 더 근대적 의미에서의 시장은 오히려 사치품이나 사회적 가치를 표현하는 물품이 거래되는 두 지역 사이에서 무역의 장에 존재했다.



마을 장터는 본질적으로 호혜적인 시장이지 경쟁적인 시장이 아니다. 마을 장터는 식량 공급이 가장 중요하다. 따라서 가격이 턱없이 치솟는 일 없이 안정적으로 조달될 수 있도록 교역을 통제해야 했다. ‘반면 원거리 무역은 외국 상인이 향신료나 소금에 절인 생선, 포도주 등과 같은 것을 관할했다. 무역은 일정한 이윤을 거둘 수 있다는 확신이 들 때 먼 곳에서 대량의 물품을 한꺼번에 조달하는 도매상인이 지배한다. 따라서 마을 장터를 보호해야 할 입장에서 보면 원거리 무역을 가능한 멀리 떼어놓아야 한다. 이를 위해 외부에서 온 상인들이 마을에 와서 직접 소매하는 것을 철저하게 금지하는 방법이 고안되었다. 자본은 변동성 위험 크기에 마을은 해체될 위협이 높다. 마을 주민들은 자신 삶을 지키고자 원거리 무역과 마을 장터 교역을 분리한 것이다. 수출 무역이 확장되어 자본 영향이 강해질수록 그러한 분리도 갈수록 더욱 엄격해졌다.’ 이러한 일은 자국 시장을 보호하고자 하는 현재의 국가 무역에서도 일반적이다.
















또한, 폴라니는 화폐를 교환 매개체로만 여기면, 스미스처럼 화폐 기원을 잘못 유추할 수 있다고 평가한다. 폴라니는 화폐의 네 가지 기능을 논했다. 첫 번째 기능은 배상이나 공물, 선물, 종교적 제물, 납세 등에 해당하는 ‘책무 결제’다. 두 번째 기능은 실제로 사용되지는 않지만 자금을 관리하고자 단위로서만 존재하는 ‘가격 척도’다. 세 번째 기능은 식량이나 가축, 보물과 같은 ‘부(富)의 비축’이다. 마지막 기능이 스미스가 말한 ‘교환 수단’이다. 화폐학자 필립 그리어슨은 화폐 기원을 첫 번째 기능인 ‘책무 결제’에서 찾았다. ‘신체 피해를 보상하기 위한 ‘인명금(人命金, blood money)’이 화폐 시작이다. 함무라비 법전의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같은 탈리오 법칙[피해자가 입은 손해에 같은 손해만 가해자에게 요구해야지 그 이상을 원하면 안 된다는 보복 법칙]처럼 인류가 어떤 사건을 일관되게 처벌하거나 배상하고자 할 때 화폐적 사고가 처음 나타났다.‘ 
















화폐 이론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사회학자이자 철학자인 고병권은 “19세기 이전 민중은 화폐와 상관없었다”고 잘라 말한다. ”생산수단을 박탈당하고 생존을 위해 시장에서 오직 노동력을 팔아서 얻은 화폐로 생활을 영위하는 사람들에게만 화폐가 요구된다“며, 스미스 이론에 반박한다. ”각 개인은 살기 위해서 교환할 수밖에 없고, 교환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화폐와 같은 일반적인 교환 매체가 생겨난다는 애덤 스미스 주장은 실제 화폐 역사와 맞지 않는다.“ 천년 왕국 신라에도 화폐는 없었다. 당시 인구 600여만 명이 화폐 없이 잘 살 수 있었다면, 화폐 주요 기능이 교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한 용도가 아닐 수 있다. ’금속 제작과 수출을 잘하던 신라가 금속 화폐만큼은 아예 만든 적이 없었다. 996년 고려시대 접어들어 처음으로 금속화폐 제작 명령이 내려지기 전까지 한반도에서는 독자적으로 금속화폐를 만들려는 시도조차 없었다. 사실 신라가 화폐 제작을 하지 않았던 이유가 있었다. 국가와 백성을 연결하는 가장 중요한 고리는 세금인데, 통일신라시대 농민 세금은 쌀과 대두, 콩, 호두, 잣, 마, 포 등이었다. 생산력이 낮고 대다수 호구가 가난했던 당시 농민은 돈으로 거래할 잉여 소출이 없었을 것이다. 돈의 유통이 필요로 하지 않은 곳이 바로 신라였다.“ 
















고병권도 화폐 기원은 교환이 아니라 ‘책무 결재’ 기능, 특히 조세 징수 수단이었다고 본다. ‘화폐 발행이 국가 조세 징집과 서로 맞물려 있어, 화폐는 상인들 필요보다 국가 필요 때문에 생겨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다. 화폐 조세는 평민이 화폐를 구하기 위해 자신이 가진 것을 팔 것을 요구한다. 이런 식으로 국가가 금속(화폐)에 특권을 부여하는 것이다.’ 고병권은 자신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고대 로마 사례를 보여준다. ‘로마 귀족들이 화폐 유통을 창안하여 평민을 노예로 전락시켰다. 정해진 기일 안에 화폐로 세금을 내야 한다는 화폐 조세 때문에, 장터를 일반적인 물물교환의 장으로 활용하던 민중들도 “물건”이 아닌 “화폐”를 일부러 구하기 위해 시장에 물건을 들고 나와서 팔았다.’ 국가가 세금을 걷고자 화폐를 이용한 사례는 고대 뿐 아니라 근대까지 이어진다. ‘19세기 초 유럽인들은 아프리카 지역을 개발하고자 아프리카인 노동력이 필요했다. 그렇지만 과거처럼 노예제에 의존하는 일은 부정한 것으로 간주되었기에 제국주의 행정관들은 교묘한 속임수를 썼다. 아프리카인에게 세금을 현금으로 내라고 요구한 것이다. 대부분 아프리카인은 새로운 세금을 납부하기 위해 유럽인 고용주가 제공하는 임금노동에 종사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식으로 유럽인 고용주는 공공사업이든 민간사업이든 자신이 원하는 모든 사업에 필요한 노동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고병권은 특히, 국가의 화폐 발행은 조세 수취가 목적이라고 밝힌다. ‘국가가 화폐를 발행할 경우, 그만큼 인플레이션 효과가 생겨나는데, 인플레이션은 민간 부분의 구매력을 감소시켜 정부가 그만큼 돈을 징수하는 효과를 낸다. 은행권 발행은 국가 조세 징집과 서로 맞물려 있어, 화폐는 상인들 필요보다 국가 필요에 의해 생겨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근본적으로 화폐가 불가분의 관계를 갖는 것은 상업이 아니라 국가장치의 유지비, 바로 세금이다.’ 이 같은 고병권 주장에는 우리가 이해하기 힘든 두 가지 설명이 있다. 먼저 우리는 인플레이션을 물가 상승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가격을 인상하는 회사, 예컨대 석유 회사나 식료품 회사를 인플레이션 주범으로 삼아 맹비난한다. 그렇지만 사실 인플레이션이란 물가 상승이라는 결과가 아니라, 원인이 되는 양적 완화나 통화 팽창이 원래 정의(定義)다. 



또한,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고병권 설명은 인플레이션이 세금 징수 효과를 낸다는 점이다.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도 이와 같은 주장을 했다. “인플레이션이 지속되면, 정부는 자국 시민의 주요 재산 일부를 눈에 띄지 않게 몰래 압수할 수 있다. 정부는 이 방법으로 단순한 압수뿐 아니라 독단적인 압수도 감행한다. 이 과정에서 다수는 궁핍해지고 일부는 사실상 부유해진다.” 화폐 발행이 인플레이션이나 세금과 어떠한 관계가 있기에 국가가 국민 돈을 몰래 뺐어갈 수 있다고 케인즈는 보았을까? ‘간접세, 즉 우리가 물건을 살 때마다 내는 부가가치세부터 얘기해보자. 화폐 발행으로 물가가 인상되면 당연히 국가의 부가가치세 수입 또한 상승한다. 또한 인플레이션으로 우리 임금이 오를 때마다 소득세 부담도 함께 늘어난다.
















인플레이션은 부의 재분배를 초래한다. 인플레이션은 새로 만들어진 돈을 제일 먼저 확보한 사람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 그들은 아직 오르지 않은 가격으로 물건을 살 수 있다. 반면 뒤늦게 그 돈을 손에 넣는 사람이나, 아예 그 돈을 손에 넣을 수 없는 사람은 피해자가 된다. 그들이 추가 수입을 확보할 수 있는 시점이 되면 물건과 서비스 가격은 올라버린다. 제일 먼저 돈을 손에 넣는 사람은 국가와 은행, 대기업 관계자다.‘ ‘물가가 상승하면 기업 이익은 증가한다. 기업은 남의 돈을 빌려 원료와 기계설비, 노동력을 산다. 그래서 만든 물건을 판 금액으로 물건을 만드는 동안 빌린 돈을 갚기 마련이다. 물가가 계속 오를 때 상품을 만들어서 팔면 자동적으로 이익이 생긴다.’ ‘제일 마지막에 돈을 손에 넣는 사람들은 봉급생활자와 연금 수급자들이다. 인플레이션은 빈곤을 야기하는 한편 은행 시스템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슈퍼 부자들을 더 부자로 만들어준다. 다수 희생 대가로 그들만이 이익을 보는 것이다.’ 















화폐 역사는 주어진 통화 공급량을 보다 더 확대하기 위한 대체수단을 지속적으로 개발했다. 17세기 전쟁이 심화되고 있을 때 서유럽 통치자들은 1년 내내 병사와 선원들을 먹이고 급료를 주고 물자를 댈 묘안이 필요했다. 영국에서 새로운 '신용 제도'인 국가 영구 채권을 창안했다. 이는 영국 정부가 일반인들에게 모집한 채권인데, 따로 정한 상환 기한이 없어서 이자를 무기한 지불하도록 되어 있다. 이 말은 곧 정부가 돈을 빌리기는 하되 그것을 다시 '갚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뜻한다. 다만 확실하게 이자를 갚기만 하면 되며, 따라서 이 이자 부담을 위한 소득원은 '조세'로 충분하다. 국가가 원하는 액수를 빌리되 그것을 갗을 필요가 없고, 국가에 돈을 빌려준 사람은 필요하면 시장에서 매각함으로써 되돌려받는 '신기한' 일이 가능해 진 것이다. 국가는 단지 세금으로 이자를 지불하면서 이자 부담이 누적되어 감당할 수 없게 되는 사태를 막기 위해 재정 여건이 좋을 때마다 시장에서 이전 발행한 채권을 구입하여 소각"하는 신기한 제도를 만들어냈다. 『로빈슨 크루소』 저자 대니얼 디포가 설명한 대로, “신용 대출이 전쟁을 낳고 평화를 가져오면 군대를 일으키고 해군 장비를 갖추고 전투를 수행하며 도시를 포위한다. 그리고 한마디로 신용이 돈 자체보다 더 전쟁의 동력이라 불릴 만하다. 신용은 병사들이 급료를 받지 않고도 싸우게 하며 군대가 보급품이 없어도 행군하게 하고 요구만 있으면 원하는 대로 수백만 냥의 돈을 국고와 은행에 채운다.” 무한 신용은 무한 전쟁을 뜻한다.
















화폐와 신용은 자연스럽게 발생한 것이 아니라 국가의 여러 정책에 의해 모습을 갖춘 것뿐이다. 근대 경제학은 마치 이러한 허구 상품들이 실제라고 우겨대는 억측을 전제로 하여 논의를 시작하지만, 폴라니는 이런 것들을 상품이라고 우기는 허구의 눈속임은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온다고 주장한다. “경제에는 상당히 지속적인 발작이 한 번씩 - 아마도 5년이나 10년에는 꼭 한 번씩 - 벌어지는데,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이전의 절반 혹은 그 이하 소득으로 생존 게임을 벌여야 하며, 사람들 모두가 이러한 정도의 상황을 견뎌낼 유연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점을 자본주의는 요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폴라니는 “사람들이 이런 종류의 탄력성을 가질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그릇될 뿐 아니라, 지극히 비현실적”이라고 믿었다.



폴라니가 강조하는 단어가 바로 ‘사회’다. “인간은 사회를 발견해야 한다. 사람들은 사회의 단결과 유대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깨닫지 못한다. 인간 삶에서 마음속 깊숙이 영혼이 깃들어 있는 소중한 ‘사회’라는 신전은 이제 파괴되었고 더럽혀졌다”라고 폴라니는 한탄한다. “우리 시대에 닥쳐온 이 황당한 자본주의 모순들을 극복해 나가는 작업은 오로지 사회, 즉 인간이 서로서로 의존하는 포용력 있고 넘치는 통일체가 무엇보다도 우선한다는 것을 발견할 때에만 기대할 수 있는 일이다.” 폴라니 결론은 “전 지구 모든 나라의 보통 사람들이 경제를 정치에 복속시키고 지구 경제를 국제적 협력의 기초 위해서 재건하는 노력에 함께 매진하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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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기업에서 개인 분업화가 이처럼 심각한 문제를 낳는다면, 지역 간 그리고 국가 간 분업은 어떨까? 이러한 분업을 상황에 따라 도시-농촌 사이 역할 분담이나 국가 간 무역, 세계화 등 서로 다른 무미건조한 용어로 표현하지만, 이 모든 개념을 포괄하는 본질은 ‘자본이동이나 유출‘이다. 우선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국가 간 무역을 살펴보자. 



우리나라 중학교 사회 교과서는 ‘무역 장점‘을 이렇게 가르친다. “분식집 주인보다 라면을 더 잘 끓이는 축구선수라 할지라도 축구 시즌에는 축구에만 집중하고 라면은 분식집에서 사 먹는 편이 유리하다. 축구선수가 라면을 끓이는데 걸리는 시간 동안 축구 경기를 통해 벌 수 있는 이익이 더 크기 때문이다. 이때 축구선수는 축구에 비교우위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교과서 설명이 간결한 만큼 우리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미국 경제학 교과서 『맨큐의 경제학』 일부인 '타이거 우즈가 자기 집 잔디를 깎지 않는 이유'에 착안하여 우리나라 교과서가 쉽게 바꾸어 설명한 것이라고 한다. ’비교 우위’ 이론 예시는 이처럼 무척 다양한데, 이 이론을 처음 제시한 사람은 정치경제학자 데이비드 리카도다. 



리카도 설명이 까다롭긴 하지만, 우리나라 교과서와 크게 다르진 않다. ‘영국은 직물 1마를 짜는데 100명이 필요하며, 포도주 1병을 양조하는데 120명이 필요하다. 반면 포르투갈은 직물 1마를 짜는데 90명이 필요하며, 포도주 1병을 양조하는데 80명이 필요하다. 이러한 예시를 보면 포르투갈이 모든 상품에 대해 영국에 절대 우위가 있기에 직물과 포도주 모두를 자급자족하면 되지, 굳이 영국과 무역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기회비용‘을 따져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고 한다. 영국은 포도주를 양조하는 인력 120명을 전환하여 비교우위가 있는 직물 짜기에 120/100=6/5 단위만큼 더 투입할 수 있다. 반면에 포르투갈은 포도주를 양조하는 80명을 직물 짜기로 전환하더라도 고작 직물 80/90=8/9 단위를 짤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포르투갈 입장에서 굳이 자급자족하느니 영국에 포도주를 수출하고 직물을 수입해 오는 편이 더 경제적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한 국가가 다른 국가에 비해 특정 상품에서 절대 우위를 갖더라도 자유무역을 하는 것이 서로에게 이득이라는 점이 리카도의 비교우위론 핵심이다.



그런데 리카도 예시는 두 가지 문제가 있어 이해하기 어렵다. 두 국가 생산력 특징과 소비 필요량이 설명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포르투갈 처지에서 보면 첫 번째 문제는 직물을 생산하는 인력을 포도주 생산으로 전환할 수 있는지 여부다. 질적인 인력을 양적으로 전환 가능한지는 논의하지 않기로 가정해도, 또 다른 문제가 있다. 포르투갈 혼자 생산한 포도주를 두 나라가 소비할만한 양인지 가늠할 수 없다. 이를 다소 보완한 또 다른 비슷한 예시를 물리학자 김범준 교수가 쓴 『세상 물정의 물리학』에서 찾을 수 있다. 저자는 전체가 부분의 단순 합보다 더 커질 수 있다는 네트워크 효과, 곧 ‘무역의 장점’을 설명하며, “협력[분업]은 하나 더하기 하나를 둘보다 더 크게 만든다”라고 말한다. 서로 다른 지역이 배타적으로 특화된 상품을 생산하면, 생산 총합이 더욱 커지면서 세상이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인데, 그가 제시한 예시는 다음과 같다. 



“두 도시가 연결되면 마술 같은 일이 생긴다. 한 도시 생산물을 다른 도시와 교환할 수 있게 되면 연결되기 전에 비해 두 도시가 생산할 수 있는 재화 총합이 늘어난다. 예를 들면 첫 번째 도시 A는 자체 생산력으로 하루 반나절에 빵 200개, 나머지 반나절에 버터 100개를 만들 수 있다고 하자. 두 번째 도시 B는 하루 반나절에 빵 100개, 나머지 반나절에 버터 200개를 만들 수 있다고 하자. 두 도시가 연결되어 물품을 교환할 수 있게 되면, 하루 종일 일해서 첫 번째 도시 A는 빵’만’ 400개, 두 번째 도시 B는 버터’만’ 400개를 생산할 수 있다. 이를 서로 교환하면 각 도시 사람들은 사이좋게 빵 200개와 버터 200개를 먹을 수 있다. 교환 이전 두 도시 전체 생산량인 빵 300개와 버터 300개보다 각각 100개 늘어난 셈이다. 도시 연결은 하나 더하기 하나를 둘보다 크게 만든다.” 

















그런데 그의 주장을 우리 현실에 실제 적용하면 어떠한 일이 벌어질까? 두 도시는 서로 ‘사이좋게’ 빵과 버터를 교환할 수 있을까? 각 제품에 가치[가격]를 대입해보자. 예를 들어 빵 한 개 가치를 20원, 버터 한 개 가치를 10원이라고 하자. 두 도시가 빵과 버터를 교환하지 않고 각각 빵과 버터 모두를 생산하여 자급자족한다면, 각 도시 생산물 총가치는 도시 A가 5,000원(빵 200개 X 20원 + 버터 100개 X 10원), 도시 B는 4,000원(빵 100 X 20원 + 버터 200 X 10원)이다. 도시 A와 B의 생산물 총가치 차이가 그리 크게 나지 않는다. 



반면 두 도시가 연결되어 비교우위가 있는 상품만 생산하게 되면 도시 A가 빵만 400개 만들어 생산 가치는 8,000원(빵 400개 X 20원)이다. 도시 B는 버터만 400개 만들어 생산 가치는 4,000원(버터 400개 X 10원)이다. 두 도시 생산물 총가치가 더 크게 벌어져 교환 이전보다 두 배 차이가 난다. 도시 B는 교환하기 이전 자급자족하던 시기보다 상대적으로 더욱 가난해져 부유한 도시 A가 생산한 빵을 살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이러한 생산이 향후 더욱 지속될수록 도시 B는 점점 더 가난해져 가난이 대물림 된다. 도시 A의 경제 발전이 도시 B의 희생과 가난 ‘덕분’이라면 우리는 그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경제학자 라울 프레비시는 “비교우위론이 저개발국가의 진정한 경제발전을 가로막는다. 저가 1차 상품을 수출하고 고가 공산품을 수입하면 자본은 계속 유출되고 사회경제 발전에 필요한 기술개발은 묘연해진다‘며 자신의 ’종속 이론‘을 설명했다.
















그런데 이처럼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자본 이동이나 유출이 발생한 원인은 무엇일까? 위 예에서 ‘빵 한 개 가치를 20원, 버터 한 개 가치를 10원이라고 하자’고 단순하게 가정했지만, 국가 간 상품 가격에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상품 가격이 수요와 공급에 따라 시장에서 자동으로 결정된다고 알고 있지만, 자유시장 메커니즘을 가로막는 큰 힘이 있다. 대표적인 일이 독점이다. ‘상대적으로 독점화되어 있는 지역은 자유시장 법칙을 따르는 지역에 비해 높은 가격을 유지하여 훨씬 많은 이윤을 거둘 수 있으며, 이에 따라 그만큼 더 부유해진다. 한 시장에서 여러 생산자가 같은 종류의 상품을 생산하고 경쟁하는 상황과 한 상품을 독점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상황 사이에는 명백하게 힘의 불평들이 존재한다. 따라서 독점이 지배하는 지역과 자유시장이 지배하는 지역 간 상품 교환은 다수 독점 생산과정을 보유한 국가로 자본이 흘러 들어가는 궁극적인 결과를 양산한다.’ 















그렇다면 또 다른 의문이 드는데, 독점은 왜 발생할까? 한 국가가 잘 살지 못할수록 독점 상황이 더 일반적일까? 오히려 그 반대다. 경제학은 자본주의 작동 핵심이 수요-공급 법칙을 따르는 ‘경쟁’이라고 알려주지만, 자본주의 학문의 ‘꽃’인 경영학은 조금 더 솔직하게 답을 알려 주는 편이다. 보통 대학교 4학년쯤 돼서야 세상 이면에 놀라지 않을 시기에 배우는 경영학 분과가 ‘경영 전략(strategic management)’이다. 이 분과 대표 학자인 하버드 대학교 마이클 포터 교수는 기업이 이윤을 지속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경쟁 우위(sustainable competitive advantage) 전략은 ‘독점’밖에 없다고 귀띔한다. 그의 산업구조 분석 모델[five forces model]은 기업이 다양하고 체계적인 경쟁 회피 전략을 소상하게  알려준다. 자주 언급되는 김위찬 교수의 ‘블루 오션’ 전략도 독점을 지향한다. 기업이 이윤을 지속적으로 얻는 방법은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밖에 없기에 기업가는 경쟁을 피할 방법을 마련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경제학자 리오 휴버먼은 자본주의가 고도화될수록 독점이 더욱 확산되고 공고해지는데, 이는 자본주의 자체에 내재한 속성이라고 말한다.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이 경쟁적이고, 자유롭고, 개인주의적인 것으로 믿는다면 당신은 속고 있다. 자본주의 시장은 결합과 합병, 통합, 트러스트, 위탁 등 독점으로 이루어져 있다. 독점이 이윤을 늘리며, 경쟁은 이윤을 줄이는데, 자본가가 경쟁을 왜 하겠는가? 제품 생산이 몇몇 기업에 집중됨에 따라 경쟁에서 독점으로 이어지는 변화는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는 어쩔 수 없이 초래되는 불가피한 현상이다. 경쟁이 독점으로 바뀌는 것은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경쟁’ 그 자체 속성에 기인한다.” 
















기업 경쟁은 서로 적대적인 기업 수가 많아지면 격렬해지지만, 기업들 규모가 커지면서 약화된다. 경쟁은 언제나 많은 중소기업이 망하면서 점차 사라지는데, 이렇게 망한 중소기업 일부분은 승리자가 차지하고 나머지는 사라진다. 기업들 사이 경쟁 때문에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점차 소수 기업만 규모가 커지는 일이 발생한다. 자본주의 핵심은 경쟁인 듯 보이지만, 마르크스가 예견한 듯 자본 집중으로 이어진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더욱 효율적인 생산 방식을 활용하기 위해 공장 규모를 키워야 하며, 경쟁이 더욱 파괴적으로 진행되면서 소규모 경쟁자들은 뿌리째 뽑혀 나간다. 이후 덩치가 커진 기업들은 이러다간 모두 망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카르텔이나 트러스트, 기업 합병 등을 통해 공동 생존을 확보한다. 결국 기업 합병은 살아남은 기업들이 경쟁을 피하고자 의지하는 수단이다. 이런 독점 현상으로 소수 사람에게만 소득이 집중된다. 

 















독점 기업은 상품 가격을 높게 유지할 뿐 아니라, 이익 극대화를 위해 상품 질을 의도적으로 떨어뜨려, 사회 발전을 저해한다. 대표적으로 잘 알려진 예시가 전구나 나일론 스타킹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리버모어 소방서에는 100년이 넘도록 지금도 빛을 발하는 전구가 있다. 바로, 이 전구는 1895년 셸비일렉트로닉이 제작한 것으로 당시 특허를 따냈다. 셸비일렉트로닉은 광고에서 ‘수명 최장’이라고 자랑스럽게 알렸다. 하지만 이 회사는 1914년 다른 중소 전구 업체들과 함께 제너럴일렉트릭에 흡수됐고 ‘100년 전구’(센테니얼 라이트) 기술도 역사 속에 묻혀버렸다. 그 뒤 제너럴일렉트릭과 네덜란드 필립스, 독일 오스람 등 거대 기업들은 세계 전구 시장을 나눠 먹으려고 카르텔을 결성했고, 전구 수명을 1,000시간으로 통제했다. 훗날 드러난 카르텔 내부 문건은 1,000시간 한도를 어기면 징벌을 가한다는 벌칙표도 들어 있었다. 소비자가 전구를 자주 사서 갈아야 기업 이익을 늘릴 수 있기에 수명이 긴 전구가 전혀 달갑지 않았다. 다른 예로, 미국 듀폰이 1934년 나일론을 개발했을 때 질기기가 이를 데 없었다. 진창에 빠진 자동차를 나일론 스타킹으로 끌어내는 광고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수명이 긴 새 상품을 소비자는 반겼지만, 스타킹업체들은 불만이 컸다. 듀폰은 햇빛이나 공기 속 산소와 작용해 스타킹 올이 쉽게 나가게 하는 소재를 나일론에 추가했다. 나일론 스타킹 수명이 단축되자 판매가 급증했다.‘ 

















이처럼 독점으로 자본을 집중시켜 상품 가격이 높은 국가와 소규모 기업의 자유 경쟁으로 상품 가격이 낮은 국가가 서로 무역을 하게 된다면 자본이 한쪽에서 다른 한쪽으로 이동하게 된다. 그렇다면 한 국가 내에 다른 두 지역, 곧 도시와 농촌 사이에는 어떠한 일이 벌어질까? 이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듯이 같은 결과가 일어난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도시와 농촌의 역할 분담으로 농촌 자본이 도시로 빨려 들어간다는 사실을 이미 잘 알고 있음에도 이를 의도적으로 악용하는 데 있다. 예컨대, 가난한 농업 국가가 상업이나 공업 국가로 전환하여 성장하려고 할 때, 종잣돈이 충분할 리 없다. 신용이 낮은 가난한 나라에 외국이 차관을 충분히 제공할 리도 만무하다. 이럴 경우 농촌 생산성을 최대한 끌어올려서 곡물을 팔아 번 돈[자본]을 도시[공업 지역]로 이전시키는 것이다. 농촌 생산성 향상 운동은 ‘농촌 잘살기’ 운동만은 아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세기 초 소련이다. 1930년대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가 대공황으로 경제 상황이 최악이었지만, 당시 소련만이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당시 소련 경제 발전 정책을 향후 우리나라가 모방한 것이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다. 당시 러시아의 경제 성장 원동력도 농촌에서 도시로 자본을 이동시킨 결과다. 



‘1920년대 말 소련은 신속한 공업화를 위해 자금을 효율적으로 조달할 방법을 고민했다. 공업화는 자본재를 생산할 노동자를 입히고 먹여야 하며, 또 공장과 기계를 만드는 데 필요한 자재도 마련해야 했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가 사회 전체 생산물에서 자금을 따로 떼어둔다면, 그 돈으로 외국 자본재를 사 오는 것도 가능했다. 소련 노동자 다수는 농업에 종사하고 있었으므로(그중 대다수는 자급자족형 농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그런 돈 대부분은 농업에서 가져올 수밖에 없다는 사실 또한 자명했다. 급진 공산주의자 레온 트로츠키와 경제학자 유게니 프레오브라젠스키는 농업 생산물을 낮은 가격으로 수매하지만, 공산품에는 높은 가격을 지급하며, 게다가 농업 이윤에 무거운 조세를 메기는 식으로 농촌에서 최대한 돈을 뽑아내는 방법을 제시했다. 또 개인들이 조각조각 나누어 갖고 있던 땅뙈기를 대규모 집단 농장으로 합쳐서 농업을 더 효율적으로 조직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중공업의 신속한 팽창을 위해 최대한 많은 자원과 노동력을 그곳에 바쳐야 하기에 농촌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거나 홀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스탈린은 권력을 거머쥔 뒤 트로츠키와 프레오브라젠스키 노선을 따랐으며 그것도 그들 제안보다 훨씬 더 빠르고 더 가혹한 방식으로 추진해나갔다. 1930~31년 소련 정부 수매량은 2천2백십만 톤에 달했고, 이를 1928~29년과 비교해보면 두 배 이상 늘어난 양이었다. 집산화를 통해 많은 자금이 정부 수중에 들어가자 소련 공업화는 1930년대 몇 차례의 5개년 계획을 토대로 아주 빠르게 진행되었다. 소련 공식 통계를 보면 1930년대 공업 연평균 성장률은 약 16퍼센트나 되었다. 1928년에 저개발 국가였던 소련은 1938년이 되면 주요 선진국이 되었다.‘
















국가 발전을 나쁘게 볼 수는 없다. 하지만 그 발전은 전적으로 농촌 희생 위에 이루어진 일이다. ‘18세기 이전에는 인류 대다수(85~95%)가 농촌에서 생활했다. 농촌이 있었기에, 인류는 도시 생활의 불안정을 극복하고 연속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인류 생존은 농촌 마을의 회복력에 의존해 왔다.’ ‘대공황 이전 미국이 이따금 찾아오는 불경기를 막아낼 수 있었던 원인은, 그때만 해도 사람들이 거의 농업에 종사하며 필요한 것을 자급자족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세기 초 미국과 세계 경제에는 일대 변혁이 일어났다. 도시화하고 기계화된 미국에서 대공황으로 졸지에 실업자가 된 수백만 노동자들에게는 돌아가 농사를 지을 땅이 없었다. 엄청난 실업률 속에 통계는 사실상 무의미했다. 역사가 중에는 실업률이 40퍼센트 내지 50퍼센트에 육박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농촌이라는 이웃 공동체 없이는 인간은 도시라는 환경 속에서 살아갈 수 없다. 















따라서 농촌에서 도시로 더 이상 자본이 유출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지역화폐’는 자본 유출 방지 장치로 보아야 한다. 요즘 우리나라 많은 지자체는 꽃 축제 등 각종 행사에 입장료를 받는 대신 같은 액수의 지역화폐인 지역 상품권으로 되돌려주고 있다. ‘화폐를 지역 사회 수중으로 서서히 되찾아오고, 국가가 독점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화폐는 지역 사회에 도움이 되어야 하며, 지역 사회가 화폐에 예속되어서는 안 된다. 지역 사회에 뿌리내린 진정한 통화 정책을 창안해야 한다. 주민 구매력을 유지하기 위해 통화 흐름은 가능한 한 지역에 머무르게 해야 한다. 또한 경제적인 의사 결정도 가능한 한 지역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국가가 화폐를 독점하면서 지역 사회 발전을 장려하는 것은 독한 술로 알코올 중독 환자의 해독을 시도하는 것과 같다.’ 















우리는 현재 ‘세계화’라고 부르는 자본이동 자유화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나라는 1996년 OECD에 가입하면서 ‘세계화’ 물결에 동참했다. OECD에 가입할 수 있는 조건은 자본거래 자유화(자본이동 규제 완화 및 외국인 투자 제한업종 폐지), 정부 규제 완화, 서비스 시장 자유화 등이 포함되어 있다. 외교관이었던 사토 마사루는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세계화를 동반하며 제국주의로 발전한다”라고 주장했다. 미국 소속 경제 저격수였던 존 퍼킨스는 경제 저격수들이 “미국이라는 제국 건설을 위해 다른 나라 자본이 미국 기업과 미국 정부로 유입되게끔 상황을 연출하는 훈련을 받았다”고 폭로했다. "나는 경제 저격수였다. 경제 저격수란 대기업과 미정부 이익을 위해 활동하는 엘리트 조직, 즉 현대판 ‘살인 청부업자’를 일컫는다. 내가 담당한 임무는 제3세계 국가들을 속여 강탈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미국 기업들은 자사에서 갈망하는 무언가를 보유한 나라를 찾아낸다. 그 대상은 귀중한 자원일 수도 있고 전략적으로 의미 있는 부동산일 수도 있다. 그런 다음, 경제저격수들이 출동해 세계은행을 포함한 각종 국제기구에서 엄청난 금액의 돈을 빌려야 한다고 해당 국가 지도자들을 설득한다. 지도자들은 국제기구에서 빌린 돈이 직접 자국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며, 발전소나 항만, 산업 공단 등 인프라 구축을 담당할 미국 기업에 돈이 흘러 들어간다는 정보를 제공받는다. 



몇 년이 지난 후, 경제 저격수는 그 나라를 다시 찾아가 말한다. “몇 해 전 빌린 엄청난 규모의 대출을 갚기 힘들어 보이는군요.” 그 나라 지도자가 두려움에 몸을 떨기 시작하면 경제 저격수는 은은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몇 가지를 제안한다.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가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해 드릴 수 있습니다. 석유(혹은 다른 자원)를 저의 회사에 싸게 팔고, 우리 회사 업무 진행을 어렵게 만드는 환경법과 노동법을 폐지하고, 미국에서 생산된 제품에 다시는 관세를 부과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저희가 원하는 조건에 따라 귀국 생산 제품에 무역장벽을 세우고, 귀국 공익시설, 학교, 기타 공공기관을 민영화하여 미국 기업에 매각하고, 이라크 등지에서 활동하는 미군을 지원하기 위해 군대를 파견하시기만 하면 됩니다.”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 전문화[분업]나 소규모 자유경쟁 기업과 대규모 독점 기업 사이 협업[분업], 농촌과 도시 사이 역할 분담[분업], 저개발국가와 선진국 사이 무역[분업] 등 모든 상황에 자본이 이동하며, 이에 따라 각각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점차 심해진다. 지구 전체 자본을 총자본이라고 본다면, 지구가 자본을 축적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잉여가치는 총자본 내에서 개개 자본이 부등가 교환을 할 때 발생한다. 이 개념을 경제학자 피에르 조세프 프르동보다 더 쉽게 설명한 사람은 없는 듯하다. “A가 생산자 B에게서 이익을 취한다면, 경제원리에 따라서 B는 C에게서, C는 D에게서 다시 그만큼의 몫을 회수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며, 이러한 일은 결국 Z에게까지 이어질 것이다. 그러면 Z는 누구로부터 회수할 것인가? 만일 그가 최초 수혜자 A로부터 회수한다고 하면, 이미 누구에게도 이익은 존재하지 않게 된다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되며 따라서 자본축적이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거대한 산업 사회도 같은 것이니, 한 사람이 이윤으로 부자가 되려면 다른 한 사람이 가난해져야만 한다는 것이 입증된다. 왜냐하면 A가 자본을 축적하기 위해서는 Z가 희생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본 이동과 축적이라는 덫에 딱 걸렸다. 게다가 자본 축적은 화폐로 인해 더욱 심화된다. 그렇다면 화폐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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