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트의 양심 이론은 우리가 태어날 때 옳고 그름을 알지 못함을 보여줍니다. 더 나아가 프로이트는 인간이 본래 선과 악을 구별할 수 있는 자유의지가 있다는 생각을 거부합니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인간 마음은 ‘원초아-자아-초자아’로 구성됩니다. 초자아는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결정합니다. 원초아가 인간 육체와 관련된 본능이라면, 초자아는 인간이 사회에서 배우는 규범이 내재된 상징입니다.



프로이트는 초자아에서 생긴 두려움이 죄책감을 만들어낸다고 보았습니다. 초자아는 기본적으로 자아에 대한 검열자나 재판관 역할을 합니다. 비록 양심의 명령이나 도덕적인 자유의지인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사회에서 형성된 초자아가 검열하는 과정입니다. 자아에게 초자아란 부모님이나 선생님의 훈육 등으로 생긴 사회의 질서에 지나지 않습니다.



프로이트 주장에 따르면, 주체 내면에서 도덕적 의지나 양심의 가책이 생기더라도, 그것이 반드시 주체의 자유의지라고 볼 만한 증거가 없습니다. 도덕적 의지나 양심의 가책은 초자아 기능에 불과하며, 초자아란 시대 요구에 따라 자신 마음에 형성된 ‘흔적’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현재 내 마음에 생생하게 울려 퍼지는 양심의 소리란 단지 시대유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현대 뇌신경과학은 프로이트가 주장한 초자아를 ‘신체표지’(somatic marker)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스스로 깨닫지도, 동의하지도 않는 사이에 신체표지라는 무의식은 눈앞에 보이는 것을 조용히 판단합니다. 우리는 그런 판단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조차 거의 알 수 없으며, 그런 영향은 신체표지로 신경계에 남아 있다가 우리가 다른 결정을 내릴 때 다시 중대한 역할을 합니다. 신경과학자 안토니오 다마시오(1944~ )는 신경계에 새겨진 표식이 마치 몸에 새겨진 흔적처럼 의사결정을 내린 사건과 연관되어 기억된다고 말합니다.



신체표지는 비슷한 상황에 직면하거나 그와 관련된 결정을 내릴 때 자신도 모르는 상태로 갑자기 되살아납니다. 우리가 무엇을 선택할지 장단점을 고민해보기도 전에 신체표지는 선택 가능한 목록에서 이미 일부를 제외하지만 우리는 그런 영향을 받았는지조차 전혀 인식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이는 무의식에서 작동되기 때문입니다. 신체표지는 감정적 기억이자 뇌가 과거에 습득한 정보를 재예시화한 것입니다. 이런 감정적 기억은 무의식에 저장되어 작동하다가 비슷한 사건과 맞닥뜨리는 순간에 등장해 우리가 선택할 수 있게 이끕니다. 

 















불교 관점에서도 우리가 실제로 무엇을 느끼는지 혹은 무엇을 행하는지는 상대적으로 덜 중요합니다. 행위를 할 때 어떤 ‘정서 특성’(emotional traits)인지가 더 중요합니다. 느낌이나 행위 자체는 단순히 마음속에서 나중에 일어나는 절차, 즉 반향(反響)일 뿐입니다. 느낌이 매 순간 활발하게 일어나는 반면, ‘정서 특성’은 행위 결과로 만들어져 개인에게 남아 오래 지속됩니다. 정서 특성은 수동적인 형태로 쌓이고 의식적으로 알아차릴 수 없습니다. 신체표지나 정서 특성을 불교 용어로 표현하면 ‘아뢰야식’(阿賴耶識)입니다. 아뢰야식은 행위 결과 내지 흔적이 종자(種子) 형태로 머무르기도 하고, 다시 그 종자가 구체적으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행위로 파생된 에너지가 마음 심층에 쌓여 있다가 때가 되면 다시 표현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뢰야식은 개인 자신이 행한 과거의 업(業)으로부터 만들어질 뿐 아니라, 다른 개인과 더불어 사는 사회 집단을 통해 형성되는 식(識: 세계를 이러저러하게 분별하여 인식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식이 사회 집단을 통해 형성된다는 점은 불교가 객관적인 세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바로 우리 무의식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인간 무의식은 사회에 지배받고 규정되는 수동적인 산물입니다. 권력이 서로 얽힌 사회에서 인간의 무의식이 만들어지며, 인간의 의식이란 단지 그 무의식이 최종적으로 표면화된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인간이란 무엇인지 알고자 한다면, 자신 의식 안을 들여다봐선 알 수 없습니다. 내가 나 자신을 어떤 존재로 자각하고 인식하는지, 내가 나의 삶이 어떻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결단하는 일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떤 의식적인 생각이든 어떤 의지적인 결단이든 그 안에 무의식이 작동하며, 바로 그 작동방식을 밝혀내야만, 생각과 결단의 본질, 한마디로 인간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게 됩니다. 
















이는 불교적 사고가 프로이트적 사고나 뇌신경과학에 매우 가까이 접근하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우리 마음속 밑바닥에 아뢰야식이라 불리는 숨겨진 성향 또는 잠재적 기질이 있고, 다양한 자극을 받아 이 기질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불교는 이미 오래 전에 잘 이해하고 있었던 듯합니다. 신체표지나 정서 특성, 즉 아뢰야식이 일생에 걸쳐 매 순간 퇴적암 지층처럼 쌓여가고, 깊은 곳에 쌓인 지층은 현재의 경험 안에 격하게 분출될 수도, 잠잠하게 드러날 수도 있습니다.



더욱이 불교적인 사고가 인상적인 점은 이러한 시각이 자기(self)에 대한 가변적인 시각, 즉 무아(無我) 사상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입니다. 불교의 자아는 <베다>의 아트만과 달리 고정된 실체가 없습니다. 불교는 영원불멸의 아트만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해왔습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무아란 아트만이 없다는 점을 표명한 것입니다. ‘나’라는 존재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흩어지고 모이는 임시 상태일 뿐입니다. 어떤 신체표지나 정서 특성이 심층에 내재하는 동안, 개인은 저마다 독특한 인성을 갖게 됩니다. 경험적이고 습관적인 반응을 결정하는 아뢰야식은 독특한 경험을 겪고 긴 시간에 걸쳐 축적되면서 독자적인 형태로 발달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경험을 통해 환경에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배우고, 긴 시간에 걸쳐 퇴적된 잠재 성향은 일련의 습관을 형성합니다. 이렇게 학습된 반응에 따라 우리는 순간순간 적절한 방식으로 새롭게 반응합니다. 

















불교는 변하지 않는 단일한 자아는 없으며, 우리는 자신 뜻대로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나의 신체나 느낌, 생각이나 의지, 인식 같은 그 모든 것은 처음부터 나의 본질로 정해진 것이 아니라, 나의 유전적 조건이나 나를 둘러싼 사회 문화적인, 자연적인 환경에 따라 형성됩니다. 따라서 나는 환경 변화에 따라 항상 바뀌어갈 수 있는 그런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그 어느 것도 절대적으로 나 또는 나의 것이라고 집착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와 같이 집착할만한 자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깨달음이 바로 해탈로 나아가는 지름길이라고 불교는 말합니다. 



거의 모든 철학과 종교가 한편으로는 인간이 구원되어야 할 영원한 자아(혹은 영혼)를 갖고 있다고 가르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사랑과 관용이라는 이타성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자아를 갖는 한 이기성은 필연입니다. 그래서 예로부로 철학의 관심은 ‘존재론과 윤리학은 서로 양립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에 집중되어 왔지만, 적어도 불교에 있어서 이는 말장난에 지나지 않습니다. 세계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삶의 방식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신체가 갖는 유사성이나 연속성을 통해 ‘나’라는 존재에 동일성이 부여된다고 생각하고 무아를 부정하곤 합니다. 하지만 다음 불교 이야기는 우리가 무아를 깨닫는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멀리 가야만 하는 심부름 중에 버려진 집에서 혼자 쉬고 있습니다. 그런데 밤중에 귀신이 송장 하나를 메고 와서는 그의 앞에 던집니다. 이내 따라온 다른 귀신이 먼저 온 귀신에게 따집니다. ‘이 시체는 내 것인데 어째서 네가 메고 왔느냐?’ 하니, 먼저 온 귀신이 답하기를 ‘이것은 내 것이므로 내가 메고 왔다’ 하였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온 귀신이 말하기를 ‘이 시체는 실로 내가 메고 왔다’고 하며 마침내 두 귀신이 서로 시체의 팔을 하나씩 잡고 다투다가 먼저 온 귀신이 제안했습니다. ‘여기 인간이 있으니 그에게 물어보자.’ 이 말을 들은 나중에 온 귀신이 물었습니다. ‘이 시체는 누가 메고 왔는가?’


그 사람이 생각하기를 ‘이 두 귀신은 힘이 센데, 사실대로 말해도 난 죽게 될 것이요. 거짓을 말해도 죽게 될 것이다. 어차피 죽게 될 것이라면 거짓말을 해서 무엇하랴’하여 사실대로 ‘그 시체는 먼저 온 귀신이 메고 왔다’고 답했습니다.


그러자 나중에 온 귀신이 화를 내며 그 사람 팔을 뽑아 땅에 던져 버리니, 먼저 온 귀신이 시체에서 팔 하나를 뽑아다가 그에게 붙여주어 다시 멀쩡하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두 팔, 두 다리, 머리, 허리 등 온몸을 모두 시체의 것과 바꿔놓은 뒤 두 귀신은 뽑아버린 사람의 몸을 다 먹고 입을 닦으면서 어디론가 가 버렸습니다.


이 때 그 사람은 생각했습니다. ‘나는 지금 어머니가 낳아주신 몸을 몽땅 두 귀신에게 먹히고, 내 몸은 전부 시체의 것으로 되었으니, 나는 지금 몸이 있는가, 몸이 없는가? 몸이 있다고 하자니 모두 귀신에게 먹혔고, 몸이 없다고 하자니 지금 이렇게 있지 않은가?’


이렇게 걱정하기를 마치 미친 사람 같더니, 이튿날 아침에 길을 떠나 가다가 목적한 국토에 이르렀는데 불탑과 스님들이 있었습니다. 그는 찾아가서 다른 말은 하지 않고 오직 ‘자신 몸이 있는가, 없는가?’만을 물었습니다. 비구들이 도리어 ‘그대는 누구인가?’라고 물으니, 그는 ‘나도 사람인지 아닌지 모르겠소’라고 답하면서 지난 일을 자세하게 이야기했습니다.


비구들은 그 사람이 무아(無我)의 도리를 잘 알아서 제도하기 쉬울 것이라 생각하고 그에게 말했습니다. ‘그대 몸은 본래부터 항상 ’나‘가 없었다.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다만 사대육신(四大六身: 두 팔, 두 다리, 머리, 몸뚱이 등 온몸을 이르는 말)이 인연(因緣)으로 화합하기에 내 몸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니, 그대 본래의 몸이 지금의 것과 다름이 없다.’ 비구들이 제도해 주니, 그 사람은 도를 닦아 번뇌를 끊고 곧 아라한(온갖 번뇌를 끊고, 이치를 바로 깨달아 세상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성자)이 되었습니다. .

















이와 같은 비유는 불교의 허황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과학에서도 이와 유사하게 설명합니다. 인간은 엄청난 양의 몸 원자를 항상 바닥에 흘리고 다니며 새롭게 만듭니다. 원자와 세포 관점에서 보면, 인간 몸의 90퍼센트는 1년마다 새로운 것으로 대체되고, 대개 5년이 지나면 몸 대부분 전체가 완전히 교체됩니다(뇌와 심장, 수정체 일부는 예외입니다).



대부분 인간 세포는 7~10년 사이에 대체됩니다. 심장은 매년 18퍼센트 정도가 재생된다는 사실을 미루어 볼 때, 우리 심장 대부분은 다섯 살이 채 안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입속 미각세포 수명은 열흘이고 피부세포의 대체주기는 39일입니다. 간은 1년에서 길면 2년마다 완전히 새로운 간으로 대체됩니다. 우리 몸 뼈 전체 생명 주기는 평균 10년 정도입니다. 뇌의 신경세포는 대개 신생아 때 생산되지만, 뉴런이 대내 피질에서 새롭게 나타납니다. 우리 몸 조직은 갓 태어난 세포와 영구적인 세포 그리고 죽어가는 세포가 뒤범벅된 잡동사니인데, 그 갓 태어난 새로운 세포가 비교적 많은 편입니다.



원자가 새롭게 교체되는 주기는 세포보다 훨씬 더 짧습니다. 현재 우리 몸에 있는 나트륨 원자 절반은 1~2주 안에 다른 나트륨 원자로 대체됩니다. 수소와 인도 예외가 아닙니다. 심지어 탄소 원자들도 한두 달 안에 절반은 사라집니다. 1년 안에 우리 몸 원자의 약 98퍼센트는 공기와 음식, 물에서 섭취한 다른 원자로 대체됩니다. 

















그렇다면 신체는 5년마다 거의 전부 바뀌는데 과거의 내가 현재 나와 같다고 볼 수 있을까요? 내가 ‘나’일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건 기억입니다. 이러한 ‘심리적 연속성’ 이론은 직관적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딱정벌레의 몸으로 깨어나는 카프카(1883~1924)의 소설 『변신』(1915) 같은 이야기를 우리가 바로 이해할 수 있는 이유는 ‘심리적 연속성’ 이론이 반영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딱정벌레가 바로 그 남자라고 인식하는데, 그의 정신이 딱정벌레 속에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육체적 지속성이 아니라 정신적 지속성이 나를 ‘나’로 규정합니다. 

















내가 누구인지 질문의 답은 주로 내가 무엇을 학습하고 기억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기억은 테이프 녹음기나 비디오카메라처럼 작동하지 않습니다. 기억의 기능은 사건을 나중에 살피기 위해 붙잡아두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회상은 가용한 조각들을 모아 일관된 전체를 구성하는 작업입니다. 일반적으로 기억은 우리가 마주치는 것을 곧이곧대로 기록하여 보존하는 방식이 아니라 가치 있다고 여기는 관심사에 따라 의미를 추출하는 방식으로 기록합니다. 따라서 기억이나 회상은 나의 관심사가 무엇이냐에 달려있습니다. 관심사는 우리가 나이를 먹어가는 동안 다시 새롭게 바뀝니다. 이렇게 본다면, 나는 십년 전의 나와 똑 같은 사람일까요?
















개인 기억 뿐 아니라 집단 기억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의미 있고 가치 있다고 믿는 것만 기억합니다. 예컨대 우리는 국가 전사자를 호국영령으로 기림으로써 전사자만 추모하지 탈영병은 기억하지 않습니다. ‘무명용사의 탑’이나 ‘꺼지지 않는 불꽃’에서 볼 수 있듯이 ‘국가를 위해 희생한 자들’의 죽음을 특권화 하는 20세기 국민국가 제의(祭儀)는 집단 기억 문화에서 중심을 차지합니다. 



반면에 독일은 탈영병을 ‘반민족적 범죄를 저지른 배신자‘가 아니라 ’반인도적 범죄에 저항한 휴머니스트‘로 기억하기 위해 소박한 수준으로나마 곳곳에 탈영병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전우를 배반하고 조국을 등진 배신자’라는 탈영병에 대한 사회적 통념을 바꾸는 일은 그들에게도 쉽지 않았습니다. 탈영병을 인정하고 이들 명예를 회복시켜주면 다른 군인들의 사기가 떨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2002년 독일 의회는 전시 나치가 탈영병에게 내린 유죄 판결을 무효화한 법안을 통과시킨 덕분에 탈영병을 기리는 기념비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역사학자 임지현(1959~ )은 “당신이 기억하는 역사가 과연 진실“인지 묻습니다. 

 















대개 사람들은 자신 삶을 지배하는 도덕 원칙을 어떤 상황에서 습득했는지 의식적으로 기억하지 못합니다. 우리 성격을 구성하는 성향과 취향 역시 무의식적으로 습득됩니다. 인간의 경험에 관한 상당 부분이 무의식 기억에 남습니다. 결국 과거 사건에 의해 형성되어 우리의 행동과 정신에 영향을 미치는 성향과 습관, 선호가 무의식 기억에 남습니다. 바로 이러한 기억들이 바로 우리가 누구인지 말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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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23-11-14 21: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북다이제스터님 말씀처럼 어쩌면 지금의 우리는 과거의 우리가 그토록 거부하고 부정하던 것들의 흔적에 좌우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미움이 지나치면 사랑이 되는 걸까요, 글을 읽고 나서 ‘나는 꼰대의 그림자‘인가 라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

북다이제스터 2023-11-15 18:31   좋아요 1 | URL
그렇습니다. 내 안의 ‘흔적’을 잘 남겨야 할 뿐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흔적’이 잘 남도록 해야 할 것 같습니다. ^^
 

“자유가 

개인을 고립시키고 불안하며

 무기력한 존재로 만들고 있다.“

- 에리히 프롬




자유(freedom)는 인간에게 ‘개인주의’와 ‘주의주의’(主意主義, voluntarism)라는 개념적 특성이 있기에 가능하다고 가정합니다. 특히 개인이 규제받지 않고 자율적으로 선택한다는 뜻의 ‘주의주의’ 이념을 자유주의 윤리와 정치의 토대로 삼습니다. 정치철학자 페트릭 데닌(1964~ )은 칸트(1724~1804)가 자율성을 본격적으로 고양한 철학자임에 주목합니다. “자유의 근본 문제는 계몽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가 개인 자율성을 전제한 것과 관련이 있다. 자유 문제는 칸트 철학이 악용되었다는 데 있지 않다. 칸트가 개인 자율성을 처음부터 고양한 일이 잘못이었다.” 계몽주의자 칸트는 자유주의 윤리학을 대변하는 철학자 중 가장 유명합니다. 개인으로서 인간 자유와 존엄성을 모토로 하는 자유주의 윤리학의 기초는 칸트의 원자론적 인간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따라서 칸트 윤리학에서 자유란 무엇인지, 어떻게 자유가 가능한지 구체적으로 따져보는 일이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됩니다. 칸트에 따르면, 인간은 윤리적으로 판단하는 상황에서 자신이 갖고 있는 이성의 힘으로 보편적인 도덕법칙을 자유롭게 만들 수 있고 그것을 충실하게 따라야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경우에 인간은 자율적인 주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과제와 씨름하던 칸트는 미궁에 빠지고 맙니다. 자유가 도덕에 있어서 꼭 필요한 전제이긴 하지만 그는 구체적인 사례를 들 수도, 개념적으로 파악할 수도, 이성적으로 통찰할 수도 없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개인 자신이 자유롭게 만들었다고 하는 도덕법칙이 일체의 외적인 압력이나 영향 없이는 만들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의사들은 자신들이 내리는 결정이 지극히 이성적이고 합리적이기에 환자에게 주는 처방은 오로지 환자 병에만 근거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험에서 보여준 뇌 영상 촬영은 의사들이 내리는 처방이 사실 제약회사에서 받은 선물에 쉽게 영향을 받고, 따라서 제약회사 판촉 활동 영향력을 그대로 확인시켜 줍니다. 만약 의사들이 자신은 외부 영향력에서 자유롭다고 여긴다면 이는 자기기만이라고 실험은 밝히고 있습니다. 
















칸트는 인간이 자유로울 수 있다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입증하려고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최후에 깨달은 사실은 자유가 무엇인지 결코 알 수 없다는 결론입니다. 그는 자유를 이론적으로 증명할 수 없었습니다. 다만 자유를 ‘이성의 선험적 사실’로 그냥 받아들입니다. 자유는 윤리학을 위해서라면 무조건 전제되어야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니체는 칸트가 도덕을 증명하려 한 이러한 야망을 가리켜 ‘영혼의 은밀한 농담’이라고 냉소했습니다. 도덕이 공리나 전제를 기초로 증명된 경우가 단 한 번도 없기 때문입니다. 자명한 전제가 없기에 순수이성이 우리 물음에 답을 줄 수 없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감정 없이 이성 혼자서는 경합하는 가치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윤리적 판단에서 감정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사례가 사이코패스입니다. 사이코패스의 문제는 이성의 부재가 아닌 감정의 부재입니다. 이들 뇌는 ‘증오’나 ‘사랑’ 같은 단어를 보통 사람과는 다른 영역에서 처리합니다. 정서를 담당하는 영역이 아니라 오로지 언어만을 담당하는 이성 영역에서 처리합니다. 이 같은 사실을 떠올린다면, 칸트는 우리 모두가 사이코패스가 되길 원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대체 왜 칸트는 자유를 논증조차 할 수 없어 그냥 ‘선험’ 영역으로 넘겨버릴 정도로 자유에 집착했을까요? 그의 무의식에 크게 영향을 끼친 평소 일상생활 때문은 아닐까요? 그의 일상생활 중 매일 규칙적인 산책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는 아울러 부유한 상인들과 주로 어울리며 매일 3시간에서 5시간 동안 그들과 식사를 했습니다. 그가 ‘자유주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부유한 상인과 주로 담소를 나눈 사실은 우연이 아닌 것 같습니다. 자유주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는 현 자유주의 자본주의 시대에 칸트가 가장 유명한 철학자 중 한 명이라는 사실 또한 우연이 아닌 것 같습니다.

















사실 처음으로 주의주의를 분명하게 표명한 사람은 국가를 옹호한 철학자 토머스 홉스(1588~1779)입니다. 홉스에 따르면 인간은 근본적으로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상태로 존재합니다. 이런 취약한 조건에서 삶이 “추하고 잔인하고 짧다”라는 사실을 인식한 사람들은 합리적인 자기이익에 따라 국가로부터 보호와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 자신 자연권 대부분을 포기합니다. 그 정당성은 사람들이 자율적으로 선택한 계약에서 생겨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율적이고 이성적으로 선택했다고 생각한 일도, 무의식 상태에서 내린 잘못된 결정일 수 있습니다. 예컨대, 경제학자들은 경제학이 인간을 그저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개별 행위자로 기술할 뿐이라고 주장하지만, 실은 학생에게 매우 나쁜 영향을 끼쳐 그들이 더 이기적으로 행동하게 만듭니다. 경제학자 로버트 프랭크(1945~ )가 수행한 실험은 경제학과 학생이 다른 학과 학생보다 “경제학에서 널리 사용되는 자기 이익 모델이라는 소리를 자꾸 듣다보면 실제로도 자기 이익 방식으로 행동하는 경향이 커진다”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기주의 개념은 교육으로 학습되는 개념입니다. 



이기주의는 자연스럽게 여러 가지 꼼수와 잔머리, 심지어 거짓말까지로 확장됩니다. 프랭크가 했던 또 다른 실험에서는, 공동 구매의 경우에도 친구들을 희생시키면서 업자로부터 상납 받을 가능성이 경제학과 학생 집단에서 현저히 더 높게 나타났습니다. “경제학을 학습할수록 이기주의에 입각한 행동이 만사에 깊숙이 침투하게 되며, 이기주의는 대체로 적절한 것이고 심지어 바람직한 것이기도 하다는 믿음을 강화한다. 그리고 이 믿음은 다시 이기주의를 떳떳이 과시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프랭크의 여러 실험은 경제학을 배우는 과정의 학생에게 그러한 성향이 더욱 강화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경제학과 한 학년 전체를 조사했습니다. 그중 절반은 게임 이론 전문가(게임 이론 자체가 이기주의라는 동기를 전제하여 이론이 수립된 학문입니다)에게 미시 경제학을 배웠으며, 다른 절반은 공산주의 중국 경제 발전을 연구하는 전문가에게 미시 경제학을 배웠습니다. 학기가 끝날 무렵 게임 이론가에게 배운 학생이 다른 쪽 집단 학생보다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성향이 더 많아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자유주의의 개념 확산은 이기주의나 개인주의 이론이 점점 더 현실이 되어가는 세상을 만들어냅니다. 오늘날 자유주의 체제에서 사람들은 갈수록 자율적으로 살아가며, 이러한 상태에서는 국가 역할을 확대하여 무질서를 통제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개인의 자율성을 더욱 보호하려면 국가 역할이 더 확대하고 실정법을 통해 개인을 규제해야 할 필요성이 더욱 커집니다. 자유주의는 결국 두 가지 요소, 즉 해방된 개인과 통제하는 국가뿐입니다. 홉스는 『리바이던』(1651)에서 이 두 실체를 완벽하게 묘사했습니다. 국가는 오로지 자율적인 개인들로만 구성되고, 개인들은 국가에 의해 ‘억제’됩니다. 

 













따라서 자유주의 사회에서 개인과 국가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었기에 과거 전통을 존중하거나 미래 세대에 대한 의무가 무시되고, 즉각적인 자유 추구만이 대세가 됩니다. 자녀는 갈수록 부모 개인 자유를 제한하는 원인으로 간주되어 원하면 낙태를 할 수 있는 자유주의 사상이 강화됩니다. 그 결과 출생률이 감소합니다. 경제 영역에서는 대개 당장 이익을 내라는 끊임없는 요구에 쫓겨 단기 수익만 올리게 되어 장기 투자를 어렵게 합니다. 그리고 시장에서 넘쳐나는 상품에 감탄할 뿐이지, 지구의 풍부한 자원이 단기간 내 고갈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갖지 못합니다. 설령 훗날 우리 후손에게 식수와 같은 귀중한 자원이 부족해질지라도 개의치 않습니다. 대형 마트에서 보게 되는 그 엄청나게 많은 상품이 과연 다 팔릴지, 또한 다 팔리지 않은 상품은 과연 어디로 갈지 우리는 궁금해 하지 않습니다. 이런 활동을 규제하는 일은 실정법을 시행하는 국가 소관으로 치부되지 교양 있는 개인 일로 여겨지지 않습니다. 이렇게 공공의 선(common good)에 무관심한 사람들의 유일한 목표가 바로 ‘자유’(freedom)입니다.
















계몽주의 시대부터 시작해 제퍼슨식 민주주의를 확립하고 프랑스의 실존주의 운동을 거치면서 우리는 교회와 사회적 관습에 방해받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투쟁해왔습니다. 이제 그러한 목표는 서구 사회에선 거의 달성되었기에 사람들은 유례없는 자유(freedom)를 만끽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상가가 즐겨 말하듯 자유는 자유롭지 못합니다. 만사가 순조로울 때 자유로운 개인은 바람직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개인주의라는 의지할 곳 없는 환경에서 겪게 되는 개인 실패나 좌절은 조금씩 쌓여 결국 우울증의 원인이 됩니다.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만(1942~ )은 현대 사회에서 우울증이 증가한 원인을 설명합니다. “단극성 우울증(조증이 동반되지 않은 우울증)은 ‘내’가 좌절하는 질환인데, 우리는 끊임없이 ‘나’를 통해 모든 것을 보라고 배웠다. 과거에 믿음과 공동체를 강조하는 문화는 때때로 숨이 막힐 때도 있었지만 개인 실패를 더 큰 환경 내 사소한 일로 간주할 수 있게 했다. 현재 미국과 서구 유럽에서 ‘나’는 사실상 사건을 바라보는 거의 유일한 렌즈다. 개인주의 팽배로 우리는 자신 실패를 대단히 중요하게 여기게 되었다. 따라서 실패할 경우 우울증에 걸리기가 더 쉬워졌다.”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사회주의에서 자유주의로 전환한 러시아는 자유가 무엇인지 배우기 시작했으나, 그 자유는 그들이 기대한 바와는 달랐습니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1948~ )는 『세컨드핸드 타임』(2013)에서 소련 붕괴 후 러시아인들이 자유를 어떻게 여기는지 묘사하고 있습니다. “우리 세대는 자유를 단순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세월이 얼마 흐르지 않은 지금 우린 자유라는 무거운 짐 때문에 등이 굽고 말았다. 아무도 우리에게 자유가 무엇인지 가르쳐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전에 우리가 배운 것이라고는 자유를 얻기 위해 죽는 방법밖에 몰랐다. 우리는 우리 이상을 위해 죽음도 불사할 수 있었다. 지금의 자유란 ‘위대한 소비’의 등장이다. 인간 삶 속에 감춰져 있던, 우리가 그동안 대략적으로만 상상하던 욕구와 본능이라는 어둠의 왕.” 

















러시아 사람들이 ‘진정한’ 자유를 배우기 위해서는 앞으로 더 오랜 세월이 걸릴지 모릅니다. 사실 그들은 공산화되기 이전부터 마을 재산을 모두 평등하게 나눠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상업과 사유제를 경시하며, 혼자만 이익을 얻겠단 생각이 없었습니다. 모두 토지를 공유하고 함께 농사를 지었습니다. 세금도 마을 단위로 냈습니다. 돈 있는 사람이 조금 더 내서 가난한 집이 조금 덜 내도록 했습니다. 소련 붕괴 후 서방에서 흘러들어 온 자유주의는 모두 함께 살아가는데 익숙한 러시아 농촌 공동체에는 처음부터 말도 안 되는 사상이었다. 















칸트는 우리에게 중요한 문제 하나, 즉 자유의 문제를 남겨놓았습니다. 이 세계에서 어떻게 자유가 가능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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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혁명은 자유와 평등, 박애라는 세 가지 이상(理想)을 내세웠습니다. 프랑스가 의도했던 박애는 관용의 또 다른 이름이었습니다. 그 후 해결되지 않은 문제는 자유와 평등이라는 가치가 서로 모순되지 않느냐는 점입니다. 자유가 너무 지나치면 평등을 침해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그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에 못지않게 중대한 문제는 박애가 평등과 이율배반적인 관계라는 점입니다. 지나친 관용은 평등에 나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1990년대 미국인들은 50년대 심지어 70년대에 비해 훨씬 더 관용적인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미국인들은 해가 갈수록 서로 더욱 불평등해졌습니다. 관용이 고무되면 평등 가치는 더욱 쇠퇴하는 현상을 보입니다. 관용은 개인주의에 기반하기 때문입니다.

















전형적인 관용주의자는 어떤 모습일까요? 그는 놀랄 만큼 독립적이고 개인주의적입니다. 관용주의자는 개인 스스로 내린 결정을 존중합니다. 그들은 자기가 싫어할 수도 있는 사람들에게 – 적어도 겉으로는 – 관용을 보이고 그 어떤 판단도 내리지 않습니다. 그들은 모든 사람이 선택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관용주의자는 사람마다 가치관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어서, 논란의 여지가 될 도덕적 담론이나 논쟁에는 거의 시간을 낭비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어떤 것도 주장하지도 않고 성급하게 토론하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단지 자기 견해를 말하고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을 들을 뿐입니다. 다른 누군가를 설득하려는 노력이 아무짝에도 쓸모없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저 ‘괜찮아, 우리는 단지 서로 의견이 다를 뿐이야. 그리고 우리는 굳이 의견 일치를 볼 필요가 없어’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논쟁에서 이기거나 상대방이 틀렸다고 스스로 깨닫게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 채 그 모든 것을 그냥 내버려둡니다.



이처럼 관용은 개인주의적 자유주의의 정치 철학입니다. 정부는 각 시민이 지지하는 도덕적 관점이나 종교적 관점에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발상입니다. 삶을 살아가는 최선의 방법이 무엇인지 사람들이 동의하지 않기에 정부는 좋은 삶이 무엇인지 법률로 단정해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 대신 정부는 각 개인을 자유롭고 독립적인 자아로서 존중하고 각자의 가치관과 목적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제공해야 합니다. 이러한 자유주의는 관용을 강조하고 개인 권리를 존중하는 사상적 전통, 즉 존 로크와 임마뉴엘 칸트에서부터 존 스튜어트 밀과 존 롤스에 이르는 사상적 전통을 뜻합니다. 우리가 하는 토론이나 논쟁 대부분은 이 범위 안에서 이뤄집니다.

















각 개인은 사회의 문화와 밀접하게 얽혀 있는데, 우리는 각자 자유롭고 독립적인 자아로서 남을 생각하는데 자신만의 가치관과 목적을 가질 수 있을까요? 이 문제에 대해 칸트는 타인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고 배려하는 ‘양심’에서 찾았습니다. 그럼에도 칸트의 선한 양심은 ‘자유로운 자아’를 전제합니다.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1906~1995)는 자유를 양심의 원천으로 보는 칸트 견해에 반대했습니다. 칸트가 언급한 온전한 자유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문화는 항상 나의 자유를 확대하거나 제한합니다. 레비나스가 양심의 원천은 자유가 아니라고 말한 것은 수긍이 됩니다. 그렇지만,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타인에 대한 책임 원천이 타인 상황에 대한 공감과 배려라고 주장합니다. 내 주변 사람들이 고통받고 어렵게 사는 모습을 보고 이들 짐을 나누는 일이 책임의 출발이라고 그는 말합니다.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1929~ ) 역시 사회 구성원이 노력하면 사회가 바람직하게 변화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사람들이 서로 대화를 나눌 때 이기적인 목표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정보를 공유하고 공동 이익을 함께 추구하면, 사회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레비나스나 하버마스가 언급한 공감과 배려, 이해 또한 사회와 문화에 지배당하는 나의 감정에서 시작한다는 점에서 관용이나 양심과 크게 다를 바가 없습니다.

















반면 윤리학자 라인홀드 니버(1892~1971)는 개인 도덕성이 집단에는 투영되지 않는다고 보며, 그 이유로 집단에 만연한 ‘이기성’을 지목했습니다. 여기서 집단은 사회나 국가, 민족, 계층 등 모든 것을 포괄합니다. 니버는 개인들의 도덕성으로 부도덕한 집단이 개선될 것을 기대하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라고 단언합니다. 따라서 톨스토이 류(類)의 개인 도덕성 함양으로 사회가 개혁되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관용 관련해서 우리는 혹시 불교에서 무엇인가 배울점이 있지 않을까요? 불교에서 자비는 관용이나 연민, 동정과는 거리가 멉니다. 관용이나 동정, 연민에는 주는 자와 받는 자의 비대칭성이, 즉 제거할 수 없는 지위 차이가 전제되어 있습니다. 이방인에 대한 환대 또한 그렇습니다. 갈 곳 없는 이주자, 쫒기는 이방인에게 내미는 환대 손길은 그를 손님으로 맞이하는 주인 행세입니다. 예컨대, 부자가 자신을 동정하는 가난한 자의 뜻을 감사하게 받아들일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화를 내지 않으면 다행입니다. 따라서 동정이나 환대는 평등과는 거리가 멉니다.



달라이 라마는 “모든 중생이 나와 마찬가지로 기쁨을 얻고자 하고 고통을 피하고자 함을 인식하는 것”에서 평등한 자비심이 나온다고 말합니다. 연민의 감정이 아니라 중생에 대한 ‘인식’이 오히려 강조되어 있습니다. 평등한 자비심은 모든 중생이 부처가 될 수 있는 잠재 능력이 있다는 ‘평등 인식’에서 나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모든 중생은 ‘부처’라는 관점에서 평등합니다. 부처에게 높고 낮음과 멀고 가까움이 없습니다. 자비란 모든 중생에 대해서 부처로서 평등하게 대하는 것입니다. 친하든 낯설든, 멀든 가깝든, 심지어 친구든 적이든 모두가 부처라면, 모두를 부처로서 평등하게 존중하고 도와주는 일이 바로 잠재적으로 부처인 내가 마땅히 행할 바입니다. 자비란 스스로가 부처로서, 자신과 만나는 모든 잠재적 부처들에 대해 갖는 마음이고, 그들에 대해 행하는 바입니다. 다른 사람을 평등하게 대하는 일은 나만 그렇게 한다고 사회가 바뀌는 일이 아닐 뿐더러 지위 차이가 없는 ‘평등 인식’은 개인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건 사회 문화 자체가 바뀌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현대 사회는 개인이 문화를 넘어서 자율적으로 행동하길 요구합니다.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개인은 자신 생각을 바꾸어 해결할 수 있다고 믿어지기에, 그렇게 하지 못한 사람은 비난을 받습니다. 하지만 문화는 집단이나 사회 구조에 따라 결정됩니다. 그러므로 개인 노력만으로는 문화를 극복하기란 어렵습니다. 4세기 불교학자인 세친에 따르면, 사람이 어떠한 유형의 유아론(有我論)을 믿던지, 즉 무아(無我)를 받아들이지 않는 한 결코 해탈에 이를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무아인 개인은 문화에 영향받아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합니다. 이러한 문화적인 정체성은 개인의 심리적 안정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개인에게 그저 관용으로 문화를 극복하라고 요구한다면, 우리는 계속해서 마음이 불편할 수밖에 없으며, 참된 평등에서 점차 멀어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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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3-11-08 17: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개개인의 자율적 행동만으로 사회가 바뀔 수 있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아직도 하는 분들이 있을까요? 리뷰글을 읽다보니 ‘개인들의 도덕성으로 부도덕한 집단이 개선될 것을 기대하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라는 글이 보입니다. 그렇습니다. 범죄혐의자를 방탄하는 그런 정당을 보고 있지 않나요? ㅠㅠ 한번 사기꾼은 영원한 사기꾼입니다.

북다이제스터 2023-11-09 14:58   좋아요 0 | URL
넵, 개인이 아니라 사회 구조가 바뀌어야 사회가 바뀔 것 같습니다. ^^

Redman 2023-11-08 18: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무아인 개인‘이라는 표현이 성립하나요?? 무아는 개인이라는 것도 , 자신의 정체성이라는 것도 모두 소멸시키는 절대적 무의 개념이라 저도 <인도불교철학>에서 읽었던 거 같은데 잘못 알고 있던 걸까요? ㅋㅋ

북다이제스터 2023-11-09 15:25   좋아요 0 | URL
무아를 이해하면 해탈하여 열반에 들 수 있다고 하는 것보면, 아직 열반에 들지 못한 전 여전히 무아를 깨닫지 못한 것 같습니다. ㅋㅋ
무아는 없을 무 때문에 소멸로 이해할 수도 있지만, 끝없는 변화로도 이해할 수 있다고 나름 생각하고 있습니다. ^^
 


유럽 중세 후기가 되자 신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새로운 계급, 곧 상인 계층이 번성했습니다. 상인은 당시 영주와 성직자, 기사, 농노로 이어지는 봉건제 피라미드에서 설 자리가 없었습니다. 상인은 농노를 자유민이라고 이름 붙인 임금노동자로 삼기 위해 영주와 대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상인은 또한 자신이 번 재산을 지키기 위해 사회가 안정되길, 소유권이 보장되길 원했습니다. 그들은 돈이 넘쳤는데, 세입을 늘리는 데 한계가 있던 국가와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습니다. 왕은 상인들에게 세금을 늘려 국가 권력을 강화할 수 있었습니다. 상인과 국가가 함께 공생하며 발전하는 체계가 만들어졌습니다. 



신에게 사랑받지 못한 상인 계급은 자신들 위상을 강화할 방법을 찾았습니다. 당시 유럽보다 모든 면에서 우월했던 이슬람 세계가 상인들 소망을 이룰 방안이 되었습니다. 상인들은 십자군 전쟁 원정이나 스페인의 레콩키스타(Reconquista, 이슬람교 우마이야 왕조가 정복한 이베리아 영토를 가톨릭 국가 스페인이 다시 회복한 사건)로 이슬람 세계가 그동안 연구한 그리스-로마 문명을 접하게 되고 기독교 이전 고전 사상에 탐닉하게 되었습니다. 그 사상은 중세 신학자들이 보잘것없고 덧없는 존재로 여겼던 바로 ‘인간’입니다. 무역이 발달했던 고대 그리스인에게 인간은 독립적이고 지적이며, 모험심이 강한 능력 있는 존재였습니다. 중세 상인들에게 이러한 인간형은 전형적으로 돈을 잘 버는 바로 자신들과 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르네상스 시기(14~16세기) 상인 계급은 인본주의라는 뿌리를 고대 그리스에서 캐어내 자본주의에 이식했습니다. 이는 인간의 가치와 능력을 인정하며 상인의 경제적 역할을 강조하는 사상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스피노자는 인간이 자신만의 기준, 즉 인본주의로 세계를 판단하기에, 예컨대 ‘식물과 동물은 인간에게 양분을 제공하기 위해 존재한다’라는 식의 목적론 세계관을 가지게 된다고 비판합니다. 철학자 볼테르(1694-1778) 또한 자신의 풍자 소설인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1759)에서 목적론적 세계관을 꼬집습니다. 사람들은 “모든 것은 목적을 가지고 있고, 그 목적이란 가장 좋은 목적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일례로 코는 안경을 얹기 위해 만들어졌고, 그래서 우리는 안경을 씁니다. 다리는 양말을 신기 위해 만들어졌고, 그래서 우리는 양말을 신습니다. 돌은 원래 성을 짓는 석재로 쓰이기 위해 생성되었습니다. 또 돼지는 식용으로 쓰이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1년 내내 돼지고기를 먹습니다.” 

 
















사람들은 모든 자연물이 어떤 목적을 위해 작용한다고 추측합니다. 하지만 자연은 아무런 목적이 없으며, 모든 목적인(目的因)은 인간이 만들어 낸 허구에 불과합니다. 목적론 사고 속에서 사물은 언제나 하나의 고정된 본질만 가지며, 그러한 본질을 향해 나아가는 미완(未完)의 존재로 간주됩니다. 사물 변화는 오직 본질을 실현하기 위한 과정으로 설명되며, 이에서 벗어난 것은 비본질적이고 비정상적일 뿐입니다. 이러한 목적론 사고가 갖는 위험성은 ‘차별주의’ 논리로 쉽게 전용됩니다. 스피노자는 이러한 차별주의적 목적론식 사고 바탕이 다름 아닌 ‘인본주의’ 사고임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우리가 인간인 이상 애초부터 인본주의 사고에서 벗어날 순 없지 않을까요? 하지만 스피노자는 우리가 차별주의 사고에서 벗어나 그 ‘외부’를 사유할 수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예컨대 현재 우리는 남자와 여자를 평등한 이분법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이분법은 서양 역사에서 최근 들어 보편화된 생각입니다. 고대부터 르네상스시기에 이르기까지 인간 분류 방식은 하위 속물에서 상위 이상형 상태까지 위계적 연속체를 이룬다는 ‘단성 모델’이 선호되었습니다(단성 모델에서 남성은 더 열정적이기에 단일 사다리의 맨 위에 있고, 여성은 힘이 상대적으로 약하기에 단일 사다리 밑에 위치합니다). 물론 그때에도 인간을 크게 여자와 남자 두 무리로 분류할 수 있음을 알고 있었지만, 이상적인 형태는 남성 단 하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과거부터 계속되어 온 여성 억압의 원인을 이해하려면 범주의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자연은 외부에 분명히 존재하지만, 우리는 범주를 통해서 자연을 차별적으로 이해합니다. 이 점을 잘 알면서도 사람들은 어떠한 범주가 너무나 명확해서 시간과 문화를 초월해서 절대 변하지 않을 것으로 여깁니다. 인도의 승려로서 대승불교의 교리를 체계화하는 데 크게 기여한 용수(龍樹, 150?~250?)는 말[言]이 의미하는 그대로 실재도 그렇다고 오인하는 일을 ‘희론’(戱論: 부질없이 희롱하는 아무 뜻도 이익도 없는 말)이라고 하였습니다. 사실, 이것과 저것의 차이점과 유사점을 구분하여 분류하는 일은 사물 그 자체와 무관하게 ‘말의 차이’ 또는 ‘개념 차이’에 따라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말에 따라 보이는 세상도 달라집니다. 우리 현실에서 무엇인가에 이름을 붙이는 순간 그것은 ‘이름’이 아닙니다. 이름을 붙인 이후에는 이름 그대로의 확고부동한 차별적 ‘진실’로 탈바꿈되고 맙니다. 

















장자(BC 369?~286) 역시 사람들이 사물을 분절하고 이름을 붙이고 정돈하는 방식 자체에 회의의 시선을 던졌습니다. 분류의 다양성 같은 분류 문제에 부딪쳤을 때 겪는 어려움이 시사하듯, 장자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세계’란 사실 인간이 자신의 그물을 던져 만들어낸 매우 인간 중심적 사고라고 봅니다. 인간은 그렇게 형성된 ‘세계’에서 살아가며, 각 시대와 문화, 입장, 편견 하에서 그것을 ‘상식’으로 받아들이고 살아갑니다. 게다가 이런 주관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자신이 만든 세계에 갖가지 가치를 투영해 사물들을 위계화하고 온갖 형태의 ‘시비를 가리고자’ 합니다. 장자는 기존 인식과 가치 전체에 매우 급진적인 비판을 가합니다. 이러한 상황을 넘고 해방되어 세계를 바라보고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도그마를 경계하며, 각종 도그마에서 벗어나는 도(道)를 추구해야 한다고 장자는 말합니다. 
















서양 철학사에서도 어떤 것들이 이름을 얻기 전까지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유명론’(唯名論, nominalism) 사상이 있습니다. 이 사상은 정의나 향수, 무한, 사랑, 죄 같은 추상적인 개념이 누군가가 그것에 이름을 붙일 때 존재하기 시작했다고 봅니다. 이름으로 불리는 순간 개념은 현실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전쟁이나 휴전, 파산, 사랑, 순수, 죄책감을 선언할 수 있고, 그렇게 함으로써 사람들의 삶을 바꿔놓을 수 있습니다. 이렇듯 아이디어를 상상의 영역에서 세상의 영역으로 끌어오는 이름 자체는 엄청난 힘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명론에 따르면, 이름이 존재하기 전까지 개념들은 대체로 불활성 상태에 있습니다. 

















유명론은 특히 유럽 중세 철학자 피에르 아벨라르(1079~1142)와 함께 등장했습니다. 아벨라르는 개념이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논리나 문법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아벨라르는 아리스토텔레스와는 달리 ‘존재와 사유의 일치’라는 서구 사상의 대전제에서 벗어났습니다. 그에게 개념은 논리학이나 언어학의 대상이지 존재론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개념에 존재론적 함의를 부여할 수는 있습니다. 예컨대 개념에 대한 탐구를 통해 우리는 감각으로 지각할 수 없는 많은 것(예컨대 관계, 집합, 수 등)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다만 아벨라르는 이런 존재에 플라톤이 말한 실재성을 부여하는 것을 단호하게 거부했습니다. 



신학자 윌리엄 오컴(1287~1347)은 논리학에서 다루는 개념은 더 이상 실재하지 않는다고 더 멀리 밀고 나갔습니다. 그렇다고 그 개념이 무의미하다거나 무가치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명제, 추론 형식, 종과 유 같은 개념은 여전히 중요하며, 인간 사유의 고유한 성취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객관적인 실재가 아닙니다. 객관적 진리와 논리적 타당성은 명확히 구분되어야 합니다. 오컴이 이렇게 생각한 데는 깊은 뜻이 있습니다. 만일 개념이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식을 위해 동원되는 추상물이라면, 인식은 개념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을 통해서 ‘구성’되는 것입니다. 이론적 존재는 발견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론적 존재는 우리가 대상을 합리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 동원하는 고안물이며, 인식이란 이 고안물을 통해 경험을 구성하는 일입니다. 달리 말해, 인식이란 세계를 그대로 표상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현상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그것을 구성하는 것입니다. 
















대상을 지칭하는 단어가 단순히 하나의 명사라고 해서 그 대상이 하나일거라고 착각해선 안 됩니다. 예컨대 명사 ‘정신’이 있기에 그 명사가 표현하는 대상이 한 가지일 거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만약 그렇게 생각한다면 우리는 둘 중 한 가지 어리석음을 범하게 됩니다. 하나는 정신이 곧 뇌라고 결론 내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뇌는 질량과 부피를 갖는 반면, 생각은 둘 중 어느 쪽도 갖지 않기에 이 발상은 맞지 않습니다. 혹은 정신이 분명히 어떤 비물질적인 실체, 혼이나 유령이라고 잘못된 결론을 내리는 것입니다. 일단 정신이 결코 단 하나의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만 깨달으면 이런 얼토당토않은 결론을 내리는 상황을 피할 수 있습니다. 무언가가 정신을 갖고 있다는 것은, 그것이 원하고 욕망하고 이해하고 생각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그 모든 일을 하기에 인간에게 정신이 있다고 말합니다. 진짜 정신이 무엇인지 아직 알 수는 없지만, ‘범주의 오류에 빠지지 말라’는 교훈은 언어의 속성과 세계의 속성의 혼동을 막아주는 유용한 안내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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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환경부에 따르면 중국 경제 성장 때문에 발생하는 생태계 파괴 비용은 국내 총생산의 10퍼센트 내지 12퍼센트에 해당합니다. 곧 국가 경제 성장률과 똑같은 수준입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경제 성장이 만족스러운 삶을 자동으로 만들어낸다면 우리는 지금쯤 낙원에서 살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찔할 정도의 경제 성장은 생태계를 더욱 파괴합니다. 국민 총생산이 마치 ‘국민 삶의 질 총계’나 ‘국민 쾌락의 총계’, ‘국민 행복의 총계’를 의미하는 것처럼 취급되는 경향이 있지만, ‘국민 총생산=국민 오염 생산의 총계’라는 방정식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















예컨대, 기업들은 생수가 깨끗한 물이라고 광고하기에 우리는 생수가 아닌 수돗물을 그냥 마시기 꺼립니다. 그렇다면 과연 생수가 정말로 더 깨끗하고 안전한 물일까요? 화산 활동으로 생성된 현무암의 지반으로 걸러졌다는 둥, 구름까지 뚫고 올라가는 스위스의 명산에서 채취했다는 둥, 숫제 천사의 눈물을 받아왔다는 둥 온갖 이유를 붙인 고급 생수가 고작 세 컵 분량에 5달러가 넘게 팔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경우 수돗물 99퍼센트가 음용 가능할 뿐 아니라, 사실 많은 사람이 생수라고 생각하며 마시는 물은 그냥 수돗물입니다. 병으로 판매되는 물 중 절반 이상이 약간의 처리 과정을 거친 수돗물이며, 양대 생수 브랜드인 펩시의 아쿠아피나와 코카콜라의 다사니는 그저 디트로이트시가 제공하는 물을 한번 걸러서 플라스틱 병에 담아 파는 것에 불과합니다. 병에 들어 있는 물을 생수라고 마실 때마다 우리는 이런 엄청난 사기극에 속는 동시에 거들고 있는 셈입니다. 생수를 구입하면 4.5리터짜리 한 병에 평균적으로 1.5달러를 내게 되는데, 이는 우리가 같은 양의 수돗물을 사용할 때 내는 돈의 2천배에 육박합니다. 이것은 고스란히 경제 ‘성장’에 반영됩니다.



우리는 사실상 거짓말이나 다를 바 없는 무언가에 어마어마한 돈을 쓰는데, 그런 소비를 별개로 보더라도 그 막대한 플라스틱 병 사용으로 인한 환경 파괴가 실로 엄청납니다. 생수 한 잔에는 같은 양의 수돗물에 비해 2천 배나 더 많은 에너지가 소비됩니다. 미국만 놓고 보더라도 플라스틱 생수병의 70퍼센트는 곧장 매립되며, 토양을 오염시키고 물길을 막습니다. 이러한 결과로 캘리포니아와 하와이 사이 어딘가에 텍사스 주의 두 배 정도 크기로 넓은 플라스틱 부유물 ‘섬’이 만들어지고 말았습니다. 

 















물 같은 식품에 대한 수요는 탄력적이지 않습니다. 인간은 아무리 음식이 싸더라도 정해진 음식 양 이상을 먹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사실이 식품 회사들에 의미하는 바는 식품산업 성장률이 인구 증가율(또는 감소율)과 대략 동일할거란 점입니다. 식품 회사들은 그런 미미한 성장률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따라서 맥도날드 같은 회사가 인구 증가율보다 더 빠른 발전을 원할 경우 두 가지 선택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이 똑같은 양의 음식에 돈을 더 많이 쓰도록 하든지 아니면, 실제로 더 많은 음식을 먹게 하는 것입니다. 식품산업은 이 두 가지 전략을 동시에 구사합니다.



세계 경작지에서 한해 생산할 수 있는 총 칼로리는 정해져 있습니다. 가공식품은 과도한 양의 칼로리 에너지를 소비하고 또 낭비합니다. 멕시코인이나 아프리카인처럼 옥수수를 직접 먹으면, 옥수수 안에 있는 모든 에너지를 섭취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옥수수를 소나 닭, 돼지에 먹이면, 에너지 90퍼센트는 잃어버리고 맙니다. 채식주의자들이 ‘음식사슬의 낮은 단계’에 있는 음식을 먹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음식사슬에서 한 단계 올라갈 때마다 음식 에너지 양이 10분의 1로 감소합니다. 한 명이 점심식사로 햄버거 1칼로리를 섭취했다면 옥수수 수만 칼로리를 낭비한 것 있습니다. 그 정도면 굶주리는 수많은 사람 배를 채워줄 수 있습니다. 
















헤겔(1770~1831)의 역사철학은 역사를 자유로운 의식의 진보 과정으로 보는 개념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세계사란 자유의식에 있어서의 진보 과정이며, 우리는 그 과정의 필연성을 인식해야 한다.” 근대 역사철학 자체는 진보라는 이념과 더불어 탄생한 근래의 사상입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세상이 실제보다 이해하기 쉽고 설명하기 쉬우며, 결국 예견하기도 쉽다는 병리적 사고에 빠져있습니다. 적어도 역사에 변증법 같은 어떤 법칙이 있어서, 모순(혹은 대립)을 통해 인류가 고도 사회로 상향 발전한다고 이해합니다. 하지만 세상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무작위적입니다. 















헤겔 사상에 반대했던 철학자 쇼펜하우어(1788~1860)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문명의 진보가 우리 문제를 고치지 못할 것이다. 그러한 진보는 새로운 욕구를 가져다 놓으며, 새로운 욕구와 더불어 새로운 고통과 새로운 형태의 이기심과 부도덕을 가져올 뿐이기 때문이다. 소위 덕목이나 노동에 대한 사랑이나 인내, 절제, 검약은 세련된 이기주의에 불과하다.” 그러면서 그는 성경 한 구절을 인용했습니다.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으니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을 더하느리라.”<잠언 1:18>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1917~2012) 또한 역사는 진보한다고 생각하는 습관적인 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진보는 지속적으로 상향 선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아마도 거대한 재앙 가능성을 동반할지도 모른다고 예측하는 것이 훨씬 올바를 것이다. 더 치명적인 세계대전, 생태학적 재앙, 인간이 더 이상 거주할 수 없는 세계를 만들지도 모르는 기술 등 어떠한 형태로든 나타나리라 생각되는 악몽이 바로 그와 같다. 우리는 지난 묵시록에서 살았던 경험으로 이러한 가능성을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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