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에서 무엇을 들어 낼 것인가 - 세계적 작곡가의 음악 사용 설명서 음악의 글 3
에런 코플런드 지음, 이석호 옮김 / 포노(PHONO)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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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한 책 제목인데, 자꾸 “음악에서 무엇을 ‘덜어’ 낼 것인가”로 읽힌다. 그렇지만, 역자는 원제 <What to ‘Listen for’ in Music>을 “들어 낼~”로 옮긴 것이다. 저자가 클래식 음악을 귀담아 들으라고 강조한 점을 역자가 반영한 것이다. 서문만 읽어도 그 뜻이 짐작된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많은 이들이 그저 감상이라는 욕조 속에 들어앉은 채 소리에 둘러싸인 감각적 차원의 반응에만 안주하고 만다. 하지만 음악에는 질서와 체계가 있음을, 음악은 감각적 호소력뿐만 아니라 지적인 호소력 역시 가지고 있음을 잊어선 안 된다.” “음악을 그저 생각 없이 흘러듣는 대신 정신을 집중하고 들”어야 한다. 그렇게 “듣는다는 것은 그만큼 수고를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는 특권”이다. 따라서 저자는 “듣는 이를 위해 작품 속에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지적하고 그것이 거기에 있는 이유를 알려준다.”


차이코프스키 팬들이 들으면 노발대발 하겠지만, “음악가들이 열이면 열 베토벤이 차이코프스키보다 더 위대한 작곡가”라고 말하는 이유를 이 책을 읽으면 알 수 있다. “차이코프스키가 베토벤보다 이해하기 쉬운 음악을 썼고 음악이 더 간편한 반면, 베토벤이 음악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꼬집어 말하기 쉽지 않을 때가 많다. 차이코프스키 음악처럼 언제 들어도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만 같은 음악은 머지않아 지루한 음악이 되고 만다. 그렇지만 베토벤 음악처럼 들을 때마다 의미가 조금씩 바뀌는 음악은 그만큼 긴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다.” 저자는 음악의 감각적 호소력이 아닌 “머리를 이용해 음악을 듣는 사람은 음악적 재료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관심을 가져야 하며, 선율, 리듬, 화성, 음색을 의식적으로 ‘들어 내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음악의 형식”이며, “곡을 쓴 사람의 생각 흐름을 따라가려면 형식 원칙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라고 말한다.


리듬이 바로 박자라고 잘못 알 정도로 예전 중학교 음악 시간에 배운 짧은 지식만 갖고 저자의 음악 이론을 따라가기 쉽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저자가 음악에서 “들어 낼” 것으로 강조한 점을 남긴다.


작곡가의 음악 창조 과정은 글을 쓰는 작가의 창조 과정과 매우 유사하다. “정작 작곡가들은 세간의 생각만큼 ‘영감’의 문제에 몰두하지 않고, 바로 그 점이 사람들을 당황스럽게 한다. 작곡가에게 글을 쓴다는 것은 생리작용만큼이나 자연스런 일이다. 작곡가는 하나의 악상에서 시작한다. 작곡가는 언제든 생각이 나는 대로 메모를 한다. 그렇게 악상(주제)을 모은다. 이 과정을 피해갈 도리는 없다. 작곡가가 주제를 손에 쥐면, 더불어 그간 공책에 쌓아둔 다른 주제들도 하나하나 살핀다. 작곡가는 수중에 어떤 밑천이 있는지 알고자 함이다. 그러고는 각각의 악상이 움직이는 형식에서 순수한 아름다움을 모색한다. 그러면서 주제가 어딘가 부족함이 보이면 조금씩 매만진다. 이와 동시에 작곡가는 주제에 담긴 감정적 의미를 깨닫는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 주제가 그 자체로 완결성을 지니면 지닐수록 주제를 다양하게 뒤바꿀 가능성을 오히려 줄어든다는 점이다. 주제만 놓고 보면 시시해 보이지만 정작 그 주제를 사용한 작품 전체는 위대한 걸작으로 인정받는 곳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오죽하면 주제가 시시하고 불완전할수록 새로운 의미를 품을 여지가 커진다고까지 말할 수 있을 정도다.” “주제에 살을 붙이는 방법은 최초 주제와 어울릴 법한 다른 악상을 찾는다. 그렇게 찾은 악상은 주제와 비슷한 성격일 수도 있고, 현저하게 다른 성격일 수도 있다.” “가장 힘든 과제는 지금까지 모은 재료들을 하나로 이어붙여 일관성 있는 전체를 만드는 일이다. 작품은 시작, 몸통, 끝이 명확하게 구분되어야 한다. 듣는 이가 세 부분 가운데 어디를 지나고 있는지 분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작곡가의 책무다. 제대로 된 교육과 훈련을 받은 작곡가라면 기본적인 곡의 구조적 얼개 몇 가지는 장사 밑천처럼 가지고 있다. 잘 쓰인 곡은 ‘거대한 라인’이라 부르는 음악의 흐름이 뚜렷하게 느껴진다.”


음악에서 들어 낼 “선율은 마치 끊이지 않는 실타래처럼 곡의 처음부터 끝까지 듣는 이를 이끌어야 한다. 멜로디 라인을 꽉 붙잡은 채로 음악을 들어야 한다는 점을 항상 기억하자. 선율은 잠깐 동안 자취를 감추기도 한다. 나중에 다시 등장할 때 보다 강력한 임펙트를 싣기 위해 작곡가가 잠시 뒤로 물려놓을 수도 있다. 종적을 없앴던 선율이라 할지라도 반드시 다시 돌아오고야 만다는 점만 유념하자. 심중팔구 멜로디는 부차적인 중요성을 가진 음악적 재료와 함께 등장하곤 한다. 부수적 재료에 정신을 빼앗긴 나머지 선율의 자취를 잊지 않도록 주의하자. 멜로디를 둘러싼 모든 것들과 멜로디 그 자체를 머릿속에서 구분해서 따로 기억하자. 머릿속에서 멜로디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오케스트라 작품을 들을 때는 소리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는 것 외에도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 주요 멜로디와 이를 둘러싸고 있는 보조 재료들을 분리해서 인식하려는 노력이 그것이다. 멜로디 라인은 한 섹션에서 다른 섹션으로 넘어가거나 한 악기에서 다른 악기로 넘어가는 식으로 운용되는게 보통이다. 듣는 이는 정신을 바짝차리고 선율의 궤적을 놓치지 않고 따라 갈 수 있어야 한다.”


“곡 전체를 하나로 묶는 청사진을 뚫어볼 수 있어야만 완전한 음악 감상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음악은 반복이 원칙이다. 다른 예술 장르보다 음악은 유독 반복을 사용해야 할 정당한 이유가 있다. 시간의 흐름에 의존하는 유동적이고 무정형적인 예술이기에 그렇다. 도돌이표가 사용되는 이유다. 음악에는 a를 일단 되풀이하고 b로 가는 경우가 흔하다. 곁가지로 빠지기 전에 곡의 뼈대가 되는 a를 듣는 이에게 뚜렷이 각인시킬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있는 그대로의 반복이 아니라 리듬 강세의 위치를 살짝 비틀어 변화를 꾀한다.” “반드시 기억하고 넘어가야 할 점은 주제(a)를 제시한 직후 곧바로 반복될 공산이 크다는 것과 음악이 곁가지(b)를 유람한 다음에 꼭 같은 형태로든 다소 변형된 형태로는 반드시 되풀이된다는 점이다.” “마치 작곡가가 ‘얼마나 멀리까지 왔는지 아시겠소? 자, 모든 것의 시발점이 되었던 원석이 바로 여기 있소이다’라고 말하는 듯 하다.”


소나타 알레그로 형식(1악장 형식)으로 예를 들면, “A-B-A에 해당하는 각부가 제시부-발전부-재현부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 제시부는 이름 그대로 악장에 사용될 주제적 자료를 제시하며, 발전부는 제시된 주제를 예기치 못한 새로운 방식으로 다룬다. 마지막 재현부는 주제를 원래 세팅으로 되돌려 다시 한 번 들려준다. 제시부는 제1주제, 제2주제, 종결주제를 아루른다. 제1주제는 극적이고 ‘남성적’ 성격이다. 반면 제2주제는 제1주제와 대비감을 살리기 위해 서정적이고 ‘여성적’인 방향을 취하는 경우가 흔하다. 종결주제는 앞선 두 가지 주제보다 중요도가 상대적으로 낮다.
발전부는 정해진 지침을 따를 필요가 없는, 그야말로 자유로운 부분이다. 완전히 새로운 주제를 더해 넣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발전부는 작곡가의 창조력, 상상력이 도전받는 시험 무대와 같은 영역이다. 심지어는 곡을 쓸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일반인을 가르는 지표 가운데 하나가 발전부를 다루는 솜씨라고까지 말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생각해보면 그다지 극한 표현도 아니다. 들어줄 만한 가락을 뚝딱 지어내어 휘파람 부는 정도라면 누구라도 할 수 있을 테지만, 그 선율을 가지고 멋진 발전부를 만들어내는 것은 작곡가가 가진 기술과 솜씨가 없다면 꿈조차 꿀 수 없는 일이다.
우선 발전부는 통상적으로 제1주제를 부분적으로 다시 제시하면서 시작되곤 한다. 듣는 이는 발전부가 시작되었음을 알아차리는 하나의 장치다. 둘째, 발전부가 진행됨에 따라 음악은 으뜸조성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여러 조성으로 조옮김을 하며 이동한다. 이는 재현부가 도래하면 으뜸조성으로 복귀하는 바로 그 지점에서 듣는 이가 ‘마침내 제자리로 돌아왔구나’라는 쾌감을 느끼기 위한 필수적인 사전 작업이다.”


“틀림없는 사실은 세상에 알려진 위대한 음악 가운데 상당 부분이 청자가 음악 이론을 이해할 수 있다는 전제 하에서 쓰였다는 점이다.” 작곡가가 음악의 이론으로 말을 거는데, 외면하지 않으려면 좀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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