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맛집 579 - 깐깐한 식객 황광해의 줄서는 맛집 전국편
황광해 지음 / 토트 / 2014년 10월
평점 :
품절


 

몇 해 전 몇 천 원짜리 국수 한 그릇 먹자고 임실의 ‘행운집’을 다녀왔다. 임실군 강진면의 버스터미널 옆에 있는 아주 허름한 식당이다. ‘백양국수’를 삶아 넣은 고기국수가 맛있는 집이다. 그 먼 곳에 간 것은 그 집 소문을 듣고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책도 ‘백양국수’ 이야기로 시작한다. “백양국수는 중간 정도 굵기의 중면이다. 이 집을 몇 번 가보고 국수도 결국 발효음식임을 확인했다. 지방에는 여전히 많은 국수공장이 있다. 그러나 ‘백양국수’ 정도로 국수를 제대로 만드는 곳은 드물다. 국수는 말리는 과정에서 건조만 시키는 것이 아니다. 핵심은 역시 숙성, 발효다.

 

 

노부부가 국수를 만들고 또 말리고, 묶어서 전국으로 판다. 방송에 소개가 되면서 전화로 국수를 주문하는 경우가 많다. 이른 새벽 나무바퀴가 달린 수레를 노인이 직접 끌고 국수 배달을 하는 모습이 방송에 나왔다. 그 장면을 보고 전북 임실에 갔다. 노부부는 손으로 국수를 뽑고 양지와 음지에서 번갈아 말리고 또 숙성시킨다. 오래된 가정집 2층이 통째로 국수 공장이다. 2~3일씩 걸리는 이 일을 노부부가 다 해낸다. 봉급을 주며 사람을 고용하기엔 수지가 맞지 않아서 여전히 노부부가 힘든 국수 만드는 일을 직접 해낸다. 천일염을 사용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차이도 없다. 다만 철저한 자연건조다. 사람의 힘으로 모든 과정을 다 해낸다. 국수를 작두로 썬다. 고단한 작업이다. 아들도 국수공장을 물려받지 않겠다고 이미 선언했다. 노부부 중 한 분이라도 몸져눕는 날이면 ‘자연건조 백양국수’를 만날 수 없게 된다.

 

 

‘백양국수’의 태양건조 국수를 먹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감탄한다. 국수 맛이 이런 것이었구나, 감탄한다. 자연과 발효, 숙성의 힘이다. 면의 질감과 맛이 전혀 다르다. 대기업의 공장형 국수로는 따라오지 못할 맛이다. 당연하다. 대기업은 ‘제품’을 만들었고 ‘백양국수’는 ‘음식’을 만들었다. 대기업은 산업이지만 백양국수는 ‘문화’다. 국수 만들기에 온몸을 던진 노부부의 고단한 일상. 감동실화다. 대기업의 국수 중 ‘가슴에 감동으로 남을 국수’ ‘기억에 남을 국수’는 없다. 힘없고, 만들 줄 아는 것이 국수고, 할 줄 아는 것이 국수공장이라서 ‘100년’ 동안 만들었던 ‘백양국수’는 우리 가슴에 남는다. 그동안 단 한 번도 반죽을 여덟 번 밀어내는 일을 허투루 하지 않았다. “좋은 날씨는 국수 만들기 좋은 날”이라는 말이 두 사람의 삶을 설명해 준다. 서른과 스물셋의 나이에 만나 짝을 이루고 평생 국수를 함께 만들어온 노부부의 삶 전체가 국수에 녹아 있다. 단 한 번이라도 백양국수를 먹어본 사람은 ‘백양국수’ 팬이 된다. 그들의 마음속에 ‘백양국수’는 감동으로 남는다.”

 


내가 가 본 맛집이 신문 기사나 책에 보이면 나도 이미 알고 가봤단 공감과 동시에 당시 음식 맛이 떠오른다. 이 책에서 소개된 속리산 기슭의 ‘경희식당’이 그렇다. “경희식당은 오래오래 살아남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반가와 궁중, 상민들의 밥상을 모두 합친 특이한 밥상이다. 이제는 돌아가신 창업자 남경희 할머니의 삶이 그대로 묻어나는 밥상이다. 게다가 철저한 한상차림이다.

 

 

‘경희식당’의 음식을 정확하게 알기 위해서는 고 남경희 할머니의 삶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속리산으로 오기 전 대전과 유성에서 음식점을 했다. 유성에서 음식점을 할 무렵 시누이 ‘이 씨 할머니’와 같이 일을 한 적이 있었다. ‘이 씨 할머니’는 서울에서 ‘궁중음식’을 배운 적이 있다고 전해진다. 지금도 ‘경희식당’의 밥상에 ‘정과(正果: 온갖 과일, 생강, 연근, 인삼 따위를 꿀이나 설탕물에 조려 만든 음식)’가 오르는 이유다. 쇠고기 정과의 경우 궁중이나 대단한 반가에서나 먹었던 음식이다. ‘경희식당’의 밥상에는 숱한 반찬 중 하나로 천연덕스럽게 자리하고 있다. 몇몇 다른 정과류도 남경희 할머니가 어떤 경로든 궁중, 반가음식을 배웠음을 알려준다. 남경희 할머니는 반가 출신으로 알려졌다. 음식을 ‘법도에 맞게’ 만지는 것은 반가에서 자랐고, 또 반가로 시집 온 경우에 가능했다. 일제강점기 초반에 태어나서 20대에 음식점을 했던 걸로 보면 아마 집안이 극도로 어려웠을 것이다. 이런 삶의 궤적은 지금 ‘경희식당’의 밥상에 고스란히 나타난다.”

 

 

이 번 긴 추석 연휴에 머릿속만 채울 책만 사다 놓는 건 아니라는 생각에 뱃속도 채울 맛집 책도 서둘러 읽었다. 특이한 책이다. 음식 사진은 단 한 장도 없는데, 맛이 그려진다. 저자는 먹거리 X파일의 담당 PD였다. 그의 “착한 식당” 기준은 명확하다. 이번 추석엔 막국수와 짜장면을 꼭 먹어야겠다.

 

 

막국수
“막국수는 메밀을 거칠게 갈아서 동치미 국물에 먹었던 아주 담백한 음식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 입맛은 달고 짜고 매운 것을 좋아한다. 전통적인 막국수 맛은 “아무 맛이 없다”고 폄하한다. 하지만 막국수는 메밀의 심심한 맛과 동치미나 백김치의 곰삭은 맛을 취하는 것이다. 음식이 그악스러워지는 것은 우리 입맛이 그악스러워지기 때문이다. 설탕과 조미료가 듬뿍, 통깨를 뿌리는 것은 애교고 더러는 참깨를 갈아서 가득 얹는다. 마지막에는 김을 부숴서 왕창 얹어서 내온다. 고추장, 참깨, 김은 모두 맛이 강하다. 조미료로 이런 맛들을 묘하게 조정하여 21세기 판 막국수를 완결한다. 이런 판국에 메밀맛과 식감이 날 리가 없다. 심심한 메밀과 곰삭은 동치미의 맛은 전혀 느낄 수 없다.

 

 

'삼군리메밀촌’은 메밀국수, 막국수에 대한 기준을 새롭게 세운 집이다. 그저 묵묵히 메밀국수, 막국수를 만들면서 슬그머니 “이게 막국수야”라고 이야기한다. 깊은 산속, 차량의 내비게이션도 작동하지 않는 곳에서 막국수를 만들었다. 딸이 재배한 메밀을 가져다 나이 든 노인이 직접 손 반죽하여 막국수를 만든다. 메밀전도 대단한 수준이다. 두부도 좋다. 압권은 동치미다. 기교 부리지 않고, 달지 않고, 입에 감기지 않으면서도 한 모금 마시면 ‘그래, 이게 동치미야’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짜장면
“‘신성각’을 만나지 않았다면 객관적인 짜장면 맛집을 찾는 것은 포기했을 것이다. 화학조미료와 감미제를 사용하는 집을 ‘최고의 맛집’으로 인정하기는 힘들다. 우리 사회는 맛에 대해서 객관적인 기준이 없다. “맛있다”는 한 단어로 음식을 표현하는 것은 상상력 부족이다. 조미료로만 만든 냉면국물을 퍼먹으면서 “맛의 깊이가 있다” “깊은 맛” “맛있다”고 하는 경우도 많이 봤다. 서글프다. 맛은 재료, 조리사의 내공과 정성 등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맛은 식재료의 맛을 살리고, 한편으로 한 그릇에 들어가는 여러 식재료의 섞인 맛을 잘 표현하는 것이다. 그날의 기후와 음식물의 온도, 습도, 튀긴 음식의 바삭함, 볶은 음식의 불맛, 탕반의 감칠맛과 삶고 찐 음식의 질감과 익은 정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맛’을 결정한다.

 

 

효창구장 옆길의 외지고 허름한 가게. 내비게이션이 없으면 찾기 힘든 길이다. ‘이문길’이라는 중년의 남자가 “지구상 단 한 사람이라도 내가 만든 음식을 먹고 감동했으면 좋겠다”고 써 붙이고 짜장면과 짬뽕을 만든다. 손님이 앉으면 주문을 받고 그때부터 면을 친다. 작은 식탁이 네댓 개 정도고 끼어 앉으면 11명이 앉을 수 있다. 업력은 30년을 넘겼다. 여러 차례 방송 출연 섭외가 있었지만 응하지 않았다. 첨면장(단맛이 나는 중국 된장, 춘장 또는 첨장이라고 함)을 직접 만들었으면 하지만 이 규모의 가게에서는 힘들다.

 

 

조미료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조미료가 많이 들어간 음식을 먹고 나면 여러 가지 반응을 보인다. 졸리거나 물을 계속 마신다. 속이 더부룩한 증상도 많이 겪는다. 미국 식약청의 안전(?) 발표나 한국 식품위생법상 사용가능 판정이 문제가 아니다. ‘내 몸’이 부정적으로 반응하면 먹기 힘들다. ‘신성각’은 벽에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써 붙였다. 누구나 “조미료 없는 짜장면이 어디 있어?”라고 되묻는다. 그러나 가능하다. ‘신성각’의 짜장면은 ‘왜곡된 단맛’이 없이, 그저 “원래의 짜장면이 이랬나?” 싶을 정도로 조미료로부터 자유로워졌다. 공장에서 생산된 된장이나 춘장은 원래 달다. 그러니 주방에서 감미제와 조미료를 더 이상 넣지만 않아도 과하게 달지 않은 맛이 만들어진다. 춘장의 짠맛과 단맛 정도가 희미하게 느껴진다. 이게 ‘신성각’ 짜장면의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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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nsun09 2017-09-28 16: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 저녁은 면 음식을 먹어봐야겠어요.
식도락의 모습을 엿보게 되네요^^

북다이제스터 2017-09-29 19:34   좋아요 1 | URL
공교롭게 면 이야기만 적었네요.
제가 면을 특히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

munsun09 2017-09-29 19:36   좋아요 1 | URL
추석 명절 잘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