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이런 서술의 책이 좋다. 곡 해설도 훌륭하지만, 음악가 개인 내면과 그가 살았던 시대 설명은 클래식을 몹시 듣고 싶게 만든다. 음악은 작곡가 인생과 시대의 산물이다. 그 산물을 우리가 대면한다. 이 책은 클래식 음악의 고전주의부터 낭만주의, 모더니즘에 이르는 작곡가 16명과 지휘자, 연주자 8명을 소개하고 있다. 선정 기준은 저자 취향에 따라 임의적이다. 베토벤은 빠져있고 너무 많이 알려진 모차르트와 쇼팽, 브람스 이야기는 지루하지만, 그 외 음악가 설명은 모두 흥미 있다.

 

바흐
바흐 음악은 “질서정연하며 논리적인 감동”이 있다. 그의 곡을 듣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정신이 맑아진다." 바흐는 주로 종교 음악을 작곡했지만, 그의 음악 본질은 ‘고독’에 있다. 하지만 "헤겔은 바흐 음악을 조롱했다. 그런데 헤겔 조롱은 이해할 수 있다." “국가주의 철학자 헤겔이 바흐 고독을 이해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어려운 일이었다. 헤겔에게 개인 내면이란 거대한 절대정신의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개인=전체’라는 도식을 신봉했던 헤겔이 전체로 환원되지 않는 개인, 그래서 신에게 기도하는 나약한 개인 고독을 이해했을 리 만무하다.”

 

슈베르트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23곡 중 “백미는 <21번 B플랫장조>(D.960)이다.” “고금의 피아노 음악 중 가장 애잔한 곡이다.” “첫 악장은 눈물도 흘리지 않고 두 눈 뜬 채 작별을 고하는 듯 들린다. 두 번째 악장은 피아노로 연주되는 세상 모든 애가(哀歌) 가운데 가장 아름답다.” “슈베르트, 쇼팽, 슈만과 같은 작곡가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던 글렌 굴드마저 ‘최면에 걸리기라도 한 것처럼 망아지경에 빠져버렸다’고 고백한다.”

 

 

 

 

 

 

 

 

 

 

베를리오즈
베를리오즈 음악은 “엄청난 규모의 관현악 편성, 거칠고 돌연한 조바꿈, 타악기와 관악기가 만들어내는 두텁고 조밀한 화음, 그 모든 것이 한데 엉켜 분출하는 긴장감 넘치는 음향을 만들어 낸다.” “이 과도한 음악의 육체성은 ‘자본주의 상품화’를 보여주는 것이다. 당시 유럽 전역 산업자본주의가 발흥하는 사회 분위기에서 음악가도 당연히 청중이나 공연기획자 요구에 부응해야 했다.”
베를리오즈가 한눈에 반해 버린 여배우 해리엇 스미스슨의 마음을 얻지 못해 그녀에 대한 감정이 “걷잡을 수 없는 분노와 미움으로 변해가고 있을 때” <환상 교향곡>을 작곡했다. “특히, 4악장 <단두대로의 행진>과 5악장 <마녀의 론도>에서 그로테스크한 증오를 드러낸다. 여인에 대한 집착을 살인이란 파국으로 마무리한 청년은 단두대로 끌려가는 도중 하나의 환상에 몰입하고 그 기괴한 환영 속에서 사랑했던 여인은 창녀, 혹은 마녀 이미지로 그려진다.” 줄리아 로버츠 주연 영화 <적과의 동침>에서 <환상 교향곡>이 그토록 절묘했던 이유다.

 


 

 

 

 

 

 

 

 

 

 

 

 

베를리오즈의 <레퀴엠>은 자본주의적으로 “뭔가 보여주겠다는 작곡가 욕망을 가장 확연하게 만날 수 있다.” “음악사에서 가장 광폭하고 공격적인 레퀴엠으로 평가받는 이 곡은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엄청난 규모의 오케스트라를 요구한다. 무대 위 오케스트라와 별도로 작은 규모의 오케스트라가 연주회장 네 방향에 각각 배치돼 (그 당시 서라운드) 입체 음향을 만들었다. 이런 방식으로 “지휘자 콜린 데이비스(Colin Davis)가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그리고 합창단과 녹음(Philips)한 것이 대표 명반이다. 가격이 좀 나가는 하이엔드 오디오로 볼륨을 적절하게 높인 채 들으면, 압도적 음향 쾌감에 몸이 떨리는 것이 사실이다.”

 

 

 

 

 

 

 

 

 

 

쇼팽
쇼팽 음악은 여성적이고 감성적이라고 느껴진다. 하지만 격렬하고 뜨거운 쇼팽 곡은 없을까? 쇼팽의 “소나타 3번은 규모가 웅장하고 구성도 치밀한 걸작이다. 망치로 머리를 때리는 듯 시작하는 1악장의 첫 번째 주제 힘이 압도적이다. 마르타 아르헤치가 67년 녹음한 음반(EMI)이야말로 그 격렬한 에너지를 고스란히 전해준다.”

 

바그너
“디오니소스적인 열정을 찾아 헤매던 니체는 스물네 살 때 처음 만난 바그너에게 완전히 매혹되어 자신을 ‘바그너주의자’로 지칭한다. 니체는 ‘예술이 존재하려면 ‘도취’가 전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사람이다. 반이성주의자였던 그는 ‘논리적인 것이 극복되는 지점’에서 비로소 예술의 아름다움이 존재한다고 보았다. 아울러 음악은 아름다움의 외피만을 강조해선 안 되며, 내면의 열정을 표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트리스탄과 이졸테>에 대한 니체 찬사는, ‘모든 예술을 다 뒤져도 필적한 만한 작품을 찾을 수 없다’는 표현에서 볼 수 있듯이, 거의 경배에 가까웠다.”

 

말러
말러 교향곡 서두는 언제나 ‘나는 이렇게 시작할 테니, 그대들은 내 음악에 집중하라’는 자신 확신의 주문과 같다. 그의 아홉 번째 교향곡 “<대지의 노래>는 중국 이태백과 전기(錢起), 맹호연, 왕유의 시 여섯 편을 가사로 삼아 곡을 붙였다.” 말러는 중국 낭만적 풍경화에 마음을 빼앗겼다. “특히, 마지막 악장 <고별>의 반복선율, 어릿광대의 몸짓처럼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슬픈 선율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삶과 죽음 경계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서성이는 인간 운명을 암시한다.”

 


 

 

 

 

 

 

 

 

물론 어떤 이들에게 말러 음악은 혼탁하고 감성적이여 격조가 떨어질 수도 있다. “비트겐슈타인은 말러 음악을 ‘저열하다’고 혹평했다. 하지만 그의 혹평이야말로 오히려 말러를 이해하는 적절한 열쇠가 될 수 있다. 비트겐슈타인은 명료함을 추구한 철학자였다. 그런 그에게 말러는 말할 수 없는 주관적 감정에 함몰되어 모호한 언어를 남발하는 예술가로 보였을 것이다.” “고상함과 퇴폐, 서정과 광기, 공포와 안식이 모호하게 뒤엉킨 말러 음악이 듣는 이의 감성을 건드리는 역설이 되었다.”

 

드뷔시
드뷔시의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은 “<목신의 독백>이란 상징주의 시에서 모티브를 얻어 인상주의 풍의 에로티시즘을 음악으로 구현했다. 시의 주인공은 햇살이 작렬하는 오후, 시칠리아 초원에서 물의 요정에게 반해 그 모습을 몽롱하게 더듬는다. 목신은 잠에서 깨어났지만 꿈에서 봤던 님프와 나이아드 모습을 지우지 못한다. 그것은 정녕 꿈이었을까? 목신은 혼란스럽다. 그는 몽환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넋을 잃고 몸부림치다가 마침내 모래 바닥에 쓰러져 다시 잠에 빠져든다.” “음악의 모더니즘은 드뷔시의 이 곡으로 시작되었다.”

 

사티
사티는 유럽 음악사를 완전히 다시 시작했다. 그것은 “19세기 말에 지대한 영향을 행사했던 바그너풍 음악과 완전한 결별이었다. 사티는 ‘음악에 경배하지 말 것’을 화두로 삼았다. ‘음악은 그저 일상의 한 부분(musique de tout les jours)’이라는 것이다. 엄숙한 콘서트홀에서 빠져나와 일상 삶 속에서 구현되는 음악, 그것을 최초로 구현했던 작곡가가 사티였다. 지금 식으로 말하자면 일상생활에서 배경음악으로 흐르도록 작곡된 음악(BGM)이다. 실제로 사티는 자신 음악이 초연되었을 때, 조용하게 음악을 감상하려는 연주회장 청중들에게 ‘계속 떠드세요, 움직이세요, 음악은 듣는 게 아닙니다!’라며 화를 내고 돌아다녔다고 전해진다.” “사티 사후 40년쯤 지나 그의 곡은 ‘미니멀 음악’이란 이름으로 부활했다.”

 

야나체크
체코 작곡가 야나체크의 피아노 소나타 <1905년 10월 1일 거리에서>는 가두시위에서 사망한 20세 노동자를 애도하기 위해 작곡했다. “아다지오로 느릿하게 흘러가는 2악장을 듣고 있노라면, 재즈 피아니스트 키스 자렛(Keith Jarrett)의 한 시간짜리 즉흥 연주곡 <쾰른 콘서트(The Koln Concert)>가 떠오른다. 키스 자렛이 야나체크의 곡 주제를 슬쩍 빌려왔다는 사실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합창과 테너, 피아노를 위한 곡 <나의 딸 올가의 죽음을 슬퍼하는 노래>는 야나체크의 모든 작품 중 가장 비통하고 애절하다. 또한, 피아노 한 대로 펼쳐지는 <안개 속에서>를 작가 밀란 쿤데라가 ‘푸르스름한 빛깔을 띠고 있는 두멧길에서 빠져나오는 저녁 안개’라고 비유했다. 밀란 쿤데라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프라하의 봄>에서 이 곡이 배경음악으로 등장한다.”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 <1Q84>에서는 여주인공이 탄 택시에서 야나체크의 <신포니에타>가 흘러나온다.”

 

 

 

 

 

 

 

 

 

 

 

 

 

 

쇼스타코비치
슬라보예 지젝은 쇼스타코비치의 오페라 <므첸스크의 멕베스 부인>에 대해 “3막에 나오는 카테리나와 세르게이의 격정적인 첫 성교에 대한 생생한 관현악적 묘사”라고 설명한다. “쇼스타코비치는 그 장면에서 당시로써는 파격적으로 느껴질 정도의 표현주의 기법을 사용한다.” “ 지젝 표현에 따르면 ‘오르가슴 이후 긴장 완화를 반쯤의 희극적 묘사로 제공하는 트롬본 활주를 포함하여, 성교 행위의 헐떡거림과 돌진들’을 음악으로 생생하게 묘사했던 것이다.”
“나치 독일이 소련 레닌그라드를 연일 폭격하던 시기 쇼스타코비치는 일곱 번째 교향곡 <레닌그라드>를 작곡했다. 전투적 애국주의로 충만한 이 곡은 레닌그라드 시내의 스피커를 통해 장엄하게 울려 퍼졌다. 폭격으로 폐허가 된 도시에서 울려 퍼진 영웅적인 분위기의 교향곡은 일종의 선무 방송이었다.”

 


 

 

 

 

 

 

 

 

또한, “아내를 잃은 직후 작곡된 <등에 모음곡>은 애수를 풍기는 음악이다. 아직 어린 두 아이와 함께 아내 빈자리를 바라보는 심정, 특히 모음곡 8번 <로망스>와 9번 <간주곡>, 10번 <녹턴>은 당시 쇼스타코비치가 느꼈을 쓸쓸함과 허망함을 진하게 드러낸다.”

 

글렌 굴드
“굴드는 콘서트홀 ‘청중’을 좋아하지 않았다. 이에 대한 굴드의 직접적 언급은 1962년 쓴 <박수를 금지하자!: Let’s ban applause!>라는 글에 등장한다. ‘예술이란 내적 연소다. 천박하게 밖으로 드러내는 대중에게 과시하는 것은 아니라고 믿는다. 음악 목적은 아드레날린을 순간적으로 분비하는 것이 아니라 평생 걸쳐 경이롭고 고요한 상태를 점진적으로 구축하는 것이다.”
낭만주의 곡 연주가 대단히 인기 있던 시기에 굴드는 왜 “고리타분”한 <골드베르크 변주곡> 같은 바흐 음악에 집중했을까? “낭만주의 음악은 대단히 상업화되고 말랑말랑한 레퍼토리로 변질된 상태였다. 굴드가 바흐를 선택한 것은 그래서였을 것이다. 당시 청중에게 바흐는 낡고 재미없는 음악의 대명사였다. 바흐를 듣는다는 것은 마치 골동품 취미와도 같은 것이었다. 굴드는 그렇게 주류적 통념을 거부한 연주자였다.”

 

 


 

 

 

 

 

 

 

음악은 애초에 인문학 범주에 있었다. “인문학자 월터 카우프만은 ‘인문학이란 철학과 문학, 종교와 역사, 음악과 미술을 통틀어 일컫는다’고 말한다. 말하자면 음악이 지향하는 바는 이른바 ‘전인성(全人性)’이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 후 음악은 대학 편제로 ‘예능’이란 동네로 거처를 옮겼다. 게다가 점점 가속된 ‘전문화’ 추세는 음악을 전문주의, 기능주의의 벼랑으로 내몰았다.”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은 ‘정치적으로 옳다는 말은 타협을 의미하므로 철학적으로 틀린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한다. 절충이나 타협은 이미 철학이 아니라 것, 예술도 결국 철학과 동행해야 한다고 바렌보임은 말한다.”
‘음악 전문화’라는 구호 아래 개인 시야가 협소해 지고 대중이 클래식에 다가가기는 점차 더 어려워지고 있다. 자주 들으며 애써 노력할 수밖에 없다. 저자는 클래식에 친숙해지는 팁 한 가지를 소개한다. “이 곡 저 곡 많이 들으려고 하지 말고, 같은 곡을 자꾸 반복해 들으세요. 그래야 곡 흐름을 외울 수 있으니까요.” “곡 흐름을 외우는 순간, 다시 말해 그 곡 전체 구조가 머릿속에 들어올 때 음악은 ‘내 것’이 된다. 그때 비로소 당신은 클래식의 감흥을 느낄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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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5-09-29 15: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렇게 서술적인(?) 책이 좋아요.
저는 슈만에 대해서 잘 몰랐는데 최근 슈만의 피아노 곡을 듣고 전율이 느껴지더군요. 사실 저는 브람스를 더 좋아했기 때문에 슈만을 더 따돌렸더랬나봐요~~~^^;;; 앞으로 슈만의 피아노 곡을 자주 들어보려고요.
음악은 정말 대단해요!! 클래식은 얼마나 대단한지 아침 저녁으로 들으면서 제 못난 머리를 쥐어박는답니다~~~^^;;;;
오늘도 좋은 글 감사해요~~^^*

북다이제스터 2015-09-30 09:33   좋아요 0 | URL
이 책에서 말하기를... 생각보다 사람들이 슈만 곡을 많이 안 듣는 이유는
슈만 곡은 좋은 곡이 너무 많은 역설 때문이라고 하더라구요.^^
저도 슈만 곡도 더 자주 들어 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