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만 년 전 사피엔스는 아마 오늘날 사피엔스보다 평균적으로 지능이 더 높고 도구 제작 기술도 더 뛰어났을 것이다. 오늘날 학교와 회사에서 나쁜 점수를 받아도 복지국가는 우리의 기본적 필요를 보장한다. 반면 석기시대에는 자연선택이 매일 매순간 사람들을 시험했고, 수많은 시험 가운데 하나라도 낙제하면 당장 죽어 땅에 묻혔다.”<호모 데우스>



















“철기시대 쟁기의 등장으로 당시 삶의 큰 변화가 있었다. 이전 석기시대에는 여자들이 어떻게 땅을 경작하고 곡물을 키우느냐에 모든 것이 달려 있었다. 남자들은 사냥을 하고 가축을 돌보았다. 하지만 철기시대는 남자가 쟁기를 인계받았고, 농사는 남자 몫이 되었다. 단숨에 사회가 여가장제에서 가부장제로 넘어간 듯했다. 또한 전능한 여신들이 지배하던 세계에서 남신들의 세계로 넘어간 듯했다. 실제로 신석기 공동체에서 흔히 발견되던 여사제의 풍년제는 사라지고, 수메르와 바빌론에서는 남자 제사장들이 지배적인 위치에 있었다.”<지중해의 기억>



















“석기시대 돌도끼는 적어도 기원전 5세기에도 알려져 있었다. 그 무렵 트라키아의 어느 공주가 석기시대 돌도끼를 수집해 자신 무덤에 매장하게 했다(아마 행운을 빌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이 묘한 물건이 여러 곳에서 발견되자 석기에 관한 기발한 설명들이 나왔다. 플리니우스 같은 사람은 그것을 ‘석화(石化)된 벼락’이라고 여겼는가 하면, ‘요정의 화살’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었다. 17세기 중반에 알드로반두스는 석기를 독특하게 설명했다. ‘금속 물질과 섞인 천둥과 번개가 검은 구름 속에서 발산되어 주의 습기에 의해 응고되고 덩어리로 굳은 뒤 열로 단단해져 벽돌처럼 변한 것이다.’



하지만 16~17세기 탐험의 시대에 접어들자 선원들은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태평양 등지의 수렵-채집 부족들이 여전히 석기를 사용하는 것을 보았다. 이 사실에 근거해 이탈리아 지질학자인 게오르기우스 아그리콜라는 거의 처음으로 유럽에서 발견된 석기가 인간 기원일 것이라는 견해를 피력했다. 또한 프랑스 칼뱅주의 사서인 이사크 라페레르는 1655년 성서의 천지창조론에 도전하는 최초의 책 중 하나를 썼다. 그의 책은 몇 개 국어로 번역되었는데, 영어 제목은 <아담 이전에 인간이 존재했다는 가정에 입각한 신학 체계>다. 



그는 ‘뇌석(thunderstone, 근대까지도 사람들은 석기나 운석을 천둥에서 나온 것이라고 믿었음)’을 ’아담 이전 인간‘이 사용한 무기라고 여겼으며, 인간은 히브리인, 특히 아시리아인과 이집트인이 창조되기 이전에 존재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므로 그는 아담과 이브가 단지 유대인 시조일 뿐이고, 더 이전 인간은 비유대인이이라고 말했다. 페레르 책은 ’저속하고 불경스럽다‘는 비난을 받았다. 그는 종교재판에 회부되어 투옥되었고, 그의 책은 파리 거리에서 불태워졌다. 그는 ’아담 이전‘ 주장은 물론 칼뱅주의마저도 포기해야 했으며, ’정신적 타격‘을 입고 수도원에서 죽었다.



그런데 농경이 발달한 이유는 무엇일까? 수렵-채집이 실은 상당히 효율적인 생활방식이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보기보다 훨씬 더 흥미로운 문제다. 현재의 수렵-채집 부족들에 관한 민족지학적 연구는 하루에 3~5시간만 ‘일’을 하면 가족들을 충분히 부양할 수 있다는 점을 말해준다. 석기시대 농부들 유골은 수렵-채집으로 생활하던 조상들보다 더 심한 영양실조, 전염병, 치아 질환 흔적을 보여준다. 게다가 곡물에만 의존하여 사냥과 채집을 하던 때보다 식생활이 단조롭다. 인간이 처음 작물 사육에 성공한 뒤에도 농경은 오랫동안, 아마 1천년 이상 소수의 생활방식이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농경이 발달한 이유는 무엇일까?



한 가지 이론은 종교적이거나 사회적인 이유 때문에 농경으로 전환했다는 것이다. 당시 서서히 퍼지고 있었던 새로운 식량은 오늘날 유명 디자이너 브랜드처럼 귀한 사치품이었다. 예를 들어 렌즈콩은 식물 한 그루당 겨우 두 알이 열리기에 석기시대 가족의 배고픔을 달래기 어려웠다. 하지만 렌즈콩은 근동에서 초초로 재배된 작물 가운데 하나다. 고생물학자들은 이 곡식의 가장 중요한 최종 생산물이 맥주라고 믿는다. 종교 의식에서 알코올의 중요성은 명백하다.



또 다른 이론으로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레 그루브에 따르면 약 2만 년 전에 중대한 사건이 일어났다. 세계가 더워지기 시작했고, 인간은 구세계 끝에 이르렀다. 다시 말해 알려진 세계가 사람들로 ‘가득’ 차게 된 것이다. 먹을 것은 여전히 풍부했지만, 기온이 상승하자 인간의 기생충들도 아프리카를 벗어나게 되었다. 예전에는 열대의 질병이었던 것이 온대 질병으로 바뀌었다. 그루브는 그 중에서 말라리아, 주혈흡충증, 십이지장충으로 인한 질병을 ‘공포의 삼위일체’라고 부른다. 계속해서 두 번째 중대한 사건도 일어났다. 사냥 때문에 거대동물군이 멸종해버린 것이다. 전부 포유류였으므로 남은 포유류는 대형이라고 해야 인간과 비슷한 크기에 불과했다. 갑자기(진화적 견지에서 일순간이다) 기생할 곳을 잃은 세균 포식자들은 인간에게로 몰려들었다.



바꿔 말해 2만 년 전 이후 어느 시점에 세계에는 보건 위기가 닥쳤다. 질병이 폭발적으로 증가해 인간 생존을 위협했다. 질병 공격을 받은 초기 인간은 늘 이동하는 생활양식, 자식을 3년마다 낳는 관습으로는 일정한 규모의 인구를 유지하기에 불충분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인간은 자식을 더 자주 갖고, 인구를 늘리고, 멸종을 피하기 위해 정주생활로 전환한 것이다.



인류는 농사를 짓기 위해 정주한 것이 아니다. 그루브 이론에는 정주생활과 농경이 분리되어 있다. 1941년 ‘신석기 혁명’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낸 고고학자 고든 차일드는 농경 발명이 최초 촌락을 탄생시켰고, 이 새로운 정주생활이 도기와 야금술 발명을 낳아 수천 년 만에 최초 문명이 싹텄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산뜻한 생각은 이제 뒤집어졌다. 수렵-채집 생활양식에서 촌락으로의 이행을 의미하는 정주생활은 이미 농경혁명이 시작되기 전에 생겨났다. 이것은 초기 인간과 그의 생각에 관한 우리 관점을 크게 변화시켰다.“<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 : 생각의 역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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