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청에서 회의가 끝나갈 무렵, 과학자들은 교황을 알현할 기회를 얻었다. 교황은 우리에게 빅뱅 이후 우주 진화과정을 연구하는 것은 정당하지만, 빅뱅 그 자체에 대해서 물음을 제기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빅뱅이 창조 순간이고 따라서 신의 작품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때 교황이 방금 전 내가 회의에서 했던 강연 내용을 모르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그때 내 강연 요지는 시공이 유한하지만 경계가 없다는 가능성에 대한 것이었다. 그 말은 시공이 출발점, 즉 어떠한 창조 순간도 가지지 않음을 뜻한다.

 

 

우리는 아직까지 양자역학과 중력이론을 하나로 결합시키는 완벽하고 모순 없는 이론을 갖고 있지 못하다. 하지만 우리는 그러한 통일이론이 갖추어야 할 일부 특성을 상당히 명확하게 알고 있다. 그러한 특성 중 하나는 양자이론을 역사 총합에 의하여 정식화하자는 파인만 제안을 포함하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 접근방식은 하나의 입자가 고전이론에서 생각했던 것처럼 단일한 역사만 가지지는 않는다. 그 대신 입자는 시공 속에서 가능한 모든 경로를 지날 것으로 추측된다. 그리고 이 각각 역사에는 그와 연관된 하나의 숫자쌍이 존재한다. 그 수들은 각기 파동 크기와 주기 속에서 위치(위상)를 나타낸다. 가령 그 입자가 어느 특정한 점을 지날 확률은 그 점을 지나는 가능한 모든 역사와 연관된 파동을 합하여 얻어진다.

 

 

하지만 우리가 실제로 이러한 총합을 실행하려고 할 때, 우리는 아주 어려운 기술적 난관에 부딪치게 된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다음과 같은 특수한 처방을 채택하는 것이다. 즉 우리가 경험하는 ‘실’시간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허’시간(imaginary time)이라고 부르는 시간 속에서 일어나는 입자 역사의 파동을 합해야 한다. 사실 허시간이라는 것은 명확하게 정의된 수학 개념이다.

 

 

다시 말해서 계산이라는 목적을 위해서 우리는 실수보다 허수를 이용해서 시간을 측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시공에 흥미로운 효과를 일으킨다. 즉 시간과 공간 차이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다. 사건들이 시간 좌표에서 허수 값을 가지는 시공을 유클리드 시공이라고 부른다. 유클리드 시공에서는 시간 방향과 공간 방향 사이에 아무런 차이도 없다. 반면 사건들에 시간 좌표의 실수 값이 붙여지는 실제 시공에서는 그 차이를 이야기하기 쉽다.

 

 

궁극적 이론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되는 두번째 특징은 중력장이 휘어진 시공으로 표현된다는 아인슈타인 개념이다. 파인만의 역사총합이론을 아인슈타인의 중력관에 적용시키면, 입자 역사에 해당하는 것은 우주 전체 역사를 나타내는 완전히 휘어진 시공이 된다. 역사들을 실제로 총합하는 데에서 부딪치는 기술적인 어려움을 피하려면, 이 휘어진 시공은 유클리드 시공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시간은 허시간이고 방향 면에서 공간과 구별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야 한다. 어떤 일정한 특성 – 가령 모든 지점과 모든 방향에서 동일한 것처럼 보이는 성질 –을 가진 실제 시공을 발견한 확률을 계산하기 위해서, 우리는 그러한 특성을 가진 모든 역사와 연관된 파동을 모두 더해야 한다.

 

 

일반상대성이론의 고전이론에서는 서로 다른 많은 가능한 휘어진 시공이 있다. 그 각각은 우주의 서로 다른 초기 상태에 상응한다. 만약 우리가 우주 초기 상태를 안다면, 우리는 그 전체 역사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양자중력이론에서도 우주의 서로 다른 많은 가능한 양자상태가 있다. 여기에서도, 만약 우리가 역사총합 속의 휘어진 유클리드 시공이 초기에 어떻게 움직였는지를 알 수 있다면, 우주의 양자상태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실제 시공을 기초로 하는 고전 중력이론은 우주가 움직일 수 있는 방식이 두 가지밖에 없다. 즉 무한한 시간 동안 존재했거나, 또는 과거의 어떤 유한한 시간에 특이점에서 시작되었거나 둘 중 하나다. 반면 양자중력이론에서는 제3의 가능성이 제기된다. 시간 방향이 공간 방향과 같은 기초를 갖고 있는 유클리드 시공을 이용하기에 시공이 그 크기에서 유한하면서도 가장자리나 경계를 형성하는 어떠한 특이점도 갖지 않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시공은 단지 두 차원을 더 가지는 것 외에 지구 표면과 흡사하다. 지구 표면은 그 크기에서 유한하지만 경계나 가장자리를 갖지 않는다. 서쪽으로 항해를 계속해나가도 가장자리로 떨어지거나 특이점 속으로 빠지지 않을 것이다.

 

 

유클리드 시공이 무한한 허시간의 과거로 뻗어나가거나 허시간에서의 어느 특이점에서 시작되었다면, 우리는 우주 초기 상태를 규정하는 과정에서 고전 이론이 부딪쳤던 것과 동일한 문제에 부딪치게 된다. 어쩌면 신은 우주가 어떻게 출발했는지를 알고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우주가 다른 방식이 아닌 어느 하나 방식으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할만한 어떠한 특별한 이유도 제기할 수 없다. 반면 양자중력이론은 시공이 어떠한 경계도 가지지 않을 것이며, 따라서 그 경계 움직임을 규정해야 할 아무런 필요도 없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모든 과학법칙이 붕괴되는 특이점이나, 시공 경계조건을 설정하기 위해서 어떤 새로운 법칙이나 신에게 호소해야 하는 시공 가장자리 따위는 전혀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우주의 경계 조건은 그것이 아무런 경계도 가지지 않는 것이다’라고 표현할 수 있다. 우주는 완전히 자기-충족적이고 우주 밖의 그 무엇으로부터도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다. 우주는 창조되지도 파괴되지도 않을 것이다. 그것은 그저 ‘있을(be)’ 따름이다.

 

 

역사총합 속에서 각각 역사는 시공뿐 아니라 그 속에 들어있는 모든 것을 남김없이 기술할 것이다. 이것은 인류원리를 뒷받침하는 또다른 정당화로 이용될 수 있다. 만약에 모든 역사가 가능하다면, 우리가 그중 하나의 역사 속에 존재하는 한, 우리는 왜 우주가 지금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지를 설명하기 위해서 인류원리를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 속에 존재하지 않는 그 밖의 다른 역사들에 대해서 정확히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지는 분명치 않다. 하지만 역사총합이론을 이용해서, 우리 우주가 그저 가능한 역사 중 하나가 아니라 가장 확률이 높은 역사 중 하나라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다면, 양자중력이론의 이러한 관점은 훨씬 더 만족스러울 것이다. 이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우리는 경계를 가지지 않는 가능한 모든 유클리드 시공의 역사를 모두 더해야 할 것이다.

 

 

허시간에서 우주가 유한하지만 경계나 특이점을 갖지 않는다는 개념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실시간으로 돌아오면, 여전히 특이점이 존재하는 것처럼 생각될 것이다. 블랙홀 속으로 떨어지는 불쌍한 우주비행사는 여전히 불행한 최후를 맞게 될 것이다. 그가 허시간에서 살았을 때에만 특이점과 마주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이른바 허시간이라고 하는 것이 실제로는 실시간이고, 우리가 실시간이라고 부르는 것은 우리 상상의 산물에 불과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실시간에서 우주는 특이점에서 시작과 끝을 가지며, 그 특이점이 시공 경계를 형성한다. 또한 그 특이점들에서 과학법칙은 모두 붕괴한다.

 

 

하지만 허시간에서는 특이점도 경계도 없다. 따라서 우리가 허시간이라고 부르는 것이 아마도 실제로는 더 근본적이며, 우리가 실시간이라고 부르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우주 모습을 기술하기에 편리하도록 고안한 인위적인 개념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과학이론이란 우리 관찰결과를 기술하기 위해서 만든 수학 모형에 불과하다. 과학 이론이란 우리 마음속에만 존재할 뿐이다. 따라서 실시간, 허시간, 어느 것이 진짜일지 물음은 무의미하다. 중요한 것은 어느 쪽이 더 유용한 기술(記述)인가이다.

 

 

우주가 출발점을 가지고 있는 한, 우리는 창조자가 있다고 상상할 수 있다. 하지만 만약 우주가 진정한 의미에서 완전히 자기-충족적이고 어떠한 경계나 가장자리도 갖고 있지 않다면, 우주는 시작도 끝도 없을 것이다. 우주는 그저 존재할 따름이다. 그렇게 된다면, 과연 창조자가 설 자리는 어디인가!"

 

 

 

 

 

 


아리스토텔레스 생각이 갈릴레오나 뉴턴 생각과 크게 차이를 보였던 점은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지상태를 다른 상태들보다 우선하는 상태로 믿었고, 모든 물체는 어떤 힘이나 충격이 주어지지 않는 한 정지상태를 택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뉴턴 법칙에 따르면, 정지에 대한 유일한 기준이란 없게 된다. 다시 말해서 물체 A가 정지해 있고 물체 B가 물체 A에 대해서 상대적으로 일정한 속도로 움직인다고 말할 수 있으며, 마찬가지로 물체 B가 정지해 있고 물체 A가 움직이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는 것이다.

정지에 대한 절대적인 기준이 없다는 점은 서로 다른 시간에 일어난 두 사건이 공간상 같은 위치에서 발생한 것인지를 결정할 수 없음을 뜻한다. 예를 들면, 전차 위 탁구공이 위로 뛰어올랐다가 아래로 떨어져서 1초 동안 같은 장소에 두 번 튀겼다고 가정하자. 선로 위에 서 있는 사람에게 이 두 차례의 튐은 13미터 간격을 두고 이루어진 것처럼 보일 것이다. 공이 두 번 튀기는 동안 전차가 선로를 따라서 13미터 진행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절대적인 정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믿었던 것처럼 공간상의 절대적인 위치에 어떤 사건을 부여할 수는 없음을 뜻한다. 사건들의 위치와 그 사이 거리는 전차 위에 있는 사람과 선로 위에 있는 사람에게 각기 다르다. 그리고 한 사람의 위치를 다른 사람 위치보다 선호해야 할 이유도 없다.

뉴턴은 이러한 이른바 절대 위치 또는 절대 공간의 부재라는 문제 때문에 무척 곤혹스러워했다. 그 사실은 절대자인 신에 대한 자신 믿음과 모순을 빚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는 자신이 수립한 법칙에 이미 그러한 사실이 함축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절대 공간 부재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했다. 그의 이러한 비합리적인 믿음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비판받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인물이 버클리 주교였는데 그는 물질적 대상과 공간, 시간이란 환상에 불과하다고 믿은 철학자였다.

아리스토텔레스와 뉴턴은 모두 절대 시간을 믿었다. 그들은 우리가 두 사건 사이 시간 간격을 명확하게 측정할 수 있으며, 정확한 시계를 사용하기만 한다면 이 시간은 누가 측정하든 똑같다고 생각했다. 시간은 공간과는 완전히 분리되었고 아무런 관련도 없는 전혀 별개의 무엇이었다. 이것은 오늘날까지도 대부분 사람들이 상식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생각이다. 하지만 우리는 시간과 공간에 대한 우리 관념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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