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모든 역사학은 지금까지도 문명시기보다 더 오래된 것이라고 볼 수 없는 일부일처제 개별 가족을 핵심으로 해서 사회와 국가가 서서히 형성되어 왔다는 황당무계한 전제에서 출발하고 있다. 이 전제는 특히 18세기 이래 감히 침범할 수 없는 것으로 되어있다.

 

 

국가 탄생의 모든 시작은 분업이었다. 목축민과 가축 떼가 없는 부족 간 분업, 따라서 서로 병존하는 상이한 두 생산수준의 규칙적 교환이 나타났다. 이후 분업이 한층 더 나아가 농업과 수공업 간에 일어나며, 그와 함께 같은 생산물 중에서 직접 교환을 위한 부분 생산이 한층 더 늘어난다. 이에 따라 개별적 생산자 간 교환은 사회를 위해 필수 불가결한 요소가 된다. 문명은 이 모든 기존의 분업을, 특히 도시와 농촌 간 대립을 날카롭게 하며 확고히 하고 강화하며, 나아가 문명시기 고유의 결정적 의미를 갖는 제3의 분업을 추가했다. 즉 문명은 생산에도 종사하지 않고 생산물의 교환에만 종사하는 계급인 ‘상인’을 낳았다.

 

 

기존에는 계급 형성의 모든 원인이 거의 전적으로 생산과 연결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제 상인 계급은 생산에는 전혀 참여하지 않고도 생산에 대한 지도권을 총체적으로 장악하여 생산자들을 경제적으로 자기에게 예속시키고, 어떤 두 생산자 간의 필수불가결한 중개자가 되어 양자를 착취한다. 생산자에게 교환과 관련된 노력과 위험을 덜어 주고 생산물 판로를 원거리 시장까지 확대시켜 줌으로써 주만 중 가장 유익한 계급이라는 구실 하에 ‘진짜 사회적 식객’인 하나의 기생계급이 형성된 것이다.

 

 

상인 계급은 실제로는 극히 보잘것없는 노력의 보수로 국내와 국외 생산으로부터 고량진미를 짜냈으며, 방대한 부와 이에 상응하는 사회 영향력을 신속히 획득해 나갔다. 바로 그렇기에 문명기를 통해 더욱 명예로운 지위를 얻으며, 생산을 더욱더 자기에게 예속시킴으로써 마침내 자신 역시 주기적 경제 공황이라는 독특한 산물을 배태하는 데까지 이른다.

 

 

그런데 상인층과 함께 금속화폐가 출현하며 이와 더불어 비생산자가 생산자와 생산물을 지배하는 새로운 수단이 나타났다. 다른 모든 상품을 은폐된 형태로 내포하는 상품 중의 상품, 즉 마음만 내키면 어떠한 물건으로도 바꿔 놓을 수 있는 요술수단이 발견된 것이다. 그것을 소유한 자가 생산 세계를 지배했다. 상인이 먼저 화폐를 소유했다. 그에게는 확실히 화폐숭배가 있었다. 상인은 화폐 이외 다른 모든 형태의 부는 가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실천을 통해 증명해 보였다. 화폐 권력이 당시 그렇게 원시적 조야성과 폭력성을 갖고 나타난 때는 결코 없었다. 화폐를 주고 상품을 구매한 뒤부터 화폐 대부가 나타났고, 이자와 고리대금업이 등장했다. 고대 아테네나 로마 입법은 무자비하고 철저하게 채무자를 채권자인 고리대금업자의 유린에 내맡겼다.

 

 

상품과 노예의 축적과 함께, 또 화폐의 축적과 함께 이제는 토지 축적이 나타났다. 분할지에 대한 개인 점유권은 본래 씨족 또는 부족에 부여된 것인데, 이제는 점유권이 강화되어 분할지는 세습소유권으로서 개인에게 복속되었다. 곧 완전하고도 자유로운 토지 소유는 토지를 아무런 장애 없이 무제한으로 점유할 가능성을 의미했을 뿐 아니라, 토지를 양도할 가능성도 의미했다. 토지가 씨족 소유였을 때는 이러한 가능성이 없었다. 하지만 새로운 토지 소유자가 씨족 및 부족의 우선적 소유권을 끝내 버렸을 때, 자기와 토지를 굳게 연결시키고 있던 유대 역시 끊어버렸다. 이제 토지는 판매될 수 있으며 저당 잡혀도 좋은 상품이 되었다. 이제부터는 저당권이 토지 소유의 뒤를 집요하게 따라다니게 된다.

 

 

이렇듯 상업의 확대와 함께, 또 화폐와 고리대금업, 토지소유, 저당권과 함께 소수 계급의 수중으로 부의 집적과 집중이 빠른 속도로 이루어졌다. 이와 더불어 대중의 궁핍화가 심화되었으며 빈민 대중은 날로 늘어났다. 재산에 따른 자유민의 계급분화와 함께, 특히 노예가 상당히 증가되었으며, 그들의 강제노동은 전체 사회의 상부 구조의 바탕을 이루었다.

 

 

이러한 변화 속에 씨족제도는 자신과 관계없이 발전한 새로운 요소 앞에 무력했다. 씨족제도의 전제조건은 한 씨족 혹은 부족 성원이 한 지역에서 자신들끼리만 공동으로 모여 사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 씨족과 부족들은 서로 뒤섞여 있었으며 노예와 피보호민, 외국인들도 자유민과 뒤섞여 살았다. 정착생활은 상업활동, 직업의 변경, 토지소유권 이동 등으로 거주지가 빈번하게 바뀌고 불안정해짐으로써 줄곧 파괴되었다. 씨족집단 성원은 더 이상 자신 공동 관심사를 토의하기 위해 모일 수 없었으며, 종교적 제전과 같은 그리 중요치 않은 일이나 토의하는데 그쳤다.

 

 

분업으로 인해 발생한 수공업자 집단의 이해관계, 그리고 농촌과 대립되는 도시의 특수한 욕구는 새로운 기관을 필요로 했다. 새로운 기관은 씨족제도 밖에서 씨족제도와 병렬적으로 대립하면서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대립 갈등은 부자와 빈자, 고리대금업자와 채무자가 동일한 씨족 내 같이 있게 되면서부터 극도에 달했다. 새로운 사회는 경제생활의 온갖 조건들로 말미암아 자유민과 노예, 착취하는 부자와 착취당하는 빈자로 분열될 수밖에 없었다. 씨족제도는 종말을 고했다. 그것은 분업과 그 산물인 계급으로 사회가 분열되면서 파멸되었다. 결국 씨족제도는 국가로 대체되었다.

 

 

이처럼 국가는 결코 외부로부터 사회에 강요된 권력이 아니다. 국가는 일정한 발전 단계에 있는 사회 산물이다. 국가는 사회가 해결할 수 없는 자기모순에 빠졌으며, 자신 힘으로는 벗어날 수 없는 불상용적인 대립으로 분열했다는 사실을 고백한 것이나 다름없다. 경제적으로 서로 모순되어 이해 관계를 가진 계급들이 무익한 투쟁에서 자신과 사회를 파멸시키지 못하도록 하려면 외관상 사회 위에 서 있는 권력, 즉 충돌을 완화시켜 사회를 ‘질서’ 한계 내에 유지시킬 권력이 필요했다. 사회로부터 발생했으나, 그 위에 올라서서 사회와는 더욱 멀어져 가는 권력이 바로 국가다.

 

 

국가의 공권력은 계급 대립이 아직 제대로 발전하지 않은 사회에서는 아주 미미하고, 거의 있으나마나 한 것일 수 있다. 공권력은 국가 내부에서 계급 모순이 첨예화됨에 따라서 강화된다. 오늘날 유럽만 가지고 보더라도, 계급투쟁과 정복 전쟁으로 말미암아 공권력은 전체 사회를, 아니 국가까지도 집어삼킬 지경에 이르렀다. 공권력을 유지하려면 시민의 납부금, 즉 조세가 필요하다. 씨족사회는 이런 것을 전혀 몰랐다. 문명 발전과 더불어 조세조차 불충분하게 된다. 국가는 채권을 발행해 채무를 진다. 즉 국체를 발행한다.

 

 

관리들은 공권력과 조세징수권을 가짐으로써 사회 기관이면서도 사회 위에 군림한다. 그들은 자신들을 특히 신성불가침한 존재로 만드는 예외적인 법률로써 특권을 획득한다. 국가는 계급 간 대립을 억제하기 위해서 생겨났기에 또한 동시에 계급들이 충돌하면서 발생했기에 대개 가장 강력한 계급, 경제적으로 지배하는 계급의 국가다. 이 계급은 국가 힘을 빌려 정치적으로도 지배하는 계급이 된다. 그리하여 피억압계급을 압박하고 착취하기 위한 새로운 수단을 획득한다. 현대의 대의제 국가는 자본이 임금노동을 착취하기 위한 도구다.

 

 

역사에서 알려진 대부분 국가에서 시민들에게 부여하는 권리는 그들 재산 상태와 비례한다. 이는 국가가 유산계급을 옹호하기 위한 조직이라는 사실을 단적으로 말해 준다. 그렇지만 현대 사회의 민주주의 공화국은 공식적으로 재산에 따른 차별을 하지 않고 권력을 간접적으로 행사한다. 하지만 그 대신 한층 더 확실하게 행사한다. 한편으로는 관리를 직접 매수하는 형식으로(가장 전형적인 표본은 미국이다), 다른 한편으로 정부와 주식거래소의 동맹 형식으로 행사한다. 이 동맹은 국채가 증가하면 할수록, 또 주식회사가 증권거래소를 자신 활동중심으로 삼으면 삼을수록 쉽사리 실현된다.

 

 

요컨대 국가는 아득한 옛날부터 존재했던 것이 아니다. 국가 없이도 사회는 존재했으며, 국가와 국가 권력에 관한 개념이 없었던 사회도 있었다. 계급으로서의 사회적 분열과 이와 필연적으로 연결된 경제 발전의 일정 단계에서 국가는 필요한 것이 되고 말았다. 우리는 계급의 존재가 필연적이 아닐 뿐 아니라, 생산에 직접적인 장애가 되는 발전 단계로 급속히 접근하고 있다. 계급 소멸은 과거에 계급이 생겨날 때처럼 불가피하다. 계급 소멸과 함께 국가도 불가피하게 사라질 것이다. 생산자들이 자유롭고 평등한 결합에 기초하여 생산을 새로이 조직하는 사회에서는 국가는 그것이 마땅히 가야 할 곳, 즉 고대박물관으로 보내 물레나 청동도끼와 나란히 진열된 것이다.

 

 

사회 이익은 무조건적으로 개인 이익보다 우선한다. 동시에 이 양자 사이에 공정하고 조화로운 관계가 성립해야 한다. 만일 과거와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진보가 항상 법칙이라면, 단순히 부(富)만 추구하는 것이 인간의 궁극적인 사명은 아니다. 부를 둘도 없는 궁극적인 목표로 삼는 그런 역사 과정의 결말로서 사회 멸망이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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