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10월 혁명을 다룬 르포르타주의 고전 중의 고전. 이 책을 통해 2월 혁명 이후 등장한 수없이 많은 좌파 세력들 사이에서 어떻게 볼셰비키가 혁명을 성공시켰는지를 보고 있자면 역시 인생 뿐만 아니라 역사도 타이밍인듯 하다. 레닌과 트로츠키가 바로 그 때 무수한 반대를 무릅쓰고 무장봉기를 선택하지 않았다면, 우경화된 임시정부와 부르주아지 세력에 의해 제거되었을 것이다. 어쨌든 극도로 억압받던 노동자, 농민 세력에 의해 혁명은 촉발되었겠지만 그 시기는 한참 뒤였을 터. 역사의 흐름은 민중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확신하지만, 이렇게 탁월한 개인이 변곡점을 만들어내는 경우가 왕왕 있다. 그리고 놀라운 건 이렇게 엄청난 혁명이 벌어지는 과정에서 혁명의 규모에 비해 사상자가 그렇게 많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후의 적백 내전, 스탈린의 숙청, 독소전에서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죽어나갔다는 점에서 10월 혁명은 순수한 열정과 혁명에 대한 믿음으로 이루어낸 지극히 드문 사건이 아닐까 싶다. 저자 존 리드가 좀더 오래 살아서 러시아 적백 내전도 기록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 책에 실린 단편들은 그간의 김영하 단편집 가운데서도 특별히 길이가 짧다. 두 세 페이지 가량의 엽편소설도 네 편이나 실려 있다. 비록 그 길이는 짧지만 장편에서 볼 수 있는 김영하 특유의 매력적인 상황/구도 설정은 여전하다. 결혼을 앞둔 여자친구를 납치하다시피 동해안으로 끌고 온 대학원생, 백화점 좀도둑을 잡으러 다니는 비위 경찰, 연쇄살인마에게 가족을 잃고 아버지의 유산으로 부유한 삶을 사는 여대생 등등. 그런데 정작 김영하는 이렇게 흥미로운 플롯을 짜 놓고는 갑자기 이야기를 툭 끝내 버린다. 어찌 보면 레이먼드 카버 스럽기도 한데, 카버 보다는 긴장이 좀 느슨한 편이지만 뒷이야기가 참 아쉽기는 마찬가지다. 책을 다 읽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 주인공들의 후일담을 한 번 상상해 보라는 뜻일까. 중편이었으면 더욱 멋졌을 하나하나의 소재들이 아깝기까지 하다.
제목을 다소 가볍게 번역한 감이 있으나(원제는 ˝Were you born on the wrong continent?˝다) 내용은 꽤 읽어볼만 하다. 금융업 위주의 자본주의를 운영하다 외환위기를 맞았던 미국과 제조업을 탄탄하게 발전시켜 온 독일의 노동환경을 비교하며, 노동자들의 권익을 적극적으로 보호하는 독일의 제도들이 일반적인 상식과 달리 독일 경제를 위기로부터 구해내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누구나 직장평의회 위원으로 뽑혀 노사간 협의에 참여할 수 있어 노동자들의 정치 참여 기회도 넓어지고, 이사회의 절반을 노동자 대표가 차지하는 노사공동결정제도는 CEO 등 임원들의 독단과 전횡을 방지하고 진정한 Bottom-up 의사결정을 이뤄낼 수 있다. 미국식 자본주의 하에서는 회사는 항상 실행력과 스피드를 강조하지만 Top-down으로 일방적인 지시가 내려오기 때문에 직원들은 왜 이 일을 해야하는지 납득하지 못하고 그래서 일이 잘 진행되지 않는다. 반면 독일식 모델에서는 경영상의 문제를 노사가 합의해야 하므로 의사결정은 오래 걸리지만, 일단 결정되면 모두가 동의하였기 때문에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또한 이 과정에서 서로 간에 굳건한 신뢰가 쌓인다. 이 신뢰는 회사를 넘어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는 순기능을 한다. 그리고 이러한 촘촘한 상호작용은 엄청난 양의 집단 지식의 축적을 가능케 한다. 제조업을 포기하고 금융업으로 엄청난 부를 쌓은 미국은 2008년 월가에서 비롯된 금융 위기로 타격을 입었지만, 공장 이전 및 폐업을 극히 어렵게 제한한 독일은 제조업을 지속적으로 발전시키고 기술 인력을 육성하여 이 시기를 순조롭게 헤쳐나갔다. 물론 여기엔 유로화 통합으로 인한 엄청난 반사이익이 있었지만. 이 책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모르겠지만(마이클 무어의 영화를 모두 믿을 수 없는 것과 비슷하다. 복지국가에 대한 무차별적인 환상은 역효과를 부른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노동자의 권익이 바닥이기는 마찬가지이고 미국식 자본주의에 대한 회의가 짙어지고 있는 지금, 독일의 방식도 검토해 볼 만하지 않을까?
2007년에 출간된 김애란의 단편집. 작년에 읽었던 <바깥은 여름>이 워낙 인상깊었던지라 김애란에 대한 기대감이 너무 컸나 보다. 단편들의 밀도도 떨어지고, 각 작품들에 등장하는 키워드들이 지나치게 중첩된다. 노량진 또는 신림동, 공시 학원 또는 재수 학원, 고시생 또는 재수생, 아니면 학원 강사. 반지하 단칸방 또는 옥탑방. 비슷비슷한 청춘의 비루함.시험에 미래를 저당잡힌 초라한 인생들의 이야기가 죽 나열되는 느낌이다. 비스무리한 배경과 분위기의 작품들이 계속 등장하니 특색도 개성도 없다. 그러니 당연히 기억에 남는 장면도 드물다. 김애란의 다른 작품을 읽어봐야할 지 망설여진다. 이 책만 봐서는 김애란이 왜 그리 문단의 찬사를 받는 소설가인지 납득이 안 갈 정도이니. 정말로 <바깥은 여름>이 그녀의 최고작이 될지, 또다른 걸작을 들고 나타날지 두고 볼 일이다.
소설의 서사를 중시하는 이에게 단편은 마뜩치 않다. 장편은 인물들의 성격, 갈등, 상황이 켜켜이 쌓여 충분한 질감을 가진 덩어리를 이루나, 단편은 채 익지 않은 풋과일 마냥 미성숙한 세계에 갇혀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독자가 푹 빠질 만한 세계관을 구축하기엔 단편은 너무 짧다.그래서 난 단편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사랑하는, 단편을 잘 쓰기로 소문난 작가들(하루키라든가, 김연수라든가...)의 작품들도 읽는 내내 감탄했지만 몇 달만 지나도 기억이 가물가물해진다.그런데 김경욱의 단편집 <위험한 독서>는 좀 다른 느낌이다. 농후한 세계관 구축이 힘들다는 단편의 한계는 어쩔 수 없지만, 그가 만들어낸 이야기의 매력이 이를 상쇄하고도 남는다. 게다가 단편답지 않게 뛰어난 디테일 - <고독을 빌려드립니다>의 홈쇼핑 전화 상담 지침이나 <맥도날드 사수 대작전>에 묘사된 알바생 업무 프로세스를 보고 있자면 작가가 진짜 이런 일을 해본 게 아닐까 하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 은 작품의 설득력을 배가시킨다.김경욱의 문장은 간결하고 자연스럽다. 하지만 그 속에 담긴 공력이 만만치 않다. 잘 훈련된 운동선수처럼 능수능란하고 거침없다. 소설 속 인물들의 감정과 상황을 이렇게 적확한 단어와 문장으로 표현하는 작가를 참 오랜만에 만났다. 소설의 가치는 소설을 읽을 때가 아니라 소설을 읽고 난 뒤 그 내용을 곱씹어 되새길 때 비로소 그 속살을 드러낸다. 등장 인물들의 심리를, 그들의 뒷이야기를 상상하면서 소설 속을 유유히 헤엄치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머릿 속은 희열로 가득해진다. 김경욱의 단편들은 제법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