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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베르토 에코 특별판 박스 세트 - 전2권 - 미친 세상을 이해하는 척하는 방법 +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움베르토 에코 지음, 박종대.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1월
평점 :
품절

움베르토 에코(1932-2016)는 이탈리아의 기호학자, 철학자, 역사학자, 미학자, 소설가이다. 9개 국어를 하고 엄청난 기억력의 소유자이다. 출판사에 다니는 여자친구의 권유로 우연히 소설을 쓰게 되었다는데, 1980년 그의 첫 작품이 바로 <장미의 이름>이다. 어렵기로 소문난 그의 두번째 작품 <푸코의 진자>와 자전적 장편소설 <전날의 섬>이 있다. 이 책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은 1985년 이래 주간지에 발표한 글들을 모은 수필집이다.
웃기다. 기발하다. 엄청나게 과장하고 허풍이 난무하지만 그 상황이 100% 이해가 된다. 저자는 날카롭고 예리하게 관찰하고 시니컬하게 웃는 사람이다.
당장 작동시켜야하는데 건전지가 들어있지 않은 제품에 대한 불만. 뭐가 그리 중요한 정보라고 이탈리아에서 운전면허증을 잃어버리면 재발급을 위해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전산 오류가 있다면 실물재고를 확인하고 체크아웃을 해줘야하는데 무조건 전산에 나온 금액을 요구하는 융통성 없는 호텔직원. 너무 어려운 사용설명서나 너무 뻔한 내용의 쓰레기같은 설명서. 화가 나지만 웃어야하는 상황들이다.
"아메리칸 커피 중에는 더러 몹시 뜨겁기만 하고 맛은 지지리 없는 것이 있다. 대개 역의 구내식당에서 사람들을 몰살시킬 목적으로 사용하는 보온병 재질의 플라스틱 컵에 따라 마시는 펄펄 끓는 고약한 혼합물 말이다(31)."
정성스럽게 바리스타가 한 잔 한 잔 뽑아준 커피와 대량으로 제공되는 한 잔의 미국 커피는 그 맛을 서로 비교할 수 없다. 에스프레소의 나라에서 온 에코가 미국 커피에 얼마나 실망했을지 상상이 간다. 비유가 유머러스하지만 화가 나는데 웃을 수 밖에 없는 저자의 표정이 생생히 그려진다.
뒤로 갈수록 철학적이고 과학적, 수학적인 문제들도 이야기하는데 꽤 어렵다.
헤라클레이토스의 유명한 명제 <같은 강물에 두 번 몸을 담그지 못한다>가 거짓임을 증명하는 것은 반만 이해했다. 물고기가 강물과 같은 속도로 헤엄치고 있다면 계속 같은 강물에 몸을 담그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헤엄치는 속도가 강물의 흐름보다 빠르면 절대 같은 강물에 몸을 담그지 못하게 될것이다. 서너번 읽었는데 이 정도 이해하였다.
학생시절 기숙사 닫는 시간에 맞추느라 연극의 뒤를 보지 못한 에코와 표를 파느라 앞부분을 보지 못한 친구가 노년에 만나 그 앞뒤 이야기를 나누며 이야기의 줄거리를 온전히 이해하는 장면은 흐뭇하다. 그 오랜 시간동안 연극의 앞과 뒤를 각자 상상만 했던 것을 실재로 들으면서 뭔가를 얻지만, 뭔가를 잃는 느낌도 든다는 것. 인생이란 것도 남들이 벌여놓은 판에 뛰어 들어 처음도 끝도 보지 못하고 가는 것이라고 비유한다. 멋진 연결이다.
"이미 판이 벌어진 뒤에 들어왔다가 남들이 어떻게 될지를 알지 못한 채 판을 떠나야 하는 것이 인생이라면 우리는 바로 그 인생처럼 연극을 경험한 셈이다. 혹시 우리는 그런 특권을 누린 자의 풋풋함을 잃게 되는 것은 아닐까?" (179)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만 읽어보았다면 시니컬한 이 에세이도 시도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빌 브라이슨의 투정이 생각날 듯하다.
* 리딩투데이 선물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