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밥바라기별
황석영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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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은 한국 문단의 중추적 존재로 그의 체험과 삶은 우리 문학을 기름지게 하는 자양분으로 그 기능을 충실히 하고 있다
그의 소설들 <객지> <몰개월의 새><한씨연대기><섬섬옥수><돼지꿈>과 같은 단편들을 읽었다 아직 그의 장편들은 나는 접해보지 못했다 
단편들을 읽고 느낀 소감들은 이 작가는 정말 몸으로 소설을 쓰는구나 그 치열한 현장대결의 정신이 작품에 온기를 불어넣고 약동하는 생명력을 부여한다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약간 부족한 문장력임에도 작품 전체가 팔딱팔딱 뛰는 맥박을 갖추고 있다는 흐뭇하고 따뜻한 느낌을 가졌었다
이제 황혼에 접어든 그 노작가가 자신의 젊은 시절을 회상하며 청춘이 읽을 성장소설을 그려내었다
작가의 젊은시절을 대변하듯 혹은 그의 젊은 시절의 열정을 투영한 듯 역시나 이번 소설에도 그의 땀과 눈물이 가득 담긴 체험들은 그대로 활자가 되어 작품 곳 곳에 배치되어 있었다
주인공은 바로 작가 자신의 분신인 것처럼 전국을 방황하며 청춘의 통과제례인 열병을 앓고 있었다 나는 그 열병의 근원이 무엇일까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예나 지금이나 동서 고금 할 것 없이 젊은 꿈꾸고 행동하기에 아프고 그 아픈 만큼 세상을 알아나가는 방식이 깊어진다고 생각했다 그럼 그 주인공의 아픔은 어디에서 기원하는걸까 그 시대의 암울한 어둠의 깊이였을까 아니면 주인공의 개인적이고 사적인 이유였을까
아니었다 그것은 한 마디로 단언해서 젊음의 특권인 아픔이었다 오직 젊음만이 아파할 수있었고 젊음만이 고뇌할 수 있었던 그 탓에서 아름다운 방황이 나오고 있었다 잡히지 않는 무지개같은 젊은 날의 열정과 그 혼돈 그리고 아름다운 포기와 방황들이 그 시대나 지금이나 시간을 떠나서 동일한 공간을 점유하고 읽는 이의 의식을 물들여갔다
책을 닫으며 아름답고 소중한 체험이 아로새겨진 잘 쓰여진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젊은 시절의 아픔이란 무엇인가를 재삼 다시 숙고해 보게 되었다
젊음은 언제나 거기 있기에 젊음이고 그 젊음으로 인해 인간은 상처 받지만 그 젊음의 푸른 날이 기억에 존재하는 한 인간은 영원히 부유할 수 있다고 믿음 아닌 믿음을 가져 보게 되었다 
아마도 그 기억들은 사람의 마음속에서 가장 깊은 곳에 자리잡고 원체험을 구성하고 있겠지
그러니 노작가도 어린 시절의 그 무엇이 이야기하고 싶어서 그 아름다운 방황을 붙잡기 위해 이런 소설을 쓰신 것이라고 나름 짐작해 볼 뿐이다
노작가는 이 소설을 어린 시절 언제나 자신을 기다리던 어머니께 바친다고 했다
좋다 어머니는 어린 시절의 직접적인  통로이다 어머니가 있고 밝은 햇빛이 비치고 눈부신 날들이 있었던 바로 그 시절의 그 시점에 이 소설은 헌정되어야 한다
시간은 흘러 이제는 세상이 작가가 소년 시절을 보내던 때와는 많이 다르게 되었다 가히 상전벽해의 엄청난 변화가 있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이 낡은 듯한 옛 시절에 대한 이야기가 여전한 유효기간을 가지고 통용되는 건 바로 우리가 인간이라는 단순하지만 분명한 사실이기에 그럴 것이다 인간은 어느 시절에라도 분명 고뇌하고 울고 웃으며 앞날을 알수 없는 방황으로 그 푸르른 시절을 통과하기에 그래서 이 소설은 작금의 사이버월드의 만연에도 우리들의 가슴에 깃들게 되는 것일 터다
노작가는 앞을로 어떤 소설을 쓸 것인가에 대하여 아직은 소식이 없다 그렇지만 작가에게 거는 독자들의 두터운 기대는 그의 작품들이 하나같이 성실한 세공을 거쳐 우리에게 도착한 그의 일부이기 때문일 것이다 노작가의 회고어린 청춘의 이야기는 그 시절을 경험하지 못한 우리에게도 가슴 시리고 고끝이 시큰한 가장 인간적인 울림을 주었다
바로 이야기의 힘 인간의 힘이 작품을 말없이 관통하기 때문이었다
젊음의 한 페이지를 불러내 소상하고 또 솔직하게 고백하듯 써내려간 이 작품으로 나는 청춘라는 무규범하고 혼란한 한 시대에 대한 어떤 보고서를 쓸 수 있었다
젊음은 원래 아프게 되어 있는 거야 그 젊음속에서만이 앞으로 나아갈 방향이 나타난다는 걸
그러니 열심히 살아 뒤돌아 보지 말고
자신의 모든 것이었던 젊은 시절을 소중히 펼쳐내 아름다운 도면의 건축을 구성해 준 작가에게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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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맥 매카시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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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을 덮었다 모호하고 혼돈스러운 기분 나쁜 복잡함이 머릿속을 둥둥 떠다니며 의미의 무를 형성한다 이책이 말할려고 하던 종국의 실체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알 수가 없다 다만 작가의 의도대로 독자들이 공감해 줄까 하는 의문만이 남는다
이 글을 쓰기에 앞서 먼저 내가 비기독교인이라는 것을 밝힌다 나는 그것이 자랑스러운 일이 아님을 안다 그러나 그렇다고 부끄러운 일도 아니니 다만 이 소설을 읽는데 있어 성서와의 연관성을 강하게 의식해야 했으므로 기독교에 대해 구원에 대해 그리고 종말론에 대해 알고 있지 못함이 기능적으로 불편하게 작용했으므로 그것을 안타까워한다 그래서 이 글이 기독교인들이 혹시 보게 되었을 때 빈약한 논거와 부실한 논리를 가지게 될까봐 그것이 걱정된다


이 책의 구성은 단조롭다 못해 황량하다 정말 텅 비워 걸릴 것이 없는 묵시록의 세계이다
세계는 멸망했고 사람이라고는 두 사람 아버지와 아들 뿐이다 그 세계속에서 존재하는 것은 단지 이 두 사람뿐이다 아내이자 어머니도 없고 친구도 없으며 타인의 흔적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디 존재하지 않는 것이 인간 뿐이랴 이 묵시록의 세계에는 너무나 존재하지 않는 것이 많다 심지어 당연히 존재해야 할 세계 파멸의 원인조차도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묵시록의 종말이라는 상태를 설명할 뿐이고 암시할 뿐이다 그래서 종말이란 하나의 실현된 상황이 아니라 문학적으로 설정한 허구이고 하나의 관념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여기서 강한 의문이 들 수 밖에 없는데 그렇다면 왜 이런 관념적인 종말의 상황 설정이 필부득이하게 당위성을 가져야 하느냐는 물음이 고개를 쳐들게 된다 어째서 왜 인간은 종말을 겪어야 하나 어째서 여기 지금의 세계가 멸망하고 묵시의 세계가 현전으로 이 셰계를 대신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종말의 원인은 무엇이며 종말을 실행하는 주체는 누구인가 하나님인가 이 종말은 요한계시록에 실린 대로 거행된 것인가 이미 예정되어 있던 것인가 그렇다면 그 예정돼 있던 종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모든 것이 의문이고 모든 것이 그 답이 부재하며 모든 것이 고요한 침묵속에 빠져 있을 뿐이다 이제 살아남은 인간은 그 의미의 부재를 벗어나 새로운 행동을 시작해야 한다 비록 사상의 새로운 변혁이 뒷받침되어 있지 않더라도 그들은 새롭게 도전해야 한다 이 종말을 견디어 낼 것인가 아니면 이 종말에서 포기해야 할 것인가 희망은 보이지 않는다 가도 가도 아무 것도 나타나지 않는 길을 가듯이 전망은 애초부터 부재한다 부재와 어딘가 있을 것이라는 희망에 대한 어렴풋한 희미한 예감 그러나 그 희미한 예감마저도 허용하지 않는 완전한 공허 이세계는 정말 파멸할 수 밖에 없는 것인가 그 파멸의 징후앞에 두 사람 아버지와 아들은 실존적으로 완전히 차단되고 고립되어 있다 이는 인류의 모습일까 과연 그렇게도 인류의 전망에는 암울한 절망만이 있을까


이 소설이 작동하는 방식은 모든 것의 생략과 비움과 차단과 가리기로 극도의 비좁은 전망(이걸 전망이라고 불러도 좋을지 모르겠지만)을 제시하는 것이다 세계는 파멸의 어두운 예감으로 침몰하고 있고 살아남은 자들은 아무 것도 행동을 취하지 못하며 오직 목숨을 이어가기 위한작은 몸짓이 그들의 최선의 대안이라는 걸 생각할 때 작가의 비극적 세계관은 절정을 이룬다
세계는 그토록 치명적으로 위협적인 불안을 두 사람에게 가하는데도 살아남은 인류는 도무지 생존의 근거와 방법을 찾지 못한다
과연 구원이란 것은 존재하는가 이 두 사람에게 구원이 찾아올까
찾아오지 못할 구원이라면 두 사람이 스스로 찾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두 사람이 스스로 찾을 수는 있는가 그 구원을 말이다 그러나 구원에 대한 어떠한 전망도 없이 아무런 해결책도 없이 그저 존재하고만 있을 뿐이다 그렇다 구원은 없다 다만 살아남아 동물적으로 존재하고만 있을 뿐이다 이 소설이 해체하고 있는 것은 비단 소설의 구성요소들 뿐만이 아니라 인간의 기본적 조건들과 인간으로 존재하게 만드는 요소들까지 모조리 완전히 부숴버리고 있다 과연 엄청난 소설이긴 하다
이토록 지루하고 또 이토록 공허하며 또 이토록 엄청나게 세상을 부수어 버리고 작가는 그 비통의 절대공간에서 과연 무엇을 보고 싶었던 것일까 그 절대적 상황에서 희망 대신 교훈을 얻으라고 말하고 싶었던 걸까 결국 인간정신의 승리이자 고귀한 인간의 정신에 대한 헌사라는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을 거꾸로 가장 비참하게 리메이크하여 가장 지독한 비인간적인 모독의 노래를 만든다면 바로 이 소설이 될 것같다
온통 생략된 채 암시되어 있는 기조를 분석해 볼 때 이 소설은 인간에 대한 가장 극심하고 가장 심오한 모욕이 될 것 같다 아주 점잖고 또 예의바르게 그러나 신랄하기로는 절대적일 정도로 작가는 이 세상에 대한 페시미즘을 가지고 있다고 봐야 한다 왜냐구? 인간이란 존재할 희망이 없어서 인류 자체가 절멸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가 제시한 상황들에 면면히 배어 흥건하게 흘러 넘치고 있으니까!

이 소설을 읽고 나면 두렵다기 보다는 도저한 그 절망에 감염되어 세상이 싫어진다 도대체 모든 것이 사라지고 난 뒤의 세상에 무슨 호감이 가겠는가
작가의 의도가 인간이란 절멸해야할 존재들이고 그 심판의 날이 가까와졌다는 것이라고 제멋대로 단정해 본다면 이 책을 읽은 값은 되리라 그러나 작가양반 이 세상이 그렇게 전체가 사라지고 난다면 신이 보시기에 그리 즐거운 일이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요
무릇 창조된 것은 존재하는 것이 아름답습니다 비록 인간이 더러운 존재이긴 하나 묵시록의 현실은 고통스럽기만 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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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득이
김려령 지음 / 창비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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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득아

세상엔 마음대로  안되는 일들이 너무 많구나

아직 어린 너이기에 그러나 그런 너이기에 이런 말들을 넋두리라도 하구 싶구나

세상엔 수많은 고통이 있고 수많은 불행이 있으며 만사여의치 않은 일들이 도처에 매복병처럼 도사리고 있느 것이 인생이야

그런 인생의 강적들을 향해 하이킥이라도 날려주고 싶지만 그러나 언제나 현실은 헤비급 무에타이 복서같은 무섭고 상대가 안되는 그런 선수와의 경기처럼 무기력하고 갑갑하며 맥빠지는 일방적인 TKO패 경기 같은 것이 인생이야

너도 서서히 그런 인생의 불행에 대해 눈을 떠가는 나이라고 생각해

완득아

너의 두 어깨에 걸린 짐이 너무 무겁구나

날 때부터 남들보다 왜소하여 어린아이들이 난장이라고 부르기 딱 좋은 장애인 아버지와 한국에서 천대받고 소외당하기 가장 쉬운 동남아시아 근로여성을 어머니로 둔 너의 인생이 그냥 지켜 보기엔 너무나 안타깝고 우울한 그림이야

세상의 불행이란 말이야 누구도 청하지 않는데도 그냥 저절로 찾아가는 불청객같이 어느 누구도 가리지 않고 그냥 무작정 무단점거 시위를 하는 사람처럼 그렇게 공격의사를 갖지

그런 불행이 너의 집에도 인정 사정 가릴 것 없이 찾아갔구나

그러나 다행히 너는 우울함 속에 자신을 가두지 않고 너의 운명에 로우킥 하이킥 원투 쓰리 차차차 투 쓰리 차차차 3단 콤보에 풋워킹에 보디 블로를 날리는 강인한 유쾌함을 가진 아이더구나

그런 너의 해맑은 청춘의 폭주를 보면서 나는 가슴 한 편이 안도하듯 편안해짐을 느꼈고 동시에 알 수 없는 감정이 들더구나

그 감정을 쪼개어 보면 20%의 웃음과 30%의 슬픔과 50%의 부러움이었어

나는 너 나이 때 그렇게 당당하게 세상의 시선과 편견 그리고 자신의 운명에 대항해 싸우는 방법을 몰랐거든

그저 음울하게 바라보며 하루 하루 답답하게 자신을 죽이며 어두운 자포자기의 시간들을 보냈던 게 다 였거든

그런데 너는 결손 가정에 여러 가지 아픈 상처를 안고 있으면서도 누구보다 밝고 씩씩하게 자신의 전존재를 던지며 불확실하지만 전진하는 미래에 대한 낙관으로 자신의 하루를 설계해 가는 그런 겨울 소나무 같은 아이였거든

참으로 비교가 되었지

어쨌든 현실이란 것은 참으로 팍팍하며 매정하고 불가항력이거든

그런 현실에 어퍼 컷을 먹이는 너의 훈훈한 푸르름에 눈물이 핑 돌다가도 웃음이 나와 너의 얼굴엔 바로 이 세상의 소외되고 차별받는 자의 쓰라린 고뇌보다는 티없이 맑고 건강한 생의 의지가 아로새겨져 있으니까

완득아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

자신의 슬픔을 끌고 가는 것이 있고,반대로 자신의 슬픔에 파묻혀 그속에 침몰하는 유형이 있어

너는 자신의 슬픔을 짊어지고 게다가 그 슬픔을 웃음으로 감추고 세상을 향해 힘차게 뛰어 달려들어가는 그런 풋풋하고 패기있는 부숴지지 않는 자아가 있어 좋아

나는 바로 그런 너의 건강한 완강함이 좋은 거야

완득아

이 세상에 그 많은 헤아릴 수 없는 슬픔이 모이고 모여 거대한 슬픔의 바다 고통의 바다 고해가 형성되고 그 고해의 바다속에서 누구나 자신만의 십자가를 지고 허우적거리며 눈물을 흘리는 것이 인생이라고 할 때 우리의 삶은 너무나 고달프고 초라해지며 슬픔으로 변하지 그런데 너는 그런 중생의 사바 세계를 살아가는 방법 중 하나가 웃음이란 커다란 가르침을 주었어

그랬어 이 세상이란 슬프고 억울하고 고통스러워 눈물이란 것이 저절로 흐르는 것이기도 하지만 마음 먹기에 따라서 그런 자신의 장매물과 업보도 얼마든지 웃음과 유머의 대상이 되고 극복가능한 것이란 것을 뜨거운 눈물로 가르쳐 주었지 그래서 너를 생각하면 슬며시 미소가 감돌아

세상은 살기엔 편하지 않은 것이 확실한데 그런데 왜 너를 보면 힘이 나고 용기가 솟으며 웃음이 절로 나는지 모를 일이야 푸훗

삶이란 정말 만만치가 않은 상대선수거든

그 선수와의 시합에서 나는 지금까지 상대전적 56전 56패야

앞으로  어떤 삶과의 승부가 어떻게 몇 번이나 남았는지는 알 수가 없어

그러나 지금은 그다지 두렵지는 않아

너를 보면서 동류의 사람들이 느끼는 위로의 안도를 얻었거든

까짓 거 져서 넘어지면 어때 다시 일어나서 원투 차차차 원투 쓰리 차차차 하이킥을 날리면 되지

세상은 그렇게 살벌하고 차가운 곳이지만 둘러 보면 아직도 몸 붙일 따뜻한 곳도 얼마 쯤은 있잖아

너의 그 입이 험하고 날라리선생인 똥주같은 그런 마음 따뜻한 사람이 있는 것을 보면 말이야

그러니 힘을 내서 살아갈거야 비록 이 세상이 험하고 무서운 곳이라고 해도 나만의 무에타이 콤보를 익혀서 정정당당하고 깨끗하게 이 세상과의 정식시합을 신청할 거야

세상은 웃는 자의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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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없는 생활
둥시 지음, 강경이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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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일본 문학의 세력이 대세이다 서점은 온통 일본 문학으로 채워져 있다 너도 나도 일본 문학을 읽는다

추리가 그 중 강세인 것 같고 추리이외에도 일본 문학이라면 덮어 놓고 읽는 것 같다

범람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일본 문학이라면 작가에 상관없이 수입해와 번역하고 있다

이런 일본 문학의 약진 속에서 중국 문학이 조금씩 들어오고 있다

위화를 위시해서 모옌 그리고 텐닝,쑤퉁,옌롄커등이 소개되고 있다

그 중 한 작가인 둥시의 작품도 들어왔다

 

이번 둥시의 책은 표제작 언어없는 생활을 필두로 5편의 중편이 담긴 책이다

둥시의 작품을 다 읽고 난 총평은 중국 문학이 가진 어떤 원초적이면서도 투박하지만 살아 있는 힘을 느끼게 한다는 것이었다

무라카미 하루키를 정점으로 보다 도시적이고 서구적인 생활을 직조하는 일본 소설과는 다른 농민적이고 서민적이면서도 전통적인 어떤 고유함을 느끼게 하는 소설이었다

인간의  악함을 저변에 충분히 인식하고 있는 위악성을 기조로 하여 삶에 있어서 잡히지 않는 행복과 소통 그리고 진실을 안타깝게 바라보고만 있는 둥시의 소설은 간결하면서도 해학이 있고 사실적이면서도 창의적인 인공성이 있으며 전통적인 세계에 속하면서도 인간 본연의 문제에 접근하려는 작가의 문제의식과 연결되어 있었다

작가의 의중을 내가 제대로 읽었는지는 미지수이지만 나는 이 소설들을 흥미있고 재미있게 소설 본래의 즐거움을 느끼며 따라갔다

때로 작가가 던져 놓은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생각에 잠기기도 하면서 중국 대륙의 드넓은 역사에 축적된  풍부한 인간사의 다양함에 빨려 들듯이 동화되었다 때에 따라서는 비약과 반전이 너무 지나치다고 느낄 때도 있었고 도에 넘치게 위악적이어서 놀라기도 했으며 유치하다고 느낀 부분도 더러 있었다

그러나 노신을 읽을 때와 마찬가지로 중국 대륙은 정말 인간들 속에서의 이야기가 풍부하고 넘쳐나서 소재가 너무 많구나하고 동일한 감흥을 느끼게 되었다

말하자면 사람사는 이야기의 끊이지 않은 다채로움이 한국 문학에 비해 더 높았다고 할 수 있었다

둥시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점은 결여된 시점이었다 무엇이 결여되어 있거나 결핍되어 있거나 상실해 가는 그런 구조였다

그 속에서 사람들은 닫힌 채로 소통이 불가능하게 되고 고립되며 죽어가거나 절망하고 끊임없이 상실해가는 것이다

그런 작가의 안배에 따라 극중 주인공들은 모두 고통을 입고 무언가르 잃으며 살아가고 있었다

중국의 현대사가 직접적으로 개입되어 있지는 않았지만 둥시의 작품들 역시 아프고 절망하며 괴뇌하고 있었다

역시 세상이란 고통과 절망이 일상사인 것인가

 

 

[언어 없는 생활]

귀머거리 아들과 장님이 된 아버지와 벙어리인 며느리가 살아가는 이야기는 근본적으로 결여되고 결핍된 사람들이 모여 살아가는 지난하고 어려운 삶을 보여 주었다 사람들은 모두들 이들 식구들을 이상하고 색다르게 여길 뿐 위로해 주거나 불쌍히 돌봐주지 않는다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들끼리 모여서 서로 서로 도우며 겨우 살아가는 이 이야기에서  인정의 따뜻함은 보이지 않는다 그들끼리 도우며 살아가는 모습에서도 훈훈함이나 장한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애처롭고 고생스러울 뿐이다 작가인 둥시는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세상의 본래 모습이고 인정이나 이웃들의 도움 같은 것은 위선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장애인들의 모습이 보는 사람들을 안쓰럽게 했다

 

 

 

[느리게 성장하기]

역시나 이 소설에서도 정상적이지 못한 장애인의 등장이 또 이어진다 결핍된 자아로 인해 세상을 비뚤게 살아가는 한 남자의 모습을 통해서 왜곡되고 비뚤어진 세상을  드러내 보여 주고 있다 주인공의 이름이 마영웅의 줄임말인 마웅이라느 데서 역설적으로 장애를 가진 사람을 영웅으로 보는 작가의 독특한 시각을 볼 수가 있다 그리고 이렇게 밖에 살 수 없는 것도 다 세상이 원래 그래서 그런 것 아니냐고 항변하는 것 같다 그러나 뭐라 해도 마웅은 실패한 사람이고 부정한 방법으로 승부를 거는 편법을 쓰는 사람일 뿐이다 우리들 인간 사회의 일그러진 거울이 바로 마웅이었다

 

 

 

[살인자의 동굴]

이 소설에 등장하는 어머니의 모습에 가슴이 많이 아팠던 소설이었다 자식을 살리기 위해서는 도덕과 법률을 무시하는 모습에서 위대하다고 해야 할지 비인간적이고 비양심적이라고 해야할지 몰라 곤혹스러웠던 소설이었다 어머니들은 자식을 위해서라면 어떤 고통도 감수하고 무슨 일이든 한다는 그 어머니의 모성애와 사람을 죽인 살인자의 모랄과 충돌하는 그 모순이 읽는 동안 계속 가슴에 걸리적거리고 가슴을 아프게 했다 어머니들은 정말로 가엾다 자식이란 과연 무엇인가

 

 

 

[음란한 마을]

독창적인 알레고리로 읽혀야 할 그러니까 우화로 읽혀야 할 소설인데 나는 이 소설이 인간 사회 전체를 그런 시각으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가슴이 아팠다 인간 세상이란 정말로 하나의 거대한 창녀촌이 아닐까 아무리 멋진 옷을 입고 아무리 예의 도덕으로 치장을 하고 가식으로 살아가도 본래의 욕망과 욕정을 어쩌지 못해 그 욕정의 노예가 되어 돈이라면 무슨 일이든 저지르는 지옥도가 바로 인간세계가 아닐까 하는 서글픈 생각에 빠지곤 했다 작가가 보는 것처럼 인간 사회는 하나의 거대한 창녀촌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람들이 모두 창녀촌에 사는 것 같이 느껴져서 마음이 아팠던 소설

 

 

[시선을 멀리 던지다]

예나 지금이나 여자의 팔자는 남자 만나기 나름이란 자명한 그러나 맥빠지는 이치를 다시 느끼게 한 소설이었다 게으르고 여자에게 횡포를 부리는 못난 남편 때문에 점 점 침몰해가는 여자를 보는 것이 괴로웠다 주변에 그런 실제 사례가 있을까봐 걱정이 되기도 했다 게다가 여자의 마지막 삶의 희망인 아들마저 잃어버린다는 대목에 이르게 되면 읽는이의 고통이 극에 달하게 된다 여자는 마침내 아들마저도 잃고 단지 자신의 처지를 명약관화하게 자각하는 것에서 끝이 난다 출구는 없다 해답을 제시해줄 사람도 없다 오직 상실만이 여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여자의 삶이란 공허하다는 것을 느끼게 해 준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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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엄 1 - 하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밀레니엄 (아르테) 1
스티그 라르손 지음, 임호경 옮김 / 아르테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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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서평할 책은 유럽에서 메가톤급의 열기를 일으키며 나라별 인구대비 판매량이라는 분야의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는 마력의 책 밀레니엄 그중에서도 1부 상,하 두권이다

이미 이 책의 열화와 같은 인기는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린 나라가 있을 정도로 확고하고 공고한 영역을 점하고 있다

다 읽고 난 소감으로 말하자면 내 개인적인 소감은 그들 나라의 독자와 같은 정도는 아니었지만 무척 흡인력 있고 잘 읽히며 이야기 구조가 대단히 튼튼하게 잘 짜여진 완결성을 갖춘 추리소설이라는 것이다(지금 읽은 것이 1부의 상 하 두권인데 내용 소개를 보면 2부와 3부가 연결되며 계속 이야기가 독립적이면서도 서로 이어져 있다는 것을 보면 작가가 얼마나 구조를  잘 짜는 사람인지 짐작이 팍 간다)

게다가 이 소설은 여타의 단순한 추리소설들과는 다르게 사회의 경제,정치,역사적인 문제들을 계속 언급하며 강한 의식의  발언들을 지속적으로 한다는 점이다

이는 바로 작가가 오랫동안 사회의 부당함에 맞서 사회의 비리를 고발하던 언론인이자 기자였었다는 사실 때문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이 소설은 여타의 추리 소설과는 다르게 스웨덴이라는 나라의 20세기 정치 상황과 그 역사 그리고 이런 제반사항에서 비롯된 경제적 문제점들까지 언급하면서 읽는 독자의 의식의 각성을 촉구하는 그러니까 의식있는 추리소설이라 할 수 있다

 

 

책을읽어나가면서 종잡을 수 없는 미스테리를 경험하게 된다

외딴 섬, 다리가 장애물로 막히면 모든 출입이 막히고 모든 통로가 폐쇄되는 그런 곳에서 한 소녀가 실종되었다 혹은 살해되어 시체가 운반되었다 이 상황은 도대체 오리무중으로 알 수가 없는 사건이다 정말로 피해자인 여자가 죽은 것인지 아니면 실종된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가출을 몰래 하여 사라진 것인지 그렇다면 살해는 누가 어떤 목적에서 무슨 증오의 이유로 그런 범행을 저지른 것인지 그리고 정말로 범행이 성공하였는지 그것도 아니면 그 소녀는 단순히 사고로 실종된 것인지 도무지 아무런 단서도 읽을 수가 찾을 수가 없다

바로 그 점이 작가가 노리고 서서히 조금씩 카드르르 공개하는 것이겠지만

그런데 조금씩 아주 천천히 작가가 은밀하게 보여주는 속살은 상상외로 엄청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독일의 나치가 있다는 것은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스웨덴에서도 나치즘이 활개를 치고 황행했었다는 것과 2차 대전이 끝난 후에도 그 나치즘이 그 명맥을 이어 활동했단  것에 약간 충격 좀 먹었다

나치즘이 인종적인 우생학이라는 과학 아닌 과학을 바탕으로 하여 주장된 편협하기 이를 데 없는 주의라고 하는데 스웨덴의 나치즘도 인종주의적 이고 우생학적인 이유로 타인종을 증오하고 배격하는 데 모든 힘을 기울인다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가문에는 스웨덴나치즘에 상당수의 인물들이 매력을 느끼고 열광적인 지지를 보낸 것으로 나온다

그런데 아쉽게도 이 스웨덴 나치즘에 빠진 인물들이 범행과 연결될 듯 하다가 단지 여자에 대해 정신병리학적인 문제가있는 그런 인물들로 살짝 그 바톤이 넘어간다

아마 작가가 밑그림을 그릴때 파시즘의 더러운 하수인들을 범행의 동기로 그리려다가 정신을 놓쳐 다른 동기의 인물들로 잠깐 시점을 옮기면서 그 초점이 흐려진 듯하다

아무튼 이런 생각들은 나의 나만의 짐작일 뿐이고 사건을 정작 일으킨 문제적 인물들은 다른 이유에서 그런 범행들을 기도하고 실행하는데 정말 끔찍하고 치가 떨릴 정도의 극악한 인간들이다 올드 보이 이후로 이런 정신적 충격은 처음이다 사실 올드보이는 자의가 아닌 남의 복수에 희생된 제물이라는 점이 있지만 이 소설의 주인공들은 그렇지 않고 모두가 자의로 그런 천인공노할 짓들을 버젓이 자행한다는 점에서 나는 충격을 또 먹었다

가만히 보면 미국의 일부다처제 교리를 주장하는 몰몬교도(이 몰몬교도의 실태를 다룬 시사기획프로를 텔레비젼에서 봤는데 피해자 여성의 말이 대단히 전율할 만한 했다 깊이 파고 들어가면 경악과 충격일 뿐이라는 말을 했는데 그래서그런지 그 프로그램도 더깊이 들어가지 않고 방송했다 아마 심층취재도 어려웠겠지만)들도 그렇고 의외로 서양에 근친상간의 풍조가 깊이 박혀 있는 것 같다

도대체 이들의 뇌의 구조는 어떤 아스트랄한 신세계의 발명품이기에 그토록 끔찍한 일들을 저지르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그런 것에 쾌락을 느끼고 삶의 즐거움으로 삼을 수가 있단 말인가

아무튼 놀랄 일이고 눈알 튀어나올 일이고 심장이 쿵쾅쿵쾅 뒤집힐 일이다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이 범행를 저지른 이야기인데 사실 제목은 수정되어야 한다

성경이야기도 나오지만(나는 레위기가 그렇게 끔찍한 야만적 교리로 해설되었다는 것에 또 한 번 충격 좀 먹었다 기독교들은 성서가 완전한 진리의 책이라고 하지만 나는 성경의 신이 시대에 따라 층위를 달리하며 그 개념이 서술되었고 레위기에 서술된 신은 어쩔 수없이 야만적인 난폭한 신이라고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이 소설의 범행을 저지른 주인공들은 모두 삶을 증오한 남자들이고 더 나아가 하느님을 증오한 남자들이라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가련한지고 그 남자들의 영혼에 부디 구원 있기를

 

 

비록 그런 끔찍하고 머리를 쪼개는 인물들이 등장하는 소설이지만 한 편으로는 대단히 인상적인 인물도 등장한다

바로 천재 해커인 여자 주인공 리스베트 살란데르인데 이 살란데르는 다음 2부에 주인공으로 다시 등장한다고 한다 1부에서 살짝 살짝씩 미스테리한 배경 터치가 들어가서 2부에서 본격적으로 개인사가 등장할 것 같다

살란데르는 몹시 엉뚱하면서도 진짜 괴상한 인물 유형으로 아직 이런 인물이 창조된 적은 없는 것 같다

지나치게 반사회적이고 몹시 인간을 꺼리며(실제로 그래서 정신병자로 오해되어 후견인이 돌봐주라는 국가의 판결을 받았다 실제로 정신병자인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지독하게 자기 중심적이어서 다른 인간의 접근을 아예 차단하며 그러면서도 마음이 여려 자기가 좋아하는 남자에게 다가가지도 못하는 의외의 면이 있으면서 자기의 육감과 본능만을 존중하고 일체의 다른 사람으 선의를 거절한다 그러면서도 자기의 일은 반드시 자기가 헤쳐 나가는 몹시 당차면서 똑똑하고 해커로써는 천재적인 유능함이 있는 인물이다

다음 작품에도 나오니 꼭 읽어보고 싶다

4차원 싸이코 반사회주의자인 그녀에게 어떤 개인적인 역사가 있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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