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Q84 3 - 10月-12月 1Q8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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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키를 좋아하게 된 건 내가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한 후부터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이제 돈을 벌고 직장에 다니고 일을 해야 한다는 자각이 생기고 난 뒤부터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더 이상 난 어린이가 아니라는 그 상실감에서부터 나는 하루키를 좋아하게 되었다 

하루키는 청춘이 읽는 소설이라고 생각되었는데 그런데 내가 더 이상 놀고 먹는 청춘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고 나서 부터 하루키가 좋아졌으니 아이러니다  

하루키는 그 매력적인 외피 안에 상실되어 결락된 원초적인 그 무엇에 대한 동경을 숨기고 있다 그래서 그의 글을 읽으면 언제나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바로 조금 앞에서 반짝이고 있는 빛처럼 언제나 바라보면서도 붙잡을 수 없는 애틋한 아쉬움을 경험하게 된다 작가인 하루키에게는 그것이 연인이고 젊은 날의 추억이고 과거이며 사람의 몸에 들어온 양이며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된 100%의 여자아이일 것이고 그것은 독자들에게 다시 변용되어 제각각의 메타포로 변전한다 

각설하고 하루키를 읽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갓 구워낸 빵처럼 촉촉하고 부드러우며 향긋한 그의 문체를 열심히 오물거리며 씹어가다보면 상큼하고 톡 톡 튀는 감성과 은근하면서도 오랬동안 여운이 남는 비어 있는 결락감을 경험하게 된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하드보일드하고 터프하면서도 억센 곳이지만 반면에 동시에 몹시도 말랑말랑하고 보드라우며 맑은 곳이라는 이율배반아닌 이율배반과 모순이 기묘하게 하루키 안에는 공존한다 그 공존의 긴장 관계에서 오는 배리감이 하루키의 문학을 흐르는 주된 동력 중의 하나다 기억하는가 하루키의 문학을 읽으면서 그 아름답고 재미있는 비유와 풍부한 묘사에 감동하고 감탄하면서 동시에 이 세상을 이루고 있는 차가운 위협과 단단한 증오 그리고 끝내 어쩔 수 없는 죽음에 절망하고 굴복했던 그 모순된 체험의 순간들을 

이 간극에서 빚어지는 불합리한 불협화음이 하루키의 심중에 간직된 신념 내지는 세계관과 일치되면 그 순간 아름다운 작품들이 피어난다 태엽 감는 새나 댄스 댄스 댄스나 1Q84나...모두 다 아름다운 부조화를 바탕으로 섬세한 인식이 만들어낸 하루키표 사상의 집적체이다 요컨데 하루키는 아름다움을 말하면서도 그 아름다움이 가리지 못하는 세상의 불합리에 주목하고 있고 죽음을 들여다 보면서 에로스의 선명한 유혹에 저항하지 못하는 생의 감각자이다 그래서 그가 묘사하는 사물들은 시종 아름답고 풍부하며 제 모습을 자족하고 있고 그 사물들이 속해 있는 세계와 불화를 빚고 있다 이 불화가 처연할 때 그때 하루키의 묘사는 가장 빛난다    

하루키의 작품은 그 매력적인 외피에 싸인 달콤한 속살에도 불구하고 하드보일드한 비정한 세계가 스며들어 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계속 죽고 그리고 고립되어 있어 소통을 원한다 이 세계는 정말이지 터프한 세계인 것이다 그 세계에서 살아가기 위하여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것을 계속 상실하고 그리고 그것을 애틋하게 그리워해야만 한다 이런 비정하고 거친 세계에서 하루키의 주인공들은 슬퍼하고 생각하고 그리워하고 마침내 결단하고 그리고 고독하다 

독일TV의 문학토론프로그램에서 하루키의 작품을 놓고 난상 토론이 벌어진 적이 있었다 하루키의 작품은 문학적 패스트푸드에 불과하며 이런 가벼운 작품의 가치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때 프로그램의 사회자가 하루키를 옹호하는 논지의 주장을 했는데 패널로 출연하는 문학평론가가 하루키를 심하게 공격했다고 한다 사회자가 그에 맞서 옹호하는 주장을 계속 하자 말다툼이 벌어졌고 그 말다툼에 격분한 문학평론가가 생방송 도중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화를 부리는 것으로 그 토론이 끝났다고 한다 그러나 이제 하루키의 세계는 깊어졌고 단단하고 육중해졌다  

태엽 감는 새에서 보여준 현실 인식과 참여의 조짐은 해변의 카프카를 거치며 조심스럽게 중요한 쟁점이 되었고 마침내 1Q84에 이르러 현실 속으로 완전히 깊숙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하루키는 이제 역사와 현실을 이야기하는 참여적이고 진지한 작가이다 비록 시작은 개인주의적이고 고립되어 있으며 현실에 대한 적극적인 참여를 비판적으로 혹은 냉소적으로 보는 사소한 개인으로 출발하였지만 이제는 현실이라는 판에 대한 적극적이고 능동적이며 참여적인 묵직한 의식을 가진 중후한 작가가 되었다 그의 인식과 시선은 깊어졌고 본격적으로 사회의 환부를 응시하고 있으며 그의 손길은 이 사회가 갖는 그림자를 해부해 그 병리 현상에 대한 심층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다 

하루키가 상실의 시대라는 명작을 쓰는 데에는 소설속에 등장하는 사연들의 실제 주인공들과의 추억과 체험이 큰 자양분이 되었다 그러나 그런 사연이 없는 허구로 된 태엽 감는 새와 해변의 카프카 그리고 1Q84를 보면 하루키의 파괴력이 얼마나 단단한지를 알 수 있다 

 

하루키의 시작은 미미했다 데뷔작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두고 이런 건 나도 쓰겠다는 소리를 주위에서 여기 저기  했을 정도였으니까 그러나 하루키는 시간이 지남과 함께 점 점 진화했고 이제 하루키 월드는 자신만의 고유한 개성을 가진 하나의 브랜드가 되었다 그리고 하루키는 이제 거대한 작가가 되었다 누가 뭐래도 하루키는 분명 뚜렷한 개성을 가진 변별력 있는 작가임에 틀림없다 

 

 

하루키를 읽으며 그가 숨겨놓은 기호들을 해독하는 일은 마치 지난 내 추억을 꺼내 들여다 보는 것처럼 즐겁다 이제 하루키는 일시적인 유행이 아니고 세대를 엮는 기나긴 증후군이 되었다 내가 하루키를 처음 읽던 때 그 때 태어난 아이들이 이제는 하루키를 같이 읽는다 그리고 말한다 하루키는 독창적인 화법이 있어서 참 좋아요...그래 하루키는 이 지구에서 가장 재미있게 어려운 이야기를 풀어 쓰는 작가란다 

나는 하루키를 읽으면서 어른이 되었다 10대 후반에 읽었던 하루키는 시간이 지날수록 무성한 그늘을 이루고 울창한 잎이 우거져 이제는 우람하고 짙푸른 녹음을 자랑하는 한 그루 거대한 수목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하루키를 내일도 다시 반복해 읽으며 내 안의 빈 구멍을 메운다 
 

 

하루키의 작품 세계는 시간의 경과와 더불어 점점 현실참여적인 능동적이고 현실적이며 역사적으로 변모하였다 초기의 세상을 부유하는 듯한 가볍고 경쾌하지만 일관되게 소외 혹은 거부하는 몸짓은 점 점 그의 작품에서 사라지고 적극적인 개입에 의한 궁극적인 구원을 갈구하는 기도와 의도로 대체되고 있다 이를 단지 하루키의 물리적 나이의 퇴적으로만 한정짓는 것은 한 소설가의 지난한 작업 세계와 숙성되어 가는 중후한 세계관을 일거에 부정하는 비이성적이고 무례한 짓일 뿐이다 하루키의 작품 세계가 그렇게 변했다는 것은 개인에서 전체로 소외 혹은 외면에서 참여로 현실의 이탈에서 역사의 현장으로 방향이 전환되고 심화되며 확장되어 그 의미망속에 좀 더 큰 것들을 영입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는 이제 '나'를 넘어 '너'에게 스며들어 '우리'의 공통된 슬픔을 이야기한다 전체에서 떨어져 나간 개인에 관심을 보였다가 이제는 공동체에 대한 사색을 시도하고 있다 

 

달이 두개가 뜨는 그 현실의 부재 부재의 현실 속에서 영혼의 무게와 상처의 무게에 압사당하지 않고 고독하고 용감한 투쟁을 끈기있게 끝까지 한 아오마메와 덴고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역시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 아오마메를 만나기 위해 덴고를 찾기 위해 그토록 긴 오랜 여정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면서도 포기하지 않은 그들의 집념이 아름다운 결실을 맺었다 자 이제 달이 하나인 세상으로 돌아오자 그리고 우리 모두 뜨거운 가슴으로 서로 사랑하자 마치 내일 죽을 사람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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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Q84 1 - 4月-6月 1Q8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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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가 들여다 본 일본 사회의 증후군과 그 진행과정...쿨하고 잼있고 심지어 심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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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님 싸부님 1 - 이외수 우화상자
이외수 지음 / 해냄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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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수 쌤의 글은 언제나 즐겁다 촌철살인의 기지와 폭소가 숨쉬고 있고 빛나는 유머 감각이 들어 있어 고성능 폭탄처럼 도처에서 언제 터질지 모르고 매복하고 있다 그 유머감각이란...유머 감각..그래 나는 유머 감각이 있는 사람이 좋다 그래서 하루키의 책을 좋아한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재미있고 개그콘써트 만큼이나 넘치는 개그 아이템으로 무장한 이외수 선생님의 그 창조적인 글쓰기에 언제나 감탄하면서 양념치킨 뜯듯이 행복한 기분으로 그 분의 글을 읽은지가 이미 꽤 되었다

이번에 나온 사부님 싸부님의 사랑스러운 에세이는 어느 웅덩이에 사는 사뭇 철학적이고 심오한 자아를 가진 흰 올챙이가 주인공이다 벌서 주인공의 등장부터가 심상치 않다 성장을 멈추고 자신의 운명을 거부한 형이상학적인 사고 방식을 견지하는 구도적 올챙이라니

주인공인 흰 올챙이의 여정읅 따라가다 보면 물 속에 사는 갖가지 생물들의 다종다기한 일상들을 볼 수가 있다

그런데 이 물 속 생물들의 모습은 마치 거울에 비친 상처럼 우리 인간 세상 속의 군상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즉 이 이야기는 물 속에 비친 동물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 인간들의 내면 깊은 곳까지 풍자하고 성찰하는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우화를 통하여 우리들의 본연의 모습을 들여다 보면서 풍자하고 비판하며 동시에 어떤 것이 우리들 영혼을 고양시키고 우리들 영혼이 당면한 문제인지에 대해 고찰하는 이외수 선생님의 철학우화인 셈이다

이 외수 선생님이 보기에 인간은 먹이를 구하고 그 먹이를 구하려는 욕망에서 치열하고 비열한 전투력을 발휘하는 물 속의 육식 고기와 조금도 다르지 않는 저열하고 동물적인 곳이다

그래서 먹이와 이성에 대한 욕마으로 온몸을 무장한 채 눈이 튀어 나올 정도로 어기찬 전투의지를 불태우면서 가장 중요한 자신의 영혼은 관심에도 없이 내팽겨치고 사는 평면적이고 일차원적인 동물의 세계이다

이 대목에서 나는 반성을 아니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아아 이렇게도 참을 수 없는 동물의 존재적인 욕망에 사로 잡혀 있었구나

나는 이 우화에 나오는 어떤 동물에 해당할까 가슴에 두 앞발을 얹고 진지하게 성찰...이라기보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나는 과연 이 지상의 땅거죽위에서 먹이를 구하고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하루 하루를 그냥 그렇게 되는대로 살아가는 단세포동물이 아닐까

이런 자각 아닌 자각이 내가 느낀 자괴감에 가까운 참담한 인식이었다 나는 그저 먹이를 구하고 세속의 욕망에 몸이 달은 한 마리의 동물이라는 허무한 성찰의 기회를 이 작품을 통해서 내가 얻을 수 있는 성과였다

작가인 이외수 쌤이 보기에는 아마도 그랬으리라 인간이라는 존재는 가장 우월한 존재인 마냥 동물들을 하찮게 보는 인식의 빈 곳을 통하여 뭔가 가장 큰 물건을 그냥 좌시하는 크나큰 인식의 오류를 하고 있는 중대한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인간은 동물들 중에서 진화된 형태의 최정상을 점하고 있는 영장류이지만 사실은 물 속 생물들과는 별다른 차이점이 없는 일차원적이고 단순한 욕망에 급급한 생활을 하는 자연계의 이단적인 존재이자 쓰레기같은 하등한 종이었다

그리고 그 욕망의 아귀다툼 속에서 윤리도 도덕도 양심도 도외시한채 그저 하루 하루의 향락에만 몸을 맡긴 어쩔 수 없는 동물이었다 심히 반성한다

나는 그랬으니까 돈과 명예와 권력과 출세에 눈이 멀어 입신양명한 친구들을 부러워하고 그렇지 못한 내 처지를 한탄하며 시기와 질투에 내 영혼을 가학하며 좀 더 많이 가지기 위하여 호시탐탐 기회만을 노리고 있는 걸어 다니는 욕망이었으니까

그러나 이외수 쌤은 따뜻하고 자애롭게 그리고 지극히 익살맞게 고개를 들어 다른 곳을 보라고 다정하게 옆에서 조언하신다

인생은 그런 것만으로는 이루어진 것이 아닐꺼라는 아주 단순하고도 거대한 가르침을 이 책에서 나는 희미한 예감으로 조우했다

존재는 단지 마음을 바꿔서 생에 대한 시각을 달리 하는 것만으로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전환될 수 있음을 정감 넘치는 그림과 짤막한 글 속에 이외수 선생님은 아니 이외수 싸부님은 설파하고 계셨다

단지 이 땅위에 먹고 배설하고 높은 곳을 차지하기 위하여 피흘리는 분투만이 인생이 아니라 자신의 근원을 돌아보고 자신의 영혼 속의 아름다운 것을 인식하고 자신의 운명을 자각함으로써 마침내 '바다'에 도달하는 거대한 우주적인 체험이 가능하다는 것을 나의 또 다른 분신인 흰 올챙이의 끝없는 구도의 여행 속에 아름답게 형상화하고 있었다

이 이단적 존재인 흰 올챙이의 구도행 속에 나는 많은 위로를 받았음을 고백하고 싶다

일상이 팍팍하고 내 자신이 비루하고 초라해 견딜 수 없을 때 이 작은 우화의 다정한 메시지가 인간은 단지 육신으로만 이루어진 생물적인 존재가 아니라 내면의 아름다움과 존재론적 의미를 가진 형이상학적이고 정신적인 존재라는 것을 새삼 일깨워주었다

나는 비록 이 지구라는 바다에서 한 마리의 이름없는 물고기일지 모르지만 도의 차원에서 보면 각각의 아름다움을 가진 독립된 우주이고 정신적으로 풍요한 의미와 가치를 가진 유일무이한 존재라는 것을

이외수쌤 감사합니다 선생님의 우화를 읽으면서 제 마음은 따뜻해졌고 종이에 물이 스며들 듯 저도 모르게 고양된 인식으로 아름다운 철학의 세계에 진입하여 형이상학적이고 정신적인 존재로 도모하는 저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이 외수 쌤의 그 아름답고 독창적이며 유머러스한 문장과 그림으로 저의 빵꾸난 가슴에 커다란 빛이 스며들어와 저의 영혼은 얼마쯤 풍요로워지고 따뜻하며 여유로워졌습니다

선생님의 그 올곧고 드높은 가르침에 저의 메마른 인식과 가열찬 욕망이 한시름 무거운 짐을 벗고 한동안 자유롭게 하늘을 날 것 같습니다

그러면 저도 언젠가는 바다에 도달할 수 있겠지요

언제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저도 바다에 도달하여 그 거대한 평화와 하나가 될 그 순간을 기다리겠습니다

이외수 선생님이야말로 저의 싸부님이십니다

선생님 선생님을 싸부님으로 모셔도 되겠지요??

 

경인년 흰 호랑이해 싸부님도 복 많이 받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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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니 - 공지영 장편소설
공지영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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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이 세상에 진실과 정의가 존재하는지 묻고 싶어질 때가 있다 그 비근한 예로 용산참사의 시위주민들에게 결국 실형이 선고되었던 날이 있다 그들이 무슨 일로 시위를 했는지 그 시위에서 그들이 얻고자 했던 것이 무엇인지 아무 것도 알려지지 않은 채 그냥 그들은 범죄자가 되고 말았다 애초에 사회적 약자였던 그들에게 유리하게 판결이 이끌어져 나올 리가 없었고 그렇게 힘의 논리가 횡행하는 법질서속에서 기득권자가 아닌 그들의 정의와 진실은 힘없이 아무런 메아리도 갖지 못한 채 파묻혀갔다 이런 일들을 겪어야만 할 때 묻고 싶다 과연 정의는 누구의 편인가 법은 만인에게 평등하고 공정한 것인가 혹시 세상은 가진 자와 힘 있는 자의 것이 아닐까 그런 힘있고 가진 자들의 원칙으로 마음대로 유린되고 재단되는 일방적인 것이 아닐까 아프고도 체념에 가까운 그런 인식이 이 세상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고 가뜩이나 얇은 자존감을 박탈해간다 

 

공지영의 도가니 이 책은 그런 나의 마음을 더욱 암담하게 물들이는 소설이었다 결코 이런 일이 현실에서는 있어서는 안된다는 따가운 자각을 던지는 소설이지만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소설은 실제로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아....과연 현실은 얼마나 암울하고 강고한 것인가 우리가 처한 현실은 온갖 아름다운 이념이 치장을 한 채로 걸려 있고 선한 의도와 아름다운 마음이 널린 것같은 그런 아름다운 것들뿐이지만 그러나 조금만 더 깊이 들어가보면 그런 표면은 온데간데 없고 그 내부는 참혹하고 비참한 존재의 양상을 띠고 있다 그리고 나에게는 그런 잔혹하고 아름답지 못한 모습이 보다 더 현실에 가까운 것이라고 믿기어진다 

 

자애학원의 아이들은 말그대로 약자이다 가난한 집안의 아이들인데다가 농아이고 거기에 겹쳐 머리까지 온전하지 못한 그런 세상에서 가장 약한 존재들이다 그런 아이들을 유린하는 원장은 아 이 원장에게 저주있을진저 뭐라 말해도 분명한 악의 축이다 그는 가장 약한 아이들을 자신의 뜻대로 통제하고 또 성적으로 착취하는 가장 비열한 인간이었다 그러나 가장 아이러니한 사실은 그런 원장이 지역 사회에서 가장 명망있고 가장 존경받으며 사회를 주도하는 지배계층이라는 사실이었다 흔히 가장 추악한 것이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덮여져있다고들 하는데 이 위선에 찬 인물(그리고 그의 추종자들까지)이 바로 그런 사실을 입증하는 대표적 본보기였다 과연 인간의 위선이란 어디까지 허용되고 어디까지 그 추악한 힘을 발휘하는가라는 무거운 심정으로 이들 원장패거리의 금수만도 못한 짓들을 분노의 심정과 경악의 놀람으로 읽어나가다 다시 한 번 처참한 각성을 하게 되었다 이들 원장의 패거리들은 고유한 개성을 가진 단독자의 캐릭터가 아니라 인간 사회에 만연한 부정하고 비열한 힘을 가진 지도층의 상징이자 대변자이고 대표자일 뿐이라는 것을 원장들과 같은 인간들은 절대로 극소수가 아니라 더 많은 수의 다수라는 것을 어떤 광범위한 계층의 수라는 것을그러자 둔중하고 뜨거운 고통이 가슴 한 복판에 무거운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인간이란 것은 그리고 이 세상이라는 것은 원래가 추악하구나라는 별로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가르침이 그러나 날카롭게 흔적을 내며 내 가슴을 찌르고 갔다 그렇다 인간들이 만들어 모여 사는 세상에는 정의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다 정의란 그저 좀 더 많은 힘을 가진 자들의 편의일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단순하고도 자명한 그래서 절망스러운 깨우침...그런 천인공노할 성추행을 하고도 뻔뻔스럽게 부인을 하고 또 그런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같은 비열한 위선을 아무렇지도 않게 우리가 남이가 라는 같은 계층의 연대감과 공동의 이익을 위해 눈 감아주는 또 다른 지도층의 행동에서 선의로 포장된 현실의 잔인한 이면을 읽을 수 있었다 결국 이 세상은 힘있는 자들이 마음대로 주무르고 변형시키는 것에 불과할 뿐 공정한 원칙이 적용되는 아름다운 곳이 아니다 ...그렇게 아름다운 것들로 가득 차 있고 아름다운 것들을 좋아하고 아름다운 마음으로만 유지되는 것 같은 현실은 제 알몸뚱이의 비열한 모습을 이런 식으로 보여주고 있구나 하는 절망적인 인식속엔 불행한 일을 당하고도 항거할 수 없는 약자로서의 연대감이 들었다 그리고 눈물에 수반되는 절망으로 자애학원이라는 이 세상의 모순이 집약된 상징의 장소(그러나 이 장소 또한 실제의 실화속의 장소이다)에서 일어난 힘이 진실을 유린하고 권력의 지배가 정의를 덮어 버리는 아직도 이 세상에만연하고 있는 모순과 불의를 물에 빠진 자를 구하지 못하고 안타깝게 발만 구르고 있는 자의 심정으로 참담하게 응시했다 진정 약자에게는 천국이 없다라는 말이 이 소설 속에서처럼 가슴 아픈 경우로 구현되는 것을 목도하고 있자니 서럽다는 내겐 낯설은 감정이 나도 모르게 가슴으로 뜨거운 것을 밀고 올라왔다 인간이란 같은 이름을 가진 단순한 동종의 존재가 아니라 양심과 이성을 가진 지성적 존재들이고 그 양심을 같이 공유할 때 참다운 동등한 공존의 관계가 성립된다고 믿는 나에게 이들의 행동은 자애학원아이들에 대한 연민에 앞서 인간이란 무엇인가 하는 오래된 질문의 답이 없음을 다시금 확인하게 하는 깊이 모를 심연이었다 이들의 행동이 인과관계를 받아 업보 혹은 형벌을 받지 않는다는 냉정한 현실이 다시금 얼마나 현실이라는 것이 견고하고 두터운 암흑으로 뒤덮인 불합리한 것인가를 실감하게 해주었다 현실은 불합리하고 정의가 통하지 않는 것이라는 이 암담한 자각은 소설을 읽는내내 나를 불편하게 자극했다 그러나 그 자극은 엄연한 살아있는 진리였고 그리고 경험칙이었다 결코 경험해서는 안되는 경험으로부터 산출된 가슴아픈 진실이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결코 천국이 아니다 수많은 문제점들과 난제가 산재해 있는 모순투성이의 세상이다 그러나 우리가 지켜가야할 소중한 것들이 단지 힘이 없다는 이유로 버려지고 은폐되고 말살되야 한다면 그 세상은 우리의 세상이 아니다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모두가 공존을 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이다 약자라고 해서 자신의 권익을 빼앗기지 않는 곳 강자라고 해서 남을 유린하지 않는 곳 힘을 가졌다고 해서 벌을 회피하거나 피해가지 않는 곳 그리고 정의가 살아 있는 곳....정의란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마지막 버팀목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정의가 없는 곳에 살고 있다면 그 불공정과 불합리를 어찌 감당하고 그 울분을 어찌 견딜 수가 있을까...우리가 이 세상에 살아 있다는 그 존재의 양식에 한 가지의 위로가 되는 것이 공정하다는 느낌의 정의일텐데 그 정의가 한 줌도 안되는 돈과 가진 자의 편의를 위해 힘의 논리로 압살되고 있다 우리는 그런 힘과 불합리가 살아 정의를 죽이는 세상에 살고 있다 도가니는 그런 일그러진 사회를 살고 있다는 가슴 아픈 고발이자 벽앞에 던지는 계란처럼 무모한 항거를 실행하는 작은 외침이었다 우리가 이 도가니를 읽는다고 해서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그러나 한 번쯤은 생각해 보자 이 사회에 가득한 불합리와 비리 그리고 부정에 우리가 묵인하거나 무관심하지 않았나 그리고 그런 자각을 하였다면 우리의 손으로 지금 시작해 나가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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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노스케 이야기 오늘의 일본문학 7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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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을 둘러보면 왠지 이런 친구 하나쯤은 늘 주위에서 있었던 것 같은 기시감 혹은 착각이 생긴다

엄벙 덤벙 서투르고 왠지 나사 하나 풀린 것 같은 태평한 모습에 뭐 하나 딱히 잘 하는 것도 없고 그러면서도 넉살은 좋아 푸근하고 마음씨 좋은 친구 속어로 말하자면 고문관

이런 친구가 있으면 왠지 마음이 놓이고 햇살에 물들듯 마음이 따뜻해지는 느낌이 든다

바로 이런 사람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이 있으니 바로 이 책 요노스케 이야기다

요노스케는 만사태평의 느긋하고 낙천적이며 붙임성 좋은 그런 친구다 딱히 잘 하는 것고 없고 그렇다고 머리가 영리한 것도 아니다 그저 사람 좋은 선량한 젊은이일 뿐이다

그런 요노스케가 난생 처음 도쿄에 올라와 대학 생활을 하며 주변의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가는 점진적인 이야기가 이 책의 줄거리다

사람들은 모두 처음에는 요노스케를 그다지 주목하지 않는다 그렇 수 밖에 요노스케는 어디에나 있는 사람이니까

눈에 띄일 리가 없다 그러나 요노스케는 어디에나 있지만 동시에 어디에도 없는 특수한 사람이다

바로 그것은 뇨노스케의 진정성 즉 요노스케가 가진 따스하고 넓은 마음씀씀이에서 비롯되고 있다 누구나 요노스케 만큼은 일을 하고 공부를 하고 사람을 사귈 수는 있지만 요노스케처럼 다정하고 너그러우며 또 깊이있게 사람들의 마음 속에 스며드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요노스케는 사람들의 마음에 어느샌가 스며들어 뚜렸하고 큰 존재감을 차지하는 보이지 않는 그런 능력과 특질을 가진 한마디로 말해 마음이 아주 따뜻하고 보드라운 충직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주위의 사람들은 모두 하나같이 요노스케에게 자석이 달라붙듯 화장지에 물이 어느새 스며들듯 그렇게 요노스케에게 친근감을 느끼고 요노스케에게서 보이지 않는 힘을 얻는다 요노스케는 굳이 그런 일을 하려고 하지 않는데도 어느새 요노스케는 주위의 사람들에게 지워지지 않은 인상을 남기고 따스한 힘으로 부족한 것들을 채워주는 마법을 부린다

이것이 요노스케의 진정한 힘이다 덕은 재주를 이기지 못한다던가 재주있고 뛰어난 사람들이 갖추지 못한 주위를 환하게 밝혀주는 내면의 빛을 요노스케라는 이 좀 모자란 남자는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 내면의 빛으로 요노스케는 주위를 밝혀주고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준다 그러므로 요노스케에게 사람들이 친밀감과 마치 소리없이 빨아들이는 듯한 흡인력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이제 나도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다 그래서 살아가는 것 인생을 생각하다 보면 사람이 재주가 있고 개성이 각별한 것도 중요하고 의미있지만 단지 착함이라는 특징 하나를 제대로 갖고 있다는 것도 얼마나 드물고 힘든 일인지 그 희귀함을 절감하고 있다

선랼하다는 것은 사람에게 있어서 큰 무기이자 중요한 재산이면서 동시에 매우 값진 덕성이다

그런 선량함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사람을 너무 많이 보아서일까 선량하다는 것이 얼마나 드물고 낯선 특징인지 그 반대적인 의미에서 선량하지 못한 비열한 인간들을 뼈저리게 실감한다

뭐 인간은 다 제각기 생겨먹은 대로 살아야 하고 다 다른 것이 인간의 속성이기는 하지만

그렇다 해도 마음이 따뜻하고 선량한 사람에게 이끌리는 것을 어찌 할 수가 없다 나이가 들수록 더욱 좋은 사람 착한 사람 따뜻한 사람에 대한 이끌리는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만큼 세상이 더럽고 야비하며 비열하고 치사하다는 것을 알아가고 있기 때문일까

요노스케는 딱히 잘난 것이 없는 평범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 평범한 사내 요노스케에겐 모두가 없는 것이 있었으니 선량한 마음의 온기였다

그 마음의 따뜻함으로 요노스케는 세상을 비추고 주위를 환하게 그리고 따듯하게 끌어안는다

그리고 그 끌어안는 요노스케에게 사람들은 마음을 빼앗기고 만다

요노스케 너의 따듯한 마음이 정말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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