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인생의 이야기 행복한책읽기 작가선집 1
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행복한책읽기 / 2004년 11월
평점 :
절판


정신의 지적 자극을 원한다면,그래서 논리의 엄밀하고 일관된 합리적 질서속에 과학의 공통되고 보편적인 원리로써의 지표가 구현되길 원한다면 이 소설을 집어들어야 한다.이책을 펼치고 단련해야 하는 지적 유희를,공대생이 아닌 나로써는 감당하기가 힘에 부치고 어려웠음도 나는 솔직하게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다.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이 마련해둔 정신적 자극은 나의 우둔한 신피질을 청량하게 씻어줄 만큼 흥미롭고 정교한 과학적 장치들로 완전한 외양을 갖춘채 그 정연한 실체를 허용하고 있었다.명백하게 과학적 상상력을 구현하고 형상화하여 보편적 긍정으로써 진실을 완성해가는 작가의 긴밀한 걸음걸이는 어째서 sf 소설이 문학으로서의 특수한 개별성을 가진 하나의 쟝르로 기능하는지에 대하여 완전한 윤곽을 그리는데 일조한다.이 소설집의 하나 하나의 단편 소설이 마치 한권의 분량을 가진 소설을 독파하고 그 주제를 파악하는 것 만큼이나 쉽지 않은 경험을 선서했는데,관련되어 있는 인접 사상이나 학문들의 목록을 보면 어째서 그토록 가열찬 힘겨움을 겪어야만 했는지 자명한 수긍을 하게 된다.초월적 천문학의 세계관과 신화의 비리스러운 조응,의식과 신체를 통괄하는 신경의학과 인간정신의 상관관계,괴델의 불완전성 정리의 수학적 증명과 그 학문적 고찰,문자 체계의 계통과 언어의 형식으로의 문자에 대한 숙고,유대교 카발리즘에 의한 언령신앙의 과학적 변용과 전성설로 이루어진 생체증식,메타인류의 과학적 업적과 그 균등한 사회적 재분배,기적이 일상화된 상태에서의 지옥의 의미론,미추에 대한 판단이 사라진 사회에서의 가치 판단등등.....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복잡다단하고 현란한 정신의 파노라마라고 할 수 있다.지각의 통점 위에서 과학을,또는 과학에서 변용한 신화와 판타지의 생성 가동을 통해 인식의 깊숙한 저변을 휘저으며 그 놀라운 메타이데아를 탐색한다.나는 테드창이 이들 소설을 집필하면서 현상 속의 과학적 접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서술해 나갔으리라고 생각한다.그 결과 특수한 경험으로써의 과학적 인식과 현실에서의 연구적 추론이 서로 충돌하고 접합되면서 아름다운 인식의 불꽃이 튀어 오르는 과학적 엑스터시가 유감없이 읽는 자의 뇌리를 꿰뚫고 지나간다.가령 의식이 특수한 약의 투입을 통해 정신 기능과 육체적 능력의 초월적 극대화를 통한 인간 능력의 한계치를 실험하는 '이해'의 경우,인간의 임계점은 어디인가를 의학적 범주속에서 마치 기계를 가동시키듯 신체의 변이를 시험해 보는데 나에겐 그 탐구 과정이 놀랍고 신기한 신념 즉 과학을 통한 유토피아의 실현이라는 너무도 아름답고 환상적인 신천지의 풍경을 느끼게 하여 잠시 나는 아득한 황홀감을 느꼈다.비록 교훈적이고 계도성이 포함된 결말 부분의 충격을 작가가 의도했지만.만약 인간의 신체적 정신적 능력이 인공적인 시도로 극대화되어 상상도 못할 정도로 고도화된다면 그것이 물리적으로 가능하게 된다면...나는 이런 상상만으로도 인간이 아직 도달하지 못한 미개발지의 환영을 마음 가득 그리며 짜릿한 전율을 느낄 수 있었다.작가의 창조적 상상력이 빛을 발하는 부분은 그외에도 많았다.유대교 랍비들이 문자의 배열법을 통해 생명을 창조했다는 골렘 전설을 모체로 개체의 전성(前成)을 통한 생명증식이라는 이론을 결합해 인류의 존망과 후손의 번식이라는 문제를 들여다 본 '일흔 두 글자' 역시 흥미로운 가정으로 지적인 호기심을 유발한다.문자의 특수한 배열을 통해 사물을 움직이고 생명을 불어넣으며 그 언령 신앙으로 생명 개체의 창조를 통해 증식을 도모한다는 기발한 설정에는 종교의 신화적 색채가 스며들어 있는 동시에 과학의 인접 분야로의 파급력이 적극 반영된 다변화된 현상적 결과로서의 과학적 시도가 응축되어 있었다.이런 광대한 범주의 사상적 전이는 다른 작품속에서도 계속 이어지는데 지옥의 의미를 묻는 '지옥은 신의 부재'를 읽으면 또 하나의 탐구하는 과제를 만나게 된다.신은 존재하는가 과연 존재한다면 죄없는 사람들의 고난은 어찌 설명되어야 하는가.그들은 신을 믿었는데도 불구하고 불행을 감수해야만 하는데 그렇다면 이것은 무슨 섭리로 설명되어야 하는가.참으로 신학적인 주제와 맞닿아있는 과제라 할 수 있는데,이에 대해 테드 창은 지옥은 신의 부재이므로 그가 한 어떤 행위의 결과가 아니라는 것이다.그것에는 아무 이유가 없고 고차원의 목적도 없다.즉 지옥은 신이 부재하기에 지옥으로 기능한다는 것이다.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로 어려운 이 단편을 읽으며 논리적인 법칙으로 존재하는 신이 무조건적인 차원의 신앙에서만 존재할 뿐 신을 믿지않는 의식 너머의 인간에게는 부재하는 형태로 은총의 결여가 있다는 내 나름의 결론을 도출해 보기도 했다.이 단편집의 단편들은 어느 것 하나 대단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놀라운 작품을 내게 들라고 한다면 외계인의 언어와 문자표기를 연구하는 이야기인 '당신 인생의 이야기'였다. 인류와 전혀 다른 언어와 표기수단으로써의 문자를 가진 헵타포드라는 외계인들의 통사구조와 그 계통적 표현 양식의 이질감은 나의 굳어 있던 상상력의 틈새를 뒤집고 솟아나온 새싹이었다.인간의 언어이외에도 이토록 다른 언어체계와 전혀 상상할 수도 없는 기묘하고 차원이 다른 충격적인 문자표기체계가 존재할 수도 있다!! 테드 창에 따르면 인류와 헵타포드가 접근하는방법은 정반대이지만 궁극적으로는 동일한 것을 뜻하는데,인간이 적분학을 써서 정의한 물리적 속성들을 헵타포드외계인들은 기본적인 것으로 간주하고,역으로 인간이 기초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속성들을 헵타포드들은 대단히 해괴망측하게 정의한다고 한다.인류가 순차적인 의식양태를 발전시킨 데 비해 헵타포드외계인들은 동시적인 의식 양태를 발달시켰다고 한다.그래서 헵타포드들의 문자표기는 특별히 선호되는 어순이 없고 문장 어디에서 읽어도 마침내 다 뜻이 통하는 궁극의 이해법을 가진 도안과도 같은 체계라는 것이다.이것은 헵타포드외계인들의 의식의 기조가 지구인들과는 현격히 다른 물리적 해석을 바탕으로 한 의식의 차이에서 나온다고 한다.일례를 들어 광선이 어떤 각도로 물을 만나고 굴절되는 현상이 있을 때 굴절류의 차이 때문에 빛이 방향을 바꾸었다고 하면 인류의 관점이고 빛이 목적지에 도달한 시간을 최소화했다고 설명한다면 헵타포드외계인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라고 한다(아 어렵다!)완전히 다른 해석인데,물질 우주는 완벽하게 양의적인 문법을 가진 하나의 언어라고 한다.정말 놀랍지 않은가.우주를 둘러싼 세계관의 신세계적인 개벽이고 이 세상의 밑바탕을 이루는 원리의 충격적인 파괴적 현현을 실증하고 있는 것이다.테드 창의 이런 경이로운 지적 자극으로 나는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진리의 또 다른 모습들을 만나고 있는 것이다.

 

 

 

 

과학은 현상학적으로밖에 경험할 수 없는 우리의 우주에 대한 인식을 가장 근원적이고 보편타당한 접근으로 가능하게 한다.그 인식의 명징한 선명함으로 인간은 자신의 의식에 덮인 무거운 장막을 걷어내고 비로소 자신이 속한 우주의 본질을 맛볼 수 있게 되는데.이 때의 인간은 신생의 존재로서 자신의 모습을 거울에 처음 비쳐본 어린아이처럼 경이에 휩싸여 존재계의 신비를 느낀다.내게 이 단편집 당신 인생의 이야기가 바로 그런 경이감의 근원이었다.테드 창이 설계하고 축조한 이 거대하고 날카로운 사변의 건축물들 사이를 거닐면서 나는 내 오감의 통로가 열리고 미지의 신비,그 과학의 무한하고 불가사의한 깊이에 접촉하고 있음을 마치 전기에 감전되듯 지적인 전율로 떨었다.sf 소설은 어릴 적 초등학교 학급 문고를 읽고는 처음이었는데 테드 창이라는 놀랍도록 이지적이고 뛰어난 통찰력을 가진 작가의 논리정연한 창조물에 매혹되어 숨을 죽인 채 그 현현의 일체를 절시했다.가장 지적이고 가장 학문적인 그 전시물들 앞에서 내 독서체험의 폭이 넓어졌음에 무한히 작가에게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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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삼관 매혈기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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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아버지를 발음할 때 나에게는 특별히 떠오르는 아버지의 이미지가 없다

아버지는,나의 아버지이시고,그리고 말이 별로 없으며,나와는 데면데면한 그저 그런 사이이다

그러므로 아버지와 나와의 거리는 가까우나 멀고,경원하면서 소원했다

나는 아들이라는 이름으로 아버지에게 무관심했고,아버지는 아버지라는 위치로 나와 거리를 유지했다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가장 까깝고 살가운 지정학적 위치는 그렇게 가족이라는 가장 원초적인 껍질로 허울만 좋게 덮여져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아버지라는 사람의 다른 모습을 보게 된 것은

그날은 아버지가 밤이 늦도록 돌아 오시지 않았다

나는 그저 술이 또 취하셔서 늦게 돌아오시는구나 하며 별다른 신경조차 쓰지 않고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아 있었다

밤이 으슥하게 넘어가며 시계가 무겁게 움직이고 있을 무렵 아버지가 들어 오시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아버지는 내 방문을 열고 고개를 들이밀고 나를 보셨다

"아직 안 자냐?"

아버지의 얼굴은 붉게 술에 물들어 있었고 왠일인지 웃는 얼굴이었다

"너 좋아하는 치킨 사 가지고 왔다.어여 먹어라 ."

아버지는 다 식어 마늘 냄새가 연하고 어렴풋이 풍기는 양념 치킨 통닭을 내밀며 빙그레 웃으셨다

나는 당황했다

아버지가 양념치킨을 사오신 사실이 놀라웠던 것이다 사실 술에 취한 아버지가 치킨이든 족발이든 빈대떡이든 먹을 것을 사 가지고 오신 것은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었으나 양념치킨은 내가 좋아하는 군것질이었기 때문이었다

내기 양념치킨을 좋아한다는 것을 아버지는 어떻게 알고 있었을까

나는 아버지에게 양념치킨을 좋아한다고 말한 적도 없었고 또 아버지와는 같이 치킨을 먹은 적도 없었다 아버지는 치킨이 싫다고 하시면서 내가 먹을 때마다 같이 드시지 않으셨던 것이다.그런 아버지가 어느샌가 나의 입맛을 알고 계셨고 기억까지 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나는 적잖이 놀랐다.아 아버지는 내가 좋아하는 음식까지도 알고 계셨구나

나는 생각해보았다.'그런데 반대로 나는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음식에 대해 알고 있는게 있나?아버지는 뭘 좋아하시지?'

이모 저모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보아도 나는 아버지가 좋아하는 음식을 알지 못했다.나는 아버지의 식성조차도 파악 못하는 말하자면 불효자식이었다.반면에 아버지는 자식이 좋아하는 음식을 손수 술이 취해서도 사 가지고 와 주시는 분이셨던 것이다

 

 

 

그날 이후로 나는 뭔가 소화되지 않는 것이 목에 걸려 내려가지 않는 것 같은 심정으로 아버지를 ,달리,그리고 찬찬히,조금은 유심히 관찰했다.아버지는 그러나 그 전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여전히 말이 없는 사람이었고 적당히 어렵고 왠지 무덤덤한 사람이었다

별다른 무엇인가를 기대한 내 시선이 특별한 점을 찾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따금씩 그 치킨일을 생각하면서 아버지를 바라보던 나는 아버지의 숨겨져 있던 다른 면들을 하나 둘씩 발견하기 시작했다.아버지는 말이 없는 가운데 가족들의 마음을 세밀하게 파악하고 잇었고 담백하고 투명한 시선으로 다른 사람들의 의중을 짐작해서 그 앞뒤를 미리 헤아리고 계셨다

이럴 수가.아버지의 재발견이었다

그랬다.아버지는 무덤덤한 거리를 둔 와중에도 남몰래 가족을 살피고 관찰하며 보이지 않는 애정의 손길로 가족들을 보살피고 계셨다

 

 

 

 

이런 아버지의 보이지 않고 소리없는 그러나 따뜻하고 두터운 애정을 나는 또 다시 한 번 목격한 일이 있었는데 그것은 허삼관매혈기라는 소설을 읽을 때였다

허삼관매혈기는 내게 즐거운 책읽기라는 아주 오래전 즐거움을 서슴없이 선사한 책이었다

삶과 삶을 지탱하는 요소와의 관계가 과연 무엇인지를 독자에게 물으면서 그 독법의 하나로 자신의 존엄성의 정신적 등가물인 피를 파는 한 남자의 일생을 보여주고 있었다

생존을 위해 인간은 무엇을 담보로 할 수 있는가?

과연 그 생존은 존엄성을 유지한 채로 인간다운 얼굴을 할 수 있는가?

허섬관은 피를 판다.허삼관이 가진 것은 붉은 주먹과 맨 몸과 이 세상과 맞서 싸울 용기뿐.그외에는 가진 것이 없는 허삼관은 몸의 붉고도 싱싱한 피를 뽑는다.그리고 그 붉고도 단 피는 허삼관이 이 풍진 거친 세상을 살아가는 화폐요 밥이 되어 허삼관을 살찌운다

난 허삼관이 피를 팔 때 '그래,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도 사는 거야.누구는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서 전설 속 미녀와 연애도 했는데 피 좀 팔아서 결혼도 하고 그러는게 뭐가 나쁘겠어'하고 조금은 동정도 하고 약간은 동조도 하며 그의 매혈을 축하했다.

그러나 자꾸만 그의 피를 팔아 이어가는 삶이 계속되고 급기야 아들 일락이를 위해 피를 팔다가 목숨이 위태로울지도 모르는 혼미한 증세를 보이자 나는 이성복 시인이 말한 '살아가는 징역의 슬픔으로 가득한' 비릿하고 아리는 감정과 직면해야 했다.코 끝이 지끈하고 알싸한 슬픔으로 물들며 나는 허삼관이라는 사내의 넓고도 깊은 속내를 어느 새 느끼게 되었다

자신의 씨가 아니라서 아내를 제쳐두고 외도까지 난생 처음으로 하게 만들었던 남의 아들 일락.그 일락이를 위해서 허삼관은 자신의 모든 것을 내걸고 일락이의 목숨을 구할려고 갖은 애를 쓰고 있는 것이다.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했던가.그러나 일락이는 허삼관의 피가 아니다.그러나 허삼관은 친아들도 아닌 일락이를 위해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로 피를 팔고 있는 것이다.누가 허삼관을 일락이의 의붓아버지라고 할 것인가? 읽으며 가슴에 더운 기운이 퍼져 나갔다.자신의 얼굴을 닮지 않고 아내의 옛 남자친구의 얼굴을 날이 갈수록 자꾸만 닮아가던 자신의 아들 아닌 아들을 보면서 급기야는 아내에 대한 복수심 비슷한 마음에 외도까지 하게 부추겼던 그 아들이 병으로 쓰러지게 되자 자신의 유일한 무기요 생존 보장의 능력 같던 절대물질인 피를 생명의 위협을 느껴가며 연거푸 뽑는 애끓는 기른 아버지로써의 부정을 보며 진정 사람 사는 세상의 아름다움과 눈물겨운 인간미란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는 화끈한 감동을 느끼게 되었다.브라보 허삼관!허삼관 짱!!허삼관의 이런 따스하고 눈물나는 인간애가 바로 중국의 서민들의 보이지 않는 힘이었고 중국의 그 격랑같은 현대사의 묵직한 중압감을 버티고 짊어져 온 진정한 이유가 아니었을까 하는 섣부른 추측까지 하게 되었다.정녕 허삼관은 우리 이웃집의 아저씨였고 누군가의 아버지였다.허삼관이 존재하는 한 중국과 한국은 언어의 격차와 지리적 역사적 환경의 이질감에 상관없이 하나였고 동질한 느낌을 갖는 같은 나라였다

중국의 현대사는 질곡과 격동 파란과 변동으로 뒤범벅이 된 혼돈 그 자체였다.그런 시기를 인민의 보잘 것 없는 신분으로 아내와 자식들의 굳건한 방파제가 되어 지켜왔던 허삼관.허삼관은 바람보다 먼저 눕는 풀이었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는 풀이었으며 또 무엇보다 바람보다 먼저 피를 뽑아 자신의 생을 보존하는 풀이었다.웃느라 복통이 따를 정도로 재미있고 절묘한 그의 반생의 이야기가 어찌도 순박한 강인함으로 다가오는지 이 책의 탁월한 구성의 묘에 감동하게 된다

허삼관은 내가 아는 가장 순박한 민중이고 가장 평범한 시민이며 동시에 이것들을 합친 것보다 더 가장 인간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사람'이라고 불릴 만한,미세하지만 특별하고 사소하지만 굉장한 존재이다.한 집의 가장으로 그리고 한 사람의 아버지로.

허삼관을 보면 자연스레 감정이입이 된다.아버지들은 참으로 위대하구라고.

허삼관의 피를 판 부정을 보면서 피보다 더 진한 그 이름붙이기 어려운 그 무엇이 인간과 인간 사이에는 있구나 하는 것을 공감했다.

그 곳엔 허삼관이라는 아버지가 있었다.못 먹고 못 배우고 못 살면서도 그러나 끝내 인간의 얼굴을 잃지 않는 허삼관.허삼관에게는 피라는 비밀 병기가 있었고 무엇보다 인간의 마음이라는 아름다운 재보를 가지고 있었다.

허삼관 매혈기를 읽으면서 나는 아버지와 나를 생각해 보았다.

나의 아버지도 역시 허삼관 같은 아버지일까?

그리고 또 하나 나는 장차 앞으로 허삼관 같은 아버지가 될 수 있을까?

나의 아버지는 아마도 허삼관 같은,평범한 그러나 사람좋은 아버지일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그런 아버지가 되려고 노력할 것이다

사람이 삶을 살아감에 있어 어떤 방식으로 삶을 완성할지는 각자에게 달려 있고 그 길은 여러 길로 뻗어 있다.

그러나 그 어떤 길이든 그 길은 인간이란 목표를 향해 가야 하고 인간의 마을을 경유해서 가야 하리라.

인간의,인간에 의한,인간을 위한 삶만이 다른 인간을 구원하는 한 줄기 빛살이 될 것이다.인간의 내부에 숨겨져 있는  빛 이 아름다운 가능성을 끄집어 내야 하고 살려야 인간의 사회는 존재의 당위성과 그 효용성을 보장받을 수 있게 된다.그 빛을 허삼관은 아들 아닌 아들 일락에게 단지 자신이 죽을 때 눈물이나 조금 흘려주고 기억해 주기를 바라는 것,인간다운 양심을 가지고 살 것이라는 짤막한 당부로 가르쳐주었다.

 

 

 

피같은 세상에 피같은 웃음과 눈물같은 피를 먹여라!!! 누가 세상이 따스하고 아름다운 살아볼 만한  것이라고 했는가! 자신의 존엄을 위해 자신의 생명의 일부인 피를 돈과 맞바꾸어야만 하는 이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눈물나는 그래서 피같은 세상 !! 이 작품은 도처에 지뢰처럼 웃음을 매복시키고 불행한 삶을 애잔하게 그려냄으로써 오히려 역설적으로 보통 사람들의 고단한 초라한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이야기 속으로 독자들을 끌어 들임으로 몸소 실감케 한다.누가 허삼관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몇 명인가!! 이 사회라는 곳에서 누구든지 소중한 것을 조금씩 혹은 많이,자주 또는 가끔씩이라는 차이가 있어도 다 자신의 몸 속 피 같은 가치들을 자발적 혹은 강요로 팔면서 생존하는 것이 이미 오래인 지금,허삼관의 이 유쾌 처량 황당한 매판인생담은 남의 이야기가 아닌 나 자신의 대체된 처지로 침투해왔다.눈물같은 인생 웃음같은 세상 피눈물같은 인간 사회에 즐거운 피를 수혈하라!!!허삼관에겐 아직도 150병의 싱싱하고 풍부한 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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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타이 도쿄 - 핸드폰으로 담아 낸 도쿄, 그 일상의 세포
안수연 지음 / 대숲바람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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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펀엔 카메라 기능이 있다

이 핸드펀으로 사진을,그러니까 도쿄의 이 곳 저 곳 이 것 저 것을 찍은 책이 이 책이다

가장 사적이고 가장 조잡한 카메라로 가장 은밀하고 가장 직접적이며 반면에 가장 가까운 사진들을 작가는 기록했다

도쿄란 이국의 낯설고 먼 지점에서 작가의 감각세포는 조용히 차분하게 그러나 꿈꾸는 낯선 기대와 차츰 열려가는 오감으로 일본의 거리를 훑어간다

한국과 가까우면서도 바다를 사이에 둔 것 만큼이나 한편으로는 이질적인 일본을 하나의 사적인 일본론이라고 부를 수 있는 문화적 체험을 통해 작가의 예리하고도 적절한 감각의 레이다에 차분하게 또 섬세하게 포착한다

작가는 카피라이터를 십 년 넘게 하다가 늦바람이 난 사진에 다시 없이 매료되어  일본으로 유학을 왔다고 한다

그런 탓인지 생경하고 전문적인 사진작가들이 계속 튀어나와 어렵고 수준 높은 식견으로 예술 혹은 사진에 대한 이론들을 늘어 놓으며 독자를 어렵게 한다

그럼에도 이 책은 한 개인이 일본이라는 토양에 홀씨 하나가 바람에 실려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듯 정착하여 조심스러이 마음을 열고 도쿄의 품에 안기듯 생활해나가는 과정을 과장도 없고 조용히 그리고 솔직히 토로한다

일본이라는 사회와 한국이라는 타자의 은밀한 차이 혹은 두드러진 취향을 섬세히 뒤집어 끄집어 내면서 도쿄라는 잡지의 목록과 부록,특집기사,광고 기타등등을 예민하고 분별있는 안목으로 일람하는 작가는 도쿄를 담백하게 그리고 적정한 애정과 다소의 비판으로 사랑하며 작가는 자신의 유학 생활을 반추한다

그 반추의 시간들이 따스한 사색과 침착한 분석으로 페이지마다 조용히 잠들어 있다

도쿄는 작가가 발견한 사진 작가들처럼 그녀를 낯선 체험의 조용한 혼란과 또 조용한 침잠의 응시로써 그녀의 생애중 2년동안을 취하게 하고 잊혀지지 않는 기억을 작가의 시간 속에 녹음해 놓았다

그 시간 속의 섬세한 결을 더듬어 회고하면서 그것들을 앞으로 작가는 자신의 예술적 질료로 완성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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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세다 1.5평 청춘기
다카노 히데유키 지음, 오유리 옮김 / 책이좋은사람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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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공간을 선택하는 것은 무수한 의미가 있다

선택한 그 공간 속에서 사람은 꿈을꾸고 기거하며 사새과 체험을 하고 접촉한다 그 공간은 단순한 장소가 아니라 사람이 삶을 구축하고 운용하는 하나의 축이자 구성 요소로 인간의 기억의 일부를 어떨 때는 전부를 구성한다 사람은 특정공간에 대한 심상을 향유함으로써 자신의 기억과 직접적으로 소통하는 통로를 확보해둔다 사건이 있었던 공간은 사건과 일체가 되어 기억의 가장 밑바탕을 차지함으로써 사건이 생명을 얻었던 시간을 지속하게 한다 공간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고 인간의 피요 뼈이며 장기인 것이다

이 책의 저자 다카노 히데유키는 노노무라라는 이층 목조건물에서 11년 동안 하숙을 했다 참으로 엉뚱하다 싶을 정도로 노노무라를 구성하는 요소들은 유별나고 독특하며 친근하고 아날로그적이다 11년 전부터 무척이나 싼 요금의 하숙비가 전혀 오를 기색이 없는 것처럼 노노무라는 당시의 일본 사회와 초연하게 또는 시류를 무시하듯이 자기만의 걸음걸이로 독자적 자존을 유지하며 존재한다

나는 이 노노무라 체험기를 읽으며 작가를 내심 부러워 했다 이렇듯 인간 냄새가 나는 기발하고 반가운 곳에서 자신만의 파라다이스를 구가하며 오롯한 작은 왕국을 형성하며 사는 것이 어찌나 부럽던지.노노무라는 다카노 히데유키에겐 자신만의 숨어 있기 좋은 방이었고 동시에 전망 좋은 방이었으며 우울한 날의 다락방이었고 동쪽으로 난 잠자기 좋은 방이었다 이 1.5평 혹은 2평의 작은 그러나 완전한 소우주 속에서 다카노 히데유키는 완전히 마음을 놓고 자신의 세상에 대한 태업을 자연스럽게 그리고 즐겁게 실행할 수 있었다 그야 당연할 것이다 몸의 일부같고 둥지같은 피신처가 있는데 무어 그리 급하다고 세상의 흐름에 휩싸여야 한단 말인가

노노무라의 지붕 아래 기거하면 노상 즐거운 일들이 생긴다 이해못할 사건도 배를 잡고 웃을 사건도 끊임없는,가장 인간적인 얼굴을 한 커뮤니티 노노무라 와세다 대학의 골목 속에 이런 재미난 사연을 첩첩이 저장한 은밀한 낙원이 숨어 있다니..

만약 노노무라의 사람들이 훗날 모여 기념하는 기념회를 갖는다면 어떤 일들이 또 벌어질까? 역시 노노무라 사람들답게 온갖 시끄러운 자잘하고 유치하며 장난스러운 사건 사고로 왁자지껄 하겠지? 시간이 흘러 사회는 변해도 옛 추억을 소장한 채 사람들을 맞이할 것 같은 노노무라 세상에 건물은 많다 그러나 인간적인 그리고 너무도 추억이 담긴 건물은 그렇게 많지 않다 노노무라는 지금도 그 거리 그곳에서 십 년 전 모습 그대로 당신을 향해 미소짓는다 세상은 이렇게 즐겁고 자그마하고 툭닥거리는 곳이야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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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에 꽃 한 송이 심고 - 온몸으로 쓰고 그린 40년의 일기
이한순 지음 / 북스코프(아카넷)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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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순 할머니 세상엔 참으로 많은 삶의 형태가 존재하죠 그들은 모두 다 각기 사연이 다르고 사연이 다른 만큼 그 종류가 다른 삶을 살아가죠 할머니의 사연을 처음 서울 방송의 순간 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 에서 보았습니다 할머니는 한 쪽 팔 전체와 한 쪽 다리 전체와 손 하나가 없는 중장애인이셨습니다 사지 가운데 온전한 것은 다리 하나였고 그나마 오른팔은 팔뚝만 겨우 있는 정도였고요..저는 멍하니 화면을 보았습니다 그 상황이 이상하게도 이심전심으로 저에게 상상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어찌 보면 남의 고통과 상황을 제 일처럼 여기지 못하는 것이 오히려 더 흔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저는 무감각한 기분으로 풍경을 보듯 할머니의 사연과 일상을 보았습니다 그럼에도 오른팔과 얼굴 사이에 펜을 끼워 40년 동안이나 일기를 써 왔다는 대목에선 어떤 종류의 감동을 느꼈습니다 내가 저렇게 손과 팔이 없었더라면 과연 나도 일기를 쓸 수 있을까? 한페이지 쓰는데도 저렇게 긴 시간과 큰 고통이 있는데도 40 년동안이나 질긴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니 저는 숙연해졌습니다 삶은 어느 순간에도 엄숙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존엄하다는 생각이 저의 뇌리를 지나갔습니다 삶의 궤도에서 보면 정상인과 크게 다른 할머니의 삶은 그러나 그 한계의 끄트머리에서도 자신의 체성을 잃지 않으려는 단단하고 치열한 삶의의지로 스스로의 궤도를 분명하고 신성하게 가고 있었습니다

 

할머니의 지난 삶의 무게가 얼마나 지중하고도 압도적이었을지 저는 상상이 잘 안갑니다 아무리 제가 할머니의 마음을 이해하고 눈물이 흐를 정도로 공감을 한다고 하여도 정상인으로서의 알량한 동정심과 얕은 생각의 섣부른 건방짐에 가까울 테니까요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할머니의 삶이 우리와 크게 떨어져 있지 않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할머니의 삶이 일반인과 전혀 다를 바 없이 자체적으로 존엄하고 소중하듯이 우리의 삶도 장애와 그다지 떨어진 바 없다는 믿음이었습니다 누구라도 만약 불행한 사고를 겪는다면 같은 처지가 될 거라는 하나의 생각이 저의 마음을 채웠습니다물론 그렇다고 모두가 장애인이 될 리는 없겠지요 그러나 장애인도 인간이듯 우리도 장애인입니다 언제든 그렇게 될 위험성이 잠재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같은 거지요

 

할머니의 지난했으리라 생각되는 삶을 저에게 살아가라고 한다면 저는 자신이 없습니다 아마 저 같으면 자살을 했겠지요 삶은 가끔 무서울 정도로 매정하여 돌팔매를 던집니다 그 돌팔매를 맞고 어떤 사람들은 쓰러지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오히려 일어납니다 할머니에게도 어떤 운명의 돌팔매질이 가해진 것이 아닐까요 그 돌팔매질에 가슴을 온통 도려내셨을 할머니의 깊은 마음이 생각해보면 아득합니다 할머니의 심중을 가득 채웠던 그 어둡고 무거웠던 슬픔의 무게를 헤아릴 방법은 없겠지요 다만 자기 앞에 놓인 십자가는 오직 자기만이 짊어져야 한다는 자명하고도 움직일 수 없는 사실에 할머니와 다른 저 자신을 또 다시 돌아보며 과연 삶이란 또 고난과 고통이란 어떤 의미로 사람을 인도하고 위로하려 하는지 생각에 잠겨볼 뿐입니다 할머니 그 동안 얼마나 서러운 아픔을 꾹 꾹 담아 누르고 살아 오셨습니까 인생이란 이렇게 뜻하지 않는 슬픔을 겨우 참아가며 인내하는 것이라고 마음에 새겨 봅니다 몇 발자국 걷지도 못하고 쓰러지는 것이 인생의 본래 목적은 아닐진대 어찌하여 삶의 고통은 이렇게도 길고 큰 것일까요

 

할머니가 차곡차곡 기록한 일기장 속에는 그 모든 슬픔과 기쁨 아픔과 고통이 고요히 숨을 쉬고 있겠지요 할머니의 지난 생애가 눈물 속에 깃들어 있는 일기장을 읽으며 저는 운명 속에 던져진 한 개인의 결단과 선택을 생각했습니다 인간은 어느 상황 아래에서도 스스로의 독자적 고유함을 잃지 않는 한 아름답다고 말입니다 언젠가 저에게도 팔 다리를 잃은 것과 같은 아픔과 고토ㅇ이 찾아올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그때 저도 할머니처럼 스스로의 삶을 꾸려나갈 주체적 용기가 있을까요 할머니의 진솔하고 가식없는 일기장을 덮으며 인간이 지녀야 할 덕목 하나를 심사 숙고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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