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어주는 여자
레몽 장 지음, 김화영 옮김 / 세계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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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그 읽는다는 행위를 통해 독자는 어떻게 변화하고 무엇을 얻으며 책과 독자 상호간에 어떠한 관계를 형성하는가?

지난(至難)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 의식의 변혁을 통해 세계와 연결된 공간이 세계와 상호소통하는 그래서 열려 있는 기능의 행위이고 그 자체로 하나의 소우주를 구성하는 일종의 창조적 활동이고 무엇보다 책을 통해 감정의 에너지를 얻는 즐거움이라고 할 수 있다

책 읽어주는 여자 마리 콩스탕스는 처음 이 일을 시작할 때 망설이고 확신을 갖지 못한 채 시작한다

그러나 세상에는 책을 읽어주는 여자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모두들 책을 읽어주면 귀를 기울이고 열중해서 탐닉했다

세상엔 읽는다는 행위를 원초적인 에너지의 흡수로써 동경하고 자발적인 참여를 원하는 사람들이 놀랍게도 많았다

 그 사람들은 장애인이거나 노인이거나 어린아이이거나 이혼한 남자이거나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가 책을 읽어주는 소리로 통해 생성되는 하나의 미지의 공간 속에 편입되기를 원하는 청중들이다

그들은 여러 가지 특수한 문제들이 각기 존재하고 있다

하반신을 못쓰는 장애인이거나 80 고령에 혼자 남은 사회주의자이거나 아니면 부모가 모두 바빠 돌봐 줄 수 없는 아이이거나 이혼하고 혼자 고독하게 살고 있는 사업가이거나.....

이들의 각자 독특한 조건들을 모두 위무하고 치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마리 콩스탕스의 책읽어주기는 치유의 읽기라는 한 기능을 보여주고 그에 대해 성찰하게 한다

고객들은 모두 마리 코스탕스의 책 읽어주는 것을 좋아하고 그녀의 책읽기로 인해 생의 기쁨을 얻게 된다 생의 기쁨과 에너지를 얻으며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타개하고 좀 더 많은 욕망을 꿈꾸며 새로운 세계에 대한 열망을 꿈꾸게 된다

심지어 혼자 살고 있는 고독한 할아버지이면서도 사드의 엄청나게 반질서적이고 외설적인 저서를 읽어주는 것을 즐기는 그 노인에게서조차도 신생의 열망을 엿볼 수있을 정도이니까

자 그렇다면 마리 콩스탕스의 책읽기는 독자 즉 고객들에 대한 공급을 다한 그래서 창조적인 가치가 있는 행위이다

이 창조적인 행위로 인해 마리 콩스탕스는 자신도 함께 변화해가고 좀더 다양한 욕망을 가진 존재로 변화해 간다 고객들이 마리 때문에 변화했다면 마리 역시 고객들로 인해 함께 발맞추어 나가듯 변화한 것이다

상호 소통의 기능 안에서 하나의 동질한 결과가 도출되는 것이다

책읽어주기는 책을 읽어주는 마리나 그소리를 듣는 고객들이나 즉 책이나 책을 읽는 독자나 모두 의미있고 생의 비밀을 담지한 매우 은밀하면서도 아주 창조적인 욕망이 만들어지는 진정한 하나의 축제가 되는 것이다

마리의 이 책을 읽어주는 일은 굉장히 의미있는 그러니까 일상의 진부한 수면 위에 만들어지는 섬세하고 강력한 아름다운 무늬와도 같은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어주는 일을 마리가 끝낼 수 밖에 없는 경우가 닥치고 만다

법원의 판사 출신이면서 아주 예의바르고 교양을 갖춘 상류계급의 전형적인 인물이지만 그러나 의외로 아주 반사회적이고 무규범적이며 탈도덕적인 사드의 <소돔의 120일>을 읽어주길 원하는 노인은 마리의 책 읽어주는 행위를 매우 싫어하고 감시하던 형사와 역시 그녀의 책 읽기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가진 의사를 초청해 읽어주기를 요구한다

마리 콩스탕스의 책읽기는 사회의 질서를 담당하고 있는 축들인 법원장과 치안을 경비하는 형사 그리고 사람들의 생명을 지키는 의사 이들의 시선앞에 유린될 지도 모르는  시험을 기다리게 된 것이다 마리는 이들 앞에서 책 읽기를 거부한다

이들 마지막 독자들은 모두 사회의 질서와 안녕을 담당하는 지배 이데올로기들이지만 실상은 사드의 지독한 외설적인 책들을 들으려고 모인 부패하고 정의롭지 못한 지배계급들이다

결국 부패하고 위선적인 사회의 질서에 마리의 책 읽어주기는 유린당하고 활동의 기회를 박탈당하며 붕괴하고 마는 것이다

마리의 책읽기....그것은 어떤 은밀한 변혁이고 자그마한 혁명이며 생활을 창조하던 축제였지만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보수적이고(사실은 더 부패한) 억압적인 지배 담론에 의해 결국 항해가 좌초되고 만다

이는 프랑스에만 국한된 것일까

책 읽어주는 것(책을 쓰기)과 책 읽어주는 것을 듣는 것(책을 읽는 것)은 어떠한 행위보다도 지적이며 동시에 몹시 에로틱하고 관능적인 독자와 책 또는 독자와 저자의 상호 소통의 교류장이다

진정한 책은 아무리 잘 쓰여진 책이라 할지라도 진정한 독자를 만나 음미되지 않으면 탄생하지 않는다

책 읽어주는 여자는 그점에서 독자와 책의 아름다운 관계 맺기를 성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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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에이지 미스터리 중편선
윌리엄 월키 콜린스 지음, 한동훈 옮김 / 하늘연못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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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에이지 미스터리를 읽는 것은 즐겁다

황금기에 쓰여진 미스터리들 답게 작품 모두가 하나같이 개별적으로 일정 이상의 완성도와 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독서의 즐거움을 누리게 하고 있다

이들 작품들은 모두가 19세기 중반이나 19세기 후반 그리고 20세기 초반에 쓰여진 것들로 지금의 수많은 미스터리들의 효시와 원형들을 이루고 있다

약간은 어느 정도는 지금 감각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심심하거나 너무 마일드하다고 느낄지도 모르지만 고전은 언제나 동시대의 감각과는 일치하지 않으면서도 읽히기에 그쯤은 감수하고 읽으면 우리의 조상님들이 읽었던 그 시대의 마음으로 미소를 머금고 즐겁게 즐길 수 있다

수록된 작품은 모두 다섯 편이다

 

1.3층 살인사건-프랭크 보스퍼

개인적으로 이 중편선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걸작이었다

어째서 넘버 원의 자리를 부여 했는가 하면 ㅋㅋㅋ 우선은 미소부터 감도는데 그 이유는 일단은 해학성에 있다

살인사건이 났는데 그 사건을 추적해 가는 도중인데도 어찌된 일인지 중간 중간에 유머가 지뢰처럼 매설되어 있어서 도중에 웃느라 정신이 없었다 ㅎㅎㅎ 유머와 살인이 이처럼 잘 결합된 예로는 영화 살인의 추억 이후로 처음이었다

보스퍼씨는 꽤나 웃음을 진지한 자리에서 날려 주시는 본좌급인 분이었던 것이다

그 유머가 천박하거나 유치하지 않고 고급스러우면서도 예리하고 기지가 팔딱팔딱 살아 있는 그러니까 아주 귀여운 유머였다고나 할까

그러면서도 유머를 지나치게 남발하는 우를  보스퍼씨는 자제하고 현명하게도 사건의 동선을 살리는데 주력하여 해학은 서브 디쉬로 활용하는 우아한 집필력을 과시한다

살인사건의 범인을 나는 예상하고 있었는데 내가 머리가 좋은 것인지 아니면 다른 추리물을 읽으면서 습득한 방법으로 나도 탐정급 두뇌를 장착하게 되었는지 그렇지 않으면 보스퍼씨의 작품이 너무 쉽게 트릭이 안배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결론은 나의 예상대로 범인이 정해졌다(!)는 것이다 즉 나의 예상이 맞았다는 것이다

에거서 크리스티의 쥐덫을 보고 잘 학습된 독자라면 아 그러니까 현대식으로 말하자면 소년탐정 김전일을 보고 범인의 엉뚱한 출현을 잘 코드화해서 숙지한 사람이라면 어렵지 않게 맞힐 정도로 범인을 잡는 과정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정작 그 다음부터 이 작품의 진정한 가치와 특징이 수면 아래에서 빙산의 숨겨진 부피처럼 나타나게 되니 지금까지는 서론이다

문제가 무었인가 하면 지금까지의 살인 사건이 모두 한 사람의 머리에서 나온 꾸며진 희곡이었다는 것이다

즉 이 희곡을 꾸민 사람은 하숙집에서 사는 한 극작가 지망생이었는데 그가 사랑하는 하숙집 주인의 딸을 위해 하숙집에 사는 사람들을 모두 등장해 가공의 살인사건을 꾸며 냈다는 것이다

하숙집 딸에게 흥미진진한 살인사건을 들려주어 자신의 작업 효과(!)를 극대화하여 구애를 성공하기 위한 교두보로 자신의 재능을 보여주려는 목적.이 목적으로 살인사건을 창작하여 하숙집 주인의 딸에게 들려준 것이다

그러니까 모든 살인 사건이 다 허구고 그들은 지금 정상적인 삶들을 일상 속에서 살고 있으며 살인과는 전혀 거리가 먼 인물들인 것이다

이런 반전은 2004년에 한국을 뒤흔들었던 파리의 연인의 충격적인 결말 이후로 처음 있는 자칭 열린구조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의 모든 사건이 전부 다 허구이고 한 시나리오 작가의 머릿속에서 일어난 상상이고 김정은은 박신양을 결말에 가서야 처음 만나는 것처럼 이 소설도 모든 것이 허구이고 한 극작가의 머리에서 다 일어난 창작물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반전이 있다 신문에 실린 굉장히 성공적인 연극의 대본이 바로 이 하숙생 극작가가 들려준 내용과 정확히 일치하였던 것이다 즉 이 하숙집에 사는 극작가 지망생은 사실은 굉장히 유명한 희곡작가였고 가명으로 하숙집에 하숙했던 것이다

 

결말 부분의 반전이 대단히 인상적이었던 작품이었다 마치 드라마 파리의 연인같은 황당하고 머리를 치는 듯한 그 구성이 아주 재미있었다

 

 

 

2.데드 얼라이브-윌리엄 윌키 콜린스

이 작품은 미국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역사상 최초로 기록된 오판의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창작된 사건이라고 한다

앞 뒤의 사정을 고려해 봤을 때 충분히 살인이 일어났을 거라고 짐작되는 증오의 감정,그리고 의심을 사기에 충분한 살인에 쓰였을 도구들과 시체의 뼈로 보이는 의문의 뼈,그리고 무엇보다 실종되어 완전히 사라진 피해자....

이런 것들로 하여 범죄의 용의자들인 두 형제는 꼼짝달싹 할 수 없는 올가미에 걸린 것처럼 점 점 더 살인자로 몰려간다

그러나 두 형제는 결백하다고 자신들을 변호하지만 사람들은 믿으려 하지 않고 결백을 입증할 만한 어떤 것도 형제는 할 수 없다

그러자 서서히 두 형제는 자신을 둘러싼 주위의 압도적인 의심에 굴복하기 시작한다

동생은 형을 살인의 범인이라고 밀고하면 자신만은 살 것이라는 얕은 생각에 자신만이라도 살려고 형을 고발한다 그것이 진실인지는 알수 없다

마침내 형도 사형에서 무기형으로 감형시켜 주겠다는 회유에 넘어가 자신이 살인을 저질렀다고 자백한다 물론 사형에서 무기형으로 감형을 바라며

그런데 기적적으로 이들이 죽였다고 자백을 한 피해자가 버젓이 살아 있다는 소식이 들어온다

정말 두 형제는 사람을 죽이지 않았던 것이다

이 작품을 읽으며 생각이 복잡해졌었다

만일 치명적인 의심을 살 정도로 원한 관계에 있다면 그리고 주위 정황이 마치 살인을 하기 알맞을 정도로 꾸며져 있기까지 하다면 범인은 따로 있거나 무죄라고 하더라도 사람들의 여론에 따라 꼼짝없이 살인자로 낙인이 찍히는 것은 피할 수가 없겠구나 하는 것이었다

종종 뉴스에서 들리는 죄인이 아닌데도 오판에 의해 억울한 수인의 세월을 보낸 사람들의 이야기가 어째서 그런지 그 심층구조를 들여다 본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아울러 자신이 무죄임을 알고 있는 당사자라 해도 믿어주는 사람이 없고 유력한 용의자로 몰리기 시작하면 두려움과 생명에 대한 애착 때문에 자신의 결백을 더럽혀가면서도 살기 위해 거짓 자백을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착잡했다

이 두 형제는 결백한 사람들었음에도 압력에 못이겨 자신들의 존엄을 훼손당하고 스스로 자신을 모욕한 경우의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그런 피해를 보상해 줄 필요가 있는데 누가 해 줄 것인가?

 

 

 

3.안개속에서-리처드 하딩 데이비스

이 작품 역시나 3층 살인사건 처럼 가공의 꾸며진 이야기이다

어떤 살인사건을 꾸며내서 즐거운 이야기의 재료로 하기 위해서인데 그 이야기를 들려준 이유는 하원의원이 그 이야기에 심취에 국회에 해군 증강안을 연설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인 것이다

그래서 살인사건을 들려준다

두 형제와 한 미녀가 나오고 그 두 형제의 유산에 얽힌 욕망과 서로간의 반목에 동생이 형을 죽인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미국인 해군 중위가 꾸며낸 이야기이고 다른 이야기인 미녀와 관련된 이야기에 중요한 의심을 사는 인물도 첫번째 이야기를 들려준 미국인 해군 중위라고 한 젊은이가 폭로한다

그리고 그 젊은이는 동생이 죽인 그 형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모든 이야기들이 꾸며진 것이고 그 목적은 추리소설을 읽기 좋아하는 하원의원의 국회 등원시간을 늦추려고 지어냈던 것이다

그러난 여기서 이중의 반전이 기다리고 있으니 그 극회의원은 이미 몇 시간전에 국회에서 연설을 하고 나온지 오래였던 것이다

유쾌한 서로를 속이는 회합은 끝나고 이제는 술을 마시는 시간이 되었을 뿐이다

 

 

4.버클 핸드백-메리 로버츠 라인하트

미스테리물 중 특이하게 간호사가 탐정으로 나오는 의학탐정물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이다

살인사건 같은 끔찍한 사건이 나오지 않고 그냥 부유한 집의 외동딸이 실종된 사건이 나올 뿐이다

결말을 알게 되면 조금 허탈하고 싱거울 수도 있다

그러나 침착하고 조밀하게 사건을 끌고 가며 도대체 끝이 어떻게 날것인지 무엇이 진실인지 한 치 앞도 잘 모르게 직조해서 이야기를 끌고 가는 솜씨는 분명 일급이다

결말을 알기 까지 조금도 사건 전개를 눈치 못챘었다

 

 

5.세미라미스 호텔사건-알프레드 에드워드 우들리 메이슨

작가가 채택한 프로이트의 무의식이론이 중요하게 기용된 조금 이색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있다

무의식 소게 보았던 인상 착의와 특징들을 잠을 자면서 조금씩 자신도 모르게 꿈 속에서 자각한다는 점이 놀라웠고 그런 꿈 속에서 본 사실들을 믿고서 범인을 잡을 때 증거로 채택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과연 지금도 그런 꿈 속에서 본 사실로 범인을 붙잡고 있을까

믿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꿈속에서 본 것만으로 범인을 잡기엔 너무 비과학적이고 비논리적이니까

지금은 그런 무의식적인 사항들로 범인을 잡는지 모르겠으나 아무튼 그런 특징들로 범인을 잡는 것이 신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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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소금사막에 비가 내리면 - 테오에세이
테오 글.사진 / 삼성출판사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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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씨

당신이 머물렀던 소금사막에는 비가 옵니까?

혹은 비가 온 적이 있는가요?

여기는 비가 안 내립니다

비가 내렸던 기억은 먼 선사의 꿈으로만 간직되는 듯 저 먼 중생대의 어느 우기에나 내렸을법한 더위로 이곳은 무척이나 답답합니다

처음 당신의 책을 읽으면서 저는 어떤 어렴풋한 의심을 했습니다

서점에도 돌고 도는 유행의 주기가 있게 마련이죠

지금은 해외로 왕성하게 떠나고 보는 여행의 욕구를 트렌드로 추종하는 그런 책들이 돌고 있는 때가 아닌가 하고 말이죠

볼리비아라는 나라는 사실 그렇게 인지도가 선명한 나라는 아니지요

아마도 남미의 나라가 거개가 그렇듯이 그다지 잘 사는 나라가 아닌 스페인어를 쓰는 미지의 나라가 아니던가요

그렇게 한국보다도 못사는 나라라고 하여도 우선은 이국이라는 점에,그리고 여행이라는 점에서 그런 곳이라 할지라도 여행기를 내고 보는게 지금의 트렌드가 아닌가하고 저는 그렇게 당신의 아름다운 사진들이 박혀 있는 페이지들을 넘기며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저의 억측은 일종의 의심이며 동시에 횡포지요

아무렴 유행이면 어떻습니까

유행할 때 입는 옷은 추위를 안 막아주던가요 유행하는 옷이라고 해서 아름답지 않던가요?

저는 당신에 대한 이런 의심쩍은 낯선 눈길을 거두었습니다

그저 당신을 따라 볼리비아라는 낯선 풍경을 조용히 둘러 보았습니다

볼리비아라는 나라는 조금은 뒤떨어지고 낡은 나라입니다

시간이 퇴적된 나라이죠 모든 것이 빛의 속도로 달려가는 이 글로벌의 시대에 어딘가 지구 한 쪽에는 아직도 정답고 오래 되고 그리고 못사는 그런 나라들이 있는가 봅니다 아니 어쩌면 그런 나라들이 더 많은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아는 섹스 앤더시티나 마놀로 블라닉 구두나 육성급 호텔이나 광랜 컴퓨터나 아카데미 영화제 같은 것이 한 번도 상륙하지 못한 그 이름없고 조금은 쓸쓸한 그 거리들을 라마와 같이 걷는 테오씨 그리고 저도 당신의 그 뒤를 함께 따라갔습니다

좋더군요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도시의 사막이 아니라 소금 사막은 사막인데도 목이 타는 갈증이 없었습니다

쓸쓸하고 조용하여 마치 우주로 빨려들어갈 것 같은 한낮의 무료함이 있고 그리고 가난하여 선량한 사람들이 있더군요

아마 진정한 사막은 이 황량하고 번화한 그래서 네온사인이 번쩍거리는 이 도시의 사막인지도 모르지요

그럴 수밖에요 이 도시에서는 모두가 모둘를 모르면서도 동시에 모두가 모두를 알고 있는 참으로 이상한 밀림이니까요

그래서 사람들은 이 밀림을 살아내기 위하여 날마다 술을 마시고 어딘가에 전화를 걸면서 그 고독을 값싼 감상에 팔아치우고 있는가 봅니다

사진으로 본 볼리비아는 또 다른 의미에서 고독한 곳 같았습니다

돈이 잘 돌지 않아 사람들은 낡고 망가진 의식주 속에서 무료하게 그저 시간을 때우며 하루 하루를 보내는 곳 같았습니다

그러나 사막화가 진행이 안된 곳이기도 했습니다

지나친 사람과의 거리로 인해 고생을 하는 일도 없고 군중 속의 고립이라는 희한한 병에 신음하는 일도 없는 자유롭고 따스한 그래서 완만한 속도로 시간을 따라가는 일종의 평화가 볼리비아에는 있었습니다

마치 오래 된 사진을 다시 펼쳐 보는 것 같은 그런 편안함

그런 데쟈뷔가 있었습니다

잊고 지내던 친구를 다시 우연히 길거리에서 마주친 것같은 그런 반가움 그런 익숙함에 저는 아름다운 사진들을 들여다 보았습니다

삶이란 이렇게도 다를 수도 있지만 그러나 어느 한 각도에서는 놀랄만큼 닮은 피사체가 성립되기도 하는구나 하고 저는 당신의 볼리비아를 보면서 그 익숙한 오래된 시간이 퇴적에 왠지 안심했습니다

그건 마치 잃어버린 옛 거리를 우연히 영화 속에서 장소 헌팅하는 사람이 어렵사리 발견해서 구현한 어느 지방의 모습들 속에서  다시금 느끼면서 알 수 없는 향수에 몸을 떨면서 감격하는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볼리비아는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있을까요?

제가 책을 본 순간이 지나고 나서도 오래 오래 그렇게 그 모습으로만 있을까요?

그건 안 되는 일이겠죠 저의 욕심에 볼리비아의 내일을 막는 것은 안 되는 일이죠

그러나 볼리비아가 앞으로도 그런 쓸쓸하고 낡은 모습으로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책에서 본 볼리비아는 분명 '이곳' 과는 달리 어떤 가능성과 환상으로 채워진 나라였으니까요

당신의 책을 읽으며 볼리비아라는 이국의 한 장소에 가능성을 느꼈습니다

어떤 가능성이냐구요

현실과는 다른 그러나 또 다른 현실이기도 한 그런 장소의 매혹같은 걸 말입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당신의 또 다른 여행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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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터리 1 - 청소년 성장 장편소설 아사노 아쓰코 장편소설 1
아사노 아쓰코 지음, 양억관 옮김 / 해냄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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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나에게도 소년시절이 있었다

그것은 지구가 존재하는 것처럼 태양이 존재하는 것처럼 떡볶이가 존재하는 것처럼 브라질 국가대표 축구팀이 존재하는 것처럼 사실이다

그런데 지금의 나에겐 그런 분명했던 사실이 왠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

미안하게도...

과연 나에게 소년시절이 존재했던가

모르겠다 나에겐 지금 어른이 된 현재의 순간만 있고 그외의 것들은 그러니까 과거나 미래 같은 것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이  책 배터리는 소년시절을 다루고 있는 그러니까 소년들이 운동하는 스포츠물이다

한 소년이 있다

재능있고 자존심 세고 시건방지고 자기 중심적이고 자신감 과잉에다 남의 사정은 눈곱 만큼도 생각하지 않는다 오만하고 냉정하며 타협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최고로 짜증나는 성격을 가진 투수이다

이쯤되면 괴물이라고 해도 좋을 극도의 캐릭터인 셈이다

그리고 그런 그의 가장 강렬한 공을 가장 잘 받는 포수가 있다 이 소년은 이해심이 많고 따스하며 남의 마음을 섬세하게 관찰하는 넓고 다정한 마음씨를 가진 천사표다

그런 그들이 만나 야구를 하게 된다

야구는 그들에게 생명을 존재하게 하는 지고의 희열이자 레종 데트르 같은 것이다

순수한 마음으로 경기에 임하며 오직 그 순간들을 위하여 자신들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쏟아 붇는 무척이나 아름다운 야구를 이들은 한다

소년이 아니면 할수 없는 오직 소년만이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경기를 한다

그런 그들을 둘러싸고 갖가지의 인간들이 야구라는 경기와 그 경기에 관련된 자신들의 열정으로 이합집산한다

그들은 모두 지극히 순수한 마음으로 운동장에 서서 공을 던지고 치는 그 행위에 마음을 빼앗긴 사람들이다

공을 던질 수만 있다면 공을 칠 수만 있다면 야구를 할 수만 있다면 ...가슴이 들끓고 전신의 피가 고동치는 이 붉은 심장을 가진 소년들은 보는 어른들을 무색하게 만들만큼 강한 열정과 프로페셔날한 태도로 세상이라는 경기장에서 자신의 레종 데트르를 탐구하는 예술가들이었다

 

 

나는 생각해 보았다

나에게 있었던 소년시절은 과연 이 책에 나오는 이들처럼 그렇게 뜨거웠던가 그렇게 순수하게 치열한 고민속으로 들어갔던가

야구가 아니어도 좋으니 다른 그 무엇으로 그렇게 불타올랐던 적이 있던가 단 한 번이라도 그렇게 피가 끓어 올라 전신의 힘을 다해 무언가를 한 적이 있던가

나의 소년시절에 미안하게 그런 일은 없었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잃어버린 한 조각의 연대기를 희미하지만 애통하게 돌아보게 되었다

나에게도 존재했을지 모르는 그 어리고 푸르렀던 그래서 가장 빛나던 그 시절을 내 스스로 유기하여 멀어지게 한 것은 아닌가 하고 말이다

 

소년들은 야구를 하면서 인생의 한 시절을 터닝하고 있었다

그 시간들은 푸르고 강렬했으며 그들이 흘리는 땀만큼이나 농밀하고 귀중한 것이다

야구

야구로 인해 소년들은 자기들의 존재 가치와 세상에 대한 존재양식을 배우고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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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원주민
최규석 지음 / 창비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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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석의 만화를 나는 좋아한다

그의 기발하면서도 현실에 밀접하게 발붙인 창의력이 좋고,언더나 비주류를 연상시키는 궁핍한 현실에서 날카롭게 세상을 보는 안목이 좋고 그러면서도 가장 약하고 별 볼일 없는 것들에 대한 연민과 세상의 불의를 인식하는 양심 같은 것이 느껴져서 나는 최규석을 좋아한다

 

그의 새 만화책을 읽었다

기존의 창의적인 재치나 예리한 유머는 좀 적다

아무래도 연대기적인 현실의 일들을 그대로 재현해 내는데 유의한 '대한민국 60년' 소사(小史)라서 그럴 것이다

 

그의 성장 과정은 도시의 안락하고 빈곤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경제개발 계획 이후의 삶들과는 좀 다르다

많이 다르다

그는 1977년 출생인데도 마치 19세기의 한국을 보는 듯한 그런 날것 그대로의 고생으로 채워진 삶을 살았다

역시 세계는 동일한 온도에서 동일하게 운영되는 하나의 단일체가 아니라 서로 다른 각자의 세계들이 한데 모여 각자 독자적으로 움직이는것이라는 그런 생각이 든다

 

그의 이 책에서 엿볼 수 있는 체험들은 모두 사실에 기초하고 있다

아마 거의 변형이 없는 원형 그대로의 결을 지닌 사실로써의 이야기에 충실하다

 

거기에는 가부장제의 악습을 그대로 유지한 아버지의 술주정이 있고 무식하고 못살았지만 자식을 위해 그렇게 애쓰던 우리의 어머니가 있었고 동생의 미술학원비를 적금을 깨서 주던 누나의 온정이 있었고 육이오 때 인민군과 함께 산으로 들어갔던 고모부가 있었고 미국의 비행기 폭격으로 숨진 소 여물 주던 소년이 있었고.......무엇보다 숨가쁘게 미칠 듯한 속도로 전근대 농촌사회라는 과거와 결별하고 신흥개발도상국으로 숨가쁘게 진입한 대한민국의 어제가 있었다

 

티브이가 없어 깨금발로 창문 넘어 이웃집의 티브이를 같이 보던 시절의 그 코끝이 찡한 가난이 있었다

그 모습을 자존심이 상해서 못 보던 장남인 작가의 큰 형은 각고의 노력 끝에 세계기능대회 동메달을 따서 돌아오고

작가는 이제 추억이 된 낡은 앨범 속에서 그 시절 이야기를 천천히 꺼내 반추한다

 

대한민국은 정치가와 관료와 재벌만이 만든 나라는 아니다

오히려 힘없고 가진 것 없는 서민들이 저임금 저곡가의 고통을 묵묵히 안고 노력하여 선진국으로 진입한 나라이다

그런 대한민국의 어쩌면 잊혀질 뻔한 ,그러나 생생하고 아쉬운 그래서 한번쯤은 기억해줬으면 하는 일들을 작가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사실적인 그림으로 그려냈다

거기엔 가난하여 텔레비젼도 없던 소년의 회고가 그림처럼 생생하다

 

대한민국의 어제와 오늘은 과연 어디에 위치해 있는가

그 잊혀질 뻔한 개인들의 후락하고 촌티나는 옛 이야기들은 그러나 우리의 시원이기에 가슴이 아리고 절절하다

대한민국의 원주민들은 과연 누구였는가

못 먹고 못 입고 못 살던 사회의 가장 낮은 자들이 울고 웃으며 살아가던 그 모습들에서 이제는 세계속의 한국이 된 그 나라의 가장 오래 된시간의 모습들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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