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을 끓이며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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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김훈 에세이가 수록되어 있지만 신편이 있고 그 새로운 에세이들의 가리키는 몸에 대한 즉물적인 이미지 뒤에 있는 저자의 생각들이 특히 읽을 만 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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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의 일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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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건대 김연수의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의 소설에 대해 애초에 경향이라든지 여러 가지가 그저 그랬고 또 나는 입이 짧아서 그다지 소설들을 탐하지 않는다

오로지 내 입에만 맞는 책들을 골라 읽고 또 그런 소설들을 찾기위해 읽어 보고 중단하기를 거듭하고 있다

그래서 장르소설이든 순수문학이든 몇 백 권 천 권 가까이 한 분야를 줄기차게 파는 분들을 보면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내가 입맛이 까다로운가 아니면 내가 그들보다 그저 그런 소설쯤은 무시할 정도로 감식안이 높은가

별 별 생각을 다 해 봤지만 미스테리이다

 

지금까지 내가 읽은 김연수의 소설은 <세계의 끝 여자친구>와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과 ...... 겨우 이 두 권 뿐이구나

 

그러나 이 두 권으로 만난 그의 이미지는 그냥 그저 그랬다는 것뿐

내용을 이루는 배경은 내게 관심사가 아니었고 (내게 그런 것이 있는지 의심스럽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문장 자체가 마음에 안 들었다

후줄근하고 촌스럽다는 것

정교하게 깎아낸 듯 하여야 하는데 자연스럽지 않고 평이한 요철과 진부한 온도의 문장으로 채워진 그의 소설들에서 울리는 음향들은 맥없이 날개짓하다가 무의미의 동굴 속으로 떨어질 뿐이었다

공감도 그렇다고 즉물적인 활자를 씹는 느낌도 없는 명실상부하게 빈 공명을 주는 나팔

이것이 나의 그의 소설에 대한 답장이다

 

그런데 이 산문 즉 소설론을 다룬 에세이에서는 그런대로 2루타 이상의 스코어가 내 머리 속 메모장에 새겨졌다

 

그는 의외로 재미있는 사람이었고 독창적인 구석(소설들을 읽을 때 이 점은 이미 캐치했었다만)도 널려 있었고 유머 센스도 수준급이었다

그래서 이 창작론으로서의 소설에 대한 개념서를 상당히 재미있게 읽었다

 

소설은 무엇인가

소설가란 무엇인가

그리고 소설은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하는가

 

이 요소들을 살펴 보며 자신만의 독법으로 그리고 자신만의 창작법을 아낌없이 미주알 고주알 일러준다

여기서 그 자세한 모습들을 소개하자니 소개팅 나올 여자의 몸매며 좋아하는 향수 타입까지 미리 스포일러 하는 것 같아 하기 싫다

라기 보다는 성의있게 발췌해서 요약 정리가 하기 싫다는 나의 게으름 탓이라는 걸 정직하게 고해성사한다

이 죽일 놈의 게으름 !

 

그래서 마침내는 동네 개울물이 흐르고 흘러 바다로 들어가 영원 속으로 합류하듯이 우주와 인생을 사랑하는 일이 그것에 혹하는 것이 소설을 쓰고 읽는 일이라는 뻔하면서도 진중한 무게감의 설교를 한다

라기 보다는 자신의 아픔과 상처에서 비롯한 현대사의 한 갈피를 끌어들여 공감의 그물을 우리에게 덮어 씌운다 휘리릭 ~~

그 거미줄이 그리 부담스럽다거나 이질적인 거부감을 주지 않음이 아마도 , 나는 모르지만 , 그가 그토록 팬들을 거느리고 열광을 받는 이유일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뻔뻔하게 대담하게 소심하게 추측해본다

 

하지만 그의 이론(이랄지)과 주장에는 긍정할 수 없는 자신만의 공허한 메아리도 있어 답신을 보낼 수는 없었다

제2부 플롯과 캐릭터 끝에서 악인의 악을 그리는 소설이 어째서 진부한가를 설명하는 대목 같은 경우인데 그는 악인은 선이 결여된 사람이라고 아주 맘 편하게 단정짓고 그래서 그런 악인이 보통 사람과 아주 다른 공감할 수 없는 사이코패스이므로 우리가 역지사지할 수 없으므로 이런 악을 다룬 소설이 공감표를 획득 못하는 진부한 문학이 된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그는 바타이유가 쓴 악을 중점적으로 집중해 그 힘으로 대소설가가 된 작가들에 관한 문학에세이인 <문학과 악>은 존재자체도 모르는 것 같다

하다 못해 <데미안>도 기억 못하는 것 같다

데미안은 선과 악 두 세계에 속한 인간 전체의 경향에 대한 묘사로 시작하지 않던가

 

그외에도 내용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문장만이 소설가의 지상의 목표라는 대목도 수긍할 수 없기는 매한가지이다

전혀 다르게 완전히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문장이 진정한 소설가의 미문이라는 말은 이치에 딱 맞는 옷이지만 그 옷을 파는 간판은 완전 틀렸다

박상륭의 죽음의 한 연구,콘래드의 암흑의 핵심이 그냥 문장만 위대해서였겠는가

파우스트는 그 심오하고 아름다운 시적 표현 때문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인간의 방황과 구원이 무엇으로 인해 가능한가에 대한 지적 편력이 담겨여서가 아닌가

지금까지 고래로 더 이상 덧붙일 내용은 하나도 없으니 그저 문장이 새로워 지금까지 담지 못했던 못 보던 표현들을 써 내려간 문장만이 남고 남아 시간에 깎여 나가지 않는 걸작 소설이 된다는 말은 심히 공감하기 어려운 개인적 편견의 도그마 2호 일 뿐이라고 나는 지껄이고 싶다

덧붙일 내용이 없다니

그건 인생이란 먹고 싸고 번식하고 자다가 죽는 것뿐이라는 대단히 엄청나게 뭉뚱그리는 말과 같음이 아닌가

그렇다면 굳이 왜 기술을 진보하고 다양한 일들을 벌이는가

그냥 원시 시대적부터 살던 동굴에서 지금도 소금도 안 친 고기 먹고 돌 위에서 자다 전염병으로 죽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아무리 그런 참신한 위대한 표현으로 싸여진 문장은 그러한 사상을 사고해야 판매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아비 없이 자식만 강조하는 꼴이다

 

각설하고

그럼에도

 

그래서

그는

<그러나 우리 개개인은 충분히 오래 살지 못하지만 우리 인류는 충분히 오래 살테니, 우리 모두는 고통과 절망 속에서 죽겠지만 우리가 간절히 소망했던 일들은 모두 이뤄지리라.우리가 우주라는 무한한 공간과 역사라는 무한한 시간을 상상할 수 있다면 , 과거의 빛과 미래의 빛이 뒤섞인 하늘처럼 과거의 사람들과 미래의 사람들이 우리와 함께 있는 광경을 상상할 수 있다면 , 먼 훗날 어딘가 다른 곳이 아니라 지금 즉시 바로 여기에서 , 마흔 살이 지난 뒤에도 우리가 미혹돼야만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라고 소설을 읽는 것에 미혹됨을 사랑한다

 

아마도 소설의 다른 이름은 사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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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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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하루키가 완전히 변해 버렸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느낀다

언젠가부턴가 하루키는 웃음소리를 소거하고 지적 문장으로 행간을 채우기 시작했다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도쿄  기담집에서부터는 완연히 사건의 줄거리가 부각되지 않는다

심리에 관한 고찰이 주를 이루고 미묘한 주고 받는 상대와의 심리적 얽힘보다는 단독자로서의 한 개인 즉 화자인 나 또는 그(녀)의 자신을 독백하는 분석이 모든 것을 향해 결말이야 있든 없든 달려가며 완성된다

비록 여전히 장편소설인 해변의 카프카나 1Q84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에서는 사건이 펼져지지만 그 사건들은 사회적 현실과는 무관한 한 개인의(아무리 사회와 연결되어 있다고 해도)내면의 특수한 풍경이다

 

이제는 음식도 그다지 이 소설집에서는 등장하지 않는다

유머는 1~2%나 등장할까 그것도 유머라기 보다는 하루키 특유의 엉뚱한 참신함에서 비롯된다

 

이렇게 흰 색이 회색을 거쳐 검정색이 되듯 완전히 달라지고 만 그의 작품에 여전히 베스트셀러 1위 2위의 팬덤이 공고하게 진행되고 있는 건 기이하고 쉽게 이해될 상황이 아니다

아무리 전작에서 팬이 되어 좋아하기 시작한 총애하는 여배우라도 도중의 각각의 실패작들에는 미지근한 온도로 반응하는 팬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아무리 하루키가 달라지고 변해버려도 여전히 그가 탑의 작가라는 건 그에게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다

천부적이라고 하면 과장이고 그럼에도 특수한 본질로서의 매력이 그 안에 담겨 있다는 말이다

아마도 하루키는 그의 문학이 패스트푸드냐 마약같은 명작이냐 사이에서 늘 논란이 되겠지만

그런 그의 특질 중에 하나는 언젠가부터 등장하기 시작하는 저녁 안개 같은 신비한 의식 너머의 불가사의이다

그의 문학이 햄버거 같은 서구 지향의 현대 트렌디물임에도 늘 질리지 않고 찾는 사람들 중의 일부는 아마도 그가 놀랍게도 예상과 다르게 초자연적인 인간의 신비에 경도된 걸 보고 의식적이든 자각하지 못하든 마음이 빠져들었으리라고 나는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단순히 개그맨인 줄 알았는데 명상음악으로 신까지는 아니더라도 인간이 모르는 자연의 깊고 먼 곳을 탐구하는 것을 보고 놀라는 개그 좋아하는 팬처럼

 

사랑에 대해 늘 필요한 일상의 한 부분으로 일주일에 한 두 번 날짜를 정해두고 만나 섹스를 하고 함께 몇 시간을 보내고 가볍게 헤어지는 그런 충족으로서의 묘사와 인식밖에 하지 못하던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이 소설집에서는 사랑이 존재의 전 증명인 레종 데트르 - 존재의 이유라는 불어 -로 작용한다

기 보다는 가식이나 퍼포먼스가 아니라 정말로 사랑에 모든 것을 올인하고 그 사랑 때문에 붕괴하는 세계의 멸망을 겪는 남자를 그리고 있다

사랑이 없어진 그렇다 존재했는데 없어진 남자들의 슬픔의 일곱 가지 빛깔을 그려낸다

유일하게 사랑하는 잠자에서는 결말이 비극이 아니다 그렇다하더라도 잠자로 변한 주인공은 비참하기는 매한가지이다

잠자라는 단편이 거슬렸고 전체 음악 속에 이질적인 부분처럼 이 책의 다른 작품과 겉돌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소설에 배어 있는 간절한 아픔은 상당하다

개인적으로 하루키는 근래 여자와 이별한 일도 없고 부인과 이혼도 안 했고 평온하다(고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하루키의 스캔들은 전무하지 않은가)

그런데 이 소설에 나오는 러브스토리는 실제 사례를 들었다고 해서 상상력을 덧붙혀 문장을 발라 만들어낼 수 있는 차원이 아닌 통절한 이야기들이다

담담하고 천천히 절제하고 잘라내고 건너뛰다가 어떨 때는 드러내놓고 노골적으로 지시하면서 표현하는 고심참담한 구절들은 그가 얼마나 노고를 기울여 공감했을지 이 소설의 창작 때의 마음이 들여다 보인다

예컨대 사랑을 믿지 않는 하루키가 1Q84 때부터 서서히 변하더니 이제는 순정의 파멸로 인한 존재 속의 상실 그 한없이 우두컴컴하고 깊은 밑바닥을 보여준다

사랑은 그토록 깊은데 닿을 수 없고 누구도 자신의 여자를 이해할 수 없다

세계는 이해할 수 없는 것들로 가득차 있고 그 세계의 일부인 여자는 외적 내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

그리고 그 여자는 각 남자들에게는 세계 전체와 마찬가지이고 사랑하는 것만이 가능하다 이해할 수 없다

그리고 그 이해라는 강물 양 편에서 남자는 여자는 시간의 배를 타고 와서 만나고 기약 없는 사랑을 하고 그리고 다시 강물 양쪽으로 서로 떨어진다

시간은 견고하게 그녀를 데려가고 남겨진 남자는 자신 속에 무너진 여자의 크기를 발견하고 그 흔적의 폐허 속에서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

애도도 위로도 재건도 방향 전환도 불가능하다

오직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디는 쓸쓸한 지옥의 상실감만이 존재하고 이 존재감은 그 남자들을 그토록 짓눌려 부수지만 그럼에도 남자들은 도망칠 방법이 없다

왜냐하면 여자 없는 남자들은 사랑이 없는 세상에선 살아 있어도 살아 있지 않은 존재 없는 남자들이기 때문이다

아무 것도 대체 하지 못하는 상태에서도 계속 삶의 형태는 유지되지만 이미 삶의 내부 에는 그 남자들은 없다

없다 그러므로 이 소설집은 무에 가까와진 남자들의 회상이다 그 회상은 아프고 그럼으로 길게 영원히 이어진다

이 회상의 미로에서는 어느 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죽음이 조금씩 다가와 시간의 바람 속에서 닳아 먼지가 되기 전까지 이 회상의 기억들은 앙코르와트처럼 비록 나무들이 뒤덮더라도 언제까지나 그 끔찍한 위용의 거대한 존재감으로 그를 흡입하고 짜낼 것이다

그의 의식에서 고통이 한 방울까지 남아 있지 않아도 이 회상들은 가능할 때까지 그 남자들의 피를 흡혈할 것이다

여자들은 그 남자들에게는 뱀파이이인데 남자들은 그 뱀파이어가 없으면 그들도 없다는 걸 무의식적으로 알고 그 뱀파이어에게 침몰한다

사랑이 원래 혼돈이라는 걸 이 소설들은 알고 있다

그리고 그 혼돈 속에서 출구도 없고 승천도 없이 남자들은 지하로 스며들고 여자들은 자꾸만 사라진다 생활 속에서 그의 거리안에서 그리고 세계 안에서

 

이제는 노년의 길목을 돌아 희망과 낙보다는 존재의 기원과 모순의 비밀을 말하려고 했던 하루키는 공존하는 남녀 까지는 아직 모른다 (그건 나도 당연히 모른다 건방지게도 이런 말을 하지만)

아마도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하루키는 남녀의 사랑이 결합된 세계의 허황됨을 섣불리 믿으려는 미래의 소설은 기대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럼에도 세상이 간직한 보이지 않는 비밀스러운 부분을 언제부터인가 늘 예민하게 자각했던 하루키는 그 비밀스러운 미지가 남자와 여자 사이 틈새에 걸쳐져 있다고 이 소설에서 묘사했다

그리고 그 남자들의 사랑은 간절하고 극진하게 전 존재를 건다 때로는 여자들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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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Q84 3 - 10月-12月 1Q8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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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로 진입한 하루키의 변화...더욱 공고한 서사에 더욱 풍부한 묘사와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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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Q84 3 - 10月-12月 1Q8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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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키를 좋아하게 된 건 내가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한 후부터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이제 돈을 벌고 직장에 다니고 일을 해야 한다는 자각이 생기고 난 뒤부터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더 이상 난 어린이가 아니라는 그 상실감에서부터 나는 하루키를 좋아하게 되었다 

하루키는 청춘이 읽는 소설이라고 생각되었는데 그런데 내가 더 이상 놀고 먹는 청춘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고 나서 부터 하루키가 좋아졌으니 아이러니다  

하루키는 그 매력적인 외피 안에 상실되어 결락된 원초적인 그 무엇에 대한 동경을 숨기고 있다 그래서 그의 글을 읽으면 언제나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바로 조금 앞에서 반짝이고 있는 빛처럼 언제나 바라보면서도 붙잡을 수 없는 애틋한 아쉬움을 경험하게 된다 작가인 하루키에게는 그것이 연인이고 젊은 날의 추억이고 과거이며 사람의 몸에 들어온 양이며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된 100%의 여자아이일 것이고 그것은 독자들에게 다시 변용되어 제각각의 메타포로 변전한다 

각설하고 하루키를 읽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갓 구워낸 빵처럼 촉촉하고 부드러우며 향긋한 그의 문체를 열심히 오물거리며 씹어가다보면 상큼하고 톡 톡 튀는 감성과 은근하면서도 오랬동안 여운이 남는 비어 있는 결락감을 경험하게 된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하드보일드하고 터프하면서도 억센 곳이지만 반면에 동시에 몹시도 말랑말랑하고 보드라우며 맑은 곳이라는 이율배반아닌 이율배반과 모순이 기묘하게 하루키 안에는 공존한다 그 공존의 긴장 관계에서 오는 배리감이 하루키의 문학을 흐르는 주된 동력 중의 하나다 기억하는가 하루키의 문학을 읽으면서 그 아름답고 재미있는 비유와 풍부한 묘사에 감동하고 감탄하면서 동시에 이 세상을 이루고 있는 차가운 위협과 단단한 증오 그리고 끝내 어쩔 수 없는 죽음에 절망하고 굴복했던 그 모순된 체험의 순간들을 

이 간극에서 빚어지는 불합리한 불협화음이 하루키의 심중에 간직된 신념 내지는 세계관과 일치되면 그 순간 아름다운 작품들이 피어난다 태엽 감는 새나 댄스 댄스 댄스나 1Q84나...모두 다 아름다운 부조화를 바탕으로 섬세한 인식이 만들어낸 하루키표 사상의 집적체이다 요컨데 하루키는 아름다움을 말하면서도 그 아름다움이 가리지 못하는 세상의 불합리에 주목하고 있고 죽음을 들여다 보면서 에로스의 선명한 유혹에 저항하지 못하는 생의 감각자이다 그래서 그가 묘사하는 사물들은 시종 아름답고 풍부하며 제 모습을 자족하고 있고 그 사물들이 속해 있는 세계와 불화를 빚고 있다 이 불화가 처연할 때 그때 하루키의 묘사는 가장 빛난다    

하루키의 작품은 그 매력적인 외피에 싸인 달콤한 속살에도 불구하고 하드보일드한 비정한 세계가 스며들어 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계속 죽고 그리고 고립되어 있어 소통을 원한다 이 세계는 정말이지 터프한 세계인 것이다 그 세계에서 살아가기 위하여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것을 계속 상실하고 그리고 그것을 애틋하게 그리워해야만 한다 이런 비정하고 거친 세계에서 하루키의 주인공들은 슬퍼하고 생각하고 그리워하고 마침내 결단하고 그리고 고독하다 

독일TV의 문학토론프로그램에서 하루키의 작품을 놓고 난상 토론이 벌어진 적이 있었다 하루키의 작품은 문학적 패스트푸드에 불과하며 이런 가벼운 작품의 가치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때 프로그램의 사회자가 하루키를 옹호하는 논지의 주장을 했는데 패널로 출연하는 문학평론가가 하루키를 심하게 공격했다고 한다 사회자가 그에 맞서 옹호하는 주장을 계속 하자 말다툼이 벌어졌고 그 말다툼에 격분한 문학평론가가 생방송 도중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화를 부리는 것으로 그 토론이 끝났다고 한다 그러나 이제 하루키의 세계는 깊어졌고 단단하고 육중해졌다  

태엽 감는 새에서 보여준 현실 인식과 참여의 조짐은 해변의 카프카를 거치며 조심스럽게 중요한 쟁점이 되었고 마침내 1Q84에 이르러 현실 속으로 완전히 깊숙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하루키는 이제 역사와 현실을 이야기하는 참여적이고 진지한 작가이다 비록 시작은 개인주의적이고 고립되어 있으며 현실에 대한 적극적인 참여를 비판적으로 혹은 냉소적으로 보는 사소한 개인으로 출발하였지만 이제는 현실이라는 판에 대한 적극적이고 능동적이며 참여적인 묵직한 의식을 가진 중후한 작가가 되었다 그의 인식과 시선은 깊어졌고 본격적으로 사회의 환부를 응시하고 있으며 그의 손길은 이 사회가 갖는 그림자를 해부해 그 병리 현상에 대한 심층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다 

하루키가 상실의 시대라는 명작을 쓰는 데에는 소설속에 등장하는 사연들의 실제 주인공들과의 추억과 체험이 큰 자양분이 되었다 그러나 그런 사연이 없는 허구로 된 태엽 감는 새와 해변의 카프카 그리고 1Q84를 보면 하루키의 파괴력이 얼마나 단단한지를 알 수 있다 

 

하루키의 시작은 미미했다 데뷔작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두고 이런 건 나도 쓰겠다는 소리를 주위에서 여기 저기  했을 정도였으니까 그러나 하루키는 시간이 지남과 함께 점 점 진화했고 이제 하루키 월드는 자신만의 고유한 개성을 가진 하나의 브랜드가 되었다 그리고 하루키는 이제 거대한 작가가 되었다 누가 뭐래도 하루키는 분명 뚜렷한 개성을 가진 변별력 있는 작가임에 틀림없다 

 

 

하루키를 읽으며 그가 숨겨놓은 기호들을 해독하는 일은 마치 지난 내 추억을 꺼내 들여다 보는 것처럼 즐겁다 이제 하루키는 일시적인 유행이 아니고 세대를 엮는 기나긴 증후군이 되었다 내가 하루키를 처음 읽던 때 그 때 태어난 아이들이 이제는 하루키를 같이 읽는다 그리고 말한다 하루키는 독창적인 화법이 있어서 참 좋아요...그래 하루키는 이 지구에서 가장 재미있게 어려운 이야기를 풀어 쓰는 작가란다 

나는 하루키를 읽으면서 어른이 되었다 10대 후반에 읽었던 하루키는 시간이 지날수록 무성한 그늘을 이루고 울창한 잎이 우거져 이제는 우람하고 짙푸른 녹음을 자랑하는 한 그루 거대한 수목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하루키를 내일도 다시 반복해 읽으며 내 안의 빈 구멍을 메운다 
 

 

하루키의 작품 세계는 시간의 경과와 더불어 점점 현실참여적인 능동적이고 현실적이며 역사적으로 변모하였다 초기의 세상을 부유하는 듯한 가볍고 경쾌하지만 일관되게 소외 혹은 거부하는 몸짓은 점 점 그의 작품에서 사라지고 적극적인 개입에 의한 궁극적인 구원을 갈구하는 기도와 의도로 대체되고 있다 이를 단지 하루키의 물리적 나이의 퇴적으로만 한정짓는 것은 한 소설가의 지난한 작업 세계와 숙성되어 가는 중후한 세계관을 일거에 부정하는 비이성적이고 무례한 짓일 뿐이다 하루키의 작품 세계가 그렇게 변했다는 것은 개인에서 전체로 소외 혹은 외면에서 참여로 현실의 이탈에서 역사의 현장으로 방향이 전환되고 심화되며 확장되어 그 의미망속에 좀 더 큰 것들을 영입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는 이제 '나'를 넘어 '너'에게 스며들어 '우리'의 공통된 슬픔을 이야기한다 전체에서 떨어져 나간 개인에 관심을 보였다가 이제는 공동체에 대한 사색을 시도하고 있다 

 

달이 두개가 뜨는 그 현실의 부재 부재의 현실 속에서 영혼의 무게와 상처의 무게에 압사당하지 않고 고독하고 용감한 투쟁을 끈기있게 끝까지 한 아오마메와 덴고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역시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 아오마메를 만나기 위해 덴고를 찾기 위해 그토록 긴 오랜 여정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면서도 포기하지 않은 그들의 집념이 아름다운 결실을 맺었다 자 이제 달이 하나인 세상으로 돌아오자 그리고 우리 모두 뜨거운 가슴으로 서로 사랑하자 마치 내일 죽을 사람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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