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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
하 진 지음, 김연수 옮김 / 시공사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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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우리는 인생에서 수많은 것들을 기다린다 입학을 기다리고 방학을 기다리며 졸업을 고대하며 취직을 애타게 기대하며 사랑하는 사람이 오기를 기다리며 낭보와 기쁜 소식을 기다리다 종내에는 두렵고 무섭기만한 죽음마저도 노인의 당연한 권리로 기다린다 어찌보면 인생이란 기다림의 연속이며 기다림을 생성하는 과정 속에 인생의 모든 일들이 진행되어 사건으로 결실을 맺는다 그 기다림은 쓰라리고 비참한 눈물로 젖을 수도 있고,혹은 참혹한 절망으로 기다림이 귀결을 맺을 수도 있다 어찌 기다림이 인생의 하찮고 시시한 소사일수 있으랴 기다림은 만남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좋다는 시인의 애잔한 토로가 아니더라도 기다림은 인간에게 공평하고 정대한 혜택을 주지 않는 매정한 집행자이다 이 기다림이 길면 길수록 그에 비례해 소망과 의지는 숭고한 옷이 덧씌워져 비상하거나 반대로 시간의 손길을 받아 결부된 욕망과 감정은 비천하고 남루한 기억의 저 편으로 방치되기 마련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 쿵린은 18년 동안이나 아내와 이혼하는 날만을 기다려 왔다 아내와 이혼을 하고 연인인 만나와 재혼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18년 동안이라는 장구하고 머나 먼 시간의 기간은 그의 무기력함과 우유부단과 실속없이 선하기만 자신의 성격과 막상 그럼에도 아내와 헤어지려는 이기심이 충돌해 빚어낸 엉거주츰한 시간의 낭비일 뿐으로 실상은 오랜 시간 학수고대 기다려온 애절함이라든가 간절함과는 거리가 멀다 그는 만나를 사랑하기도 하지만 헌신적인 아내를 버리려는 것에 대해 마음의 갈등을 느끼기도 한다 자신의 욕망을 따르자니 이혼에 회의적인 주변 사람들의 반응과 아내의 모습에 마음이 약해지며 그렇다고 자신의 간정을 바꾸어 결혼을 지속할 만한 용기나 희생정신이 없다 쿵린은 번민한다 부모님의 명으로 한 결혼을 깨자니 이혼허가를 받아야 하는 현실이 힘겹게 구속하고,사랑하는 만나를 포기하자니 결단력이 없어 사랑을 접지도 못한다 그저 쿵린은 18년이라는 별거 기간을 채우면 자동적인 이혼이 가능하기에 그 날만을 기다린다 이 기다림은 무력화된 욕망의 수동적인 저항이자  운명에의 체념처럼 반쯤은 투항 반쯤은 방관으로 이 기다림의 끝에는 종국의 해결이 멀리 아주 멀리 존재하는 듯하다 그리고 쿵린은 소극적이고 자포자기적인 기다림이라는 방법으로 자신의 모든 고민을 해결하려 한 듯하다 그러나 쿵린은 자신의 마음과 욕망을 스스로 인식하고 통제하는 주체적인 사람이 아니라서 이런 기다림을 통한 해결은 쿵린의 마음에 온전한 평화를 가져오지 못한다 시간의 물결에 따라 연인과 함께 한 시간 동안 쿵린은 존재의 변화하는 습성에 따라 마음에 조금씩 변화를 겪기 시작하는데 이는 쿵린이 나약하고 우유부단하며 행동을 현실로 옮기지 못하는 성격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토록 원하던 아내와의 이혼과 만나와의 결혼을 이루었음에도 진정한 행복에 이르지 못한 쿵린 이제 쿵린은 사랑이 싫증이 나기 시작한다 더구나 만나는 곧 죽는다 쿵린은 아이러니하게도 18년의 기다림으로 이혼을 얻자 이제는 사랑의 열정보다도 마음의 평화라는 가정의 울타리안의 일상의 행복을 얻고 싶어한다 비로소 아내가 얼마나 좋은 양처인지 후회하며 아내에게 사과를 하는 쿵린 . 인생의 행복을 찾아 사랑을 매개로 하여 얻으려 하였으나 결국은 평화로운 가정을 택하고픈 쿵린의 긴 여정 끝의 마음의 변화가 안타깝다 과연 사람은 자신의 인생 안에 사랑을 선택할 것인가 평화와 행복을 추구할 것인가 .....쿵린은 그 답을 구하기 위해 기나 긴 기다림으로 자신의 생을 소비했고 결국 사랑도 얻지 못하고 그토록 자신이 떠나려 했던 아내에게 되돌아가려 한다 이런 역설적이고 혼란스러운 이치가 인생의 단순하고도 자명한 법칙이라는 것인지 작가는 헌신적이고 순종적인 아내에 대한 귀환으로 사랑의 기쁨을 충족하던 세월을 대신하려 한다 이 대목에서 나는 인생이란 그토록 원하는 것을 그렇게 오랜 시간 기다려 와도 결국은 허망하다는생각에 깊은 생각에 잠겨야 했다 이럴거라면 뭣때문에 18년동안 매해 이혼청원을 하며 고생을 해야 했단 말인가 손에 쥐어지지 않는 행복을 쫓아가며 겨우 손에 넣었더니 손에 넣기 전과 다를 바가 하나도 없다는 이 안타까운 역설 과연 인생의 목적은 무엇이 되어야 하나 그 긴 기다림은 쿵린에게 만나에게 그리고 또 쿵린의 아내 수위에게 무슨 의미를 띄고 무엇으로 대체될 수 있단 말인가 안타까운 결론이 아닐 수 없고 허망한 종국이 아닐 수 없었다 사랑은 쿵린에게 기쁨을 주었으나 기다림의 끝에 마주한 그 감정은 낡고 남루해졌고 진정한 행복은 아니었다 여기서 나는 상상해본다 쿵린이 아내를 버리려 하지 않고 아내와 잘 살았다면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쿵린은 아내에게 만족하며 가정의 평화에 감사했을까?.......그것도 아닐 것이다 쿵린은 아마도 아내를 잃어버리고 연인 만나와의 결혼에 염증을 겪어야만 아내의 소중함을 통감했을 것이다 쿵린은 인생의 역설적인 함정을 몰랐고 그리고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를 듣기에는 너무 성찰이 부족했었던 것이다 그러나 과연 누가 쿵린보다 더 나은 판단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모두 쿵린처럼 아니 쿵린보다 더 이기적이고 욕망에 힘쓰며 자신의 안락을 꿈꾸지 않던가......

쿵린의 기나 긴 기다림은 그렇다면 허비된 무용한 시간이었을까?........아닐 것이다 오직 시간이 흘러 경험된 과거로써만이 쿵린의 감정과 고뇌를 대변할 수 있을 것이다 쿵린은 기다림의 끝에서만 자신의 감정의 실체를 알 수 있었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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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안에 부자되는 집테크 & 주식테크
한상분 지음 / 동아일보사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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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집 값이 예사롭지 않다

들썩들썩거리면서 거품이다 아니다 이제 사야한다 아니다 집 값이 내려간다 온갖 추측과 예상이 우후죽순 마구 난무한다 과연 어떻게 길들이 날까? 오리무중 속에서 더듬 더듬 거리며 사물을 인식하는 듯 하는 이들을 위하여 재테크 전문가인 한상분 씨가 조언을 해 주고 있다

과연 재테크를 통한 자산 증식의 길은 명확하게 서 있는가

알 수 가 없다 재테크는 게임이 아니며 기본적인 기초 자산이 있어야 하는데다가 사람의 재산이 걸려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는 중요한 거래이기 때문이다 부동산에 오랫동안 연구를 하였던 저자의 설명은 친절하고 자세하며 날카로운 가르침으로 차 있다 부동산을 구입할 때 상승할 가능성이 있는가 입지는 좋은가 앞으로의 경기 변화에 따라 일시적인 폭등으로 끝나지 않는가 자세하고도 꼼꼼하게 재산증식의 A에서부터 Z까지 선도하며 가르친다 과연 일반 서민들도 부동산을 통하여 재산의 증식을 이룰 수 있는가?지금 대한민국의 재산 로드맵은 어떻게 완성되어 가고 있는가? 자본주의 시장의 가열찬 진행을 통해 부의 상층부 편중과 양극화 현상으로 점차 계급의 세속적 세습화 현상이 심화되는 이때에 이 책을 지도삼아 재산의 안정적인 증식과 확보라는 기쁜 선물을 받아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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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퍼의 눈물 1 뫼비우스 서재
마이클 코디 지음, 공보경 옮김 / 노블마인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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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종교란 과연 무엇일까 그리고 사후세계는 존재하는 것일까 사후세계가 존재한다면 덧붙여 영혼도 존재하는걸까

이렇게 인간의 지각으로는 헤아리지 못할 육중하고 묵직한 주제들을 이 책은 인간들에게 각성할 것을 촉구한다

인간의 죽음 이후 그 영혼이 빠져 나가는 찰나 그 영혼의 고유 주파수를 광양자 신호로 포착하여 컴퓨터로 출력한다 그래서 영혼이 떠난 사후의 세계를 밝혀낸다........그 결과 사후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생의 고통이 그대로 지속되는 어둠의 세계만이 존재할 뿐이다.......인간의 사고 중 죽음에 대한 경외와 존중은 허물어져 버리고 그 자리엔 오직 어둠의 차가운 냉소만이 신의 자리를 대신하여 인간의 어두운 안쪽의 마음을 꿰뚫어 보고 있다.......이토록 도발적이면서도 회의에 가득찬 어조로 이 책은 인간의 또 다른 세계인 사후세계를 메스로 들이대 파헤치면서 신이 부재한 인간 세상의 근원적 암흑을 빛을 쐬어 그 실체를 드러내려 한다

충격적이다.신이 존재하지 않으며 세상를 만든이는 신이 아닌 악마이며 단지 우연에 의해 세계의 법칙이 조립되고 생성되어 악마의 힘에 의해 이  세상은 유지되고 있다.......그러기에 세상은 불행과 악행이 베이스를 이루고 그토록 흔한 것이다.......이 세계란 악마가 이룩해 놓은 기초 위에 그 악으로부터 우러나온 힘을 통하여 돌아가는 것이라고 한다........과연 맞는 말일까?

이 세상의 모든 혼돈의 근원은 신의 부재이고-왜냐하면 악이 자행되는 걸 보고 신이 제거하지 않고 방치하였으므로 신이 부재하거나 신이 방치했거나 둘 중에 하나이다-창조의 모든 것을 악마가 주관하여 이룩하였기에 이해할 수 없는 악한 불행이 도처에 흔한 것일까? 알 수가 없다

보통 신학에 능통한 자가 아니라면 글자 하나도 제대로 의미 파악이 힘든 논제이다 과연 아아 이 세계는 선한 신이 창조하신 선한 세계가 아니란 말인가?

이 책이 만나는 사상의 접점은 서구 기독교 세계의 근간이 충격으로 흔들리는 진동지점과 아주 밀접하게 닿아 있었다

신은 사후세계로 가 보았더니 존재하지 않았고 아울러 사후세계도 없었으며 영혼은 더더욱 없더라는 주장은 놀랍다 이 놀라운 도발의 실험은 인간의 가치관과 신념및 인간 본성의 중대한 영역까지 마구 뒤흔드는 경천동지할 단독적인 신념이었다.과학이 종교를 무너뜨리고 철학과 연계하여 인간의 자유의지 및 인식의 힘을 무한대로 증폭시켜 신이 존재하지 않는 이 세계 속에서의 삶을 영위하도록 적극 권장하는 초유의 그런 대사건이었다.아마 인간은 신을 찾지 않을 것이다........신 없이 자신의 모습을 거울에 비쳐보며 그 모습으로 유일한 지표를 삼아 자유의지를 확대하리라.......그러나 그 자유의지가 이제 선악의 과보와 보상이 없고 사후에서의 심판이 없는 공허한 것이기에 도덕과 윤리를 거스르고 정말로 자유로운 의지에 속해 일체의 선악의 판단 기준이 없다면?

그래서 종교적이라 할 수 있는 일체의 내면의 관념이 없이 정말 창조주 악마의 뜻대로 악을 행하며 이 세계를 창조해낸 악마의 힘에 경배하는 그런 방탕하고 파괴적인 삶이라면?

이토록 크고 무거운 힘을 가진 주제에 정신이 질려서 머리가 혼란스럽다 과연 죽음 이후에 사후 세계는 없는 것이고 오직 물리적인 물질이 결합된 과학의 법칙만 존재하는 세계가 신이 없는 세계가 전부일까?

알 수 없다.

인간의 지혜로 밝혀낼 수 있는 것들은 어둠의 장막으로 가려진 알려지지 않은 것에 비하면 훨씬 작으니 신이 인간 세상을 창조하고 비록 어둠과 불행을 이 세상에 숨겨 놓은 뜻을 인간이 깊은 사고로 미력하나마 파악하게 된다면 악마가 창조한 것이 우주라는 관념은 없어지리라

또 한편으로는 만약 인간이 자신의 주이신 신에 대한 그릇되고 왜곡된 관념애 휩싸이면 휩싸일수록 세계관과 가치관에 어지러운 혼돈이 반드시 찾아와 인간 개별자들의 일그러진 어지러운 고통만이 가중될 것이다

 

루시퍼의 눈물은 세계와 신에 대한 의문으로 출발하여 신을 확인하려는 대담한 행동을 하는 과정을 그려 보이고 있다 이 책에서는 사후 세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 사후세계가 존재한다고 한다 비록 사후세계가 있는지 영혼과 신이 존재하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런 것들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나는 빛나는 신성이 만유하여 이 세계 속에 존재하고 다만 인간이 부족하여 그 신성의 극히 적은 일부만을 소유하고 있다고 믿고 싶다

부족한 것은 신의 은총이나 신성이 아니고 인간의 자그만한 인식과 빈약한 심성의 그릇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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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 장정일 단상
장정일 지음 / 행복한책읽기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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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 이 파격의 위악자 나는 장정일을 머리 카락 하나도 모른다 다만 그의 악명 높은 소설의 분위기와 그에 따른 이 땅의 필화사건과 그 판단하기 힘든 문화사적 의미가 될지모르는 재판의 유효성에 따른 논란을 알 뿐이다 그런데도 빙산의 일각이 아니라 빙산의 0.5%같은 이를테면 장정일의 독서일기나 이인화의 대담같은 그런 지면을 통해 본 그의 의식의 건축적 견고함은 매우 정치하고 탄탄하여 그 두터운 내공의 사유를 짐작하게 하였다 그런 탓에 이번의 장정일의 단상-생각을 보며 그의 생각의 편린들을 들여다 보았다 위악을 통해 발작적인 드러내기의 진실을 추구하던 이 시대의 불협화음 장정일을.이책의 구성은  인간 장정일이 아무런 의도 없이 자기가 쓰고 싶은대로 자신의 사상과 주관 그리고 사고의 결정체들을 단상의 생각의 형태로 자유롭게 쓴 [아무 뜻도 없어요] 라는 글과 신작시6편 그리고 영화평과 삼국지 관련 글들이 있었다

이들을 차례로 일별하며 느낀 이 책과 작가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장정일에 대한 느낀 점들은 다음과 같았다

1.밑줄을 무지 많이 치며 읽은 책

그의 사색의 그물은 촘촘하고 포착하는 힘이 대담ㅂ하면서 또 혼돈의 중심으로 패기있게 전진하는 직관적인 박력이 있다 아울러 분석력도 예리하고 정교하다 참으로 그 분석의 날카로운 재치와 기지가 명논객이 지니는 진정성의 논리적 완결성을 정확히 갖추고 있었다

2.나름의 합리를 지향하는 열린 정신

군대의 폭행사를 다룬 부분에서 인권이 신장된 지금도 일년에 수백건씩 터지는 군대의 폭행사를 비판하는 그의 목소리에서 작가의 인간 중심을 원하는 사고를 볼 수 있었다

이는 또한 서정주의 시 신부를 비판하는 비평에서도 나타난다 서정주의 시 신부는 어떤 내용인가 신부와 신랑이 결혼 초야를 치르게 되었는데 신랑이 화장실에 가려다 옷깃이 방문에 걸린다 그러자 신랑은 신부가 음탕하다고 생각하여 그날로 신부를 버리고 떠난다 세월리 흘러 노인이 된 신랑이 그 집을 생각이 나 찾아보니 신부가 몇 십 년 전의 신혼 초야의 모습으로 그대로 있더라는 것이다 신랑이 잠깐 만져 보았더니 그대로 매운 재가 되어 폭삭 내려 앉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시의 내용은 조선시대에나 열녀의 상으로 환영받을 시이지 지금의 현대 사회의 진취적이고 남자와 동등한 인격으로 대접받는 여성들은 이 시의 여성과는 너무 거리가 먼 것이다 장정일은 이 신부란 시에 나타난 욕망의 주체자로 나서지도 못하는 여서의 수동적 입장을 비판하며 여성에 대한 긍정과 가치인식을 바탕으로 하여 여성의 제 권리와 제 목소리 찾기를 천명하고 있다

이런 장정일의 열린정신은 남근없는 자의 설움이라는 베이비복스와 디제이 디오씨의 이하늘의 대립에 대해 쓴 글에서도 잘 일맥상통하게 흐른다 베이비복스가 2pac 의 음악을 샘플링하는 것에 대한 이하늘이 독설을 가했다 이 사건은 작가가 보기에는 남성우월주의적 사고 방식을 가진 이 하늘이 여자의 몸으로 남성들의 월한 쟝르인 랩에 도전하는 베이비복스를 남자의 정신적인 폭력으로 대응하고 조롱한 것으로 처음부터 베이비복스가 남자였더라면 다른 방식으로 분쟁이 났을 거라는 거다.이하늘은 남자라는 월한 의식으로 여자인 베입복스를 정신적인 측면에서 폭력으로 대하며 여자라는 이유로 무조건적인 깔보고 짓밟는 태도로 나왔다는 것이다 .새삼 한국의 남성우월주의적인 편견을 이하늘은 드러냈다는 것이다.상당히 공감가는 분석이었다

장정일은 이런 여자에 대한 광범위한 편견 ,멸시,억압의 남성우월주의를 비판하며 런닝구 입은 사내가 막걸리 마시며 늘어놓는 말에서 페미니즘이 운위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페미니즘이라며 여자에게 열린 합리적인 자기의 정신을 피력한다

 3.인습과 관습의 막중한 굴레에 항거

장정일은 자신의 방식이었던 세상의 인습과 안일한 위선 그리고 막중한 굴레에 항거하던 그 사상의 일각을 여기 첵에서도 피력하여 인간 정신의 해방된 진실을 갈구하는 용기있는 지성인의 아우라의 섬광 같은 것도 보여주었다 이런 구절에서 말이다 -시민이 책을 읽지 않으면 우중이 된다 책과 멀리 하면 할 수록 그 사람은 사회 관습의 맹목적인 신봉자가 되기 십상이고 수구적 이념의 하수인이 되기 일쑤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은 내밀한 정신의 쾌락을 놓치는 사람일 뿐 아니라,나쁜 시민이다

4.염결하고 결벽적이기까지 한 양심

수시로 등장하는 2005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선정작가를 거절한다는 편지나 꼭 읽어야 할 시 선정에 자신의 시는 꼭 읽혀야 할 시가 아니라며 빼달라는 편지글의 원본은 작가로서는 그저 자기의 고집스럽고 괴벽적인 자기 신념의 표출이겠지만 나에게는 위악으로 줄달음치고 포르노의 선정성을 도구적 무기로 세상과 대결하고 싸우지만 사실은 깨끗한 의식과 양식을 가지고 그것을 추구하는 작가의 염결하고 결벽적이기까지 한 그의 야누스적인 다른 얼굴을 보여주는 것으로 비쳐졌다

5.자신의 글에 대한 책임감

이런 순결하고 빛나는 가치에 대한 도덕적 투철함을 다시 발견하게 되는 대목은 언론사에 대한 탈세 조사에 의한 권력의 언론 손보기의 부당함을 아전인수로 두둔하는 문단의 노대가에 대해 권력의 언론 통제는 거기에 맞는 방식의 대응이 필요하지 납세의 의무를 부정하게 자행하는 것이 아니라는 준엄한 지적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삼국지시사파일이라는 칼럼을 쓰면서 현대의 시사인물들을 평가하고 비평하던 자신의 글들을 수구기득권인사가 공자의 어구들을 기득권 우호의 이현령 비현령으로 오용하고 있음을 보고 자책해 자신의 글도 그런 소지가 있다고 판단 신문칼럼에 그만 쓴 것에서도 같은 맥락으로작가의 정신이 보였다

6.세상을 보는 민첩한 시선과 혜안

일본소설과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로 일본 대중문화에는 지체란 것이 없다며 한 사회의 지체란 기술과 사회현상은 앞서가는데 법이나 제도가 그것을 따르지 못하는 것이라고 지칭한다.법이나 제도는 사회 현상이나 기술을 한 발 짝 뒤늦게 따라와야지 그것을 앞서갈 수는 없다면서 제대로 된 문화라면 그 사회가 어물쩍거리고 있는 지체를 메워줘야 한다는 작가의 창작론 내지는 문화론을 피력한다

7.세상을 보는 확대된 눈

그의 인간의 본성과 사회 그리고 역사를 보는 독창적이고 독특하며 합리화된 비범한 세상 읽기는 삼국지에 대한 신랄한 혹평과 자신이 쓰는 2천년대의 한국의 삼국지론에서 그 절정을 이룬다 장정일이 보기에 삼국지는 남자들이 천하를 차지하기 위하여 위선과 자기기만과 모략에 더하여 굴종으로 가득한 생애들이 유교의 지배이데올로기에 힘입어 충의와 의리로 덧칠된 추악한 전쟁판의 이야기다 그곳에 등장하는 여인들은 경국지색을 갗춘 요부이거나 당대의 유교적 충군이념과 남존여비의 사상을 선전 선동화하는 도구에 불과한 여성잔혹극의 해당자들뿐으로 이 두가지 중에 하나만이 삼국지의 여인들이다 더욱이 이 책은 삼국지연의를 쓴 지은이들이 유교의 화이론에다 춘추필법적인 태도로 자국의 중화주의를 찬양하고 노골적으로 주장하는 가운데 21세기의 중국의 패권주의와 맞물려 타민족을 열등히 여기는 심각한 사고관의 결함까지 있는 오독의 요소가 한 두 가지가 아닌 고전인 것이다.바로 그런 문제들을 개선하고 긍정적으로 바로잡기 위하여 오늘의 새시대 속에 살아 숨쉬는 삼국지로 새롭게 개작하여 고전과 현시대의 창조적인 소통을 가능하게 하겠다고 작가는 말한다. 대단하다!...이문열 삼국지나 황석영 삼국지 박종화 삼국지 등등 기존의 메이져 삼국지가 조금도 관심을 기울이거나 역량을 쏟아 붓지 않은 삼국지의 사각 지대의 그 원초적 결함을 장정일이라는 신진이 돋보기를 들이대듯 밝은 혜안으로 그 환부를 도려낸다는 느낌이 들었다.작가의 이런 주장들이 독선적이고 아집에 차 있다거나 허황되고 과장된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안들고 오히려 오로지 작가의 주장에 무릎을 치며 마치 눈에서 바늘이 떨어져 나가듯 지금까지 무지해서 몰랐거나 무심히 그냥 지나치던 맹점들을 솟 속 절난내고 격파하여 극명하게 정리된 명쾌한 입장으로 정리하는  것에 참으로 감탄을 금치 못했다

8.전체적인 소감

정말 장정일이라는 작가의 세상을 보는 눈이 그토록 자세하고 밝은 것에 놀랐고 논리정연하면서도 선명한 자기 주장과 덧붙여 합리성에 투철한 인간중심주의의 휴머니즘적인 사상관에 다시 한 번 놀랐다

장정일은 세상의 음란무도하고 일탈적인 퇴폐라는 그 알려진 겉모습과는 달리 민중이 인간이 스스로의 모습으로 인간답게 사는 참다운 자기실현의 공간을 누구보다 소중히 하는 진전한 합리주의자라는 느낌에 많는 생각이 오고 갔다

이런 사람이 대체 왜 포르노 소설만 쓰는 변태적인 아웃사이더로 낙인찍혀야 하나

장정일 그는 시대를 너무 앞서갔던 사람이다 그러므로 시대가 그를 뒤쫓지 못했던 것이다

시대는 그의 방법적 도구에 집착해 그가 꿈꾸는 인간의 얼굴을 못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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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 (양장)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강명순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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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비범하고 독창적인 그래서 좆같은 불행이 나의 연약하고 부드러운 영혼을 무차별하게 갉아먹을 때 그 때 나는 지옥이 내 발 밑에서 검은 끝없는 공간을 벌린 채 기다리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그러나 지옥의 순간이여 잠깐만 기다리라.온 몸이 부서진 자는 파괴의 그 끔찍한 고통이 무엇을 은유하고 있는지 알고 있음과 동시에 자신의 피할 수 없는 운명도 정확하게 측정하여 인식하고 있음으로 하여 지옥의 황홀하고 기괴한 고통의 단련을 기꺼이 받아들이므로.검고 지독한 악취를 풍기는 얼굴의 시간의 구두 아래 으깨어지는 나의 수형의 참혹한 아름다움이여.다시 없을 매혹의 펼쳐짐이로다.나는 아마도 가장 깊은 곳의 은밀한 인간 정신을 들여다 볼 것도 같다.나는 향기로 이 세상을 지배하여 나의 증오 가득한 어린 시절의 원한을 갚고 이 지루하고 기쁨없는 세상을 나의 의지대로 마음껏 조롱할 것이다

아마도 장 그루누이가 살아 있는 인물이고 만약 일기를 썼더라면 이런 정도의 지독한 중얼거림을 끄적이지 않았을까? 장 그루누이에게 태생적으로 주어진 지독한 삶의 외면을 세 번 나는 애도한다 장 그루누이 악마의 영혼으로 지상의 지고순결한 최상의 매혹적인 향기를 천재적으로 채집한 그러나 영혼없는 사내.그리고 장 그루누이에게는 마치 어떤 종류의 인간들에게 인간의 핵심인 영혼이 없는 것처럼 육체의 향기가 없었다 그러나 반면에 장 그루누이에게는 그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비범한 향기에 대한 능력이 있었고 이 비상한 후각의 감각으로 그루누이는 세상을 파악하고 있다  곧 그루누이에게는 이 세상을 창조한 신의 원초적 질료가 향기였고 이 세상과의 모든 현상과의 매개체가 향기였으며 모든 비의의 핵심에는 향기가 있었으며 타자와의 소통하는 통로가 향기였다 그런 향기의 감각만으로 이루어진 세계에서 그루누이는 향기가 없었다 그루누이는 타자와 사물과 자신을 둘러싼 세상과 마주하고 섞이어 교류하고 소통하는 매개체가 없었던 것이다!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사실인지 나는 읽으면서 그 이율배반의 알 수 없는 섭리에 골몰해야 했다 지상최고의 천재 후각의 소유자,그 섬세하고 복잡하며 황홀한 지순한 아름다움의 향기를 온갖 방법으로 창조하고 지배하며 마법처럼 간단히 제조해 내는 향기의 마술적 장인인 그루누이가 정작 체취가 없다니! 그루누이는 태어난 자체가 불행하고 삶 자체도 불행하고 더군다나 영혼에 있어서도 도무지 인간적인 구석이 없었다.혹여 인간미의 감동이 향기로 치환될 수 있다면 그루누이의 삶 전체에서는 향기가 그 매혹적인 모든 향기가 일체의 통일적인 거세로만 그 살풍경한 황량한 무향으로만 남는다 이것이 나는 내내 작품을 읽으며 의문스럽게 느낀 점이었고 이것이 내가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독해법으로 선택한 것이었다 왜 장 그루누이에게는 삶에서 인간적인 것이 모조리 거세된 것일까? 어째서 삶의 정신적인 영혼의 측면에서 향기가 몽땅 제거된 것일까? 그의 삶을 하나의 인생으로 볼 때 향기 없는 삶은 무엇을 의미하며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아 그루누이 그루누이 그루누이 이 물질 세계의 구성의 원리를 장악한 비밀의 지배자여 그루누이가 보기에는 향기없는 삶은 곧 인간미가 참혹하게 말살된 결여의 삶이었을 것이다.그리고 무엇보다 그루누이는 자기 자신 스스로 이 세계에 소통되지 않는 무취의 영혼으로 태어난 사람이었으니 그가 이 세상에 대항하여 가졌을 아웃사이더로의 감정과 뭉쳐진 증오의 감정을 알 것도 같다.하지만 나는 그루누이의 무서운 점이 악취보다도 더 무서운 무취라는 것을 알았다.온갖 악덕한 악의 향기를 뿜어내면서도 이 세상의 모든 인간적인 향기를 소비하는 데 열중하는 악한 인간들보다 차라리 더 무서운 극악한 인간으로 그런 모든 악덕조차도 마치 탈취되어 무향무취인 것처럼 삶에 대해 일말의 애정도 애착도 어떠한 긍정의 가치인식도 없는 인간이 바로 그루누이였다 ! 이것이 더 무서운 것이었다 삶에 대한 지독한 악취 나는 행동들도 결국에는 삶에 대한 비뚤어진 것이긴 해도 열망과 욕망 애정등에서 나온 것이니까.그러나 그루누이는 육체에서 전혀 냄새가 없었던 것처럼 일체의 세상사에 아무런 희노애락도 없었다.욕망도 도덕도 감동도 의지도.이 기묘하면서도 섬?한 작가의 그루누이에 대한 메타포에서 나는 작가의 감추어진 의도를 파악하고 정말 놀랐다

 

그루누이가 세상에 대한 열망을 모든 사람들처럼 가졌더라면 어땠을까 이 세상의 향기로서의 지배자이고 삶의 비밀의 소유자인 그는 향기로  이 세상을 지배하고 군중을 사교의 광신도처럼 만들어 통제하고 군림했을까? 아니면 그 향기로 기적의 향기를 만들어 순결하고 마술같은 아름다운 매혹의 선물로 세상을 보다 아름답게 기쁨이 넘치는 곳으로 만들 수도 있지 않았을까? 모르겠다 나는 작가가 아니니.이 책으로 나는 정신적인 후각세포가 존재하지 않아 육체의 체취처럼 정신의 드높은 향기의 교류 소통을 전혀 경험하지 못하는 인간의 그 섬뜩하고 무서운 유해함을 얼핏 들여다 본듯도 싶다 누가 아는가 범죄자들이 사실은 특정한 정신적인 향기를 인간미 가운데의 그 풍요로운 아름다운 어느 향기를 못 느끼는 그런 정신상의 후각세포가 없는 사람들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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