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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링필드, 어느 캄보디아 딸의 기억
로웅 웅 지음, 이승숙 외 옮김 / 평화를품은책 / 2019년 8월
평점 :
이미 롤랑 조페 감독의 1985년 영화 <킬링필드>를 통해 캄보디아의 대학살은 널리 알려진 역사지만 그 구체적인 실체가 어떠한지는 제대로 살펴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펴면 그 생생한 학살의 현장이 어린 소녀의 눈을 통해서 생생하게 전달되어 옵니다. 이것이 현실이었다는 것이 몸서리쳐져서 다음 페이지를 넘기기가 두려워지기도 하지만, 서스펜스 소설보다 더한 긴장감 때문이지 오히려 책을 순식간에 읽어 내려갈 수 있었습니다.
1975년 캄보디아 프놈펜시 평범한 중산층 가정의 다섯 살 난 딸 이 책의 저자인 로웅 웅은 행복한 일상을 보내다 어느 날 갑자기 농촌으로 쫓겨납니다. 급진 공산주의 혁명단체 크메르루주의 지도자 폴 포트가 친미주의자 론 놀 정권을 무너뜨리고 공산주의 농민사회를 위해 도시인을 농촌으로 강제 이주시키고 지식인, 공무원, 정치인, 군인을 마구 처형했습니다. 노동자, 농민, 여성, 어린이도 예외는 없었는데, 1975년부터 1979년까지 당시 캄보디아 인구의 4분의 1인 200만 명이 죽었다고 합니다.
5살의 로웅 웅은 유복한 대가족 안에서 해맑게 자란 소녀지만 로웅의 평온한 일상은 검은 옷과 빨간 스카프 차림의 낯선 군대가 도시를 점령한 날 이후 산산이 부서집니다. 정부군 소속 대위였던 아버지는 신분을 숨긴 채 위태로운 위장생활을 하고 아직 어린 오빠 둘과 큰언니는 전선으로 끌려가는데, 한밤 중 찾아온 빨간 스카프 군대가 아버지마저 잡아가자 어머니는 로웅을 비롯해 남은 세 자녀에게 도망가라고 이야기한다.
“각자 다른 방향으로 가. 킴은 남쪽, 초우는 북쪽, 로웅은 동쪽으로 가. 수용소가 나올 때까지 계속 걸어야 해. 고아라고 말하면 받아줄 거야. 아무한테도 진짜 이름을 말하지 마. 그러면 하나가 잡혀도 나머지는 무사할 거야.”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형제 자매는 흩어져 노동수용소에 끌려가고 음식 배급량은 터무니없이 적어서 굶주림의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아버지가 어렵게 구해온 쌀을 훔쳐 먹으며 죄의식을 느끼는 장면도 나옵니다.
책의 원제 ‘First They Killed My Father’이 뜻하는 바와 같이, 그들은 가장 먼저 아버지를 죽였습니다. 크메르루즈는 자신들이 죽인 사람의 아이와 생존자가 언젠가 복수할 것을 대비해 온 가족을 몰살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로웅은 가까스로 생이별한 어머니, 막내 동생과 재회했지만 눈앞에서 총살당하는 것을 봐야했습니다.
마침내 큰 오빠, 작은 오빠와 태국으로 탈출한 로웅은 미국 교회의 후원으로 버몬트주로 이주할 수 있었고 살아남은 로웅이 어린 소녀의 시점에서 킬링필드를 되돌아 보면서 쓴 책이 바로 이 책입니다. 문학적 글쓰기와 생생한 내용으로 직접 체험하듯이 느껴지고 지금도 책 내용을 떠올리면 소름이 끼칠 정도입니다. 저자가 캄보디아를 떠난 지 15년 만에 다시 캄보디아 땅을 밟는 데 이 장면도 놓칠 수 없는 압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