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을 읽는 시간 - 죽음 안의 삶을 향한 과학적 시선
빈센트 디 마이오 외 지음, 윤정숙 옮김 / 소소의책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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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원제로 읽으면 이 책의 성격이 더욱 분명해지는 듯합니다. 이 책은 원제가 ‘morgue’로 시체 안치소 즉 영안실이라는 뜻입니다. 2년 전인 2016년에 미국에서 출간된 책으로 지난 45년 간 9천 건 이상의 부검을 하고 2만5천 건 이상의 죽음을 조사한 미국 법의병리학자 빈센트 디 마이오와 베스트셀러 범죄작가 론 프랜셀이 함께 쓴 책입니다.

 

최근에 방영한 우리나라의 법의학 드라마인 검법남녀나 미국의 드라마인 본즈 등에서 법의학자들의 활약이 부각되듯이 이 책에서는 저자인 총상전문의 법의학자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아직 미스터리인 유명한 사건들을 법의학적으로 재조명하는 책입니다.

 

이 책은 총 10개의 사건을 다루는데 첫 번째는 ‘흑백에 가려진 죽음’이라는 제목으로 2012년 총에 맞아 사망한 10대 흑인 청소년 마틴 트레이본의 사망원인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사건은 백인 자경단원 조지 지머맨이 범인으로 지목되어 인종차별 논란으로 부각되었습니다.

 

많은 흑인 지도자들이 인종차별을 외쳤고 순식간에 130만 명이 지머맨 체포를 요구하는 데 서명했습니다. 많은 블로거와 자칭 전문가들은 물론 버락 오바마 대통령까지 나서서 TV에 나와 이 범죄를 인종차별의 대표적인 사례로 거론하여 사회적 이슈로 대두되었습니다.

 

그러나 사건 실체를 들여다보니 언론 보도나 시위꾼들 주장과는 달랐다고 합니다. 저자는 냉정하게 용의자 얼굴에 있는 상처와 머리 부상을 살핀 후 법의학적으로 판단한 객관적인 결론으로 쌍방 간 과잉대응에 의한 사고였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로인해 지머맨은 무죄를 선고받게 됩니다.

 

저자는 법의학자의 임무는 진실을 밝히는 것이므로 공정해야 하고 진실을 말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나아가 자신은 누구의 편도 들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 진실은 도덕과 관련되어 있지 않다고 강조합니다. 이 사건은 결국 우발적으로 충돌이 벌어졌으며 정당방위였음이 재판 과정에서 규명되었습니다.

 

이 책의 마지막 사건은 세계 미술사에서 가장 극적인 사건이기도 한 네덜란드 천재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죽음에 대한 것입니다. 세간에 고흐는 정신질환을 앓다 1890년 정신병원에서 퇴원한 뒤 파리 근처 작은 마을 여인숙에 머무르다가 37세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저자에게는 고흐가 스스로 총을 쏘지 않았다는 법의학적 근거가 뚜렷합니다. 먼저 사건 발생 직후 고흐를 직접 진찰한 두 의사 기록에 따르면 총상은 왼쪽 옆구리 부근에 있었다고 하는데 이 총상 부위는 스스로 총을 쏘기 어려운 지점이라는 것입니다. 만에 하나 지극히 어렵게 총구를 해당 부위에 갖다 대고 쏘았다고 가정하더라도 옷에 그을음이 묻거나 피부에 적지 않은 화상이 생길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고흐의 총상은 깨끗했고 이로 미뤄보면 총이 적어도 50㎝ 이상 떨어진 곳에서 발사됐다고 추론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 외에 나머지 8가지 사건에는 수십 명의 아이들에게 치명적인 약물을 주입해 죽음에 이르게 한 ‘죽음의 간호사’ 등 저자가 직접 관여했던 사건들에 관한 생생한 묘사가 실려 있는데 이는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장면들보다 더 극적입니다. 영화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제 현장에서 은퇴한 저자는 사람들이 실체가 드러나기기도 전에 먼저 각자의 편견과 언론의 프리즘을 통해 결론을 내리는 경우가 많지만 성급한 결론은 치명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또 직업에 대한 강한 소명의식을 드러내면서도 법의학자를 과도하게 미화하는 대중문화, 과학수사를 만능열쇠로 보는 시각도 비판하고 있습니다. 어느 범죄 소설보다도 흥미진진한 법의학 사례서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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