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잉글랜드의 시인 크리스티나 로세티
(Christina Rossetti, 1830.12.05–1894.12.29)의 129주기 되는 날이군요.
날짜가 지나기 전에 노트를 남겨봅니다.

화가이자 시인이기도 한 큰 오빠 단테이 게이브리얼 로세티가 그린 

빨간 머리의 여인들 그림이 유명하지요.
책의 표지로도 많이 사용되는 그림들입니다.

예를 들면 <사랑의 쓸모>라는 책에서 표지로 사용된 그림이

바로 시인 크리스티나 로세티의 큰오빠인

단테이 게이브리얼 로세티의 작품입니다.
















번역가 김군(@monsieurq7)님이 번역하신
<나는 크리스티나 로세티입니다>에 따르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작가 루이스 캐럴이
이 로세티 남매의 가족사진을 찍었다는 언급이 나와요.

















한 가지 흥미로운 건 루이스 캐럴이 로세티 집안과 교류만
한 것이 아니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보면
이 로세티의 영향으로 보이는 구절이 나온다는 겁니다.


예를 들면 로세티의 시 [고블린 시장] 의 한 구절에서
Eat me,  drink melove me."라는 구절이 나와요.


그런데 이 표현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도
"Eat me"라는 표현과 “Drink me"라는 표현이 여러 번 나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누구에게 영향을 받았을까요?
일단 로세티의 시 [고블린 시장]이 1862년에 출간되었고
곧바로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고 합니다.


그럼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이 책은 로세티의 시가 나온지 3년 후인 1865년에 출간 되었습니다.


당시에 로세티의 시가 상당한 인기를 거두었고 루이스 캐럴이 로세티 남매와 개인적으로 교류를 했다는 사실로 미루어보아, 캐럴이 (아마도?) 로세티의 시 [고블린 시장]을 흥미롭게 읽고 이 문장 혹은 표현들이 마음에 들어 기억해두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이후에 루이스 캐럴은 자신의 작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기이한 상황에서 이 표현을 떠올리고 사용했을 

것이란 추측을 해봅니다.



요즈음 상식으로는 표절이라 할 수 있겠지만, 당시의 통념상 루이스 캐럴이 마음에 들었던 문장을 기억해두었다가 아이들을 위한 이야기를 짓는 과정에서 짖꿋게 사용했을 것 같습니다.


또 이 "love me"란 표현을 정말 웃긴 언어 유희로 변용한 사례는, 

우디 앨런의 1979년 영화 <맨해튼>에서 볼 수 있습니다. 

아마도 안개 낀 브루클린 브리지가 배경인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상대 배우인 다이앤 키튼 역에게 이 표현 “love me"을 사용합니다.

사랑을 구걸하면서 "love me"라는 표현이 나오고 곧이어 
아마도 ”rub me"와 같은 단어로요. 

(그러니까 발음을 살짝 바꾸어 날 사랑해줘, 날 문질러줘? 이런 엉뚱한 표현을 사용하게 되는 것이죠.)


우디 앨런이 영화에서 “love me, rub me"이런 식의 언어 유희를 사용한 것도, 따지고 보면 크리스티나 로세티의 유산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언어 유희에 능한 우디 앨런은 틀림없이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촌철살인같은 낯선 표현들에 매료되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이것도 로세티의 문화적 유산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아무튼 오늘은 크리스티나 로세티 타계 129주기였군요.
일기삼아 남겨봅니다.






















#크리스티나로세티 #단테로세티 #나는크리스티나로세티입니다 #번역가김군 #별책부록 #고블린시장 #고블린도깨비시장 #민음사 #크리스티나로세티129주기 #루이스캐럴 #이상한나라의앨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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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가신 사람들 외 디다스칼리 총서 3
몰리에르 지음, 백지희 그림, 안세하 옮김 / 디다스칼리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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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이 연기되어 더 기다렸던 책 잘 받았습니다~
책이 아담하고 무엇보다 표지가 마음에 듭니다!
처음 출간된 단행본의 삽화도 있어서
인물들의 모습응 상상해보고 당대의 의상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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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그림, 단순한 사람 장욱진
정영목 지음 / 소요서가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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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욱진 타계 33주기, 한국적 모더니스트의 마음 풍경 산책하기

단순한 그림, 단순한 사람 장욱진

 

정영목 지음 | [소요서가] | (2023)

 



올해도 며칠 남지 않았다. 매년 말이 되면 이렇게 인위적으로 구분한 시간에 남다른 감회와 마주하는 상황이 여전히 낯설게 느껴진다. 올 한해는 어떻게 살아왔나 생각해보다가, 특별한 문제없이 지내온 것만 해도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지난주에는 오랜만에 미술관을 찾았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장욱진 화백의 회고전가장 진지한 고백전이 전시 중이었다. 전시와 관련하여 장욱진 화백의 그림을 소개하는 책 단순한 그림, 단순한 사람 장욱진을 읽어보았다. 이 책은 철학서점 소요서가에서 두 번째로 출간한 책이다. 책을 읽다가 우연히 오늘(20231227)이 장욱진 화백이 타계한지 33주기 되는 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늘이 가기 전에 간단한 리뷰를 남겨보고자 한다.


 

덕수궁 전시장을 처음 들어섰을 때 나와 마주한 장욱진 화백의 그림은자화상(1951)이다. 황금들판이 출렁이는 들판을 뚜렷하게 가로지르는, 황토처럼 붉게 보이는 길을 따라 걸어왔을 법한 화백의 모습이다. 엽서 크기보다 작아 보이는 실제 그림 속 화백은 검은 색 연미복과 실크햇 모자, 검은 우산을 든 서구적 신사의 모습이다. 당대의 시대 분위기와 다소 이질감이 느껴지는 복장이다. 당시에 그의 나이 35. 조국이 한창 전쟁 중이던 시기에 부산으로 피난을 갔다가 519월에 가족을 데리고 고향인 충남 연기군으로 귀향할 즈음 그린 작품이라 한다. 혈기왕성한 가장으로서 고향으로 오면서 어떤 기대를 했을까 궁금해진다.


 

그림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기에 나의 그림 감상은 이렇게 작가의 연보와 연대기적인 정보를 참고하여 짐작하거나, 그림을 들여다보면서 나름의 정보를 찾고 때론 상상하는 데 그치고 만다. 그림을 아예 감상하지 않는 것보다야 나을지 모르겠지만, 이런 나의 그림 감상은 금방 한계에 도달하곤 한다. 나는 그림 해설을 읽고 작품을 이해하고자 하기에, 아마도 작가에 대한 에피소드를 접하며 작품을 감상한 것으로 착각했던 경우도 많았을 것이다. 이번에 읽은 단순한 그림, 단순한 사람 장욱진은 미술사학을 전공한 정영목 교수가 집필했다. 만약 그라면 나의 감상 방식을 작가론에 치우친 감상 방식이라고 진단할 듯하다. 미술이론을 잘 모르는 내가 미술을 감상할 때 이런 방식으로 접근했다면, 아마도 작가론중심의 감상방식에 나도 모르게 익숙해져 있어서는 아니었을까 싶다.


 

저자는 작가론중심의 감상을 벗어나 작품 자체의 가치를 탐색하는 작품론위주의 해석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 점이 저자가 기본적으로 추구하는 방향이라 생각한다. 저자는 기존의 작가론위주의 감상을 단순히 쓸모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작가론적인 관점에서 작품을 감상했을 경우 나타날 수 있는 한계를 이렇게 지적한다. “소설 쓰듯 단순한 문학적 서정성의 수상(隨想)”(43)에 그칠 수 있고, “개별 작품의 시간성과 공간성을 뛰어넘는 절대적인 존재가치의 문제가 소홀히 다루어질 소지”(45)가 있으며, “상대성의 잣대는 형태의 외형적 결과를 신봉하는 피상성”(45)에 빠지기 쉽다고 말이다. 다시 정리하면 저자는 장욱진의 작품 세계를 감상할 때 작품 자체의 미학적 가치, ‘진정한 작품성을 제시하고자 하는 것이다. 보다 절대적인 존재 가치, 객관적인 가치를 찾으려면 이 기준에 부합하는 합당한 기준이 있어야 할 일이다. 따라서 이 책에서 작품 감상의 큰 틀은 작품에 대한 형식주의적 해석에 기초한다.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이 형식이 단순히 외형적 형식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저자가 감상에서 근거로 사용하고자 하는 단서는 형식의 진정성이라고 말한다. 쉽지는 않아 보인다. 하지만 낙담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장욱진 화백의 그림 대부분을 감상하다보면, 사실 감상자가 사전 지식이 없이도 무엇을 그린 것인지 금방 알아챌 수 있다. 저자는 화백의 그림이 지니는 가장 직관적인 특징은 친근감’(235)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에 익숙해져 있지만, 어떤 화가의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미술책을 읽기도 한다. 반면 장욱진의 그림에는 이런 방식이 통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익숙한 서양사적 틀과 지식이 아니라도 장욱진의 그림에는 보다 쉽게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이다. 미술비평가가 아닌 다음에야 일반인에게 장욱진 화백의 작품들은 해석과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 마음의 눈으로 감상하는 그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이번에 책을 읽다보니, 내가 부실한 지식을 지녔음에도 얼마나 서구적인 기준에 치우쳐 우리의 그림을 바라보곤 했는지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작가론보다는 작품론위주의 해석과 감상을 제시하고자 했다. 그 이유는 앞서 언급하긴 했지만, 무엇보다 장욱진의 작품 자체가 지니는 진정성이 작품 그 자체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는 자각에서 나온 것 같다. 특히 일반 대중에게 작가론방식의 이해가 피상적으로 한계에 부딪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새로운 방향의 평가와 관점의 해석이 필요함을 절감했을 것 같다. 다만 책을 읽다보면 저자 역시 작가의 개인적인 면모나 가족 배경에 관한 사항들, 저자의 말이나 가족과 있었던 일화를 곁들이는 것을 알 수 있다. 저자는 작품론위주로 해석을 시도하지만, ‘작품작가에 대한 정보를 엄밀히 구분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오히려 저자의 입장은 이 두 가지 방식의 접근법 가운데, ‘작품에 더 중심을 두고 상호보완적으로 활용하려는 인상을 준다. 저자는 그 이유를 이렇게 이야기한다.

 


한국현대미술사에서 그들(한국적 모더니스트들)의 존재가 돋보이는 궁극적인 이유는 그들의 인간적 면모나 그들의 작품에 드러난 진정성 때문이다. 심지어 이 진정성은 작가와 작품 혹은 이 둘 모두를 둘러싼 시대적 상황과 함께 발견된다는 점이 핵심이다.”(48)


 

그러므로 저자 역시 장욱진 화백을 포함하여 김환기, 백영수, 유영국, 이중섭 화백들의 작품을 평가하고 감상할 때 작가와 작품, 그리고 시대적 맥락을 모두 활용하고 있다.


 

따라서 저자가 미술사적 방법론으로 형식주의적 해석을 채택한 이유는, 절대적인 작품 자체의 가치를 평가하기 위한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서다. 장욱진의 경우 그의 작품에는 일생을 통해 반복되는 라이트모티브가 있다. , 해와 달, 나무, 집과 사찰와 같은 자연 풍경 및 집, 까치나 닭, , 돼지, 강아지와 같은 동물들, 여인과 아이, 가족과 같은 사람들이다. 서구적인 관점에서 화백의 그림을 평가한다면 끊임없이 반복되는 그림 속 대상에 혼란스러워하거나 매너리즘을 이야기할 수도 있겠다. 여기에서 저자는 무엇보다도 화백의 그림을 마음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 반복되는 대상과 조형 형식 이면의 독창성과 진정성을 읽어 내야 한다고 말한다.


 

화백의 작품이 보여주는 진성성은 무엇보다 그의 삶과 작품이 일치하는 가운데 얻어지는 것이라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그림은 무엇보다 자전적 요소가 강하게 반영되어 있고, 그림 속의 대상들은 곧 작가의 분신이나 다름없다고 일러준다. 평생 화백이 그린 수많은 대상들은 곧 작가의 마음 속 풍경을 보여주는 구성물들이지, 단순한 장식물로서 배치된 것이 아니었다. 서구의 미술사적 관점에서 작품은 예술을 위한표현, 혹은 신앙이나 삶에 관한작업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화백의 작품은 보다 정신적인 면, 구도적인 면모를 보여준다고 하겠다. 그러므로 화백의 그림에 나오는 까치나 나무, 동물 등의 대상이 상징하는 것이 무엇인지 질문하는 것은 그의 작품을 감상하는 방식이 아닐 것이다.


 

내가 저자의 설명을 잘 이해했는지 모르겠지만, 저자가 화백의 작품에 있어 불교와의 관련성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한 가지 단서를 찾아본다. 화백이 평생 작업한 작품 가운데 불교적인 소재 혹은 대상이 나오는 그림은 먹그림을 비롯하여 그다지 많지 않다. 하지만 불교 집안에서 성장한데다, 고등학생 시절 6개월 간 절에 가서 정양하는 동안 성철스님을 지도한 적 있는 만공 선사 밑에서 몸과 마음을 회복했던 경험을 참고해보면, 그의 그림에 불교가 준 영향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저자의 설명을 따라가 보자.


 

장욱진의 작품세계는 (불교보다) 노장 사상에 가까워 보인다. 그리고 그 작품세계는 노장사상뿐만이 아니라 불교와 전통적인 무속과 민화, 설화 등의 요소가 자전성을 바탕으로 서로 종합화되어 있는 것이 특징적이다. 그럼에도 나의 판단에는 장욱진이 불교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고 보이며, 그것은 작품 자체의 도상이나 주제보다는 작가적인 인식과 태도, 그리고 예술이라는 개념에 관한 부분에서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된다.”(205)


 

다시 말해 불교가 장욱진의 작품세계에 미친 영향은 소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예술관 혹은 작업 방식에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아마도 이런 특징 때문에 외국의 미술사학자들이 장욱진 화백의 작품을 어떻게 평가해야할지 몰라 곤란해 했을 것이다.


 

저자는 무엇보다 화백의 삶과 작품의 일치가 보여주는 진정성에 주목하고 이를 높이 평가한다. 까막눈이나 다름없는 나의 눈에는 그저 간단한 선을 사용한 아이 그림 같아 보인다. 하지만 화백은 그림을 그릴 때 자신의 언어를 어떻게 찾아냈을까 궁금하다. 어두컴컴한 새벽에 산책을 나갔다 돌아와 조그마한 화폭 앞에서, 어떤 생각을 채울까를 고심했을 화백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붓을 수없이 들었다 놓기도 했을 법한 그는 자신이 바로 그림이 되는 길을 찾아 또 다시 마음 속 풍경을 산책을 시작하지 않았을까. 스님에게는 불경을 외우고 참선하는 구도의 길이 있듯이, 화백에게는 작은 화폭을 채우는 구도 행위가 있었을 것이다. 때론 마음의 풍경을 들여다보는 일이 잘 되지 않을 때 붓을 내려놓으며, “내일은 마음을 모아 그림을 그려야겠다. 무언가 그릴 수 있을 것 같다.”(225)라고 스스로를 달래지 않았을까 싶다. 이 책은 장욱진 화백의 그림을 감상하는데, 작가가 직접 쓴 산문과 더불어 그림들의 가치를 알아보고 감상하는 데 중요한 주춧돌이 되어줄 수 있을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료로 제공받았습니다."






[책 속으로]




[1] "개별 작품의 시간성과 공간성을 뛰어넘는 절대적인 존재가치의 문제가 소홀히 다루어질 소지가 충분히 있다. 또한 시각예술에 있어 이러한 상대성의 잣대는 형태의 외형적 결과를 신봉하는 피상성에 빠지기 쉽다."(45)
- 개별 작가의 독창성과 고유성을 평가할 때 상대적인 접근방식이 갖는 문제점 지적.

[2] "작품의 외형적 형식보다는 형식의 내재율에 흐르는 진정성, 즉 형식의 진정성을 찾는 것에 더욱 높은 가치를 부여해야 하지 않을까?"(45)

[3] "장욱진은 그리고자 하는 자신의 욕구와 행위를 형식의 문제가 아닌, 자연과 삶 그리고 작가와 작품의 관계에 걸쳐 있는 일종의 ‘진실’을 추구하는 문제로 보았다. 또한 조형으로서의 ‘압축’과 변화하지 않는 ‘반복’의 조형은 자신의 ‘정직함’을 나타내는 표상인 것이다. 그에게 있어 같은 스타일을 반복한다는 것은 이미 조형 이전의 문제인 것이다."(47)

[4] "여인 이미지에 대한 장욱진의 태도는 그의 어머니와 부인을 정점으로 하면서도, 구체적으로 어느 한 인물만을 지칭하는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 어머니와 부인, 그리고 딸들에 대한 심상이 복합적으로 투영되어 있다. (...) 화가의 여인상은 매우 자전적이며 심리적이다."(140)

[5] "이러한 나무는 노장사상과도 같이 자연과 인간을 분리하지 않는 동양적 사유의 관념을 보여준다. (...) (나무는) 아이와 새를 품에 안고 키우는가 하면 인간에게 휴식을 주고, 아예 마을 전체를 위에 얹어놓고 보살피기도 한다."(156)

[6] "그러니까 항상 자기의 언어를 가지는 동시에 동시대인의 공동한 언어를 또한 망각해서는 아니 된다."(164)
- 장욱진 화백의 말

[7] "참선의 수행처럼 몸으로 그림을 그렸고, 그림으로 자신의 몸을 다 소모한 장욱진은 구도자처럼 삶과 예술에 대한 불교적 실천을 보여주었다."(189)

"사람의 몸이란 이 세상에서 다 쓰고 가야 한다. 산다는 것은 소모하는 것이니까. 나는 내 몸과 마음을 죽을 때까지 그림을 그려, 다 써버릴 작정이다."(190)
- 그림에 임하는 장욱진의 말

[8] "예술을 향한 작품들이 서구의 미술 개념이며 모더니즘이었던 반면, 장욱진은 예술을 뛰어넘어 도를 향했다. 이 점에서 장욱진은 불법(佛法)에 연결되어 있다."(207)

[9] "문화유산으로서의 전통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새로운 시대정신과 맞부딪쳐 박제화 될 위험성이 농후하다. 이것은 문화적으로, 역사적으로 항상 재해석되어 우리의 현재와 함께하는 생물처럼 살아 움직여야 한다."(220)

[10] "작가는 그 세계의 주변 사물들을 애정으로 보듬는다. 생명은 생명의 고귀함으로, 무생물에게도 애정을 담아 정성껏 의미를 부여한다."(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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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티파크
유디트 헤르만 지음, 신동화 옮김 / 마라카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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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날아가게 하는 공기같은 것


레티파크 Lettipark

 

유디트 헤르만 지음

신동화 옮김 | [마라카스] | (2023)

 



레티파크는 단편 17편이 실려 있는 소설집이다. 짧은 감상을 남겨본다.


 

이 책은 우선 표지가 무척 인상적이다. 더스트 커버를 책과 분리하면, 안쪽에 사진이 실려 있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프레임의 가운데에는 초점이 나간 노란 종이비행기의 이미지가 보이고, 초록색 치마를 입고 거리를 걷는 여성이 비행기의 이미지와 겹쳐 있다. 문득 누군가가 건물 안에서 무심코 건너편 거리를 바라보다가 길을 걸어가는 여성의 뒷모습을 쫓는 듯한 시선같이 보이기도 한다.


 

여성은 누군가의 시선을 느꼈을까? 그녀는 살짝 뒤를 돌아본다. 그러다 건너편 1층 건물에서 밖을 내다보는 누군가와 우연히 눈이 마주치는 순간 같아 보이는 장면이다. 이 순간, 노란색 종이비행기가 두 사람의 시선을 가로지른다. ‘찰나의 순간이다. 삶에서 이런 순간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혹은 너무나 순식간에 지나가버린 나머지 우리의 시선이 따라가며 보았던 장면의 잔상마저 금방 사라진 것일지도 모른다. 삶은 계속 이어질 뿐이다. 모호함은 우연의 연속에 덮여버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소설에 들어맞는 이미지는 아닐 테지만, 표지 안쪽에 실린 사진은 일곱 번째 단편 <종이비행기>를 연상하게 하는 이미지다. 책 표지 안쪽에 이런 사진을 배치한 출판사의 안목이 신선했다.

 


단편 <종이비행기>의 주요 인물은 서구적 경제 질서가 지배하는 현대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싱글맘 테스다. 가장으로서 자신의 몫을 해내고자 분투하는 사람, 혹은 소시민의 모습을 담고 있었다. 때는 테스가 면접을 보러가는 아침이다. 그녀는 면접에서 오랫동안 집에 있었고 다시 나가고 싶다.”(97)라며, 절박한 진실을 숨기지 않고 이야기한다. 소설은 테스의 바람대로 이루어지는지는 결국 보여주지 않는다. 만약 그랬다면, 이 단편은 달려라 하니의 단편소설 버전이 되었을 것이다. 혹은 억척 어멈 테스 이야기가 되어버렸을 테다.


 

옮긴이가 작가 유디트 헤르만의 소설이 불가해한 현실 자체를 이야기하는 것’(247)이라고 언급한 것처럼, 소설은 어느 것도 확정된 상태나 결말을 보여 주지 않는다. 또는 그러한 방향으로 가는 듯한 암시도 나오지는 않는다. 우리의 손을 떠나 날아가는 종이비행기도 우리가 어디를 날아가도록 할지 지정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테스의 운명은 어디를 향해 나아가기 보다는 모호한 상태로 남아 있다. 그런데 우리의 삶이란 게 그렇지 않은가.


 

이 단편에서는 밤에 활짝 열린 창가에 가족이 모두 모여 있는 장면이 나온다. 테스의 가족이 그녀의 남사친닉이 날린 종이비행기를 함께 바라보는 장면이 나온다. 이 부분이 인상 깊다. 종이비행기는 중력의 영향 속에서 몇 초 동안 활공한다. 비행기가 이렇게 날아갈 수 있는 이유는 바로 공기라는 유령때문이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를 감싸고 있는 존재. 언제나 우리 주위에 존재하는 공기가 있기에, 종이비행기는 활공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현실도 이와 다르지 않다. 싱글맘 테스가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다하고자 하는 한, 자신을 언제나 밑으로 끌어당기는 중력을 견뎌내야 할 것이다. 그가 중력을 견디며 멀리, 혹은 더 오랫동안 날아갈 수 있으려면, 이때 필요한 공기같은 것은 뭘까. 두렵고 불안하며 취약하기까지 한 우리의 삶에서 가족의 유대감같은 것은 아닐까 싶다. 가장 작은 사회적 안전망, 혹은 최후의 안전망인 가족의 존재가 여기서 더 크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또 다른테스를 삶에서 버티게 해주는 것은, 바로 사람과 사람을 이어줄 수 있는 유대감같은 것일 테다. 가족을 통한 가장 작은 연대로부터 형성된 유대감이야말로, 의심의 여지없이 종이비행기가 잠시나마 날아갈 수 있게 해주는 공기와 같은 것은 아닐지. 너무 상투적인 감상인지 모르겠다. 표지에 나온 사진을 보면서 종이비행기가 날아가는 모습을 함께 보는 테스 가족의 마음이 느껴지는 듯하다



[책 속으로]


[1] "그냥 거기 있으면서 사람들이랑 대화하고 그들이 다치지 않게 돌보는 거야. 그들의 말을 경청하는 거야. 그게 다야."(94)

[2] "아주 오래도록 손을, 손목을, 다시 손을 그리고 얼굴을 씻고 나서, 재킷을 벗고 나서 거실로 간다."(95)

[3] "진실. 나는 그 사람들한테 진실을 말했어, 달리 뭘 말하겠어? 나는 아이가 둘 있다고, 싱글맘이라고, 정신 병동 경험이 있다고 말했어. 나는 이렇게 표현했어. 나는 오랫동안 집에 있었고 이제 다시 나가고 싶다고. 일을 하고 싶다고. 나는 말했어. 저는 씩씩해요, 저는 투지가 있어요, 저는 낙관적이에요. 저는 안정적인 사람이고 평정심을 가졌어요."(97)

[4] "가끔 나는 모든 걸 다시 분해했다가 새로 조립하고 싶어. 다시 한 번 처음부터 시작한다는 말이 아냐. 하지만 이미 있는 걸 가지고 다른 걸 만든다? 글쎄, 그건 안 돼. 새미랑 루크를 봐. 나는 더 이상 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해."(99)

[5] "스탠의 엽서에 뭐라고 적혀 있지, 닉이 묻는다. 이 말에 두 사람은 웃을 수밖에 없다."(99)
- 내가 꼽은 소설 속의 ‘반짝 빛나는 순간’

[6] "그가 말한다. 만약에 네가 빨리 던지면, 만약에 네가 - 바로 던지면, 너는 중력을 잠시 극복할 수 있어. 삼 초 동안 활공. 그다음엔 바람을 타고 쭉 날아야 해."(99)

[7] "비행기가 밖으로 떠간다. 거리를 넘어 선로를 향해, 높은 포플러를 향해서. 선로가 희미하게 빛나고, 하얀 날개가 어둠 속에서 녹아 사라지는 듯 보인다."(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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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3-12-26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초란공님은 책을 잘 안 읽으셨다고 하시는데 책을 고르시는 안목은 전혀 안 그런 거 같으십니다. 왕년에 책 깨나 읽으신것 같다능. ㅋ
책 표지 정말...!👍

레삭매냐 2023-12-26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나오자마자 사서 읽기 시작은
했는데...

모다 읽지는 못했네요 아숩...
마저 찾아서 올해가 가기 전에
읽어야지 다짐해 봅니다. 다짐만...
 
가짜 환자, 로젠한 실험 미스터리 -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무너뜨린 정신의학사의 위대한 진실
수재나 캐헐런 지음, 장호연 옮김 / 북하우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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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의학의 흑역사 속에서 희망 찾기


가짜 환자, 로젠한 실험 미스터리

: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무너뜨린 정신의학사의 위대한 진실

 

수재나 캐헐런 지음

장호연 옮김 [북하우스] (2023)

 

 


가짜 환자, 로젠한 미스터리는 기자인 저자가 직접 경험한 사건에서 비롯되었다. 실제로 자가면역 기능의 이상에 의한 뇌염이 조현병이라는 오진으로 정신병동에 입원할 뻔했던 체험을 하게 된 것이다. 진단을 한 의사들이 보기에 겉으로 드러난 증상이 매우 비슷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의 경우, 책임감 있고 주의력 있는 의사의 노력으로 치료받을 수 있는 뇌염을 판정받고 회복할 수 있었다. 이 상황은 결코 사소한 실수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는 인간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문제와 닿아 있었다. 인간이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기 때문이었다.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거울삼아 온전한 정신과 정신이상의 차이를 과연 어떻게 알 수 있는지 알아보고자 한 것이다.


 

인류는 지구상에 등장한 후 자신에게 주어진 감각기관을 통해 끊임없이 세계를 관찰할 수 있었다. 어느 시기부터는 자연을 바라보며 모든 존재에 이름을 부여하기 시작했다. 대상에 이름을 부여하는 행위는 자연스럽게 분류하기로 이어졌다. 어떤 기준에 따라 대상을 비슷한 것 끼리 연결을 지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비슷한 속성을 지닌 존재끼리 모으면 자연스럽게 차이가 드러났을 것이다. 이 과정은 모든 인류에게 가장 기본적인 세계 이해의 과정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인간이 모든 존재에게 나름의 이름을 부여하는 행위는 곧 세계를 이해하고자 하는 욕구에서 나왔을 것이다. 이는 개체와 집단의 생존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기본적인 지식인 셈이다.


 

우리는 인류사에서 자연에 이름을 붙이고 대상을 분류한 대표적인 사례를 잘 알고 있다. 학명이라는 용어로 생물에 이름을 부여하고, ‘------의 린네식 분류 체계를 사용한 전통을 떠올리면 된다. 분류학의 역사를 조금만 들여다보아도 이란 개념 하나마저도 얼마나 불명확하게 정의되어 있는지 알 수 있다. 나아가 인류는 아직도 지구상에 있는 모든 생물을 파악하고 이름을 붙인 것도 아니다. 현재 통용되는 개념에 적용되지 않는 생물들도 다수 존재하는 것이다. 다르게 표현하면 개념 하나도 인간이 규정한 분류의 개념이 얼마나 자의적인지 알게 되면 놀라게 된다. 이야기가 길어졌지만, 앞에서 언급한 가짜 환자, 로젠한 미스터리는 정신의학 분야에서 정상인과 정신질환자를 구분하는 경계 역시 얼마나 자의적인지를 보여준다. 저자 역시 주요 정신의학 진단들은 모두 합의에 의해 만들어졌다”(296)는 점을 언급하는 것이다.


 

이제 이 책의 핵심 인물인 데이비드 로젠한에 주목해보자. 그는 자신을 포함하여 몇 명의 가짜 환자와 함께 직접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이곳에서 이들은 조현병과 같은 정신질환 진단을 받고 시설에 수용되는 것이다. 각자가 정신병동에서 지낸 체험을 바탕으로 20세기 정신의학사를 새롭게 쓸 논문을 내게 되었다. 그들은 이 실험을 통해 정신의학에서 정신질환의 진단이 자의적이며 맥락 의존적임을 밝혀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아직까지 정신질환의 정확한 진단을 할 수 없다는 의미였다. 혹자는 이 작업을 정신의학의 얼굴을 바꾼, 기념비적 성취라고 일컫기도 했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문제는 이 책의 본격적인 내용이 여기에서 출반한다는 점이다.


 

로젠한의 실험을 담은 논문이 세상에 등장한 이후, 정신의학계는 커다란 타격을 받았다. 정신과 의사들이 정확한 진단을 내릴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환자들을 수용하는 절차나 시설에서의 돌봄에 중대한 문제가 있다는 점이 만천하에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후 정신의학에 대한 불신도 증가했으며 심지어 정신질환자를 위한 병원도 속속 문을 닫게 되었던 것이다. 이후 정확한 진단을 위한 엄밀한 기준이 마련되었고, 사람에게 관심을 갖는 돌봄에 대한 필요성이 증가했다. 이 과정에서 나타난 결과는 고무적인 측면도 있을 것이지만 또 다른 문제를 낳기도 했다. 병원이 사라지면서 정말 도움을 받아야 하는 중증 정신질환자들이 수용될 시설이 마땅치 않게 되고, 때론 교도소나 구치소에서 더 가혹한 대우를 받으며 지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또 다른 문제도 있다. 엄밀한 진단 기준을 마련하면서 정신질환의 원인을 환자 내부에서 찾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전에는 정신질환의 원인을 외부, 그러니까 외부의 고압적인 어머니나 나약한 아버지의 영향을 전제한 프로이트적 해석에 따랐던 것이다. 정신질환의 원인이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찾게 되었다는 것은 신체적, 생화학적인 증상을 약으로 조절할 수 있다는 믿음을 낳았다. 따라서 이 변화는 현대의학이 약물의 과잉 처방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해준 셈이기도 하다.


 

이 사례는 의학의 역사에서 질병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을 것인지, 아니면 내부에서 찾을 것인지를 두고 대립했던 두 관점을 떠올리게 한다. 한 가지는 신체 내에 4가지 체액이 있어서, 이 체액 사이의 기능 이상이나 불균형으로 질병이 일어난다고 보는 히포크라테스-갈레노스-아리스토텔레스 계열의 관점이 있다. 신체 질병의 다른 원인과 관련한 관점은 질병이 외부로부터 온다는 시각이다. 다시 말해 현대의 세균이나 감염으로 인해 발병한다고 보는 것과 같다. 이런 관점은 연금술사로 더 잘 알려진 의사 파라켈수스의 관점이다. 다만 정신질환과 다르게 신체 질환의 원인이 외부에서 온다는 관점이 발병했을 때 약물로 이 원인에 대처할 수 있다고 보았다. 흥미로운 것은 정신질환이나 신체질환이나 발병의 원인이 외부인지 내부인지를 구분하는 이분법적인 사고체계에 여전히 기반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관점에서 바라보면 정신질환의 원인에 대한 논의도 서양의 2분법 적인 사고의 범주 내에서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이 책은 400페이지가 넘지만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었던 이유는, 우선 작가가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이 뛰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마치 탐정이 수많은 조각들로 이루어진 단서를 퍼즐처럼 모아 점차 뚜렷한 이야기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존경스러운 업적을 이루어 낸 로젠한의 논문이 상당 부분 날조가 되었음을 밝히는 장면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놀라운 반전이었다. 게다가 로젠한의 논문은 결국 자신이 옳다는 결론을 미리 내리고 주어진 실험 자료를 이 결론에 맞게 취사선택하고 날조하여 완성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야기는 이제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게 될까 궁금했다. 저자가 찾던 가짜 환자들은 찾을 수 있을까? 혹은 어쩌면 이 가짜 환자들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이 아닐까 하는 암울한 예감까지 들었다.


 

저자가 이 책에서 제기하는 한 가지 이슈는 온전한 정신과 정신이상의 경계에 관한 물음이다. 이 경계가 명확하지 않다는 것, 혹은 이 경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문제를 조금 더 일반적으로 확장해보면 정상과 비정상을 규정하는 문제에도 적용할 수 있지 않은가. 이 중대한 문제는 인류의 역사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이러한 이분법적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훨씬 많음에도 구분을 강요함으로써 비극이 많이 발생한다. 예를 들면, 남성과 여성(성차별 문제), 이성애와 동성애(성소수자 문제), 백인과 유색인(인종차별 문제)과 관련된 문제의 원인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또 이 문제는 우생학의 역사와도 연결 지을 수 있다. 우리가 정상인과 장애인을 멋대로 규정하고 구분함으로써 발생하는 문제의 극단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제기하는 문제의식과 주제에 금방 매료되었다. 한편 저자의 관점이 왠지 익숙한 느낌을 받았는데, 저자의 관점과 연결지점이 닿아 있는 책 2권이 떠올랐다. 하나는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물고기란 표현은 인간의 관념적 규정에 지나지 않으며, 바다 속의 모든 생물을 이 범주에서 명확히 구분할 수 없음을 자신의 성정체성 문제와 함께 고민한 책이었다. 여기에서도 역사상 유래 없는 우생학의 폐해를 언급하는 대목과도 닿아 있었다. 또 다른 책은 자연에 이름 붙이기. 이 책은 앞서 언급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의 저자에게 자신의 책을 쓸 수 있게 영향을 주기도 했다. 이 책 역시 본격적인 분류학의 역사를 짚어보면서 생물을 분류하고 경계를 온전히 정의하는 일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점을 깨닫게 해준다. 이런 맥락에서 가짜 환자, 로젠한 미스터리 이 두 권의 책의 계보를 이으면서 특히 정신의학 부분으로 관심을 확장한 책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저자는 인간이 마음의 과학에 대해 더 많이 알아갈수록 신경학과 정신의학의 경계가 모호해졌다고 말해준다. 수십 년이 지났는데도 바로 이 문제에 있어서는 지금까지 크게 변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미친 사람이라도 항상 미친 행동만 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우리는 정상에서 비정상까지 이어진 행동의 연속체를 오가며, 살면서 이 연속체의 다양한 지점에 해당하는 행동을 보기도 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저자가 5년 이상 진실을 알기 위해 이 모든 일에 뛰어들어 붙들고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한 가지 이유로는 자신과 동일한 증상을 보였음에도 정확한 진단을 하지 못하고 증상이 악화되었다가 사망한 환자를 떠올렸기 때문이 아닐까. 자신의 또 다른 거울상과도 같은 환자가 더 생기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을 것 같다. 무엇보다 저자는 정신의학에 있어서 사람이라는 요소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사람에 대한 돌봄이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여기에 우리가 잃어버렸던 유산, 곧 병원이란 공동체 정신이 남아 있는 피난처가 되어야 한다는 믿음을 바라고 있다





[책속으로]

[1] "우리가 마음의 과학에 대해 더 많이 알아갈수록 신경학과 정신의학의 경계가 흐려졌다."(55)

"(현대의학은) 온전한 정신과 정신이상을 구별할 수 없다."(68)

[2] "온전한 정신과 정신이상이라는 게 존재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알까?"(125)
- 로젠한의 논문에 나오는 문장.

[3] "일단 ‘정신질환자’나 ‘조현병’이라는 꼬리표가 부착되고 나면 이것을 없애기 위해 여러분이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특히 의사의 결론과 위배되는 증거가 뒷받침하는 증거에 밀려난다면 손쓸 방법이 없다."(147)

[4] "미친 사람이라고 해서 항상 미친 행동을 하진 않는다. 우리는 ‘정상’에서 ‘비정상’까지 이어진 행동의 연속체를 오간다. 모든 사람이 살아가면서 연속체의 다양한 지점에 해당하는 행동을 보이며, 우리가 이런 행동을 해석하는 방식을 맥락이 좌우할 때가 많다."(235)

[5] "전기충격요법은 이탈리아 의사 우고 체를레티가 시작했다. 그의 조수가 로마의 한 도살장에 들렀다가 전기 쇠막대로 충격을 받은 돼지들이 유순해진 것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238)

[6] "문제는 지역사회가 환자들을 돌본다는 꿈이 말만 그럴듯했지 실현되지는 못했다는 점이다. (...) 지역사회 돌봄 모델은 경증 장애인에게 유명무실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정도였다. 중증장애인은 방치되거나 외면을 받았다."(252)

[7] "증상과 징후는 물론 아주 실제적인 것이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백 년 전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수수께끼였다."(296)

[8] "내가 보기에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편람의 방식 때문에 정신의학의 실태가 지나치게 경직되어 환자를, 인간을 놓쳤다는 것이다. (...) 이것은 오진을 부추길 수 있다."(301)

[9] "가장 중요한 것으로,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대다수 사람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그대로 있으며, 그들이 받는 열악한 처우는 평범한 대다수 미국인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키지의 시대와 오늘날의 진정한 차이라면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들을 학대하는 것이 이제 교도소와 구치소에서 벌어진다는 사실밖에 없다."

[10] "로젠한은 모든 곳에 있으면서 어디에도 없는 사람이었다."(388)

[11] "신체냐 정신이냐, 뇌냐 마음이냐? 난감한 이 문제가 우리를 영원히 괴롭히고 있다. 이것은 누군가의 생사가 걸린 중요한 문제이기도 하다. (...) 우리는 어떤 질병이 다른 질병보다 더 우리의 공감ㅇ르 살 가치가 있다고 여긴다. 이것이 바뀌어야 한다."(417)

[12] "의학에 대한 이런 믿음, 우리의 치료자, 진단, 시설에 대한 이런 믿음은 로젠한이 망가뜨리는 데 힘을 보탠 것이자 스피처가 바로잡으려고 애쓴 것이며, 제5판을 둘러싼 논란과 교도소 시스템과 관련한 끔찍한 이야기들이 더더욱 뒤흔든 바로 그것이다. 믿음은 정신의학이 잃어버린 것이며 살아남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다. (...) 희망은 꼭 필요하다."(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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