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숄 ㅣ 문지 스펙트럼
신시아 오직 지음, 오숙은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11월
평점 :
숄에 매인 고통의 기억과 삶이 지닌 맹점들
《숄》
신시아 오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
“눈은 하늘처럼 파랬고, 솜털처럼 보드라운 머리카락은 로사의 코트에 꿰매어 단 별처럼 노란색이었다.”(《숄》, 12면)
소설 《숄》은 단편과 중편 정도의 작품 두 편이 묶인 구성을 하고 있다. 폴란드 바르샤바의 지식인 가문 출신인 로사가 15개월 된 딸 마그다, 조카 스텔라와 함께 수용소로 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앞에 인용한 문장은 소설 앞부분에 나오는 데, 이 문장이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 알아차린 것은 소설을 중반 즈음까지 읽은 후였다. 옷에 꿰매어 단 별은 ‘다윗의 별’, 곧 유대인임이 드러나도록 나치가 강요한 정책에 따른 것이다. ‘파란색 눈’과 ‘노란색 머리카락’은 나치독일이 자신들의 ‘순수한’ 혈통이라고 믿었던 ‘아리안’의 특징을 보여준다. 물론 이 ‘아리안 신화’는 허구적 개념이었지만, 집단의 눈을 멀게주는 데는 효과적이었던 셈이다. 이 단서들을 종합해보면, 인용문은 폴란드 출신의 유대인 로사가 나치에 의해 강제로 임신하고 낳게 된 아이가 마그다임을 짐작하게 한다.
나치는 ‘아리안의 피’가 섞였다고 살려주지도 않았다. ‘순혈통’만을 인정하는 나치는 영양실조 증상을 보이던 마그다를 전기가 흐르는 철조망에 던져 죽음에 이르게 한다. 그것도 생모가 보는 앞에서 말이다. 마그다가 허공에 던져진 장면은 그야말로 충격적이고 생생하게 다가온다. 어쩌면 마그다는 이처럼 빨리 발각되어 허망하게 ‘처리’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추위에 떨던 조카 스텔라가 마그다를 감싸던 숄을 가져가지 않았다면 말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누굴 원망할 수 있을까?
극도의 추위와 배고픔 속에서 ‘숄’은 이들을 지탱해주고 구원해준 물건이었다. “숄은 마그다의 아기였고, 반려동물이었고, 여동생이었다”(15)라고 한 것처럼. 아이가 언제나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대상, 애착을 투사한 물건이었으며, 심지어 젖꼭지 역할까지 맡았다. 엄마 로사는 아이에게 아무 것도 해줄 수 없었다. 죽어가는 아이에게 아무 것도 해줄 수 없이 그냥 바라볼 수밖에 없는 상황만큼 고통스러운 상황이 있을까. 그나마 숄은 딸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물건이라 할 수 있었다. 마그다의 분신과 같은 물건인 셈이다. 마그다가 죽어가는 상황에서 로사는 숄을 입에 물고 고통과 슬픔을 들키지 않게 삼킬 수 있었다. 숄은 그녀를 살아남게 해준 수단이었지만, 동시에 15개월짜리 딸의 기억 전부이기도 했다. 그러므로 로사가 40년 가까이 이 숄에 집착하게 된 이유를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다.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의 이야기는 당사자에게 평생 트라우마로 남는 고통을 안겨준다. 특히 ‘살아남았다고 하는 사실’ 자체에 의문을 들게 하는 맥락이 존재하는 듯하다. ‘내가 왜 살아남았을까?’하는 의문, 그리고 ‘생존하지 못한’ 존재들에 대한 일종의 부채의식, 혹은 죄책감 같은 것들까지 말이다. 때로는 생존한 이들이 ‘생존자’라는 표현에 대해 갖는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표정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생존하지 못한 이들은 살아남을 ‘자격’이 없었던 것인지 묻게 되는 맥락도 생겨나기 때문이다. 이건 홀로코스트 문학을 접할 때 주목할 수 있는 굉장히 복잡한 양상의 한 단면에 불과하다. 이를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범주는 극히 일부일 뿐이라 생각한다. 이 경험을 언어로 표현하는 일 자체가 불가능한 일 아닌가 싶다.
두 편 모두에서 등장하는 홀로코스트 비극을 상징하는 대상은, 우선 ‘철조망’이다. 단편「숄」에서는 전기가 흐른 채 수용소를 둘러싸고 있는 철조망이 나온다. 그리고 이로부터 39년 정도 지난 이야기인 「로사」에서는 해변가에 위치한 어느 호텔 소유의 지역을 둘러싼 철조망이 등장한다. 앞의 단편에서 등장하는 철조망은 수용자의 탈출을 막는 데 주목적이 있었다. 반면 이어 나오는 중편의 철조망은, 빨간 머리를 한 호텔 지배인의 말에 따르면, ‘하층민의 침입’을 방지하는 것에 목적이 있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두 ‘철조망’ 모두 경계를 지우고, 양쪽의 소통을 막아 단절을 초래한다는 점이 공통적이라 할 수 있다.
유대인으로서 홀로코스트의 시기를 겪었던 사람들은 일종의 트라우마를 평생 짊어지고 살아야 했다. 이들에게는 앞에서 이야기한 ‘물리적인’ 철조망 외에, 심리적·정신적으로 스스로를 가두고 옴싹달싹하지 못하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철조망이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이들에게 이런 은유적인 철조망은 이들의 ‘멈추어버린 시간’과 관계있을지도 모른다. 정지된 ‘기억’ 속에 스스로를 가두어버린 것. 그러니까 끊임없이 돌아와 생존자들을 괴롭히던 ‘기억’이야말로 또 다른 ‘철조망’이 아닐까 싶다. 이 ‘철조망’은 외부 세계로 향하는 길, 외부 세계가 자신의 내부로 들어오는 것 모두를 단절시킨다. 마음의 문을 닫게 하고, 일상적인 관계 역시 차단하는 것이다. 세탁방에서 만난 노인 퍼스키와의 대화와 호의도 회피하고 김지어 거절하려 했던 것처럼 말이다. 로사는 훗날 ‘자유의 나라’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 그러나 그녀가 어디를 가든 기억 속에 지니고 있는 보이지 않는 ‘기억의 철조망’ 때문에, 그녀가 있는 곳은 어디나 감옥과 다를 바 없이 느껴진다. 뉴욕에서 마이애미로 왔지만, 로사에게는 마이애미도 또 하나의 게토였는지도 모른다.
로사가 뉴욕에서 마이애미로 오게 된 사연이 있다. 자신이 운영하던 중고가게를 커다란 도구로 때려 부수었기 때문이었다. 자기 파괴적인 행위였다. 그녀는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었을까? 아마 그럴지도. 하지만 이 행위는, 무엇보다 로사가 40년 가까이 삼켜야 했던 고통과 상처의 크기가 얼마나 컸는지, 그리고 이 상처가 얼마나 곪았던 것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여기까지는 로사의 고통과 슬픔이 자신에게로, 내부로 향하는 모습들이라 할 수 있다. 로사는 “그 이후의 삶이 지금이에요. 하지만 그 이전의 삶, 우리가 태어난 고향에서의 삶이 우리의 진짜 삶이죠.”(91)이라 말한다. 로사의 가족은 지식인으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바르샤바에 살았다. 그녀의 ‘진짜 삶’은 이 시간 이후 멈추었다. 그녀의 삶이, 기억 속의 고향 폴란드에 여전히 있었기 때문이다. 이 자기 파괴적인 기억은 이후의 삶을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이것이 하나의 경계를 짓고 단절을 초래했던 ‘마음의 철조망’이 아니고 무엇일까.
반면 이러한 고통의 힘이 밖으로 분출되어 타인을 향할 수도 있음을 생각해본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피해자가 의도치 않게 가해자로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말한다. 예를 들면, 로사가 화려한 호텔이 소유한 해변가를 통해 빠져나올 때 호텔 지배인에게 이렇게 얘기하는 대목이 나온다. “여기 뒷마당이 소돔과 고모라더군요! 거기 게이들이 있고 철조망이 있다고요!”(82)라고 말하는 장면. 이 대목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홀로코스트의 피해자였던 로사가 상황에 따라 성소수자 혐오자의 위치에도 서게 될 가능성을 보여준다. 인류의 역사를 통해, 혹은 개인의 일생 동안 누구든 이런 입장의 변화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누구든 인생에서 처할 수 있는 이러한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 관심이 간다. 누구든 피해자가 가해자가 될 수 있는 상황, 혹은 그 반대의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아이러니다. 그러므로 이것이 역사 혹은 삶에 존재하는 일종의 ‘맹점(blind spot)’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은가.
소설을 읽다보니 무엇보다 20세기 전반의 유럽, 특히 폴란드에서 ‘교양 있는’ 유대인으로 산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를 짐작해볼 수 있었다. 수천 권의 장서를 집에 갖추고, 파리 못지않게 문화예술과 사교를 즐기는 삶. 17세의 소녀가 미래의 과학자를 마음껏 꿈꿀 수 있었던 유복한 삶을 의미했다. 전쟁이 닥쳐 가족과 삶을 잃고, 한계 없는 절망감에 빠지기 전까진 말이다. 삶이 뿌리째 뽑혀 부유하기 전의 삶에 대한 기억에 잠식되어 살아간 디아스포라임을 의미했던 것이다.
‘숄’에는 한 사람의 고통과 절망의 기억이 배어 있었다. 때로는 죽은 딸의 분신과 같은 존재로, 죽은 자를 끊임없이 살려내어 소환하기도 한다. ‘숄’은 한 인류 집단의 비극을 상징하면서, 동시에 한 개인의 분열적인 내면을 보여주는 장치이기도 하다. 이 대상에 단단히 붙들린 기억의 존재는 비가역적이다. 당사자가 소멸하기 전까진 ‘숄’이 내거는 주술, 보이지 않는 철조망 상태에서 벗어날 길은 없어 보인다. 저자는 한 인간 집단이 같은 인간을 대상으로 저지른 만행을, 사실적이고 자세하게 묘사하지 않고서도 인류의 비극을 명징하게 보여준다. 아울러 이 야기는 우리가 물리적인 철조망만이 아니라 심리적인 철조망을 쳐 우리를 스스로 그 안에 가둘 수 있는 약한 존재임을 새삼 일깨워 준다. 더욱 생생하게 다가오는 사실은 로사의 편지글에 썼던 것처럼, “최악이 지나 갔어도 더 많은 최악이 있다는 것”(25)일 테다. 인류의 역사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 하나는, 최악에는 최대치가 없다는 점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최악’이라고 생각했던 경험을 기억하고,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마음이 없다면 말이다.
[책 속으로]
[1] "눈은 하늘처럼 파랬고, 솜털처럼 보드라운 머리카락은 로사의 코트에 꿰매어 단 별처럼 노란색이었다."(12) - P12
[2] "로사와 스텔라는 서서히 공기가 되어가고 있었다."(15) - 배고픔 혹은 절망으로?
"숄은 마그다의 아기였고, 반려동물이었고, 여동생이었다."(15) - P15
[3] "그녀는 마그다의 숄을 쥐고 입에 쑤셔 넣었다. 꾸역꾸역, 늑대의 울부짖음을 삼키게 될 때까지, 꾸역꾸역, 마그다의 침이 배어든 계피와 아몬드 맛이 느껴질 때까지. 그리고 로사는 그 울부짖음이 마를 때까지 마그다의 숄을 마셨다."(20) - P20
[4] "내가 스스로를 가둔 이곳은 지옥이야. 한때 나는 최악은 그야말로 최악이니, 그 후로는 최악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이제 알겠구나. 최악이 지나 갔어도 더 많은 최악이 있다는 것을."(25) - P25
[5] "로사 루블린에게는 플로리다 반도 전체가 회한으로 짓눌려 있는 것 같았다. 그들 모두 진짜 삶을 두고 떠나온 이들이었다. 이곳에 온 그들에게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들 모두 허수아비였고, 가슴팍 안이 빈 채로 살인적인 태양 아래 이리저리 불려 다녔다."(27) - P27
[6] "그 손주들에게 플로리다는 슬럼가였고, 로사에게 플로리다는 동물원이었다."(30) - P30
[7] "나의 바르샤바는 아저씨의 바르샤바와 달라요."(33) - P33
[8] "저기요, 여기 해변에 철조망이 있어요. (...) 여기 철조망이 있다고요." "덕분에 하층민들이 못 들어오죠." "미국에서는 울타리 위에 철조망이 있으면 안 돼요."(81) - P81
[9] "여기 뒷마당이 소돔과 고모라더군요! 거기 게이들이 있고 철조망이 있다고요!"(82) - P82
[10] "잃어버린 게 있어서 찾고 있었어요." "딱한 루블린. 잃어버린 게 뭐요?" "제 삶요."(87) - P87
[11] "그녀가 말했다. "그 이후의 삶이 지금이에요. 하지만 그 이전의 삶, 우리가 태어난 고향에서의 삶이 우리의 진짜 삶이죠.""(91)
- P91
[12] ""그분은 미친 여자들한테 익숙하니 올려 보내세요." 로사는 쿠가 여자에게 말했다. 그리고 수화기에서 숄을 벗겨냈다. 마그다는 거기 없었다. 수줍은 마그다, 그녀는 퍼스키를 피해 달아났다. 마그나는 떠났다."(110) - P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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