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의 오리진 - 아리스토텔레스부터 DNA까지 다윈의 ‘위험한 생각’을 추적하다
존 그리빈.메리 그리빈 지음, 권루시안 옮김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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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의 오리진

(On the Origin of Evolution)

: 아리스토텔레스부터 DNA까지 다윈의 위험한 생각을 추적하다

존 그리빈·메리 그리빈 지음 | 권루시안 옮김 | [진선출판사]

 


진화론에 이르는 서구 지성사의 한 단면, 진화중인 진화론의 연대기


 

지금부터 162년 전 3, 50세 생일을 막 지난 중년의 남자는 자신이 쓰던 원고의 마지막 페이지를 완성했다. 기대감과 일말의 두려움을 안고 마지막 문장의 마침표를 찍었던 것이다. 찰스 로버트 다윈, 그는 자신이 막 완성한 종의 기원이 당대에 논란의 중심이 될 것임을 짐작했겠지만, 이후 전 인류의 세계관을 바꾸어버릴 줄 짐작했을까. 오늘날 진화의 메커니즘에 관한 그의 이론을 이해하지 못하는 초등학생이라도 누구나 다윈이라는 이름은 알고 있다. 심지어 어린이를 위한 위인전에서는 천재과학자라는 타이틀도 심심찮게 사용한다. 하지만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라는 말처럼 다윈의 자연선택을 통한 진화 기작이 세상에 드러나기까지 그 역시 거인의 어께 위에 올라타고 있었다는 사실도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다양한 과학 분야의 소재에 대해 책을 쓴 메리 그리빈·존 그리빈 부부가 진화의 오리진에서 주목한 지점이 바로 여기다. 마치 물을 가열할 때, 물속에서 분자들의 운동이 빨라지고, ‘거대한대류가 형성되며, 바닥에서 기포가 생성되는 과정을 거친 이후에야 비로소 끊어 넘치는 것처럼, 진화론도 수많은 이들의 고민과 이의제기, 논쟁의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이론이다. 나아가 저자인 그리빈 부부는 진화론의 계보에 속한 많은 이들을 흥미롭게 조명하는 글쓰기를 보여준다. 이들의 글쓰기가 인상적인 이유는 고대의 자연철학자들부터 현대의 후성유전학 분야까지 각 분야의 선구자들이 내놓은 핵심적인 주장을 짚어 내고, 이들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점을 간결하게 정리해내는 능력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줄곧 느끼지만, 이런 작업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저자들은 이 진화론이라는, 섭씨 100도의 상태에 도달하기 직전의 물속을 면밀히 조명하고, 나아가 진화론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이론임을 보여준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진화의 세 가지 요건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같은 종 내의 경합과 생존 투쟁이 있어야 한다는 것, 둘째, 환경의 변화에 대한 개체들 간의 변이가 일어날 수 있어야 할 것, 마지막으로 이 변이가 세대를 거쳐 상속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책에는 이 요건과 관련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다. ‘두 명의 사냥꾼을 쫓는 회색곰 이야기. 곰은 두 사람보다 빠르지만, 이 위기에서 생존가능성이 큰 사냥꾼은 두 사람 중에 보다 빠른 사람이다. 이 우스개에는 진화의 첫 번째 요건의 핵심이 담겨 있다. 바로 다윈이 말하는 생존 투쟁은 종 사이의 경쟁이 아니라, 같은 종 내에서의 경쟁이라는 점이다. 나머지 두 요건은 책의 후반에서 보다 깊은 의미가 다루어지고 있다. 현대생물학의 발전으로 DNA의 구조와 역할이 규명된 이후, 후성유전학과 같은 분야의 등장으로 진화의 의미가 보다 확장되고 깊이 이해되었다.


내가 주목한 부분은 이러한 진화의 개념과 요건들이 다윈 혼자 마련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 개념은 이미 다윈의 할아버지인 이래즈머스 다윈이 고민했던 주제이기도 했다. 좀 더 가깝게는 다윈이 비글호를 타고 항해를 떠나기 전인 1831년에 패트릭 매튜(Patrick Matthew)라는 사람이 쓴 책 부록에 이미 실려 있었다. 매튜는 자연법칙에 의한 선택을 언급하면서 자연선택이라는 용어를 거의 만들어내었다(149), 라고 그리빈 부부는 지적한다. 게다가 매튜는 현대생물학 지식 없이도, 앞서 언급한 진화의 핵심 요건 세 가지를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 책은 끓는 물(다윈의 진화론’)에 이르기 직전 물속의 상태를 우리에게 생생하게 들려준다. 그렇다고 다윈의 업적이 빛을 잃는 것도 아니다. 다윈은 커다란 업적은 끓기 전의 자신의 시공간이라는 물속에서 진화론이 인류의 것으로 받아들여지는데 필요한 임계치를 성공적으로 넘었다는데 있다. 그리고 이 책의 저자들은 우리가 아는 진화론으로 나오기까지 이미 많은 이들의 이야기도 있었다는 점을 들려주고 싶었을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배울 수 있었던 부분은, 다윈의 업적이 오랜 시간 인류의 집단지성을 통해 오랜 시간 거듭난 결과라는 점이다. 종의 기원에는 다윈이 20년에 걸쳐 다양한 실험을 수행하고, 책을 읽고 이해한 활동뿐만 아니라, 수많은 연구자들과의 서신 교환 및 토론의 흔적이 담겨 있다. 특히 진화의 오리진에는 다윈이 종의 기원을 출간하는데 결정적인 계기를 주었던 앨프리드 월리스와의 교류가 꽤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다윈의 세계와 월리스의 세계, 이렇게 다양한 각자의 시공간이 진화론의 정립이라는 목표을 향해 실감나게 병치되어 묘사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단순히 진화론이 천재다윈의 작품이라고 하기보다, 서구지성사가 이루어낸 인류 공동의 지적 결과물이라고 이해해야 한다.


물론 책을 읽으며 진화론에 이르는 과정이 지난한 길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 이유는 이 과정이 무엇보다 기독교 전통이 강했던 유럽, 특히 영국에서 하느님의 섭리와 대립해온 인간 지성의 도전을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상황은 책에서 소개되고 있는 샤를 보네(Charles Bonnet)진화(evolution)’라는 용어를 자신의 책에 처음 사용한 사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 용어는 펼친다는 의미의 라틴어 에볼루치오넴(enolutionem)'서 나왔다고 한다. 다만 보네가 이 용어에 담고 있던 생각은 하느님이 종을 창조했으며, 이 종은 불변 한다’(51)는 것이었다. 바로 이미 적혀 있는 (하느님의) 두루마리를 펼친다’(54)는 의미였기에, 창조자를 인정하지 않는 현대의 진화관념과는 정면으로 배치된다. 그러므로 진화라는 용어의 개념조차도 진화해온 셈이다. 그 밖에도 진화론자들이 생물학자이자 사제였던 많은 이들과의 토론과 논쟁을 겪는 사례는 이루 말할 수 없고, 현재까지도 진행 중이다.


또 하나의 사례는 사제이자 역사학 및 정치경제학교수를 지냈던 토머스 맬서스의 인구론이다. 맬서스는 자신의 인구론(1798)에서 인간을 대상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 있는 인구 증가 기작을 언급했다. 나아가 인구 증가의 억제 요인으로 포식자, 질병, 가용 식량’(151)을 제시한다. 앞에서 언급한 앨프리드 월리스도 자신의 책 나의 인생 My Life에서 맬서스의 인구론 에세이가 중요하게 작용했다’(198)고 기록하고 있다. 다윈의 경우, 그가 비글호 항해를 다녀오고 1년이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이미 진화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맬서스의 인구론은 그 다음 해(아마도 1838)에 처음 읽었다고 한다. 이 때는 비글호 항해기를 집필하던 시기이므로, 이 과정에서 인구론을 접하고 진화론에 대한 보다 결정적인 아이디어를 얻게 되었을 것이다. 이처럼 맬서스의 인구론은 진화론이 형성되는데 중요한 계기를 마련한 것은 사실이다.


다만 맬서스 인구론의 기본 논리에는 문제가 있다는 점을 지적해둘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이 인구론의 기본 가정을 간단히 정리하면 환경 속에서 생존에 유리한 개체는 우월하기에 살아남은 것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이 논리는 자칫하면 살아남은 자들의 우월성을 강력히 지지하는 증거로 왜곡되어 변용될 수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우생학의 역사가 이러한 논리의 극단적인 형태라고 볼 수 있다. 이런 논리에 정면으로 대항하고 있는 책으로 나는 제레드 다이아몬드 교수의 대표적인 저서 , , 를 떠올렸다. 다이아몬드 교수는 자신의 책에서 현재 살아남은 세력이 우위를 누리게 된 이유로 맬서스의 논리와 정반대의 입장을 취한다. 곧 현재 우위의 차이는 바로 우연한여러 환경적, 문화적 차이에 기인한 바가 크다는 점이다. 어느 개체나 집단이 살아남은 것이 그 자체로 우월했기 때문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그의 가정이 맬서스의 논리와 미묘하게 차이난다고 생각될 수 있지만, 이 차이가 도달하는 지점의 결과는 극명하게 나뉠 수 있다. 다윈의 진화론은 이처럼 개인의 굳은 믿음 혹은 신학적 신념의 비판과 공격, 얽히고설킨 입장 및 논리의 차이를 겪어내며 등장한 이론인 셈이다.


이렇게 진화론의 역사만 보더라도, 진화론은 분명히 과거의 전통 위에 서있음을 알 수 있다. 또 한편으로 다른 인간적인 요인으로 자연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정체되기만 한 것이 아니라, 후퇴한 사례도 볼 수 있다. 이를테면 프랑스의 진화론 발달사가 그러하다. 이 책에서는 조르주 퀴비에(Georges Cuvier)의 사례를 떠올려볼 수 있다. 저자의 소개에 따르면, 퀴비에는 아프리카코끼리와 인도코끼리의 골격을 비교하고, 이를 매머드 화석과도 비교 연구를 한 인물이다. 또 코끼리를 닮은 오하이오 동물에 마스토돈이라는 이름을 붙인 인물이기도 하며, 멸종이 실제 일어난 일임을 최종적으로 입증한 인물이기도 하다(135). 문제는 1810년 무렵 이후 사망할 때까지 당시 유럽에서 영향력이 가장 컸던 생물학자였다는 점이다. 그는 종이 멸종한다는 사실을 입증했지만, ‘진화한다는 사실을 반대했다. 그 결과 적어도 진화론을 진지하게 연구하던 라마르크와 조프루아의 연구가 한 순간에 빛을 잃게 되었다. 프랑스 생물학계는 그대로 더 나아가지 못했다. 이 후의 역사는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다. 퀴비에의 영향력으로 진화론 연구의 중심은 바다 건너 영국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이처럼 커다란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 지성사에 악영향을 미친 사례로, 스탈린 시대의 생물학을 떠올릴 수 있다. 흔히 리센코 사건이라고도 불리는 이 사례는 스탈린의 요청을 받은 소련 생물학자 리센코가 미국과 유럽에서 논의되는 유전 및 진화이론을 공공연하게 부정했던 사건이다. 일명 반멜델주의 생물학으로 표현되는 리센코의 생물학은 스탈린 치하의 공식 생물학으로 자리 잡으면서, 소련 과학계에 치명적인 피해를 준 사례에 해당한다. 이 이론에 반대하던 과학자들은 직업을 잃는 것은 물론, 목숨을 잃기도 했다. 고대 중국 진나라의 지록위마(指鹿爲馬) 고사가 현대사에 실현된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참고로 진화론을 세상에 등장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앨프리드 월리스와 다윈이 인간의 위치에 대한 관점에서 크게 달랐다는 점도 주목해본다. 이렇듯 합리성과 객관성으로 대표되는 과학 연구도 결국은 사람의 일이기에 인간적인 요인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진화론의 역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의 후반에는 현대생물학, 유전학의 발달 이후의 진화론에 대해 다룬다. 이제 과학자들의 관심은 다양한 생물 종과 개체들에서 세포 안으로 향하게 되었다. 현미경 및 결정학의 발달 등으로 생물학은 유전 인자에 대한 이해를 더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책을 읽으면서 용어만 알고 있던 후성유전학의 간단한 개념을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 내겐 큰 수확이었다. ‘획득형질이 유전 된다는 라마르크의 진화론은 과학자들의 외면을 받고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결국 후성유전학의 교훈은 특정 환경 속에서 개체가 획득한 특징이 최소한 몇 대에 걸쳐 대물림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수평유전자 전달사례처럼 유전되는 특성이 수직적이지만은 않다는 것, 그러니까 유전자 수준에서 획득형질이 유전될 수 있다는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다.


저자인 그리빈 부부는 책을 마무리하면서 진화의 과학적 이해는 지금도 여전히 진화하고 있다’(311)라고 했다. 다윈 이후의 진화론은 현대생물학의 발달이 더해져 생명에 대한 이해를 지금도 더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 책은 우리가 알고 있는 다윈의 진화론이 형성되기까지 기독교 사상을 비롯한 사회의 통념과 금기시된 지식에 대한 도전의 역사와 다윈 이후를 다루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이 무대에 최후의 승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실제로 큰 기여를 했지만 사회적 관습에 종속되어 있던 인간의 모습도 발견한다. 월리스와 다윈의 경우는 그나마 훈훈하게 마무리된 보기 드문 사례다. 실제로는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던 계급의 차이나 성차별적인 관행에 의해 뛰어난 과학자들의 공헌이 가려지고 무시된 경우가 더 많았다. 특히 한 번 더 노벨상을 수상했을 법한 매클린톡의 사례는 후대의 사람들이 주목하는 한 가지 사례에 불과할 것이다. 이 책은 진화론이 형성된 역사에 초점을 맞추었지만, 인간의 편견과 신념이 어떻게 여기에 개입했는지 그리고 심지어는 어떤 폐해를 남길 수 있는지도 보여주었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는 현대생물학의 발달로 유전체는 항상 역동적인 변화 상태’(299)에 있는 존재라는 것과 생물체가 돌연변이 없이도 변화할 수 있다는 것’(311)을 알게 되었다. 나아가 생물체의 진화와 마찬가지로 진화론 역시 우리의 이해가 넓어짐에 따라, 지금도 여전히 진화중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지구상의 생물이 복잡한 정도에 따라 각기 순서대로 자리를 잡고 있는 ‘존재의 사슬‘ 내지 ‘생명의 사다리‘ 관념을 그리스 도교 사상가에게 전해준 것도 아리스토텔레스였다." - P17

"루크레티우스는 원자론자로 (...) 루크레티우스조차 인간은 특별하다고 생각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살아남은 동물은 자기 종족을 복제할 수 있어야 했다는 점도 강조한다. 여기에는 오늘날과 같은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 이론의 요소가 확실히 존재한다." - P21

"린네는 종교적이어서, 새로운 변종의 식물이 때때로 생겨난다는 것을 인식했음에도 새로운 종이 진화하여 생겨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희한한 일은 종은 불변하며 종을 창조한 것은 하느님이라고 믿은 다른 사람이 ‘진화‘라는 용어를 생물학에 도입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린네와 같은 시대 사람인 샤를 보네다." - P51

"모든 온혈동물은 위대한 제1원인으로부터 동물성을 부여받은 단 하나의 생명 가닥으로부터 생겨났으며, (...) 따라서 타고난 원래의 활동 방식에 의해 지속적으로 개량해 나가는 성질과 그렇게 개량된 점을 세대에서 세대로 영원히 물려주는 성질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너무 지나친 상상일까."
- 찰스 다윈의 할아버지 이래즈머스 다윈이 자신의 책 <주노미아>에서 밝힌 생각 - P120

"매튜는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의 세 가지 핵심 요건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종의 개체가 늘어나 경합과 ‘생존투쟁‘이 일어날 것, 한 종에 속한 개체들 간에 ‘변이‘가 있을 것, 변이가 ‘상속‘될 수 있을 것이 그 세 가지다." - P150

"체임버스의 <창조 자연사의 흔적>(1844)은 선풍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진화를 상류 인사들의 대화 주제로 만들었다. " - P159

"월리스가 말레이 제도로 떠나기로 결정한 데는 두 가지 요인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밴 와이는 빈 출신의 어느 비범한 여성이 말레이 제도에서 보내온 귀중한 표본을 스티븐스가 취급한 적이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 여성은 이다 라우라 파이퍼(Ida Laura Pfeiffer)로, 1797년 태어나 1842년 남편이 죽은 뒤 여행을 시작했다." - P178

"1854년 9월부터는 종의 변성과 관련하여 내가 적어둔 어마어마한 양의 노트를 정리하고 관찰하고 실험하는 데 내 모든 시간을 바쳤다."
-다윈이 따개비 연구를 끝내고 다시 진화에 관심을 돌려 <종의 기원>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정황 - P182

"(<종의 기원>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은 현대의 종이 어떤 단일 개체로부터 이어 내려온 공통의 후손이라는 생각이었다." - P218

"세부 논쟁은 여전하지만 (진화론에 관한) 현대종합이론은 1930년대 초에 확고히 자리를 잡았다." - P254

"1980년대에 이르러 우리 인간이나 참나무 같은 복잡한 생물체의 유전체는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라 역동적인 변화 상태에 있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 P299

"‘생명의 책‘은 그대로 유지된다고 해도, 그 책에서 어느 구절을 읽고 행동할지는 세포가 처해 있는 상황, 즉 환경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 P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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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당신들만 옳고 우리는 틀린가? - 인간과 사회를 사유하기 위한 새로운 철학입문
다케다 세이지 지음, 박성관 옮김 / 이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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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이론을 소개하는 입문서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철학자들의 주장이 현실의 맥락과 어떻게 닿아 있는지 보여준다. 사회를 바라보고 ‘생각하기‘의 방법을 제시함으로써 철학하는 ‘나‘의 자리를 돌아보는 철학입문서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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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Henry (Paperback)
Kerr, Judith / HarperCollins Children's Books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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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Henry

Judith Kerr 지음 | [HarperCollins Children's Books]

 


[부부가 함께 읽는 그림책

우리의 현재가 언제나 기억될 소풍이 될 수 있기를

 

이번에 읽게 된 그림책은 독일계 영국 작가 겸 일러스트레이터 주디스 커(Judith Kerr, 1923.06.14-2019.05.22)의 작품 My Henry이다. 국내에는 주디스 커의 작품이 꽤 잘 알려져 있어서 작가에 대한 정보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주디스 커는 세계 제1차 대전이 끝난 후 몇 년이 지난 뒤,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유대인 가족에서 태어났다. 당시 독일은 전후 극심한 경제난을 겪고 있었고, 나치는 서서히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던 시기였다. 나치 세력이 발흥을 하고 독일 내에 있는 유대인들에게 위협이 되어가던 1935(당시 12)에 주디스 커 가족은 영국으로 이주를 했다. 작가는 지난 2019년에 95세를 일기로 사망할 때까지 이 곳 영국에서 살면서 아이 및 어른을 위한 동화 작가,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을 했다. 무려 83년을 고국이 아닌 타지인 영국에서 살았던 인물이다. 사실상 영국인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책 My Henry는 주디스 커가 88세가 되던 해인 2011년에 출판되었다.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 나이젤 닐(Nigel Kneale, 2006년 사망)을 떠올리면서 작업한 책이다. 화자인 노인는 자전적인 주인공이다. 소파에 앉아 오후에 마시는 차 시간을 기다린다. 마치 실버타운 혹은 요양원에서 여생을 지내고 있는 듯하다. 화자는 매일 오후 4시에서 7시 사이에 차도 마시고 자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모양이다.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이 시간은 화자가 먼저 떠난 남편을 만나는 시간이었다. 생전에 소심하여 모험을 좋아 하지 않았던 남편(왠지 낯설지 않다...)과 호기심과 모험심이 많던 화자는 생전에 함께 해보지 못했던 모험을 하는 것이다. 사자 사냥을 함께 떠나거나, 커다란 나무 높은 곳에 올라 저절로 채워지는 차 주전자로 차를 마시고, 소풍을 나간다. 높은 곳을 무서워하지 않는 화자는 남편과 에베레스트 산에 오르기도 한다.

 

천진난만해 보이는 노부부의 모험을 담담하게 그려낸 작업을 한 장 한 장 들여다보면서 작가의 삶을 거슬러 상상해보게 된다. 독일에서 태어난 유대인으로 참혹한 2차 세계 대전을 겪었다. 나는 이 삶의 실존적인 의미를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상상만 해볼 뿐이다. 아무 것도 없이 영국에 도착하여 생존의 위기 앞에 서야했을 주디스 커 가족의 두려움을 상상해본다. 여기에 새로운 세상에 대한 소녀의 천진난만한 호기심과 모험심이 함께 더해져 작가를 만들었을 것이라 생각해본다. 52년을 함께 했던 작가 부부의 삶은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 얇은 그림책 한 권이지만, 사람과 생에 대한 단단한 신뢰와 존중이 느껴지기도 한다. 작가의 삶을 오롯이 짐작해볼 수 있어 숙연해지기도 한다.

 

작가는 이 책에서 노부부가 함께 하는 상상 속의 소풍 활동을 모두 색연필로 작업하여 표현했다. 우선 부드럽고 따뜻한 인상을 준다. 마치 화자의 꿈속에 들어간 기분이다. 88세의 작가가 작업했다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귀엽고 미소를 짓게 해주는 그림들이다. 아마도 화자는 햇빛이 들어오는 창가의 소파에 앉아 낮잠을 잘 때, 남편 Henry와 소풍을 떠날 것이다. 생전에 함께 해보지 못했던 활동을 시도해보면서 말이다. 화자는 이럴 때 영락없이 호기심 많은 소녀의 모습이다. 그녀는 생전에 Henry와 함께 했던 시간을 추억하며, 그 모든 시간들이 얼마나 좋았는지 돌이켜 본다. 그럴 때면, 아이들이 태어나고, 성장하는 것을 지켜보며, 함께 나이를 먹어 가는 서로를 바라보았을 모든 순간들이 스쳐갔을 것이다. 부부가 된다는 것, 그리고 부모가 된다는 것은 장석주 시인의 시 대추 한 알처럼 저절로 익는 것은 아닐 터이다. 천둥과 벼락, 땡볕과 서리 맞는 시간을 함께 해야 단단히 잘 여문 대추 한 알을 맞이할 수 있다. 이 시간을 함께 거쳐 왔을 그림 속 부부의 모습이 정말로 아름답고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이 책은 외견상 담담하고 천진난만해 보이는 그림책이지만, 애틋하고 쓰라린 감정도 불러일으키는 책이기도 하다. 아이들은 이 책을 어떻게 읽을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아이들은 부모가 영원히 자신과 함께 잊지 않으리라는 것, 지금의 시간이 소중하다는 것을 나름의 방법으로 이해하고 소화할 수 있지 않을까. 난 화자가 꿈에서 먼저 간 남편과 돌고래가 끄는 수상 스키를 타고, 인어와 놀고, 유니콘을 타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음에도, 남편과 헤어지면서 내일은 달에 소풍갈까요?’하는 대목을 읽을 때, 내 안의 슬픔이 고통으로 바뀌는 순간을 경험한다. 아직 내 안에 있는 대추가 둥글어지고 붉어지려면좀 더 서리를 맞아야 하는 모양이다. 이번에 읽은 My Henry는 텍스트가 길지 않아 원서를 구해다 읽었다. 작가 주디스 커가 담담하게 써내려간 문장을 여러 번 읽어보고, 소리 내서도 읽어보았다어려운 시절을 겪었던 작가의 손길로부터 삶에 대한 애정과 따뜻한 시선이 담겨있는 이 책은 읽을 때마다 깊은 감동을 전해주는 보물 같은 그림책이다. 천상병 시인의 시처럼, 지금 내가 함께 하는 사람들과의 이 시간이 훗날 소풍처럼 추억될 수 있길 바라게 하는 책이다.




이 그림책에 대한 아내의 리뷰 [번역본 & 원서]

[알라딘서재]누가 상상이나 할까요 (aladin.co.kr)


[알라딘서재]MY HENRY (aladin.co.kr)




 

"They think I‘m sitting in this chair
Just waiting for my tea."

"But sometimes we prefer to give
The world a miss, because
We picture how we used to live
And think how nice it w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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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1-08-09 13: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머 아내분과 함께 알라딘을 하시는군요!!! 넘 부러운 걸요!!^^

초란공 2021-08-09 18:09   좋아요 0 | URL
각자 좋아하는 장르가 달라서 그림책을 같이 읽어보자했어요. ^^;; 한동안 정신이 없어서 그림책을 올리지 못했네요...
 
엔드 오브 타임 - 브라이언 그린이 말하는 세상의 시작과 진화, 그리고 끝
브라이언 그린 지음, 박병철 옮김 / 와이즈베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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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드 오브 타임 Until the End of Time

: 브라이언 그린이 말하는 세상의 시작과 진화 그리고 끝

브라이언 그린(Brian Greene) 지음 | 박병철 옮김 | [와이즈베리]

 


그러므로 나는 특별하며 동시에 우주다.’

 

그리스·로마 신화에는 수많은 신과 영웅들이 등장한다. 불사의 신과 필멸자 영웅 사이의 대립과 갈등이 이야기의 주요 소재다. 하지만 이 두 부류는 모두 지극히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사랑뿐만 아니라 시기와 질투, 분노의 감정을 갖고 보복을 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화는 지극히 인간적인 세계관을 반영한다. 보통의 인간은 신화와 같은 이야기에 주목하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드에서 트로이 전쟁 중에 죽어간 용사들의 이름을 자신의 시에서 일일이 호명했던 현대 시인도 있듯이, 우리 개별적인 존재는 이름을 가짐으로써 비로소 특별해질 수 있는 지도 모른다.


이론물리학자 브라이언 그린은 초끈이론이론의 관점에서 평생 우주를 설명하는 통일이론을 연구해온 인물이다. 이번에 읽은 그의 저서 엔드 오프 타임 Until the End of Time은 우리의 시선을 우주의 시작에서 끝나는 지점까지 안내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간이라는 존재, 그리고 의 의미를 탐색하고 있는 점이 인상적이다. 지금까지 펴냈던 전작들에서도 조금씩은 언급을 하긴 했지만, 무엇보다도 저자가 몸담고 있는 물리학의 관점에서 대중에게 다가가고자 노력했었다. 이번에 나온 저서는 자신의 신념에서 출발하여 이라는 과제를 좀 더 폭넓게 조망하고자 했다는 인상을 준다. 일리아드에서 영웅과 함께 죽어간 수많은 전사자들처럼, 우리 개별적인 존재들의 삶이 왜 의미를 갖는지 생각해볼 수 있었다.


엔드 오프 타임에서는 빅뱅으로 비롯된 우주의 시작과 엔트로피를 비롯한 물리법칙에 입각한 우주의 진화를 여러 장에 걸쳐 소개한다. 이어 생명체가 등장하고 진화과정을 거친 수많은 생명체 중에서 인간에게 의식이란 능력이 갖추어지는 정황을 제시한다. 이 의식이란 무엇보다 라는 존재에 대한 자각, 우리는 모두 유한한 존재라는 자각을 의미할 것이다. 저자가 취한 환원론적인 시각에 따르면, 우리가 특별한 이유는 외부의 환경과 반응하여 내부의 입자들이 개별적으로 특별하게배열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눈여겨 본 지점은 인간사의 모든 현상에 자신의 관점을 고집하지는 않는다는 점이었다. 특히 마음은 물리법칙을 따르는 생명체에 기반을 둔다는 입장에 있지만, 물질과 마음의 관계에 있어서 환원주의에 입각한 물리 법칙에 한계가 있음을 인정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내가 이 책을 통해 저자의 이야기에 계속 귀를 기울이게 된 것은 자신의 생각과 다른 주장도 진지하게 고려하고자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브라이언 그린이 젊은 시절에 과학 특히 수학과 물리학을 업으로 삼은 이유가 영원한 가치를 갖는 무언가를 추구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저자는 책에서 자신의 가정사를 간간이 소개하는데, 그 중 흥미로웠던 점은 종교에 몸담고 있는 친형을 언급한 부분이다. 저자가 종교와 과학에 대해 진지하면서도 유연하고 다양성을 고려하는 입장은 아마도 이런 배경에서 형성되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종교와 물리학은 일상적인 경험을 넘어선 곳에서 불변의 진리를 찾는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목적을 이루는 방법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291)라며 자신의 입장을 정리한다. 여기에서 나아가 저자는 철학자 대니얼 데닛의 견해와 유사한 접근법을 취하며 자유의지에 대한 견해를 밝힌다. ‘자유의지는 고전물리학(결정론적)이든 양자물리학(확률적)이든 이와는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저자는 이렇게 자유의지와 물리학의 양립가능성을 취하는 대신, 우리 각각의 내부에 형성된 복잡한 배열이 다양한 행동을 낳기 때문에 우리는 특별하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우리는 특정하고 다양한 (행동의) 자유를 지니기 때문이라고 했다.


책의 도입부에서 잠시 언급되었지만, 여러 철학자들은 종교와 과학이 죽음을 극복하려는 몸부림에서 탄생했다는 관점에 동의한다. 앞에서 언급한 신화 역시 우리가 유한한 존재임을 자각했기에 나올 수 있는 이야기다. 저자는 지구에 생명이 출현하고 인간으로 진화해온 정황을 이야기하는데, 인간의 모든 활동에서 존재의 유한성을 찾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신화와 종교, 과학뿐만 아니라 철학과 예술에도 이러한 인식이 반영되어 있다고 전한다. 인간은 죽음을 아는 존재이기에(그렇다고 유일한존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 삶에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나는, 그리고 우리는 어떤 존재인가?’를 묻게 되어 있다는 말이다. 저자에 따르면 가치와 목적을 추구하는 여정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영감과 해답은 우리 스스로 찾아야한다”(37)고 선을 긋는다. 이것은 인간이 선악과를 먹고 분별이 생겨나고, 인식능력을 얻으면서 모든 인간에게 주어진 사명일 듯하다. 인간이 본래적으로 고독한 존재라고 여겨지는 이유인지도 모른다.


9장과 10장에서는 앞에서 설명한 물리법칙, 특히 엔트로피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우주의 진화를 최신의 연구 성과를 더하여 설명한다. 그것도 아주 머나먼 미래에 우주가 겪게 될 운명을 말이다. 물리학자의 관점에서 인간의 사고(생각하는) 행위가 엔트로피와 열이 서로 어떻게 관련을 맺고 있는지, 그리고 이러한 행위도 먼 미래의 우주에서 어떤 운명을 맞게 될지를 소개하는 부분은 상당히 흥미로운 사고실험이었다. 저자는 지극히 먼 미래의 일이긴 하지만 열역학적 관점에서 사고활동을 포함한 생명활동이 정지할 수밖에 없는 조건을 제시한다. “우주에서 오랫동안 우주를 생각해온 생명과 사고는 언젠가 반드시 종말을 맞이할 것”(436)이라는 저자의 결론은 이해가 가면서도 다소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막연하게 수긍하는 것과 분명하게 자각하는 행위는 분명 다르기 때문이다.


인간의 모든 행위(종교, 과학, 철학, 예술 등)는 오랜 시간이 흐른 뒤 결국 우주와 함께 사라질 운명을 지닌다. 그렇다면 우린 거대한 우주라는 무대에 잠시 등장하여 사라질 양자적 잡음에 불과한가라는 다소 회의적인 물음이 떠오른다. 저자는 앞서 우리가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가라는 물음에 대답을 했지만, 그가 강조하는 것은 우리의 특별함이 지금 여기의 삶에 있다는 점이다. 앞서 언급한 개별적인 존재가 취할 수 있는 다양한 행위들 말이다. 환원주의적 시각에서 각 존재는 입자들의 독특한 배열로 이루어진 존재로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 점에 더하여 우리는 각자만의 자유로운 몸짓,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 특별하다는 관점이다. 이 부분은 물리법칙이 예측하거나 규정할 수 없는 영역이다. 그러므로 영화 <애니 홀 Annie Hall>에서 주인공이 앞으로 수십억 년만 지나면 우주가 팽창하다가 찢어져서 모든 게 사라진다는데(빅립, Big rip을 의미), 숙제는 해서 뭐하게요?”(453)라는 태도를 취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말이다. 그 대신 자녀가 오늘 숙제를 해야 할 이유를 고민하는 학부모라면, 자녀가 특별한 존재임을 깨닫게 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는 의미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우리는 우주가 시작한 시점이나 종말을 인식할 수조차 없는 존재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이 있는 지금 여기가 특별하고 의미를 지닌다는 저자의 견해는 중요한 문제다. 우리는 칼 세이건의 말마따나 우주의 먼지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브라이언 그린의 설명대로 우주의 먼지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우주다라고 할 수 있겠다. 불확정성에 근거한 양자적 요동으로 팽창하는 우주 속에서 입자가 형성되었고, 입자들이 구름이 되어 뭉쳐 중력과 핵력의 영향으로 에너지가 분출하면서 별과 행성 뿐 아니라 생명체의 출현을 예비했다. 엔트로피의 열역학법칙을 고려할 때 생명은 다소 이례적으로 물질에 갇힌 엔트로피를 해방시키는 하나의 수단’(116)으로서 역할을 한다. 통계역학 및 열역학적 관점에서 유전 물질의 안정성과 구조적 규칙성을 탐구한 에르빈 슈뢰딩거와 비교할 때 더 큰 스케일에서 생명을 바라본 셈이라고 이해해볼 수 있겠다.


이 책은 칼 세이건의 역작 잊혀진 조상의 그림자에서 제시했던 것과 유사한 출발점에서 시작한다. 우주가 빅뱅을 통해 입자들이 등장하고, 은하와 별, 그에 딸린 행성들이 어떻게 생겨나며, 생명체의 존재가 어떻게 진화를 거쳐 인간이 등장하게 되었는지 설명하는 지점은 엔드 오프 타임과 유사하다. 그러나 칼 세이건은 이 지점에서 인간의 존재란 어떤 존재인지 그 본성을 추적하면서 인간의 가까운 미래를 염려한다. 미국이 구소련과의 냉전이 아직 진행중이던 시기에 쓴 저작이기에, 특히 핵문제를 비롯한 문제 상황을 염두에 두며 읽어야 했다. 인간이 만든 모든 결과물은 시대를 반영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칼 세이건은 인류의 생존을 염려하며 인간의 연대, 연결됨의 중요성에도 주목했다.


반면 엔드 오프 타임에서 저자는 인간의 출현까지 설명한 뒤, 인간의 본성에 대한 탐구 보다는 의식의 출현, 그리고 우주 전체의 종말에 이르는 보다 포괄적인 범위를 전망한다. 나아가 개별적인 존재로서의 의미 찾기에 보다 큰 의미를 두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저자의 말마따나 우리가 우주에 관한 진실을 알았다면, ‘지금 여기의 삶에서 우리가 어떤 의미를 찾을지는 각자에게 달린 문제다. <애니 홀>의 앨비 싱어가 취한 회의적인 입장을 견지할지, 아니면 작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가 (인간의 삶은) 두 어둠 사이에 빛이 새어 들어오는 작은 틈”(33)이라고 한 것처럼, 우주 속의 작은 존재에 희망을 걸지는 각자의 선택지에 달려 있다는 말이다. 어쩌면 이 선택의 가능성을 우리가 지니고 있다는 것이 바로 우리가 특별한 이유가 아닐까. 이 책을 읽고 내가 달라진 것이 하나 있다면, 언젠가 만났던 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 바로 자살이다라는 카뮈의 문장이 새삼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는 점이다. 브라이언 그린은 우리는 존재 자체로 경이로운 일’(456)이라고 했지만, 카뮈는 이 존재의 의미 찾기과정을 이미 한 층 더 진지하게 밀어붙였던 것 같다.


엔드 오프 타임에서 제시된 과학 이야기는 모두 흥미롭다. 다만 무엇보다 내게 강한 인상을 주었던 부분은 우리의 오랜 과거나 머나먼 미래보다는 가까운 미래를 포함한 우리의 현재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였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나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으며, 나는 네가 아니고 왜 나인가?’라는 문제를 독자와 나누고 싶어 하지 않았을까 싶다. ‘내가(우리가) 왜 특별한가?’라는 문제를 두고 앞으로 더 생각해보라는 과제를 받은 느낌이다. 이 책의 주제를 관통하는 저자의 메시지를 잘 표현한 예술 작품을 꼽으라면, 난 폴 고갱(Paul Gaughuin)의 그림 <우리는 어디서 왔고, 무엇이며, 어디로 가는가?>를 떠올리겠다. 이 작품은 고갱이 자살을 시도 했다가 실패한 후 남긴 대작이기에, 카뮈의 문제의식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했을 것 같기 때문이다. 브라이언 그린의 관점에 따라 생각해보면, 고갱은 누구보다도 자신에게 주어진 현재의 삶을 진지하게 탐구한 사람이었다





Paul Gaughuin (1897년 작)

<Where do we come from? What are we? Where are we going?> 






"인간의 삶이 유한한 것처럼 모든 생명 현상과 정신도 유한하다." - P22

"별과 행성, 그리고 생명체가 존재하지 않는 미래의 우주를 생각할 때, 지금 이 시대는 참으로 특별하다." - P35

"분자의 수가 작거나, 온도가 낮거나, 점유 공간의 부피가 작으면 엔트로피가 작고, 부자의 수가 많거나, 온도가 높거나, 점유 공간의 부피가 크면 엔트로피가 크다."
- 엔트로피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의 결론
- P57

"지금도 우주 곳곳에서는 증기 기관 내부의 엔트로피가 주변 환경으로 방출되는 것과 유사한 사건이 수시로 일어나고 있다. 계의 엔트로피가 감소하는 과정을 ‘엔트로피 2단계 과정‘이라 부르기로 하자." - P72

"모든 동물의 세포는 서로 비슷하다. 현존하는 모든 다세포 생물은 먼 옛날에 존재했던 단세포 생물의 직계 후손이기 때문이다." - P134

"모든 생명 현상은 최후의 쉼터를 찾아가는 전자(electron)의 여정이다"
- 생명이 에너지를 처리하는 과정의 핵심이 ‘산화환원‘ 반응임을 의미한다. - P142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는 시행차오를 통한 혁신에 가깝다." - P151

"우리는 입자의 상호 작용으로부터 감정이 생성되는 과정은 모른다. 곧 ‘마음이 없는 입자가 어떻게 마음을 만들어내는가?‘라는 문제는 환원주의에 입각한 물리 법칙에 한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 P187

"자유의지는 우리의 통제 영역을 벗어난 물리 법칙에서 온 것이 아니다."(219)

"당신의 행동은 자유의지와 무관하다 해도 당신이 책임을 져야 한다."
(484, 미주46) - P219

"인간의 감정은 문화적 적응이 아닌 생물학적 적응과정의 산물이다."
- 찰스 다윈 <인간과 동물의 감정표현>에서 재인용 - P302

"예술이란 불멸을 추구하는 행위다."(319)
- 키스 해링 Keith Haring

"예술가는 죽음을 받아들이고 영원을 향한 갈망을 창조적인 작품으로 구현한다."(342)
- 브라이언 그린이 키스 해링의 표현을 조금 바꾸어 표현한 듯한 문장 - P319

"생명 현상(두뇌활동 포함)은 엔트로피 폐기물(폐열 waste heat)을 외부로 방출해야만 한다."
- 물리학자 프리먼 다이슨이 물리학자의 관점에서 먼 미래의 생명과 마음을 예측하는 논문의 기본 전제

"사고체 thinker가 생각과 휴식을 주기적으로 반복하면 영원히 생각할 수 있다"
- 다이슨 논문의 핵심 주장(사고 행위가 필연적으로 열을 낳기 때문임) - P386

"우리 우주에서 오랫동안 우주를 생각해온 생명과 사고는 언젠가 반드시 종말을 맞이할 것이다." - P436

"모든 사람들이 정체성을 잃었다. 죽음이 없으면 단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한다...나는 신이며, 영웅이며, 철학자이며, 악마이며, 세상 자체다. 이는 곧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 루이스 보르헤스 <불멸 The Immortal>에 나오는 표현으로 보르헤스의 통찰이 감동적이기도 하고 놀랍다. - P447

"그렇다고 해도 우리가 존재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경이로운 일이다." - P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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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밥나무 열매가 익을 때
요안나 콘세이요 지음, 백수린 옮김 / 목요일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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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밥나무 열매가 익을 때


요안나 콘세이요(Joanna Concejo) 지음 | 백수린 옮김 | [목요일]

 


여름의 끝(La fin de l'été)을 추억하는 애도의 기록

 

아내를 따라 그림책을 보다보니 그림책에 대한 나의 편견을 깨닫게 된다. 최근에 어른을 위한 동화’, ‘어른을 위한 그림책이란 문구를 종종 접했지만, 여전히 내가 스스로 찾아 읽고 느끼고 판단하지는 못했다. 그림책은 대체로 텍스트가 적어서 금방 읽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은 온전히 나의 착각이었다. 아동용 그램책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그림책의 독자에는 제한이 없다. 이번에 읽은 그림책은 까치밥나무 열매가 읽을 때라는 제목의 책으로, 아내가 좋아하는 그림책 작가의 책이었다.

 

요안나 콘세이요. 작가 소개에 따르면 그녀는 1971년 폴란드에서 출생한 일러스트레이터로, 현재 프랑스에 정착하여 살고 있다. 그림책 관련 행사 및 도서전으로도 유명한 볼로냐에서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2004)로 선정되었고, 볼로냐 라가치상을 수상(2018)한 이력이 보인다. 이제는 그림책과 관련하여 볼로냐를 비롯한 해외 무대에서 점점 더 많은 국내 작가들의 소식을 접하기에 이 상의 위상에 대해 대강은 알고 있다. 짧게 소개된 작가의 이력만으로도 콘세이요의 다른 작업들이 궁금해진다.

 

처음 책을 보았을 때 나는 이 책이 어떤 배경에서 나온 책인지 알지 못했다. 나는 편견을 최대한 줄이고, 겉에 표현된 이미지를 따라가 보기로 했다. 겉표지를 펼치면 소녀로 보이는 인물 그림이 나온다. 어딘가에 걸터앉아 손에는 열쇠로 보이는 물건 하나를 쥐고 있다. 다음 페이지를 넘기자마자 그림 속 들판에 숨어 있던 새들이 놀라 달아나듯 새들이 날아오르는 장면이 보인다. 고흐의 그림을 떠올리게 하듯, 들판은 풍요로운 느낌 보다는 황량한 겨울 들판처럼 보인다. 그리고 오른쪽 페이지에 보이는 것은 정면을 응시하는 것 같은 소녀의 모습이다. 가는 펜과 색연필로 그린 스케치들이 계속 이어지며 화면을 구성한다.

 

그림을 천천히 따라가다 보면 마치 누군가의 빛바랜 사진 앨범을 넘기면서 구경하는 느낌을 받는다. 특히 작가의 작업들은 언젠가 그녀가 응시하고, 감각하여 각인된 기억들을 소환하여 이미지로 정착해둔 스냅 사진처럼 보였다. 그래서였을까 정면을 응시하는 듯 하는 소녀의 스케치는 오래 전 부모님이 들고 있던 필름 카메라 렌즈를 가만히 응시하는 모습처럼 보인다. 책을 읽으면 곧 등장하는 푸른 앙리는 작가의 아버지로 보인다. 소녀의 모습은 앙리가 카메라 프레임을 통해 바라본 어린 시절의 작가일 듯하다. 책에 그려진 그림들은 접착용 테잎으로 붙여둔 사진처럼 구성되어 있다.

 

커튼 달린 창틀, 컵을 잡고 있는 손, 얼굴 표정을 그리지 않은 소녀의 두상들... 이런 단편적인 그림들은 모두 빛바랜 폴라로이드 사진처럼 보인다이미지들은 그 자체로 명징하며 지극히 사진적이기도 하다. 또 고요하고 아름답다. 그래서였을까, 콘세이요의 스케치는 책을 펼칠 때마다 새로움을 준다. 작가의 소소한 스케치들이 새로운 기억을 소환한다. 볼 때마다 다르게 보이는 것이다. 책을 더 읽으면 작가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것은 일흔 살 즈음으로 보인다. 아마도 지난 늦여름일 것 같다. 그러니까 이 그림책 작업은 이제 중년이 된 딸(작가)이 아버지에 대한 추억을 담아 낸 것이리라. 아마도 아버지는 무뚝뚝하고 말수가 적은 전형적인 아버지였을 것 같다. 서로가 소통이 많지 않던 부녀 관계. 이제는 프랑스에 정착하여 작업을 하는 작가는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시골집에 와서 아버지가 살던 공간과 흔적을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진다. 그림책의 모든 페이지마다 추억이 묻어나고, 죽음이라는 절대 법칙에 대한 자각이 느껴진다고 하면 나만의 착각일까. 지난 글에서 처음 읽었던 그림책처럼 공교롭게도 이번 책을 관통하는 주제도 죽음이다.

 

일요일의 역사가라는 별명이 있는 프랑스의 역사가 필립 아리에스는 죽음 앞의 인간에서 예술사적 관점으로 죽음을 이야기했다. 이 책에서 그는 사람들이 삶에 집착한 간접적인 증거로서 정물화를 언급한다. 특히 중세인들은 죽음이라는 소멸 현상을 정물화를 통해 삶에 대한 애착을 표현했다는 것이다. 북부 유럽어권에서 정물화를 ‘still life'라고 표현하고, 더구나 라틴어 권에서는 ’nature morte’, 죽은 자연정도로 이해할 수 있는 표현을 사용했다. 게다가 모든 문학 작품에는 사랑뿐만 아니라 삶과 죽음이라는 주제가 등장한다. 그림책이라고 불가능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림책이 어린이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님은 그림책이 다루는 주제를 보면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림책에서도 삶의 모든 것을 대상으로 담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삐삐롱 스타킹의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 언급했던 것처럼, 적절하고 타당한 방식으로 전달한다면, 아이들도 죽음과 같은 무거운 주제를 인식하고 나름대로 소화하여 받아들일 수 있다는 생각에 공감한다. 그림책을 읽어내는 일은 그림 속으로 들어가 메시지를 찾아내는 보물찾기 놀이와 같단 생각을 해본다. 내가 생각하는 그림책 읽기란, 그림을 통해 작가의 손이 지나간 흔적을 들여다보고, 저자의 기억과 상상을 더듬어 따라가는 일이다.

 




내 시선은 다시 앙리가 살던 집의 찬장에 머문다. 안개처럼 반투명해보이는 유리문이 있는 찬장 아래에 피클을 담는 병이 보인다. 이 병에는 앙리가 숲에서 가져와 넣어 둔 까치밥나무 잎이 들어 있다. 까치밥나무 열매는 여름에 익는다고 한다. 아마도 앙리는 이걸 병에 넣어 둔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 매일같이 산책하던 오솔길을 나섰을 것이다. 주머니에는 매일 확인하는 우편함 열쇠를 넣은 채로 말이다. 우편함에 아무 것도 없는 것을 확인한 앙리는 입김이 날 정도로 쌀쌀해진 어느 날 익숙한 오솔길을 나섰을 것이다. 집 앞에는 돌아올게요라는 메모를 남긴 채로. 하지만 이 산책이 앙리가 세상에 전하는 마지막 메시지였을 것 같다. 그렇게 앙리는 푸른 안개가 낀 어느 날 산책길에서 벤치에 앉아 깃털처럼 가벼워졌을것 같단 생각을 해본다.

 

이런 자세한 정황은 책을 보고 내가 상상해본 내용이다. 책에 표현된 시선을 따라가면서 작가의 추억을 들여다 볼 뿐이다. 저자는 앨범을 보고 외부를 관찰하는 것 같지만 그림을 통해 드러나는 것은 묻혀 있던 작가의 기억, 곧 내면의 풍경이다. 딸은 아마도 무뚝뚝한 아버지와 다정하게 대화해본 적이 언제였던지 가물가물했을 것이다. 작가는 그림 작업을 하면서, 먼저 아내를 떠나보내고 혼자 지내던 아버지의 흔적을 찾는 듯하다. 작가는 부모님의 결혼사진과 어렸을 때 자신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을 들여다보다가 문득 카메라 렌즈를 통해 자신을 바라보았을 아버지의 시선을 느끼지 않았을까. 새롭게 다가오는 자각이다. 작가의 시선은 이제 지난 여름 아버지가 담아 두었을 까치밥나무 잎에 머문다. 꽃무늬 벽지가 있는 한 쪽 벽에는 여전히 아버지의 옷이 그대로 걸려 있다. 여기에는 어린 시절 부모와 함께 했던 시절, 웃음소리와 눈물이 그대로 배어있을 것만 같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앙리는 여름이 끝날 무렵, 푸른 안개가 낀 어느 날 세상을 떠나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그런 까닭에 까치밥나무 열매는 아버지의 죽음을 떠올리게 하는 매개물이면서, 소멸하는 자연을 대변하는 사물이 된다. 앙리가 즐겨 산책하던 풍경은 이제 작가의 추억 속, 여름의 끝에 머물러 있다. 이러한 배경을 상상해보다 책의 표지를 보니, 푸른색으로 그려진 앙리의 모습이 새롭게 느껴진다. 책의 겉표지를 넘길 때 보았던 소녀(아마도 어린 작가의 모습)의 손에 든 열쇠는 아마도 아버지의 우편함 열쇠가 아니었을까. 우편함 열쇠는 아버지에 대한 추억을 여는 열쇠일 수도 있겠다. 혹은 소통이 별로 없던 딸의 편지가 와 있지나 않을까 기대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그림책을 이렇게 읽어도 되나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독자의 상상을 제한해주는 텍스트가 거의 없는 그림책을 읽는 일은 보다 더 자유롭다는 장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나 그림책은 언어를 떠나 공통의 정서에 호소할 수 있다면 어떤 식으로든 해석의 여지가 있지 않을까 싶다. 그림책을 읽어낸다는 것은 무엇일까. 처음에 나는 그림책 읽기를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것 같다. 이제 보니 그림책에는 볼 때마다 새롭게 느껴지고 다르게 다가오는 무언가가 있다. 그림책은 그만큼 풍부한 자유도를 지닌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각각의 이미지들이 하나의 특이점처럼 느껴진다. 묻혀 있던 무수한 기억들이 공존하는 지점인 동시에 새로운 상상의 길을 열어주기도 하는 전환점으로서 말이다.

 

마침내 마지막 페이지를 펼치면, ‘지난 여름의 끝을 추억하던 작가가 아버지에게 전하는 한마디가 담겨있다. 빨간 까치밥나무 열매가 읽을 때 즈음, 아마도 푸른 안개와 함께 풍경 속으로 사라졌을 법한 작가의 아버지에게 말이다. 작가의 한마디는 인생에 여전히 미숙했고(우리 모두 그렇지 않은가), 특히 딸을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 몰랐던모든 아버지에게 전하는 따뜻한 위로의 말이자 애도의 메시지다.

 




 같은 책을 읽고 쓴 옆지기의 리뷰는 아래에서 확인하세요.

  https://blog.aladin.co.kr/734094286/124245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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