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몽(夢)슈슈 무민의 밝은 방 (초란공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12851116</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2015년 9월 개설/2015년, 호기심에 처음으로 시집과 문학책을 사보다. Slow Reader</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Wed, 07 Oct 2026 13:10:27 +0900</lastBuildDate><image><title>초란공</titl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myface/pt_7128511162821817.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12851116</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초란공</description></image><item><author>초란공</author><category>자연과학-기술-환경-생태</category><title>죽음에 대한 논의, 충만한 삶의 완성을 위해 필요하다 - [연명치료는 사양하겠습니다 - 오래 사는 시대, 우리는 어떻게 떠날 것인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12851116/17516835</link><pubDate>Mon, 14 Sep 2026 23:2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12851116/1751683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32131760&TPaperId=1751683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124/91/coveroff/k33213176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32131760&TPaperId=1751683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연명치료는 사양하겠습니다 - 오래 사는 시대, 우리는 어떻게 떠날 것인가</a><br/>양성관 지음 / 히포크라테스 / 2026년 09월<br/></td></tr></table><br/><br><br><br><br>죽음에 대한 논의, 충만한 삶의 완성을 위해 필요하다《연명치료는 사양하겠습니다》: 오래 사는 시대, 우리는 어떻게 떠날 것인가<br>  &nbsp;  양성관 지음 [히포크라테스] (2026)<br><br><br>  &nbsp;  매일 아침 출근길 지하철을 타면서 생각하곤 한다. 눈을 감고 의자에 앉아 있거나 문에 기대어 있는 사람들, 모바일 스크린을 뚫어져라 보며 화면에 몰입하고 있는 사람들로 열차 안이 가득하다. 긴 지하 터널을 통과하는 동안 나는 이 열차에 탄 모든 이들이 ‘죽음’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흔들리며 함께 가는 사람들이구나 하는 생각 말이다. 그로테스크한 장면이긴 하지만, 이 열차에 탄 사람들은 단지 이 순간 병원에 있지 않은 것뿐이지 않은가. 집안에 오랫동안 아픈 환자가 있었던 이들은 안다. 병원에 갈 때마다, 세상이 이렇게나 아픈 사람이 많다는 말인가, 하고 말이다. 그러니 조심성 없이 밀치면서 지나가던 이들이나 내가 막 앉으려던 자리에 잽싸게 끼어들어 앉고야 마는 이들을 미워하는 마음이 들다가도 결국엔 연민을 느끼는 것이다.    <br>  &nbsp;  죽음은 태어난 모든 생명체에게 최종 목적지와 같다. 생의 완성인 것이다. 철학자 사사키 아타루가 말했듯이 ‘죽음이란 늘 타인의 죽음’이기에, 죽음 이후의 두려움 따위란 무의미하다. 죽음은 누구나 한 번 겪게 되는 운명이지만, 살아 있을 때 경험할 수는 없는 까닭이다. 우리가 ‘죽음’에 대해 생각할 때 갖는 두려움이란 사실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 대한 두려움일 터다. 여기에는 무엇보다‘고통’이라는 단어가 먼저 떠오른다. 나의 아버지는 딱 지금의 내 나이, 지천명의 나이에 돌아가셨다. 인류의 평균 수명이 40을 넘기기 시작한 때가 그리 오래 되지 않았음을 고려한다면, ‘지천명’이라는 단어의 무게를, 이 나이가 되어서야 실감하게 되었다. 교통사고나 전쟁과 같은 문명이 가져온 부작용을 제외한다면 지금껏 인류의 대부분은 ‘자연사’했다. 이제는 각종 의료 기술과 도구의 발달로 수명이 극적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이번에는 태어나 살아가는 것만큼이나 죽음에 이르는 길이 쉽지 않은 절차가 되었다.   <br>  &nbsp;  《연명치료는 사양하겠습니다》(이하 《연명치료》)는 가정의학과 전문의 양성관이 20년에 이르도록 수많은 환자를 진찰하고 죽음을 곁에서 지켜본 경험을 바탕으로 쓴 저작이다. 이 책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작년에 집안 어르신 두 분이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경험하고부터다. 한동안 우리 집안에서 가까운 이의 죽음이 없었으나, 저자가 강조하듯 우리 모두는 결국 죽음에 이른다. 한 분은 암으로, 또 한 분은 치매를 비롯한 만성 질환을 앓고 사망하셨다. 죽음에 특별한 예외는 없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 《연명치료》에서 우리 사회가 ‘죽음’을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를 이야기하고, 임종에 이르는 환자와 그를 돌보는 가족의 입장에서 생각해봐야 할 지점들을 제시해주고 있다. 누구인들 고통이 가득한 반면, 무기력하게 수명을 연장하다 죽음을 맞고 싶겠는가?  저자는 바로 이 문제를 조심스럽지만 진지하게 이 책에서 독자와 우리 사회에 질문하고 있다. <br>  &nbsp;  기억을 더듬어보면, 내가 초등학교 당시만 해도 가족의 죽음이 집안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러나 어느 새 죽음은 그에게 익숙한 자신의 방이 아닌 병실이 되어 버렸다. 저자가 언급하듯, 우리 사회는 1997년의 ‘보라매병원 사건’과 같은 일이 있고부터 본격적으로 ‘죽음의 외주화’를 겪게 되었다. 이 사건으로‘죽음’은 늘 우리 곁에 존재해왔지만 우리에게는 더 이상 투명하지 않게 되었다. 심지어 죽음은 기피의 대상으로 치부되고, 일상적인 대화에서 회피해야할 소재로 변질되었다. 하지만 반대로 이 사건은 우리 사회에 ‘생명 존중’의 가치와‘존엄하게 죽을 권리’에 대해 본격적으로 묻게 된 계기가 되었다. <br>  &nbsp;  문득 작년에 돌아가신 어르신도 생전에 늘 연명치료는 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하셨다는 게 생각났다. 가족은 모두 공감하고 그러겠노라 했음에도, 막상 돌보는 입장에서 ‘치료 중단’을 요구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 책의 저자가 언급한바와 같이, 환자를 돌보는 가족은 담당 의료진에게‘뭐라도 해주세요’라는 절박한 입장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까닭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족들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기로에 서서 절망한다. 남은 선택지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음을 알면서도, ‘새로운 약으로 항암 치료를 한 번 해보면 어떨까?’하게 되기 때문이다. <br>  &nbsp;  이번 독서에서 한 가지 더 도움이 되었던 것은 의료진의 입장과 이들이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하는 점이었다. 특히 우리 사회의 경우, 연명의료결정법이 “영양분 공급, 물 공급, 산소의 단순 공급은 중단하거나 시행하지 않아서는 아니 된다.”라고 명시해 놓고 있기에 임종에 이르는 환자를 돌보는 일이 보다 복잡해지는 모양이다. 여기에 종교계, 법조계, 윤리학계, 시민단체 등이 이 과정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음을 보면, 이제 우리가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 얼마나 복잡해졌는지 감지할 수 있다. 이제 현대인의 죽음은 사회가 정한 법의 통제 하에 놓이게 되었던 것이다. <br>  &nbsp;  이제는 우리 사회도 노령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가 넘는 초고령 사회에 들어섰다고 한다. 특히 가족의 모습이 급격하게 변화되어 온 우리 사회의 모습을 생각해본다면, 나의 장래 역시 이전에는 생각지 못했던 걱정거리들을 던져 주기도 한다. 나이가 더 들면 몸에 이상이 생기고 병원 신세를 지게 될 터인데, 여러 가지 사안이 바로 문제가 될 것이라는 점이다. 핵가족화 되어버린 우리 사회에서 나이듦이란 새로운 두려움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누가 나를 돌보아줄 수 있을 것인가. 지금 나의 경제력으로 치료 및 돌봄을 여유 있게 받을 수 있는 기대를 하지 못하는 두려움도 있다. 저자가 일본의 간병 살인 사례를 든 것처럼, 혹시 내 병이 오랜 간병의 절차를 의도하지 않게 필요로 하게 된다면 내 삶의 질은 급격히 떨어지게 될 것은 자명하다. 그러므로 이 책은 ‘존엄하게 죽음에 이르는 길’이 무엇인지 우리 사회가 진지하게 생각해보아야 한다고 전한다. 종교계나 법조계 등의 관점도, 환자 당사자의 입장에서 이제는 좀 더 유연하게 고려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br>  &nbsp;  나는 나의 마지막이 어떤 모습이기를 바라는지 생각해보다 문득 떠오른 영화가 있었다. 일본의 다큐멘터리 영화 &lt;인생 후르츠&gt;다. 90세 건축가 할아버지는 텃밭이 있는 아담한 집에서 87세의 아내와 함께 살아왔다. 어느 날 아침에 할아버지는 텃밭에 앉아 쉬엄쉬엄 일을 하고는 집에 들어와 아내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곧 낮잠을 자다가 아내 곁에서 조용한 죽음을 맞았다.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였기에 할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은 실화였고, 영상도 실제 인물이 나오는 작품이기에 내게는 더 의미가 있었다. 내가 정말 바라는 마지막 모습의 롤모델이 이 영화에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대부분 이처럼 흘러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의 죽음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개는 질병을 앓고 고통을 받는 시간이 더 많은 것이 보통이다. 지난 주말에 오랜만에 본가를 다녀온 후 어머니와 통화할 때, 어머니는 이제 막 산책을 나가는 길이라고 하셨다. ‘아프지 않으려면 (그래서 너희들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면) 이렇게 하는 수밖에 없지’라고 하셨다. 수화기로 넘어온 이 말이 가슴에 쿵 하고 박히고야 만다. 태어난 이상 아프지 않을 수 없으나, 생의 마지막을 상상하고 마지막에 이르는 길이 고통스럽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은 누구나 같을 것이다. <br>  &nbsp;  책에 소개된 스위스의 안락사나 화려한 요양병원 시설을 이용할 여력이 되지 않는 나에게 우리 나라가 OECD국가들 가운데 자살률이 가장 높고, 70-80대의 자살률이 10대의 자살률보다 7개 높다는 통계는 충격적이고도 실감나게 다가왔다. 이것은 바로 ‘나의 미래’일수도 있겠기 때문이다. 이처럼 저자가 책에서 제기하는 다양한 이슈들, 이를 테면 연명 치료 중단이나 완화 치료, 의료조력사망, 그리고 간병과 돌봄의 문제는 막막하게 느껴지던 현실을 좀 더 분명하게 바라볼 수 있는 실마리를 주었다. 저자가 “죽음은 단지 의료나 법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 전체가 함께 고민하고 책임져야 할 문제다. 우리는 묻고 답해야 한다. ‘우리는 어디서,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120)라고 던진 메시지를 이제는 꼭 붙들고, ‘존엄하게 죽을 권리’에 관해 가족과, 사회 구성원들과 진지하고 열린 자세로 이야기를 시작해야할 때다. 그런 다음에야 우리는 남아 있는 각자의 삶을 더욱 충만하게 보낼 수 있지 않겠는가. <br><br>  &nbsp;    &nbsp;  #연명치료는사양하겠습니다 #양성관 #히포크라테스   &nbsp;  ​  &nbsp;    &nbsp;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124/91/cover150/k33213176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1249118</link></image></item><item><author>초란공</author><category>자연과학-기술-환경-생태</category><title>이토록 건전한 ‘읽은 척‘이라니</title><link>https://blog.aladin.co.kr/712851116/17503943</link><pubDate>Tue, 08 Sep 2026 23:3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12851116/17503943</guid><description><![CDATA[<br><br><br><br><br>《종의 기원을 읽은 척할 수 있는 책》<br>사라시나 이사오 지음이진원 옮김 [까치] (2026)  &nbsp;  <br><br><br>언제인가 세상의 고전으로 꼽히는 《종의 기원》을 읽어보려 시도한 적이 있다. 성공했다면 번번이 아는 척을 했겠지만 나는 그때마다 중간에서 책을 덮었다. 책의 내용이 어렵기 때문이 아니었다. 다만 지금 돌이켜보면 나의 일상이 그만큼 번잡하고 산만했었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깜빡이는 배너 광고와 SNS에서 날아오는 알림을 확인하는 일이 밤에는 진정이 되지만, 이번에는 스포츠와 가수의 영상이 넘쳐나는 온라인 플랫폼에 나도 모르게 손을 뻗는다. 나이가 들면서 노안 문제를 제외하곤 그나마 꾸준히 책을 읽어온 내가 책을 읽는 일이 점점 쉬워지는 것이 아니라 책읽기 활동으로부터 점점 소원해지는 느낌이 들곤 한다. 그 가운데 《종의 기원》은 여전히 내가 읽고 싶은 책 리스트 가운데 상위권에 올라 있지만, 그 날이 언제가 될지 나도 모르겠다. 책읽기 과정에서 파악한 나는 머뭇거리고 미루기 좋아하는 사람이었다.<br>  &nbsp;   《종의 기원을 읽은 척할 수 있는 책》는(이하 《읽은 척》) 나의 게으름과 미루기 신공을 보완해 줄 비결이 숨어있지 않을까 기대하게 하는 책이다. 세상에는 나처럼 어떤 일을 하기 전에 고민부터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일단 먼저 행동에 옮기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이런 부지런한 독자들에게 이 《읽은 척》은 다윈의 저서를 읽기 위한 워밍업 내지는 가이드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이유는 이 책 《읽은 척》이 단순히 《종의 기원》을 자세히 요약해주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현대 과학이 오류로 판명된 다윈의 설명들을 하나하나 짚어주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윈의 오류를 알고 최신 버전으로 업데이트 된 진화의 지식을 갖추고 다윈의 저서를 읽는 일은 그 반대로 시도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으로 보인다.   &nbsp;  <br>그렇다면 나처럼 ‘미루기 신공’의 마스터들에게 이 《읽은 척》은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내가 다윈의 삶과 진화론을 전공하는 연구자가 아닌 다음에야, 《읽은 척》을 읽는다면 정말 《종의 기원》을 읽지 않아도 될 것이라는 보상이 있다. 제목대로 《종의 기원》을 ‘읽은 척’할 수 있다는 사실이 나와 같은 ‘미루기 신공’족들에게는 가장 매력적인 포인트다. 단 이 《읽은 척》을 유용하게 써먹기 위해서 ‘미루기 신공’족들이 결코 미루어서는 안 되는 일이 있다. 내가 ‘읽은 척’을 시연할 대상을 명석하게 가려내야 한다는 것이다. 소개팅에서 《종의 기원》을 ‘읽은 척’을 하려 한다면 우선 상대방의 전공이 적어도 생물학 전공은 아닌지 부터 확인 하고 시도할 일이다. 지피지기면 백전일승은 할 수 있을 게다. 여기에 더하여, 소개팅 상대방이 얼마나 폭넓은 교양을 지니고 있는지 다방면으로 질문하고 파악할 것. 상대가 음대생이라고 해도, 매우 희박한 확률로 내셔널 지오그래피나 동물의 왕국과 같은 자연 다큐멘터리 덕후일 수도 있지 않겠는가. 혹은 부모님이 생물학 분야의 전문가이거나 말이다. <br>  &nbsp;  한편 소개팅 자리에서 이 모든 ‘읽은 척’의 시도가 성공적이지 않다고 해도 여전히 우리에게 남는 것은 있다. 상대방에게 시도하는 ‘읽은 척’이 효과가 있을지 알아내는 동안 상대방에게 던진 다양한 질문을 통해 상대방을 좀 더 잘 알게 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또 알겠는가. 상대방에게 호감을 갖게 되거나 상대방의 호감을 얻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br><br>그러니 《읽은 척》은 우선 다윈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는 《종의 기원》을 읽어 내기 위한 워밍업을 보장하는 안내서가 될 수 있겠다. 혹은 읽지 않아도 좋을 만큼 최신의 과학 지식으로 업데이트 된 지식을 접할 수 있는 훌륭한 참고 문헌을 얻게 되는 셈이다. 여기에도 해당이 안 된다고 해도 노여워하거나 슬퍼하지 말 것. 당신이 나간 소개팅 자리에서 《종의 기원》을 ‘읽은 척’하여 내가 지적으로 보이도록 도와주고 자존감을 높여주는 와일드카드로 기능할 수 있고, 동시에 ‘읽은 척’하는 과정에서 상대를 파악하기 위한 질문 공세로 상대방을 보다 잘 알게 되고 더불어 상대의 호감을 살 수 있는 필살기를 얻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읽은 척》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장점들을 장착하고 있다. 비용대비 얻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나 역시 《읽은 척》을 다 읽지 않아도 ‘읽은 척’함으로써 한 번 더 책을 열어보고 고민하게 되니 얼마나 건전한 ‘읽은 척’인가. 게다가 이 책을 구입함으로써 출판계의 ‘빛과 소금’이 될 수 있다는 건 굿즈와 함께 따라오는 예기치 못한 덤이 아닌가.       &nbsp;  <br><br>#종의기원을읽은척할수있는책 #사라시나이사오 #이진원번역가 #까치 #종의기원읽기<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908/pimg_639245070294341725.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12851116/17503943</link></image></item><item><author>초란공</author><category>자연과학-기술-환경-생태</category><title>우리는 어떤 세계에서 살고 싶은가 - [과학은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 더 나은 사회공동체를 위한 과학사 교과서]</title><link>https://blog.aladin.co.kr/712851116/17500077</link><pubDate>Mon, 07 Sep 2026 12:2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12851116/1750007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02130142&TPaperId=1750007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070/92/coveroff/k90213014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02130142&TPaperId=1750007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과학은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 더 나은 사회공동체를 위한 과학사 교과서</a><br/>정인경 지음 / 이음 / 2026년 08월<br/></td></tr></table><br/><br><br><br>우리는 어떤 세계에서 살고 싶은가《과학은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더 나은 사회공동체를 위한 과학사 교과서  &nbsp;  정인경 지음 [이음] (2026)  &nbsp;  <br><br>최근에 혼자 생각하곤 하는 질문이 있다. ‘과학을 왜 공부해요?’라는 질문과 ‘인류는 지구에서 얼마나 오래 생존할 수 있을까?’하는 문제들이다. 누군가 나에게 과학을 공부하는 목적을 물어보았을 때 나는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주섬주섬 어렵지 않은 용어로 어떻게 말해줄 수 있을까 자문해보곤 한다. 게다가 올 여름 뜨거운 열기로 실감하게 했던 기후위기 시대에 인류 문명의 운명은 어떻게 될지를 종종 상상해본다. 이건 진지한 환경활동가처럼 어떤 행동으로 실천해야한다는 의무감보다는, 개인적으로 우리가 겪고 있는 환경에 대한 일종의 무기력감과 우울감을 느끼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nbsp;  과학저술가, 과학사연구자 정인경의 《과학은 민주주의가 필요하다》를 읽는 동안 나 혼자 자문해보던 이 두 주제에 대한 고민을 이 책에서 발견했다. 저자는 2022년도에 개정된 고등학교 과학사 &lt;과학의 역사와 문화&gt;를 집필했다. 이 책 《과학은 민주주의가 필요하다》는 저자가 과학사 교과서 집필 과정에서 고민했던 주제들을 후기처럼 들려주는 성격의 책이라 느꼈다. 교과서의 정제된 문장과 문장 사이의 행간에 숨어 있는, 저자가 하고 싶었던 말들이 이 책에서 보다 진지하게 소개되고 있었다.   &nbsp;  저자는 과학 공부의 목표를 어디에 두고 있었을까? 내 나름의 설득력 있고 세련된 표현을 찾지 못했기에 나는 저자의 견해가 궁금했다. 들어가는 글에서 그는 “(과학) 지식이 왜 중요한지 알고 자신의 삶과 연결해서 생각하는 법을 터득하는 것”(11)이라는 생각을 밝혔다. 달리 말하면 과학을 공부하는 목표는 지식 그 자체가 아니라 나와 사회의 연결고리를 파악하는 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특히 20세기 후반부터 두드러진 ‘과학의 상업화’를 지적하며 현대 사회에서 과학이 지닌 위상과 역할이 달라진 현실을 이야기하는 대목에서는 과학의 공공성과 메타 학문으로서 과학의 역할이 약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려되기도 한다. 시대가 지나며 과학의 위상이 달라진 만큼 과학의 목표 또한 과거와는 조금씩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nbsp;  이 과정에서 점점 더 뚜렷하게 드러나는 것은, 과학이 절대적인 진리가 아니라는 인식이다. 과학사를 전공하고 연구하는 저자의 입장에서 과학사는 메타 인식을 하도록 도와주는 채널일 수 있다. 저자가 말하는 과학이란, 절대적 진리를 확정하는 학문이 아니라 오히려 ‘지각과 앎의 불확실성’을 인정하고 검증 받아온 믿음 체계 혹은 방법론에 가까운 듯하다. “과학은 지난 400년 동안 혹독한 검증 과정에서 살아남은 지식”(122)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과학이 여태껏 신뢰를 더 쌓아올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메타 인지적 절차, 끊임없는 비판과 토론의 과정에 열려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이런 의미에서 저자가 “(고대) 자연철학자들이 우주의 법칙을 찾는 것이나 도시국가의 시민들이 스스로 정치체계를 만들어가는 것은 본질적으로 서로 같았”다(73)는 평가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여겨진다. <br> 한편으로 나는 저자가 ‘인류의 문명이 언제까지 지속할 수 있을까’를 묻는 대목에 관심이 갔다. 인류는 지구상의 모든 생물과 마찬가지로 시작이 있었던 것처럼 결국엔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나의 관심사는 인류가 겪게 될 ‘문명의 죽음’이 얼마나 가속화될 것인가다. 인간의 과도한 욕망과 활동, 자원을 착취하는 행위로 지구에 미치는 악영향은 지구 반대편의 누군가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걸, 최근 네팔의 산지에서 발생한 대홍수 사태를 보며 실감할 수 있었다. 안타깝게도 환경의 변화가 예기치 못하게 찾아올 때 환경 변화에 취약한 계층이 더 많은 희생을 겪게 마련이다.   &nbsp;  많은 과학자들이 인류가 공동의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함께 붙들고 해결할 마지막 타이밍을 놓쳤다고 보는 듯하다. 그렇다면 이제 지구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을까. 이러한 문제는 지식이 빼곡하게 정리되어 있는 과학 교과서를 통해서 인식하고 생각해보기에는 부족하다. 저자는 과학사에서 우리가 처한 문제의 실마리를 찾아볼 수 있다고 여긴듯하다. 조금 낯선 입장이긴 하지만, 저자는 과학사로부터 인류에게 필요한 윤리적 입장을 발견하고 이야기해 볼 수 있다고 본 듯하다. 이를 위해서는 지식에 대한 탐구 일변도의 관행과 무한한 신뢰를 보내기 전에 과학의 방향성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확인하여 조정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다행히(?) 과학은 가능하다.   &nbsp;  여기에 더 필요한 것은 ‘과학적 상상력’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는 저자가 책의 서두에서부터 주목하는 철학과 윤리의 문제와도 연관된다. 과학을 수행하는 과학자 집단의 책임과 열린 자세, 과학 행위의 공공성에 대한 믿음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여긴다. 특히 저자가 주목하고 우려하는 과학의 상업화 현실에 개개인이 거리를 두고 균형감을 갖게 해주는 도구가 아닐까. 이제는 ‘시민과학’이라는 표현이 익숙해졌다. 시민과학의 관점에서 과학 분야의 전문가가 아닌 이들도 과학과 기술이 수행되는 과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과학과 기술은 이제 인류 공동체의 삶을 결정 짓는 문화이자 ‘사회적 합의’의 산물로 우리의 삶 속에 공고히 자리 잡게 되었기 때문이다. 과학은 가치중립적이지 않기 때문에 개선의 가능성과 실패에 따른 위기의 가능성을 동시에 지닌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과학의 가능성과 일련의 수행 과정이 열린 구조 속에서, 민주주의적 절차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nbsp;  여기에서 ‘과학적 상상력’이 인류 문명의 위기를 해결하는 데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아마 당장 임박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살아온 방식대로 살아간다면 어떤 결과를 맞이할지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예상해 보는 일은 충분히 가능하다. 호메로스의 서사시 &lt;일리아스&gt;는 10년 가까운 트로이 전쟁을 다룬 작품이다. 트로이 왕국의 왕 프리아모스의 딸 가운데 트로이 목마를 성 안으로 들여 놓으면 나라가 망할 것이라는 사실,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가져올 비극을 예언했던 인물인 카산드라가 있다. 트로이가 맞이한 비극은 트로이 왕국의 운명을 카산드라가 예언했지만, 그 누구도 카산드라의 예언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왕국의 멸망에 대비할 기회를 잃어버렸던 것이다. 과학적 상상력은 카산드라의 예언처럼 인류의 운명을 예상하게 한다. 하지만 우리 가운데 누구도 과학적 상상력이 예측하는 인류의 위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인류의 운명은 트로이 왕국처럼 되지 않을까. 지구 위에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과학적 상상력은 카산드라의 예언에 귀를 기울이게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런 의미에서 저자가 주목하는 과학적 상상력은 우리에게 필요한 덕목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과학 활동에서의 민주적 절차임은 빼놓을 수 없다. 이 책은 과학 활동으로 축적된 지식과 판단 체계가 주변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곧바로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곧 우리가 함께 잘 살아가기 위해 과학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아울러 우리가 현재 어디에 있고, 앞으로 어디를 향해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을 탐구한 책이라 볼 수 있겠다.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070/92/cover150/k90213014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0709299</link></image></item><item><author>초란공</author><category>문학/에세이</category><title>﻿우리가 잃어버린 ‘죽마’를 찾아서 - [신사 트리스트럼 섄디의 인생과 생각 이야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12851116/17452034</link><pubDate>Sat, 15 Aug 2026 12:0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12851116/1745203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403813&TPaperId=1745203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655/87/coveroff/s03213843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403813&TPaperId=1745203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신사 트리스트럼 섄디의 인생과 생각 이야기</a><br/>로렌스 스턴 지음, 김정희 옮김 / 을유문화사 / 2012년 04월<br/></td></tr></table><br/><br><br><br>우리가 잃어버린 ‘죽마’를 찾아서<br>《신사 트리스트럼 섄디의 인생과 생각 이야기》(The Life and Opinions of Tristram Shandy, Gentlman)  &nbsp;  로렌스 스턴 지음김정희 옮김 [을유문화사] (2023)  &nbsp;  <br><br>올해는 책 읽는 속도가 더디다. 하지만 뜨거웠던 지난 여름 밤마다 아껴 읽었던 《신사 트리스트럼 섄디의 인생과 생각 이야기》(이하 《트리스트럼 섄디》)의 여운이 아직 남아 있다. 로렌스 스턴의 소설은 아마도 올해 읽은 작품 가운데 3위 안에 들 것 같다.   &nbsp;  “나는 불행해지게끔 잉태되고 태어난 사람이다.”(56)<br>“어르신들께 감히 말씀드리건대, 이 책은 다만 울화에 대항하고자 하는 글입니다.”(375)<br>“인간의 삶이란 무엇인가! 그저 이 모퉁이에서 저 모퉁이로 이리저리 변통하며 자리 바꾸기를 하는 게 아닐까?”(415)<br>“마음이 곧은 독자에게 탄원하노니, 나는 인간이 결국 짐승일 뿐이라는 가장 겸허한 신념에서 - 이 질문을 던졌다는 것을 믿어주기 바란다.”(790)  &nbsp;  <br>현실의 삶에선 사제이기도 했던 로렌스 스턴의 이 작품은, 프랑수아 라블레의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에서 보이는 원초적이고 보다 육체적인 호탕함이 다소 덜할지 몰라도 그 보다는 지적인 언어유희를 비롯한 은근하고 교묘한 장치들로 즐거움을 준다. 화자 트리스트럼이 길 위에서 보여주는 좌충우돌의 모습은 그가 소설 속의 여러 장면에서 언급하는 돈키호테의 모험과도 닮아 있었다.  &nbsp;  <br>이 작품이 1700년대에 나온 소설이라 누가 믿을 수 있을까. 그만큼 이 소설은 세련되고 징후적이다. 버지니아 울프나 제임스 조이스의 작품에서 보여주는 모더니즘의 징후가 이미 보이는 까닭이다. 화자(아마도 영화 감독 우디 앨런처럼 끊임없이 수다를 떨 수 있는 사제가 아니었을까)는 끊임없이 옆길로 새고야 만다. 산만한 의식을 따르는 그의 글쓰기는 이따금 작품 속에도 개입하여 독자와 상호작용한다. 작품에 메타적인 접근법도 과감하게 시도한다.    &nbsp;  <br>화자는 본문에서 “글쓰기란, 그것을 제대로 관리했을 때, (내가 내 글이 그렇다고 생각한다는 것은 당신도 알 것이다) 단지 대화의 또 다른 이름이라 할 수 있다.”(137)라고 말한다. 이런 장면은 마치 무성영화 시대에 스크린 옆에서 영상 속의 인물들을 여러 목소리로 연기하며 효과음까지 도맡았던 ‘변사’의 역할을 보는 듯하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처음에는 저자의 생몰연도를 여러 번 확인하며 읽었다. 정말 1700년대에 나온 소설이 맞을까 싶었던 것. 그렇지 않으면 다분히 20세기 초의 모더니즘적인 실험 소설이라는 느낌을 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본문에서 화자(트리스트럼)가 특정한 시각을 쓰는 대목이 두 번 나오는데(1759년 3월 26일 아침 9시에서 10시 사이 &amp; 1761년 8월 10일), 이는 저자가 실제로 해당하는 장을 집필할 때의 시간이었다. 작품 속의 작품, 혹은 작품 위의 작품에서 장면을 바라보듯 제3자의 존재를 전제하는 듯하다. 형식적으로도 매우 실험적이다.   &nbsp;  <br>어쩌면 후대의 버지니아 울프가 이 겸허한 작품을 읽으며 자신의 떠다니는 의식을 따라가 보기로 마음먹었던 것은 아닐까 상상해본다. 혹은 스턴과 같은 아일랜드 작가 제임스 조이스가 ‘성’의 대상을 지적이고 은근한 언어유희로 전환하는 스턴의 실험에 흥미를 느끼며, 구차하고 억압된 현실 속에서도 인간에 대해 긍정해낼 수 있었던 것은 아닐지. 물론 어느 한 작품이 수많은 작가의 작업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적어도 후대의 작가들에게 신선한 충격은 주었을 법한 작품이라는 말이다. 이를 테면, 후대의 괴테와 니체는 비판적으로 세계를 바라보면서도 타자에 대한 연민을 손에서 놓지 않는 지점을 이 작품에서 눈여겨 보았던 것은 아닐까 싶었다. 어쩌면 D.H. 로렌스는 라블레와 스턴의 작품을 통해 ‘생(生)’의 이면인 ‘성(性)’의 참모습에 주목하게 된 계기는 아니었을까, 혹은 토마스 만의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에서 보이는 동성애적 욕망의 노출을 보비 삼촌과 그의 하인이자 동지인 트럼 상병과의 친밀한 우정과 연대의 모습들에서 더 밀고 나아갈 수 있는 상상력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싶었던 것이다. 그만큼 《트리스트럼 섄디》에는 이 모든 후대의 징후가 담겨 있는 듯 보였기 때문이다.<br><br>또 하나 눈길이 갔던 부분은, 등장인물이 함께 어우러지는 ‘죽마 놀이’다. 트럼 상병과 보비 삼촌이 보여주는 것은, 주인과 하인 관계를 넘어서 보편적인 인간 사이의 유대와 우정, 인간에 대한 관대함을 보여준다. 이런 덕목들은 함께 수행하는 죽마(hobby horse) 놀이에서 비롯된다. 이들은 지금으로 치면 말도 안 되는 ‘밀덕’(밀리터리 덕후)인 셈인데, 이들의 일상은 사뭇 ‘진지한’ 유희와 기대로 가득 차 있다. 신체의 상처와 심리적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는 등장인물들(살아가는 인간이라면 누군들 안 그렇겠는가)에게 ‘죽마’는 단순한 취미나 취향의 수준을 벗어난다. 트럼 상병과 보비 삼촌에게 ‘죽마’는 수행적 의식으로 기능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오히려 ‘죽마’는 우리를 ‘살아있게’해주는 일상의 의식(ritual)이자 일용한 마음의 양식을 대표하지 않는가. 이들의 ‘죽마놀이’는 우리가 통제할 수 없고, 우연이 가득한 인생에서 잠시나마 삶의 주체가 될 수 있게 해준다. 통제 불가능한 현실 속에서, 또 누군가에겐 무익해보여도 각자가 통제 가능한 유희, 지극하고 순수한 즐거움을 되찾게 해주는 의식인 셈이다. 따라서 ‘죽마’는 개인을 자기만의 세계에 고립시키는 소외의 도구가 아니다. 오히려 18세기 소설에서 ‘개인’을 발견하는 뚜렷한 사건으로 볼 수 있다. 트림 상병과 보비 삼촌처럼 각자의 현실을 회피하지 않고 세상을 관대하게 품을 수 있게 해주는 것도 바로 이 죽마 놀이로부터 유래한다. 유희의 시간을 함께하는 이들은 모두가 친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세계와 자연을 통제하고 우리의 손 안에 가두려 하는 동안, 우리의 ‘죽마’는 점점 더 우리의 손에서 빠져나가버린 것은 아닐까. 길지 않은 생애를 살면서 누구나 자기 자신이 되어본 순간이 언제였던가 기억이 나는가. 애초에 작가의 의도가 무엇이었든, 언젠가 잃어버린 나의&nbsp;‘죽마’를 다시 찾아 나설 수 있기를 바란다.&nbsp;나의 마지막 순간에 스스로에게 물어볼 수 있을까? 너는 이 생애에 후회 없이 사랑해 보았는가, 라고.  &nbsp;    &nbsp;  <br><br><br><br><br>#신사트리스트럼샌디의인생과생각이야기 #로렌스스턴 #김정희번역가 #을유문화사 #18세기소설    ​  &nbsp;    &nbsp;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655/87/cover150/s03213843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6558741</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