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모비딕》


허먼 멜빌 지음  | 록웰 켄트 그림  |  황유원 옮김  |  문학동네


 

 


소설은 나를 이슈미얼로 불러달라 시작한다. 실제 이름이든 아니든 간에 상관없이 이슈미얼은 번역자의 주석에  따르면, 전통적으로 아랍인의 조상으로 여겨진다.  《모비딕》 신성모독적이고 이교도적인 요소는 바로 문장부터 분위기를 느낄 있다. 오늘은 뉴욕 맨해튼에서 매사추세츠주 뉴베드퍼드 항구에 밤늦게 도착한 이슈미얼이 낸터킷 섬으로 가는 배를 놓치고 뉴베드퍼드에 머물며 벌어지는 장면들이 나온다. 소설의 중요한 조연인 식인종 작살잡이 퀴퀘그가 등장하고, 포경업의 중심지가 되어버린 뉴베드퍼드의 경제적 특수성에 대한 소개도 나온다. 오늘 읽은 부분은 주로 토요일 밤과 일요일 낮까지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들을 때론 유머스럽게, 때론 암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특히 소설의 처음에 인상적이고 재미있는 부분이 바로 퀴퀘그가 등장하는 대목이다. 남태평양 지역 출신의 작살잡이는 대머리에다, 얼굴과 전신에 문신을 식인종이다. 심지어 이슈미얼이 여인숙에 곳을 찾아 들어왔을 퀴퀘그는 방부처리된 뉴질랜드 원주민의 머리를 팔러다니는 중이었다. 주머니에는 은화 뿐이던 이슈메일에게 잠자리의 선택권이 충분히 주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여인숙 주인은 퀴퀘그가 머무는 방의 침대가 크니, 함께 자라고 이슈미얼에게 제안하며, 흥미로운 브로맨스 예고한다.  미리 침대에 들어간 이슈미얼이 늦게 돌아온 퀴퀘그의 행동거지를 경악하며 바라보는 장면이나, 퀴퀘그가 알게되어 놀란 이슈미얼이 어린아이처럼 집주인을 부르는 대목은 비극적인 소설의 아마도 안되는 희극적인 요소일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상황에서 이슈미얼은 무지는 두려움의 아버지다라는 웃픈 문장을 인용하며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는 부분이다. 이슈미얼은 술취한 기독교인이랑 자느니 정신 멀쩡한 식인종이랑 자는 낫지라며 생각을 바꾸는 것이다. 상대방도 나처럼 겁에 질려있을 것이라고 하면서 말이다. 멜빌이 소설을 통해서 보여주는 이런 인식은 당시 시대적인 배경을 떠올려볼 결코 흔하지 않다. 이러한 부분은 멜빌이 각종 허드렛일과, 상선의 선원, 포경선원, 교사 등등을 전전하며 획득하게 문제의식이 표출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부분들이 당시 진지한기독교인들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았을까 상상해보게 된다


 

가지 주목해보는 점은, 허먼 멜빌이 소설의 주인공(화자) 여인숙 주인과 같은 인물들의 이름 설정에 관한 부분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화자 이슈미얼은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을 고려하면 사회에서 버려진 ’, ‘추방자 이미지를 암시한다. 귀족 신분도 아니고, 이런 저런 일을 하며 떠도는 인물, 일개 교사이기도 했던 인물로서 이슈미얼이 소설에서 맡고 있는 상징적인 역할은 9(설교) 중심적으로 언급되는 요나와도 연결된다고 보인다. 점은 독서일기를 쓰는 마지막 날에 다시 언급할 있겠다. 지금 이야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멜빌은 여인숙 주인의 이름을 피터 코핀으로 설정해두었는데, 또한 스쳐지나가는 인물이긴 하지만 하나의 잠재되어 있는 상징과도 같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코핀 사망자들을 싣는 관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리고 피터 사실 베드로 영어식 표현이다. 성서에 등장하는 베드로는 어부로서 예수의 제자가 되는 사람이기도 하며, 예수가 유대인들의 모함을 받아 로마 집정관에게 체보될 , 예수를 부인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따라서 피터 코핀 해석에 따라 베드로의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그리고 소설의 진행 과정에서 크게 등장하는데, 또한 읽어나가면서 추후 연결지어도 같다. 오늘 읽으며 주목해본 것은 멜빌이 거대한 서사를 밀고 나가면서도 이러한 작고 세심한 디테일을 놓치지 않고 설정해두고 있다는 점이다.

 




(주목해본 구절


(42) “이런 연유로 나는 포경 항해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경이로운 세계로 가는 거대한 수문이 활짝 열렸고, 나를 결심으로 이끈 열광적인 상상 속에서 끝없는 행렬을 지은 고래들이 마리씩 짝을 지어 영혼 깊숙한 곳으로 흘러 들어왔다. 그리고 모든 고래들 한가운데, 하늘에 우뚝 솟은 설산처럼 거대한 두건을 유령 하나가 떠다니고 있었다.


: 부분이 특별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기 보다는 나중에 등장하게될 고래 이미지를 예고하는 부분인듯 하기 때문에 주목해보게 되었다. 만년설이 덮여있는 거대한 산의 모습은 먼지와 같은 인간에게 외경심을 불러일으킨다. 산의 거대함과 동시에 인간의 왜소함을 동시에 인식하게 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더하여 눈의 하얀 색이 불러일으키는 어떤 불가항력적이고 완전무결하면서도 두려운 감정들과 같은 이미지는 나중에 등장하게될 하얀 고래의 이미지와 연결되는 같다. 이슈미얼이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야하는 당위가 다소 신비주의적으로 처리되고 있다는 인상을 주지만, ‘영지주의혹은 유대교 신비주의 일부 영향을 받았다고도 하는 멜빌에게는 설득력이 있는 소설 전개 방식인지도 모르겠다.  

 



(90) “설교단이 세상을 이끌어나간다. 하느님의 성마른 노여움이 제일 먼저 발견되는 곳이 바로 그곳이니, 뱃머리는 최초의 맹공을 견뎌내야만 한다. 순풍이나 역풍의 신에게 부디 순풍을 보내달라고 처음 기원하는 곳도 바로 그곳이다. 그렇다, 세상은 출항한 배와 같고, 항해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설교단이 바로 배의 뱃머리다.


: 소설은 아마도 잠시의 예외 없이 기독교적인 배경 속에서 전개되고 있다. 예배당은 신의 말씀을 듣는 신성한 장소이면서도 기독교 국가의 국민들에게 하나의 지역적 구심점이 되는 공간이기도 하다. 뉴베드포드는 포경산업으로 미국 내에서도 예외적으로 부유한 퀘이커 교도들이 많이 사는 곳이다. 이들에게 포경산업은 신이 허락해준 소명이기도 이다. 포경업이라는 특수한 산업이 중심인 이런 지역의 예배당을 맡고있는 매플 목사 역시 젊은 시절 작살잡이를 해본 적이 있는 카리스마있는 혹은 연극적인 상황을 연출하는 인물이다. 한편 뉴베드포드라는 지역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하며 기독교 문명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은 어떤 점에서는 양가적 관점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다시 말해 멜빌은 기독교 안에서 있으면서도 때로는 기독교를 비판적으로 보는 일종의 경계인이란 느낌을 받는다. 설교단의 비유역시 세상사에서 차지하고 있는 기독교의 위치 혹은 역할 비중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번역오류)


(101) ‘요빠로 가는 배를 탐으로써 요빠에서 배를 탐으로써






(42면)
"이런 연유로 나는 포경 항해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경이로운 세계로 가는 거대한 수문이 활짝 열렸고, 나를 이 결심으로 이끈 열광적인 상상 속에서 끝없는 행렬을 지은 고래들이 두 마리씩 짝을 지어 내 영혼 깊숙한 곳으로 흘러 들어왔다. 그리고 그 모든 고래들 한가운데, 하늘에 우뚝 솟은 설산처럼 거대한 두건을 쓴 유령 하나가 떠다니고 있었다."

(90면)
"설교단이 이 세상을 이끌어나간다. 하느님의 성마른 노여움이 제일 먼저 발견되는 곳이 바로 그곳이니, 뱃머리는 최초의 맹공을 견뎌내야만 한다. 순풍이나 역풍의 신에게 부디 순풍을 보내달라고 처음 기원하는 곳도 바로 그곳이다. 그렇다, 세상은 출항한 배와 같고, 그 항해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설교단이 바로 그 배의 뱃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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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모비딕


허먼 멜빌 지음  | 록웰 켄트 그림  |  황유원 옮김  |  문학동네



새해를 맞아 록웰 켄트의 그림이 곁들어진 허먼 멜빌의 일러스트 모비딕 버젼을 읽기에 도전해봅니다. 짧지만 꾸준히 30개의 독서 일기가 모이길 기대하며…. 오늘은 본문이 시작하기 전에 어원편을 읽어봤습니다.  소설의 시작에 인용된 수많은 발췌문들을 보면, 멜빌이 자신의 방에서 홀로 권의 소설을 써내기 위해 읽었던 책들 일부를 짐작해볼 있습니다. 멜빌은 고래 대한 언급이 나오는 수많은 문헌들을 보고 발췌하여 모아놓았네요. 하느님이 만드신 고래와 요나의 이야기가 담긴 성경에서부터 시작하여 로마의 현인들, 몽테뉴, 셰익스피어, 밀턴, 괴테, 호손, 각종 여행기 항해기, 에드먼드 버크, 다윈, 페일리의 글이 모여있습니다. 처음 다른 출판사의 판본으로 읽어봤을 때는 그다지 주목하고 보지 않았던 부분입니다. 다윈은 대학시절 신학자 생물학자였던 페일리의 자연신학 항상 옆에 끼고 다니며 초자연적이며 지적 존재인 신이 자연을 설계했다 페일리의 주장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멜빌은 페일리와 다윈의 주장과 이들이 주장한 이론이 서로 어울리지 않는다는 , 바로 이런 맥락을 알고 있었다는 반증을 어원편을 통해서도 짐작해볼 있습니다.   


저는 이미 모비딕 읽었기 때문에 발췌문들 중에 어떤 점이 소설에 ·간접적으로 사용되었을지 정황이 조금 눈에 들어오는 같습니다. 그런데 이번 읽기에서는 흥미로운 점이 모비딕 출간한 해가 1851년인데, 다윈이 비글호를 타고 오랜 항해를 마치고 자신의 항해기를 출간한 것이 1839년이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인류가 생물과 세계에 대한 관점을 바꾸는데 영향을 미친 종의 기원 출간한 해가 1859년이라는 점이구요. 그러니까 모비딕 다윈의 항해기와 종의 기원 세상에 나온 시기 사이에 등장한다는 점입니다. 소설을 읽어가다 보면 나오겠지만, 멜빌은 생물의 진화에 관한 아이디어가 등장하는 대목이 나올 겁니다. 물론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오류가 있는 점이 있지만 모비딕 당시 생물의 진화에 관한 최첨단 이론의 세례를 받은 소설이기도 하다는 점입니다. 물론 멜빌의 소설이 이교도적이고 신성모독적이라는 당시 신앙인들의 비판을 받기도하고 결과 인기를 누리진 못하고 잊혀지듯 했지만, 작가의 입장에서 당시에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어쨌든 오늘은 다윈의 항해기에서 발췌한 인용문으로 모비딕읽기를 시작해봅니다.


(32)

한번은 아마도 수놈과 암놈이었을 괴물(고래) 마리가 해안(티엘라델푸에고)에서 돌을 던지면 맞힐 수도 있을 만큼의 거리, 너도밤나무가 가지를 드리운 바로 아래서 교대로 천천히 헤엄치는 모습을 보았다.

- 다윈, 어느 박물학자의 항해기

 

 

록웰 켄트의 목판화가 담긴 일러스트 버전은 너무나 유명하여, 록웰 켄트의 대표작으로 인정받고 있다고 합니다. 록웰 켄트의 그림이 있는 모비딕초판은 구하기도 어렵고 가격이 상당하고 합니다. 아직 그의 그림들을 훑어 것은 아니지만, (그림을 모르는 비전문가의 관점에서 보아도) 그의 그림들은 매우 간결하면서도 강렬한 매력이 느껴집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에는 선이 분명한 멜랑콜리가 느껴진다고 해야할까요. 그의 판화그림은 비극 모비딕 너무나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그림 하나 하나가 영화의 포스터 장을 보는 같이 명료합니다. 록웰 켄트의 그림이 있는 초판본을 구할 수는 없지만, 번역본이 나온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싶고 충분히 만족스럽습니다. 특히 분권되어 있지 않고 권의 두툼한 책으로, 마치 거대한 고래와 같은 묵직함을 주고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마음에 듭니다. 그리고 번역자의 꼼꼼한 주석작업에도 주목해보게 되네요. 다른 판본에서 언급되지 않았던 부분들에 대한 주석이 더해져서 다시 읽으면서 새롭게 보이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다시 읽기 Re-reading 기쁨을 새롭게 맛보기 시작했습니다.  이번에 다시 읽어보는 기회에는 선이 뚜렷한 록웰 켄트의 그림을 보느라 달이 금방 지나갈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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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


2 고전역학: 견적(見跡) – 소의 자취를 보다

장회익 지음 |  [추수밭]

 


근대 철학 근대 과학의 토대를 마련한 거인

 


[1] 데카르트


지난 1장에서는 조선 시대의 학자 여헌 장현광(1554-1637) 선생의 삶에 대한 이해를 더했고, 이치 추구의 바른 방향을 여헌 선생이 제시했던 배경을 확인했다. 여헌 선생이 77세의 나이였던 1631년에는 아직 서양의 과학이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전이었다. 따라서 여헌 선생이 사실상 독자적으로 자연의 이치 추구하는 바른 방향을 제시하며 우주설 펴냈다. 안에는 <답동문>이라는 제목의 글이 있는데, 여기에서 저자는 상상의 어린이(동자)’ 설정하여 동자가 자연과 우주에 대해 묻는 장면에 저자(여헌 선생) 이에 답하는 형식의 글을 썼다. 한편 여헌 선생은 17세가 되던 해에 우주요괄첩이라는 일종의 개인 비망록 혹은 가죽 다이어리(수첩) 만들어 평생 자신이 추구해야할 학문의 분야와 공부에 대한 자신의 다짐을 써놓고  83세에 세상을 떠날 때가지 평생(임진왜란으로 집이 불타 떠돌며 생활하던 시기를 포함하여) 품에 넣고 다녔다. 여헌 선생은 우주요괄첩 다른 이들에게 보여주지 않았다고 한다. 수첩은 소년 여헌의 학문적 출사표이자 포부이기도 했다. 다시 말해 당시 사대부들의 공부방식이 학문의 스승이 되는 성인들의 인품과 학식을 따르고 경전에 대한 주석을 다는 정도의 학문 활동이었음에 반해, 여헌 선생은 학문의 영역에 성역이란 없음을 밝힌 것이었다. 여기에는 성인이라도 피할 없었다. 당시의 시대를 고려해보면 위험한 발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여헌 선생은 자신이 판단하기에 의심스러운 점을 따져보고 이치를 캐묻겠다고 다짐했다는 점에서 매우 특별한 사례이기도 하다.

 


서양(당시의 유럽)에도 여헌 선생과 비슷한 견해를 가졌던 사람이 있었다. 게다가 여헌 선생과 거의 동시대 인물들이었다. 바로 이번 2장에서 주로 언급되는 데카르트와 뉴턴이다. 사람은 수학이라는 실증적 도구를 활용하여 현실에 드러난 이치의 궤적 찾아냈다고 장회익 선생은 평가한다. 여헌 선생은 새로운 수학을 충분히 익히지 않았고(물론 당대에 조선에서도 예를 들면 정수론 같은 이론은 서양의 학문에 뒤떨어지는 수준은 아니었다고 하지만), 이치를 밝히기 보다는 인식의 제시하는데 머물렀다는 아쉬움이 있다. 데카르트는 41세에 방법서설(1637)이라는 책을 썼다. 책에서 데카르트는 학문을 위한 진리 탐구 방법론을 기술했다. 이는 방법론의 측면에서 여헌의 <답동문> 견주어볼 하고, 데카르트가 보다 본격적으로 세상의 다양한 현상과 대상에 대한 지식을 논의하는 세계 여헌의 우주설 비견된다고 저자는 지적하고 있다. 데카르트는 방법서설에서 자기 자신 이외에 어떤 스승에게도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앎을 추구하고자했다.

 


세상이라는 속에서 공부하고 얼마간의 경험을 쌓는 년의 세월을 보낸 , 나는 어느 자신 속에도 연구할 있다는 것과, 길을 선택하는 데에 정신력을 기울여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방법서설부분 재인용)

 


데카르트는 세상이라는 거대한 보고 싶어 대도시 파리로 갔다. 파리의 흥청망청한 사교계에 입문하여 유흥에 젖어 있던 생활을 하다가 당시에 유클리드 기하학을 거론하던 파리의 지성계에 매료되었다. 이후 거처를 옮겨 은둔하다시피 하며 수학과 과학에 몰두했다고 한다. 물론 데카르트는 공부만 것은 아니었다. 승마와 검술을 배우고, 자신의 시간을 확보하는 조건으로 보수를 받지 않고 군복무를 하기도 했다. 그렇게 데카르트는 군인의 신분으로도 앎에 대한 탐구를 지속할 있었다.   

 


한편 데카르트가 방법서설을 썼던  (1637) 메르센 신부라는 사람에게 보낸 편지에서 책의 의도에 대해 밝히고 있는 부분을 다시 살펴보는 것도 흥미롭다.

 


나는 책의 제목을 방법에 관한 논고 아니라 방법에 관한 서설이나 견해 정한 것은, 여기서 의도가 방법을 가르치려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것에 대해 말해보려는 것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방법서설)

 


다시 말해 데카르트는 방법서설에서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알려주마 자세로 책을 것이 아니라, ‘나는 앎에 이르는 , 진리를 탐구를 위해 이런 식으로 공부를 하겠다라고 선언하고 있다는 점을 데카르트 자신이 편지에서 직접 밝히고 있다는 점이다.

 


여헌과 데카르트의 다른 공통점은 여헌과 데카르트 모두 곳에 오래 정착하지 않고 떠돌아다니다시피 했다는 점이다. 여헌 선생은 임진왜란을 만나 집이 불타고 지인의 집을 전전하며 다녔던 시기가 있으며, 데카르트의 경우에는 어머니의 유산을 물려 받은 여행을 다니며 지식인들을 찾아다녔던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유동적인 여건 속에서도 공부 계속할 있었던 것은 사람의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했다고 있다. 사람 모두 생애의 어느 시점에서 학문에 전념하겠다는 각오를 다지며 뜻을 세웠기 때문이다. 점이 특히 인상적이다. 여헌의 비밀 다이어리 혹은 가죽 수첩에 해당하는 우주요괄첩 데카르트가 <올림피카 Olympica>라는 제목의 노트에 대응한다고 있다. 여헌이 앎에 이르는 길에 시도하는 회의의 과정에 성역이 없음을 이야기했다면, 데카르트는 자신이 앍고 있던 모든 진리를 의심하고 심지어 거짓으로까지 간주하며, 이성이 안내하는 바에 따를 수밖에 없다고 쓰고 있다. 저자 장회익 선생은 인식의 순간이 바로 서구 지성사에서 고전학문과 근대학문을 나눌 분기점이 된다라고 평가한다. 그리고 회의를 거듭하고 이치를 따지던 과정에서 나온 명제가 바로 자신이 철학의 1원리로 삼은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명제인 것이다





[그림: 데카르트를 그린 초상화에서, 데카르트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책을 밟고 있다. 이것은 진리로 알려진 모든 것을 의심하고 자신의 이성에 따르겠다는 의지를 상징처럼 보여주고 있다.]





[2] 데카르트라는 거인의 어깨에 오른 뉴턴의 등장

 

데카르트 사후 11년이 지난 1661 9, 케임브리지 대학의 트리니티 칼리지에 19세의 청년이 입학했다. 아이작 뉴턴이라고 하는 청년은 대학에서 노트 하나를 들고 학기를 시작했다. 노트에는 당시 대학에서 교재로 사용하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과 관련된 내용이 한동안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이후 공백이 이어지다가 데카르트의 형이상학에 관한 기록이 보인다. 그리고는 다시 철학에 관한 의문들이란 제목이 적혀 있다. 뉴턴의 대학 노트에 등장하는 이러한 변화는 무엇을 의미할까. 노트에 적힌 단서를 들여다보면, 데카르트보다 46살이 어렸던 뉴턴(1642 ) 이렇든 대학생 시절 데카르트 철학의 영향을 크게 받은 정황이 보인다. 아울러 당시에 지배적이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뉴턴의 노트에서 배제된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에 대한 비판적 견해를 뉴턴이 가지게 되었음을 암시한다. 여헌 선생이 진리를 추구하기 위해 회의함에 있어서 성인도 성역이 없음을 말했던 것처럼, 청년 뉴턴의 지적 수련기에 이미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으로 대변되는 지배적인 앎의 스승을 따르기 보다 자신의 앎을 추구하고자 했던 청년의 의지를 읽을 있다.

    


뉴턴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학문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공부를 해나갔는데, 운좋게도 칼리지 특대생으로 선발된 행운을 누렸다. 물론 이것도 기본적인 실력이 바탕이 되어야하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이후 1666(당시24) 뉴턴은 인류 역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노트에 기록했다. 때는 역병으로 학교를 떠나 시골 고향집에서2년여 기간(1665-1667) 동안 홀로 공부했던 기간에 이루어졌다. 바로 시기에 고전역학으로 불리는 분야의 기틀을 잡게 것이다. 데카르트 물리학의 관점을 받아들이고 데카르트 좌표계를 도입한 뉴턴은 3차원 공간에서 일어나는 물체의 운동을 기술하기 위해 새로운 수학적인 도구를 고안한다. 그것이 바로 미분 적분 것이다. 과정에서, 혹은 고민의 결과 뉴턴은 고전 역학에서 기존의 공간에 대한 개념과 다른 인식을 있게 되었던 같다. 책에서 저자 장회익 선생이 주목하는 부분은 공간을 인식하는 관념의 다르면 공간에서 물체의 운동에 대해 도출되는 질문이 달라지게 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공간에 대한 고대의 자연관은 평면(2D) 떨어지는 작용하는 수직축(1D) 상정하는 공간으로서, 공간의 축에 동일한 물리 규칙이 적용되고 있지 않다. 중력이 예컨대 수직축 방향에만 적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결과 이러한 공간에 물체가 있을 경우, 물체는 반드시 수직방향으로 떨어져야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주 공간에 있는 천체들이 떨어지지 않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도출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와 달리 중력과 무관한 공간이 정의되면 축이 대등하며(다시 말해 축에서 일어나는 물리 현상이 동일하게 나타난다는 의미), 공간에 물체가 있을 경우,  뉴턴이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사과가 떨어지게 되는가?” 질문하게 된다는 점이다. 정리하면, 공간을 어떻게 인식하고 바라보는지에 따라, 공간에서 일어나는 물체의 운동 현상은 완전히 다른 질문을 하게끔 한다는 점이다.

 


한편 여헌 선생의 삶과 여헌의 진리 추구에 이르는 방법을 제시한 1장에서 여헌 선생은 예측적 대한 입장을 <답동문>에서 분명히 밝힌 있다.

 


얻어진 이치를 통해 지난 일들을 추구해보면 오늘의 일로써 지난 만고의 일들을 가히 있으며, 앞으로 일들을 추구해보면 다가올 만세의 일들 역시 오늘의 일을 통해 가히 알아낼 있다.”(53)

 


저자는 여헌 선생의 이러한 예측적 관한 논리가 뉴턴의 법칙(물체 운동 변화의 원리) 통해 현재 물체의 상태를 , 미래의 운동 상태를 있다라고하는 뉴턴이 고전 역학에서 완성한 관념과 대등하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물론 근대 과학의 거인, 데카르트와 뉴턴은 수학이라는 정교한 도구를 활용하여 이러한 현실 속에서 사물의 이치에 대한 궤적을 명백히 밝힌 반면, 여헌 선생은 수학이라는 도구를 사용하지 않았고, 진리 탐구의 방법론 이상으로 과학적인 결과 얻어낸 것도 아니었다. 아쉽지만 그럼에도 저자는 고전과학의 기틀이 되는 예측적 일반적인 구도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을 새삼 강조하고 있다.

 


절대적 공간과 절대적 시간을 상정하고 물체의 운동 원리를 알고, 대상 혹은 물체의 처음 상태에 대한 정보만 알면 일정한 시간이 지나 물체의 나중 상태에 대한 예측을 정확히 있다는 것은 정말로 획기적인 업적이었다. 물론 뉴턴의 고전 물리학은 현대에 와서 입지가 크게 흔들리게 되는 계기가 등장하지만, 혜성의 운동과 같이 천체의 운동을 성공적으로 예측하는데 성공한 인식의 틀이다. 고전 물리학이 흔들리게 지점은 아마도 3장인 상대성이론에 대한 장부터 시작될 것이다. 그러므로 2장에서는 17세기의 거인, 데카르트와 뉴턴이라는 인물들이 지상과 천상의 모든 물체들에 두루 적용되는 예측적 앎의 정교한 체계를 완성했다 점을 이번 장에서 인정하고 넘어가면 같다. 이러한 업적의 토대에는 거인이 바라보았던 공간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먼저 이루어졌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될 같다. 결과적으로 공간에 대한 고대의 관념(2D+1D) 근대과학의 관념(3D)으로 전환될 있게 것이 고전 물리학이 가져온 중요한 영향이었다고 있겠다. 무론 이러한 업적이 가능했던 사건의 출발점은 데카르트의 초상화에서도 상징적으로 드러나듯, 기존의 지식과 인식의 틀에 도전하기, 다시 말해 당연한 것에 대한 회의와 진리 탐구에 대한 강한 의지와 뜻을 세운 순간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고전역학을 인식의 틀로 하는 2장에서는 지난 1장과 마참가지로 동아시아의 조선과 유럽의 지식인들이 자연을 이해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예측적 대한 태도를 비교해가며 살펴볼 있었다. 진리를 찾아가는 구도자를 (진리) 잃어버린 사람의 이야기에 빗대어 전개되고 있는 점도 책의 특징이기도 하다. 구도자는 무턱대고 진리를 찾는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소의 발자국을 찾듯이 진리의 실마리를 찾는 일을 먼저 해야 한다. 전체를 관통하는 구조로서 언제나 현재 상태를 알고, 변화의 원리를 알면 미래의 상태를 있다는 고전역학의 인식틀과 마찬가지로, 처음 상태와 나중 상태에 대한 변화의 원리라는 틀을 유지한 , 자연을 바라보는 여러 관념틀을 적용하게 것이다. 그래서 3장의 관념틀은 바로 상대성원리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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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비 Moby-Dick or, The Whale

허먼 멜빌(Herman Melville) 지음 | 록웰 켄트 그림 | 황유원 옮김  | 문학동네


 


[6] 거리(The Street)

 


[6장의 기본 줄거리]

여인숙에서 아침식사를 마치고 이슈메일은 산책을 나가 걸으며 사람들을 관찰한다. 배를 타기로 결정했던 낸터킷에 가려면 다음 배편을 기다려야 했기에, 뉴베드퍼드 항구 거리를 산책하며 사람들을 관찰하는 장면이다. 뉴베드퍼드 항구에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있다고 말한다. 진정한 식인종들, 시골뜨기 다른 도시의 풋내기들, 시골 멋쟁이들 등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든다. 포경산업으로 부유해진 뉴베드퍼드의 모습을 묘사하며, 베드퍼드의 여인들에 관해서도 언급하며 마무리한다.

 


이번 장은 ‘9 읽기 작성하다가 건너 것을 발견하고 다시 돌아와 남기는 독서기록이다. 6장은 모비 전체를 놓고 , 잠시 지나치는 매우 짧은 장이긴 하지만, 당시에 활발했던 포경업을 중심으로 항구의 특수성과 이런 산업을 기반으로 부유해진 뉴베드퍼드 지역의 특징을 묘사 하고 있다. 인간의 관점에서 항구는 육지와 바다를 이어주는 접점이다. 바다를 개척하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항구는 새로운 기회의 출발점이자 그로부터 가장 먼저 영향 또는 혜택을 받는 공간이기도 하다. 이슈메일이 일요일 아침 거리를 걸으며 발견하는 정체모를 수많은 이방인들은 주로 선원들만 보이는 리버풀의 워터거리나 런던의 웨핑 거리보다 놀라운 특수성을 지닌다. 거리의 여기 저기에서 수다를 떨고 있는 식인종들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뉴베드퍼드 항구 지역의 거리는 특이한 이방인 뿐만 아니라 내륙의 흥미로운 사람들로 넘쳐난다. 항구가 육지와 바다를 이어주는 통로이자 접점이라고 표현했듯이, 내륙에 있던 사람들을 물로 끌어들이는 곳이기도 하다. 이슈메일의 관찰에 의하면 뉴베드퍼드 항구에는 우스꽝스러운 복장을 하고 나타나는 벌목꾼들이 거리를 배회한다. 이들은 숲에서 입던 비버 모피 모자며 털외투를 입고 있기도 하는데, 여기에 어울리지 않게 선원용 벨트를 하고 칼이 들어 있는 칼집을 옆에 차고 있기도 하다.  이슈메일의 입으로 진기한 광경이라고 말하고 있다. 거리의 흥미로운 사람들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도시 멋쟁이도 아닌 시골 멋쟁이들도 곧바로 눈에 띄는 존재들이다. 이들은 삼복더위에 손이 탈까봐 사슴가죽 장갑을 끼고 풀을 베는그런 촌뜨기들이다


 

거리를 산책하며 사람들을 관찰하던 이슈메일은 이제 거리 주변을 발견하며 뉴베드퍼드의 지역적 특색을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다. 뉴베드퍼드는 도시 아닌 지역은 척박하지만, 도시 지역은 아마도 뉴잉글랜드 지역에서 가장 부유한 곳이라고 명시하는 것이다. 이유는 곧바로 드러난다. 가나안의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아니라 기름이 흐르는 땅이며, 아울러 곡식과 포도주의 땅이기 때문이다. 지역이 특별히 농사가 되는 것이 아니라 포경산업의 중심지였던 만큼, 고래로 부터 얻어낸 부를 거머쥔 퀘이커교도가 주축이 지역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 모든 화려한 집과 꽃으로 덮인 정원은 대서양, 태평양, 인도양에서 왔다. 전부 바다 밑바닥에서 작살로 꽂아 여기까지 끌고 것들이다.”(일러스트 모비딕, 80)라고 이슈메일이 넌지시 이야기하듯 말이다.

 


뉴베드퍼드의 결혼 풍속도 특별할 수밖에 없다. 딸의 아버지는 결혼하는 딸에게 지참금으로 고래를 주고, 조카딸에게는 돌고래를 마리 준다 한다. 화려한 결혼식은 물론이고 집집마다 기름 저장고가 있어 매일 경뇌유로 만든 양초를 부족함 없이 마음껏 태울 있는 지역이다. 게다가 화려하고 풍성하게 가꾸어진 대로의 가로수와 꽃으로 가득한 정원을 있는 곳이 바로 뉴베드퍼드라는 도시다


 

마지막으로 뉴베드퍼드의 여인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대목이 흥미롭다. ‘붉은 장미처럼 활짝 피어나는 여인들, 카네이션 같은 이들의 뺨은 7천국에 내리쬐는 햇볕만큼이나 영원하다고까지 찬사를 보낸다. 7천국(The Seventh Heaven) 역자의 주석에 의하면 유대인과 이슬람 교도들이 생각하는 최고의 천국이라고 한다. 허먼 멜빌이 문명을 벗어나 생활했던 경험을 담은 번째 소설  타이피 Typee 성공을 거두었을 때와 달리 모비 종교인들, 혹은 독실한 신도들에게 비판을 받았던 이유에는 아마도 7천국 같은 이교도의 천국 개념을 분별없이 사용했다는 점도 포함될 것이다. 이처럼 뉴베드퍼드는 수많은 이방인과 다양한 문화, 그리고 커다란 규모의 경제가 한데 모여 들끓던 용광로와 같은 곳이었다. 여인들의 얼굴에 화색이 도는 것은 아마도 이러한 기운의 영향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멜빌은 여기에 하나의 예외를 장소를 언급한다. 바로 지금의 보스턴 북서쪽 해안가에 있는 세일럼이란 도시이다. 세일럼은 1692 미신에 의한 마녀 재판으로 수많은 여성들이 목숨을 잃었던 곳이기도 한데, 멜빌은 여기에서 아름다운 여성들이 있는 곳으로 뉴베드퍼드와 비견되는 장소는 바로 세일럼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내막은 모비 페이지에 쓰여진 헌사와 관련이 있다. 바로 그의 천재성에 대한 존경의 징표로 책을 너새니얼 호손에게 바친다라는 대목이다.  주홍글씨 썼던 호손과 그의 아내 소피아 호손이 바로 세일럼 출신이었다는 것이다. 이제 멜빌이 아름다운 여성이 있는 뉴베드퍼드와 견줄만한 곳으로 세일럼을 언급한 이유를 조금은 짐작해볼 있겠다. 작가 연보에 따르면,모비 주로 1850년에 집필이 되었고, 같은 해에 호손과 친밀한 관계가 되었다. 사람이 만나기 전에 이미 멜빌은 호손에 대해 호의적인 인상을 받았을 것이 분명하다. 멜빌이 소설 타이피 Typee(1846 2) 대해 호손이 멜빌의 소설을 극찬한 리뷰를 기고했기 때문이었다.  모비 한창 집필하던 1850 여름, 멜빌은 호손과 친교를 맺으면서 다소 밋밋하던 원고가 비극적 요소를 분명히 갖추게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이번 장에서 멜빌이 이슈메일의 입을 통해 뉴베드퍼드 여인 못지 않은 아름다움을 갖춘 이들이 세일럼 여인들이라고 것은 글을 읽게 사람(호손 부부) 대한 존경과 우정의 표시이자 가벼운 농담으로 여길 하다. 멜빌은 이슈메일의 입을 통해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이따금씩 멜빌의 자의식이 드러나는 이런 부분을 느릿느릿 책을 읽으며 발견하는 것이 내게는 하나의 즐거움이다.       



 

 [참고도서]

[1] 《일러스트 모비 허먼 멜빌 지음/록웰 켄트 그림/황유원 옮김 [문학동네]

[2] Moby-Dick or, The Whale Herman Melville [Penguin Class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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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

장회익 지음 |  [추수밭]

 


물리학자이자 과학철학자 장회익 선생님의 60여년에 이르는 공부 결실이 책으로 나왔다. 바로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이란 이름으로 출간이 되었다.  저자의 존재를 알게 것은 거의 사반세기 고등학교 시절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영어 수업 시간에 선생님께서 녹색 평론이란 잡지의 짧은 한편을 읽어 주셨는데, 이야기가 인상깊었던 모양이다. 중국을 여행한 사람이 여행기 성격의 글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후 나는 잡지를 이따금 사서 부분적으로 읽곤 했는데, 어느 호에서 물리학자 장회익 교수의 글을 읽게 되었다. ‘온생명이란 단어가 보이고, 현직 물리학자가 물리학 이야기가 아닌 생명과 철학 이야기를 것을 보고 내용을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기억에 오래 남았던 것이다. 당시에 나는 막연하게 물리학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그래서 철학자나 평론가가 기고하는 성격의 잡지에 물리학자도 이런 글을 있구나하며 놀라워했던 기억이 난다.  

 


책을 거의 읽지 않았던 내가 군복무시절 갖고 있던 하나가 바로 저자의 삶과 온생명(솔출판사, 1998)였다. 내가 특히 주제에 대해 호기심을 느꼈던 이유는 거의 유일하게 학부 배운 지식이 책을 읽는데 조금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학부 1학년 생물학 수업을 들으면서 물리학자 슈뢰딩어의 생명이란 무엇인가 읽어보고 '약간'의 놀라움( 역시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경험했다. 이유는 자신의 전공분야를 넘어선 공공의 발언 탐구가 전문가 집단에서는 일종의 오지랖으로 지탄받기 일수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하는 점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던 같다. 지금 책을 다시 펼쳐보면 장부터 스피노자의 윤리학에서 따온 문구로 시작하는데, 이제는 슈뢰딩어가 생명 현상에 대해 이해해보려는 관점과 태도를 조금 이해할 있을 같다. 아인슈타인이 유일하게 기대겠다고 말한 스피노자의 다시 말해 자연혹은 자연 법칙으로 있겠다. 슈뢰딩어는 물질에 관한 보편 법칙으로서 물리학의 눈으로 법칙() 입각하여 이루어지는 모든 생명 현상을 설명할 있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스피노자의 내재론적 입장 탐구의 방법으로 이용하겠다는 선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나아가 슈뢰딩어는 생명이란 무엇인가 1장을 시작하며 데카르트의 명제(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제시하고 있는데, 1장에서 생명에 대한 고전물리학자의 접근방식 내지는 태도를 마디에 담으려 것으로도 이해된다.


이번에 읽기 시작한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 이들 학자들의 문제의식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특히 자연의 이치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서양의 학문이 들어와 유학자들에게 전파되고 수용되기 이전에 우주와 사물의 이치에 대한 물음과 방법론을 제시했던 여헌 장현광(1554-1637) 선생의 이야기는 매우 흥미롭고 주목해볼만한 부분이다. 여헌 선생은 일흔이 넘은 나이에 우주설 여기에 실린 <답동문> 지었다. <답동문> 가상의 아이(동자) 등장시켜 소크라테스의 산파술 화법처럼 동자의 천진스런 물음에 여헌 선생이 답변하는 형식을 취한 글이다. 여기서 동자가 질문에 앞서 하는 선언이   인상깊다.


 

이치를 캔다는 것은 모르는 데가 하나도 없게 후에야 비로소 캤다고 있습니다. (…) 천지 안에 일어나는 일들은 모두 고금의 사람들이 함께  들을 있는 것이고, 역시 있을 것입니다.”(50)

 


저자 장회익 선생은 대목에서 가지 근대학문의 정신을 언급한다. 하나는 점의 의혹 없이 철저히 지적 탐구를 수행하겠다 선언이며, 다른 하나는 탐구 활동에 성역이란 없고, 지식에 대해서는 무엇이나 물을 있으며, 내용은 누구나 있어야 한다 것이다. 바로 이런 관점이 근대 과학, 근대 철학의 인식론과 궤를 같이 하고, 근대 서구 과학의 관심사와 상통한다고 의미를 정리하고 있다.

 

한편 저자는 사물을 꿰뚫어 본다 의미의 격물(格物) 대한 여헌 선생의 재해석에 주목한다. 먼저 대상에 대한 깊은 통찰을 통해 보다 보편적인 원리와 연결 지을 소재를 찾아내야 한다 것을 주문하고, 이를 위해 자연 세계에서 접할 있는 거의 모든 것을 직접 눈으로, 귀로 파악해야함을 언급했다. 달리 표현하면 구체적인 현상에 바탕을 두지 않은 앎은 무용하다 입장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라야 이런 이치를 활용하여 오늘의 상황을 관찰하여 과거의 상황과 미래의 상황을 알아낼 있다 것이다. 바로 지점이 고대의 사고와 근대의 사고를 나누는 분기점이 된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답동문> 쓰인 해가 1631년이다. 유럽의 물리 천문학자 라플라스가 고전 역학을 통해 현재 상태만을 관찰하여 과거와 미래의 모든 것을 산출할 있다 언급한 때보다 거의 2세기 이전이라는 것도 놀라운 이야기였다.

 


여헌 선생은 우주설 <답동문>에서 이치를 추궁한다는 방법론 제시하지만 구체적인 물음도 제기하고 있어 흥미롭다. <답동문>에서 똑똑한 동자는 땅이 공중에서 하늘의 () 의해 둘러싸여 유지되며 떨어지지 않으며 이는 대기를 보호하는 보호벽으로서 구각 있어야함을 말하며, 다시 구각은 어디에 붙어 있는 것이냐고 묻는다. 장회익 선생은 무거운 물체는 떨어져야 한다 인식의 틀에 주목하여 2차원의 평면에다 (중력에 의해) 추락하는 수직축(2D + 1D)으로 이루어진 공간에 대한 인식과 어느 방향으로도 대등한’( 중력을 분리하여 어느 축방향으로나 물리법칙이 동일한) 3차원 공간(3D) 인식차이를 비교한다. (2D + 1D) 공간 인식 틀에서는 대지가 떨어지지 않는가 묻게 되며, (3D) 인식 아래서는 사과가 아래로 떨어지는가하는 반대의 물음을 도출하게 된다는 것이다. 바로 데카르트와 뉴턴은 고전적인  (2D + 1D) 공간 인식을 벗어나 (3D) 공간 인식으로 나아가며 근대 과학이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다고 있다는 것이다. 그만큼 사물에 대한 인식의 틀은 중요한 역할을 하며, 인식의 틀에서 벗어나 바라본다는 것이 얼마나 지난한 일인지도 새삼 이해하게 된다.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기존의 패러다임이 새로운 패러다임과 충돌하고 과학자 공동체 속에서 논쟁과 검증의 과정을 거쳐 극복되는 혹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이행되는 과정이 그렇게 쉽지 않음을 있었듯이 말이다. 그만큼 인식의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이번에 손에 들게된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 1장에서 가지 인상에 남는 부분은 여헌 선생이 18 우주요괄첩이라는 작은 책자를 만들어 이치를 추궁하려는 대상의 제목을 적어 두고 평생을 지니고 다니며 틈나는 대로 참고했다는 점이다. 책자는 결국 커다란 학문을 하겠다는 소년의 당돌한 의지이자 학문적인 출사표이기도 것이다. 여헌 선생이 우주요괄첩 품에 넣고 다닌지(38 임진왜란을 만난 것도 포함하여)  60여년이 지나 평생 탐구해온 주제들을 엮은 것이 바로 우주설 <답동문>이라고 한다. 학문에 대한 이러한 발심 평생 놓지 않고 뜻을 세운 사실은 내가 아쉬움을 느끼기 시작한 부분이기도 하기에 여헌 선생 발심을 더욱 눈여겨 보았 같다. 2장에 나오지만 데카르트 역시 23세의 나이에 군인으로 복무하며 놀라운 학문 기반을 발견하고 진정한 학문에 전념하겠다는 각오를 다진 점도 여헌 선생의 모습과 유사한 면이 있다. 평생 공부꾼 장회익 선생님의 공부와 고민의 결과 역시 물리학이란 학문에 뜻을 둔지 60여년이 지난 올해 권의 책으로 나온 것도 여헌 선생의 모습과 오버랩되고 있다. 학창시절을 떠올려볼 , 평생동안 전념할 주제와 뜻을 세우는 공부를 했다면 어땠을까. 사족이긴 하지만 자라나는 세대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어쩌면 부모 카드를 통해 좋은 대학에 입학시키는 것보다 평생 지켜갈 만한 가치와 목표를 찾는 , 그것이 어떤 분야이건 간에 스스로 올바른 뜻을 세우는 일을 기회를 마련해주는 것이 아닐까도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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